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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솔아 林率兒
1987년 대전 출생.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및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중편소설 『짐승처럼』, 장편소설 『최선의 삶』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등이 있음.
sol.a.2772@gmail.com
금빛 베드 러너
그때 지윤은 운전석에서 하얀 봉투를 들고 있었다. ATM 기계 옆에 비치되는 은행 봉투였다. 봉투의 겉면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힘내십시오’라고 적어두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봉투를 재활용한 모양이었다. 지윤의 엄마는 지윤과 지내다 헤어질 시간이 되면 종이백 가득 무언가를 담았다. 썰고 덖어서 만든 생강편, 직접 키우고 수확해서 볶은 땅콩, 지윤이 어릴 때 좋아했던 진미채와 연근조림, 나무에 딱 하나 열렸다는 토마토 한알일 때도 있었다. 나눠 먹을 것이 풍성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신용카드 한장이나 장미 모양의 순금반지를 얹어준 적도 있었다. 지폐를 두툼하게 넣은 흰 봉투일 때도 있었다. 돈봉투를 건넬 때에 엄마는 숨겨왔던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굴었다. 지윤의 몸에 자기 몸을 바짝 붙였다. 이거 가져가. 귀에 대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하얀 봉투를 재빨리 반으로 접어 지윤의 점퍼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집에 가서 봐. 지윤은 이번에도 봉투 안에 든 것이 지폐인 줄로만 알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에야 지윤은 주머니에 든 봉투를 꺼냈다. 돈이 들어 있긴 했다. 편지 두장과 함께. 지윤은 편지를 펼쳐보았다. 스프링노트를 아무렇게나 찢은 듯했다. 귀퉁이도 누랬다. 지윤은 그 편지를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다. 내용을 다 읽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글씨체와 표현들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윤이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두렵다고 적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네 마음을 모르겠다고. 사랑한다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너에게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문장으로 편지는 끝이 났다.
편지에는 ‘너’라는 단어와 ‘언니’라는 단어가 번갈아 등장했다. 지윤이 언니라고 부르면서 너라고도 부른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칠년 전쯤에 지윤은 그 편지를 썼을 거였다. 그때에 지윤은 두살 위의 여자와 동거를 했다. 지윤의 엄마도 몇번인가 그 여자를 보았다. 여자와 헤어진 뒤에도 엄마는 종종 여자의 안부를 묻곤 했다. 요즘은 연락 안 해? 같이 안 살더라도 서로 연락은 하고 살라면서 엄마는 참견을 했다.
대체 어느 시기에 엄마가 이 편지를 발견한 것인지 지윤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고 얼마나 오래 모르는 척해왔던 것일까. 지윤은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얼굴이 홧홧거렸다.
이런 걸 두려워할 나이는 지났잖아.
지윤은 침착해지기 위해 되뇌었다. 자신이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에 지윤은 힘이 쏙 빠지는 듯했다. 두렵다고 편지에 적어두었던 칠년 전처럼.
지윤은 다시 편지를 접었다. 봉투를 열어 혹시라도 엄마가 남긴 다른 쪽지 같은 것이 없는지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힘내십시오.
봉투에 적혀 있는 문장을 곱씹었다. 그제야 지윤은 다른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 편지를 왜 챙겨준 걸까. 굳이 지윤에게 돌려준 마음은 도대체 어떤 걸까. 하얀 봉투를 점퍼 주머니에 넣어주던 엄마의 얼굴을 지윤은 떠올렸다.
엄마의 표정이 어땠더라.
엄마는 알의 코팅이 벗겨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눈썹문신을 한 부분에 드문드문 색이 빠져 있었고, 왼쪽 뺨 언저리에 타원형의 기미 몇개가 새로 생겨 있었다. 그 아래로 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이의 볼거리 흉터 자국이 있었다. 입술선이 유독 선명했고 갈색빛의 눈동자는 여전히 커다랬다. 지윤은 엄마의 얼굴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목구비가 따로따로 또렷하게 떠오를 뿐, 엄마의 표정은 읽히지 않았다.
지윤이 개구리들을 떠올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연잎들이 하나둘 공중으로 떠올랐다. 연잎을 타고 개구리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의 개구리, 수천의 개구리…… 개구리떼는 나무들의 정수리를 지나 전봇대에 앉아 있는 새떼들 너머 마을로 향했다. 식탁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남자네 창문을 지나, 빨랫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빨래들을 떨어뜨렸다. 낮은 지붕 아래 열린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락의자에 잠든 할머니 주변을 떼를 지어 떠다녔다. 뛰어다니는 개의 꽁무니를 추격하듯 쫓아다녔다. 밤새 마을의 온갖 곳을 날아다녔다. 아침이 밝아오자 개구리들은 모두 사라졌다. 동그란 연잎들만 길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한 남자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연잎들을 바라보았다.
개구리들의 표정이 어땠더라.
