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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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금 희 鍂 嬉

1979년 중국 길림성 구태시 출생. 2007년 『연변문학』 주관 윤동주신인문학상을 받고, 2014년 『창작과비평』으로 국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장편소설 『천진 시절』 등이 있음.

jinjinji79@naver.com

 

 

 

삶이 아직 남아 있을 때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수년 전의 잠 속에서 동주는 그런 생각을 했다. 잿빛 하늘과 갈색 땅이 뒤섞인,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없는 혼돈의 공간. 처음에 동주는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빙글빙글 나선형으로 돌기도 하고 전속을 다해 앞으로 돌진하기도 하면서 암흑물질로 가득 찬 터널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렇게, 이곳에서까지 살아 있는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용케도 동주는 ‘절대 죽으면 안 돼’라는, 깨어 있을 시의 의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주는 늘 인간으로 태어난 가장 본질적이고 중대한 과제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삶에서 느끼는 쾌락과 행복, 만족과 충실함, 존재감과 가치감……의 크기와는 상관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불의와 불행한 사건들이 들이닥치더라도, 애초 설정된 상황과 환경이 삶의 기쁨들을 처음부터 억누르고 빼앗고 왜곡시켰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있어서 결코 놓아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의무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런 인식은 너무 본능적이고 당연한 것이어서 그 의무의 짐이 예상외로 훨씬 무겁다거나 불합리적이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밤의 잠 속에서도 동주는 끝까지 죽음을 피해 살아남기만을 바랐다.

어느 순간 동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산속에 들어와 있었다. 어두컴컴한 숲길을 통과해야 했고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죽음과 생이 갈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가시덤불에 종아리가 긁히고 낮게 드리운 억센 대나무 가지가 무시로 이마를 내리쳤다. 경사가 험한 언덕길은 사람이 다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물통보다 굵은 고목들이 군데군데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습한 숲, 숨이 차고 불안했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었다. 더이상은 안 돼, 걸을 수 없어. 동주는 그 생각을 지팡이처럼 붙잡고 그럼에도 계속 걸었다. 멈추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몸부림이 한낱 시시한 죽음으로 처리될 것이 뻔했으며 아직 살아 있는 한 동주는 절대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잠은 벌써 칠년 전의 일이었다.

 

*

 

“네, 뭐.”

약간 헐렁한 초록 가운을 입은 의사가 양손을 펴 보였다. 체온이 좀 낮은 것은 갑자기 추워진 바깥 날씨 때문일 수 있고, 혈압이나 혈당, 백혈구 등 수치들도 정상범위에서 걱정되리만치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멍한 시선, 힘이 들어가지 않은 팔다리는 간밤의 악몽과 공포로부터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 이것이 지금 그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소견이라고 덧붙였다.

더이상 해줄 게 없다는 얘기였다.

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빠져나간 넋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은, 낯설고 새삼스럽고 흐릿한 눈빛으로 동주를 쳐다보았다. 딱히 어떤 효능을 기대한다기보다 위로·안심용으로 처방된 듯한 비타민 두세종류와 신경안정제 얼마간을 받아서 챙겨 넣는 동안 민나는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미역처럼 흐물흐물 의자에 걸쳐 앉아 있었다. 동주는 이제 자신의 키를 막 넘어서려는 민나를 안다시피 부축해 걸었다. 지난해 알뜰장터가 차려진 시청 앞마당 잔디밭에서 구입한 너구리―민나가 붙여준 작은 중고차 이름이었다―가 지하주차장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시동이 덜덜덜 걸리고 히터가 뜨뜻하게 돌아가기 시작해서야 민나는 조금씩 의식을 찾아갔다.

“집에 가면…… 계란죽 해주라.”

병원 건물을 빠져나와 싸락눈이 흩날리는 큰길가를 달릴 때 민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계, 란, 죽? 동주네 집에서는 처음 듣는 음식의 명칭이었다. 동주는 핸들을 잡지 않은 오른손을 뻗어 민나의 차겁고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 민나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안에서 조금씩 꼬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동주는 칠년 전의 그 아침에 끓여 먹었던 쌀죽을 떠올렸다. 아무 간도 육수도 넣지 않고 참기름에 볶지도 않은, 말 그대로 맑은 물에 흰쌀만 넣고 푹 끓이다가 불 끄기 바로 직전 냉장고를 뒤져 계란 하나를 툭 깨 넣었던 죽. 보글보글 노란 거품이 마구 이는 죽 냄비를 휘휘 젓고 있던 해쓱한 동주 곁에서 다섯살배기 어린 민나가 도정신해 지켜보았나보다. 그 잠에 대해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는데 민나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잠과 쌀죽을 연관시켜 자신의 기억 속에 각인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 아이도 벌써 살고 싶어진 것일까.

하지만 차양순의 논리에 따른다면 지금 동주네 형편은 그래도 죽 끓일 쌀이 있고 거기에 넣을 계란도 있어 꽤 행운스러운 쪽에 속한 것일 터였다.

“나 말이야, 여기선 맨날 바보만 같이 보여져서 살고 싶은 의욕이 막 사라지려 그런다?”

동주가 약해빠진 말을 할 때마다 차양순은 항상 이렇게 응수해주었다.

“야, 너만 한 것은 암것도 아니야! 내가 금방 이 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말이지……”

그때는 이곳 H국 사람들이 그네들의 출생지인 공화국에 대해 판타지처럼 생각할 때였고, 그러니 요즘 같은 다문화센터니 이민자조율청이니 하는 정부부서가 설립되지도 못했고, 가끔 좀더 길게 말을 섞어본 동네 아줌마들은 그녀가 자신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인류가 맞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그 자리에서 감당하고 버티기도 힘들었으며 몇년을 두고 갚아야 했던 브로커의 빚은 늘 마음의 무거운 돌이었으니 계란 한판 마음대로 사 먹기가 죄스러웠던 날들이라는 말이 옳긴 옳았다.

