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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 기 태 金起台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있음.

somethingkim@gmail.com

 

 

 

퇴행

 

 

줄기세포 연골재생치료 비바플렉스! 비바플렉스는 무릎의 닳아버린 연골을 근본적으로 되살립니다. 손상된 연골 틈을 젤 형태의 특수성분이 꼼꼼히 채워 초자연골 재생을 촉진합니다. 단 1회 수술로도 탁월한 효과. 움직임의 자유를 되찾으세요!

 

2층 진료 대기실은 따뜻했다. 찬바람을 맞았던 몸이 녹자 그와 그녀의 걱정도 얼마간 누그러졌다. 햇빛이 드는 창은 없었지만 온화한 간접조명이 실내를 환히 밝혔다. 바닥에는 휴지 한조각 떨어져 있지 않았고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긴장을 내려놓으려 숨을 들이쉬다 숲에 가까운 상쾌함을 감각했다.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된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피아노 음악이 흘렀고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의 움직임은 그 멜로디에 맞춘 듯 차분했다. 환자를 호명하는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춤이나 연주를 요청하는 듯 부드러웠다.

대형 모니터에서 반복 중인 영상이 병원을 소개하고 건강정보를 전달했다. 의료진은 유명 의과대학 출신이자 여러 학회의 정회원이었다. 콜라겐, PRP, 프롤로테라피, 비바플렉스…… 줄기세포라는 단어는 과학적이고 미래적이었다. 두 사람은 언젠가 뉴스에서 스쳐간 자막이나 이미지를 떠올렸다. 소나 양, 어쩌면 사람을 복제할 수도 있는 시대였다. 무릎 연골을 재생시키는 정도는 일류 대학병원이나 비밀스러운 지하연구실이 아니라 버스로 세 정거장이면 닿는 척추관절병원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두 사람의 문제는 무릎이 아니라 허리였지만, 굽히고 펴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비슷할 거라고 그들은 기대했다.

두 사람이 바라는 최선의 진단은 단순한 염좌였다. 허리에 피로가 누적돼서 또는 ‘삐끗’해서 생기는 문제, 그들이 약국에서 소염진통제나 파스를 사서 또는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몇차례 해결했던 일 말이다. 이번에는 통증의 강도도 성질도 전과 달라 병원에 왔지만, 의사가 처방해주는 강한 약을 먹거나 조금 비싼 주사를 맞고 일주일 정도 조심하면 회복되리라 기대했다. 한편 그러한 기대와 모순되게도 그들은 작은 움직임마다 따르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집중하며 비관적인 경우를 타진하는 중이기도 했다. 사십대에 들어선 지도 일년 혹은 이년이 지났다. 스스로도 아직 낯설고 이제 세는 법도 헷갈리는 나이를 상기하며 전과 같을 수는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그랬으나 기분은 그렇지 않았다. 백세시대인데 사십대는, 적어도 사십대 초반은 젊지 않나. 그러한 발상은 아직 결정되지도 않은 진단에 앞서 성급한 억울함을 불러일으켰다.

질병에 대한 그들의 상상력은 제한적이었고 기껏 떠올린 최악의 경우는 ‘디스크’라고 불리는 무엇이었다. 얼굴을 본 지 오래된 친척, 잠깐 말을 섞어본 직장 동료, 또는 가수나 배우 아무개도 겪었다는 그것 말이다. 그이들은 괜찮아 보였다. 특히 몇몇 연예인은 어디가 아팠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운동도 여행도 즐기는 것 같았다. 디스크는 대장암이나 백혈병, 에이즈, 루게릭…… 그런 병은 아니었다. 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몸살처럼 흔히 앓고 지나가는 무엇, 비염이나 금속 알레르기처럼 꾸준히 성가시더라도 적당히 다스리거나 무시할 수 있는 무엇에 가깝게 느껴졌다. 어쨌든 세상에는 줄기세포가 있었다. 그런 잡담을 나누며 두 사람이 서로를 안심시키지는 않았다. 그와 그녀는 지난 생애 내내 서로를 전혀 모르는 타인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사년 전 겨울에도 같은 공간에 존재한 적이 있었다. 사거리의 버스정류장 뒤에 있는 김밥집으로, 흔한 프랜차이즈였지만 점주 부부의 손맛이 남달라 많은 인근 주민이 단골이었다. 그날 두 사람은 3미터쯤 떨어진 채 각자 통통한 김밥과 따끈한 국물을 먹고 떠났다. 말없이 드나드는 손님들 사이에서 서로를 특별히 인지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고소하고 간간한 김밥 맛만 남았다. 지금 진료 대기실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1.5미터 남짓이었다. 사십여년 만에 이룬 물리적 거리였지만 여전히 어깨나 팔꿈치를 톡톡 두들기기에는 멀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두번째 만났다기보다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그들이 병원에 온 건 서로가 아니라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간호사의 호명에 따라 한명씩 진료실에 들어섰다. 진료실에는 창문이 있었다. 한낮의 자연광이 금빛 휘장처럼 드리운 가운데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초진환자 접객에 나름의 원칙이 있는 그 의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 굽혀 인사한 뒤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입니다.”

무사(武士)를 연상케 하는 절도 있는 움직임과 어조, 얼룩 한점 주름 한줄 없이 하얀 가운, 깔끔히 빗어 넘긴 반백의 머리에 그와 그녀는 신뢰 이상의 호감을 느꼈다. 책상 위에 놓인 척추 모형을 보며 몇몇 전문용어가 섞인 설명을 들었다. 디스크란 질병의 이름이 아니라 척추에서 완충재 역할을 하는 부위의 이름임을 배웠다. 질병의 이름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디스크 뒤에 팽윤, 돌출, 파열 같은 단어들이 결합되어야 함을 이해하고, 자신은 운이 좋으리라 기대하면서 운이 나쁜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MRI 촬영을 하며 오래전 들어둔 실비보험의 보장 범위를 헤아렸다.

사진 속 증거는 뚜렷했다. 해부학 지식 없이도 비례와 형태의 위화감 때문에 어디가 찢어지고 터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장필혁은 디스크는 일종의 소모품이며, 나이가 들수록 푸석푸석해지면서 터지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선천적인 척추 간격과 내구성, 직업과 생활습관, 영양과 수면과 스트레스 등의 영향이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시간의 흐름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 즉, 퇴행성 질병이라는 설명이었다. 장필혁이 수술을 입에 올렸을 때 두 사람은 혼란스러웠다. 이렇다 할 수술을 받아본 적도 고려해본 적도 없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는 운 같은 단어를 설명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당황스러운 진단 앞에서 불운이라는 개념에 가장 먼저 의지했다.

그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각자의 불운을 곱씹었다. 불운을 순수한 무작위의 산물로 여기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의 몫을 찾아내는 게 성숙하고 현명한 태도 같았다. 왜 그런 자세로 살았을까. 왜 그런 음식을 먹었을까. 왜 그런 운동을 안 했을까 또는 왜 그런 운동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버스를 타고 계단을 올라 집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무 의식 없이 여전히 해내고 있는 그 일이 은연중에 그들을 방심케 했다. 불운은 수술보다 온건한 방법으로 다스려질 듯했다. 꾸준한 체조와 충분한 수면, 허리베개와 등받이쿠션, 필요하다면 새 의자나 책상. 저녁식사 후 처방받은 약을 먹자 통증이 다소 완화됐다. 어떤 물리치료사가 유튜브에 올려둔 스트레칭 영상을 몇번 따라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여러 ‘자연치료 후기’를 읽었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각종 영양제와 보호대와 안마기와 찜질기 정보를 습득했다. 침대에 누워 불안과 희망이 엎치락뒤치락할 때 몇몇 상품을 주문함으로써 희망이 약간 우세한 상태로 잠들었다. 삼주 후, 두 사람은 같은 날 수술대에 엎드리게 됐다.

 

척추란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기둥 구조를 이루며 인간의 몸을 지탱하는 26개의 뼈를 이른다. 통상적인 성인은 목에 경추 7개, 가슴에 흉추 12개, 허리에 요추 5개, 엉덩이에 천추 1개와 미추 1개를 가진다. 척추와 척추 사이에는 추간판(椎間板), 흔히 디스크라 불리는 원반 형태의 연골이 있다. 인간이 자신의 근육과 장기, 골격의 하중을 버티며 이족보행을 하고 몸을 굽히고 펴고 비틀 수 있는 건 디스크들이 완충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완충재는 상당히 튼튼하지만, 다른 신체조직과 달리 어떤 방법으로도 재생되지 않는다. 추간판탈출증 또는 디스크파열이라고 이르는 질병은, 디스크 바깥쪽의 질긴 섬유륜이 찢어지고 안쪽의 젤리 같은 수핵이 튀어나와 주변 신경을 압박하는 상태를 이른다.

 

6층 입원병동은 한산했다. 수술 시기를 고를 수 있는 사람들 중 굳이 한해의 마지막 며칠을 병상에서 바늘을 꽂은 채 보내기로 결정하는 이는 드물었다. 주말이었고 면회도 자유롭게 가능한 시간이었지만 복도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데스크에서 두명의 간호사가 환자별 처치 내역을 진작 정리하고 소곤거렸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샀으며 어디에 갈 거라는 이야기였고, 간혹 “정말?” “대박” “그랬다니까!” 같은 말을 지나치게 생기있게 뱉었다가 화들짝 목소리를 낮추기도 했다.

