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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주혜 李柱惠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장편소설 『자 두』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여름철 대삼각형』 등이 있음.
leestori@hanmail.net
안평수옥
저기 네가 달리고 있다. 이국의 대학 운동장은 대형 조명탑 덕분에 대낮처럼 환하다. 여러 청년들이 트랙 위를 한 방향으로 달리고 농구장과 테니스장도 붐빈다. 고만고만한 형체들 사이에서 나는 용케 너를 알아본다. 네가 예약한 호텔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있고 10층 내 방에서 내려다보면 길 건너편 밤의 운동장을 채운 활기가 만져질 듯 선명하다. 미색 필터를 씌운 듯 부드럽게 밝은 빛의 돔 안에서 너는 주홍색 점이 되어 움직인다. 젊은 몸들 사이에서 주홍색 바람막이를 입고 달리는 사람은 너뿐이라 나는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간간이 고개를 들어 트랙의 주홍색을 찾아본다. 너는 내 시선에서 달아났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며 꾸준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너의 주홍색을 보고 있으면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편지를 받고 너는 대체 이게 다 무슨 말인가 싶어 혼란스럽겠지만, 나 또한 어지러운 마음으로 저지르는 일이니 이 두서없음을 용서해다오. 처음부터 작정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모든 일을 털어놓고 너와의 작별까지 감수하기로 한 것, 내게도 갑작스럽기 짝이 없다. 무조건 이해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발작처럼 찾아온 이 결심을 최대한 가지런히 정리해 너에게 전달하기, 오직 그뿐이란다.
돌이켜보면 전조란 게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어제저녁 우리가 야시장에 가려고 택시를 탔을 때 말이다. 앱으로 부른 택시가 호텔 정문 앞에 도착하자 너는 뒷문을 열어 나와 석우를 먼저 태운 뒤 기사 옆자리에 올라탔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너에게 뭐라 뭐라 하며 이 나라 말로 물었다. 네가 영어를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젊은 기사는 고개를 흔들곤 제 스마트폰을 들어 통역 앱을 켰다. 기사가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 긴 한국어 문장이 떴다. 요약하면 우리가 목적지로 찍은 야시장이 하필 오늘 쉬는 날인데 그래도 데려다주길 원하느냐, 아니면 지금이라도 택시 호출을 취소하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오늘 문을 연 다른 야시장에 가보고 싶으냐는 말이었다. 네가 난감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석우에게 물었다.
어떡하지, 아빠?
이 나라 3대 야시장에 든다는 그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 사람은 석우였다. 석우는 이곳의 야시장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석우는 곧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내 쪽을 보았다.
당신 생각은 어때?
나는 굳이 야외에서 불편한 자세로 음식을 사 먹어야 하는 야시장 문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를 잃은 석우를 위로하고 동시에 너의 전역을 축하하는 것을 이번 여행의 취지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모든 것을 두 사람 뜻에 맞춰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야시장에 가보자고 말했고 너는 곧바로 통역 앱으로 기사에게 우리 뜻을 전달했다. 기사는 고개를 짧게 한번 끄덕이더니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새로 설정하고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택시가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자 너는 통역 앱으로 기사와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기사의 오른쪽 얼굴 절반 정도만 겨우 보였는데, 그만큼만 봐도 기사가 네 또래거나 너보다 더 어릴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쌍꺼풀이 진한 커다란 눈과 둥근 코끝,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입술이 꽤 순한 인상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계속 전방을 주시하던 기사가 신호대기 중일 때 너에게 자기 스마트폰을 내미느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더 돌렸는데, 그 짧은 순간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의 청년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건 네 또래 남자들이 군복을 입고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짠해졌던 한때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신호가 바뀌고 택시가 다시 출발하자 석우가 너에게 말했다.
여기서 우육면 제일 잘하는 집이 어딘지 좀 물어봐.
너는 웃음기가 살짝 깔린 목소리로 통역 앱에 대고 말했다.
타이난에서 우육면을 가장 맛있게 하는 식당을 추천해주세요.
통역된 질문을 들은 기사가 너와 비슷하게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네 스마트폰에 대고 대답했다. 잠시 후 인공지능의 매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아요.
석우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택시가 야시장 앞에 섰을 무렵 우리 세 사람은 이국의 젊은 기사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요란하게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가 떠나자 석우가 아쉬운 듯 말했다.
젊은 친구가 제법 귀엽네. 딸 있으면 사위 삼고 싶어.