십이년째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온 차양순의 위로 방식은 이제 동주에게 신선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차양순은 동주가 힘들어할 때마다 계속하여 비슷한 얘기들을 했고 동주는 ‘아무튼 기분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생소한 땅에서 자신의 징징거리는 전화를 받아주는 그 한명이 실존한다는 사실만큼 견고한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동주가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의욕을 조금이나마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이 생각보다 그리 두려운 게 아닐 것이라던 엄마 역시 죽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 동주의 손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달리지 않았던가.

 

동주가 사는 동네는 작은 도시의 변두리였다. 작은 도시의 구조가 보통 그러하듯 백화점, 대형마트, 식당가와 정부청사, 시민체육관이 옹기종기 뭉쳐 있었고 초등·중학교, 병원, 은행, 복지시설과 종교시설이 나란히 모여 있었다. 봄이면 중앙대로 양옆에서 개나리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났고 가을에는 골목골목 좁은 도로변에서 노란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맛있는 국밥집과 빵집, 그리고 신선한 야채와 가성비 좋은 고기를 파는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 이 도시에 정착한 지 팔년 해를 넘기며 동주는 나름대로 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초록 울타리를 친 어린이집을 지나 아파트 경비실 앞마당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동주는 왼쪽 주차장 귀퉁이를 차지한 박스더미와 재활용품 수거 포대자루들을 보았다. 항상 그랬듯 쓰임새가 많을 것 같은 종이류보다 재활이 어려울 것 같은 플라스틱류가 훨씬 많았다. 갖가지 야채와 과일과 육류 포장봉지, 그리고 1인가구가 좋아하는 반조리식품, 냉동식품, 배달음식을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들이 자루에 담겨 작은 산더미처럼 넘쳐나도록 쌓여 있었다. (사람에게 정말 저렇게 많은 종류와 양의 음식물이 필요했단 말인가.)

열댓평 남짓한 작은 영세 아파트, 볕이 잘 들어오는 큰방에서 전기요를 따뜻이 켠 침대에 민나를 앉히고 나서 동주는 서둘러 쌀을 씻었다. 애초부터 가구를 많이 들이지 않아 집 안은 늘 간소하고 깔끔했다. 민나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집 구석구석에서 장난감 자리들을 철거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던 개구리 모양 쓰레기통과 고양이 세마리가 그려진 화장실 앞 발매트는 그대로 쓰고 있었다. 싱크대 옆 나지막한 냉장고 덮개 위에는 어린이집 발표회 때 선생님이 찍어주었던 드레스 입은 민나의 사진이 홀로 오뚝이처럼 세워 있었다. 작은 물류회사의 서투른 임시직으로, 혼자 다섯살배기를 케어해야 하는 싱글맘으로 정신없이 돌아치던 나날, 살아간다는 것이 왜 그리 숨 막히는 일이었던지. 엄마의 다정함과 친절함이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력을 길게 미치는지 깨달을 겨를 없이 민나의 어린 시절은 꿈결처럼 훌쩍 흘러가버렸다. 그즈음 동주는 간간이 짧은 악몽에 시달리다 깨곤 했다. 사품치는 차거운 검은 강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는 험상궂은 남자들, 커튼을 친 어두운 봉고차 안의 퀘퀘한 냄새, 그리고 흥분할 때마다 입귀로 거품을 비실비실 내뿜던 남자. 어떤 날은 연며칠 꿈속에서 기차를 타고 달리다 내리고 또다시 침대버스를 타고 달리다 내렸다.

반쯤 열어놓은 문 뒤 침대에서 빠른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민나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 다시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을 많이 부은 죽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서서히 끓고 냉장고 안에는 서너가지 야채와 귤 몇알이 남아 있었으며 계란꽂이에 거의 꽉 찬 계란들이 까치발을 들고 서 있었다. 지역사회 봉사단체에서 나눠준 김장김치도 있고 자신의 일터인 구내식당에서 동료 조리사 아줌마가 챙겨준 돌갓김치도 있었다. 이제 동주는 이곳에서도 어떻게든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고 민나를 부양하는 것에 대한 부담보다 기대가 커지고 있었으며 또한 더이상 브로커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없었다. 이런 삶은 분명 감사한 삶이었다. 열여덟살 동주의 손을 잡고 위험천만한 밤길을 나섰던 엄마가 소망했던 삶이 이런 유가 아니었을까.

쌀죽이 끓어오르는 동안 동주는 김치를 썰고 갓김치를 새로 담아냈다. 냉동실을 열어 감자만두 세알을 꺼내 찜기에 넣고 불 위에 올렸다. 요리하기 귀찮을 때 먹으려고 고향음식 식당에서 사 온 만두, 엄마가 쪄주었던 감자떡만큼 구수하지는 않았지만 김치를 볶아 넣은 속은 더 꽉 차고 기름기가 있었다. 같은 땅에서 캐낸 언감자가루로 빚은 만두여도 동주엄마 손맛은 역시 따라갈 사람이 없다며 껄껄 웃던 아저씨 아줌마들, 그리고 항상 자기 몫에서 반개씩 떼어 동주를 먼저 챙기던 ‘채떨이’할매. 그들의 비밀스러운 웃음소리와 암호처럼 오가던 인사말 단어들이 그 순간 동주의 머릿속에 느닷없이 떠올랐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가물가물 잊혀지고 중간중간 여러 기억들이 뒤섞여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도 않은 기억 조각들이었다. 베란다 창문으로 쨍그러니 비쳐 들어오는 햇볕 아래 동주는 죽을 젓다 말고 잠깐 멈췄다. 그들이 자주 흥얼거리던 곡조의 한 단락이 머릿속에서 환청처럼 울렸다. 한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의 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죽음의 잠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잠에 빠지면 우리의 몸은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며 의식은 분명 몸으로부터 분리됩니다…… 유전이든 전이든, 자주 겪든 적게 겪든, 한번이라도 이 현상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죽음의 예행이며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고 믿습니다……”

 

*

 

“언니도…… 맞아?”

