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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 소 라
1982년 강원 강릉 출생. 2025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bewitchsol@naver.com
우리의 퇴근길
우리는 한참 동안 오빠의 인력거 계획에 대해 들어야 했다. 오빠는 딱히 열띤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농담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내 입을 딱 벌리고 오빠와 내 얼굴을 번갈아 봤다. 엄마가 무슨 말을 참고 있는지 보였다. 지금 네 오빠가 뭐라는 거니. 나는 난들 알겠냐는 뜻으로 입술 중앙을 힘주어 밀어올렸다. 그러고는 팥빙수 한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지독하게 달았다.
엄마가 기막혀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력거를 몰겠다는 오빠의 선언 어디에서도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오빠는 그저 자전거에 수레를 단 인력거로 퇴근하는 사람들을 태우겠다고 했다.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집까지 달리겠다고. 매일같이 굳은 얼굴로 지하철역을 향해 몰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문득 그들 중 한 사람쯤은 천천히 집에 데려다주고 싶어졌다고 했다. 눈치 없는 오빠는 느리고도 꿋꿋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맨해튼에도 관광용 인력거가 있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순간 엄마가 말을 가로막았다. 퇴근시간 말고 다른 시간엔 뭘 할 건데, 그럼. 오빠는 뭐 그런 질문이 있냐는 듯 답했다. 그냥 사는 거지. 엄마는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짚었다.
오빠는 쓸모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고 싶어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속으로 그런 이유라면 아주 적절한 일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물론 동조를 구하는 엄마의 집요한 시선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보다 팥빙수를 허겁지겁 퍼먹으며 엄마를 외면했다.
폭염에 지쳐 달달하고 시원한 게 당긴다는 엄마의 말에 오빠는 야근 후 팥빙수를 포장해 왔다. 정작 오빠는 팥을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팥빙수라면 환장을 하면서도 오빠의 얘기에 한숨을 쉬느라 제대로 먹지 않았다. 얼른 먹어, 이거 다 녹잖아. 내가 재촉해도 두 사람에게는 허물어지는 팥빙수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완전히 녹기 전에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리는 건 나뿐이었다. 들뜬 잇몸에 찬 게 닿을 때마다 진저리가 났다.
앞으로 어떡하냐, 우리. 엄마가 팥빙수를 내 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그 단호한 앞날 걱정 앞에서 오빠는 여러 표정이 뒤섞인 채 힘없이 웃었다.
설명을 야무지게 못하는 건 타고난 기질인 건가. 오빠는 어릴 때도 그랬다. 성인용 자전거를 거뜬히 타면서도 자전거 타는 법을 이해시키는 요령은 없었다. 자꾸만 기우뚱 쓰러지는 나를 답답해하며 시범만 보였다. 아,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 이렇게. 매끄럽게 8자를 그리는 오빠를 보며 나는 자전거를 내팽개쳤다. 아, 이렇게가 어떻겐데. 알려달라고! 오빠는 그때도 복잡한 얼굴로 내 앞을 빙글빙글 돌기만 했었지.
쉬지 않고 팥빙수를 삼킨 탓에 오한이 났다. 시린 잇몸에 혀를 문질렀다. 당장에라도 숟가락을 내던지고 영운에게 달려가 입안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부드러운 검지를 입속에 넣어 들뜬 잇몸을 눌러줄지도 몰랐다. 그런 상상을 하자 짭짤한 맛이 혀끝에 감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다시 영운을 부르기엔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볼을 부풀리고 입안에 따뜻한 숨을 채우며, 오늘처럼 제각기 다른 방향만 보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녹아내리는 것을 떠안는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작업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네군데였다. 대학생들이 패션과 메이크업 정보를 나누는 곳, ‘블라인드’ 등장 이후 회원 수가 크게 줄어든 직장인 커뮤니티, 투입된 지 가장 오래된 육아 커뮤니티, 그리고 회원 수 65만명에 달하는 ‘자취생활도감’이었다. 자취생활도감은 가입자의 연령대가 다양하고, 중고거래를 하기에 웬만한 앱보다 안전하다는 소문이 돌아 몸집이 엄청나게 불어난 곳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커뮤니티를 순회하며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키워드를 사용해 의도된 방향으로 여론을 몰았다. 특정 브랜드를 띄우거나 어떤 정책이나 인물을 욕하게 만들어 결국 계획된 물결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소규모 커뮤니티를 공략했다. 오픈채팅방에서 다른 작업자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글의 업로드 타이밍을 조절했다. 비슷한 뉘앙스의 글이 연달아 올라오면 의심을 사기 쉬웠다. 저녁에는 자취생활도감에만 몰두했다. 정치나 사회 이슈가 주된 작업이라 팀장의 지령에 맞춰 더 신중히 키워드를 심어야 했다. 나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튜브에서 열두시간 동안 반복 재생되는 젠 음악을 찾아 틀어두곤 했다.