602호에 혼자 누워 있는 그는 언제 수술을 받을지 선택할 수 없었던 쪽이다. 삼주 전에 그는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에게 디스크가 후방이 아니라 좌측으로, 좌측 하지 신경뿌리가 위치한 추간공 쪽으로 파열됐다고 진단받았다. 이런 사례는 왼쪽 다리가 불에 타거나 으깨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결국 수술할 확률이 높다는 설명이었으나 그는 권유를 무시했다. 그때만 해도 참고 움직일 만했기 때문이다. ‘몸에 함부로 칼을 대지 말라’ 혹은 ‘사내가 뭐 그런 일로’ 식의 관성은 전문의의 소견 이상으로 그를 구속했다. 그는 소염진통제와 근이완제, 신경병성 통증 완화제와 그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위산억제제를 복용하고 출근했다. 하루에 다섯시간쯤 운전했고 열가구쯤에 들러 텔레비전과 공기청정기를 설치했다.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받은 물량이었고 3만 9천원을 주고 산 허리보호대에 의지했으나 사흘도 버티지 못했다. 물류센터에 배차 중지를 요청하고 이주 차에는 직장 동료가 추천한 다른 병원에서 그가 ‘신경주사’라고 들은 경막외 스테로이드 주입술을 받았다. 19만원이었지만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악화되었다. 삼주 차에는 왼다리를 절뚝이고 몇번이나 주저앉으며 간신히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아 왔으나 그게 끝이었다. 이튿날부터 걷기는커녕 앉지도 서지도 못했고 누워 있을 때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베개를 물어뜯을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그 비명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사흘째, 그는 극심통으로 인한 쇼크 직전에 사설 구급차를 불렀다. 35분 후에 초인종이 울렸고 그는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 겨우 문을 열었다. 기사는 신음하는 그를 능숙히 이송용 침상에 실어 구급차에 밀어넣었다. 달리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를 질렀다. 다리가 쉴 새 없이 경련했다. 몸이 차게 식고 얼굴 근육이 경직되며 정신이 맑아지는, 소름끼치는 해리감을 느낄 때쯤 그가 지목한 병원에 도착했다. 최근 삼주 동안 만난 의사 중 가장 믿음직했던,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이 예상했다는 듯 그를 맞이했다. 금요일 오후 3시, 그는 진통제를 매달고 휠체어에 앉은 채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토요일 아침 6시 반, 집게 달린 내시경이 그의 허리를 뚫고 들어가, 비좁은 추간공에서 신경을 압박 중인 요추 3-4번 디스크를 2센티미터쯤 뜯어냈다. 그때 그가 수면마취에서 각성해―정작 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아프다고 발작하는 바람에 추가로 투입된 약제와 산소까지 포함해 수술비가 산정됐다.

602호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605호에 혼자 누워 있는 그녀는 두 다리로 걸어와서 입원했다. 뾰족한 선택권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삼주 전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은 그녀의 기대와 달리 ‘근육이 놀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요추 5번과 천추 1번 사이 디스크가 후방으로 터져서 신경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엉덩이 깊숙이부터 양쪽 종아리까지 찌릿한 거라는 설명에 모호한 구석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좁은 편이라 마미증후군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는 말은 혼란스러웠다. 마미증후군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장필혁은 그녀에게 회음부 감각이 둔해지진 않았는지, 대소변과 관련한 이상은 없는지 묻고, 그러한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내원하라고 조언했다. 그녀도 소염진통제와 근이완제, 신경병성 통증 완화제와 그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위산억제제부터 복용했으며, 자신이 보존치료에 유리한 재택 프리랜서라는 점에 약간의 희망을 걸었다. 오래전에 사놓고 읽기도 전에 표지가 바래버린 두껍고 단단한 책들을 층층이 쌓고 그 위에 하루에 열한시간 이상 들여다보던 모니터를 올렸다. 화면이 높아지니 등이 펴지고 허리에도 부담이 적어진 듯했다. 그녀는 계약 중인 다섯개 업체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틈틈이 건강정보를 검색했다. 마미(馬尾)는 척수 끝에서 말꼬리처럼 흩어져 내려가는 신경다발을 지시했다. 탈출한 디스크가 마미 신경을 압박하는 경우, 48시간 이내에 응급수술을 받지 않으면 ‘영구적인 대소변 장애’가 남을 수 있다는 정보는 그녀를 불안케 했다. 그녀는 자신의 회음부 감각이 살아 있는지 느껴보려고 했다. 아무 이상 없는 것 같기도 조금 둔해진 것 같기도 했다. 살면서 회음부 감각이라는 게 뭔지 집중하고 정의해본 적이 딱히 없었다. 그 모호함이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소변 줄기가 원래 그렇게 약했는지 생각했다. 대변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비정기적으로 그녀를 괴롭히던 변비인지 마미증후군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모두 기분 탓일 수도 있으나 꼬리뼈부터 가랑이를 타고 내려가는 찌릿함은 진짜였고, 그녀는 그렇게 시작해 변실금이나 하지마비를 얻은 사람들의 후기를 몇개 읽었다. 삼주 차에 그녀가 화장실에서 속옷에 묻은 고약한 냄새의 얼룩을 발견한 뒤 울 때, 무슨 일이 있냐며 노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필혁은 정상인도 미량의 분변은 속옷에 묻을 수 있다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지금 개입한다면 직경 0.7센티미터 미만의 내시경으로 병변을 제거할 수 있으나, 추후에 수핵이 더 흘러나오면 허리를 7센티미터쯤 절개한 뒤에 네개의 나사못을 척추뼈에 박아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48시간이라는 골든타임과 성인용 기저귀 광고, 피와 살점으로 끈적거리는 쇠말뚝을 떠올렸다. 금요일 오후 5시, 그녀는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토요일 아침 9시, 집게 달린 내시경이 그녀의 허리를 뚫고 들어가, 후방 신경을 압박 중인 요추 5번과 천추 1번 사이의 디스크를 2.5센티미터쯤 뜯어냈다. 장필혁은 선천적으로 좁은 환자의 척추관 구조를 고려해―그녀에게 하나하나 설명하진 않았지만―부분적 후궁 절제와 황색인대 제거 등 추가적인 감압술을 신속한 솜씨로 시행했고 이에 동원된 각종 소모품까지 포함해 수술비가 산정됐다.

 

데이터가 증명하고, 진심이 완성합니다.

바른마디병원은 누적 35,000명의 척추 임상사례를 바탕으로 연평균 1,200건 이상의 고난도 경추·요추 내시경 수술을 성공적으로 집도하며 압도적인 치료 데이터를 구축해왔습니다. 재입원율 1% 미만, 이 수치는 독보적인 술기와 엄격한 사후관리로만 도달할 수 있는 바른의 자부심입니다. 하지만 바른은 숫자 너머 환자의 고단함을 봅니다. 압도적인 경험으로 보증된 실력에 환자의 평안한 일상을 바라는 진심을 더해, 귀하의 바른 몸을 바른이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해의 마지막 주말을 피주머니와 수액을 매달고 금속 지지대가 삽입된 허리보호대를 두른 채 척추관절병원의 6층 병동에서 보내게 되었다. 602호와 605호는 3인실이었지만 토요일 점심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분씩이 퇴원하자 두 사람은 각자 병실을 혼자 쓰게 되었다. 마취제와 근이완제의 여파로 몽롱한 가운데 때맞춰 나오는 심심한 밥을 먹고 주사를 맞고 간호사의 물음에 몇마디를 대답하다보니 하루가 다 갔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깨어난 두 사람은 다시 심심한 밥을 먹고 주사를 맞고 소독을 받았고, 보행기를 끌면서 혼자 엉금엉금 화장실에도 다녀왔다. 리모컨을 들어 병상마다 설치된 작은 텔레비전을 틀어봤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두 사람은 볼륨을 낮췄다. 철지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두고는 다시 까무룩 잠들기도 했다. 이따금 교대한 간호사가 들러 혈압을 재고 수액을 점검했을 뿐 누가 면회를 오지는 않았다. 그도 그녀도 아무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친구들과의 대화방에 입원을 알렸지만, 디스크는 암이나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친구들에게도 생업이 있고 가정이 있고 이런저런 질환이 있었다. 굳이 오겠다는 이가 없었으므로 애써 거절하는 대화도 없었다.

그녀는 수술동의서에 기재해야 하는 비상연락처에 자매의 번호를 적었으나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애는 연말연시를 애인과 함께 파푸아뉴기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보낼 계획이라고 몇주 전의 짧은 통화에서 말한 바 있었다. 어떻게 저럴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노는 애였다. 울면서 달려올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휴가를 앞두고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 입원은 길어야 3박 4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간병인이 꼭 필요하진 않다고 병원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안내했다. 동생에게는 모든 처치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뒤에 지나가듯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부모와의 관계가 절연에 가깝게 변해버린 후, 그녀는 동생과의 연결고리도 약해짐을 느끼는 중이었다. 예후만 좋다면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최선일지도 몰랐다. 동생이 알면 부모님도 알게 될 것이다. 병은 약점이고, 약점은 잔소리 혹은 비아냥의 먹이가 되기 쉬웠다.

그는 비상연락처에 어머니의 번호를 적었으나 역시 수술 일정을 알리진 않았다. 그에게 ‘비상’이란 수술을 받다가 죽는 사건 정도였고, 그 경우라면 시신 수습을 위해 부모님 중 누군가에게는 연락이 닿아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번호는 외우지 못했으므로 어머니의 번호를 휘갈겼다. 그는 비상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별다른 연락이 가지 않음을 상담실장에게 재차 확인했다. 칠순을 넘은 어머니는 나름의 질환을 덕지덕지 매달고 사는 중이었다. 외아들이 수술하는 걸 알고 행여 면회라도 오겠다고 하면 오히려 골치 아팠다. 온라인 예매 따위는 할 줄 모르므로 역에서 긴 시간을 기다릴 테고, 네시간쯤 기차를 타고 내려서도 병원까지 갈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변에서 팔을 한참 흔들 게 뻔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두세해 전부터 거동도 원활하지 않았다. 척추관협착증을 오래 앓으며 허리와 다리 근육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상기했다. 언젠가 보고를 해야 한다면 치료가 끝나고 두 다리로 멀쩡히 걷게 되었을 때, 그러한 모습을 눈에 확인시키며 설명하는 편이 나았다. 예후만 좋다면 계속 감추는 게 최선일지도 몰랐다. 남달리 자랑할 만한 가족으로도 살가운 효자로도 살아본 적 없었으므로 걱정이라도 덜 끼치고 싶었다.