그 말에 내가 가볍게 눈을 흘기자 네가 성큼 다가와 내 팔짱을 꼈다.
엄마, 아들 아빠 뺏겼어.
팔짱을 낀 채로 우리는 좁고 붐비는 야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석우가 앞장서며 좌우의 노점을 두리번거렸고 우리는 석우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시장은 천장 없이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었는데도 다닥다닥 붙은 노점마다 음식을 굽고 튀기고 볶아대느라 온갖 냄새와 연기와 시끄러운 소리로 자욱했다. 마치 매캐한 안개를 뚫고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후각과 청각이 다 혼미해져서 붐비는 공간에서 길을 잃을까봐 바짝 긴장한 채 석우의 등만 노려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상태를 눈치채고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는지 네가 내 귀에 대고 말을 걸었다.
엄마, 아까 그 택시기사 이름 봤어?
아니. 이름표가 있었어?
내비게이션 옆에 명찰이 있더라고.
뭐였는데?
네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 또박또박 말했다.
임자농.
임잔홍?
응. 임자농. 자식이 이름도 귀엽더라고, 샘나게.
네가 아들 자(子)에 농사 농(農)이라고 한 글자 한 글자 풀어서 말해주기 전까지 나는 그 이름을 잔홍으로 알아들었다. 남을 잔(殘)에 붉을 홍(紅)이라고. 그리고 내처 떠올려버렸다. 어느 손톱에 초승달 모양으로 남은 붉은 봉숭아물의 흔적을. 곧 사라질 그것을 애잔하게 바라보던 어린 여자의 눈빛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활활 타오르는 마음으로 엿보았던 오래전의 내 모습까지. 심장이 더럭 내려앉았고 나는 반사적으로 네 팔을 꽉 붙잡았다.
1858년 톈진조약 체결과 함께 청나라가 안평항을 포함한 대만섬 일부 항구를 개방하면서 외국과의 무역이 시작된다.
1867년 영국의 무역회사 테이트앤컴퍼니가 안평에 상업거점을 구축하고 본관인 상사 건물과 뒤편의 창고를 짓는다. 이때 만들어진 창고가 훗날 안평수옥(安平樹屋)의 건물 기반이 된다.
이제 너라는 주홍색 점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조준점을 놓쳐버린 사수처럼 당황해 책상 앞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트랙 위에 너는 없다. 농구장과 테니스장, 사잇길에도 너는 없다. 나는 한참을 서서 홀로 환한 운동장을 내려다본다. 겨울이 없는 이곳은 2월인데도 나뭇잎이 무성하다. 너는 어쩌면 저 울창한 나무 아래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참을성을 갖고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네가 길 건너에 모습을 드러낸다. 고지식한 너는 아무리 지나가는 차가 없어도 호텔을 향해 바로 무단횡단하지 않고 건널목이 있는 곳까지 한참을 돌아갈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호텔을 향해 걷다보면 호텔 오른쪽 끝자락에 아담한 흡연구역이 있다. 우리 세 식구는 서로의 흡연을 모른 척하며 동선이 겹치지 않게 조심조심 그곳을 이용 중이다. 너는 실컷 흘린 땀을 서늘한 밤바람에 말려가며 회양목 울타리를 두른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대 혹은 두대 맛있게 피운 다음 호텔 방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도시에 3박 4일 머무는 동안 우리는 싱글룸과 트윈룸을 하나씩 예약했다. 당연히 나와 석우가 한방을 쓰고 너 혼자 싱글룸을 쓸 생각인 줄 알았는데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네가 싱글룸 카드키를 건네며 말했다.
이번 여행은 엄마의 절대 휴식이 목적이므로 아빠의 코골이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당!
