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신예시인선
김 혜 연 金惠燕
1980년 제주 출생. 2020년 『시와경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근처에 살아요』 등이 있음.
jaru7880@naver.com
복도
진학상담실 앞 엄마는
살이 부러진 우산처럼 서 있었다
수줍게 반들거리는 엄마의 광대뼈를
나는 새끼발가락처럼
복도 끄트머리에 붙어 바라보았다
감추고 싶은 건
비에 젖어 엉겨붙은 엄마의 머리칼도
양쪽 기장이 다른 재킷도
나프탈렌 냄새도 아니었다
점심시간 내 운동장 구석에서 젖은 교복
복도에 엄마를 세운 아슬한 성적
봄에도 시린 계절에 서 있는 나의 냄새
컴컴한 봄 낮 형광등 아래
광대뼈 굴곡이 도드라질수록
엄마의 종아리 아래로
비늘들이 후드득 쌓여갔다
바다로 돌아갈 시간이 지난 인어처럼
엄마의 하반신은 곧 단단하게 굴곡진
지느러미가 될 것 같았다
아직도 축축한 복도를 기어 회귀하려는 당신과 나의 지느러미에 대한 꿈을 꿉니다
비바람이 벚꽃 무더기를 토하던 날
푸른 파도가 제 몸을 패대기치던 날
막 죽은 꽃잎들이 동그란 웅덩이마다 떠 있었다
복숭아빛 얼굴처럼
오래오래
거울모드
첫 음이 거울을 켭니다
당신은 오른쪽으로 춤추는 사람
모든 계절이 따뜻한 양수처럼 당신 편인 사람
당신을 모르면서 미움은 시작됩니다
밤새 꿈을 울음으로 찢은 것이
몇번째 거울의 나일지 모르면서
이미 풀린 문제를
무리수의 우리가 반복합니다
퇴고할 수 없는 암호를 매번 잊습니다
거울 없이는 내 뒤통수를 보지 못합니다
당신 뒤에서
당신의 오른쪽을 따라 춥니다
그것이 왼쪽이 춤추는 법
오른쪽은 늘 당연하고
왼쪽은 늘 스산해
당신이 미워도 죽을 듯이 사랑합니다
박자와 박자 사이
법칙과 족쇄 사이
종잇장처럼 반으로 접힌
거룩한 일생들이
거울모드로 자전합니다
왼쪽이 왼쪽에서 흘러나옵니다
갓 태어난 지금들이 왼쪽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의 춤이 오늘의 완성이듯
어젯밤 저승만큼 까만 눈물이 나를 기다렸듯
죽음처럼
억울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거울 속 거울들처럼 나를 기다립니다
가장 폭력적인 고요로
거울을 종잇장처럼 접으면
나의 꿈이 밤새 찢기지 않으면
오른쪽인 나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거울 없이도
오른쪽으로 춤을 추는
질투 없는 발들을요
미움이 없는
왼쪽의 나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