귤을 까주거나 물을 떠다줄 사람도 없이 병상에서 주말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자기가 외로운지 자문했다. 외로움이란 예전에 잠시 정차했다 지나친 역명, 이를테면 사춘기라거나 청춘, 독서실, 방학, 밤샘, 성장, 장래희망, 배낭여행, 첫눈, 짝사랑, 어쩌면 그냥 사랑……처럼 이제 자신의 삶과는 관계없는 단어 중 하나 같았다. 적막한 병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편안함에 가까웠다. 옆 병상에 누구라도 있어서 수다를 떨고 과자를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3인실 입원료로 사실상 1인실을 누리고 있다는, 어떤 이득을 보고 있다는 만족감이 차라리 컸다. 미미한 욱신거림이 이따금 여진처럼 스치고 절개 부위 근처가 조금 시큰거릴 뿐, 확연히 사그라든 통증도 그들을 안도케 했다. 일요일 오후가 되자 두 사람은 보행기 없이도 더듬더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식후에 보호대를 단단히 조인 후 10여 미터쯤 되는 6층 복도를 두세번 걸어봤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바로 누운 채 보냈다. 수술은 잘됐지만 당분간 절대안정을 취하라는 게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의 지시였다.

두 사람은 각자의 병상에서 천장에 달린 십자 모양의 전등을 보며, 자기 몸에 대해 아는 게 운명에 대해 아는 것보다 많지도 않았음을 곱씹었다. 자신의 척추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설명은 들었지만 직접 목격한 바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척추에게 남이었다. 몸이라는 개인적이고도 배타적인 소유물에 대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해가 지면서 더욱 고요해진 일요일의 병원은 우연히 들어선 성당만큼이나 그들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속세의 옷을 벗고 하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함부로 먹거나 마시거나 움직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설사 허락된다 해도 감히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병원의 대표원장이자 신경외과 전문의인 장필혁,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고통으로부터 구하는 중일 모든 의사들, 십수년의 엄격한 수련을 거쳐 서품을 받은 그 하얀 가운의 사제들이 두려웠고 존경스러웠다. 치유되었다는 안도감 혹은 강력한 진통제와 항경련제가 유발하는 나른함의 기저에는, 무언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가면서 신체 일부를 인위적이고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훼손했다는 불안감, 그렇게 하도록 자신이 용인했다는 죄책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안감과 죄책감이야말로 몸이라는 불가해한 실체, 그들이 막 감화되기 시작한 신성 앞에서 그들을 참회로 이끌었다.

이틀 전에 그는 휠체어를 탔고, 그녀는 대변을 지렸다. 생애 처음 겪는 무서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해결되었다. 신―두 사람 모두 종교가 없었지만 정말 그 단어를 떠올렸다―은 딱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 듯했다. 그들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건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타인의 시련, 이를테면 말기암이나 뇌졸중, 여러 마비나 절단……과 자신의 시련을 은밀히 저울질하며 숙연해졌다. 디스크파열이라는 관대한 시련에 대해, 그 경고로부터 얻은 교훈에 대해서라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두세명을 떠올렸으나 그 친구들은 자기 혹은 자기가 아는 누구도 허리가 아팠는데 필라테스를 하고 혹은 봉침을 맞고 혹은 거꾸로 매달리기를 하고 싹 나았다거나 실비보험 확인하고 세부내역 잘 챙기라는 등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말을 전부 한 뒤였다. 그 친구들이 전한 최대한의 진심에 두 사람은 감사했지만 환자복을 입고 피주머니를 매단 지금, 어떤 신성을 공유하기에 그 건강한 인간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떻게 회개했는지를 고백하고 싶었으나, 무신론자들에게 간증할 수는 없었으므로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 주말 동안 두 사람의 입안을 맴돌았던 고백들은 약간은 감상적이었으며 일부는 과장됐거나 비합리적이었다. 저는 구부정한 자세로 하루에 열한시간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스트레칭을 자주 하라는 권고를 흘려들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몸 쓰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체육시간을 좋아한 적이 없고 몇번은 아픈 척을 했습니다. 아니, 체육시간이 아니어도 아픈 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제 몸이 하는 말을 무시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몸이 하는 말은 더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흉터를 남기게 됐고 700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내게 됐습니다. 일감을 잃게 됐습니다. 당분간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들, 물건을 줍고 양말을 신는 일조차 조심해야 할 테고 세달쯤은 발톱도 깎을 수 없게 됐습니다. 격렬한 운동은 영영 못하게 됐습니다. 윗몸 일으키기부터 미식축구까지요. 지금까지는 안 했지만 이제는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감사합니다. 몇가지를 잃은 대신 나머지 전부를 되찾은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습니다. 그 두 다리로 일어서고 걷고 화장실에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제 힘으로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못하게 된 것들만 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진작 소등이 완료된 일요일 밤 10시 반, 두 사람이 복도 끝 탕비실에 괜히 물을 뜨러 갔다가 마주쳤을 때 그 모든 고백을 나누지는 못했다. 간증에 대한 충동은 강력했지만 타인이라는 벽은 더 강력했다. 두 사람은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똑같은 제품이지만 사이즈만 다른 허리보호대를 차고 있었고, 개수대와 정수기와 전자레인지만 마련된 두평 남짓한 공간에서 0.8미터쯤 떨어져 있었을 뿐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불필요하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관성에 충실했다. 허리를 굽힐 수 없어서 세수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았다는, 형편없는 몰골이라는 민망함은 둘을 더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거나 슬쩍 피해주는 게 병원이라는 공간의 에티켓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의식한 그녀가 공연히 서두르다 텀블러 뚜껑을 놓치는 바람에 그 밤은 한 장면의 추억으로 남게 됐다. 심야 병동의 적막을 깨며 뚜껑이 땡그랑 떨어지고, 두 사람 모두 반사적으로 그것을 주우려 허리를 굽히다 함께 “악!” 하고 작은 비명을 지르고 만 것이다. 둘은 허리에 손을 짚고 잠시 통증에 집중했다. 아픈데 웃겼고 웃는 바람에 아팠다.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은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저도 괜찮……은 것 같아요.”

그가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유튜브를 보며 미리 공부해둔 자세로, 두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한쪽 무릎이 바닥에 닿도록 천천히 몸을 낮췄다. 손을 몇번 휘저은 끝에 간신히 텀블러 뚜껑을 줍는 데에 성공했다. 그 동작이 아슬아슬해 보여서 그녀는 “진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는 멋쩍은 목례로 답했다. 그리고 “들어가세요”라고 말했는지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했는지 두 사람은 다르게 기억했지만 어쨌든 일어난 일은 그게 전부였다. 둘은 각자의 병실로 돌아가며 방금 전의 욱신거림이 별일 아니길 바랐고 허리의 느낌에 집중하며 누웠다. 그이도 허리 환자겠거니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몰랐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연락처도 사는 곳도 가구 구성도 알지 못했고, 다시 대면하리라 기대되는 어떤 관계도 형성되지 않았다. 그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만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훗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거실, 두 사람이 엄마와 아빠의 첫 만남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할 때, 그들은 이 탕비실에서의 마주침을 공식적인 시작으로 채택했다. 기억에 사소한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보호대를 차고, 같은 순간에 비명을 질렀고, 네 아빠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네 엄마가 고마워했고, 창밖에서는 깜깜한 밤하늘에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고……

 

척추에 칼 대는 거 아닙니다. 디스크는 어차피 꿰매지도 채워넣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거 수술한다고 기구 집어넣어봐야 근처 조직만 상해요. 내시경도 아무리 작다 가늘다 해도 다 뼈 깎고 인대 젖히고 들어가는 건데 의사들은 그런 얘기 안 하죠? 당장 통증은 줄겠지만 자연적인 내구성이 약해지는 거라고요. 구조를 건드려놨으니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의사들이야 장사 계속하고 좋죠. 다시 주사 놓고 돈 벌고, 다시 칼질하고 돈 벌고. 그런데 당신 노후는 누가 책임집니까. 수술 절대 하지 마세요. 돈 내고 병신 되는 꼴입니다.

 

그들에게는 몇가지 계기가 더 필요했다. 환자복이나 함박눈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거리에 있는 프랜차이즈 김밥집 주인 부부의 손맛이었다. 수술 일주일 후, 두 사람은 오전 중에 간발의 차이로 병원에 방문했고 그 김에 가벼운 산책을 했다. 좀처럼 돌아오지 않던 입맛이 고소하고 간간한 김밥 한줄을 떠올렸다. 훗날 두번째 만남으로 여겨질, 사실은 네번째이거나 첫번째라고 할 수도 있는 만남은 그렇게 새해 토요일 정오께의 김밥집에서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알아보고 주춤거리며 눈인사를 나눴다. 주인아주머니가 참치김밥 두줄을 정성스럽게 말고 주인아저씨가 반찬과 국물을 꼼꼼하게 포장하는 동안 두 사람은 계산대 근처에서 서성거렸고 그가 이렇게 물으며 대화가 시작됐다.