석우가 이 자식이! 하며 네 쪽을 흘겨봤는데 얼굴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석우도 모처럼 부자간의 시간이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네가 예약한 호텔은 이 도시에서 가장 높고 호화로운 건물에 있었고 방도 꽤 널찍했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나직한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고 창을 향해 놓인 꽤 커다란 책상도 있었다. 출장차 묵는 이들을 위한 가구겠지만 나는 그 책상을 보자마자 뭔가를 끄적이고 싶어졌다. 일기든 편지든 무의식적인 낙서라도. 지금 생각하면 이 책상조차 편지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지금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입에 담배를 문 채 러닝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오운완’이라고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진 가장자리에 얼핏 비치는 너의 주홍색 바람막이를 알아볼 것이다. ‘좋아요’는 누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끼리 소통하는 자리에 주책맞게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쯤 이미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는 고집스럽게 운동에 매달리면서도 담배는 놓지 못한 네 모습이 담긴 그 사진이 좋지 않다. 고지식한 성격과 솟구치는 욕망을 한몸에 담고 살아가는 일의 피로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겨우 점 하나로 수렴되는 인간의 육체 안에서 질기고 질긴 두 성질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며 나약한 영혼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흔들어대는 공포를 짐작하기 때문이다. 나야 언젠가 머지않아 이 고됨도 곧 끝나리라 안도할 수 있지만,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 날이 훨씬 많을 너의 피로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새롭게 고통스럽다. 어린 네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답답한 선택을 할 때마다 석우는 ‘저 자식 누굴 닮아서 저래?’라는 말을 쉽게 내뱉으며 웃었지만, 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네가 자신을 닮았다고 철저히 확신하는 석우가, 그 믿음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석우가 부러웠던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어린 네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엄마, 나는 누굴 닮아 이래?’ 하고 물어볼까봐 석우처럼 굴 수 없었다. 가끔은 속 편한 석우가 노여웠다. 너와의 닮음을 확신할 수 없는 내가 무서웠다. 그런데도 가장 무서웠던 게 무엇인지 너는 알까? 어이없게도 네가 정말로 나를 닮아갈 때였다. 그것도 나의 가장 못난 부분을 쏙 빼내 닮아갈 때였다. 네가 나와 비슷한 면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혹시 복수인가? 아니, 저주인가?
1895년 일본이 대만을 지배하면서 기존 외국 무역회사들의 활동이 제한된다. 안평의 창고 건물은 ‘대일본염업주식회사 안평출장소’의 소금창고로 사용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대만은 중화민국의 지배에 들어간다. 창고 건물은 ‘대만소금제조주식회사’의 사무실과 창고로 사용된다.
안평수옥, 혹은 안핑트리하우스. 네가 처음 그곳에 대해 말했을 때 나는 서구 영화에서 보았던 나무 위 작은 집을 떠올렸다. 애정과 자산 모두 여유가 있는 부모가 자식에게 선물하는 동화 같은 공간. 저런 집을 선물받은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닿을 수 없는 욕망을 끙끙 앓으며 무정한 세계 대신 더 만만한 자기 자신을 쥐어짜는 일 따위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토록 사랑받은 사람은 마음에 창이 많아 늘 선선한 바람이 드나들 것이므로 끈적한 갈망의 포자 따위가 들러붙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아마 너를 그런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늘 산뜻하고 쾌적한 사람으로. 창이 많은 사람으로.
그러나 막상 가본 안평수옥은 내가 상상한 나무 위 작은 집이 아니었다. 안평수옥 앞에서 택시를 내려 매표소를 지나자 나무는 보이지 않고 오래된 건물이 먼저 보였다. 덕기양행(德記洋行). 이 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근대 서양과 동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건물이었다. 이를테면 둥글게 뚫린 아케이드 복도나 중앙의 주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 구조는 남유럽의 개방형 양식으로 보였지만 녹색 유약을 발라 구운 자기로 마감한 복도 난간이나 기와를 올린 지붕은 이곳이 우리나라와 가까운 아시아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오래전 영국의 한 무역회사가 사무실용으로 지은 건물이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박물관을 약간은 심드렁하게 훑어보다가 천천히 출구로 나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2월의 오후였다. 하지만 바다 가까운 곳이라 대기에 습기와 염기가 묻어났다. 우리는 각자 외투를 벗어 허리춤에 묶고 천천히 트리하우스 구역으로 들어섰다.
나무그늘 아래 들어서자 조도가 확 낮아졌다. 헉.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밝은 햇살 아래 우뚝 서 있는 한그루 나무, 그리고 그 위에 지은 동화 속 작은 목제 집 같은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무가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니, 집어삼키고 있었다. 아니 아니, 나무가 곧 집이 되고 있었다.