내 닉네임은 ‘이바닥고인물’. 커뮤니티 속 나는 서대문역 근처에서 자취하며 외국계 은행에 다니는 스물아홉살 여자였다. 정치적으로는 진보 성향이었고 청년주거 문제와 동물학대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의 나와 겹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누구의 행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만큼 정치에 마음을 써본 적도 없었고, 관심있는 거라고는 하루 동안의 작업으로 얼마를 버느냐가 전부였다. 받는 돈은 오천원에서 만원대 초반까지 들쑥날쑥했다. 그래도 날마다 촘촘히 찍히는 입금 내역을 보면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나는 돈 쓸 데가 별로 없었으니까.
―19:47에 올라온 글 보이시죠? ‘저희 동네에도 전세사기 터졌네요’. 이거 메인으로 갑니다. 두문장 이상 달아주세요. 캡처 잊지 마시고요.
팀장이 채팅방에 지령을 올렸다. 나는 곧장 해당 글을 클릭했다. 2천억원대 규모의 전세사기 기사를 퍼온 글이었다. 우리는 순서를 정해 댓글을 달았다.
―규모가 더 커졌네요. 무서울 지경. 이 나라는 국민 지켜줄 생각이 없나봐요.
―전세제도를 유지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없어진 제도라던데.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팀장이 알려주는 전문적 단어를 끼워넣어 정부의 허술함을 물고 늘어지는 역할이었다.
―보증보험은 미봉책이죠. 리스크 관리를 개인에게 전가하는 구조적 결함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이런 허술한 설계는 사실상 정부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고 봐요.
초반에 우리가 작업한 댓글들이 달리자 그뒤로는 비슷한 반응들이 밀려들었고, 곧 모두가 입을 모아 현 정부를 욕했다. 이 일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제도의 문제인지 정부가 무능한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실체 없는 의뢰인들이 설계한 회로 속에서 그 흐름대로 대화판을 키우면 그만이었다. 보람은 없을지언정 자괴감이 드는 것도 아닌, 내게는 엄연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처럼 몸을 쓰며 사람과 부대끼는 일은 딱 질색이었다. 오빠처럼 사년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니 어디서 들어봄직한 회사에 가는 것도 애초에 틀려먹었다. 한달을 채운 직장이 없어 온전한 월급조차 받아본 적 없었다. 단지 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배운 방식대로 누군가를 대하는 일이 내겐 어려웠다. 생면부지의 타인을 어서 오라며 반긴다거나,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규칙들. 사람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서서히 물러서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엄마가 이런 나를 내버려두는 이유는 오빠가 따박따박 가져오는 월급 덕분이었다. 그러니 오빠의 퇴사는 단순히 생활비가 줄어드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엔 분명 내 한심함이 도마 위에 오를 터였다. 그 생각만 하면 하루치 정산금액을 보며 느끼던 기쁨도 금세 증발해버렸다.
때때로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내가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사회나 경제, 정치 같은 건 차치하더라도 오빠의 월급에 기대어 알바로 근근이 버티는 우리 가족의 모양새가 과연 평범한 범주에 속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오빠는 그 의구심을 가려주는 사람이었다. 가족 중에 번듯한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지만 오빠가 음악을 틀고 인력거를 모는 순간 그 얇은 가림막은 부서질 것이다.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탓인가. 우리는 남들 안 가는 길로만 미끄러지는 법을 타고난 것 같았다.
영운은 내 허벅지를 베고 누운 채 오빠의 인력거 이야기를 제법 진지하게 들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의 일을 쉼 없이 쏟아냈다. 숨이 차다 싶을 때쯤 영운이 물었다.
“그럼 태울 수 있는 손님은 많아봤자 하루에 두 팀 정도겠네?”
“그렇겠지. 돈은 안 된단 소리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운이 무언가 떠오른 듯 검지손가락을 허공에 흔들었다.
“나 유튜브에서 그런 거 본 적 있어. 미래에는 지금 같은 노동이 멸종한다고 그랬던 거 같아. 아닌가, 종말이랬나? 아무튼 형님은 좋은 대학 나오고 똑똑하니까 앞서 나가신 거 아닐까?”
옆으로 누워 있던 영운이 얼굴을 돌려 내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사람 눈이 이렇게 쓸데없이 크고 맑지. 영운은 유튜브 썸네일들을 훑으며 주운 파편 같은 지식들을 종종 뜻 모를 소리처럼 내뱉곤 했다. 가느다란 앞머리가 뒤로 넘어가며 매끈한 이마가 드러났다. 나는 손가락으로 영운의 이마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형님이래. 우리 오빠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내 용돈이 끊긴다는 얘기야. 너 못 만난다고.”
“왜 못 만나. 내가 너한테 가면 되지.”
영운은 태연하게 무슨 걱정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디로 오겠다는 거야. 관계의 모양을 따지고 있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하긴 아쉬운 건 내 쪽이었다. 영운은 이런 말을 가볍게 던져두고 다른 손님을 받으러 가면 그만일 테니까. 도우미를 찾는 손님들은 넘쳐나니까.
“너 그러고 보니까 왜 노래 안 하냐? 돈 받았으면 일을 해야 할 거 아냐.”