지윤은 개구리를 떠올려보았다. 초록색이거나 황토색이었던 얼굴. 검은 반점들로 뒤덮인 콧잔등. 툭 튀어나와 있던 커다란 눈. 양볼을 커다랗게 부풀리던 개구리와 긴 혀를 날름거리던 개구리와 눈동자가 점처럼 자그마했던 개구리와 눈동자가 마름모꼴이었던 개구리를 지윤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다.
에이도스 검사 과정에서 지윤이 읽어야 했던 그림책에 개구리들이 등장했다. 글자는 없고 그림만 있는 그림책을 보고 지윤이 검사자에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세시간 남짓한 검사가 끝났을 때, 검사자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과가 나와야 확실해지겠지만 지윤씨는 해당이 될 것이라고.
“어떤 점에서요?”
지윤은 검사자에게 질문했다. 원하지 않았던 결과냐고 검사자는 되물었다.
“제 말의 어떤 점이 달랐던 건지 저로서는 잘 몰라서요.”
“이 검사는 피검사자가 하는 말을 관찰하는 게 아니에요.”
검사자가 말을 이었다.
“여러 증상들을 보는 거예요.”
지윤은 마치 시험에 임할 때처럼 검사에 임했고, 자신이 모든 과정을 꽤나 성실하고 매끄럽게 이행했다고 여겼다. 지윤이 시험을 치를 때에 늘 그러듯 최선을 다했고 실수 같은 건 없었다. 한달이 지난 후에 지윤의 집으로 배달된 검사 결과지에는 진단 기준점을 훨씬 초과하는 점수가 적혀 있었다. 지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결과였다. 세시간의 검사에서 목격된 지윤의 증상들은 일곱 페이지 정도의 검사지에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림책에 나온 표정들을 지윤이 읽어내지 못했다는 문장을 지윤은 오래 들여다보았다.
표정이 있었다고?
지윤은 용산역을 향해 뛰고 있다. 얼마 전 엄마에게 봉투를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벚꽃을 보았었다. 지나가던 차들의 바퀴에 휘감기던 벚꽃잎들을. 그때는 사월 중순이었다. 넉달 전이었다. 그동안 지윤은 휴게소에 꺼내본 하얀 봉투에 대해 떠올린 적이 없다. 봉투를 열어봤을 때만 해도 꽤나 놀랐는데도 그랬다. 지윤에게는 그보다 더 크게 놀랄 일들이 있었다. 지윤은 엄마가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뇌와 뼈에 이미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지윤은 무서웠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과 자신이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대한 무서움에 시달렸다. 지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검사 결과를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저 멀리 밀쳐놓고 암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엄마가 정확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알아야겠어서 병원에서 의료기록을 받아보고, 거기에 적힌 용어들을 학습했다. 엄마가 암 진단을 확정받은 것은 지윤에게 전화로 알려준 것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엄마는 지윤에게보다 먼저 주변에 진단 결과를 알렸다. 친척들, 환갑여행을 함께 갔던 초등학교 동창들과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나서 지윤이 마지막으로 알았다. 엄마는 동네의 흥철이라는 남자가 다른 이웃들에게 엄마의 병명을 전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비밀이야. 소문은 내지 마.”
엄마는 흥철에게 전화를 걸어 서운하다며 바로잡았다. 모르는 척하고 비밀로 해야 할 일이 전혀 아니라고. 그 일화를 지윤에게 전해주며 엄마는 한껏 섭섭함을 드러냈다. 못된 것, 왜 비밀로 해야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엄마는 한참이나 중얼거렸다. 지윤은 엄마에게 묻고 싶었다. 나한테는 왜 비밀로 했느냐고.
힘내십시오.
하얀 봉투에 적힌 문장을 지윤은 이제야 이해한다. 엄마의 병명을 들은 누군가가 엄마에게 건넨 봉투였다. 치료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엄마는 자신의 암 진단에 대해 말하는 대신 칠년 전 지윤의 연애편지를 봉투에 넣는 걸 선택했다.
왜지.
지윤은 3번 출구를 통해 용산역으로 들어간다. 드넓은 대합실이 펼쳐진다. 지윤은 겁부터 난다. 이렇게 드넓은 장소에서 지윤은 늘 호흡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많은 간판들. 너무 많은 간판 속 이름들. 알록달록한 전광판들. 표지판들. 표지판 속 화살표들. 공중에서 거대한 유리병이 터져버려 파편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지하철과 기차를 타기 위해 움직이는 승객들과 마중 나온 사람들과 근처의 쇼핑몰을 가려는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지윤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2번 출구만 찾으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다. 출구를 등지고 서면 ‘열차 타는 곳’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의 왼편에는 에스컬레이터와 기둥이 있다. 그 기둥 뒤에 약국이 있다. 출발하기 전에 핸드폰으로 검색해본 것과 다르지 않다.
“화이투벤 두통 주세요.”