동주는 해년마다 잊혀지려는 무렵이면 한번씩 ‘성회(聖會)’ 얘기를 꺼내는 차양순에게 대놓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흥분하여 ‘너도 꼭 가봐야 한다’던 차양순이 갑자기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차양순의 증상은 미심쩍은 데가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 와서 AZ교도1들과 어울리던 중 어느 밤 숨이 가빠지며 의식이 흐려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때 몸이 정말 ‘토포’ 상태에 빠졌었는지 의식은 분리됐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차양순의 남편, 정확히 말하면 그녀와 아무런 약조 없이 함께 생활하고 있는 파트너의 증언이 아주 중요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그날 밤 늦은 회식을 마치고 돌아와 곧장 거실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들었으므로 신빙성 있는 증언을 해줄 수가 없었다.

“새벽녘인가, 물 마시러 한번 깼었지.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다시 잠들었는데…… 글쎄, 그때 숨소리가 정상이었던가 아니던가…… 암튼, 그다음 날 내가 일어났을 때는 당신도 깼잖아.”

그들은 모두 알람을 놓치고 늦은 아침나절에 깨어났다고 했다. 개다가 한 아파트에서 생활한 지 십년이 되어갔지만 그들은 누가 누구를 위해 증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각자의 아이들 사진은 큰방과 작은방 양쪽 벽에 나눠져 붙어 있었다. 집세 물세 전기세는 공동 부담하고 식비는 알아서 챙기고 나머지 재정은 각자 관리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매년 추석이나 설이 되면 이곳에 정착한 양쪽 집안 친척들과 친구들이 차양순네 집에 모여 하루이틀씩 묵고 갔다.

공화국에서라면 이런 사이에서는 자신의 ‘생사 증상’에 대해 절대 터놓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종교인들, 개중에서도 생명의 권을 우선으로 하는 토포파들을 유난히 경계하고 증오했다. 중앙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꺼림칙하게 여기며 출발했는데 애초에 기반했던 신념이 다른 것도 그랬거니와 운영과정 중에서 보조를 함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심히 거슬려하다가 마침내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해갔다. 동주네가 그곳을 떠날 즈음 집체경제가 무너지면서 기아로 죽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재앙에 대해 중앙은 어느정도의 책임을 오히려 토포파들에게 묻고 싶어했다(토포파가 이웃들에게 퍼뜨리는 ‘불온한 사상’이 국민의 단합과 충성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으며 외부의 토포파들과의 연락에서 발설된 나라의 어려움 또한 중앙의 체면을 깎음으로써 경제원조와 투자유치를 저해했다는 판단이 있었다). 집회처에 대한 수색과 체포가 수시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리더들은 간혹 생명의 위협을 받곤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잘 아는 사람’의 밀고로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중학교 1학년쯤, 동주 자신이 그 잠에 빠지고 깨어났을 때 엄마는 비로소 딸을 데리고 집회처에 나가기 시작했다. 여느 가정집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는 나지막한 구들 위에 그간 알던, 또는 전혀 생소한 아줌마 아저씨가 대여섯명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몸을 자연스럽게 흔들며 낮은 소리로 함께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 좌중을 대표해 기도를 올릴 때에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엄마도 그들 중에 있을 때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첫번째 집회가 끝나고 돌아오기 전, 채떨이할매가 거쿨진 손바닥으로 동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왔다. 역시 넌 이곳에 속한 애로구나.”

동주는 지금까지 그 말을 의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동주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탈출하기 전 같이 살던 오빠가 가끔 보여주던 이상한 낌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동주는 자신이 바로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들의 소박한 환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며 그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노래했다. 이들이 믿고 있는 바는 무엇이며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은 여러번의 집회에서 조금씩 이루어졌는데 엄마의 이름도 체포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을 안 상황에서는 더 많은 것을 전수받을 여유가 없이 그곳을 떠나와야만 했다.

 

“그러니까 와보면 알 거잖아. 넌 유전이라며. 민나까지 그런 거 보면 너네 집 유전력이 강한가본데, 그분들 만나서 좀더 알아보고 싶지 않아?”

이번에도 차양순은 습관처럼 머리부터 젓고 보는 동주를 답답해했다. 이 나라에도 공화국에서 탈출한 토포인들이 정착하고 있으며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매년 한번씩 성회를 열려 애쓴다는 얘기를 차양순은 수년째 하고 있었다. 동주는 번번이 거절했다. 차양순처럼 자신의 증상을 착각하여 토포인들의 집회를 찾는 AZ교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만약 그들이 동주와 같은 유가 아니라면 만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동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지방으로 일하러 내려갔고 자신은 회사 계약이 만료된 차에 잠깐 일을 쉬기로 했다고, 이참에 얼굴 보는 것이라며 차양순이 동주네 모녀를 집으로 불렀다. 동주네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는 큰 손두부를 사서 삼각으로 잘라 노릇한 두부피를 튀겨놓고 고추양념장을 만들었다. 동주는 차양순이 지금도 고향음식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때로 존경스러웠다.

