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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운영 千雲寧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 마도 아시다시피』 『반에 반의 반』,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등이 있음.

hangomm@hanmail.net

 

 

 

모르는 사람

 

1.

 

선우가 가족행사에 여자친구가 올 거라고 했을 때, 광호는 봄에?라고 물었다. 선우는 아마도?라고 했다. 비밀신호를 주고받는 단짝처럼. 밑도 끝도 없이 아마도 봄. 미영은 두 남자에게 잠깐, 아주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둘이 벌써 얘기가 된 거야? 미영이 묻자 광호가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얘기랄 게 뭐 있나, 그때가 왔나보다 한 거지. 나 빼고 둘이 위스키바 다니는 거 모를 줄 알고? 미영이 살짝 눈을 흘겼다.

여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는 선우의 얘기를 들은 지가 얼추 3년 전이었다. 그 언제가 당장 올가을이라 해도, 이미 동거를 시작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두 아이와의 식사 자리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미영은 예진이 마음에 들었다. 예진에게는 풍족하게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다정함이 있었다. 구김 없지만 예의 바르고, 자기 의사를 군더더기 없이 부드럽게 표현할 줄 아는 점도 좋았다. 예진은 그들의 삶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여태껏 가족의 일정에 끼어든 적은 없었다.

이번 생일은 집에서 하면 어때? 광호가 제안하자 선우는 안 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나의 즐거움을 빼앗지 말아줘 아빠. 선우의 말에 미영도 거들었다. 나의 즐거움도 빼앗지 말아줘 여보. 광호는 바로 수긍했다.

부모의 생일을 어떻게 보낼지는 전적으로 선우에게 달려 있었다.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한 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에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고. 식당 선택과 예약 등 모든 일정은 선우가 알아서 했다. 지난해 광호의 생일에 갔던 마포의 만둣집은 일년에 딱 이틀간 예약을 받는데 그것으로 일년치 예약이 거의 찰 만큼 자리를 얻기 어려운 곳으로 유명했다. 미영이 자신의 생일에 기대감이 있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날만큼은 선우도 집에 와서 주량껏 마시고 한때 자기 방이었던 곳에서 자고 미영이 차려주는 아침밥까지 먹고 갔다. 과학고 기숙사 시절부터 떨어져 지내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독립해 나갔으니, 세 사람이 오롯이 함께 보내는 하루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미영에게 생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세 사람이 만들어온, ‘우리 가족’의 기념일.

그런 시간은 이제 다시 오지 않겠구나.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각자의 감상을 나누던 시간은 얼마나 충만했던지. 토론을 좋아하는 광호와 선우는 얼마나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는지. 때때로 이 대 일로 의견이 갈리기도 하고, 세 사람이 똑같이 고개를 저으며 누가 더 신랄할 수 있을지 비평을 나누기도 하던 시간. 선우가 수집해온 올드보틀 위스키를 한줄로 늘어놓고 맛을 음미하던 시간.

그런데 당장 공연과 전시를 건너뛰었다. 선우는 달랑 식당 초대장만 문자로 보내왔다. 올해는 적당한 게 없다는 이유였지만, 그 시간에 선우와 예진이 무얼 하고 있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미래의 시어머니 생일선물을 함께 고르고, 미리 맞추어둔 꽃다발이나 케이크를 찾으러 가고. 저희들 나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아쉬움보다는 애틋함이 생겼다. 셋이 아니고 넷. 빼기가 아니고 더하기.

우리는 하던 대로 하자고. 광호는 식당에서 멀지 않은 극장에 적당한 시간대의 영화를 골라 예매를 해두었다. 놓치고 지나가 아쉬웠던 프랑스 영화였는데, 감독 특별전 상영일정이 마침맞게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두 사람은 함께 자주 영화를 보는 편이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삼천원 할인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걔네들은 어떻게 만난 거야?

영화를 본 뒤 상영관을 나서며 미영이 물었다.

—운명적으로? 각자 무리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눈이 마주쳤어. 어디서부터 본 거야?

—노랑머리 집에서 가족하고 식사하는 장면부터? 그런데 어쩜 그렇게 맛있게 먹어? 평소에 즐겨 먹는 것도 아닌데 파스타 먹고 싶어서 혼났네. 토마토파스타. 그걸 뭐라고 하지? 토마토만 넣고 만든 거.

—뽀모도로? 그런데 어쩜 그렇게 잘 자? 걔네들 클럽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사운드 진짜 굉장했거든? 대사 하나 없이 음악 소리만으로 두 사람 뭔 일 나겠구나, 연출이 좋던데. 난 거기서 일어날 줄 알았지?

—아, 그래서 마지막 노랑머리가 혼자 춤추는 장면을 무음으로 처리한 거구나. 그 장면 참 좋던데.

미영은 상영관 불이 꺼지고 나면 어김없이 잠이 들었다. 영화 시작도 전, 광고 도중일 때도 있었다. 불면증이 있다거나 잠을 자러 영화관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자지도 않았지만 자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이나 사운드, 박진감 같은 건 상관없었다. 누군가 옆에 있건 없건, 장르 불문, 불이 꺼지면 그냥 그렇게 되었다. 대체로 5분에서 10분, 아무리 길어도 20분은 넘기지 않는다. 그래서 미영에게는 항상 영화 초반의 공백이 생긴다. 미영은 오히려 그 공백이 영화감상을 자유롭게 만든다고 믿었다. 보지 못한 빈 부분을 채우며 스토리를 따라가는 일. 영화는 조금 더 여지가 많아지고 미스터리해진다. 스토리를 파악하는 데에 꼭 전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머지 빈틈은 영화가 끝난 후 광호가 채워주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만 명확하게. 전체 맥락을 읽고 그걸 조리 있게 설명할 줄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광호는 자질이 있었고, 둘은 그 과정을 영화 관람의 일부로 여겼다.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일.