지윤이 신용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해둔다. 일단 엄마에게 약을 먹이고, 한시간 남짓 지켜보아야 한다. 한시간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얼른 응급실에 가야 한다.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 약을 먹이자마자 간단하게라도 짐을 미리 챙겨놔야 한다. 그리고 응급실로 가는 길을 미리 검색하자.
“화이투벤은 없어요.”
약사가 답한다. 지윤은 신용카드를 내민 채 서 있다.
“다른 감기약으로 드릴까요?”
약사가 다시 말한다.
“아뇨.”
지윤은 뒤돌아선다. 약국을 빠져나온다. 엄마는 분명히 화이투벤이라고 말했다. 그게 잘 듣는다고 했다. 지윤은 화이투벤의 성분에 대해 검색한다. 타이레놀도 화이투벤처럼 아세트아미노펜이 주요성분이지만, 다른 주요성분의 목록이 다르다.
다른 약국을 찾아가면 된다. 근처에 약국이 한군데 더 있다. 다른 약국의 위치는 이 약국에 비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다. 아이파크몰 리빙관 6층이라고만 적혀 있다. 아이파크몰은 용산역을 디귿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패션관, 동관, 서관, 면세점, 디지털전문점, 광장, 에어쉽, 이마트, 리빙관 등으로 나뉜다. 미로 같은 구조로 유명하다. 지윤은 이곳에 몇번 영화를 보러 온 적이 있다. 올 때마다 길을 잃었다.
지윤은 눈앞이 까마득해진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의 글자들이 시시각각 바뀐다. 속이 울렁거린다. 전조증상이 시작되고 있다.
지금은 안 돼.
지윤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편다. 잼잼을 하듯이. 너무 추우면 턱이 떨리듯이 평정을 잃을 때에 지윤의 두 손은 아기처럼 그렇게 움직인다. 그건 지윤에겐 조건반사 같은 것이다. 리빙관. 리빙관. 되뇌며 지윤은 걷는다. 어째서 감기약 하나 챙겨오지 않은 걸까. 엄마의 몸이 보이는 것보다 더 쇠약하다는 걸 지윤은 번번이 놓치고 있다. 여행을 온 것부터가 무리한 선택이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서울로 피서를 가자고 엄마에게 제안한 건 지윤이다. 암 진단에 대해 들은 이후부터 지윤은 엄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엄마가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외국의 이색 호텔 같은 것이 소개될 때마다 엄마는 안고 있던 핫팩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것 좀 봐.”
지윤도 같이 보고 있는데도 자꾸 보라고 했다. 가까운 일본이나 제주도라도 엄마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응급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병원과 가까운 곳, 멋진 호텔이 있는 곳, 엄마에게 새로운 기쁨을 줄 수 있는 장소를 궁리하다가 서울이 떠올랐다.
엄마의 암 진단 직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주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동네 주민들과 친척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고 현관문을 벌컥 열고 식구처럼 엄마 집에 들어왔다. 전에 지윤은 누군가 그렇게 들어올 때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버리곤 했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는 그러지 않았다. 참외나 사과 같은 것을 찬물에 뽀득뽀득 닦고 과도로 예쁘게 깎았다. 접시에 담아 소파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그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아랫동네 누에농장 깍쟁이가 선물이라며 또 물러터진 복숭아를 줬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들이 집에 찾아오는 것을 엄마는 좋아하는 듯했다. 지윤이 그들과 나란히 앉아 엄마 옆을 지키는 것도 엄마는 무척 흡족해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만 해도 엄마는 그들을 못된 것들이라고 지윤에게 말해왔다. 그들이 나간 대문에 대고 씹어 뱉듯 말했다. 못된 것들, 아주 사람을 뭣같이 보고. 이제 엄마는 그들이 나간 뒤에 흐뭇하다는 듯 대문 쪽을 보며 웃었다. 지윤은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이전과 지금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두 장면을 머릿속에 나란히 펼쳐두고 다른 지점을 찾아보았다. 배치였다. 이제 그들은 엄마를 소파의 가운데 자리에 앉게 했다. 모두가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그때 지윤은 엄마가 서울로의 여행을 좋아하리라 여겼다. 엄마는 마을 사람들에게 호캉스를 다녀왔다고 자랑할 것이다. 딸이 호캉스를 시켜주었다고. 마을 사람들 중 호캉스를 경험해본 첫번째 사람이 되어서. 지윤은 워커힐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롯데타워의 아쿠아리움, 한남동의 전통차 클래스와 호텔의 파인다이닝을 예약했다. 차례대로 그곳들을 방문한 후, 루프탑 까페에서 엄마와 함께 서울의 야경을 볼 예정이었다.
