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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트럼프 2.0, 위기인가 기회인가

미국 우선주의와 한반도평화 사이에서

 

 

서재정 徐載晶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 계학과 교수. 저서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한국지성과의 통 일대담』(공저) 등이 있음.

suh@icu.ac.jp

 

 

1. 들어가며

 

도널드 트럼프가 2025년 1월 47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여 ‘트럼프 행정부 2.0’을 출범시킨 후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랑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불법이민자 내지 범죄자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연방 대통령의 권한을 강력하게 행사하며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에 도전하고 있고, 미국 밖에서도 이례적 안보정책과 관세전쟁으로 전통적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그로 인해 온 세상이 시끄럽다.

트럼프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만큼 그에 대한 분석들도 난무하는데,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에 대해 특별히 말이 많다. 트럼프라는 인물의 성격이 워낙 독특하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의 ‘거래주의’적 성향은 미국 대통령직에 집중된 힘 덕분에 전세계를 뒤흔들 파급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미 트럼프 1.0 정부에서 방위분담금 요구나 관세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바 있다. 그러니 트럼프 2.0 정부에서는 재선에 연연하지 않을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마음대로 세상을 휘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정책이 대통령 한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의 모델을 인용해보면 국가는 거대한 관료기구이기도 하고, 다양한 개인과 이해집단이 정책 결정을 두고 경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1 그리고 이 국가는 세계 속의 여러 국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2.0의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2.0의 정책과 그 영향을 전망하려면 트럼프 개인뿐 아니라 그 주위의 인물과 조직, 국제질서 속 미국의 위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트럼프 2.0의 정책을 추동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2기에 과연 어떤 정책들을 추진할 것인가? 그의 정책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더 구조적이고 종합적으로 트럼프 2.0을 분석해보자.

 

 

2. MAGA주의: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노골적 현실주의’

 

트럼프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받쳐주는 힘은 ‘MAGA주의자’들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밑에 집결한 다양한 미국인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의 원류는 적어도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 더 길게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등장한 레이건 후보의 MAGA는 미국의 힘을 구사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는 것이 그 요체였다. 군사력을 강화해서 가장 큰 안보위협인 소련을 굴복시키는 한편, 동맹국에도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해 경제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노골적 현실주의’ 전략을 추진했다. 미국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며 그 일환으로 미사일 방어체계를 추진하는 등 소련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였다. 이를 위해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의 군비강화를 재촉하는 동시에, 1985년 플라자합의(미국·영국·프랑스·서독·일본의 환율조정합의)로 동맹국의 화폐가치를 절상하고 미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며 여러가지 수출제한 조치들을 취했다. 레이건 정부가 MAGA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한 결과 전세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동시에 동맹국들의 불만도 높아졌다.2

한편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는 1980년대 훨씬 이전인 제1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등장했다. 미국이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다양한 세력이 이 기치 아래 모였고, 정치인들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구별 없이 동조했다. 1917년 윌슨 대통령이 1차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힘을 잃었던 미국 우선주의는 2차대전이 발발하며 다시 힘을 얻었다. 미국이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1940년 9월 ‘미국우선위원회’(America First Committee)를 결성,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미국의 민주주의를 보존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선언했다.3 이 위원회는 이러한 원칙 아래 80여만명의 회원을 가진 대규모 대중조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치명타를 맞았고, 전후에는 거의 잊혀졌다.