—예진이네 쪽에도 먼저 정식으로 인사를 했겠지?

—그랬겠지.

—상견례가 다음 수순인가?

—글쎄.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당신은 뭐가 그렇게 쿨해?

—쿨한 게 아니라 선우 스타일이 그렇잖아. 언제 뭐 우리한테 일일이 보고하고 의논하고 그랬나. 안 그래도 알아서 다 잘하는 앤데.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떡은 누가 하는데? 굿판은 누가 차리고? 뭘 알아야 대비를 하지.

—굿을 보든 떡을 치든, 봄까지는 아직 멀었다고요.

미영이 무어라 더 이야기를 붙이려 하자, 광호는 미영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출입구 쪽으로 이끌었다. 회전문을 함께 통과하면서 미영은 안정감을 느꼈다. 이대로 몇바퀴 더 돌면 좋겠다 싶을 만큼.

 

모임 장소는 소바와 스시를 주제로 코스요리를 내는 오마카세집이었다. 제주 메밀로 직접 면을 뽑는 곳이라고 했다. 니은자 구조의 바 테이블에 총 여덟명이 앉을 수 있는데, 미영 일행의 좌석은 꺾어지는 지점을 중심으로 두 사람씩 서로 바라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미영은 결혼 일정에 관해 뭐라도 떠볼 기회를 엿보았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음식이 나왔고, 나올 때마다 음식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서, 요리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나오는 요리들은 꽤 인상적이었다. 메밀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까 싶도록.

선우가 미영에게 오늘 본 영화를 물었다. 제목을 이야기하자 두 사람은 지난주에 보았다고 반가워했다. 예진은 파스타 먹는 장면에 군침이 나왔다고 아는 척을 했다. 선우는 메밀이 아니라 파스타집을 예약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선우가 불쑥 광호에게 물었다.

—엄마 오늘 어디까지?

—파스타 먹기 직전까지.

—그럼 다 보신 거네요.

미영은 세 사람이 간단한 문장만으로 주고받는 이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숨길 이유는 없지만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곧 예진이 자신은 보기만 하면 잠이 오는 영화가 있다고 말을 이었다.

—눈 뜨면 주인공이 촛불을 들고 걸어가고 있고, 자다 눈 뜨면 똑같은 장면이고, 마지막에도 같은 곳을 걸어가는데. 도대체 영화의 어느 즈음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다섯번도 넘게 봤는데, 전체를 다 본 적은 한번도 없어요.

—난 기차만 타면 잠이 온다? 예전에 대전 있을 때 KTX 타고 올라오잖아. 타자마자 자. 기차 리듬이 수면제야. 눈을 뜨잖아? 항상 한강 다리야. 왼쪽 보면 여의도 빨간 건물. 그거 보면 아, 집에 다 왔구나, 그래.

—다섯번이나 시도했으면 다 본 거네. 선우는 좋겠다 난 딱 내릴 역 지나고 깨는데. 왜, 모임 있어서 술 먹고 대중교통 이용할 때 있잖아. 술도 한잔했겠다 얼마나 졸려. 바로 졸지. 그러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면서 눈이 떠지는데, 여기가 어딘가 보면 막 지났어. 문이 닫히고 있거나. 그 순간 잠깐 고민이 되거든? 잠깐만요, 내릴게요, 내려야 돼요 하고 뛰쳐나갈까 말까.

—아빠, 그냥 다음 역에서 내려. 가오 빠져.

—그치? 그 참에 좀 걷는 게 낫지?

식사를 마칠 즈음 선우가 결혼에 관해 짧게 언급했다. 큰 그림이 그려지고 나면 그때 상의하겠다고. 그러자 광호가 허리를 곧추세우며 정색하고 말했다.

—단둘이 어디서 반지 나눠 끼고 혼인신고를 했다 한들, 최고급 호텔에서 삐까번쩍 결혼식을 하겠다 한들, 아들, 우리가 여력이 없어 포용력이 없어. 이왕이면 뻔한 결혼식이 아니면 좋겠어. 그게 우리 생각이야 예진아. 느이들 마음대로 해.

마지막으로 메밀아이스크림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광호가 미영에게 귓속말을 했다.

—당신 아들, 아주 치밀한 놈이야, 그치?

미영 역시 귓속말로 대답했다.

—당신 닮아서 그래.

그 말에 광호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기분 좋게 웃었다.

 

선우와 예진이 차를 가지러 간 사이, 미영은 휴대폰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영화를 보면서부터 전원을 꺼둔 것을 잊고 있었다. 동일한 번호의 부재중전화가 두통.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총 여섯개. 카드결제일 안내, 이번주 특가 와인 광고, 피부과에서 보낸 이달의 미친 가격 초특가 이벤트 정보, 빠르고 신속한 택배사의 배송 완료 문자. 매달 두번 정기배송되는 계란이 오는 날이었다. 자연방사 제주 구엄닭이 낳은 초란. 여러곳을 돌아 최근 정착한 제품이다. 그리고 모바일 청첩장이 하나 와 있었다.

이슬기입니다, 저희 결혼합니다, 응원해주세요. 그게 다였다. 하단에 첨부된 링크는 열어보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이미지 사진도 없이 단 세 문장과 첨부된 링크. 누가 보아도 피싱문자였다.