한때는 소금창고였지만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벼락만 겨우 남은 건물 위를 거대한 나무가 뒤덮고 있었다. 나무는 이 나라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우람한 활엽수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그 나무가 독특하고 신기해 검색해보았다. 우리말로는 벵골보리수나무, 영어로는 반얀트리(banyantree). 공원마다 동네마다 보였다. 워낙 우람하게 자라 더운 나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그늘을 제공하는 효자 나무라고 했다. 이 나무가 이토록 거대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은 공중뿌리 때문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가지에서 곧장 뿌리가 나와 아래로 자라다가 땅에 닿으면 굵은 줄기가 되어 영역을 확장했다. 다리가 여럿 달린 나무랄까. 위에서 아래로 뼈대를 세워가며 걸음을 옮기는 몸체랄까. 멀리서보면 공중뿌리가 털 달린 촉수처럼 바람에 흐느적거리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무는 식물보다 동물에 더 가까워 보였다.
목제 골조만 남아 뚫린 지붕 위로 혈관처럼 뻗어나간 나뭇가지와 크고 넓은 잎들이 천연 차양을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나무가 몇그루나 되는지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고 공중뿌리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애초에 몇그루인지 세는 게 무의미하기도 했다. 어느새 옆으로 바짝 다가온 석우가 속삭였다.
앙코르와트에서 본 그 나무 같아.
석우는 오래전 광고촬영차 앙코르와트에 가본 적이 있다. 앙코르와트를 직접 보지 못한 나는 반사적으로 영화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은밀한 사랑과 멀어진 남자가 앙코르와트의 벽 틈에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합하는 장면을. 그때 나는 남자의 비밀에 집중하느라 폐허를 뒤덮은 나무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도 어느 폐허를 찾아가 비밀을 속삭이고 밀봉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영화관에서 나왔을 때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부어오른 내 눈을 보고 석우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남편을 옆에 앉혀두고 그리 섧게 우느냐고 놀려댔다. 진짜 숨겨둔 놈팽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묻는 석우의 얼굴에 조금의 의심도 담겨 있지 않아 나는 노여웠다. 이 남자는 정말 해맑구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니, 어떤 것도 알고 싶지 않구나. 나는 그의 무구함이 화나고 동시에 부러웠다. 그런 석우가 안평수옥을 뒤덮은 벵골보리수나무를 보고 앙코르와트를 떠올렸다면 두 폐허의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어떤 것도 왜곡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게 석우같이 무구한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므로.
나중에 앙코르와트도 가보고 싶어.
어느새 곁에 다가온 네가 나와 석우에게 말했다.
앙코르와트, 좋지. 내년에 가자.
석우가 흔쾌히 대답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는 그 뒤를 따라갔다. 나는 한동안 서서 두 남자의 뒷모습을, 두 어깨에 내려앉은 나뭇잎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압도란 이런 것이구나, 압이 장난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그 순간 우리는 헤어졌다. 오래전 소금창고였다는 건물은 생각보다 넓고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어서 한 방향으로 걷기 어려웠다. 우리는 건물 두번째 칸에서부터 각자 가고 싶은 길로 흩어졌다. 이른바 산보가 시작되었다. 흩어질 산(散)에 걸음 보(步).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건물을 뒤덮은 나무, 태국 아유타야의 한 사원에서 불상의 얼굴을 뿌리로 감싼 채 자란 나무. 이 나무들을 흔히 보리수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인도보리수나 벵골보리수를 말한다. 이들을 통틀어 ‘교살자 무화과나무’라 부르는데, 씨앗이 다른 나무줄기에 붙어 발아한 후 땅을 향해 공중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땅에 닿으면 주변 물과 영양분을 탐욕스럽게 흡수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원래 나무를 말려 죽이고 자신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교살자 무화과나무는 한종의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다른 나무에 붙어살다가 그 나무를 뒤덮어 죽이는 무화과나무를 총칭한다. 반얀트리라고도 부르는 벵골보리수나무가 대표적인 교살자 무화과나무다. 그러나 이 교살자들은 끔찍한 이름과 무시무시한 태생과 달리 태풍이나 홍수로부터 숲과 건물을 보호하고 풍성한 열매로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니.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안평수옥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벽과 벽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철제 계단과 보행로가 설치되어 길이 사방으로 미로처럼 나 있었다. 나는 너와 석우가 직진로를 선택해 벌써 연못을 건너는 긴 다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방향을 틀어 옛 건물 옥상으로 올라온 참이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반색하며 난간에서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언니.