번화가와 많이 떨어져 있는 차양순네 아파트는 근처에 부대시설이 없어 썰렁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주차장은 항상 여유가 있어 좋았다. 명절선물 격으로 준비한 돼지고기세트 한 박스는 동주가 들고 차양순의 남편이 좋아하는 도수 높은 흰 술은 민나가 들었다. 거실은 매트를 깔면 열명이라도 너끈히 잘 수 있을 만큼 넓었고 다용도실 철제선반에는 주인의 취향답게 각종 크기의 찜통과 국솥과 냄비와 인덕션이 진열돼 있었다.

차양순은 오이를 채 썰고 다대기를 만든 다음 포트에 물을 올려놓고 나서 소파 앞에 펴놓은 신문지 위에 양푼을 가져다가 녹마가루를 부었다.

“너한테 부러운 게 있다면 민나 얘를 살려서 데려온 거, 그게 정말 부럽다.”

동주가 대꾸 없이 국수틀을 닦고 쟁반과 같이 가져와 앉는 사이 민나는 물이 다 끓은 포트를 조심조심 들고 왔다.

차양순이 소매를 걷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조금씩 녹마가루에 흘려가며 익반죽을 시작했다. 가루들이 몽글몽글 뭉쳐지다가 한덩어리로 엉켜지자 차양순은 상체의 무게를 팔에 싣고 힘차게 치대주었다. 반죽이 거의 매끄러워갈 때 그녀는 잠깐 멈추고 계란만 한 덩어리 하나를 떼어 민나 손에 쥐여주었다.

“얘, 너 손아귀 힘이 그케 대단하다며?”

이 나라로 오기 위해 거쳐야 하는 또다른 국경선을 향해 여덟시간 동안 아열대의 산속을 걸을 때, 동주의 자궁 속에서 동주 자신도 모르게 악착같이 붙어 따라온 아이가 민나였다. 그때 민나는 아직 손가락이 생기기도 전이었지만 악착같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민나는 공화국 탈출 직후 동주가 실려간 첫번째 ‘가정’에서 허망하게 잃어버린 아이보다 훨씬 강했다.

치대기를 마친 차양순이 손을 털며 일어나 원기둥 모양의 국수틀에 반죽을 꼭꼭 눌러 넣었다. 동주가 긴 지렛대처럼 생긴 기어봉을 잡고 아래로 지그시 힘껏 눌렀다. 곧 국수틀 아래에 받쳐놓은 쟁반 위로 가늘고 질긴 반투명의 국수들이 가지런히 예쁘게 내려왔다. 차양순은 서둘러 물을 끓이고 국수 그릇을 준비하고 끓인 국수를 빠르게 씻을 찬물을 다라이 가득 받아놓았다. 동주는 거실 바닥을 깨끗이 정리한 뒤 상을 내어 차양순이 미리 준비한 두부피에 따듯한 밥을 넣어 올렸다. 이어서 푸짐히 담은 인조고기무침이 올라왔고 밑반찬 두가지에 드디어 오이고명을 얹은 시원한 녹마국수가 세 사람 앞에 차려졌다.

“명절이 따로 있다니? 잘 먹는 날이 설이지.”

인간이란 얼마나 음식에 약한 존재인지. 어릴 때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는 이유로 평생 그 음식 앞에서 식욕과 행복감을 절제하지 못하는 유가 인간일 것이다.

민나는 맵지 않은 간장양념에 두부밥을 찍어 먹었고 녹마국수는 한그릇을 뚝딱 비웠다.

“얘, 넌 외가 닮아야 매운 거 다 먹을 수 있는데.”

차양순은 동주가 움찔하는 것을 못 본 척 민나에게 넌저시 농을 걸었다.

 

차양순이 주차장까지 내려와 배웅하면서 한번 더 물었지만 동주는 여전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난 됐어. 언니나 잘 갔다 오셔.”

민나는 삐걱거리는 차창을 열어 차양순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이모, 녹마국수 넘 맛있어요. 두부밥도요.”

그 말에 왠지 동주는 코끝이 쨍하려고 했다. 이런 미소와 이런 인사는 중학생 동주도 해보았던 것이었다. 채할매, 할매네 밴세가 넘 맛있어요, 옥수수떡도요……

시가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민나가 말했다. 그렇지만 엄마, 나는 가보고 싶은데? 그 사람들이 정말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라면 외할머니 소식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

 

영어학원가에서 민나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저녁, 동주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부서진 스티로폼 알갱이처럼 가벼운 눈발이 점점 축축해지며 송이송이 뭉쳐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주가 민나의 하교나 하원을 마중하는 일은 드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민나는 스쿨버스에서 내려 혼자 집으로 돌아가 간식을 챙겨 먹고 숙제를 하면서 동주를 기다리거나 복지센터의 취미반에 다녀오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날 아침, 민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밥을 벌써 상에 차려놓았고 동주는 출근 준비까지 모두 마쳤는데 민나의 방에서는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동주는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을 초조히 바라보고는 겉옷을 입은 채로 민나의 방에 들어갔다. 커튼 사이로 겨울아침의 차거운 햇빛이 푸름푸름 스며들어 작은 옷장과 책장, 선반 위의 인형들, 그리고 한쪽 어깨를 내놓은 채 보들보들한 담요를 덮고 있는 민나를 골고루 어루만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이 멎을 듯한 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 생명의 온기가 사그라든 듯한 냉기. 동주는 후들후들 떨리는 무릎으로 간신히 민나에게 다가갔다.

