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정영권 『분단시대의 영화학』, 산지니 2025
‘분단’과 ‘영화학’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김한상 金漢相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hansangkim@ajou.ac.kr
한반도의 분단은 영화학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일본제국의 ‘지역’으로서 지역성에 기반한 영화산업을 일구어온 식민지조선의 영화계가 그 지역 영토의 분할이라는 물리적 구획을 넘어, 강홍식 문예봉 박학 심영 주인규 추민 등 북에 남거나 북으로 넘어간 영화인들과 남한에 터를 잡은 이들로 인적 분할이 일어난 상황은 제도와 시장, 기술과 미학이 모두 일정한 분리와 재구성을 맞이하는 사건이었다. 1947년 북한에서 이루어진 국립영화촬영소의 설립은 그처럼 각자 형성・발전해나간 분단 영화의 두 계열이 지닌 상이함을 웅변하는 현실태의 등장이었다. 이러한 ‘분단 영화 체제’의 형성은 내셔널 시네마(national cinema)를 보편적 인식틀로 삼아온 영화사의 일반적인 서술 관행에도 해결할 수 없는 지정학적 곤경을 가져왔다. 또한 소위 ‘탈냉전’이라는 서구 중심의 글로벌 체제규정 속에서도 여전히 장기냉전의 감각적 현실이 시각장의 현재를 정의하게 만드는 서술의 공백을 영화학에 가져다주었다. 가령, 이 책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트랜스내셔널 시네마’(transnational cinema)는 분단 영화 체제에서도 유효한 개념인가? 「림시교원」(2025)의 석범진 감독처럼 탈북 후 여러 국경을 넘어 남한에 온 이들이 경계 너머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그 반대 방향의 흐름은 추측의 영역에 남아 있을 뿐이고, 트랜스내셔널이라는 탈냉전적 수사는 분단 영화 체제의 후기냉전적, 혹은 장기냉전적 특징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제기하는 ‘분단시대의 영화학’이라는 의제는 상당히 시의적절하고 학문적 목표로도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담대한 제목과 달리 저자 정영권은 하나의 ‘영화학’으로서 분단 영화 체제에 대한 이론화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탈)냉전시대 남북한 영화의 다양한 쟁점들”(5면)에 대한 탐구를 통해 곧바로 각론으로 들어간다. 총 다섯 부로 나누어진 구성은 한국전쟁의 기억과 그 속에서의 민족 표상, 그리고 전쟁 재현을 젠더 역학에 따라 분석하는 1부, 냉전기 당시의 정치적 맥락과의 직접적인 관련 속에 있는 1960년대 남북한 영화들을 분석하는 2부, 이른바 ‘탈냉전 시대’로 규정된 2000년대의 남북한 영화들을 각각 분석하는 3부와 4부, 그리고 갑산파의 숙청과 함께 모든 경쟁 계파의 축출에 성공한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발표하는 1967년을 변곡점으로 놓고 그 이전 시기 북한의 외국영화 수용사를 다루는 5부로 이루어져 있다. 특정 시기의 남북한 영화사를 다루는 분석으로 각 연구들은 일정한 미덕을 보여준다. 특히 “소련영화가 북한영화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실증적 담론/문헌 연구”(335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1967년 이전 북한에서의 소련영화 수용, 그리고 북한의 ‘세계영화사’ 인식에 대해 분석한 11, 12장이나 “이승만 정권이 몰락해가던 1950년대 후반에서 시작, 4·19혁명을 거쳐 1964년 6·3항쟁까지 남한의 역사”(167면)에 대해 ‘반미구국투쟁’으로 그려낸 북한영화의 남한 재현을 분석한 6장은 분단이라는 조건 그리고 그 조건 안팎의 글로벌 맥락을 영화연구와 연결지어 고찰한, 분단시대의 영화학의 좋은 사례들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이 책이 다루는 영화들은 어떻게 각각이 지닌 국내적 조건과 그것이 빚어내는 (내셔널 시네마 역사로서의) 영화사적 의미를 ‘분단’이라는 정치적・군사적・일상사적 환경과 그 경계를 넘어서는 영화적 실험과 상상에 대한 ‘영화학’으로 구성하는가? 비교의 방법일까? 2장 ‘전쟁과 민족’의 경우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과 조선인민군2·8예술영화촬영소 제작의 「월미도」(1982)를 비교하는데, 저자는 두 영화가 남한의 반공주의와 북한의 유일지도체제 속에서 만들어졌음에도 각각 반전주의와 계급사회에 대한 ‘의도치 않은’ 폭로로 이어졌음을 흥미로운 공통점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비교의 틀로 접근한 사례를 제외하고 각 장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각기 ‘한국영화’와 ‘북한영화’라는 내셔널 시네마적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공주의의 맥락에서 남한의 1960년대 간첩영화 장르를 분석한다거나 북한영화 「성장의 길에서」(1964~65)를 현실의 통일혁명단사건과 연관지어 분석한 대목은 저마다 흥미롭지만 남북한 영화를 대조해볼 수 있는 이 연구들이 서로 큰 관련 없이 독립된 연구로 머물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른바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로서 「역도산」(2004)을 탐구한 사례는 그런 점에서 흥미와 아쉬움을 동시에 남기는 텍스트다. 역도산(모모타 미쓰히로, 본명 김신락)은 조선 국적을 지우고 일본인으로 귀화했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조선적 재일조선인, 책의 표현대로는 “북한계 재일조선인”(286면)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으며, 특히 북한에 두고 온 딸 김영숙의 존재는 그와 북한의 관계를 단순하게 보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다. 저자는 영화 「역도산」이 그러한 관계성을 지우고 “부재하는 것”으로 만드는 반면, 역도산을 “세계인”이라는 공허하고 “균열적인 인물”로 구성하고 있다는 데에서 “내셔널/로컬의 맥락”을 지운 트랜스내셔널 시네마라 비판하고 있다(289, 298면). 이러한 저자의 진단은 합당하지만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다루는 북한의 접근방식을 “북한식의 익숙한 스토리텔링”(289면)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아쉽다. 역도산은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 종목의 특징에서도 나타나듯이 그 자체로 트랜스미디어적인 인물이었고, 이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다양한 미디어에서 그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접근이 쉽지는 않지만 「역도산」 이전에 북한이 중국과 합작하여 「력도산의 비밀」(2005)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이다. 이 책이 트랜스미디어적이면서도 ‘탈냉전’적 트랜스내셔널 담론에 함몰되지 않는 냉전기 인물의 영화적 의미를 더 깊이 탐구했다면 ‘분단시대의 영화학’으로서 더 좋은 이론틀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다루어진 영화 각각의 내셔널・로컬 맥락(혹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경계 내적 맥락)에 대해 충실하게 고찰하는 이 책의 다양한 분석들이 영화 예술장과 산업, 관객에 대한 월경적인(transborder)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 관심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이론적 기조로 제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