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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교유서가 2024
종족청소 또는 이름 붙이지 못한 범죄
김요섭 金曜燮
문학평론가 old_postcard@naver.com
홀로코스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쁘리모 레비(Primo Levi)가 쓴 장편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한국어판 이현경 옮김, 돌베개 2017)는 그의 작품 중 드물게 수용소 외부를 주요무대로 조명한다. 소련군으로 참전했다가 부대가 패배한 후에 도망친 ‘멘델’은 나치가 점령한 동유럽에서 수없이 죽을 위기를 넘는다. 낙오된 다른 유대인 병사 ‘레오니드’를 시작으로 자신과 같은 많은 유대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힘겹게 살아남는다. 멘델의 여정에서 가장 긴 시간, 그리고 전쟁의 끝까지 함께하는 이들은 ‘게달레’가 이끄는 유격대다. 전선의 후방에서 소련이나 다른 국가의 군대가 아닌 유대인 군대로 행동한 게달레 부대는 전쟁의 끝이 보이자, 몇년 뒤에 이스라엘이라 불리게 될 팔레스타인으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게달레는 “불모의 팔레스타인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사막에 오렌지와 올리브를 심어 열매를 얻”(317면)는 공동체를 만들 꿈을 꾼다. 그들이 지중해를 건너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졌는가? 쁘리모 레비는 이에 대해 다루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보건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게달레와 그의 부대는 무기를 들고서 “‘이스라엘의 땅’으로 가는 배”(345면)를 타려고 한다.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르는 게달레의 인식은 1948년의 비극을 암시한다. 1948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이 소유한 토지는 전체의 6%에 불과했지만, 오래전부터 오렌지와 올리브나무가 자라왔으나 게달레가 ‘불모지’라고 부른 그곳은 ‘이스라엘의 땅’이어야 했다, 그곳에서 천년이 넘도록 오렌지와 올리브나무를 가꾼 이들이 아니라.
일란 파페(Ilan Pappe)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The Ethnic Cleansing of Palestine, 2006, 한국어판 유강은 옮김)는 게달레 부대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하고 다시 무기를 들었을 시간인 1948년에 일어난 ‘종족청소’를 다룬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아랍어로 ‘대재난’을 의미한다)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가던 시기에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자행한 전쟁과 학살, 추방, 강제노동과 약탈의 과정이다. 파페는 이를 (우리말로는 흔히 인종청소라 번역되는) 종족청소라고 명명했다. 이 책은 실증적으로 이스라엘 건국과정에서 자행된 광범위한 국가폭력을 분석한 훌륭한 역사서다. 파페는 시온주의의 기획이 종족청소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상세하게 검토한다.
파페의 분석은 시온주의와 유럽 제국주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섬세하게 구분한다.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위해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을 ‘비어 있는’ 땅으로 인식하고 배타적 민족국가를 상상해온 것이 어떻게 나크바로 이어졌는가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작업에 대해서 역사학적 충실성을 논할 필요를 못 느낄 만큼 이 책은 이스라엘 건설과 그 수단으로서의 강제추방 및 마을·공동체에 대한 파괴의 연대기를 세밀하게 그린다. 나크바가 정착민 식민주의의 형태로 자행된 종족청소였다는 파페의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책은 한가지를 제외하면 아쉽다고 할 지점이 없이 훌륭하다. 그 아쉬움이란 다름 아니라 양심적 학자인 저자가 종족청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주저함이다.
파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가공할 폭력을 행사한 시기들을 설명하는 각장 서두에 유고 내전 등에서 발생했던 종족청소의 내용을 다수 인용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국가폭력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했던 발칸반도의 종족청소와 이스라엘 건국 시기를 겹쳐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종족청소라는 규정은 강력한 비판의 목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용어를 한꺼풀만 벗겨보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장면들이 발견된다. 제노사이드 연구의 권위자 마틴 쇼(Martin Shaw)가 지적하듯이 종족청소는 원래 가해자의 용어이며 국제법적으로 확립된 개념도 아니다(마틴 쇼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신기철 옮김, 인권평화연구소 2024 참조). 종족청소는 오히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국가범죄인 제노사이드로의 규정을 피하기 위한 용어였다. 20세기 후반에는 비판적 학술 용어로 정립되긴 했으나, 파괴행위를 나쁜 것을 ‘청소’한다는 의미로 변주하려는 가해자의 ‘완곡어법’을 반복한다는 점(동시에 제노사이드가 아닌 행위로 본다는 점)에서는 계속 문제시되어왔다. 종족청소와 제노사이드는 그 양상이나 수단, 이후 역사적 은폐는 물론 추방이라는 핵심 요소까지 거의 동일하지만, 많은 제노사이드가 종족청소로 규정됨으로써 ‘제노사이드 방지협약’의 적용을 피했다. 1990년대 이후 종족청소가 국제사회에서 범죄로 인정되었지만, 홀로코스트와 비견될 정도의 심각한 문제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제노사이드에 씌워진 종족청소라는 가면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폭력을 숨겼을 뿐 아니라, 단 하나의 제노사이드만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파페는 이스라엘이 종족청소를 가하는 양상뿐 아니라, 이 계획을 정치인과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청소’라고 지칭한 명백한 사례들 역시 풍부하게 보여준다(228면). 그런데 다른 민족집단을 제거하는 행동을 청소라 불렀던 이들이 또 있다. 나치 역시 홀로코스트의 과정을 완곡하게 청소라고 불렀다. 종족청소라는 용어가 확산된 맥락에는 홀로코스트 예외주의, 즉 홀로코스트는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 폭력이라는 인식이 함께 자리한다. 쁘리모 레비도 홀로코스트는 킬링필드 등 다른 제노사이드와 비교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라 단언한 점에서 이러한 인식의 견고함을 알 수 있다. 홀로코스트 예외주의는 팔레스타인 ‘민족’에 이스라엘이 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프로파간다로 쓰여왔다(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민족이 아닌, 넓은 의미의 아랍인 또는 무슬림으로 정체화함으로써 추방과 문화적 파괴를 은폐했다.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유강은 옮김, 열린책들 2021 참조).
이스라엘 역사학자이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일란 파페의 작업에서 이러한 주저함을 지적하는 것이 가혹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서구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예외주의는 강고하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도 불의를 비판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해온 학자인 파페조차 종족청소가 제노사이드와는 다르다고 여기게 하는 압력을 인식해야만 하는 이유가 지금 팔레스타인에 있다. 그리고 파페와 같은 이들이 쌓아온 반성과 평화를 위한 길은 그의 이십여년 전 작업인 이 책보다 더 멀리 나아갔다. 202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가자지구에 대한 제노사이드 방지 조치를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은 이를 모두 묵살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멈추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