지레 서운해져 매정한 척 말하자 영운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내 배에 얼굴을 파묻으며 앙탈을 부렸다. 몸에 번지는 영운의 따뜻한 입김에 나도 모르게 배에 힘을 주었다. 잠시 후 영운은 벌떡 일어나 리모컨을 집어들고 익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얄궂은 전주가 흐르며 화면에 제목이 떴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두 손으로 공손히 마이크를 쥔 영운은 화면이 아니라 나를 보며 기교 없이 담담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더없이 부드러워서 나는 마치 좋아하는 가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빠가 준 용돈과 내 벌이의 대부분은 영운을 만나는 데 쓰였다. 그마저도 60퍼센트는 노래방 사장이 떼어가니 온전히 영운을 위해 쓴 돈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나 말고도 영운에게 기꺼이 돈을 쓰는 여자들은 줄을 섰을 테지만 질투를 느끼기에는 내가 가진 돈이 너무 적었다. 영운을 부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한달에 두세번이었다.
언젠가 영운이 이 일을 택한 이유를 말해준 적이 있었다. 먼저 사연을 털어놓은 건 아니었다. 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나처럼 한발짝씩 뒷걸음질을 쳐온 걸까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영운이 댄 이유는 조금 터무니없었다. 노래하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이야기 듣는 것을 모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가수가 되면 되잖아,라고 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건 당장 못하잖아요. 난 지금 즐거운 걸 하고 싶은 거야.”
그 말에 나는 영운과 내가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다른 여자들이 잘생긴 얼굴만 보고 기대하는 막연한 환상과는 달리, 정말로 우리 사이엔 맞닿은 지점이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의 입금 내역이 전부인 나처럼 영운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만을 일의 가치로 삼고 있었으니까. 미래의 비전이나 장기적 목표 따위는 접어둔 채.
영운은 나를 따라 노래방을 나섰다. 밖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방금까지 살이 맞닿아 있었는데도 돌연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처럼 어색했다. 그래서인지 좁고 탁했던 방보다 바깥 공기가 더 숨이 막혔다. 낮 동안의 열기가 식지 못한 채 밤공기 속에 끈적하게 고여 있었다.
집까지는 두 정거장 거리. 나는 뻣뻣하게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슬리퍼를 끄는 소리 위로 영운의 발소리가 포개졌다. 뒤에서 영운이 조금 전 불렀던 노래를 나지막이 흥얼거렸다.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몸을 섞고 떠들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어떤 말도 시작할 수 없었다. 그의 콧노래와 내 침묵이 우리 사이를 더 정확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어이 한마디도 없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땐 둘 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몇 층?”
영운이 빌라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3층. 301호.”
내 대답에 영운은 축축하고 말간 얼굴로 아이처럼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알겠어. 그럼 또 올게!”
영운의 노래가 밤공기 속으로 완전히 흩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한껏 달콤함에 잠겨 있던 시각, 오빠는 처음으로 인력거를 끌고 나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제작한 노란 지붕이 달린 인력거였다. 다니던 회사가 있는 시청역 부근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용기 내어 호객도 해봤지만, 오빠는 결국 빈 인력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느려터진 자전거 인력거로 퇴근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남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돌이켜보면 나는 이날을 오빠가 인력거 일을 시작한 날이 아니라, 영운이 처음 나를 집에 데려다준 날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기억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깨닫게 된 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원래 남의 일보다 내 안의 사소한 떨림이 먼저인 인간이었으니까.
영운은 말한 대로 종종 우리 집에 들렀다. 엄마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하는 동안 영운과 나는 집에 남겨진 어린애들처럼 덜 조심스럽고 더 흐트러진 채 시간을 보냈다. 영운은 뒤에서 비스듬히 팔을 괴고 누워 내가 모니터 속 가짜 세계를 헤집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 한번은 물었다.
“그런 거 쓸 때 무슨 생각 해?”
나는 참나, 하며 웃었다.
“생각은 무슨. 그냥 쓰는 거지.”
영운은 내 대답에 오, 하고 가볍게 감탄했다. 나는 괜히 우쭐해져 실존하는 사람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섞여드는 건 AI나 매크로를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복잡한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오, 뭔가 전문적인데?”
사실 아무 생각이 없진 않았다. 자취생활도감이 서서히 달궈지는 것을 살피던 차였다. 한때는 현 정부에 대한 지지가 우세한 분위기였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투입된 작업이 정교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우리 팀 작업물의 논조에 동조하는 평범한 유저들이 늘어났다. 그럴수록 나는 커뮤니티 폐쇄라는 최종 목표 달성과 그뒤에 따라올 목돈을 떠올렸다.
영운은 노래방에 출근하기 전까지 내 뒤에 누워 베짱이처럼 노래 연습을 했다. 내가 틀어둔 젠 음악 위로 영운의 노랫소리가 제멋대로 섞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운은 매번 목을 가다듬고 정성스럽게 한곡을 다 부르고는 어때? 하고 내 반응을 물었다.