어림없는 호칭이었다. 그녀는 나를 그런 식으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고 어깨도 넓게 벌어진 석진의 뒤에 은신하듯 어깨를 옹송그리고 서 있던 작은 사람. 석진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구나. 석진은 석우보다 다섯살 많은 형이었고 부모의 빛이자 들보였던 사람이다. 너의 조부모는 서울시 전체에 집만 수십채 보유한 부동산 부자였는데, 오직 재산 불리는 재미로 앞만 보고 살다가 남보다 늦은 나이에 다섯살 터울로 아들 둘을 낳아놓고 보니 그제야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욕심나더란다. 그걸 학벌이라고 불러야 할까, 지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품위나 교양,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아비투스라는 말로 불러야 할까. 아무튼 그런 것을 새로 욕심내게 된 부부는 어렸을 때부터 차분하고 똘똘하기까지 했던 큰아들이 학벌이나 지성을 집안에 가져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재기발랄하고 영혼이 자유로웠던 둘째는 예술 쪽으로 진학해 집안에 교양과 문화라는 기름칠을 해주길 바랐고.
두 아들은 기대대로 잘 자라주었고 큰아들은 소위 명문대에, 둘째아들은 미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그때까지의 착실한 삶은 전부 억지나 가짜였다는 듯 영 딴판으로 변해버렸단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고 멋대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더니 한참 늦게 군복무를 마치고는 도망치듯 중국으로 떠났다. 그때 이미 늙은 부모는 큰아들의 술값과 노름빚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타국에서 새출발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지. 하지만 큰아들은 중국에 가서도 사업을 한다, 대학에 다닌다, 또다른 투자처를 발견했다 하며 한국의 부모에게 줄기차게 송금을 요구했다. 부모의 재산은 점점 줄어갔다. 석우는 그런 형이 너무 미워 자신만은 착실한 아들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형 석진만큼 알아주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서울 시내에 있는 미대를 졸업한 후 대기업 홍보실에 취직해 견실한 월급쟁이가 되었다. 부모는 둘째아들에게서 새로운 빛을 발견했다. 그들은 돈은 없어도 대대로 선생 노릇을 해온 집안의 둘째딸이자, 나름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서 만년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나를 며느리로 환대했다. 큰아들이 완성하지 못한 학벌이나 지성 같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우리는 신도시에 2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한달에 두번은 양가 부모를 찾아가 밥도 먹고 나들이도 하며 ‘화목한 가족’의 시간을 보냈다. 남보다 특출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도 않게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게 석우가 생각한 최대치의 효도였다. 그런 석우가 계산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자신의 무정자증이었다. 석우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자 큰맘 먹고 난임클리닉을 찾아갔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석우는 부모에게 자신을 닮아 발랄하고 아내를 닮아 똑똑한 손주를 안겨줄 수 없는 불효자였다. 석우는 혼자서 부모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대를 잇지 못하는 자식을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석우의 부모는, 아아 그때까지만 해도 큰아들이 어그러뜨렸던 집안의 행복을 둘째아들 부부가 이루어주리라 굳게 믿었던 그들은 또 한번 무너졌다. 그렇게 암울한 시기를 오직 침묵으로 버티던 그들에게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다. 중국에서 석진이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석진에겐 동행이 있었다. 우리말이 서투른 왜소한 한 여자와 내장 깊은 곳에서 퍼질 대로 퍼진 종양 덩어리. 석진의 부모는 일단 큰아들을 살리기 위해 반짝 힘을 냈다. 빛이요 들보였던 사람이 돌아왔으므로 사위어가는 불씨를 살려야 했다. 석진은 대학병원에서 반년 남짓 버티다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지 한달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종양 덩어리는 가져가고 여자는 남겼다. 그새 남겨진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여자의 몸속에서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 석진이 죽기 직전 그 아이가 태어났다.
깍듯하게 대해라.
석우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시어머니는 여자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석우와 나를 불러 호칭부터 정리했다. 석우에게는 형수, 나에게는 형님이라 부르라고 엄중히 일렀다. 우리 부부가 여자를 홀대할까봐, 이방인을 따돌릴까봐. 여자는 석우보다 열두살이 어렸고 나하고는 열살 차이가 났다. 시어머니는 특히 내게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했다.
어려도 윗사람이다. 형님이다.
그러나 나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알아서 모시라고 요구한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뱃속에 든 생명체라는 사실을.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나는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귓불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내가 느낀 모멸감은 여자가 나보다 한참 어려서도, 이방인이어서도 아니었다. 시어머니를 움직이는 힘이 여자의 몸 안에 있었듯이 나의 감정을 들쑤신 것도 그 존재였다. 정작 여자는 조금이라도 우쭐댄다거나 당당하게 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어깨를 더 움츠리고 어색하게 나의 인사를 받았다.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점 상태로 소멸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여자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시어머니를 보았다. 시어머니는 여자의 말없는 질문을 용케 알아들었다.
