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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강성현 외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비평사 2025

‘끝나지 않는 내란’에 맞서는 법

 

 

박정훈 朴晶勳

오마이뉴스 기자

sometimes87@naver.com

 

 

 

2024년 12월 3일 오후 11시 4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시민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국회를 향해 하나둘 달려오고 있었고, 의원들은 다급하게 담을 넘었다. 그런데 그 시각, 대통령실 대접견실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얼마 전 공개된 그날의 CCTV에서 이상민은 한덕수와 문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내란 특검’에 따르면 국무총리 한덕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미리 받았고,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은 윤석열로부터 언론사들 단전·단수를 지시받은 상황이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며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고, 포고령을 위반하면 “처단한다”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발표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0호’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했다. 권력을 찬탈하거나 영구화하기 위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거나 죽였던, 역사 속 계엄의 부활이었다.

포고령이 시행됐음에도 화면 속 두 사람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과 국무위원들은 몰랐다. ‘피로 쓴 민주주의’가 얼마나 견고한지,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를 구할 수 있는지. 결국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시민들은 윤석열을 탄핵시키고 감옥에 가뒀다.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숨 가쁘게 흘렀다. 표면적인 내란은 끝났지만, 안타깝게도 실질적인 내란은 끝나지 않고 있다.

강성현 외 11인이 저자로 참여한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는 12·3 내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1부(1~5장)는 한국현대사에서 ‘계엄’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하나의 통치수단으로 자리잡았는지를 살핀다. 2부(6~8장)는 계엄에 대한 법적·철학적·문학적 사유의 장을 펼치고, 3부(9~12장)는 내란 이후 지금까지의 민주주의 회복과정과 앞으로의 실천방향을 모색한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필자들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개인의 돌발적 행동 또는 우연의 산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구조 속에서 분석한다. ‘내란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들을 우리 사회에서 끊어내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먼저 계엄과 같은 ‘예외상태’는, ‘보수’정부 집권기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줄곧 강조한다. 박근혜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탄핵심판 직전 계엄령 선포를 준비했다는 문건이 드러난 바 있으며, 이명박정부 국방부도 계엄 선포요건 완화를 추진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계엄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전의 독재정권은 통치기반이 약화되거나 국민들의 저항이 커질 때마다 ‘북한과의 휴전상태’라는 점을 활용해서 계엄을 선포했다. 지난 16번의 계엄과 내란이 모두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은, 궁지에 몰린 처지였던 윤석열에겐 강력한 유혹이었을 것이라고 이 책은 짚는다.

더불어 이 책은 윤석열 스스로가 검찰총장 출신의 ‘법 기술자’이자, ‘법조 카르텔’의 정점에 선 인물이라는 점을 새삼 주목하도록 한다. 윤석열은 계엄에 성공할 경우 사후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의 6·3 비상계엄 당시 대법원은 비상계엄 선포요건을 “정전 중에 있어도 아직 전쟁 상태로 봐야 한다”(101면)는 식으로 해석했고, 이는 20년 넘게 불법계엄을 합법적인 일처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됐다. 나아가 윤석열은 계엄이 실패하더라도 법 기술을 이용해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본 듯하다.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유례없는 구속시간 계산법을 통해 윤석열은 석방되기까지 했으며, 윤석열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선 전 초고속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개입 논란을 빚었다. 사법부는 지금도 내란 가담·방조 혐의가 있는 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특히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9장 ‘알고리즘 내란, 극우 유튜브가 키운 대통령의 최후’다. “윤석열정부는 이미 ‘바이든-날리면’ 사건 이후 일탈 상황의 연속이었다”(279면)라는 대목은 정확한 진단이다. 윤석열이 귀를 막고 더욱 교만해진 건 ‘바이든-날리면’ 사건 이후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은 뒤부터다. 기자들의 질문도 듣지 않고, 공개 기자회견도 하지 않으니 쓴소리를 들을 일도 없었고,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그는 민주당을 악마화하거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퍼트리는 극우 유튜버들에 의존했고, 결과는 비상계엄이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극우세력이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반탄’시위를 통해서 결집·확장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의원 역시 극우 담론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과거라면 ‘망언’이라고 지탄받을 말들을 연일 쏟아냈다”(345면)라는 지적처럼, 내란을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정당과 정치인들마저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윤석열을 두둔하고 있다. 결국 정치와 사법 영역에서 ‘조용한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내란의 여진 속에서도 “평등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포용 사회”(320면)가 광장의 시민들이 꿈꾸던 민주주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는 점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윤석열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지만, 소수자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기존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 다양성과 연대를 기반으로 ‘모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사회대전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는 일종의 당부다. 내란이 더이상 내란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망각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것이다. “내란을 일으킨 극우 집단을 언제든 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 지금의 체제 안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324~25면)을 기억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하고 소수자를 억압하고자 하는, 동시에 내란을 사소화하는 극우의 움직임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한 싸움을 버텨내기 위해서 실천과 저항의 언어를 갈고 닦아야 한다.

“(박근혜) 탄핵 반대해도 일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의 역풍을 우려하는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에게 한 말이다. 그러나 거의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민들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내란을 주도하고 방관했는지, 또 있는 힘껏 막았는지. 내란 청산의 훼방꾼은 누구이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