숨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심장은 간헐적으로 미약하게 뛰고 있었으며 몸은 섬뜩하리만치 차가웠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고 몸을 흔들며 자극을 줘봤자 그렇게 해서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동주는 알았다. 민나에게 ‘죽음의 잠’ 같은 것은 얘기해주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 아이는 과연 오늘 깨어날 수 있을지, 물을 수도 없었고 답을 알 수도 없었다. 별 소용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동주는 전기요 온도를 올리고 민나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해보았다. 구내식당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와서야 동주는 하루 휴가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죽음’과 ‘소생’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견디기 힘든 일인지, 동주는 자신의 곁을 지켜준 엄마나 어린 민나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싶었다. 공화국에서는 이런 증상이 스스로 회복되기를 기다릴 뿐이었겠지만 동주는 민나를 업어 차에 앉혀 내과의원을 찾았다. 가방을 목에 걸고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축 늘어진 민나의 몸무게에 눌리어 동주는 숨이 턱턱 막혔다. 눈물과 땀이 함께 흘러 시야가 자주 가리어졌다. 어쩔 수 없이 동주는 죽음과 아주 가까이 있었던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공화국 국경을 흐르는 강을 무사히 건너기 바쁘게 급히 오른 회색 봉고차, 바로 뒤에 따라오던 엄마가 탄 차가 어느 갈림길에서 휙 굽이를 틀며 사라졌을 때 느꼈던 당혹감, 절망감. 밤새 달린 차가 멈춘 곳은 어느 산중의 외딴 시골집이었고, 사내들은 마당에서 동주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흥정을 하고 동주는 거적을 편 방구들 구석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브로커에게 탈출비용을 지급했다는 엄마의 말을 수없이 떠올리면서 사내들의 욕지거리와 삿대질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의 협상이 성사된 결과로 동주는 다시 검은 벨벳 커튼을 친 승용차에 옮겨져 사흘 밤낮을 달려 온 동네가 하나의 성씨를 가진 마을의 노총각 집으로 보내졌다. 세상에는 상식 이하의 일들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이란 얼마나 찢어지기 쉬운 종잇장 같은 것인지, 제대로 된 난민자격을 받아 이 나라에 오기까지 육년이란 세월 동안 두번의 ‘인연’을 경과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의 동주는 알 길이 없었다. 다행히 그날 민나는 동주가 좀더 큰 병원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어느새 호흡과 맥박을 회복하고 있었다.

 

“웬일? 엄마 오늘도 휴가야?”

학원 빌딩 문을 나서다가 동주의 전화를 받은 민나는 유치원 아이처럼 촐싹거리며 너구리를 찾아 달려왔다. 차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가방을 뒷자리로 던져놓고는 발그레한 얼굴로 가쁜 숨을 쌕쌕거렸다.

“어, 너 몸이 좀 허한 것 같기도 하고 휴가를 자꾸 내기도 그래서 사장님께 그만두기로 말씀드렸어. 당분간은 반나절짜리 알바 알아보려고.”

그렇다면 약속한 아이패드는 사줄 수 있겠냐며 잠시 걱정했지만 민나는 이내 블루투스를 연결해 음악을 틀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씻은 뒤 민나는 잠깐 동주 방 침대에 누워 뒹굴었다. 민나에게 동주는 유일한 가족이자 어려서부터 쭉 함께 살아온 익숙한 말벗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 아이들과 같이 자라는 민나의 표현과 얘기들을 동주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민나 역시 공화국에서 제3국을 거쳐 이곳까지 온 동주의 기억과 습관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 이야깃거리나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편이었고 그럴 만한 것이 없을 때면 그냥 가까이 누워 서로의 온기와 체취를 느끼곤 했다. 핸드폰을 쥔 채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는 요즘의 민나에게서는 사과향 샴푸와 바디워시 냄새가 났다. 좀더 어릴 때에는 달콤한 딸기향이 났고 그전에는 꿀 섞인 우유냄새가 오래 났다. 헐렁한 잠옷 아래로 제법 굴곡진 실루엣이 보였고 아직 수분기가 남은 긴 생머리는 허리까지 드리웠다. 그 나이대의 동주보다는 민나가 훨씬 키가 컸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민나가 엎드린 자세로 핸드폰 화면을 넘기며 기억자로 꺾인 종아리를 흔들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번 같은 질문을 했다. 민나가 알고 싶어하는 어떤 사실에 대해 동주는 그때그때 조금씩 기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외국인’이라고만 알려주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돈을 벌어 보내느라 당분간 올 수 없다’고 둘러댔다.

지금 민나는 아버지가 어쩌면 영원히 이 나라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동주와 아버지의 관계는 여느 평범한 부부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아버지’라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궁금해했을 때 동주는 이렇게 알려주었다.

“음,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건강하게 생긴 사람이야. 요리사인데 칼질을 아주 잘했어. 담배는 절제하면서 피우던데 술은 꽤 마시더라.”

“성격은 어때?”

“글쎄,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어. 좋게 얘기하면 차분한 편이고 흠이라고 생각하면 겁이 좀 많았던 것 같애.”

그날 민나는 아버지에 대한 더 현실적인 정보를 얻기 원했다. C나라 사람인 건 알겠는데 어느 지역 어느 도시야? 직업은? 다른 가족은? 더이상 뭉뚱그려 넘어갈 수 없는 질문. 그러나 동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동주는 플라스틱 수납장 서랍을 당겨 속옷을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그땐 말도 잘 안 통했고 몸이 자주 아프기도 해서 일이 끝나면 거의 숙소에만 붙어 있었거든.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이젠 거의 생각나지도 않는걸.”