너는 동서라고 불러야지. 따라해봐. 동서. 동. 서.
동서. 안녕하십니까.
여자는 한국어교재에서 배웠을 법한 문장으로 내게 인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상한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 어떤 접점도 없었던 두 여자가, 나이도 출신도 하는 일도 성격도 외모도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 오직 한 집안의 형제와 엮였다는 이유 하나로 기원도 수상한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형님. 동서. 그 무슨 횡과 종의 기이한 교차란 말인가.
1950~70년대 소금산업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 기능이 축소되면서 건물이 방치되기 시작한다. 그사이 주변의 벵골보리수나무 뿌리와 줄기가 건물 벽과 지붕을 덮어 나무가 건물을 집어삼키는 독특한 경관이 형성된다. 벵골보리수나무의 뿌리는 강한 산을 뿜어내 석회암도 녹일 수 있다. 이런 성질 때문에 초창기 사탕수수 물과 석회반죽으로 만든 벽돌 건물은 쉽게 이 나무에 잠식되어갔다.
결국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석진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모는 돌변했다. 여자를 형수, 형님이라 부르라고 엄히 일렀던 그들이 빛이자 들보였던 사람이 영영 사라지자 돌아버렸다. 무람한 표현을 용서해다오. 그들은 정말로 돌아버렸고 빛이자 들보를 새로 정했다. 갓 태어난 아이였다.
그들은 여자가 아기를 데리고 고향으로 달아날까봐 겁을 냈다. 결국 여자를 감시하고 아기를 빼돌렸다. 나와 석우는 여자의 마지막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나중에 여자가 아파트 한채 값을 받고 친권 포기 각서를 써준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 여자가 떠난 뒤 석우의 부모는 말했다.
그 여자가 우리 동포라는 게 믿기지 않아.
우리 석진이가 순진해서 속은 게지. 동포라면서 우리말을 그렇게 못하나?
나는 ‘우리’와 ‘동포’라는 말을 오래오래 생각했다. 두 단어 사이 교집합을 더듬었다. ‘동포’라는 말과 ‘동서’라는 말에도 교집합이 있을까? 형님에서 ‘그 여자’가 되어버린 그 사람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고개를 숙인 채 이런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처음 듣는 호칭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에미야. 이제 네가 우리 집안 들보다.
그렇게 나는 너의 어미가 되었다.
2004년 타이난시 정부는 나무로 뒤덮인 창고 건물 내부에 목제 및 철제 계단, 스카이워크 등의 관람용 통로를 설치하고 안평수옥을 본격적인 관광지로 정비해 일반에 개방한다. 2020년대 안평수옥은 나무가 건물을 삼킨 것 같은 독특한 경관과 창고 건물의 역사적 가치, 주변 안평구 거리 및 옛 항구지구와 연계된 관광코스로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현재 생태와 자연, 역사와 건축이 융합된 복합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자는 25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 보니 너는 여자를 꽤 닮았다. 너를 키운 20여년의 시간 동안 석우는 네가 자신을 닮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씨 고집 어디 가?
자식, 누굴 닮아 이렇게 고지식해.
고등어 알레르기? 녀석, 별걸 다 닮아 고생하네.
석우는 너와의 닮음을 아무렇지 않게 발화했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짐짓 으스대기도 했지만, 나는 그의 얼굴에 스치는 안간힘을 목격했다. 석우는 너와 닮기 위해 애썼다. 너와 닮고 싶어 돌아버렸다. 그래야 돌아버린 제 부모의 착한 아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나는 네가 정말로 나를 닮을까봐 두려웠다. 내 손으로 너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지만, 숟가락질도 똥오줌 가리는 법도 전부 내가 가르쳤지만, 네가 나를 닮아 정말로 나의 아들이 되면 어쩌나 너무 무서웠다. 그러면 나까지 돌아버렸다는 뜻이니까. 나까지 모질고 사악한 도둑년이라는 뜻이니까.