“혹시 서서 드세요?”

병원에서 준 매뉴얼에 따르면 수술 후 이주일 정도는 최대한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의자든 바닥이든 앉는 일은 피해야 했다. 두 사람은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며 밥도 서서 먹고 있는 게 자신만이 아님을 알았다. 두꺼운 패딩점퍼 안에 각자 허리보호대를 차고 있음도, 그 금속 지지대가 종종 골반뼈를 찔러서 불편함도 알았다. 같은 날 같은 의사에게 같은 수술을 받았음을 알았다. 이유도 같았음을, 뾰족한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같았음을 알았다. 그는 울었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얼룩진 속옷 이야기를 굳이 하진 않았지만, ‘살다보니까’ 또는 ‘퇴행성’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처지의 당황스러움은 긴 푸념 없이도 표정과 어조만으로 공유되었다.

두 사람은 수술 부위 근처의 무시할 수 없는 요통과 간헐적인 다리 저림 등을 상대방도 겪고 있음에 약간은 안심했다.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은 통상적인 회복과정이라며 울혈과 신경가소성 같은 용어를 섞어서 설명한 바 있으나, 예후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불안한 마음은 그들로 하여금 여러 질문을 나누게 했다.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길은 드문드문 얼어붙어 있었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씩 달랑거리며 허리는 펴고 가슴은 내밀고 한발 한발 신중한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에 이르는 동안, 두 사람은 병원에서 권유하는 도수치료와 환우까페에서 광고하는 몇몇 상품, 유명 재활의학과 전문의의 콘텐츠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서로 이름도 묻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언제 다시 예약을 잡아줬는지는 물었으며, 그게 일주일 후 비슷한 시각이라는 점을 알았다. 각자의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둘은 새해 복과 쾌차를 빌며 이런 인사를 나눴다.

“그럼 병원에서 봬요.”

하지만 버스에 올라타 생각하니 병원에서 또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방금 전 자신을 스쳐지나간 갑작스러운 친밀감이 낯설었다. 버스에서든 은행에서든 약국에서든 옆에 있는 아무나에게 날씨며 자식이며 건강 얘기를 늘어놓는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피하고 싶어서 삼십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아온 자신이지만 사십대에 이르자 뻔뻔해진 것인지 의심했다. 아니, 외로워졌을까. 아니, 유연해졌다고 하면 어떨까. 방금 전의 사교 행위는 좀처럼 자신답지 않았지만 그게 불쾌하진 않았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 앞에서 선 채로 김밥을 먹으며 그녀는 불안이 약간 줄었음을 느꼈다. 그녀 자신은 볼 수도 없는 허리 뒤쪽의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다고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이 말해서이기도 했지만, 같은 의사에게 같은 수술을 받은 사람이 멀쩡히 숨 쉬고 말하고 걸어다니고 김밥도 먹고 있음을 확인해서이기도 했다. 옆 동네 어딘가에서 바로 자기처럼 보호대를 차고 허리를 곧게 편 채로 말이다.

정확히 그런 자세로 김밥을 먹고 있던 그는, 그때 이미 그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요람도 조립하고 환갑 기념 부부여행도 가는 인생을 상상하고 있었다. 훗날 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그렇다. 굳이 그녀에게 밝히진 않았지만 대단히 드물게 일어나는 상상은 아니었다. 병원 간호사님이든 물류센터의 과장님이든 가전제품 설치 자리를 미리 깨끗하게 정리해둔 고마운 고객님이든, 그는 일주일에 한번은 거의 무작위에 가까운 대상과 함께하는 인생을 상상해봤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상상조차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한 상상을 실현시키기에는 자신의 현실적 역량이 부족하며, 그 부족함을 만회할 만한 젊음이랄지 패기랄지 같은 무엇도 진작 잃어버린 듯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들어오길, ‘남자는 허리’였다. ‘아직 결혼도 못한 놈이……’ 운운하는 친구들의 짓궂은 메시지에 그는 웃음으로 답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뭔가가 끝나감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그 점에서 결혼에 대한 상상이 단지 관성이었다면 정말 천착하고 있던 문제는 생계였다. 앞으로 무거운 물건을 들면 안 되고 장시간 운전도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가전제품 설치기사였다. 2.5톤 트럭을 살 때 받은 대출을 겨우 갚고 이제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일주일 후 두 사람은 병원 대기실에서 다시 마주쳤다. 한달여 전 처음 내원했을 때와 똑같이 식물들은 푸르고 피아노 음악은 은은히 흐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한칸 떨어져 앉아 진료를 기다리며 소곤소곤 허리의 안부를 나눴다. 지난 김밥집에서의 대화보다는 한결 자연스러웠다. 여전히 이름은 묻지 않았으나 간호사의 호명 덕분에 서로의 이름을 알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처럼 물리치료까지 받고 갈 계획임을 알고 이렇게 제안했다.

“그럼 끝나고 점심 먹으면서 허리 얘기 좀 하실래요?”

그건 분명 꼬시려는 수작이었다고 훗날 그녀는 주장하나, 이 시점에서 그의 제안은 그녀에게 푹 삶은 하얀 수건처럼 깨끗하게 들렸다. 허리를 다치면서 그나마의 남성성조차 상실했다는 그의 체념이, 스스로 연출하진 않았어도 그 어조에서 응큼함을 표백해버렸기 때문이다. 커튼으로 가려진 물리치료 침상 위에서 온열찜질부터 무슨 초음파와 충격파까지, 한바탕 뜨끈뜨끈 찌릿찌릿 쿵쾅쿵쾅을 겪은 후 두 사람은 병원 로비에서 만나 그 김밥집으로 이동했다. 일주일 전보다는 나았지만 보호대가 반강제적으로 곧게 만든 허리와 경직된 대퇴부 근육, 조심스러운 걸음걸이 때문에 그들은 막 걷기 기능이 추가된 두대의 깡통로봇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밥집 주인 부부는 그 손님들이 근처 병원에서 온 허리 환자들임을 대번에 알아봤다. 단지 의자에 앉는 단순한 동작도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둘은 의자에 엉덩이와 등을 딱 붙인 바른 자세로 김밥을 부지런히 씹어 먹고 지체없이 일어났다. 인간이 서 있을 때 디스크에 부하되는 압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앉아 있을 때는 140,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면 180까지도 부하된다는 정보는 중대했다. 그러나 걷기는 디스크에 과하지 않은 하중을 주면서 압박과 이완을 반복해 영양 공급을 돕고 혈류를 증가시켜 통증을 완화하며 코어 근육을 자연스럽게 활성화해 척추를 안정시키므로,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이 입을 모아 권장했으므로, 겨울치고 따뜻한 날이었으므로,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으실래요?”

수술 후 이주일이 지났고 병원 안내에 따르면 보호대를 슬슬 떼도 되지만 아직 자신이 없다는 데에 두 사람은 공감했다. 환우까페에서 읽은 후기에 따르면 다른 병원에서는 한달까지 보호대를 차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세달이나 보호대를 착용했다는 회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호대를 차고 있기 때문에 몸이 과하게 긴장해서 회복이 더뎌진다는 주장도 있었다.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뺌으로써 근육과 인대가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논지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통원 중인 병원이 그래도 믿을 만한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하고, 피아노 음악도 흐르고, 간호사들도 친절하고…… 수술비는 각각 744만 얼마와 751만 얼마로 어디서 차이가 생겼는지는 몰라도 다른 병원에 비하면 비싼 건 아닌 듯하고…… 보험금 신청을 위해 발급받은 열한장의 검사결과지와 열네장의 진료비 세부산정내역을 한줄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서류를 때맞춰 빠짐없이 챙겨줬고…… 그 모든 이유도 있었지만 두 사람이 가장 크게 맞장구를 친 건 이 부분이었다.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입니다.”

그런 자세로 환자를 맞이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하는 의사는 두 사람 모두 본 적이 없었다. 저렴한 영업술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말 신경외과 전문의라는 자개 명패 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기 때문일까. 병원 입구와 복도를 지나 대기실에 이르기까지 각종 게시물이 알려준, 대표원장 장필혁이 유명 대학병원 교수 출신이며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고 수십개국에서 사용되는 척추수술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는 사전정보의 영향일까. 순전히 그 반백의 사내가 품은 어떤 정신이랄지 기개에 설득당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들은 정중하고도 자부심이 담긴 그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입니다”에 의지했음을 인정했다. 특히 두 사람은 장필혁의 자부심과 관련된 남다른 기념품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까페와 인형뽑기방을 지나쳐 셀프 사진관 앞에서 그녀가 갑자기 생각난 듯 이렇게 물었다.

“혹시 퇴원할 때 선물 받으셨어요?”

그도 뭔가가 떠올라 대답했다.

“그 사진이요?”