여행의 첫 일정이었던 전시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지윤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익숙한 명화들을 극장이라는 콘셉트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 전시였는데, 엄마가 그 그림들을 알아보고 기뻐했다. 그 그림들에서 무엇을 감상해야 하는지, 도슨트처럼 엄마는 계속해서 지윤에게 속삭여주었다.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나무」 액자 아래에는 「폴 고갱의 의자」와 똑같이 생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의자에 앉았고 지윤은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리넨 재질의 블라우스와 감색 베스트를 입고 있었는데, 의자의 색감과 잘 어울렸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앞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그림을 찍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볼 때마다 엄마는 연신 핸드폰을 들이댔다. 식탁 위의 휴지 케이스에 핸드폰을 기대어두고 사진을 따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취미였다. 엄마는 집에 가서 이 그림들도 모작을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중앙홀은 삼층 정도 층고의 드넓은 공간이었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명화들이 공간을 360도로 에워싸며 재생되었다. 홀 여기저기에 놓인 빈백과 느슨한 자세로 누워 있는 사람들. 홀에 입장한 지윤과 엄마의 몸 위로도 명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사이프러스가 검게 타오르며 흔들렸다. 샛노란 별무리가 지윤의 팔뚝 위에서 느릿느릿 회전했다. 하늘은 빠르게 굽이치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그려댔다. 평소 지윤은 그림에 무감했다. 지윤은 정지해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했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회전하는 물체였다. 세탁기와 팽이, 나사와 풍차. 그리고 오르골. 지윤은 회전을 통해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여겼던 튀르키예 사람들의 세마 의식을 좋아했다. 수피댄스 동영상을 유튜브로 틀어두면 기쁨이 몸에 차오르곤 했다. 하얀 치마가 넓게 펼쳐지고 회전이 빨라지고 기도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들은 아는 것이다. 회전이 가진 우주적인 집중력을. 지윤은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본능적으로 회전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도, 해와 달도, 별들도 회전하므로. 그 아름다움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김연아의 트리플악셀도 회전하는 우주의 섭리를 아름답게 모사한 것이라고 지윤은 생각했다.
지윤은 고흐의 그림이 일으키는 회오리로 빨려들어갔다. 회오리 속에 들어가보는 경험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가 지윤에게 말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구나?”
“엄마는?”
지윤은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도 좋아하고 있다고 여겼다. 엄마의 기침이 시작되고 나서야 지윤은 엄마가 몹시 추워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엄마가 추위 때문에 떨고 있고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는 것을. 이곳은 엄마가 있기에는 냉방이 너무 강했다. 엄마는 옅은 기침을 했다. 한번 시작된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전에 검사자는 말했다. 검사를 하는 동안 지윤에게서 웃음 외의 다른 미묘한 표정은 목격되지 않았다고. 지윤은 정곡을 찔린 것처럼 뜨끔했다. 웃음은 지윤이 오랫동안 연습해온 표정이었다. 지윤의 두 손을 꼭 붙잡고 엄마가 자꾸 채근했기 때문이었다.
“지윤아, 웃어야지.”
지윤에게 웃음은 피아노의 영역이었다. 건반을 조금만 안 쳐도 손가락이 굳듯, 조금만 웃지 않고 지내도 웃음은 지윤을 떠나버렸다. 그러니까 웃음은 지윤이 쉬지 않고 의식하며 노력해온 증거 중 하나였다. 표정이 웃음밖에 없다는 검사자의 말은 지윤의 노력이 무언가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지적처럼도 들렸다. 지윤은 검사자에게 질문했다. 처음 보는 낯선 검사자 앞에서 검사를 받는 상황에서 웃음 외에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냐고. 애도 아닌데 울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검사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놀라면 눈썹을 위로 올리기도 해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거나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하고요. 먼 과거를 생각할 때 눈을 가늘게 뜨기도 하고,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엔 미간을 찌푸리기거나 눈을 꿈벅거리기도 하죠. 입술을 내밀거나 코를 찡긋하거나 눈을 가볍게 흘기거나. 그리고 무슨 설명을 할 때엔 손짓을 곁들이기도 하죠. 손을 가볍게 휘젓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어깨를 으쓱하기도 하고요. 지윤씨는 저의 제스처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어요.”
검사자가 어떤 표정이나 제스처를 설명하는 것인지 지윤은 모르지 않았다. 검사를 받는 동안 검사자가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목격한 기억이 없었다. 알고 있었어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지윤의 오랜 소외감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자신만 빼고 모두에게 통용되고 있는 은밀한 언어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은 지윤의 착각이 아니었다.