나는 영운에게 그렇게 심심하면 커뮤니티에 가입해 내 글에 댓글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영운은 선뜻 자취생활도감에 가입해 ‘잔나비호소인’이라는 닉네임을 설정했다. 내 글 아래에 ‘222222’ 같은 성의 없는 댓글을 끼적이고는 금세 다른 글에 눈을 돌렸다. 이후로 영운은 내가 일에 몰두하는 동안 내 직장이나 다를 바 없는 공간에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댓글놀이를 즐겼다. 누군가의 밑도 끝도 없는 고민에 위로를 건네거나 점심 메뉴를 추천하며 낄낄대는 식이었다. 짜증이 치밀다가도 재밌어하는 영운의 얼굴을 보면 또 무슨 상관인가 싶어졌다.
우리는 틈틈이 인터넷에 떠도는 밸런스게임을 하기도 했다. 영운은 세상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질문을 던지고 내가 곤혹스러워하는 걸 즐겼다. 욕쟁이와 겁쟁이 중 하나와 사귀어야 한다면 누가 나은지, 나 빼고 다 천재인 회사와 나 말고 다 바보인 회사 중 어디가 나은지 같은 시시한 질문들이었다. 가까스로 둘 중 하나를 고르면 영운은 그 이유를 늘 캐물었다. 정작 자기가 뭘 고를 건지는 말해준 적이 없었다.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혼자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마치 나를 통해 뭔가를 익히는 사람 같았다. 이건 게임에 불과했지만 나도 몰랐던 내 가치관들이 그렇게 하나둘씩 끌려나왔다. 어느새 영운의 방식으로 나도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이따금 어이가 없었다.
나는 매일 버는 돈의 일부를 꼬박꼬박 영운에게 입금했다. 영운이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정산이었다. 노래방에서 지불하던 액수와는 차이가 컸지만 매번 관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내 작업물 아래에 장난처럼 댓글을 달거나 내가 차려준 밥을 나누어 먹는 일상들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으니까. 영운은 딱히 모자라다고도, 줄 필요 없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느슨한 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력거 일을 시작한 지 사개월 만에 오빠가 죽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손님을 기다리던 중 불법 유턴을 하던 대형 SUV에 치였다. 잇몸이 아릴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차를 몬 사람은 파주 끝자락에 사는 칠십대 노인이었다. 사위가 타던 낡은 차를 넘겨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보험사가 보내준 영상은 오래된 무성영화처럼 보였다. 정적 속에서 오빠는 어느 순간 화면 밖으로 와락 밀려나 사라졌다.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로 우그러진 노란 지붕의 인력거만 화면에 나뒹굴었다. 날개가 구겨진 노란 나비 같았다.
그 짧은 영상을 엄마 몰래 얼마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프레임 단위로 멈춰가며 봤다. 검은 차의 앞부분이 모든 것을 박살내는 순간을 수십번, 수백번씩 반복해서.
오빠는 자전거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깐 몸을 뒤로 돌려 손님 좌석에 매달린 스피커를 만지작거리고는 이내 휴대폰의 밝은 액정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화면을 위아래로 훑는 손가락을 보며 나는 오빠가 음악을 고르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다만 무슨 노래였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평소 오빠는 출퇴근길에 이어폰조차 끼지 않던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오빠의 휴대폰에 남아 있던 플레이리스트를 내 휴대폰으로 옮겨 사고 영상을 보는 내내 틀어두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부서지는 순간에도 화면 밖으로 노랫소리가 쏟아져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흐르는 노래들은 장르도 발매 시기도 제각각이라 취향이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발라드의 애절한 후렴이, 때로는 신나는 힙합 리듬이 사고의 굉음을 대신했다.
오빠가 틀어두려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는 상상에 의존해야 했지만, 사고 소식을 전하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엄마의 숨소리는 애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복구되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어억, 어어억 울부짖으며 토해내던 거친 숨. 하필 그때 나는 영운과 뒹굴던 중이었다. 무언가 잘못된 건 확실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감이 오지 않아 화가 났다. 드라마에서처럼 ‘단아, 우리 겸이가, 겸이가……’ 같은 대사 한줄만 있었어도 나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 없는 숨소리만 이어진 탓에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알몸으로 아주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에게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군만두나 떡갈비 판촉 날인 듯했다. 하늘색 수면바지 위에 롱패딩만 걸친 채 뛰어온 나와, 식용유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엄마. 우리가 병원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뻔한 장면 같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그뒤로는 눈물이 잦아들었다. 엄마는 오빠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우리 앞날을 걱정했지만, 나는 그제야 엄마와 내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행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우리 둘의 꼴을 자각하자 별안간 앞이 캄캄해졌다.