퇴원하는 날 아침 회진에서 장필혁은 각자에게 기념촬영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통증을 없애준 그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집도의가 환자와 사진을 남기는 게 병동에서는 흔한 문화일 수도 있었다. 얼떨결에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장필혁과 단둘이 포즈를 취했다. 어느 직원이 사진을 찍었다. 정오께 퇴원 수납을 마쳤을 때 사무원이 영수증 등 보험 관련 증빙서류, 약국에 전달할 처방전과 함께 작은 액자 하나를 내밀었다. 아침에 장필혁과 찍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이걸 주시는 거냐는 물음에 사무원은 대표원장님이 늘 드리는 퇴원 기념품이라며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은 그 특이한 선물을 생각하며 웃었고 그 덕분에 걸음걸이도 덜 깡통로봇 같아졌다. 그는 자신도 가전제품을 설치한 뒤 사진을 찍는다며, 규정상 완료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필혁의 사진도 그런 맥락일 가능성을 논했다. ‘수술이 완료됐고 고객이 일어섰다’는 사실을 기록해두는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기록의 의미라면 환자에게 줄 이유는 없었다. 자신과의 투샷을 선물로 준다는 건 얼마나 자부심이 커야 할 수 있는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자부심의 근거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으므로 대화는 조롱이 아니라 존경과 상찬에 가까웠다. 그도 그녀도 그 액자를 처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잘 보이는 곳에 올려뒀음을 고백했다. 적어도 허리가 다 나을 때까지는 인자한 미소의 신경외과 전문의와 그 옆에서 환자복을 입고 산발을 한 자신을 보며 경각심을 가질 요량이었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방법부터 고쳐야 했다. 문 앞에 놓인 택배를 주울 때에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낼 때에도 곤란했다. 그녀는 늘어나는 집게손을 샀다고 말했다. 집게 힘이 제법 강해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이것저것을 집고 옮길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추천했다. 제품명이 뭐냐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쇼핑몰 링크를 보내주겠다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그건 분명 꼬시려는 수작이었다고 훗날 그는 주장하나, 이 시점에서 그녀의 물음에 그가 섣부른 기대를 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과의 투샷을 선물로 줄 만큼 자부심이 크기는커녕, 자신을 간신히 수리된 구형 가전제품쯤으로 여겼다. 그는 그녀가 메신저로 보내준, 25퍼센트 할인하여 2만 2천 몇백원인 집게손을 주문했다. 그 플라스틱 제품은 기대만큼 견고하지 않아서 몇번 써보고 나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매직 가제트 팔 집게손’이 텔레비전 리모컨을 꽉 쥐고 있는 사진을 찍어, 잘 쓰고 있다고 그녀에게 안부를 전했다.

 

제 이야기 봐주실분

조언바래요 허리엉덩이다리 못참겠어서 일주일 단식하고 입원해서 열흘잇었어요 신경차단술이랑 신경성형술했구 재활치료도 8회햇구여 퇴원 후 울면서 겨우 버스타고 집 내려와서 누웠었어요 그뒤로 한달 일어나지 않고 대소변도 패드에 보고 밥도 비닐봉지로 먹어요 아직 아프고 기침 할때마다 허리 찡기는데 이제 눈물도 안나여 언제쯤 일어나볼수잇을까여 제가 간 병원은 고주파 추천하고 수술은 가급적이면 안하는게좋아 그정도는안가도된다 햇었어요 의사선생님이 터졌다고 확실히 얘기 안한 것같은데 너무 아파여 제 디스크 터진거예여??

 

그녀의 동생은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운동 좀 하라니까!”

동생의 얼굴은 남국의 햇살에 그을려 보기 좋게 가무잡잡했다.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동생이 선물로 내놓은 파푸아뉴기니산 커피 원두를 만지작거렸다. 왜 나이가 들수록 동생이 부모님을 닮아가는지 의아해하며 “그게 꼭 운동이랑은……”이라고 웅얼거리다 말았다. 동생은 복식호흡시 횡경막이 어떻게 움직이며 복횡근과 다열근과 골반저근의 협응이 척추 안정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했다. 예전이라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이제 코어 근육의 기능과 의의라면 그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척추 건강이 한달째 삶의 최대 화두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척추를 공부했고 감각했으며 자기 몸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했다. 그녀는 동생이 단언했지만 실제로는 전문의마다 의견이 다른 몇군데를 지적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동생은 현직 크로스핏 트레이너이자 스쿠버다이버였고 11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피트니스 인플루언서였다. 스스로 부과한 근육통 외에는 아파본 적 없는 애였다. 그애는 매일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듯 노력과 인내와 탐구로 그 건강을 얻었다. 그녀는 동생을 존중하는 만큼 자신의 나태와 방종과 무지를 자책했다. 먹고살려고 오래 앉아서 일하는 게 자신뿐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좁은 게 자기 잘못도 아니었다. 그럼 누구 잘못일까. 인적 원인을 찾고 헤아리자면 결국 자기 몫이 제일 커 보였다.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책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미리 검진하고 대비해야 했을까. 건강검진에서 그런 것도 밝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동생에 비하면 자신은 뭔가 잃어버리거나 실패한 사람 같았으므로 반박할 만한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행히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사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수술을 하고 한달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신경통 완화제 등 다섯개의 알약을 하루에 두번 먹었고 앉고 눕고 일어날 때마다 허리에 작은 욱신거림을 느꼈다. 엉치나 허벅지나 종아리, 때로는 회음부에 인과도 순서도 없이 찌릿찌릿한 느낌이 스쳤다. 전반적으로는 미미한 증상이었지만 불안감을 키우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그녀는 장필혁의 말을 빌려 그 증상들을 자연스러운 회복과정의 일부로 설명할 수 있었다. 가동범위와 운동량이 제한되며 각종 인대와 근육이 경직되었을 뿐, 예전의 강한 통증 때문에 신경계에 혼란이 일어났을 뿐, 전부 시간이 곧 해결해줄 문제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증상들을 위험신호로 해석할 만한 사례들도 알았다. 미처 제거되지 못한 수핵이 석회화되는 중이라거나, 찢어진 섬유륜으로 수핵이 다시 흘러나왔다거나, 신경이 주변 조직에 유착되어버렸다거나,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해지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들 말이다. 그녀가 저녁 알약 다섯개를 막 삼켰을 때 동생이 메신저로 ‘아까 이야기한 선생님’이라며 한 프라이빗 필라테스센터의 링크를 보내왔다. 수술 후 섬유륜이 간신히 아물고 있는 상태에서 필라테스를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대차게 연설하고 싶었으나, 한편으로는 적극적 개입으로 근육을 풀어줘야 정체된 회복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논리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런 설명은 이래서 말이 되고 저런 설명은 저래서 말이 된다는 게 문제였다. 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거 보셨어요?”

그가 보낸 건 한 유력 언론사에서 운영하는 건강·미용 전문 인터넷신문에 실린 기사였다. ‘명의를 만나다’라는 연재 코너에 이틀 전 업로드된 기사가 소개하는 인물은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이었다. 사진 속의 ‘척추 명의’는 수술실 조명의 빛무리에 감싸인 채, 누군가의 허리에 꽂힌 기다란 금속 수술도구―아마 집게 달린 내시경―를 조작 중이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은 그들이 익히 마주한 적 있는, 흔들림 없는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사에서 이런 정보들을 새롭게 얻었다.

첫째, 몸에 구멍을 하나 뚫는 단방향 내시경 수술이 두개 뚫는 양방향 내시경 수술보다 환자의 신체에 주는 부담이 적으므로 최소 침습의 원칙에 부합한다.

둘째, 구멍 하나로 시야를 확보하며 처치까지 해야 하는 단방향 술기가 집도의 입장에서 난이도가 훨씬 높다는 게 문제인데, 장필혁은 국내에서 선구적으로 단방향 척추 내시경 감압술을 정립하고 임상에 적용한 의사 중 한명이다.

셋째, 장필혁은 지난 이십년 동안 5,000회 이상의 내시경 수술을 포함해 총 1만여건의 척추 수술을 집도했다.

넷째, 장필혁은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이년 전에는 맏딸의 척추 내시경 감압술을 직접 집도했다.

두 사람은 여러 사정으로 병원 쇼핑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못했음에도, 반쯤 우연으로 유능한 의사를 만났음을 행운으로 여겼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들이 접근 가능한 최고의 의사는 장필혁이며, 확률상 자신들만 특별히 잘못되진 않았을 거라는 의견을 나누며 불안을 잠재웠다. 종종 서로에게 보고하는 차도가 비슷함이 그 통계적 믿음을 뒷받침했다. 상대의 안부에 자신의 안부도 달려 있다는 일시적인 조건은 좋은 명분이었다. 빨래 꺼내다가 살짝 뜨끔했는데 다행히 별일 아니었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기는 아직 뻣뻣했고,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게 됐는데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고, 손이 닿지 않는 발을 씻기 위해서는 긴 손잡이가 달린 솔이나 수세미 발매트를 이용할 수도 있고 발샴푸를 뿌린 후 두 발을 서로 부비적부비적할 수도 있지만, 발톱 깎기는 정말 도리가 없다는 데에 두 사람은 공감했다.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이 드물어진 나이였다. 그와 그녀는 이 일시적인 친밀감이 어디까지 자신을 데려갈지 잠시 내버려두기로 했다. 으레 통과해야 할 모든 사건과 감정을 전부 겪기에는 이제 나이도 많고 허리도 아프다는 자조는 몇몇 과정을 생략하든 순서를 바꾸든 상관없다는, 또는 그러고 싶다는 충동으로 전이됐다. 그 무심한 모험심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례적인 제안을 나누도록 부추겼다.

“허리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집은 망설여졌다. 숙박시설도 오해의 소지가 컸다. 1월이라 공원은 추웠고, 무인까페는 민폐 손님으로 CCTV에 박제될 위험이 있었다. 머리를 굴리고 기억을 더듬어 택한 장소는 찜질방이었다. 두 사람은 한적한 평일 낮을 골라 그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24시간 불가마 스파랜드’로 향했다. 각자 오랜만에 통 목욕을 하고 특히 두 발을 부비적부비적 잘 씻고 난 뒤, 환자복 이후로 다시 똑같은 옷을 입고 찜질방 입구에서 만났다. 허리를 굽히는 게 아니라 고관절을 굽혀서 가볍게 인사했다. 찜질방 내에 등받이가 있는 적절한 의자는 없었지만 어느정도 예상한 바였다. 다행히 서너명이 널찍이 흩어져 낮잠을 자고 있을 뿐 텅 비다시피 한산했다. 두 사람은 양지바른 창가에 자리를 잡고 매트를 깔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유익하고 안전하게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집중해야 했다. 인간이 서 있을 때 디스크에 부하되는 압력이 100이라면 앉아 있을 때는 140,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면 180까지도 부하되지만, 누워 있을 때는 30에 불과했다.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지요.”