옥상에서 만난 여자는 어제의 너처럼 다정하게 내 팔짱을 꼈다. 우리는 그 자세 그대로 계단을 내려와 안평수옥의 남은 구역을 걸었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내뱉기엔 나무그늘의 압이 너무 무거웠다. 연못을 건너간 너와 석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이 얼른 돌아오길 바라면서 동시에 이쪽으로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나보다 한참 작은 여자가 내 팔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오히려 나를 끌고 다녔다. 여자가 이토록 다정하고 곰살맞은 사람이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가 안평수옥 구역을 벗어나 매표소 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에 주 지우잉(朱玖瑩)의 고택이 있었다. 안내판에 의하면 주 지우잉은 대만소금제조주식회사의 책임을 맡아 여기 살게 되었지만 서예에 조예가 깊어 수많은 글씨를 남겼다. 여자가 고택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소금창고에 비하면 아담하고 소박한 집이었다. 1층에는 서예를 연습해볼 수 있게 벼루와 먹물과 붓이 준비되어 있었고 2층은 주 지우잉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자가 2층 전시실로 올라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작품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여자는 이 글귀를 전부 해석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모르는 글자가 태반이었지만 여자의 압에 눌려 작품을 감상하는 척했다. 주 지우잉의 글씨는 해서, 전서, 예서, 행서, 초서를 망라했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모든 글씨가 빼어났다. 이런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나의 한국어를 어디까지 알아들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여자가 나의 한국어를 너무 잘 이해할까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여자가 먼저 너에 관해 물을까 무서웠다. 이 도둑년! 하고 내 목을 조를까봐 속으로 벌벌 떨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여자가 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이야기 쪽으로 여자를 끌어내야 했다. 어떤 말이 좋을까? 그때 가장 또박또박한 해서체로 쓴 글귀 가운데 아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구슬 옥(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형님 이름! 구슬 옥!
여자가 무슨 돌아버린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다급하게 다른 족자를 훑었다. 행서체로 쓴 글씨 중에 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저기 내 이름! 아름다울 미!
여자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여자는 내가 가여운가.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 팔짱을 풀더니 초서체로 마구 흘려 쓴 족자 앞으로 팔랑팔랑 뛰어갔다. 여자가 한 글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여자가 가리킨 글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너무 흘려 써서 무슨 글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없을 무(無) 자로도 빌 공(空) 자로도 보였다. 없는 걸까. 빈 걸까. 그때 여자가 까르르 웃으며 내 등을 찰싹 때리더니 너무도 또렷한 한국어로 말했다.
언니! 우리에게 무슨 이름이 있다고 그래!
그러곤 주홍나비처럼 팔랑팔랑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나는 급히 여자를 따라갔다. 1층에 여자는 없었다. 언제 왔는지 너와 석우가 붓을 들고 서예를 연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이름을 한자로 쓰고 있었다. 두 이름의 성이 같았다. 나는 건물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디에도 여자는 없었다. 대기가 텅 비어 있었다.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네가 돌아온 모양이다. 이 호텔은 거창하고 화려하지만 방음은 형편없다. 나는 옆방의 너와 석우가 언제 드나들고 언제 샤워를 하는지 알 수 있다. 네가 곧바로 샤워를 시작했는지 물소리가 들린다. 편지는 여기까지 쓰고 잠시 나가봐야겠다. 이제 내가 담배를 피우고 올 차례다. 회양목 울타리가 있는 호텔 흡연구역에서 길 건너 청춘들의 활기를 구경하며 한숨을 좀 태우고 와야겠다. 너는 이 편지를 내일 아침 발견할 것이다. 놀라 내 방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일 새벽 너와 석우의 방 문틈에 편지를 밀어넣고 혼자 호텔을 떠날 생각이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아마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나 타이중으로 가겠지. 비행기표는 바꿀 생각이다. 며칠 더 이 나라에 머물다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너무 놀라지 마라. 출생의 비밀이라는 통속적인 시한폭탄을 던져두고 무책임하게 도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 오늘 안평수옥에서 여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감쪽같은 얼굴로 너의 엄마 노릇을 하면서 이 여행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구나. 내가 사라진 걸 알면 석우는 분명히 네 할머니의 유언장을 이유로 들 것이다. 큰아들을 잃고 돌아버린 네 할머니가 5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자마자 작성했다는 그 유언장 말이다. 자신이 큰아들과 같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 닮음에 환희와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또 한번 돌아버린 네 할머니는 재산의 절반은 둘째아들에게, 나머지 절반은 오직 하나뿐인 빛이자 들보인 너에게 남겼다. 유언장이 공개되자 석우는 나를 위로했다. 자신의 재산이 곧 나의 재산이고 그것들 역시 언젠가는 너에게 갈 것이므로 우리는 그 어떤 일에도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 무구한 사람. 어쩌면 네 할머니의 유언장에 가장 깊이 노여움을 느낀 사람은 석우가 아니었을까.