하지만 미영은 두개의 느낌표에 주목했다. ‘결혼합니다’에 느낌표가 두개였다. 하나도 아니고 두개. (느낌)(느낌)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얼까. 저희일까 결혼일까 합니다일까. 느낌표 두개를 나누어 각각 결혼합니다와 응원에 하나씩. 스페인어처럼. 결혼합니다! 응원해주세요! 시점이 참 공교롭다고 미영은 생각했다.

—뭔데 그렇게 골똘히 들여다봐?

광호가 몸을 바짝 붙이며 물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청첩장이 왔는데, 혹시 아는 사람인가 생각 중이야.

—누군데?

—모르는 사람이라니까?

—아는 사람 같다면서.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으면 아는 사람인 거야 모르는 사람인 거야?

—모르는 사람이지.

—그럼 그냥 무시할까?

—어차피 안 갈 거 아니야? 장례식도 아니고 결혼식. 당신 그런 데 잘 안 가잖아.

—그렇지, 아는 사람이어도 안 갔겠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나한테 잘못 보낸 거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갔어야 하는 거면? 번호 하나 잘못 눌러서. 답장 쓸까? 번호 한번 확인해보시라고. 그랬다가 진짜로 아는 사람이면 좀 그런가? 나름 용기 내서 연락했는데 누구세요? 하는 꼴이잖아.

—아이고, 다정도 병입니다. 그건 잘못 보낸 그 사람이 감당할 문제지 당신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배려하면서 못 살아. 어디 한번 줘봐봐.

미영이 광호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광호는 메시지를 휙 보더니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

—김미영 팀장이네 이거. 고민하지 말고 지워버려.

—그렇게 얘기하니까 바로 알겠네. 김미영 팀장 가고 이슬기 결혼 온 거야? 오랜만에 들어보네 그 이름. 그런데 김미영은 왜 김미영인 거야? 기분 나빠 정말.

—김미영 팀장님, 오늘 심기가 좀 불편하신가봅니다?

광호 말대로 미영은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의 이름이 피싱의 대표 이름으로 인식되는 것도 불편하고, 심기 불편하냐는 광호의 말도 불편하고, 아는지 모르는지 모를 사람에게서 온 청첩장도 불편했다. 아니면 그보다 먼저 다른 무언가 불편한 게 있었는지도.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 전사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때론 앞을 모르는 채로 뒷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지금 현재의 심기를 알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

불편한 심기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이어졌다. 이상할 건 없었다. 선우가 운전하는 차 앞자리에 예진이 앉고, 미영과 광호가 뒷자리에 앉아 집으로 가는 구도가. 평소라면 선우와 광호가 앞에 앉고 뒷자리에 미영이 앉았을 테지만, 네 사람이 나누어 앉는다면 현재의 배치가 맞았다. 그런데도 자꾸 옹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미영은 청첩장의 이슬기로 생각을 돌렸다.

미영은 슬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여럿 알았다. 결혼할 만한 연배의 슬기도 충분히 있을 법했다. 그중에 어떤 슬기는 한 시절 퍽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결혼 소식을 전하며 응원해주길 바랄 만큼. 그게 이슬기인지 최슬기인지 김슬기인지는 가물가물했지만 생김새는 물론 억양이나 말투는 생생하게 기억났다. 이슬기 이슬기 반복해 읊조리다보니, 그 슬기가 이 슬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슬기라면 결혼합니다, 응원해주세요 할 만했다. 그러나 헤아려보면 서로의 근황을 전하지 않고 지낸 지가 어림잡아도 10년. 안부인사도 없이 느낌표만으로 그 공백을 뛰어넘으려 하다니, 달랑 이름 하나 앞세워 응원을 바라다니. 그것은 꽤 무례한 일이라고 미영은 생각했다. 미영이 아는 슬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집으로 들어서며 예진은 감나무의 수형에 감탄했다. 기다렸다는 듯 광호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감나무의 내력과 감나무집 개조의 역사까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이 집 지을 때 시골집에서 옮겨다 심었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이 집이 원래 70년대 전형적인 양옥집이거든. 마당을 넓게 뽑고, 유럽풍인데 지붕을 삼각형으로 내고 기와를 얹는 한국형 주택. 지금 건물로는 상상이 잘 안 가지? 역사가 아주 길다. 초등학교 입학했을 무렵인가 아버지 공장에서 납품하던 악기회사가 부도가 났어. 법정관리니 뭐니 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 밀린 물품 대금으로 피아노를 받았어. 무려 열대. 그걸 다 어떻게 해. 피아노 한대가 대학 등록금보다 비쌌을 때야. 여기저기 좀 산다 하는 집 수소문해 절반 가격으로 다섯대 팔고 다섯대가 남았는데, 이게 너무 손해 보는 장사인 거지. 그래서 어머니가 생각해낸 거야. 차라리 교습소를 차리자. 2층에 세줬던 집 내보내고 우리가 올라가. 우리가 살던 1층은 개조할 것도 없이 방마다 피아노 앉히면 끝. 근데 이게 너무 잘됐어.

—할머님이 피아노를 전공하셨어요?

—전공은 아니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피아노 생긴 김에 피아노학원.

—아버님도 피아노 잘 치시겠네요?

—난 치는 거보다 듣는 게 좋더라고. 2층 내 방에서 들으면 띵, 음이 튀고, 박자는 점점 빨라지고, 나도 저러겠구나 싶으니까 아예 손대기가 싫더라고. 귀가 먼저 트이니까 이상이 높아진 거지. 피아노학원이 엄청 잘되어서 이번엔 미술학원을 하시겠대. 창고로 쓰던 반지하를 뚝딱 개조했지. 공간이 아주 넓게 빠졌거든. 여기 창문이 나 있었는데 거기로 조각상이랑 이젤이랑 슬쩍슬쩍 보이니까 피아노 치는 애들도 미술을 시작해. 나중엔 바이올린 교습도 했어. 피아노 치고 그림 그리고 바이올린 켜고.