패트릭 뷰캐넌(Patrick Buchanan)이나 도널드 트럼프같이 미국 정치의 비주류 인사들이 역사의 구석에 밀려나 있던 ‘미국 우선’을 재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들은 카터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외교도, 조지 W. 부시와 같은 공화당 대통령의 ‘네오콘’(neocon)적 외교도 개입주의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인식했다. 미국의 해외지원을 통해 동맹국은 부흥했지만, 이들이 ‘안보 무임승차’를 계속하며 미국의 경제를 갉아먹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 결과가 미국의 쇠락, 중국의 부상, 동맹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누적이라는 이들의 비판은 미국인들에게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며, 필요하면 적국이든 우방이든 상관없이 힘을 사용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MAGA와 미국 우선의 이러한 결합은 ‘노골적 현실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노골적 현실주의는 특히 통상정책에서 드러난다.4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2025년 1월 20일 국무장관 및 재무장관 등에게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무역, 중국과의 교역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여 ‘미국 우선 교역정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4월 2일에는 행정명령 14257호를 발표해 미국에 불공정한 관세 및 비관세 무역장벽을 부과해온 국가들에 상호관세를 부가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과 국가비상사태법(NEA) 등에 근거하여 일방적으로 상호관세를 부과하거나 이를 협상의 도구로 이용하여 대규모 대미투자를 강요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힘을 행사해 국가재정 건전성 회복과 제조업 부활이라는 자국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세력이 주창하는 MAGA와 미국 우선이 미국 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진 정치적 흐름이라면, 트럼프 2.0은 그와 다른 새로운 세력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다. ‘테크노 자유지상주의’(technolibertarianism)라고 부를 만한 주장에 근거한 세력으로5 일론 머스크(Elon Musk) 외에도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와 피터 틸(Peter Thiel)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정부의 효율성을 높임과 동시에 과도한 정부 규제를 철폐하자는 이들이다.6 색스는 트럼프 2.0에서 인공지능·암호화폐 정책 담당 차르(최고책임자)로 지명되었고, 틸은 무명의 J. D. 밴스에 일찌감치 투자해 부통령으로 키워냈다. 이들은 테크노 자유지상주의뿐 아니라 업계와 정부의 공조 속에 과학기술로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한다는 과학기술 냉전을 주창하고 있기도 하다.7 중국이 미국의 ‘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의 한 축이기도 한 이들은 트럼프 2.0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트럼프 2.0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한 개인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미국 우선주의, MAGA주의, 테크노 자유지상주의를 결합하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어 제대로 집행이 될지 불확실하다. 설령 여러 난관을 뚫고 집행된다고 하더라도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로 이어질지도 확실하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효율부(DOGE)가 주도하는 연방정부 공무원 대규모 삭감이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조기 퇴진했다. 더구나 AI 등 첨단기술을 도입하여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재생시키겠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산업생산력 자체가 공동화된 상태에서 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생산활동을 위한 기반시설에 장기적 투자를 해야 하고, 생산시설을 운영할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미국에서 이러한 투자와 집행이 가능할 것인지, 이런 프로젝트에 대해 정치적·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트럼프 2.0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1기에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많은 미국 우선주의자들은 바이든 정부 시기 싱크탱크를 구축해 절치부심하며 2기를 준비했다.8 그 중심에 있는 싱크탱크가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2025’와 미국우선정책연구소다.9 여기서 와신상담하던 인사들이 트럼프 2.0에 대거 진입해 그동안 준비한 것을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에라도 1기와는 달리 미국 우선주의 정책들이 강력하게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10

 

 

3. 미중경쟁 속 트럼프 2.0의 국방정책

 

트럼프 2.0의 노골적 현실주의는 트럼프 캠페인을 뒷받침했던 싱크탱크의 정책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트럼프 캠페인의 양대 싱크탱크였던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2025와 미국우선정책연구소는 과연 국제정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어떤 국방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일까?

우선, 프로젝트2025는 중국을 “가장 현저한 위험”으로 적시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이고, 이러한 힘에 기반을 두고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세계적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와 자유, 번영에 가장 현저한 위험은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 이외에는 가장 강력한 국가다. 중국은 아시아를 지배하려 하는 것이 확실하며, 그 위에서 세계적 우월성을 누리려 한다. 중국정부가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핵심이익을 극적으로 훼손시킬 것이다.11

 