지윤은 엄마와 함께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따뜻한 곳에서 조금만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바깥은 폭염이었다. 실외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웠고 실내는 지나치게 추웠다. 엄마의 집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지윤은 호텔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히터의 온도조절기에 손을 대어 적정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곳은 지금으로서는 그곳뿐이었다. 방의 냉방을 끄고서 희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게 제일 낫다고 판단됐다. 비치된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불을 덮고서도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괜찮다는 말과 기침 소리가 번갈아 엄마의 입술 바깥으로 삐져나왔다. 엄마의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지윤은 서성이고 있다.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애써 찾은 1층의 엘리베이터는 3층까지만 운행한다. 리빙관 6층을 찾아갔으나 푸드스테이지 6층이다. 처음에 갔던 약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리빙관 6층에서 두번째 약국을 발견했을 때, 약사는 없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거나 하는 쪽지도 붙어 있지 않다. 뒤쪽 진열대가 훤히 보여서 약상자들의 제품명이 눈에 들어온다. 화이투벤이 거기 있다. 약사가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지윤은 핸드폰으로 약국 정보를 재차 확인한다. 영업 중. 지윤은 약국 앞을 빙글빙글 돌며 서성이기 시작한다. 이십분이 지난다. 속이 탄다. 영업시간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는 약국이 원망스럽다. 일분만 더 기다려보자 생각한다. 일분만 더를 스무번쯤 반복했으니까 열번만 더 반복하자고 스스로를 달랜다. 이제 모퉁이에서 약사가 나타날 것만 같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면서. 날이 더워 빙수를 먹었다가 배탈이 났지 뭡니까. 약사는 그렇게 말할 것만 같다. 약국 옆에는 빙수집이 있다. 돌아올 약사와의 대화를 상상하며 지윤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괜찮아요. 많이 안 기다렸어요.
삼십분이 넘어간다. 엄마를 더는 혼자 둘 수 없다. 처음 갔던 약국으로 돌아간다. 지나온 길을 기억해내려 하지만 가는 길과 오는 길은 도무지 다른 길 같다. 약국에 도착했을 때 지윤은 새파랗게 질려 있다. 약사는 모드콜에스라는 종합감기약을 지윤에게 준다. 트리프롤리딘염산염수화물 대신 클로르페니라민말레산염이 들어갔다는 점을 제외하면 화이투벤과 모드콜에스의 주요성분은 같다는 설명이 지윤의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린다. 그래도 모드콜에스는 화이투벤이 아니다.
호텔방 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기댄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엄마가 자주 보던 여행 프로그램이다.
“저것 좀 봐.”
엄마는 기침을 하며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호텔 창문에는 암막커튼이 쳐져 있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뷰를 가졌지만, 창문은 손바닥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엄마는 창밖이 아닌 텔레비전 속 풍경을 보고 있다. 지윤은 엄마에게 감기약을 먹인다. 짐을 챙기고 응급실을 알아보는 동안, 엄마의 기침 소리가 꽤 잦아들었다는 걸 알아챈다.
“잠깐 한기가 온 거라니까.”
엄마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자 한다. 아쿠아리움 방문과 전통차 체험은 취소되었지만, 호텔 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 예약이 남아 있다. 레스토랑도 냉방이 강할 것이다. 지윤은 챙겨놓았던 캐리어를 다시 연다. 옷가지들을 꺼내본다. 엄마의 옷은 얇은 것들뿐이다. 지윤의 것도 마찬가지다. 지윤의 캐리어에는 수영복 가방이 들어 있다. 혹시나 엄마와 함께 호텔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을까 싶어 챙겨 온 것이다. 온수풀 정도라면 엄마에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래시가드 두벌과 스포츠타월 두장. 지윤은 티셔츠 두장을 겹쳐 입은 엄마에게 긴팔 래시가드를 또 입힌다. 그 위에 리넨 블라우스와 감색 베스트를 또 입힌다. 엄마의 목에 스카프처럼 스포츠타월을 두른다. 잠옷 바지 위에 바지를 입히고 양말도 두겹으로 신긴다. 두개의 캐리어에 있던 모든 것들로 엄마를 무장시킨다. 금빛 베드 러너가 눈에 들어온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의자 위로 치워두었던 것이다. 지윤은 그것을 들고 엄마에게 다가간다. 지윤의 의도를 알아챈 엄마가 웃기 시작한다. 지윤도 웃는다.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엄마는 기꺼이 그것을 숄처럼 두른다.
“불상 같네.”
지윤은 레스토랑 입구에서 무릎담요 세장을 집어든다. 직원은 안쪽 자리로 안내한다. 주방 창고 앞자리이다. 창고 앞에는 서빙 카트들이 줄지어 있다. 에어컨 바람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자리다. 지윤은 접시 위에 놓인 패브릭 냅킨을 펼쳐 자신의 무릎을 덮는다. 엄마는 핸드폰을 꺼내 패브릭 냅킨의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장미 모양으로 접혀 있다. 직원이 웰컴 드링크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시럽을 잔에 부어준다. 유리잔 속 액체의 색이 오로라처럼 바뀐다. 지윤과 엄마는 천천히 식사를 한다. 엄마는 음식보다 그릇에 더 관심을 보인다. 모든 그릇이 다른 디자인이라며, 그릇을 높이 들어 밑면을 일일이 확인한다. 지윤도 엄마를 따라 그릇 밑바닥을 확인한다. 너도 그릇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느냐고 엄마가 물었고, 지윤은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다. 엄마가 폴란드 그릇과 튀르키예 그릇의 차이에 대해 말해준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았다고 한다. 엄마는 보리리소또에 토핑된 배 무스의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익숙한 맛이라면서. 배 무스 덕분에 소화가 잘될 것이라고도 한다. 지윤은 제 앞에 있던 배 무스를 스푼으로 들어올려 엄마의 접시에 옮겨놓는다. 엄마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요리가 차례대로 앞에 놓일 때마다 조금씩 반응이 다르고 점점 더 반색한다. 마주 앉은 지윤도 엄마를 지켜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그 검사가 틀렸을 수도 있다.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검사자는 지윤에게 지속적인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치료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안전한 환경에서 전폭적인 이해를 받으며 소소한 대화를 나눠보는 경험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지윤은 그 조언을 따랐다. 이전부터 상담을 받아왔던 상담사에게 검사 결과지를 보여주러 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약이 없어요. 약물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지윤씨의 경우는 장애 등록도 안 될 테고요.”