—일종의 예술 종합교습소였네요?

—바로 그거지. 그런데 다들 감나무집이라고 불렀어. 감나무피아노학원. 감나무미술학원.

이 집의 내력은 광호의 내력이었다. 광호는 영화의 놓친 앞부분을 설명해주듯, 자신의 전사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미영이 처음 이 집에 인사를 왔을 때도 같은 수순이었다. 감나무에서 바이올린까지. 그때 미영은 광호가 가진 문화적 감수성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이해했다. 그보다 감명 깊은 것은 이 집이 보여주는 메시지 그 자체였다. 담장 위로 커다란 감나무의 우듬지가 보이는 집. 철문을 열고 돌계단을 오르면 잘 가꾸어진 정원이 보이고, 감나무 아래 철제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곳.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고 화구를 든 아이들이 드나들던 곳. 연립주택에서 살던 미영에게 그 돌계단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발판처럼 느껴졌었다.

—이 집이 나를 키운 셈이지.

전형적인 1970년대 양옥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지켜보며 자란 그는 건축사가 되었다. 회사를 다니다가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건 건축사무실을 개업하며 제일 먼저 손을 댄 곳이 바로 이 집이었다. 혼자 된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옮기고 난 직후였다. 테라스와 삼각지붕이 있는 양옥 구조를 살리면서도 모던하게. 미술 교습소였던 지하실은 광호만을 위한 음악감상실이 되었고, 피아노 교습을 하던 1층 네개의 방은 하나로 통합해 통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을 환히 볼 수 있는 주방 겸 응접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이 루프탑이었다. 지붕 공간을 확장해 간이주방을 만들고 유리온실을 덧붙였다. 온실의 전면 유리 폴딩도어를 열면 옥상정원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개방감을 높이고, 한여름 온실 온도를 낮추기 위해 전동어닝은 물론 통풍기와 포그냉방시스템까지 설치했다.

루프탑에서 2차를 하자는 광호의 말에 미영은 반대의사를 표했다. 다음에, 천천히. 날 더 선선해지면 해 있을 때 바비큐 파티해. 오늘은 둘러보는 것만 하고 내려와. 광호는 선우를 앞세워 예진과 함께 루프탑으로 올라가고 미영은 1층에 남아 예진이 가져온 꽃다발을 화병에 꽂았다. 꽃을 보면 선물한 사람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그가 상대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흰색 카라와 스프레이 거베라의 조합. 미영은 자신을 향한 예진의 시선이 만족스러웠다.

길고 가녀린 카라가 돋보일 만한 자리. 미영은 거실 통유리창 오른편쯤에 두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때였다. 창에 이상한 얼룩을 발견한 것은.

얼핏 보면 무언가 붙였다 떼고 남은 접착제 자국 같았다. 2층에서 무언가 흘러내린 흔적인가도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부분적이었다. 호 하고 방금 불어넣은 입김처럼 희고 빛이 나는 저것. 마치 심령사진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유리창의 저 흰 자국을, 무어라 해야 하나.

—뭘 그렇게 보고 서 있어?

마침 계단을 내려온 광호가 미영을 향해 물었다.

—밖에 뭐 있어? 그 인절미고양이 왔어?

선우와 예진이 뒤따라 내려왔다. 미영은 유리창을 가리켰다. 세 사람이 유리창의 얼룩을 발견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나무가 있는 유리창 바깥으로 나갔다가,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들을 보았다가, 유리창 그 자체로 초점을 맞추기까지. 활짝 편 날개와 흐르듯 빛나는 유선형의 몸, 작고 동그란 머리 한가운데 선명하게 빛나는 뾰족한 삼각형이 찍힌 저 얼룩은?

—저게 뭐야, 새야? 새가 찍힌 거야?

—어떻게 부딪치면 이렇게 돼? 날아왔으면 머리부터 박아야 하는 거 아냐? 저거 완전히 새 그 자첸데?

광호는 안경을 벗어 올리고 얼룩에 바짝 얼굴을 붙였다. 선우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광호에게 보여주었다. 미영과 광호는 사진을 돌려보다가 유리창의 얼룩을 보다가 했다.

—사진으로 보니까 진짜 선명하다. 여보 이 깃털자국 좀 봐. 깃털 하나하나가 어쩜 이렇게. 세필화 같아.

—기억나? 우리 잘 가는 복어집. 거기 어탁 액자 있잖아. 복어 말고 감성돔. 복어집에 왜 감성돔을 걸어놨냐고 했더니, 주인이 자기가 잡은 거라고 엄청 자랑했잖아.

—그건 먹물로 찍은 거고. 이건 무슨, 심령사진, 꼭 그런 것 같지 않아? 영혼이 빠져나갈 때 무언가 입김 같은 거, 기운 같은 거. 그런 게 찍힌 거 아닐까?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돼. 그거, 21그램인가, 영혼의 무게. 그런 실험도 있었잖아.

—죽었을까?

—죽었겠지. 이 정도면 정말 세게 부딪힌 거 같은데.

—비둘긴가?

—비둘기라기엔 좀 작은데. 여기 삼각형 모양은 부리겠지? 잘 봐봐, 이거 눈인가봐. 가느다랗게 보이지? 눈 뜨고 죽었나봐. 눈 뜨고 왜 유리창에 부딪히나.

—사체를 찾아봐야 하나? 아까 혹시 마당에서 새 죽은 거 봤어? 그냥 두면 벌레 꼬일 텐데. 아, 그거 어떻게 치우지? 고양이가 물어 갔으려나?

