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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시인선
신 준 영 辛俊永
대구 출생. 2020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불이었고 한숨이었다』 등이 있음.
5longgole@hanmail.net
관계의 미학
덧문을 없애버리면 그 덧문을 통해 흘러들던 햇살도 기억에서 사라지는 법이다1
안동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던 열차가
강릉에서 오던 열차와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서원주역에서 잠시 정차했다
다른 방향에서 오던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확장을 감행하는 일 앞에서
우리는 엔진을 끄고 조용히
대기했다
미세한 진동과 충격이 지나자
둘은 자연스럽게 합체되었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열차는 양방향 복합열차입니다. 연결한 뒤에 객차 사이를 오갈 수 없습니다.”
객차 사이를 오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갈 수 없는 각자의 객실이 있다는 사실만이
피를 끓게 하던 여름이었다
목적지를 돌아 다시 서원주역에 닿았을 때 둘은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결별하였다
이제 열차는 지나갔고 그와 함께 쉼없이 활동하던 세계도 사라졌다2
한편에선 관계의 종료라 하였고 한편에선
비로소 완료된 관계라 하였다
바디월드3
털어놓으라 한다
혼자만 아는 얘기
비밀스러운 얘기 집어치우고
숨기지도 싸매지도 말고
다 보여주라 한다
해체하고 토막 내서
행간에 담긴 나를
모두 까발리라 한다
돌처럼 굳은 폐와 절단된 손목
발기된 성기와 뽑힌 혀
자궁 속에 갇힌 태아까지 남김없이
펼쳐 보이라 한다
심장에 묻은 새와
흉곽에 가둔 태풍까지
벗기고 갈라서
전시하라 한다
내가 벗겨낸 내 가죽을
한 팔에 걸치고
나머지 한 팔로
시를 쓰라 한다
종적을 알 길 없는 가여운 영혼들의
종적 같은
몸의 말
그게 진짜 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