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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선
김유수 金唯秀
1998년 경기 안성 출생. 202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youth_kimm@naver.com
애국
국가는 뒈졌다.
애비들을 양육하지 못해서.
이번 애비들이 뒈져서가 아니라
다음 애비들을 양육하지 못해서.
우리 사장님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가게 앞은 가게들의 무덤이다.
무덤에서 형들이 걸어나온다.
예쁜 스냅백을 쓰고 뒤통수를 긁는다.
우리 사장님은 가족들이 있어서
버텨냈다. 가족들과 절연해서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들을 불러냈다.
그때 나는 걸어나온 것이다.
사장님께 말했다.
용수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어떤 형들은 바다 건너 장인 되어 왔지만
우린 시간이 없다.
용수야,
나는 흰색 반다나를 풀어헤치고
빡빡머리 긁적이며 이렇게 말한다.
보고 배울 사람들이 없어서 그래?
그럼 꼭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할까?
뭐가 있을까?
음……
시시포스의 바위?
자살 권총?
쿠로미 인형?
백룸?
물론……
우정?
혹은
사랑……
에잇 퉤, 손님들은 곁눈질하며
자리를 뜨고 가게는 또 한산하고
사장님의 안색은 더 나빠진다.
친구 걱정하는 내 마음도 안 좋아지고
엣헴,
그때 가게 옆 어두운 골목에서
빈 담뱃갑에 주섬주섬 꽁초를 넣는
(맨날 줄을 서는 옆 가게 직원들은
저기서 담배를 피운다. 지들 가게 앞에서는
피우지 않는다. 착한 용수는 매일 아침
저기서 꽁초를 줍는다.)
불 꺼진 가로등 뒤에 숨어서 듣고 있던
웬 대필작가 걸어나온다.
그가 말한다.
사랑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존하는 모델들의 한계에
우리들이 직면했을 땐.
조명은 이제 그를 비춘다.
영철아, 언제 거기 있었어?
사장님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묻는다.
사랑이 모델이란 건…… 어떤 의미입니까?
그러자 대필작가 명함을 내민다.
“소중한 이야기가 있으시다고요?”
나는 앞치마에 꽂혀 있던 펜을 들어
한 글자를 괄호에 집어넣는다.
대필(작)가.
대필가.
이제 대필가 해, 영철아.
지저분하게 대필작가니 뭐니
그런 거 그만하고.
내가 내민 명함을 다시 받아든 그는
가게로 들어가 콘센트에 꽂는다.
우리 가게는 개 출입 금지였나?
작가는 아니 대필가는 출입이 가능했던가?
그날 우리는 조촐한 서류를 작성해
영원한 절교를 서약했다.
그리고 평생 너를 걱정하기로.
네가 파산하면 함께 파산하는
이 몸과 마음이 네 그림자가 되기로.
그날 이후로 나는 리소스를 찾아서
방방곡곡 서울 탐방에 나섰다.
한남과 성수에 압구정과 혜화에
줄을 선다는 모든 곳에 나는 있었다.
거리에 나눠주는 공짜 티켓을 받고 들어간
극장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대학로가 망한 건 플레이스라 그렇다.
사이트가 아니라.
조국은 우리 사장님을 버렸다.
조국은 부지런히 손님들을 내쫓았다.
쫓겨난 사람들을 어떻게 손님으로 모실까?
이제 나는 인스타그램 탐색창에 앉아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스토리들 틈에 끼어서
그들을 모시려고 평생을 기다린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용수야!)
우리 사장님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이젠 가족도 친구도 없다.
그가 그림자를 거둔 날, 나는 죽어서
그를 기다린다.
(나도 가게를 차렸다, 용수야!)
출근
경복궁을 나섰다. 갈 길이 멀다.
내가 가는 길에 담배가 쌓여 있다.
달궈진 전자담배에서 담배 한개비를 뽑아
내가 가는 길에 놓는다.
할 일이 많다.
가야 할 길도 많지만
목 아래서부터
머리가 아파
굴뚝처럼
지끈거릴 때는
쏟아버릴 때는
긁는 소리가
머무를 때는
잠깐 눈을 감는다.
그리고 뜬다.
밥집을 본다. 사장님을 본다.
저녁 여섯시. 나는 사장님을 본다.
사장님의 미소를 본다.
갈매기.
소나무.
사장님의 안경을 본다.
사장님의 구부러진 안경을 본다.
사장님의 구부정한 허리를 본다.
창가에 자리가 있다.
곤드레비빔밥.
나는 어제 읽었던 메뉴판을 읽고
창을 보며 먹는다. 창을 보며 비빈다.
양념장을 붓고 무생채를 넣고
젓가락을 들고
물컵을 본다.
물컵이 내 탁자 위로 오는 것을 본다.
사장님을 본다. 눈이 마주친다.
물컵. 창밖의 외국인과 나 사이에
갈 길이 멀다. 뭉쳐둔 휴지를 풀어
더러운 입을 닦고서 내가 거리로 나와
뒤를 돌아볼 때는 눈이 마주친다.
나를 보는 것이 아닌 것들과
경복궁을 나선다. 일요일.
새벽 두시. 월요일.
가게의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나는 본다.
가게에 불을 끄러 나는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