—기름이에요.

예진의 목소리였다. 공손하지만 단호한 음성. 미영은 휴대폰 사진에서 고개를 들어 예진을 찾았다. 예진은 계단참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거실 안쪽으로 발을 디디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들과 예진 사이에 맑고 투명한 유리벽이 세워져 있는 것처럼. 예진은 깍지 낀 두 손을 배에 붙이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너무 간절해 숨이 막힌 기도처럼, 핏기를 잃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들을 미영은 보았다.

—기름이라구요. 거기 찍힌 거. 새들이 털갈이 하고 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게 기름칠이에요. 기생충도 막고 비도 막고. 그 기름이 묻은 거예요. 휴대폰에 지문 묻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삼각형은 부리 맞아요. 기름샘은 꽁지에 있는데 부리로 묻혀서 깃털에 칠하는 거니까 부리에 기름기가 제일 많아요. 삼각형 그거. 그래서 그렇게 선명한 거예요.

 

 

2.

 

미영은 한달에 한번 한남동에 있는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는다. 보통은 미백과 탄력을 위주로 레이저 치료를 하는데, 오늘은 안면홍조 개선을 위해 모세혈관 주사치료를 진행했다. 폐경 이후 사라졌던 안면홍조가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안면홍조의 원인은 다양했다. 전신 혈액순환 불균형, 자율신경계통의 과민, 위장관 기능장애로 인한 모세혈관 확장. 주사를 맞아서 그런지 치료 전보다 열기가 더 심해진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가지고 올걸. 미영은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살살 누르며 생각했다. 피부과에 올 때는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건물 주차장이 따로 없는데다 환승 없이 한번에 오는 노선이 있어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때아닌 늦더위에 이렇게 땀범벅이 될 줄 알았다면. 미영은 손수건으로 부채질하며 열기를 가라앉혔다.

미영 앞자리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풍성한 흰 머리칼이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80대 후반쯤. 후추와 소금이 아니라 거의 은빛에 가까운 흰머리. 미영은 자신도 늙으면 저렇게 은빛 머리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밖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던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창을 톡톡 두들기며 소리를 높였다. 약간 지나치다 싶은 정도의 큰 소리였다.

—선다 선다 섰다. 탄다 탄다.

할아버지가 박자를 맞추듯 응답했다.

—택시가 섰지? 횡단보도라서 섰지? 사람들이 건너니까 섰지?

할머니가 이번엔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말했다.

—간다 간다 가. 어디 가니 어디 가? 이리 와.

—택시가 그냥 갔지? 누구 태우려고 선 게 아니지? 횡단보도라서 멈춘 거지? 신호가 끝나니까 간 거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애와 엄마의 대화 같았다. 단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아이. 단어마다 맥락을 부여하고 문장을 완성해 세상을 읽어주는 엄마. 언젠가 미영도 선우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세상을 읽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버스 소방차 나무 강아지. 소방차가 지나갔지? 나무가 예쁘지? 하던 시절. 먼 훗날 미영이 늙어 단어를 잃어갈 때, 광호도 저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설명해줄까? 그렇게 빈 공백을 채워줄까.

아니 그리되지는 말아야지. 치매는 걸리지 말아야지. 그것만큼은 보여주지 말아야지. 미영은 시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떠올렸다. 시어머니는 치매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가셨다. 미영은 도둑년이었다가 화냥년이었다가 미친년이었다가 마지막에는 여보가 되었다. 요양원으로 옮기고서도 5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리모델링을 위해 집 철거를 시작했을 때, 시어머니가 기거하던 안방 장판 밑에는 미영이 훔쳐갔다던 통장들과 오만원권 지폐가 빽빽이 깔려 있었다. 광호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정리해줄 수 있을까.

저리되지는 말아야지. 마지막까지 깔끔해야지. 노부부의 대화소리가 꿈결인 양 아득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알아들었을까? 멈추고 서는 타이밍을. 가도 되는 때와 가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지금 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는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자꾸 귀찮게 말을 건다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간다 간다, 선다 선다, 하기 전에 죽어야지. 미영은 갑자기 극도의 피곤함을 느꼈다.

눈을 뜨니 터널 안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터널이 있던가? 미영은 어리둥절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미영이 탄 버스는 110번. 자주 이용하는 버스이지만 노선의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미영이 사는 연희동을 중심으로 한쪽으로는 마포를 거쳐 한남동의 피부과가, 반대편으로는 홍은동 지나 평창동의 갈빗집이 있다. 딱 그만큼만 안다. 그 너머는 모르는 곳이었다.

미영은 벽에 붙은 노선도를 살펴보았다. 정릉에서 출발해 정릉에 도착하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순환버스다. 미영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당황하지 말고 서두르지도 말고. 잠깐만요 내릴게요, 이런 건 가오 빠지니까 하지 말고. 어디서든 내려서 길 건너 같은 번호 버스를 타면 될 일.

모르는 동네는 사람을 살짝 주눅들게 만든다. 고가도로 재래시장 지하철역 중구난방인 건물들과 공사 중인 도로. 풍경이 다르니 냄새와 소리까지도 다른 듯했다. 어쩌면 아주 모르는 동네가 아닐지도 몰랐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고가도로는 미영도 자주 이용하는 순환도로였다. 같은 장소라도 고가 위의 풍경과 고가 밑의 풍경은 그렇게나 달랐다.

