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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선
강우근 姜宇根
1995년 강원 강릉 출생.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등이 있음.
whitespace13@naver.com
개미 한마리를 실수로 밟을 뻔한 날
그만 사라져도 좋겠다고 생각한 하루는
슬프거나 괴로울 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땅콩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해가 지기 전 새소리를 들으며 양팔을 벌린 채 언덕을 내려올 때
그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괜찮다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더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같이
충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어쩌면 앞으로 실수로 개미 한마리도 밟지 않을 수 있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푹신한 행복 속에서 저는 여러번 죽습니다
저는 종종 아름다운 것을 마주할 때면 사라지기도 합니다
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서를 지키는 나무가 가득한 숲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차들이 끊임없이 불빛을 내며 도로의 행렬을 이루는 것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볼 때
작은 세계를 이루어나가는 풍경들에서
살짝 발을 빼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저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그것이 나타나면 아마도 다르겠지만
맑은 날에 뭉게구름이 흩어지듯이
컴퓨터 화면의
복원되지 않을 삭제 예정 파일같이
기억 속에서 말끔하게 사라질 수 있다면
그러나 인간은 너무 찐득찐득하고 물렁물렁합니다
노을이 지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그동안 숨바꼭질을 하며
나무 뒤에서, 슈퍼마켓 평상 밑에서, 교회 의자 구석에서 서로를 발견하며 깔깔 웃었던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창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아이를 끌어안으며 엉엉 웁니다
작은 손들로부터 잔뜩 묻은 먼지가 털어지는
창고에서 깜빡 잠든지도 몰랐던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기차에서 잃어버린 것의 목록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기차에서 내릴 수 없었어, 처음에는 저녁이라고 생각했어, 해가 질 때마다 사람들과 보았던 저녁을 잃어버려서 기차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나, 기차 안에서 노을을 맞이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커튼을 치거나 서로의 붉어지는 얼굴을 아무렇지 않아했다, 얼굴에서 어깨로 무릎으로 가라앉는 빛을 보았을 때 나의 손에 사과 한알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 빨갛고 세상에서 가장 흔한 과일, 어느 해에는 매일, 매일 몸속에 쌓아두었던 것, 쌓아두는 족족 사라져갔던 것, 내 안에 들어왔던 사과는 어느 나무에서 굴러 떨어진 것일까, 기차 창문을 바라보던 할머니가 사과를 하얀 옷에 닦아서 우물우물 먹고 있었어, 한입 크게 베어 물자 사과의 즙이 흘러내려 할머니의 얼굴과 옷을 천천히 물들였어, 과일을 감싸기 위한 보자기는 점차 과일의 색이 되어가, 내가 잃어버린 외투는 어떤 겨울 냄새가 되었을까, 바깥은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날씨에 대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나는 기차에 머물게 된 걸까, 사람들의 외투에 들어간 꿈을 바라보았어, 자신을 감싸주었을 외투의 꿈과 그것에 가까스로 값을 매긴 사람의 꿈을, 눈을 맞아도 머리가 젖지 않는 후드티를 샀을 때의 꿈이라든가, 물건을 종종 잃어버리는 누군가를 위해 주머니가 많이 달린 옷을 선물해준 꿈을, 검은 옷만 입었던 기관사가 어느날 밝은 옷을 입었을 때, 그의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지난 날이라는 것을 알았지, 시종일관 무표정했던 그가 슬며시 웃자 나는 잃어버린 꿈을 떠올렸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짐을 들고 출장과 관광을 가기 위해서, 바다가 있는 해안도시를 달려가는 기차에 탑승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이 몇차례나 떠난 기차에 나는 아직 머물게 되었어, 빈 꿈속처럼 누군가가 타자마자 작동하기 시작할 기차에서, 내 몸에 들어간 영혼에게 누가 말을 걸게 되는 때가 올까, 하나도 소란스럽지 않은 눈과 비가 기차의 창문에 부딪혀 사라지는 걸 오래도록 바라보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