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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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이영은 『제국의 어린이들』, 을유문화사 2025

식민지 조선반도에서 어린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나

 

 

김민령 金玟鈴

아동문학평론가, 인하대 강사 

kmr0322@hanmail.net

 

 

 

 

때는 1930년대 후반, 조선반도 안팎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일본군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라디오에서는 날마다 전황이 중계되고 기차역에서는 출정 병사를 배웅하는 행사가 열린다. 난징 함락이나 우한삼진 점령을 기념해 전승 퍼레이드가 개최되면 거리는 화려한 연등과 가면 행렬, 꽃으로 장식한 전차, 구경꾼들로 흥성거리지만 밤이면 방공연습과 등화관제를 위한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제의 근대화는 내내 군국주의와 함께였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은 전쟁의 광기가 폭주상태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머지않아 진주만공습이 이루어지고 세계대전에 뛰어들 참이다.

이영은의 『제국의 어린이들』은 조선반도에 살던 어린이들이 지은 글을 통해 전쟁의 그늘이 드리운 당시의 삶과 일상을 조명하는 책이다. 대상 어린이 작문들은 모두 일본어로 쓰였으며 1939년과 1940년에 각각 묶여 나온 『총독상 모범 문집』에 실려 있다.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는 총독부 산하 경성일보사에서 간행하는 일본어 어린이신문인 경일소학생신문이 주최한 행사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와 경성제국대학 교수, 경성사범학교 교장 등 일본인 지배층 지식인들이 심사를 맡았으며,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총 7회에 걸쳐 개최되었다(8면). 중일전쟁 이후 국가총동원령체제에서 이루어진 식민기구 주도의 교육 이벤트였던 만큼 이 경연대회에서 쓰인 작문들은 당대 일본제국의 초등교육이 어린이들의 실제 삶과 만나는 최전선을 드러내준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교육이 “전쟁의(반反막부 세력의 쿠데타 이후 실시), 전쟁에 의한(청일전쟁에서 획득한 전쟁 배상금으로 무상 교육 실시), 전쟁을 위한(중일 전쟁과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위한)”(219면) 교육이었다고 요약한다. 식민지 조선의 근대교육도 다르지 않았다. 1938년은 조선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공포된 해로 피식민지인에게 ‘참전할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일본어 독해와 작문이 중요해진 시기였다.

이 책은 『총독상 모범 문집』에 실린 어린이 작문을 크게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이 담긴 글과 아닌 글로 나누어 싣고 있다. 비전쟁 항목을 먼저 소개하면서 이를 자연, 가족, 동물, 놀이, 일상, 학교로 분류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에 대한 글과 기타 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조선반도를 둘러싼 전쟁과 식민주의, 이후 전개된 비극적 현대사를 알고 있는 현재의 독자들에게 이들의 작문은 심란한 텍스트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 수록된 작문에는 친구와 가족, 놀이에 관한 어린이다운 일상이 담겨 있고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거나 박물관과 백화점에 가는 등 1930년대 조선의 대중소비문화도 그려져 있다. 그러나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어린이의 일상 역시 전쟁과 국가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일본인 어린이의 글과 조선인 어린이의 글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주제별로 모아놓음으로써 ‘조선반도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의 삶을 하나로 보도록 펼쳐놓지만, 그럼에도 감출 수 없는 차이를 이야기한다. 일본인 어린이들이 축음기로 음악을 듣고 백화점에서 사 온 프랑스 인형을 애지중지할 때 조선인 어린이들은 책을 사기 위해 나무를 해다 팔거나 60리나 되는 길을 걸어 친척집에 수업료를 꾸러 간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간장값을 수금하러 나선 일본인 어린이도 있고, 택시를 타고 남산에 있는 조선 신궁에 참배를 하러 가는 조선인 어린이도 있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어린이들의 글짓기에 드러난 계급적 차이는 분명하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일본에서 영화와 연극을 공부하던 이영은이 일제강점기와 한일관계사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게 되면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저자가 식민지시기 영화와 연극, 여배우론 등을 연구하다 어린이문집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는 1940년 개봉한 아동영화 「수업료」 덕분이었다. 「수업료」는 조선인 어린이의 일본어 작문을 원작으로 한 일제강점기 아동영화라는 특수한 사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원작에 따라 생생하게 담아낸 조선인 어린이의 생활과 감정,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는 민족차별과 수난은 물론이고, 내선일체의 강령을 따랐음에도 피식민지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드러나 있어 일본에서 개봉이 불발된 사정까지 겹겹이 쌓이고 교차하는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린이들의 작문은 당대 일상을 기록한 민속지로서뿐 아니라 1930년대 후반 조선반도라는 시공간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텍스트가 된다.