위치를 보니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보다는 지하철 역사를 이용하는 게 가까울 것 같았다. 미영은 일단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중년여성들이 줄지어 서서 역 입구를 막고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자신들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도록. 나라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광장으로 모여주세요. 낯선 동네, 낯선 목소리. 차별금지법 폐지에 동참해주세요. 아이들이 물들고 있습니다. 미영이 살면서 이런 구호를 두 귀로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미영의 눈앞에 전단지가 불쑥 나타났다. 사탕과 물티슈가 붙은 교회 전단지. 사람 눈앞에 함부로. 이런 침범은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미영은 고개를 휙 돌리며 눈을 흘겼다.

전단지를 눈앞에 들이민 여자. 짧은 이마에 가느다란 눈, 살짝 튀어나온 광대뼈, 광대뼈 위에 주근깨. 시절을 잘 타고났으면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을 거라고 스스로 말하던 저 얼굴. 아는 얼굴이었다. 미영은 하마터면 이름을 부를 뻔했다. 정미야,라고. 정미도 미영을 알아봤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는 것도 알았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네가 여기 왜.

미영은 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뎠다. 가만있어도 정미와의 거리가 멀어졌다. 정미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미영은 이와 비슷한 장면을 예상했었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광장 같은 곳에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탬버린을 흔들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 주 하나님 지옥과 천국 구원과 은총. 이것이 네가 말한 믿음이구나. 나라가 어렵습니다. 광장으로 모여주세요. 이것이 네가 택한 삶의 방식이구나. 미영이 그렇게 말한다면, 정미는 미영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오지랖 좀 그만 떠셔. 언니는 그게 문제야.

 

 

 

미영은 대학 졸업 후 잠깐 학원강사로 일했다. 역삼동 주택가에 있는 이층 가정집을 개조해, 학원이라기보다 고액 그룹과외소에 가까운 곳이었다. 과목당 20만원 국영수종합반 70만원, 한반에 최대 여섯명, 초중고 모두 합쳐 50명 남짓. 그때 미영의 월급은 80만원, 대학원 입학금이 120만원이었다. 강사는 과목별로 한명씩. 미영은 초중등부 수학을 가르쳤다. 고등부는 서울대 수학과 출신의 원장이 직접 했다. 그외에 건물주이자 실질적 운영자인 이사가 있었는데, 일절 간섭 없이 가끔 들러 회식이나 시켜주는, 부유하고 젠틀하고 인물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학원비가 말해주듯 원생들은 역삼동 인근에 꽤 산다는 집 아이들이었는데, 거의 알음알음으로 모여 소수정예로 수업을 받아서 그런지 강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대학원 준비 중에 임시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미영은 아이들이 마음에 들었고, 첫 직장에 애정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날 미영은 원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8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미영에게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원장이 미영에게 노량진 어느 입시학원 수업 몇개를 지정해주며 수업을 듣고 강의 교재와 노트를 가져오라고 한 일이 있었다. 고등부 수업을 준비하라는 이유였다. 미영은 애초에 합의된 주당 근무시간도 이미 초과되었을 뿐 아니라 고등부 수업은 자신에게 무리라고 거절했었다. 부당한 해고였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만두더라도 본인의 의지로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미영은 해고 다음 날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새로 온 수학강사가 있었지만, 그 옆에 의자를 두고 자리를 지켰다.

그때 나선 사람이 정미였다. 정미는 그곳의 경리였다. 그동안 언니가 나한테 잘해줘서 알려드리는 거예요. 미영에게 쪽지를 건네고 정미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접선하듯 만난 어느 술집에서, 정미는 그동안 자신이 따로 관리하던 장부를 영미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해서 나한테 뭐 떨어지는 건 아니었고 그간에 그냥 도의적 차원으로……

미영은 월급을 통장이 아니라 봉투로 받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영의 월급으로 기록된 것은 80이 아니라 100. 본 적도 없었지만 식사비로 별도 책정된 금액이 한끼 삼천원. 학력 위조. 신분 위조. 사기와 횡령. 원장은 6수를 하고서도 대학을 못 갔지만, 서울대 수학과 학생인 양 수업을 듣고 졸업사진까지 찍었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돈 많은 이사를 만났고 지금의 학원을 열었다. 강사들의 월급을 부풀리고 저녁 식사비를 빼돌려먹은 사기꾼. 그것이 본모습이었다. 미영은 다른 강사들과 이사를 차례로 만나 이 사실을 알렸다. 미영에게 강요했던 강의 교재와 노트에 관해서도. 전후 사정을 파악한 이사는 미영에게 퇴직금으로 두달치 월급을 더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마지막 월급은 100만원이었다. 미영은 그렇게 정미의 도움으로 이겼고 더불어 정의로워졌다.

나중에 정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사는 결국 학원을 접고 거기에 이딸리안 레스토랑을 차렸다고 한다. 미영과 정미는 그후로도 종종 만나 그 시절을 안줏거리 삼아 술을 마시곤 했다. 언젠가 미영이 정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도의적인 건 뭐야? 정미가 대답했다. 아픈 애가 있었대. 심장병인가 뭔가. 미혼이라면서 그것도 거짓말이었어. 그래서 그냥 알면서도 모른 척. 미영이 물었다. 그래서 아픈 애는 어떻게 되었대? 괜히 내가 들쑤셔서 잘못된 거 아냐? 정미가 마시던 술잔을 쾅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어디서 또 사기 치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셔. 사람 쉽게 안 변해. 당한 사람이 뭐 그런 걱정까지 해? 오지랖이야 그거.

 

정미를 다시 만난 건 그후로 5년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만나는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경우였다. 미영은 그사이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번역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본가로 커다란 액자 하나가 배달되어 왔는데 동봉된 엽서에 정미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반가웠다.