엄마는 꾸준히 나가던 대형마트 알바를 그만두었다. 평생 일을 멈춰본 적 없는 엄마가 방 안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풍경은 낯설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정직원이 된 적은 없었지만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트의 판촉 알바를 가장 오래 했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전단을 나눠주거나 아파트에 붙이는 일도 했다. 선거철엔 유세차량 옆에서 기운차게 율동을 했다. 한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달라는, 그런 노랫말에 맞춰 팔을 크게 휘두르고 집에 돌아와 어깨에 빈틈없이 파스를 붙였다. 파스 붙이기는 늘 내 몫이었다. 일한 뒤엔 어딘가 아파야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엄마는 에구구 소리를 내면서도 슬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을 멈춘 엄마는 이상했다. 다 잃은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빠는 보험회사에 다녔으면서도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오빠가 들어둔 상해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1억원, 가해자가 든 자동차보험에서는 89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인력거를 몬 마지막 넉달이 무직으로 처리된 탓에 가해자 측의 배상금에서 상실수익액이 낮게 책정된 것이었다. 오빠가 남긴 돈은 그렇게 2억을 채 넘기지 못했다. 어울리지 않게 방에 누워 천장만 노려보던 엄마는 배상금이 확정된 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로소 진짜 할 일을 떠올린 사람처럼 의욕적이었다.
7미터 길이의 현수막 천을 잘라 온 엄마는 현관 앞 복도에 그것을 펼쳐두고 빨간 페인트로 글씨를 썼다. ‘페달은 멈췄어도 집으로 향하던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여백을 야무지게 계산하지 못해 뒤로 갈수록 글씨가 점점 쪼그라들었다. 현수막과 확성기를 챙겨 찾아간 곳은 가해자의 자동차보험 업체이자 동시에 오빠가 다녔던 보험회사 앞이었다. 엄마는 빌딩 모퉁이 가로수에 현수막을 걸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알바 일로 다져진 목소리가 카랑카랑 날카로웠다. 내 자식의 땀방울이 거짓이란 말이냐! 길 위의 사개월은 가짜가 아니다!
시위 첫날, 나는 앰프를 옮기는 걸 도와주러 엄마를 따라 나섰다. 엄마의 구호는 기업 저격이라기엔 모호하고 유가족의 한풀이라기엔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내 귀엔 그저 소음처럼 들렸다. 물론 엄마가 왜 이리로 향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무직이라는 이유로 배상금이 깎여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가해 차량의 운전자가 가진 것 하나 없는 노인이라, 자신의 미래를 엿본 듯한 불안이 섞여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 빈약한 이유를 엄마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시위의 쓸모를 따져 묻는 대신 입을 다물고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기로 했다.
엄마는 확성기에 대고 목청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다가, 정말로 목청이 터질 지경이 되면 준비한 음악을 틀었다. 유세 알바 때 줄기차게 율동을 연습했던 노래였다. 엄마가 절도 있게 팔을 휘두르면 지나가던 직장인들이 걸음을 늦췄다. 간혹 훌쩍이며 코를 훔칠 때엔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곤욕스러웠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나는 엄마에게 이 일을 도와줄 수 없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엄마. 이 회사 대표 외국인이고 한국에 살지도 않아. 대체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엄마는 입술을 움찔하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멀쩡히 일한 사람을 두고 죽고 나니까 무직이래.”
그러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날의 노동을 마친 개운한 얼굴이었다.
엄마가 평일 오전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건실한 직장인처럼 일인시위를 이어가는 모습이 내게도 자극이 되었던 걸까. 나는 밥을 먹는 짧은 시간을 빼고는 댓글 다는 일에 매달렸고 글도 훨씬 자주 올렸다. 분란을 유도하는 글과 가벼운 유머 글을 교묘하게 번갈아가며 투척하자, 일반회원들조차 우리와 같은 목소리를 내며 싸움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물길이 제대로 잡혔다는 신호였다.
이쯤에서 우리가 달아야 할 댓글은 정해져 있었다. 한쪽은 갈라치기라며 불편함을 드러내고, 다른 쪽은 정치도 생활의 일부라며 맞받아쳐야 했다. 양쪽 역할을 모두 우리가 나눠 맡아 불씨를 당기면 댓글창은 금방 갈라졌다. 관건은 이 다툼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빈번하게 만들어내느냐였다.
오빠의 죽음 이후 나는 커뮤니티 폐쇄라는 목표에 더 간절해졌다. 아무리 계산해도 하루치 정산액만으로는 엄마와 내 앞날을 책임질 수 없었다. 돈이 더 필요했다. 잔잔한 젠 음악 대신 오빠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작업했다. 무질서하게 흐르는 노래들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매순간 일깨웠다.
해가 바뀌도록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나의 시간은 가족을 잃은 사람의 시간과는 어딘가 비껴나 있었다. 울음이 나지도 않았다. 엄마와 오빠는 늘 밖에서 일하다 늦게 돌아왔으므로, 항상 집에 있는 나로선 달라진 게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애틋한 남매 사이는 아니었지만 오빠의 부재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다만 하루에 적어도 두번, 그러니까 엄마가 시위를 하러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만큼은 오빠의 죽음을 떠올렸다. 또 간혹 엄마가 실수로 밥그릇을 세개 꺼내는 모습을 볼 때에도 오빠가 영영 사라졌음을 깨닫곤 했다.
며칠째 폭설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앰프를 끌고 집을 나섰다. 이불 속에서 닫히는 현관 문소리를 듣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팀장의 공지였다.