전쟁시기 식민기구가 주최하고 일본인 엘리트들이 심사하여 뽑은 어린이 작문에는 이중 삼중의 억압과 감시가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의 글이 일본인 어른들에 의해 읽히고 평가될 것을 이해하고 있을 때 어린이는 과연 얼마나 솔직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책의 말미에 당시 모범글로 선정된 작품들에서 발췌한 전쟁과 관련된 국가주의적 표현을 나열하고는 “어린이들의 문장을 검토하고 재구성한 어른들의 영향력”을 읽어낸다. 하지만 “저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천황 폐하에게 바치는 목숨입니다”(311면) 같은 문장이 온전히 어른의 가필에 의해서만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그런 문장을 쓴 어린이가 있다 한들 천황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백 퍼센트 감응했다고 볼 이유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글짓기 경연대회’란 어른과 어린이가 ‘좋은 어린이 작문’의 기준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눈치싸움의 현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어린이들의 작문이 경연대회에 제출되고 심사를 거쳐 선별된 글이었다는 사실은 다층적으로 주의를 요한다. 식민치하에서 몇겹의 억압과 감시를 내면화하고 쓰인 작문들을 어린이가 온전히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써낸 글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의 어린이 작문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맥락 위에 펼쳐놓고 전쟁이라는 기준점에 의해 살핀 것은 타당하고도 불가피한 선택이다. 어린이의 삶일지언정 식민지 현실과 분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상황에 집중하고 글감과 주제에 초점을 맞추느라 언뜻언뜻 드러나는 어린이의 실제 생활감정을 흘려보낸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경성사범학교부속제2소학교 제1학년 민성국 어린이의 짧은 글 「전쟁놀이」를 보자. “김(金)쇼켄! 너는

○○부대 부대장 해!” “이(李)오우자이는 일등병이 되었습니다. 또 사이다이세이는 고쵸입니다” 하고 일본식으로 음독한 이름을 부르며 전쟁놀이를 하는 일고여덟살의 조선인 어린이들. “풀숲에 숨어서 피스톨에 총알을 넣고 빵! 하고 쏘았습니다. 너무나 소리가 커서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피스톨을 쏘면서 돌격해 가던 도중, 저는 무서워져서 도망쳐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서 헤어질 때에는 날이 깜깜해져 있었습니다.”(234면) 천진하고 호기롭게 전쟁놀이를 하다가 돌연 무서움을 느끼고 도망치는 내용의 작문은 어째서 어린이의 삶이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어야 하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당시 어린이들의 글에서 정말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피식민교육을 내면화하고 일본인 심사위원의 눈에 들기 위해 주제를 골라 교관의 지도에 따라 서툰 일본어 문장을 다듬어서 완성한 글임에도 거기에서 드러나 보이는 인간다운 마음인지도 모른다. 지원병이 되어 떠난 가난한 사촌형을 기억하면서 어느 추운 겨울날 형의 “윗도리 단이 짧아서 시뻘건 등이 보였습니다”(273면) 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리하여 순간순간 빛나는 진짜 어린이들의 삶을 찾아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며 저자가 양보한 이 책의 참된 재미일 것이다.

 

김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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