동주는 화장실 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샤워기를 틀었다. 일제히 분사되는 물줄기, 뽀얗게 서리는 수증기, 지치지도 않고 끊기지도 않고 아무 수고 없이 이토록 쏟아져내리는 더운 물. 동주는 이런 따뜻한 물줄기를 몸으로 맞이할 때마다 실감했다. 깨끗이 씻을 수 있다는 것이 특히 여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존엄스러운 일인지. 그곳, 씻을 수도 없고 온갖 냄새와 찌든 때와 누추한 욕설로 채워져 있는 C국에서의 첫번째 ‘집’, 그 치욕스러운 공간을 떠나온 지 십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잊히지 않는 수치심과 절망감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 집의 남자는 동주가 세숫비누를 너무 헤프게 쓴다고 눈치를 주었다. 주방용 세제, 더운 물, 가루비누와 장작용 옥수숫대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남자는 살림살이에 최소한의 돈만 쓰기를 원했다. 그는 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배려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매일 열심히 밭일을 하고 돼지를 키우는 것, 그리고 저녁에 돌아와 남자로서의 욕구를 푸는 것, 동주의 배가 언제 불러오는지 수시로 들춰보는 것. 이런 것이 그에겐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그곳에서 삼년을 버티는 동안 동주는 두번 탈출했고 두번 모두 잡혀 돌아왔으며 그때마다 차꼬에 발목이 채워져서 며칠 동안 창고에 갇혀 지내야 했다. 농약을 마신 저녁, 남자의 이웃 친척들에게 실려 병원에 가서야 그들 모두는 ‘돈으로 사 온 여자’의 첫 아이가 유산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했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공화국 시절에는 삶이 여의치 않았고 C국에서는 삼시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때가 왔지만 늘 죽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죽음을 요청한 동주는 정작 제껴버려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생명을 잃게 되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다시 마을로 돌아가 하루하루 연명하던 중 기적처럼 엄마의 소식을 접할 수 없었더라면 동주는 더이상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지막 목숨을 건 탈출은 성공했고 악몽 같은 첫 ‘가정’은 그렇게 그녀와 스쳐지나갔다.

동주는 이런 얘기를 민나에게 해주지 않았다. 민나는 그 ‘가정’과는 상관없는 아이였고 거기까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머리를 말리고 스킨을 바르고 침대에 올라가기 바쁘게 민나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이제는 한 품에 안지도 못하겠고 다리 한쪽을 들어 옮기기도 무거웠다.

“그럼 나, 아줌마랑 가보면 안 될까? 맛있는 게 많다잖아. 그냥 한번은 가보고 싶단 말이야.”

동주는 민나의 등짝을 찰싹 가볍게 후려쳤다.

“맛있는 것이 뭔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집에서 해 먹으면 되지.”

 

밤중, 동주는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화뜰 잠을 깼다. 아츠러운 소리는 동주네 아파트단지를 끼고 한바퀴 정도 돌다가 점차 멀어졌다. 베란다와 안방 그리고 주방 쪽 창문으로도 내다보았지만 소방차인지 구급차인지 알 수 없었고 다만 동주네 아파트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동주는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을 한컵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컵 손잡이를 잡은 손바닥이 눅적지근한 땀으로 미끌거렸고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었지만 잠이 금방 들지 않았다.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만난 엄마의 작은 셋집, 그 안에서 느껴지던 엄마의 포근한 내음과 작은 네모 밥상과 2인용 소파와 삐걱거리는 나무침대 같은 것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채팅방이라는 정보망을 통해 엄마와 연락이 닿은 건 확률이 낮은 행운이었지만 그동안 엄마가 열심히 수소문한 노력도 있었다. 동주는 그곳에서 꿈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공화국 탈출 직후 엄마는 다른 브로커의 손에 넘겨졌고 그나마 상대하기 쉬운 마을에 갔는데 엄마의 나이를 보고 머뭇거리던 이들에게 차라리 취직을 하게 해달라고, 월급으로 몸값을 지불하겠다고 호소한 것이 먹힌 것이었다. 엄마가 취직한 첫 식당은 공화국과 가까운 작은 변방도시에 있었고 밤이면 홀에서 의자를 가지런히 붙여 침대 삼아 자면서 일년 동안 그들이 원하는 금액을 맞춰주었다.

엄마는 새 요리도 여러가지 배웠다. 날마다 퇴근할 때면 장에 들러 동주가 먹어보지 못한 색다른 음식 재료를 한두가지씩 사 들고 왔다. 휴일이면 근처 시장에 나가 국수 한그릇씩 사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엄마가 사귄 고향이모들과 버스를 타고 공원이나 백화점에 놀러가기도 했다. 차차 몸을 회복하고 말도 많이 익히면 어디든 취직자리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소망. 그러다가 오빠와도 소식이 닿을 수 있다면, 그렇게 셋이 함께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삶은 없을 것 같다고 그때의 동주는 기원했다.

 

동주는 이른 새벽에야 잠깐 잠이 들었다. 알람을 켜고 잔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오분 전 일곱시였다. 아침은 엊저녁 준비해놓은 재료로 아욱된장국에 ‘맘대로 김밥’으로 차렸다. 오이 당근을 채썰고 지단을 부치고 햄을 구워 가늘게 썰었다. 동주는 민나가 반듯이 자른 네모 김 위에 밥을 펴고 속재료를 넣어 야무지게 싸서 입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즘은 어때? 몸이 피곤하고 졸리고 그러지 않아? 이상한 꿈 같은 거 꾸니?”

민나는 입안 가득한 김밥을 오물오물 씹어 넘기며 물컵을 찾았다.

“글쎄, 졸리는 건 전에도 그랬으니까. 이상한 꿈……이라면 그날 본 게 꿈이었겠지?”

민나는 그날 자신이 전에 본 적 없는, 무슨 공장 찻간처럼 널찍한 주방을 보았다고 했다. 가지런히 썰린 야채들, 갖은 양념을 담은 수십개의 작은 종지들. 파랗게 활활 타오르는 가스불 위에 야채와 고기가 담긴 웍이 힘차게 흔들거리고 있었고 반대편 커다란 국가마에서는 보글보글 육수가 끓고 있더라고 했다.