“허리를 보호해야 하니까요.”

두 사람은 주머니에서 작은 은빛 손톱깎이를 꺼내 교환했다. 그녀가 먼저 바른 자세로 누웠다. 그가 그녀의 발치에 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한쪽 발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자신의 한쪽 허벅지에 얹었다. 그는 타인의 발톱을 자르기는커녕 발가락을 만지는 일도 낯설어서 긴장했다. 그녀도 어른이 되고 타인에게 발톱을 맡기는 일은 처음이라 긴장했다. 미용실에서 머리 맡기기와 수술실에서 허리 맡기기 사이쯤, 다시 자란다는 점에서는 전자에 가까웠지만 잘못 잘랐다간 피가 나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는 점에서 후자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장필혁에게 수술을 받을 때와 달리 의식이 생생하다는 점이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 불안이 야기한 교감신경계의 활성화가 혹시 설렘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 그가 말했다.

“자르겠습니다.”

텔레비전조차 꺼져 있는 한낮의 찜질방, 발톱이 잘리는 소리는 두 사람에게 과장되게 들렸다. 또각. 그는 살점을 건드리거나 발톱이 사방으로 튀지 않도록 한번 한번 신중히 손을 움직였다. 또각. 발톱이 조금씩 잘려나갈 때마다 그녀의 불안도 조금씩 잘려나가며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달이 넘도록 거추장스럽게 자라난 발톱, 죽은 세포가 켜켜이 굳은 그 신체 부산물이 제거되는 시원함이 생생했다. 너저분한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고야 말았다는 약간의 자괴감이 천천히 낯선 해방감으로 변하며 그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자신을 구성했던 껍데기의 일부가 훼손되면서 생긴 작은 틈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원하고도 아늑한 그 감각은 잠시 후 교대한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그의 새끼발톱 주변 살점을 찌르는 바람에 그가 “아야야야” 하고 애처롭게 신음했고 그녀가 “악 어떡해” 하고 더 큰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두 사람에게 발톱 깎아주기는 감당할 만한 스릴로 남았다. 그 점에서 그들은 첫 데이트를 ‘김밥 먹기’나 ‘걷기운동’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한달쯤 지나 하게 되는 ‘만화방에서 누워서 만화 보기’나, 거기서 보름쯤 더 지나 하게 되는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잔 마시기’도 마찬가지였다. 그 호프집에서 두 사람이 처음 명시적 언어로 연인관계를 선언했더라도 말이다. 훗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거실, 두 사람이 엄마와 아빠의 첫 데이트를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할 때, 그들은 이 ‘발톱 깎아주기’를 공식적인 첫 데이트로 채택했다. 기억에 사소한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바닥에 누웠고, 같은 순간에 비명을 질렀고, 네 아빠는 완전 겁쟁이였고, 네 엄마도 만만치 않았고, 창밖에서는 겨울치고 따뜻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고……

 

디스크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 중 10퍼센트 이상이 이년 내에 추가치료나 재수술을 경험한다. 수술 성패와 별개로 퇴행성 변화는 멈추지 않으며, 본래의 탄성과 강도를 잃었으므로 파열이 더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첫 수술 이후에는 해당 부위에 흉터 조직도 형성된다. 재수술 시에는 정상 조직과 흉터 조직을 구분하기 까다로워서 출혈이 늘고 신경 손상 위험도 높아진다. 재발이 반복되면 디스크가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척추를 못으로 고정시키는 유합술이 고려되기도 한다. 갈수록 인접 분절이 연쇄적인 문제를 겪을 확률도 높아진다. 척추는 유기적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므로, 필요한 건 수술이 아니라 조화이다. 척추는 스스로 회복할 지혜를 알고 있다. 그 신호에 당신이 귀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마음챙김 기반 호흡훈련, 홀리스틱 바디 얼라인먼트, 신경계 이완 명상과 맞춤 영양 컨설팅까지, ‘스파인 웰니스 12주 프로그램’은 잃어버린 일체감을 되찾을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이다.

 

수술 후 3개월이 지났고 봄이었다. 통증의 강도나 빈도는 꽤 줄어 몇몇 반나절쯤은 허리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방심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경고, 허리와 다리에 나타나는 거슬리는 감각 때문에 약을 끊지는 못했지만 엑스레이로 확인한 척추 간격에 이상은 없었다. 장필혁은 하루 두번에서 한번으로 처방약을 줄이며 가장 취약한 시기는 지났다고 진단했다. 장필혁은 근육과 인대 강화를 촉진하기 위해 내원할 때마다 ‘프롤로’라 불리는 주사를 허리에 놔주었다. 다섯번째쯤부터 두 사람은 그 주사가 정말 필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비급여 항목이라 한번에 8만원가량을 직접 부담해야 했으며 그들의 실손보험으로는 3회까지만 지원됐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도 프롤로 주사의 효능을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혹자들은 그 주사가 설탕물에 불과하며 회복세의 십중팔구는 그냥 시간과 생활습관에 달린 거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장필혁을 신뢰하였으나 방심할 만큼 회복되었기 때문인지 몸만큼 돈이 무서워지고 있었다.

그는 수술 직후부터 가전 배송과 설치를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운전 중에 허리가 부담할 하중과 진동은 감당할 만하다고 쳐도, 텔레비전은 30킬로그램, 세탁기는 100킬로그램, 냉장고는 150킬로그램에 달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배송지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걸 하루에 십수번씩 들고 업고 옮기다가는 허리가 다시 고장날 것 같았다. 물론 그는 오래전부터, 그리고 수술을 한 후에도 이런 얘기를 여러번 들었다.

“이 바닥에 허리 멀쩡한 놈 찾기가 더 힘들다!”

전에는 흘려들었지만 새삼 궁금해졌다. 허리를 다치고 어떻게 이 일을 계속할까. 직장에서 알게 된 몇몇 ‘형님’들에게 물어봐도 같은 말, “이 바닥에……”가 되풀이될 뿐이었다. 차에서든 집에서든 냉찜질하고 온찜질하고, 한의원 다니면서 침 맞고, 그러다 심해져서 수술하고, 한동안 괜찮다가 또 심해져서 수술하고, 그러다 지팡이 짚고, 그러다 영 소식이 끊기는 형님도 있고…… ‘어떻게 하고’ 있다기보다는 ‘어떻게든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다른 생계수단을 찾기 위해 채용공고를 뒤적이다보니 수긍하게 됐다.

약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앉고 서고 눕고를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단히 드물었다. 그 대단히 드문 일자리 중에서도 자신을 채용해줄, 또는 최소한의 수입을 보전해줄 자리란 없어 보였다. 공부 좀 할걸 그랬다는 상투적인 후회에 잠기는 대신 음식배달 일을 알아봤다. 오토바이 면허라면 딸 만했다. 주변 지역도 익숙했고, 치킨이든 족발이든 냉장고보다는 가벼웠다. 그러나 한시간에 네건씩 배달하며 하루에 열시간은 달려야 계산이 서는데, 별수 없이 서두르다 도로에 나뒹구는 일이 부지기수란 말을 듣고 포기했다. 몸뚱이가 튕겨나가는 사고 영상을 보다 소름이 돋았다. 지금 몸에 살짝이라도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간 수술비가 더 나올 테고, 최악의 경우 허리가 영영 박살날 수도 있었다. 차라리 허리를 살살 달래며 일단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최선의 선택 같았다. 뭘 선택하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화물차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의 직장이란 그가 배달하는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굴지의 대기업도, 산하의 물류회사도 아니었다.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였으므로 2.5톤 화물차가 그의 직장이었다. 그는 그동안 익힌 안면으로 물류센터의 담당자에게 사정해 당분간 밥솥이나 전자레인지, 진공청소기처럼 비교적 가벼운 제품만 배정받기로 했다. 그건 사실 센터가 아니라 그에게 손해였다. 소형 가전은 건별 수수료가 더 낮게 책정되어 있어서, 종일 배송해봐야 최저임금도 벌까 말까였다. 그럼에도 센터는 배차 효율성을 이유로 얼마든지 그를 배제할 수 있음을 그는 잘 알았다. 부려먹을 때는 직원 취급하고 불리할 때는 개인사업자 취급하는 게 하루이틀은 아니었다. 복귀 첫날 그는 짬짬이 화물칸에 박스를 깔고 몇분씩이라도 누웠다. 허리가 불길하게 뻐근했다.

그녀는 재택 프리랜서로서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긴 했다. 수술 직후부터 입식 책상을 구해 30분은 서서 일하고 30분은 누워서 허리와 다리를 달랬다. 그런 식으로 업무량을 간신히 맞추다보니 자체적으로 정했던 퇴근시간은 없어졌다. 분투한 결과 연간계약 한건과 분기계약 두건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전보다 콘텐츠를 많이 업로드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요새는 AI로 금방 되잖아요?”

대형 성형외과의 사무실장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원내에서도 AI를 활용해 자체적으로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그래도 매니저님께서 그동안 잘해주셨으니 믿고 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어서 그녀로서도 자기가 아직 필요하다고 인정해준 게 고마웠다. AI 툴을 손에 익히고 일하는 시간을 조금 늘리면 거래처의 요구량을 맞출 수 있을 듯했다. 두개의 AI 서비스 구독료를 결제하며 이익과 노동시간을 셈하다가, 자기는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벌게 됐는데 왜 신난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지 의아해졌다. 진작 주식이라도 샀어야 했다는 상투적인 후회에 잠기는 대신 45분 서서 일하고 15분 눕도록 타이머를 맞췄다. 인공지능 시대의 빛과 그늘 중에 자기 자리는 그늘 같았지만 버섯으로든 이끼로든 살아야 했다.