미안해 언니, 내가 미친년이야 언니. 암것도 아닌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내가 놀고 자빠지느라 언니를 쌩까고. 은혜도 모르는 년이야. 언니가 맨날 천날 나만 보면 전문대라도 들어가라면서 공부시켰잖아. 기억 안 나? 무슨 야학교사처럼 학원 끝나고 나면 수학 가르쳐주고. 대학 찾아주고 원서도 써주고.

미영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부당했던 일과 정미의 도움으로 승리를 이룬 일종의 모험담만 떠올랐다. 같은 시간을 보냈어도 저마다 기억하는 핵심은 그렇게나 달랐다.

입시 볼 때 나 언니 집에서 잤어. 그때 아침에 언니가 소고기뭇국 끓여줬어. 계란말이에 케첩 마요네즈 두줄로 뿌려줬다고. 그리고 돈도 줬어. 삼만원. 택시 타고 가라면서 주머니에 쑥 집어넣어 주는데, 무슨 시골 노인네들도 아니고. 진짜 웃겼잖아. 나 그 돈으로 클럽 갔다?

한때 도움을 받았던 사람. 고마웠던 사람. 미영은 정미가, 정미는 미영이 그런 사람이었다. 정미는 그리하여 미영의 도움으로 전문대를 졸업했고, 시내 면세점 관리직으로 취직했고, 실적이 아주 좋아 성과급이 꽤 된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정미는 은혜를 갚으러 돌아온 들짐승처럼 온 힘을 다해 미영을 모셨다. 삼만원의 삼만배로 갚을게. 미영 또한 정미를 만나면 자기도 몰랐던 이십대 시절의 풋풋함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 자신은 누군가를 보살피던 사람이었다.

그후로 미영은 정미의 중요한 순간들에 같이했다. 정미의 새로 사귄 남자친구를 만나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 절차를 함께했으며,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남자와 결혼식을 올릴 때 기꺼이 신부 가방순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락이 딱 끊겼는데, 그 무렵 미영 또한 임용과 결혼, 출산과 육아가 몰아치듯 이루어진지라 그저 잘 살겠거니 하고 잊고 살았다.

 

그리고 세번째 다시 만난 날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주 잊고 지낼 만큼. 굳이 다시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정미에게 뜬금없이 안부문자가 왔고, 그후로 몇번의 일상적인 문자를 더 주고받은 뒤, 집 근처 단골 까페로 약속을 잡았다.

미영은 까페로 걸어가면서 왜 자꾸 걸음 속도가 느려지는지 곰곰 생각했다. 정미가 떠올리게 하는 그 시절과 멀어지고 싶은가. 지난 시절은 지난 시절. 현재의 삶을 사는 데 과거의 역사를 꼭 복기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서로 만나지 않고 지낸 시간의 공백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멀어진 데는 멀어진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쓸모없는 것을 향해 가는 불편함이었다.

정미는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다. 그 꿍꿍이가 무언지 몰라도 미영은 넘어가줄 용의가 있었다. 다단계 물품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안긴다 해도, 보험이든 정수기든 그게 뭐가 되었든, 그러마 하고 지불할 생각이었다. 보통 한때 알았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연락해온 마지막 용건이 그것일 테니까. 미영에게 그 정도 비용을 치를 여력은 있으니까.

언니 꿈을 꾸었어. 불구덩이에서 언니를 구출하는 꿈.

정미는 꿈 얘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려주었다. 어떤 시련을 거쳐 지금의 평화를 찾게 되었는지. 정미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정미가 앞서 보냈던 과거의 핵심을 짚어본다면. 남편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 목숨은 건졌지만 반신마비로 드러누운 것? 혼자 생계와 육아를 감당하며 고군분투한 것?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틈틈이 저질렀던 외도와 일탈들? 알콜의존증, 의처증,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행태? 그러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신의 손길? 이윽고 구원과 안식.

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었겠구나 박자를 맞추면서도, 빨리 이야기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누군가의 불운한 사연을 듣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미영은 맑고 깨끗한 기운만 곁에 두고 싶었다. 인간은 주변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누구 흉만 보는 오랜 친구를 끊었고, 징징거리며 신세한탄을 하고 남 탓하는 사람을 옆에서 치웠다. 불경한 것들 불순한 것들에서 최대한 멀리. 단정하고 정갈한 삶. 그것이 미영이 지키고 있는 슬기로운 생활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미영이 묻자 정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내 기도고 고행이고 안식이야.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래. 바람도 많이 피우고 그랬거든.

거기에 미영이 덧붙일 말은 없었다. 황폐한 너의 삶에 종교가 틈을 비집고 들어갔구나. 네 삶에 그런 방식으로 개입했구나. 정미가 미영에게 이중장부를 건넸던 것처럼. 미영이 정미에게 대학을 권유했던 것처럼. 하지만 아이 문제는 다른 이야기였다. 반신불구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된 위험한 아이.

남편이 자꾸 아이를 때려서…… 애가 덩치가 커지니까 같이 치고받고 해서…… 학교 가서 다른 애들 똑같이 때리고 욕하고 그래서…… 그러다가 학교 그만두고 애랑 같이 필리핀으로 선교를 나갔거든. 좀 괜찮아지더라고.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운영하는 기숙학원이 있는데, 좀 문제 있는 애들 구원해주시거든. 거기 맡길까 생각 중이야. 난 은혜를 받았어 언니. 주님의 은총으로 평온과 안식을 찾았어. 그런데 자꾸 언니가 꿈에 나오잖아. 언니가 위험에 처해 있다, 구해야 한다, 계시를 내리시는 거야. 그런데 언니, 우리 사모 이름이 언니랑 똑같다? 이거 정말 계시 아니야? 언니는 지금 악의 기운 속에 있어. 그러다 지옥 가. 구원받아야 해 언니.