민나는 김밥을 두개 더 싸서 먹고 물병을 찾아 가방에 넣고 운동화를 꺾어 신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하루만 더 학교에 가면 방학이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온 주차장에서 동주는 구내식당의 아줌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시금치가 있대, 괜찮겠어? 좀 멀긴 한데 아마 열흘 내 끝낼 거 같으니까 심심하믄 댕겨와.”

 

*

 

비닐장갑을 껴고 의자에 앉아 동주는 전날 오후 퇴근할 때 평상 아래에 밀어넣었던 빈 플라스틱 운반상자를 두 다리 사이로 반쯤 끌어냈다. 평상 위에는 할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캤을 겨울 시금치가 벌써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밭에서 작업하기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라 어쩔 수 없이 동네 아저씨의 손을 빌려 창고로 옮긴 것이었다. 다행히 창고 안에는 난로도 있었고 할머니가 가져다놓은 우유와 빵, 맥심커피도 있었다.

동주에게 책정된 일당은 좀 짠 편이였다.

“슬미엄마네처럼 수당으로 할겨? 아니지, 수당으로 할 거 같으믄 손이 여간 잽싸야 쓸턴디, 걍 일당으로 하셔. 잉? 일당? 그렇게 할겨?”

몸이 이태 전만 같았어도 혼자 다 해치웠을 물량이라고, 얼마 되지도 않는 수익금에서 알바비용을 떼고 나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는 정말 귀찮다고, 빨리 후다닥 끝내고 정형외과 선생님한테 가서 물리치료나 받아야 쓰겄다고 할머니가 여러번 푸념을 했다. 구내식당 아줌마의 여동생네 아이 이름이 슬미였다. 일손이 아쉬워 급히 부르긴 했지만 동주의 손을 보고 할머니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장작을 집어넣은 난로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창고 안이 금방 더워졌다. 난로 위에 올려놓은 물주전자에서 뜨거운 김이 쌕쌕 힘차게 뿜어나오고 있었다. 깨끗이 손질하긴 해야 하는데 잎을 많이 떼어내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보기에 좋은 상품’, 실제론 무게가 나가는 물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주문을 동주는 이제 거의 이해했다. 노란 잔가지와 검불은 전부 운반상자 안으로 뜯어내고 파란 잎사귀 언저리에 물든 노란 부분만 살짝 떼어내라는 소리였다. 오후 나절이면 이웃집 아줌마가 도와주러 온다고 해도 할머니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크게 힘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하루 종일 하고 나면 허리 다리가 시큰시큰 쑤셔났다. 그래도 민나가 집에 없는 며칠 동안 교외로 나와 숨을 돌릴 수 있는 이런 알바가 가끔 좋은 것 같다고 동주는 생각했다.

민나는 차양순의 차에 앉아서 경치 좋고 공기 좋다는 어느 시골마을의 수양원으로 떠났다. 미성년자는 회비를 받지 않는다는 말에 갈아입을 속옷과 여벌옷, 세면도구와 약간의 용돈만 챙겨주었다.

“우리 걱정 말고 너 알바나 잘 나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동주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는 차양순의 곁에서 민나는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약간 뻣뻣해 있었다.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동주는 그 자리에서 민나를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차양순은 차를 부드럽게 움직여 주차장 출구 쪽으로 운전해 갔다. 차단기까지 따라 나온 동주에게 그녀는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동주야, 이제 민나는 내 소관이다. 거기는 신호도 잘 안 터진다니, 행여나 팔아먹으면 어쩌나 불안해서 어쩔 거냐?”

그래서 동주는 그들이 떠난 삼십분 만에, 한시간 만에, 그리고 도착 예상시간에 맞춰 민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가고 있지? 피곤해? 배는 안 고파? ……언제 도착한다니? ……잠자리는 편해 보여? 민나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를 띠는 것을 보고 동주는 그제야 남은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저녁을 먹었다. 같이 갔더라면,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이 정말 동주와 같은 사람들이었는지, 아직 공화국 집회처에서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을지, 동주는 사실 그게 조금 궁금했다.

 

엄마는 아침밥을 짓기 전, 늘 혼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기분 좋은 날에는 자연스럽게 예배 곡조를 흥얼거렸다. 그날 오후 엄마는 그해 첫 장아찌를 담글 간장을 우리고 있었고 동주는 작은 식탁에 앉아 햇마늘 껍질을 벗기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동주는 공화국 수색대가 C국 경찰들에게 협조를 구할 수 있고 그즈음에는 경계가 유난히 삼엄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파트단지로 들어온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급하고 짧았다. 엄마는 항상 이날을 준비하고 살았던 사람처럼 어디선가에서 작은 꾸러미를―그 안에는 비상연락처와 현금, 옷가지들이 있었다―꺼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주에게 쥐여주었다.

“내가 문을 열면, 넌 베란다에서 뛰어내려라. 1층 할아버지가 쌓아둔 물건들 있잖니, 그 안으로 들어가거라.”

곧 난잡한 발걸음들이 계단으로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는 있는 힘껏 현관문을 잡고 동주에게 급히 손을 내저었다. 문짝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쾅쾅쾅 문이 두들겨졌고 문을 열라는 사내들의 협박소리가 방 안까지 메아리쳐왔다. 엄마는 동주가 후들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난 어떻게든 다시 나올 수 있으니 넌 가야 한다고 안심시키는 말을 듣는 모습을, 그리고 베란다 창문을 서툴게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 동주는 오른발 거골이 골절되고 인대가 파열되었다. 아파트 마당 쓰레기통 뒤에 숨어 떨면서 성난 이리떼 같은 한무리의 남자들이 이미 헝클어진 머리를 한 작은 체구의 여자의 뒷덜미를 가로채 경찰차 뒷자리에 구겨넣는 장면을 보았다. 경찰차는 먼지를 흩날리며 의기양양 떠나갔고 동주는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엄마가 알고 지내던 고향이모의 셋집을 찾아갔다.