―자취생활도감 게시판 관리자 계정 확보 완료. 총력을 다해주세요.
마침내 관리자가 자신의 계정을 팔아넘긴 모양이었다. 이제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팀장은 관리자의 얼굴로 개입해 커뮤니티를 폐쇄 분위기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곧 전체 운영자와도 물밑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혹은 사소한 빌미들을 모아 대량의 법적 신고를 넣을 수도 있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정치라는 핑계로 평범한 사람들의 놀이터를 부수는 일. 그것으로 내게 떨어질 몫은 얼마나 될까. 나는 금세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표가 눈앞에 다가오니 의욕이 솟았다. 오전에 하던 자잘한 작업들은 제쳐두고 자취생활도감에만 집중했다. 분란을 일으키기 위해 애먼 사람을 몰아가거나, 별 뜻 없는 문장 하나를 골라 시비를 거는 일이 점점 익숙해졌다. 손마디가 욱신거릴 만큼 키보드를 두드렸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가끔 영운이 사 오는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화면의 흰빛을 오래 노려보느라 눈이 충혈되고 따가웠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새벽 늦게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그 앞에 엎드려 잠들곤 했다.
낮과 밤이 마구 뒤엉킨 채 며칠을 보냈을까. 문득 집에서 들릴 리 없는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에 눈을 떴다. 몸에 깔려 있던 팔이 저려왔고, 왼쪽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어제저녁, 출근을 안 한다던 영운과 소주를 과하게 마신 것까지는 떠올랐다. 내가 조만간 들어올 목돈 얘기를 꺼내며 호기롭게 육회를 시켰고 영운은 소주까지 배달시키긴 아깝다며 직접 편의점에 다녀왔다. 그리고 유치하지만 진지한 밸런스게임을 했고……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이유 없이 답을 골랐다는 내 말을 믿지 않던 영운의 모습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방문 너머에서 엄마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낯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엄마와 영운이었다. 엄마는 양배추쌈을 입에 넣는 영운 앞에 반찬 그릇을 밀어주고 있었다. 혈당에 좋다며 잔뜩 삶아놓고 정작 엄마도 나도 손대지 않던 양배추였다. 엄마가 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야. 어디서 이렇게 이쁘장하니 아이돌 같은 애를 데려왔냐. 단이, 너 구르는 재주가 있다?”
영운은 아이돌, 하고 되뇌더니 쿡쿡거리며 웃었다. 꽤 즐거워 보였다. 나도 눈곱을 떼고 밥을 퍼 와 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영운 가까이에 놓인 계란말이며 제육볶음을 집어먹었다. 엄마는 내내 흐뭇한 얼굴로 영운이 볼 한가득 양배추쌈을 씹는 모습을 바라보다 돌연 고개를 홱 돌려 기침을 했다. 뭐라도 튀어나올 듯한 심한 기침이었다. 한참 쿨럭대다 물을 몇모금 삼키고는 푸념했다.
“이건 뭐, 몸이 골골대도 나가야 하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가는 거면서 무엇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나 대신 영운이 살갑게 말을 받아주었다.
“그 시위요? 오늘 한낮에도 영하 4도라던데 무리이지 않을까요?”
“아이고, 그렇다고 안 나갈 거였으면 벌써 몇번은 못 나갔게?”
엄마는 어떤 경지에 오른 장인처럼 대꾸했다. 그러고는 무용담을 펼치듯 시위의 고충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두겹의 장갑과 두겹의 양말, 그 사이에 핫팩을 끼워넣는 엄마만의 요령이라든가, 정말로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거운 음료를 주며 응원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영운은 반말 같기도 한 으응, 하는 소리를 되풀이하며 장단을 맞췄다.
“완전 전문가네. 그런 것도 다 노하우가 있구나.”
“그럼! 세상에 쉽게 되는 게 있는 줄 아니?”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엄마의 시위가 제법 그럴듯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엄마가 영운의 어깨를 장난스레 툭 치며 말했다.
“너 할 일 없으면 나 감기 나을 때까지 가서 시위 좀 해라.”
자식에게 심부름이라도 시키듯 태연했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보태지 않던 내가 퉁명스럽게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얘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거길 가서 시위를 해.”
엄마는 내가 엉뚱한 소리라도 한 것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럼 시위는 누가 하냐. 시위하는 사람 따로 있냐.”
대화가 자꾸 엇나갈 조짐을 보이자 영운이 남은 밥을 숟가락으로 싹싹 긁으며 말했다.
“제가 갈게요. 알바비 주시는 거죠?”
관리자 계정이 팀장의 손에 넘어가자 커뮤니티는 금세 제 기능을 잃었다. 우리는 더 빈번하게 언쟁을 일으켰고 상대편이 욕설을 쏟아낼 때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면 팀장은 관리자 권한으로 그 회원을 강퇴시켰다.