따라서 미국은 중국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거부 방어’(denial defense)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시한다.12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효과적으로 패퇴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패권국가가 될 가능성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3 이는 중국과의 전면전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냉전시기 미국의 전략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또, 동시에 또다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군사자원을 배분하기 전에 ‘거부 방어’라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었던 ‘양대 전쟁 전략’(두개의 주요한 지역전쟁을 동시에 수행하고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보다도 군사력 수요를 낮게 책정하고 있다. ‘거부 방어’ 전략은 소련과의 전면적 군사대결보다는 경제봉쇄를 추구했던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의 냉전 초기 봉쇄전략에 더 가깝고, 중국의 아시아 영향력 거부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냉전 초기의 봉쇄전략보다도 더 제한적인 것이다.

트럼프 2.0 출범 직후 피트 헤그쎄쓰(Pete Hegseth) 미 국방장관은 2025년 2월 12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우끄라이나 동맹국 회의에서 이러한 인식을 드러냈다. 헤그쎄쓰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끄라이나전쟁을 빨리 끝내면서도 미군을 개입시키지는 않겠다며 그 이유로 중국이라는 “암울한 전략적 현실”을 들었다. 그는 “우리는 미국 본토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이익을 위협할 의도와 능력을 갖춘 중국이라는 경쟁자에 직면해 있다”면서 “자원이 부족한 점을 감안하면서도 억제력이 실패하지 않도록 자원을 배분하여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14 즉 미국에는 중국이 가장 큰 위협이므로 우끄라이나전쟁 등 다른 분쟁에서 발을 빼고 아시아 대중국 전선에 미군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15

단, 프로젝트2025는 이러한 전략이 미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과 위험 수준에서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의 전면전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중국이 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목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도 미국이 독자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의 방위분담이 ‘미국 국방전략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즉 미국은 “동맹국이 방위분담을 증대하도록 지원할 뿐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강력하게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그쎄쓰 국방장관은 앞의 발언에서 우끄라이나의 안전은 나토가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보장해줘야 하고,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현재의 GDP 2% 수준에서 5%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했다.16

또한 프로젝트2025는 러시아, 이란, 북한 및 초국가적 테러도 “실재의 위협”으로 지적하면서, 이 위협에 대처하는 데도 동맹국들의 방위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을 향해서는 “북한에 대응한 비핵 방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국이 중국 거부 방어 전략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는 부분인데,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호주 등 동맹국 및 대만의 방위비 증액과 협력을 지원하여 집단방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을 언급하지 않는 데서도 확인된다.17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제2전선’이 만들어지면 대만 전선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한국이 한반도 안보를 확실하게 책임져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거부 방어 전략을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도 한국 안보의 한국화가 절실한 것이다.

프로젝트2025 보고서는 비핵 방위에 한해서는 동맹국들의 역할분담 확대를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의 핵무력을 억제하는 능력은 미국이 행사해야 한다는 점도 확실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핵무력을 확대·현대화하고, 전술적 차원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핵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또 육군과 해군을 강화해 2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육군 5만명을 늘려야 하고, 해군 군함은 355척 이상을 건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우주전 및 사이버전쟁에 있어서는 전술·전략적 공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영역 작전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이를 보건대 트럼프 정부에 방위분담금을 늘려주는 댓가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능력을 추진하자는 일각의 시각이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은 트럼프 2.0이라고 해도 핵무력 패권을 양보할 의사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핵무장을 확대하고 현대화하여 그 지위를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이 한국에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부분이 대북 ‘비핵 방어’임이 잘 드러나고 있다. 즉, 트럼프 2.0에서 중요한 것은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 규모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한국의 안보는 한국이 책임지라는 메시지이다. 조선(북한)의 핵무력은 미국의 핵군사력으로 억제 가능하므로, 한국이 비핵 방어만 책임져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미국의 중국 거부 방어 전략에 중요한 일각을 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에 대응해 ‘자강 노선’을 취할 수도 있고 ‘평화 노선’을 택할 수도 있다. 전자는 한국의 국방력으로 조선의 군사력을 압도하자는 방안으로, 남북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고 한국이 대중국 전선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중국의 우려를 심화할 것이다. 이에 비해 ‘평화 노선’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남북군축과 동북아시아 안보기구를 발전시키자는 것으로, 한국의 안보도 확보하고 대중 전선에 나설 필요도 없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4.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맹?

