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예심위원으로 김중일 양경언 이설야
최종심 대상작 예심평
시 부문
김수열의 『날혼』은 여전히 고통과 상흔에 휩싸여 있는 제주4·3을 자신만의 시적 언어로 재전유한다. 시인에게 4·3은 “삼십 년도 훌쩍 넘었지만 어제 같은 기억”이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유의 기나긴 여정이자 현재이고 미래다. 시인은 “있수과? 있수과?”
장석남의 『내가 사랑한 거짓말』은 무정형의 순전한 서정적 감각과 감수성이 어떻게 단단한 시의 외형을 이루는지를 보여준다. 빛처럼 투명하고 공기처럼 가득 차 있어 허물어지지 않는 형식 속에서, 주체들은 절절한 이야기 한가운데 있지 않더라도 이미 무수한 이야기가 통과해간 이후의 적요와 환한 공간을 담아낸다. 언덕을 넘어오는 무수한 “한 사람”들을 기어이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
소설 부문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방황과 상처, 모색과 성장에 관한 탐구를 이어온 작가가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과 접속하며 더 깊고 넓어진 서사를 보여주는 장편이다. 창경궁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성 업무를 맡게 된 주인공이 십대 시절의 심리적 상흔과 대면하며 내적인 해결을 시도하는 이야기 속에서 특유의 섬세한 문학적 인장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대온실의 비밀을 풀어가는 또다른 축을 통해 은폐된 식민지적 근대의 무의식에 접근하는 문학적 통로를 얻게 된다. 망각과 기억, 진실과 마주 봄이 얽히는 다층적 서사 구조가 독자를 오래 붙잡는다.
김숨의 소설은 늘 변화하고 진화한다. 전작 『L의 운동화』 『떠도는 땅』 등의 궤를 잇듯 『잃어버린 사람』에서도 한국사를 촘촘히 술회하고 있으나 이번엔 해방 직후 부산을 배경으로 정치적·이념적 문제 대신 개인의 서사를 끈질기게 서술한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인물을 담아내는 시선, 열기와 끈기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작가는 잔존인뿐 아니라 난민, 이주민의 삶까지 찬찬히 술회하는데, 그 연결과 형식이 이채롭다. 어떤 구절은 시고, 어떤 구절은 르뽀며 어떤 구절은 극이므로. 한국사를 지치지 않고 끄집어내는 김숨의 기록은 언제나 유의미하다.
전성태의 『여기는 괜찮아요』는 한편이 마무리될 때마다 ‘좋은 소설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겉보기에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한국전쟁, 여순사건, 세월호참사, 코로나19 팬데믹 등 시대를 뒤바꾼 비극이 스며 있다. 과거를 현재 위에 수놓는 방식으로, 거대담론을 개인적인 서사로 소화하고 재현하는 분투가 전해진다. 해상도와 밀도를 높이는 장인적 솜씨,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길어내는 집념, 인간존재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깊은 울림을 준다. 리얼리즘 문학의 건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전성태 문학의 정수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기타 부문
김경식의 『루카치 소설론 연구』는 게오르크 루카치의 장편소설론을 총체적으로 고찰한 노작이다. 저자는 루카치의 미학적·철학적 전환점들을 관통해 읽어내며, 자본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사유의 연속성과 변화 모두를 포착한다. 특히 ‘후기 루카치’라는 범주를 설정해 아직 충분히 해석되지 않은 만년의 사유를 조명하고, 소설론의 이론적 지향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서사에 대한 루카치의 일관된 관심이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평생의 모색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이 연구는 문학이론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한다.
『김대중 육성 회고록』은 김대중의 경험과 사유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귀한 자료로서, 민주주의·인권·평화·통일 등을 둘러싼 한국정치사의 변곡점들을 증언한다. 또한 개인적 회고와 공적 기록이 맞물리면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휘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무엇보다 시대와 현실에 대한 판단, 전략적 선택과 그 결과를 당사자의 언어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에게는 1차 사료가, 일반 독자에게는 정치와 역사의 상호작용을 성찰할 기회가 된다. 지금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김중일 양경언 이설야 김병운 성해나 한영인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