오래된 회원들이 눈치를 챈 건 당연했다. 다른 게시판과 달리 자유게시판만 유독 정치 문제로 시끄러웠으니까. 참다못한 누군가가 댓글 알바로 의심되는 닉네임들을 정리해 올렸다. 거기에는 이바닥고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우리가 새 글을 주르륵 올려 다른 논조의 글들은 곧장 아래로 밀어버린다는 것과 미묘하게 바뀐 관리자의 공지글 톤을 지적했다. 그러자 분명히 어떤 세력이 있는 것 같다는 댓글들이 잇달아 달렸다. 알아챈다 한들 팀장이 우리 쪽을 강퇴시킬 일은 없었다.
곧 찾아올 성과에 도취된 나는 더 과감해졌다.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말투만 봐도 모자란 티가 난다고, 방구석에서 음모론만 파다 인생 망하는 종특 같다고 쏘아붙였다. 님 같은 부류는 평생 그러다가 도태되는 게 맞고, 그게 오히려 사회에 덜 해로운 일이라고도 적었다. 쉴 틈 없이 그런 글을 적는 동안 몸은 고단했지만 정체 모를 활기가 넘쳤다. 글자 하나하나가 내 손끝에 올라타 생명을 얻는 것 같았다. 엄마가 파스를 붙이던 것처럼 나도 뻣뻣해진 손가락을 주무르며 제대로 뿌듯함을 느꼈다.
어김없이 게시판을 새로고침하자 내 닉네임이 박힌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바닥고인물님,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파르마콘’이라는 회원이 올린 글이었다. 곧장 제목을 눌렀다. 그동안 내가 쓴 게시글과 댓글들이 줄줄이 캡처돼 하나의 긴 이미지로 엮여 있었다. 스크롤이 끊임없이 내려갔다. 겨우 맨 끝에 다다르자 파르마콘이 적은 글이 보였다.
이바닥고인물님, 29살 외국계 은행원이라더니 연기력 지리시네요. 근데 왜 평일 낮 2시에도 글 올리고 새벽 4시에도 여기 상주할까? 너 같은 애들 특징이 뭐냐면 현실에서는 사람 눈도 못 마주치면서 여기선 꼭 무슨 여론 설계자라도 된 것처럼 군다는 거임. 시키는 대로 댓글이나 다는 주제에 자기가 판 짜는 전문가인 줄 알잖아. 커뮤니티 폐쇄시키면 얼마 받아요? 조만간 고소 들어갈 건데 그거 합의금으로 쓰면 딱이겠다. 일이랍시고 이런 짓 할 때는 이 정도 각오는 돼 있었겠죠?
심장이 순식간에 돌처럼 굳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금세 최악의 경우로 가득 찼다. 아마 내가 저격했던 회원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이런 걸로 고소까지 가능한 걸까. 욕설과 인신공격 정도로? 아니, 어쩌면 운영자에게 연락해 가입정보를 캐냈을 수도, 이미 내 이름과 주소까지 알아냈을 수도 있다. 그제야 나는 실재하는 세계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랴부랴 작업자 오픈채팅방에 내가 처한 상황을 쏟아냈다. 읽은 사람 숫자만 줄어들 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팀장이 짧게 답했다.
―개인적인 고소 건까지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파르마콘의 글이 올라오자 회원들의 댓글이 미친 듯이 이어졌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본때를 보여주자는 이들, 자기가 확보한 다른 캡처들도 PDF로 떠서 내놓겠다는 이들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더러운 댓글 알바들을 몰아내고 커뮤니티를 지키자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온몸이 심장처럼 쿵쿵 울렸다. 화력이 세진 글을 새로고침하며 빠른 속도로 새 댓글이 불어나는 것만 바라보았다. 다른 작업자들 모두 나를 대신해 댓글창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때 한 댓글에 시선이 멈췄다.
―아시잖아요. 쟤들 하루 몇백원에 목숨 거는 애들이에요. 멀쩡하게 직장 생활하고 돈 버는 사람들이 이런 짓 하겠어요?
그 말은 정확히 우리를 아니, 나를 겨누고 있었다. 누군가 내 등 뒤에서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뭐라도 써넣고 싶었지만 두 손은 굳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제야 게시글을 올린 사람의 몇마디가 자꾸만 걸렸다. 전문가라는 단어, 반말과 존댓말이 뒤섞인 말투. 누구라 해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왜 자꾸 영운이 떠오르는지 그건 나도 알 수 없었다. 영운은 지금 시위하러 가 있을 텐데.
닉네임을 눌러 파르마콘이 쓴 다른 글들을 보려 했지만 이 게시글이 전부였다. 나는 곧장 검색창에 영운의 닉네임을 적어 넣었다. 잔나비호소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글 아래에 성의 없는 대댓글을 달고, 남의 고민에 태평한 위로를 남기던 이름이었다. 검색 결과가 없다고 나왔다.