미라클성형외과는 미국·일본·아랍에미리트연합국 등 17개국이 참가한 글로벌 바이오 심포지엄에 초청되어 K뷰티를 뛰어넘은 K줄기세포 안티에이징 혁명을 선포했고, 단맛아뜰리에는 수제 우리밀 글루텐프리 저당 약과 선물세트를 1+1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를 개시했으며, 샤브천국 별내신도시점은 지난 주말 가족 같은 분위기로 전직원 워크숍을 실시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도록 그녀는 이미지를 꾸미고 텍스트를 다듬었다. 서서 일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허리가 회복되는 동안 종아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발목의 양말 자국이 잘 사라지지 않고, 열감 또는 간지러운 느낌이 들며, 붉거나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는 게 하지정맥류 초기 증상이라고 AI가 알려줬다.

그녀는 가까운 의원에서 정맥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점심식사 후 식곤증을 떨치지 못한 듯한 의사는 나른하고 무심한 어조로, 즉각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한 단계는 아니지만 주의해서 관리해야겠다고 진단했다. 그녀는 그 의사가 아침에 면도도 안 했고 점심 먹고 양치질도 안 했음을 알았지만 한시간에 5분씩 종아리운동을 하고 누워서 쉴 때는 다리를 높이 올리라는 지도를 새겨들었다. 정맥 순환 개선을 위한 처방약과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들고 귀가하는 길에 그녀는 자신의 두 다리에 뻗은 굵직한 혈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재차 학습했다. 정맥 판막에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면서 혈액이 역류하거나 고이는 현상 자체는 색색의 컴퓨터그래픽으로 어느 다큐멘터리 클립이 설명해줬으므로 무리 없이 이해했다. 그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가 문제였다. 노화와 생활습관으로 인한 퇴행성 변화……라는 설명이 다시 등장했고, 이제 그건 그녀에게 ‘몽둥이로 맞았기 때문에 아픈 겁니다’ 식으로 들렸다. 그녀가 따지고 싶었던 건 왜 때리는지, 왜 자기인지였다. 하지만 누가 몽둥이를 쥐고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따질 수도 없었다. 유전이 절반이라는 설명은 차라리 납득이 됐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교단에 서서 평생을 보내고 이제 육십대 후반에 이른 두 노인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하지정맥류가 있었던가. 그들이 내게 몽둥이를 휘둘렀나. 혹은 그들도 몽둥이에 두들겨 맞았나.

 

의미 없어 걍 다 Ay

늙기 싫어 걍 죽을래 폼나게

추해지면 걍 뒤질래 쿨하게

주름지면 그건 내가 아니기에

춤추다가 별이 될게 빨리 Yeah

보험 연금 그게 뭐야 먹는 거 (What)

번 돈 다 써 내게 저축은 없어 (Skrr)

난 오늘만 살고 내일은 멍청이들 거 (Stupid)

틀니 끼고 고기는 너나 씹어 (Eww)

비타민 안 먹어 난 들이부어 위스키

제까짓 게 뭔데 난 못 말리는 개새끼

지팡이 짚기 전에 불태울게 깨끗이

의미 없어 걍 다 Ay

늙기 싫어 걍 죽을래 폼나게

추해지면 걍 뒤질래 쿨하게

주름지면 그건 내가 아니기에

춤추다가 별이 될게 빨리 Yeah

조플린 모리슨 코베인 and 헨드릭스

그 늙은이들 얘기 좀 그만해

더 빨리 갈래 걍 지금

의미 찾지 마

의미 없어

 

세번째로 서로에게 발가락을 맡긴 장소는 그의 집이었다. 발톱을 깎기에 찜질방보다 공공예절에 부합했고 위생적이며 경제적이었다. 두 사람은 이제 연인이었고 대낮의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섣부른 마음에 사회적 규범을 부여하고 고삐를 잡아맬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발톱을 깎아주다 옷을 벗어던진 건 아니었다. 단추가 뜯어지고 속옷이 팽개쳐지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은 ‘그거’라거나 ‘좋은 시간’ 같은 완곡한 단어를 동원해 짧은 논의를 거쳤고, 연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잠시 미뤄두기로 합의했다. 몸이 하는 말을 자제시켰다기보다는 몸이 하는 말에 복종한 선택이었다.

“허리를 보호해야지요.”

“허리는 중요하니까요.”

두 사람은 여전히 진통제와 근이완제를 복용하는 환자였고 동시에 계속 환자로만은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일상을 일하는 시간과 일을 계속하기 위해 회복하는 시간으로 나눠야 했다. 서 있을 때는 100, 앉아 있을 때는 180, 누우면 30이라는 정보에 충실하게 두 사람은 누울 수 있다면 누웠다. 나란히 누워 있으면서도 가벼운 입맞춤조차 서로에게 부담이 될까 자제했다. 좀처럼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며 나이 먹음에 대한 희박한 성취감을 잠깐 느꼈으나 그보다 크고 지속적인 상실감에 잠겼다. 각자 이십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거의 알지 못하면서도 그 미지의 과거에 질투를 품기도 했다. 마흔한살의 그녀는 부종을 방지하기 위해 누리끼리한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신고 있었고 그는 허리에 큼직한 파스 두장을 붙이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생략해버린, 아마 뒤늦게 되찾지도 못할 장면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두 사람은 조금 수다스러워지기도 했다. 아직도 다 안 나았냐고 묻는 주변인들을 함께 지긋지긋해했다. 수술 삼일 차부터 십년 차까지 다양한 후기를 읽으며 긍정적인 단서들을 수집했다. MRI 사진까지 동원해 애절한 투병기를 고백하다가 댓글란에서야 영양제며 마사지기 광고로 본색을 드러내는 바이럴마케팅 글들을 함께 황당해했다. 체감상 환우까페에 올라오는 글의 절반 이상이 그랬다. 그 와중에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말투로 증상을 호소하는, 그래서 더 애처로운 회원들이 얼른 적절한 처치를 받고 회복하기를 기원했고, 함께 쓸모있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시시덕거리다가 문득 정적이 찾아오면 이 관계가 무엇이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의심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이 관계의 동력은 사랑이 아니라 공포일까. 살다보면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자기 발톱조차 깎을 수 없는 때가 또 올지도 모르고, 보호자가 필요하게 될 거라는 계산에 근거해 상대를 연인의 형식으로 고용하고 있는 걸까. 나도 저이도 겁에 질려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두 사람은 어떤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통제하지도 책임지지도 못할 말들을 끄집어내는 게 썩 유익하지 않다는 걸 지난 삶에서 배운 바 있었다. 서둘러 망칠 이유가 없었다. 계산이어도 상관없었다. 연인이 간병인보다 유지비가 적었다.

그들은 각자의 몸 상태에 따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생활을 도왔다. 그녀는 앉아서 일하는 시간을 늘렸고 누워서 쉬는 시간을 줄였다. 거래처의 요구가 밀려 그녀가 눈코 뜰 새 없을 때면 그는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밀린 설거지를 하며 그녀가 누워 있을 시간을 벌어줬다. 그는 대형 가전을 취급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벌충하기 위해 더 오래 운전하며 더 많은 물품을 처리했다.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면 퇴근 후에 찜질을 하며 꼼짝없이 요양해야 했고 그럴 때 그녀가 먹을거리를 사 들고 와줬다. 그는 그녀가 오랫동안 방치한 냉장고 속 성에를 제거했고, 시끄럽게 덜덜거리던 통돌이세탁기의 수평을 맞췄다. 그녀는 그의 거실 한편에서 맥을 못 추는 식물 한쌍에게 분갈이를 해주고 LED 생장등을 설치해줬다. 그런 일들은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그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카드 말미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처음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넣었다. 그건 운명이나 존재나 영혼 같은 개념과는 상관이 없었고, 그의 서툰 글솜씨가 달리 끝맺을 표현을 찾지 못해서 그 자리에 놓였다. 그녀는 그 단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입으로 소리 내어 돌려줬다. 감동해서라기보다는 누가 내 발톱을 깎아줬다면 나도 그이의 발톱을 깎아주겠다는 호혜적 원칙에 기반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말했다. 세상에서 두 사람만 속는 셈 치면 되는 일이었다.

수술 후 반년이 지난 여름의 초입,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은 다음 예약 없이, 앞으로 잘 관리하길 바란다며 다시 허리 숙여 인사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짐 없는 그 의사는 완치 같은 단어를 입에 담진 않았다. 두 사람도 그런 개념은 없다는 걸 배운 지 오래였다. 하지만 수술 예후를 더 관찰할 필요는 없겠다는 집도의의 선언은 두 사람에게 한 고비를 지났다는 안도감을 줬다. 스스로 발톱을 깎을 수 있을 듯했고 사실 두달쯤 전부터 그렇게 느꼈지만 그게 그들이 해산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서로의 몸에 의지해야만 가능한 일들은 계속 있었다. 귀한 제철 살구가 올라간 생크림케이크 한조각으로 조촐한 축하를 나눈 후 그들이 얇고 보드라운 이불 속에서 해치운 일도 그중 하나였다.

“잠깐……!”

“이렇게는……?”

“아야야야!”

“악 어떡해!”