 

프로젝트2025는 이와 같이 미국이 군사력의 최첨단을 확보한 채 동맹국의 방위분담을 강요하여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노골적 현실주의 안보정책은 미국우선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18 연구소는 안보정책보고서에서 ‘적국에 접근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4대 원칙’을 제시하는데, 미국이 슈퍼파워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적국과의 관계에 매우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다.

 

1. 동맹국뿐만 아니라 적국과도 직접 관여하지 않고서는 미국민을 안전하게 할 수도 없고 세계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

2. 적국과의 관여는 조건을 수반하지, 일방적 양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3.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맹이 될 수도 있다.

4. 적국의 행동에서의 변화는 의도의 변화와 일치해야 한다.19

 

이 보고서는 서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관여로 미사일 시험을 1년간 중단시켰고 수십년 전 전장에서 사망한 미군의 유해를 송환받기도 했다”고 밝히며 적국과의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하면서도 외교협상을 통해 군축조약들을 성공시켰던 모습을 상기시킨다. 보고서는 조선과 같은 적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전략적 적국인 중국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음을 직시하는 것이 “현명한 외교정책”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2.0에서는 중국이라는 ‘가장 현저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김정은정권과의 관계 개선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이나 중국이 지금 적국이므로 앞으로도 영원히 적국으로 대해야 한다는 입장은 경직된 이데올로기적 태도이다. “우리에게는 항구적인 동맹도 영구적인 적도 없다. 항구적이며 영구적인 것은 우리의 이익뿐이며 그 이해를 따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다.”20 대영제국이 정점에 오른 시기였던 19세기 중반에 총리를 역임했던 파머스턴 경이 연설에서 강조했던 현실주의적 인식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역사에서 냉전시기와 같이 반세기 가까이 한 국가를 적국으로 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처럼 국가 성립 때부터 지금까지 한 국가를 ‘주적’으로 보며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노골적 현실주의 입장에서는 국익에 필요하다면 동맹국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고, 오늘의 적국과도 내일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정책연구소는 이러한 인식을 조선정부와의 관계에도 투영하고 있다. 조선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면 ‘핵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중국과의 전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김정은정권이 미국 편에 서게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다. 트럼프 1.0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에 나선 것도 그와의 우호적 관계가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미국에 이익이 되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미국우선정책연구소는 트럼프 2.0도 마찬가지로 김정은정권과의 관계 개선이 중국 견제에 기여하고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북미관계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와 잘 지낼 것”이라며 김정은과 다시 대화에 나설 것임을 암시했다. 트럼프 2.0의 사고방식을 볼 때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은 돌출적 개인행동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세력의 ‘집단지성’에 가깝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5.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5년 트럼프 2.0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일견 매우 거칠 뿐 아니라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더군다나 다양한 국내적・국제적 요소들에 의해 여러가지 변화가 있을 수도 있어서 앞날을 전망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2.0을 뒷받침하고 있는 MAGA주의, 그리고 이를 정책화하는 연구소들의 지향점은 명확해 보인다. 이 지향점에 비춰볼 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위기와 기회의 양면성이 공존한다. 우리는 위기는 피하고 기회는 살릴 수 있을까?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초강대국이다.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힘을 이용해 단기적이나마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하면 이를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국가는 없다. 미국과 공존하며 공통분모를 확대하고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은 줄여나가야 한다. 외교・안보에서 확대할 수 있는 공통분모는 대북관계이고, 줄여야 하는 간극은 대중국 정책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김정은정권과 대화를 하고 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트럼프 2.0의 일관된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트럼프 2.0을 지원하는 싱크탱크의 지론이기도 하고, MAGA 집단의 사고방식과도 부합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가파르게 진행 중인 중동 및 유럽의 전쟁 종식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반도를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나름대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에서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잠재력이 가장 큰 곳은 한반도다.