상담사는 말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의학적 진단이 지윤에게 이로운 점은 없다고도 했다.
“검사 결과는 잊어버리시고요. 굳이 주변에 알리지 마세요.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면 돼요. 노력 많이 하셨잖아요. 남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어릴 때부터 해온 노력들이 아깝지 않나요.”
검사자와 달리, 상담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이 남용되는 것을 비판했다. 지윤의 경우, 그저 수줍음이 많아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걸 어려워하는 것일 뿐이라 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말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했다.
“어떤 점에서요?”
지윤은 상담사에게 질문했다.
“제 말의 어떤 점이 비자폐인의 특징인 건지 저로서는 잘 몰라서요.”
상담사가 대답했다.
“친구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의 감정에 대해 여러번 언급하셨어요. 걔들은 타인의 감정을 못 느껴요. 관심도 없고요. 많이 봐서 알아요.”
지윤은 온몸이 굳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담사의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 속에서 ‘걔들’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오는 순간, 지윤은 자신이 개구리떼에 쫓기는 개처럼 느껴졌다. 오로지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개의 몸짓이 떠올랐다. 자폐인이 타인의 감정을 못 느낀다는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자폐인이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요약하는 모습에서 이 상담사는 적어도 자폐인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판단됐다. 잘 알지 못한다고. 자신의 무지에서 묻어나오는 미량의 악의가 어떤 식으로 지윤에게 가닿는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져도 무시하고 있다고.
“제 검사자는 평생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연구한 분이에요.”
“저도 이 일을 이십오년 넘게 했어요.”
상담사가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과 임상심리사 1급 자격증, 상담심리사 1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건 지윤도 알았다. 세가지 자격증을 모두 가진 사람이 한국에 그닥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검사자가 공부를 미국에서 했다고 했나요?”
상담사가 물었다.
“영국이요.”
“지윤씨, 여기가 영국은 아니잖아요.”
그는 진심으로 지윤을 돕고 싶어했다. 지윤을 비자폐인으로 바라보는 것이 상담사에게는 지윤에 대한 선의였다. ‘걔들’이 아닌 ‘우리’의 카테고리에 넣어주는 것. 지윤은 기시감이 들었다. 언젠가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칠년 전쯤. 친구는 지윤에게 물었다. 너라면 우리처럼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아? 친구는 안타까워하면서, 동시에 지윤에게 소속감을 주면서, 칭찬의 의미를 담아 그런 말을 했다.
자신에게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상담사는 제안했다. 에이도스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자격증은 그에게 없지만, 풀배터리 검사를 진행해서 지윤의 증상을 크로스체크할 수 있다고 했다.
큰 위로가 되었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지윤은 검사자에게 보냈던 자신의 편지를 떠올렸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결과를 받아들고 지윤은 검사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지윤은 검사 결과지를 다 읽고 나서 용서를 받는 기분이었다. 매일같이 느껴왔던 고립감, 소중한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들, 소중해지기도 전에 관계에서 미리 제외돼버렸던 경험들. 타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남몰래 품어온 두려움들. 평생 동안 무겁게 등에 업고 살아온 죄책감이 등에서 내려와 지윤의 곁에 앉아 지윤을 바라보는 듯했다. 지윤은 비로소 등에 업힌 무거운 것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일에다 적었던 안도감은 얼마 가지 않아 서서히 다른 형태로 변해갔다. 앞으로 지윤은 어떤 사람으로 타인들 앞에 있게 될까.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지윤의 뒤에서 말할 것이다. 자폐래. 지윤은 늘 자신의 몸이 지나치게 커다랗다고 느껴왔다. 몸 안에 갇혀 있는 지윤은 탁구공처럼 자그마하고 바빴다. 걸음을 걸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걸으라고, 자그마한 지윤은 발끝에서부터 팔 끝까지 부산스레 돌아다니며 교정하고 감시하고 지시하고 격려했다. 시커먼 동굴 같은 자신의 몸속을 끝없이 헤매다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리치면 몸속 구석구석으로부터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지윤이 살면서 자주 느껴온 교감은 고작 그 메아리가 전부였다.