네 할머니의 유언장은 나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내 나름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잠깐 그 이야기를 해볼까. 네가 국제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네 조부모는 큰아들이 남긴 손주가 제 아비를 닮아 똑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꺼웠을 것이다. 새롭게 희망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씨푸드레스토랑으로 우리 세 식구를 불렀고 비싼 밥과 술을 사주었다. 석우에게 두툼한 돈봉투를 건네면서 네가 원하는 최신형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사주라고 했고 내게는 명품 브랜드의 보석세트를 건넸다. 너의 합격이 모두 내 덕분이라고 치하하면서. 그때 네 할아버지가 너에게 했던 말을 너는 기억할까?
너 공부 잘하는 거 전부 네 엄마 닮아서 그런 거야. 네 엄마가 누구냐? 박사님 아니냐? 언제라도 교수님 소리 들을 수 있는데 너 낳고 키운다고 교수 자리 때려치웠지! 네 엄마가 신사임당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게 자식 훌륭하게 키우는 일인 걸 아는 사람이다.
네 할아버지는 온통 거짓으로 구성된 말을 뻔뻔하게 내뱉고 와인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다. 잔을 어찌나 세게 부딪치는지 콜라가 든 너의 유리잔이 깨질까 겁이 났다. 흥이 날 대로 난 네 할아버지가 유리창 너머 서울의 야경을 가리키며 너에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불빛 중에 이 할애비 집이 수십채다. 그게 다 누구한테 가겠냐? 너는 다른 건 하나도 걱정하지 말고 그저 엄마 말 잘 듣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네가 교수 되고 학자 되면 그게 효도다.
식사를 얼추 마쳤을 때 너의 할머니를 모시고 여자화장실에 갔다. 와인 한잔을 다 마신 할머니는 살짝 휘청거리며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네 할머니가 볼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세면대 앞에서 기다렸다가 손을 씻는 사이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 바짝 붙어 부축했다. 할머니가 종이타월을 뽑아 손을 닦을 때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옥영씨,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네 할머니가 거울 속의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미친 소리냐는 얼굴로. 그러곤 차갑게 대꾸하고 먼저 화장실을 나갔다.
옥영이가 누구냐?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테이블로 돌아가는 네 할머니의 걸음은 한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네가 목표로 한 특목고에 합격했을 때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 너의 생부와 동문이 되었을 때도 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를 치하하며 두툼한 돈봉투를 건넸다.
우리 에미가 고생이 많았다.
언제나 ‘우리’로 묶인 채 묘하게 다른 대접을 받는 모멸감을 모른 척하며 나는 그 돈을 받아 챙겼다. 그 돈으로 너의 신발을 사고 해외여행 경비를 주었다. 너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 석우와 할머니와 내 선물을 어느 하나 빠지지 않게 챙겼다. 우리는 우리였으니까. 그러므로 네 할머니의 유언장에 명시된 ‘우리’가 현실의 우리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상처를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나조차 놀랍게도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지금 너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고 혼자 낯선 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네 할머니나 석우의 진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믿어다오. 차라리 이름에 구슬을 품고 있는 한 여자가 25년 만에 나타나 나를 언니라고 부른 사실과 더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가 우리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으므로 나는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호야. 과거의 아들아. 누군가의 빛이자 들보야. 내 손으로 도끼를 들어 들보를 찍어 내는 고통을 품고 이 편지를 쓴다. 어느새 옆방의 물소리가 그쳤다. 다정한 너는 곧 메신저로 내 안부를 물을 것이다. 엄마, 맥주 한캔? 혹은 엄마, 코코잘자용.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문장을 적어 보낼 것이다. 그 틈에도 교살자 무화과나무는 공중뿌리에서 강한 산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다. 한발 성큼,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며 너는 드라이어를 켜고 유난히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할 것이다. 석우는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욕실 안에서 말리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하, 저 자식, 누굴 닮아서.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면서. 이호야. 한때의 아들아. 그늘이여. 압이여. 며칠 후 한국에서 나를 만나면 그땐 다른 호칭으로 나를 불러주겠니? 나는 더이상 너의 엄마도 신사임당도 아니므로 내겐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시, 너, 나의 이름을 알고는 있니? 네 진짜 어미의 이름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