북미대화와 관계 개선은 한반도평화를 위해서 환영할 일이다. 한국전쟁의 한 축은 미국과 북한과의 전쟁상태이고, ‘북미전쟁’이 종결되지 않는 한 한국전쟁의 종결과 평화체제 구축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미대화는 한반도평화의 필요조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남북대화 및 관계 개선 없이 한반도평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북미관계가 평화롭게 전환되지 않는 한 한국전쟁은 종결되지 않는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평화상태로 전환시키는 것은 어느 하나도 쉽지 않지만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한반도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래서 트럼프 1.0에서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성립하기로 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한 것은 중요한 진전이었고, 트럼프 2.0이 대화와 관계 개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한미대화를 더욱 활성화하여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실히 해준다면 트럼프 2.0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이 한미대화에서 트럼프 2.0이 바라는 대로 한국의 안보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책임질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시작전통제권을 조속히 회복하고 전력구조에서도 한국군이 주력군이 되도록 전환해야 한다. 단, 이런 전환이 ‘자강’이라는 설익은 명분 아래 ‘힘을 통한 평화’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남북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적대적 국가관계를 더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2.0을 제대로 활용해야 남북 군비 통제·감축을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평화상태로 전환할 수 있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평화적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은 핵문제를 빼놓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반도 비핵무기지대’ 내지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제도와 결합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안에서 조선정부는 핵무기와 생산시설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그 대신 미국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핵무기 사용·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조약의 형태로 받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도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담보로 기존 핵보유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공약을 받는다.