상담사의 재검사 제안이 지윤에겐 선택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자폐 스펙트럼의 범주로 들어갈지, 범주를 거부할지. 내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는 이 순간, 지윤은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과 관련된 아무런 증상도 없다고 여긴다. 엄마의 마음을 충분히 잘 알아차리고,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화이투벤이 아니어도 괜찮았잖아. 자신이 화이투벤을 고집하지 않았다는 유연함에 안도한다. 그러나 디저트로 나온 소르베를 반쯤 비웠을 즈음, 엄마는 다시 기침을 시작한다.
지윤과 엄마는 방으로 돌아간다. 엄마의 이마에 손을 짚어본다. 감기약을 한번 더 먹인다. 이번에는 약효가 빠르게 돌지 않는다. 무엇을 또 놓쳤을까. 역시 화이투벤을 사 왔어야 했나. 엄마는 춥지 않았다고 한다. 긴장을 좀 해서 그렇다고 한다. 기침이 더 잦아지거나 열이 더 오르면 응급실에 가자고 한다. 이제는 좀 쉬어도 되겠냐고 엄마가 묻는다. 언제부터 쉬고 싶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지윤은 잠자코 침대 위에 덮인 이불을 걷어준다. 엄마가 침대에 몸을 누일 때 지윤은 소등을 하며 엄마의 옆에 눕는다. 어둠 속에서 기침 소리가 들린다. 처음 폐암 진단에 대해 지윤에게 전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결핵을 오래 앓았잖아. 엄마 생각에는 그게 원인인 것 같아. 열살 때였나, 한번은 집에 아무도 없고 혼자 방에 누워 있는데, 누워 있는 요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라고. 천장이 점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요가 점점 더 높게 떠올라서 천장이 너무 가까워지면, 그래서 천장이 나를 짓누르면, 나는 죽는 걸까.”
지윤은 천장을 올려다본다. 지윤은 지금 엄마가 보고 있을 천장이 궁금하다. 엄마가 혹시 지금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지는 않을까. 천장에 가까워지고 있지는 않을까. 이곳에 누워 있으면서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식탁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남자를 지나 텔레비전을 켜둔 채 안락의자에 잠든 할머니 옆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연잎을 탄 개구리들이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까. 우린 그걸 못 보고 있는 걸까. 혹시 엄마의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닐까. 엄마는 많이 두려울까. 어느만큼일까. 지윤은 자신이 타인을 외롭게 만든다고 늘 생각했다. 지윤은 타인이 부지불식간에 표현해온 많은 메시지들을 자주 놓친다고 생각했다. 무얼 놓치는지에 마음이 쏠려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누구와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늘 한 박자 늦게 실감했다.
기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옆에 있는 엄마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들키지 않고 싶어서다. 지윤이 혼자서 몰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엄마에게도 지윤에게도 더 낫다. 지윤은 도어벨을 떠올린다. 언젠가 지윤은 엄마의 집 창고에서 그 종을 발견했다. 지윤이 여섯살 무렵 살았던 집의 현관문에 달려 있던 것이었다. 너무 어렸고 또 금세 이사를 갔기 때문에 그때 살았던 집의 구조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지윤은 그 종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현관문을 열면 추의 역할을 하는 천사 모양의 바람판이 흔들렸고 종소리가 난다. 종소리가 멈춘 뒤에도 천사는 종 아래에서 계속 회전을 한다. 가끔은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 종이 저 혼자 울린다. 지윤은 그게 두렵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어렸을 때 지윤은 몇시간이고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도어벨을 올려다보았다. 지윤의 배가 호흡에 따라 부풀고 꺼지고 천사도 미세하게 회전을 했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지윤은 종소리가 나지 않기를 바랐다. 동시에 종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이사를 간 뒤로 현관문의 도어벨은 자취를 감췄다. 버려졌으리라 지윤은 짐작했다.
“나 기억해.”
어둠 속에서 지윤이 말한다.
“응?”
엄마가 지윤을 향해 돌아눕는다.
“도어벨.”
“알아.”
엄마가 지윤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린다. 손바닥이 거칠고 뜨겁다. 축축하다. 지윤도 엄마를 향해 돌아눕는다. 어둠 속에서 엄마의 눈동자는 빛이 난다. 지윤은 엄마의 눈을 계속 바라보지 못한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엄마의 안경 자국에 시선을 고정한 때 지윤이 묻는다.
“뭘?”
“그냥.”
엄마는 잘 알고 있다. 지윤은 정보의 일부를 누락한 채 말하는 버릇이 있고, 그럼에도 유일하게 잘 알아듣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알지.”
엄마의 입술이 서서히 닫히고 두 눈이 감긴다. 엄마가 잠이 들었나 싶을 때쯤에 엄마는 다시 말한다.