미영은 그 순간 사람 좋은 얼굴로 너그럽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멈추었다. 차라리 옥장판을 가져오지 그랬어. 애 기숙학원 비용을 보태달라거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미영은 정색하고 정미에게 말했다.

지금 아이 미래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전도할 생각 말고.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그거야. 알콜중독? 술 먹고 폭력 쓰는 거? 그거 절대 못 고쳐. 시설에 집어넣든지 이혼을 하든지. 그래야 네가 살아. 아이도 살고.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떻게 될까 생각해봐. 지 아빠랑 똑같은 사람 만들래? 그게 지옥이지 뭐가 지옥이야. 힘들게 번 돈 이상한 종교시설에 갖다 바치지 말고. 제발 정미야.

아이를 위해 한 말이었다. 진심이었다. 한때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으로서 도의적으로, 정미의 인생에 마지막으로 개입한, 진심 어린 충고였다. 미영은 그렇게 믿었다. 한동안 미영을 쏘아보던 정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지랖 좀 그만 떠셔. 그때나 지금이나. 지옥에나 가셔.

 

 

3.

 

미영은 해가 질 무렵에야 집에 도착했다. 버스를 갈아타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잠깐의 졸음으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는 것만으로.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서 미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발밑에 감이 떨어져 있었다. 얼마 뒤면 마당에 홍시 단내가 나겠구나 미영은 생각했다. 올봄에 감꽃이 그렇게 수북이 떨어지더니 열매가 예년에 비해 퍽 많이 줄었다. 그래서 그런지 감이 제법 크고 색도 더 진하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계단을 오르자 집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광호의 역사를 간직하고, 미영의 미래를 함께 써나갈 그들의 집. 미영은 천천히 움직이며 집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처음 이 집을 방문했던 순간처럼 하나하나.

유리창이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색을 배경으로 감나무가 비쳤다. 이 집의 상징이자 자랑인 감나무. 광호를 키워낸 감나무. 망이 달린 감 장대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다가, 감은 그냥 까치밥으로 남겨두고 오고 가는 새 구경이나 하자 하고 남겨두었던 그들의 감나무.

얼룩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광호가 닦고 나갔는데. 아마도 날개 일부인 듯한 부분.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댔다. 무언가 쿵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 새도 지금 미영이 보고 있는 유리창의 감나무를 보고 날아온 걸까? 유리 너머 저 안쪽에, 미영과 그녀 가족의 안온한 거실 어느 깊숙한 곳에, 잘 익은 감을 매단 감나무가 있는 줄 알았을까? 그래서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전속력으로 날아온 걸까? 유리창에 온몸의 기름자국을 남기고 간 그 새는, 지금 어디로 다시 날아갔을까.

그녀는 입술을 오므려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의 입김과 합쳐져 먼저 난 얼룩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손수건을 꺼내 남은 얼룩을 지웠다. 하루 종일 미영의 땀을 닦아냈던 수건은 오히려 얼룩을 더 얼룩지게 만들었다. 얼룩은 더 커졌지만 새의 형상은 사라졌다. 미영은 몸에서 무언가 서늘한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옅은 숨소리 같은 것. 팔뚝에 소름이 살짝 돋아났다 사라졌다. 그냥 무언가 다녀갔다. 그뿐이다.

그날 정미가 퍼부은 저주는 미영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정미는 미영의 인생이 진행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영화의 앞부분처럼. 놓쳐도 아무 상관 없는 장면이었다. 미영은 되살아난 기억이 자신의 일상에 균열을 내도록 두지 않을 것이었다.

 

 

4.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언니의 평안과 안식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어.’ 두줄 미리보기만으로도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었다. 열지도 않고 바로 삭제. 그 참에 필요없는 문자들을 정리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깔끔하게. 그러다가 이슬기로부터 온 청첩장을 지우지 않고 둔 것을 보았다. 미영은 문자의 링크를 열어 청첩장을 확인했다.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보타닉가든 오키드홀 10월 25일 토요일 낮 12시 30분. 바로 오늘이었다. 우리들의 첫 시작.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어요. 그 섬은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해왔던 시간들 사진. 고궁 전망대 오리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감귤나무 해변. 아무리 뜯어봐도 아는 구석이 없는, 환하고 은혜로운 신부와 신랑의 얼굴. 잘못 도착한 메시지일 뿐 누군가를 낚기 위한 미끼는 아니었다. 미영은 지도를 검색해 보타닉가든 위치를 확인했다. 아는 동네였다. 미영은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 오키드홀에서는 1시간 20분 간격으로 총 다섯쌍이 결혼한다. 카라, 오키드 두 홀을 합쳐서는 열쌍. 그중 슬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셋이나 되었다. 천슬기 차슬기 이슬기. 부모들이 슬기라는 이름을 선호하던 어느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자라 이제 결혼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중에 천슬기와 이슬기는 신랑, 차슬기는 신부다. 이슬기의 예식은 이미 끝났다. 오키드홀의 네번째 결혼식이 준비 중이다.

미영은 신부 측과 신랑 측에서 고민하다가 신부 측 데스크에 축의금 봉투를 내밀었다. 식권은 받지 않았다. 봉투 뒷면에는 이슬기라고 적었다. 식이 끝나고 축의금 봉투를 정리하던 신부 측 가족들은 이슬기가 누구인가 의논을 할지도 모른다. 이 슬기인가 그 슬기인가 하다가 한때 관계를 맺었던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봉투에는 오만원을 넣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를, 몰라도 되는 사람끼리는 오만원이 충분했다. 그것으로 미영은 어느 한구석 남아 있는 찜찜함을 깨끗이 지웠다.

이것이 바로 김미영의 슬기로운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