이러한 비핵무기지대화 조약과 포괄적 안보제도는 동아시아 평화협력을 위한 다자기구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중경쟁에 편승하여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협력적 안보의 틀에서 다양한 협력의 그물망으로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이들을 평화적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협력안보체제가 형성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협력안보체제의 구축은 트럼프 행정부의 지역안보 구상과 공통분모를 가진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을 협력안보체제에 끌어들여 그 체제에 묶어두는 것은 중국의 영향력을 제도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힘을 제도로 제한하여 ‘지역 패권자’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의 현실은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대안은 실패가 명백한 ‘힘을 통한 평화’와는 달라야 한다. 필자는 동북아시아 평화와 안전에 대한 전문가 패널(PSNA)과 지난 수년간 연구 및 토론 과정을 거쳐 이러한 대안을 ‘비핵무기지대 2.0’과 ‘C3 안보기구’로 정식화했다.21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와 ‘공동 안보·포괄 안보·협력 안보’를 추구하는 동아시아 평화협력기구를 추진하자는 제안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 2.0의 정책은 이러한 대안을 추구할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기회의 창을 활짝 열어젖혀 평화의 길로 성큼 나서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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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ham Allison and Philip Zelikow, Essence of Decision: Explaining the Cuban Missile Crisis, Longman 1999.
  2.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 이후 2기에서는 대(對)소련 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1987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 사거리 500~5,000km의 지상발사형 탄도·순항 미사일을 폐기하는 데 성공했다. 또 소련에 핵무기 감축을 제안하여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협상을 시작, 1991년 그 조약이 체결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기도 했다.
  3. Wayne S. Cole, America First: The Battle Against Intervention, 1940-1941,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53.
  4. The White House, “America First Trade Policy,” 2025.1.20(www.whitehouse.gov/presidential-actions/2025/01/america-first-trade-policy).
  5. Rana Foroohar, “The return of the techno-libertarians,” Financial Times, 2024.11.25; Harry Booth and Billy Perrigo, “Peter Thiel,” TIME Magazine, Vol. 206, 2025년 7/8월호 49면.
  6. Jeffrey M. O’Brien, “The PayPal Mafia,” Fortune, 2007.11.26; Jessica Mathews, “How Peter Thiel’s network of right-wing techies is infiltrating Donald Trump’s White House,” Fortune, 2024.12.7; “The PayPal Mafia is taking over America’s government,” The Economist, 2024.12.10.
  7. Alexander C. Karp and Nicholas W. Zamiska, The Technological Republic: Hard Power, Soft Belief, and the Future of the West, Crown Currency 2025.
  8. 러셀 보우트(Russell Vought)는 연방정부의 과도한 관료화가 문제였다고 분석하고, 트럼프 2.0에서는 대통령에 권한을 집중할 뿐 아니라 대통령의 정책을 충실하게 집행할 인사로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5년 보우트가 대통령실 관리예산청장에 취임하며 그의 주장은 현실화하고 있다.
  9. Paul Dans and Steven Groves, eds., Mandate for Leadership 2025: The Conservative Promise, The Heritage Foundation 2023; Michael Rigas, “The America First Transition Project Introduction,” 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2023.10.17.
  10. Karen Yourish, Lazaro Gamio and Ashley Wu, “Project 2025, Mar-a-Lago and Fox News: What Connects Trump’s New Staff Picks”, The New York Times, 2024.12.3; Elena Shao, Karen Yourish and June Kim, “How Trump’s Directives Echo Project 2025,” The New York Times, 2025.2.14.
  11. Paul Dans and Steven Groves, 앞의 책 92면.
  12. ‘거부 방어’는 적국이 군사력으로 성취하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전략을 의미한다. 이를 엘브리지 콜비(Elbridge A. Colby)가 2021년 저서에서 미국의 대중전략으로 발전시켰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국방부 전략 및 전력개발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고, 2기에서 국방부 정책차관을 맡은 콜비는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지역 패권국가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정부의 대만 장악을 막으면 중국의 영향력이 지역에 확장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며, 미국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아 확실한 힘의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lbridge A. Colby, The Strategy of Denial: American Defense in an Age of Great Power Conflict, Yale University Press 2021.
  13. Christopher Miller, “Department of Defense,” Paul Dans and Steven Groves, 앞의 책 94면.
  14. Pete Hegseth, “Opening Remarks by Secretary of Defense Pete Hegseth at Ukraine Defense Contact Group,” 2025.2.12.
  15. 집중의 정도와 우선순위를 두고는 트럼프 2.0 내에서도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배포된 ‘임시 국가방어 전략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은 “미국 영공과 국경을 포함한 미국 본토의 방어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억제”라는 두가지 전략적 목적을 제시했는데, 이 두 목적의 우선순위와 비중을 두고 내부에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이 지침에 근거해서 작성되고 있는 ‘국가방어 전략’이 조만간 완료되어 발표될 것이므로, 이를 보면 논쟁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7월에 공개된 국방부 예산청구에서는 미 남서부 국경 작전에 50억 달러, ‘골든돔’ 미사일 방어에 250억 달러, 핵무장에 600억 달러, 태평양 억제 구상에 100억 달러, 대만 지원에 24억 달러를 요청했다. “Defense Budget Overview: 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 Fiscal Year 2026 Budget Request,” Office of the Under Secretary of Defense 2025.7.1.
  16. Pete Hegseth, 앞의 발언문.
  17. Paul Dans and Steven Groves, 앞의 책 .
  18. 미국우선정책연구소는 고립주의를 확실하게 배척하고 강한 군사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미국식 현실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Center for American Security, “America First Foreign Policy Principles in Practice,” 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2022.4.4.
  19. Center for American Security, “Maintaining America’s Superpower Status,” 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 2022.5.10.
  20. “Treaty of Adrianople: Charges Against Viscount Palmerston,” Hansard, Vol. 97, 1848.3.1.
  21. Gregory Kulacki, Keiko Nakamura, Jae-Jung Suh, and Tatsujiro Suzuki, eds., Getting to Nuclear Zero in Northeast Asia : The Nuclear-Weapon-Free Zone as a Vehicle for Change, Routledge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