그녀는 동주를 거두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발이 나을 동안 구석진 방에서 꼼짝 않고 있을 수 있게 허락했다. 그녀는 동주에게 식당 서빙 자리를 알선해주었고 그로부터 동주는 다른 종업원들처럼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매일 밤 동주는 2층 침대 위에서 이불을 덮고 울었다. 동주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망을 통해서도 엄마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식당 식구들은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일만 끝나면 외롭게 혼자 숙소로 돌아가는 동주를 안쓰러워했다. 그들은 사장님 눈치를 보며 번갈아 반찬을 덜어 숙소로 가져왔고 때로 동주가 좋아하는 국수를 일부러 끓여주기도 했다. 그나마 살아 버틸 만한 온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인연이 그 시절에 숙소 안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남자는 주방장의 젊은 수제자였고 웍 흔들기와 칼질이 예술이었으며 동주에게 늘 친절히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아그들은 다 컸는갑제?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할머니는 벌써 40킬로그램 정도를 거뜬히 마치고 일어섰다. 10킬로그램씩 자루에 나눠 담고 남은 약간의 시금치를 할머니는 동주의 것과 함께 저울에 올렸다. 동주가 손질한 시금치는 30킬로그램이 겨우 되는 듯했다. 점심 요기로 빵이라도 먹고 하자고 할머니가 불렀다.

“나 혼자 하므는 점심도 안 먹지마는 새댁은 한창때니까 안 먹으믄 배가 고플 거 아녀. 이리 와 잠깐 먹고 혀.”

동주는 할머니에게 우유 한잔을 따랐고 자기가 마실 것으로는 맥심커피를 탔다. 난로 위에 올려둔 주전자에서 종일 물이 설설 끓고 있었다. 내일은 차라리 컵라면을 가져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장갑을 장시간 꼈던 탓에 쪼글해진 손은 물티슈로 꼼꼼히 닦았다. 커피를 들고 할머니 곁에 앉아 동주는 옥수수식빵을 한덩어리 뜯어 입에 넣었다. 순간 잊고 있었던 허기감이 공화국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강하게 올라왔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고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에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찼다.

동주의 나이를 보아해선 아까운 나이였겠다고 할머니는 추측했다. 아흔 고개를 눈앞에 뒀다는 그는 우유를 호르륵호르륵 마시며 심심풀이 삼아 자신이 봐온 여러 죽음들을 이야기했다. 폐병으로 일찍 돌아간 남편, 갑상선암으로 생을 마친 동서, 알코올중독자였던 시아버지와 몇해 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네 청년.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겉다지만, 꼭 그라지도 않응께. 나만 혀도 죽을 고비를 워디 한두번 넘겼당가.”

인생이 그렇다고, 누구든 한번 죽기 마련이지만 어찌 보면 사람마다 ‘죽을 수 있는 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그는 말했다. 부모님과 남편과 형제들, 그리고 자식 중 둘을 앞세웠다는 할머니는 자신은 지금 ‘죽어도 되는 때’ ‘죽어야만 하는 때’ ‘삶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때’까지 살아가고 있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창고 전면의 투명한 비닐벽 바깥으로 해마다 할머니가 알뜰히 농사지었을 넓은 시금치밭이 보였다. 쌀쌀한 겨울추위와 거센 해풍을 피해 시금치는 골을 따라 줄을 지어 최대한 땅에 달라붙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이 키운 시금치가 마을에서 항상 최상급이었다고 자랑했다.

오후에는 옆집 아줌마가 일손을 도왔고 하루 작업이 거의 끝날 즈음 도매상 젊은 남자가 시금치를 저울에 떠주었다. 아직도 며칠은 더 해야 끝날 양이었다. 아줌마와 할머니는 머릿수건을 벗으며 샤워하러 집으로 돌아갔고 동주는 창고 앞에 세워둔 너구리에 올라탔다. 한시간 넘게 운전하는 귀갓길이라 가면서 먹으라고 할머니가 챙겨준 귤 냄새가 차 안에 은은히 퍼졌다.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민나가 말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다른 숙소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말도 못 걸어봤어. 다들 친절하긴 하네.”

식단은 기대한 것만큼 훌륭하지는 않았다고, 그래도 아이들 입맛을 배려해 끼니마다 돈가스나 치킨볼, 불고기, 떡볶이 같은 메뉴를 챙겨 넣은 점은 흡족했다고 인정했다.

검푸른 하늘 아래 고속도로 길가 줄줄이 늘어선 가로등들이 약속이나 한 듯 반짝반짝 켜졌다. 동주는 민나의 전화 속에서 울려오는 익숙한 노래의 곡조를 듣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죽지 않으려고 그 노래를 여러번 불렀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쓰레기 같은 죽음은 죽게 내버려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산을 뚫어 만든 긴 터널 속으로 너구리가 동주를 업고 달려 들어갔다. 터널 안에서는 지지직 신호가 끊겨서 민나의 목소리도 그곳의 노랫소리도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1. 사람들은 ‘죽음의 잠’을 겪는 것으로 신에게 가려는 무리를 AZ교도 중 ‘토포파’라고 불렀고, 반면 토포파는 자신들이 AZ교도와 구별됨을 주장했다. 토포파란 벌새의 휴면·토퍼(torpor) 상태와 흡사한 ‘잠’에 빠지는 이들을 빗대어 붙여진 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