“그게, 꼭 내가 쓴 것 같았어.”
엄마는 지윤의 손을 잡는다. 엄마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걸 지윤은 느낄 수 있다.
“안 그럴 거지?”
지윤은 엄마가 하얀 봉투에 넣어줬던 그 편지를 떠올린다. 두렵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네 마음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던 구질구질한 말들. 그것들은 엄마가 지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매일 보는 애니메이션이 결방되었다거나 미용사가 앞머리를 예상보다 짧게 잘랐다거나 할 때에 지윤은 세차게 울어댔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은 일, 의외의 사건들 앞에서 지윤은 늘 이해받지 못할 공포에 시달렸다. 그런 지윤을 보며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제발 그러지 마. 엄마는 거의 절규를 했다. 지윤은 그때 텅 빈 얼굴로 울음을 멈추었다. 자라면서 지윤은 다른 방법을 체득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 있었다. 화장실로 향하는 지윤을 엄마는 붙잡곤 했다. 다신 안 그럴 거지? 지윤의 손을 꼭 잡고 엄마는 다짐을 받아내려 애쓰곤 했다. 그때 지윤에게 화장실은 억지로 떼어내야 했던 감정들을 넣어두고 돌아서는 장소였다. 엄마에게는 창고가 마치 지윤이 화장실에 두고 온 것들을 따로이 챙겨둔 공간 같았다. 창고에서 지윤이 발견한 도어벨이 그랬다. 지윤이 기억하던 것보다 천사는 훨씬 작았고 종은 부식되어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엄마는 지윤에게 언젠가는 다시 질문해보고 싶어서 그 도어벨을 보관해둔 것 같았다. 도어벨을 들고 엄마에게 갔을 때, 엄마는 지윤에게 물었다.
“너, 이거 기억해?”
왜 이 도어벨을 그토록 오래 보고 있었느냐고. 도대체 왜 그랬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이제 엄마는 지윤에게 그런 말을 쏟아내지 않는다. 지윤에게 언젠가부터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때의 지윤은 엄마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정확하게 설명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지윤을 안아줄 때까지. 하지만 지윤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지윤은 그때 도어벨을 봐야 했다. 계속 봐야 했다. 그게 다였다. 다른 일들도 그런 식이었다. 설명해야만 하는 구실이 있는, 의도나 목적은 없었다. 엄마는 지윤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그게 창고에 여태 있었구나,라는 혼잣말로 대화를 끝냈다. 엄마의 집 창고에는 그런 물건이 많았다. 사용하지 않는 녹즙기와 약탕기, 거의 골동품이 되다시피 한 유아차와 접이식 아기 욕조, 죽은 강아지의 장난감 같은 것들. 지윤이 보낸 택배 상자들도 엄마의 집 창고 한곳에 고이 모여 있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지윤이 엄마의 집으로 보낸 커다란 상자들. 대학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점퍼와 친구가 여행을 다녀오며 선물로 사 온 기념품, 곁에 둘 필요는 없는 책들과 괜히 모아둔 잡지들. 버리기는 아깝지만 갖고 있기에는 둘 데 없는 물건들. 엄마가 하얀 봉투에 넣어준 그 편지 역시 그 물건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삭아가는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자 지윤은 창고의 선반 귀퉁이에 누운 듯하다.
지윤은 오래 연습해서 가장 익숙한 표정 하나를 꺼낸다. 입꼬리를 올리고 치아를 드러내며 엄마에게 미소를 보인다.
“우리 지윤이는 웃는 표정이 참 이쁘다.”
엄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또 짓고 있다. 앞으로도 지윤은 엄마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놓칠 것이다. 지윤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짙어질수록 모르는 것들로 휩싸인다. 지윤은 희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엄마의 어깨 위로 끌어당겨준다. 모르는 것들을 이불처럼 덮고서 지윤은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듣고 있다. 조금씩 잦아드는 소리. 미세하게 들썩이는 엄마의 몸은 이 기침에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내일 조식 뷔페는 어떻게 한담. 금빛 베드 러너를 우스꽝스럽게 두르고 또 방을 나서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룸서비스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해둔다. 엄마에게 아침을 먹이고, 렉라자 세알을 먹이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지윤은 미리 다짐한다. 먼 길을 운전하며 엄마의 집으로 갈 때에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아주 약하게 틀거나 틀지 않아야 한다고. 그걸 잊으면 안 된다고. 내일 저녁에는 엄마의 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엄마는 여행 프로그램을 틀어놓을 것이다. 엄마가 결코 직접 갈 리 없는 곳들을 함께 바라볼 것이다.
* 소설 속 그림책은 데이비드 위즈너의 『이상한 화요일』(비룡소 2002)이며, 묘사된 전시는 「베르메르부터 반 고흐까지: 네덜란드 거장들」(2024.5~2025.4. 빛의 시어터)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