마음이 내려앉았다. 영운은 밸런스게임을 거듭하는 동안 내가 어떤 말에 겁먹고 어떤 말에 우쭐해지는지 알아버렸을지도 몰랐다. 나에겐 일이라 재미를 느낄 새도 없었던 커뮤니티 안에서 영운은 종종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어쩌면 이것도 영운에게는 새로운 놀이일 수 있었다. 나를 겁먹게 하고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지켜보는 장난. 내가 주는 돈이 적어서였을까. 아니면 영운을 돈으로 부르면서도 그 이상을 바라는 사람처럼 굴어서였을까. 지금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던 영운의 말이 맴돌았다. 그 말이 정말 여기까지 이어진 건지, 아니면 겁에 질린 내가 멋대로 이어붙이고 있는 건지 분간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영운이 누워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기대기 좋은 모양으로 구겨진 이불 덩어리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공기가 필요했다. 화면 속 소음을 벗어나 실제로 들이마실 수 있는 바깥 공기가. 나는 급히 다용도실 문을 열어젖혔다. 오랫동안 처박아둔 자전거가 있었다. 깊숙한 곳에 있던 자전거를 꺼내느라 물건들이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안방 문이 열리며 엄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터지는 기침을 누르느라 몸을 반쯤 구부린 채였다.
“뭐 하게? 어디 가게?”
심하게 갈라지는 목소리와 잔뜩 부어 푸석한 얼굴. 이번엔 정말 제대로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러게 대체 왜 시위를…… 나는 대답 대신 자전거를 꺼내며 시선을 피했다. 실은 어디로 갈지 나도 답할 수 없었다. 주머니에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엄마의 기침 소리가 완전히 가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못 들은 척은 할 수 있었다. 오래된 것치고 자전거는 말짱해 보였다. 인력거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오빠가 이것도 한번 손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자전거를 끌고 내려오느라 한참 씨름했지만 결국 거리로 나섰다. 오빠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했다. 무작위로 재생되는 노래들을 들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바퀴에 바람이 빠져 페달을 밟는 내내 무거웠다. 체인에서는 쇳소리가 났고 브레이크 레버도 뻑뻑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기름칠을 한 지 오래인 게 분명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달릴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곳곳에 눈이 남은 길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건 애초에 무모한 짓이었을까. 몇번이나 옆으로 미끄러지는 바람에 신발과 바지가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털어내도 얼룩은 그대로였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땐 왠지 무서워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양쪽에 난간이 있는데도 차도 쪽으로 넘어지거나 강에 빠질 것만 같았다. 다리 중반쯤에 이르러서는 발끝이 완전히 얼어붙어 감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강 너머를 향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정말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때 패딩 주머니 속에서 짧게 진동이 울렸다. 새로 뜬 팀장의 공지였다.
―이번주 내 자취생활도감 폐쇄 공지 예정입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업비 300만원은 폐쇄 완료 후 일괄 지급됩니다.
내 손에 쥐어질 300만원. 오빠의 목숨값인 배상금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지만, 내가 온종일 모니터 앞에서 타인을 몰아붙이며 벌어들인 돈 중에는 가장 거대한 액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채팅방에 서로를 격려하는 말이 쏟아져내렸다. 나는 그 안에서 혼자 뚝 떨어져나온 것 같았다. 꽃가루를 날리는 강아지 이모티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녹아내리던 팥빙수를 퍼먹던 날을 떠올렸다. 오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대신 열심히 혀를 굴려 시큰거리는 잇몸을 가라앉혔던 날. 눈치가 없는 건 오빠도 엄마도 아닌 나였을까. 그러고 보니 엄마가 지금 감기약을 먹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가진 돈으로 편의점에서 유자청 정도는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어폰에서 영운이 늘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매서운 강바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밤이 간 지가 언젠데. 나도 모르게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어두워진 강 너머의 불빛이 웅크린 노란 나비떼처럼 떨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면서도 끝내 제자리에서 흔들리기만 했다. 나는 그제야 자전거로 가야 할 곳이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운에게로 가야 했다. 한번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영운에게.
강 건너편에 닿자마자 다시 자전거에 올라 조심스레 페달을 밟았다. 질퍽한 땅에서 흙탕물이 튀어올랐다. 퇴근길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가는 내내 역방향으로 거슬러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뒤에 태우지 않았는데 자전거는 여전히 무겁게 굴러갔다. 얼어붙은 겨울바람이 입안으로 들이쳐 잇몸이 시큰했다. 어쩐지 미뤄둔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유를 정확히 댈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아 눈을 더 크게 떴다.
보험회사 건물 근처에 다다르자 어딘가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영운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반주도 없이 이어지는 담담한 목소리.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뒤섞였지만 그 목소리만은 또렷했다. 나는 기꺼이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다리에 힘이 실렸다. 숨을 고르며 페달을 밟았다.
모퉁이에 걸린 빨간 글씨의 현수막 앞에서 영운이 두 손을 모은 채 노래하는 모습이 보였다. 퇴근하는 사람들 중 멈춰 서서 영운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돌아갈 곳을 아는 사람들처럼 바쁘게 지나갔다.
영운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크게 흔들었다. 그 모습이 아이 같았다. 페달에서 발을 떼자 바퀴가 천천히 멈췄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만 지금은 이 추위 속에서 영운을 뒤에 태우고 함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