그것은 숨을 몰아쉬도록 격정적이지도 않았고 솜털이 곤두서도록 감각적이지도 않았다. 각자 지난 삶에서, 오래전일지라도 한순간은 경험했었던 어떤 절정에 비하면 서툰 소꿉놀이 같았다. 좋았냐고 묻기에는 시시하고 우스웠다.

“나쁘지 않았지요?”

“나쁘지 않았어요.”

훗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거실, 두 사람이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할 때, 그들은 그 초여름의 이불 속을 공식적인 첫 섹스로 채택했다. 기억에 사소한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우리는 같이 옷을 벗었고, 같이 이불을 덮었고, 달콤하고 새콤한 살구케이크 맛으로 비명을 질렀고, 네 엄마도 아빠도 몸치였고, 창밖에는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까지 너에게 하지는 않겠지. 네가 이때 생긴 것도 아닌걸. 그러니까 이 장면은 엄마랑 아빠랑 둘만 기억하는 비밀로 해둘게……

 

민관 협력 ‘국민건강 빅데이터 플랫폼’ 시범도입

보건복지부와 국내 IT기업이 공동 추진하는 ‘국민건강 빅데이터 플랫폼’이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공공 의료정보와 민간의 AI·빅데이터 기술을 결합해 국민 건강관리체계를 고도화한다는 취지다. 플랫폼은 이용자의 건강검진과 진료기록,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되는 활동량과 수면정보 등을 통합해 분석한다. 이용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국민건강지수’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이 감지될 경우 관련 기관과 연동해 조기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정부는 만성질환 예방과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가 정착되면 국민 건강 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기업 역시 해당 플랫폼과 연계된 보험·금융 서비스 확장 가능성에 주목하며, 건강 데이터에 기반한 개인화 서비스가 새로운 성장 영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지에 따라 두 사람은 인근에서 가장 큰 내과를 찾아 건강검진을 받았다. 늘 연말이 되어서야 미룬 숙제를 해치우듯 검진을 받았었지만, 두들겨 맞고서 고분고분해진 문제아처럼 낙엽이 지기도 전에 병원으로 향하게 됐다. 그 내과가 자랑하는 건강검진센터는 신속하고 체계적이었다. 두 사람은 순서대로 이동하며 혈압을 재고 소변을 보고 바늘에 찔렸다. 그녀가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동안 그는 그 일의 곤혹스러움을 대기실에서 상상하다가 몸서리쳤다. 그들은 병원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며 시험을 치르듯 긴장했지만 위내시경 검사를 위한 수면마취에서 깨어난 순간은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달콤했다. 용종은 발견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개운하게 잠에서 깬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프로포폴 중독으로 구설에 올랐던 연예인들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잡담을 나누며 함께 병원을 떠났고 그날 저녁에는 원기 보충을 위해 삼계탕을 먹었다.

그는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이상지질혈증이 의심되므로 전문의와 상담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모바일로 배송된 검사결과지만으로는 그게 무슨 의미이며 얼마나 중대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상지질혈증은 고지혈증의 더 정확한 표현으로, 어떤 말에 따르면 중년이라면 흔히 달고 사는 딱지였고 어떤 말에 따르면 수년 내로 죽을 수도 있는 질환이었다. 정부 엠블럼을 달고 있는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이라는 이름은 다른 것보다 믿음직했다. 한국 성인 약 절반이 이상지질혈증을 갖고 있다는 통계는 안도감을 줬지만, 자신의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전문의와의 상담 후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 붉은색으로 칠해진 ‘매우 위험’군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당황스러웠다. 돌아보면 예전에도 꾸준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편이었는데 ‘주의’처럼 온건한 단어로 분류되어 흘려들은 것 같기도 했다. 큰 폭으로 솟은 수치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AI와 대화를 나누었다. 허리디스크로 인한 신체의 지속적인 스트레스 반응은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고, 코르티솔은 간의 지질 대사작용에 영향을 끼쳐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은 그럴듯했다. 길게 보면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며, 허리는 거의 나았고 체지방은 원래 적은 편이니, 유산소 운동량을 늘리고 식습관을 개선한다면 수치는 금방 내려갈 거라는 위로는 유용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라고 하자 AI는 핵심요인은 유전이기 때문에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개선될 수 있는 수치는 최대 15퍼센트에 불과하며, 심혈관계 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즉시 약물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동맥경화란 아무 증상도 없다가 어느날 혈관이 기름때로 막히며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조용한 암살자’라는 비유는 그를 겁에 질리게 했다. 당장 내과 예약을 잡아야 할 것 같았으나, 20분 만에 그는 이상지질혈증에 처방되는 ‘스타틴’이 흔히 근육통과 간수치 상승을 유발하며, 드물게 당뇨병에 걸릴 확률을 높이고, 최악의 경우 치매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접했다. 어떤 증언에 따르면 그 약은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는 약’이자 ‘사람 바보 만드는 약’이며 ‘대형 제약회사의 음모’였다. 그는 좋은 콜레스테롤과 나쁜 콜레스테롤이라는 개념 자체가 글로벌 제약회사와 그들의 로비를 받은 의사들의 결탁으로 탄생했을 가능성과 어느날 ‘조용한 암살자’가 자신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죽일 가능성 사이에서 헤매다가 가장 만만한 식습관에 엄격해졌다.

모든 음식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는 식품 포장지의 성분표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됐다.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당류는 독이었다. 가전제품을 배송하다 허기질 때 한두개씩 주워 먹던 초코파이를 끊었다. 오후에 쉼터 자판기에서 뽑아 먹던 달달한 커피도 끊었다. 식이섬유는 권장됐다. 귀리에는 베타글루칸이, 고등어에는 오메가3가, 호두에는 식물성 스테롤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먹을수록 좋았다. 귀리죽이 축축한 휴지 맛이라는 게 힘들지 않았다. 삼겹살이나 프라이드치킨을 퇴출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늙어서인지 과민해져서인지 예전과 달리 까다롭게 반응하는 몸이었다. 건강식단조차 툭하면 소화불량을 일으켰다. 그 겨울, 식이섬유 섭취를 위해 그녀가 맛있게 무쳐낸 봄동겉절이를 실컷 먹었다가 그는 배탈이 났다. 생채소보다 익힌 채소가 부담이 적음을 배웠다. 사십대부터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소화하고 비우고, 그럴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장치들, 혈관이나 소화기처럼 너무 자동적이라 좀처럼 존재를 의식하지도 않았던 장치들이 어느새 망가졌음을 깨닫는 중이었다. 그에게 속속들이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혈당수치가 약간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건강검진에서 중대한 경고를 받지는 않았다. 척추 건강을 보존하고 하지정맥류 진전을 늦추기 위한 노력 속에서 그녀를 새로 괴롭히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검진 항목도 아니고 그에게 털어놓지도 않은 질환은 치질이었다. 일찍이 오래 앉아서 공부하고 일하던 습관, 그리고 비정기적인 변비로 인하여 간혹 항문에 통증을 느끼거나 피가 묻어나는 경우가 있긴 했다. 그러한 혹사가 이어진 게 십수년이었고, 디스크가 파열됐을 때 속옷에 분변을 묻혔던 충격 때문에 그뒤로 항문을 깨끗이 닦는 데에 집착한 게 원인일 수 있었다.

그녀는 여러번 광고를 봤기 때문에 ‘먹어서 해결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따라 해본 적은 있으나 자신이 먹게 되리라 예상한 적은 없던 치질약을 약국에서 구매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차도는 전혀 없었다. 좌욕을 병행해야 효과가 있을 듯했으나 그녀는 좌욕기를, 그 못생긴 대야를 자신의 욕실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가 좌욕기를 발견하고 그 용도를 알아차릴 필연적 상황도 싫었다. 그가 집에 올 때마다 좌욕기를 숨길까도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찜질방에서 발톱을 내밀었을 때처럼 다시 뻔뻔하게 이 관계를 흔들어서 어떤 열매가 떨어지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용감하다 못해 무모한 특수요원과 그의 의로운 동료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인공지능의 위협을 저지한다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할리우드 액션 배우는 늙지도 않는다는,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안 왔고 갈수록 덜 오는 것 같기도 하다는 대화를 하다가 그녀는 말했다.

“저는 치질이 생겼어요.”

그녀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통증도 있고 출혈도 있어요. 살덩이 같은 게 삐져나와서 불쾌할 때도 많아요. 어떤 때는 신경 쓰여서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대요?”

그가 욕실 한쪽에 좌욕기를 걸어두기 위한 행거를 달아줬고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좌욕을 시작했다. 쌀쌀한 욕실에서 따뜻한 물에 엉덩이를 담그고 있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규칙적이고 편안한 배변을 위해 그녀도 자극적인 음식을 끊으면서 두 사람의 식단은 점점 비슷해졌다. 그들은 치킨이며 떡볶이 같은 안주로 끼니를 때우고 생맥주도 마시던 호프집, 연인으로서 처음 건배했던 그 사적지에도 발길을 끊었다. 잡곡밥과 고등어구이에 반찬으로 삶은 양배추와 미역초무침까지 차려주는 동네 식당에 자주 가게 되었다. 건강해지고 싶었고 건강해져야만 했다. 건강을 의식하다보니 몸에 좋은 음식이 맛도 좋게 느껴졌다. 비리고 끈적했던 미역도 꼭꼭 씹다보니 짭짤하면서 달큰한 감칠맛이 우러났다. 젖은 휴지 같았던 귀리죽도 담백하고 고소해졌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뀐다는 게 이런 원리였는지 의심하며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 편식했다. 명절은 습관이 흐트러질 수 있는 위기였다. 그녀는 본가에 가지 않았으므로 식단을 유지하기가 수월했다. 동생과 만나긴 했지만 그애가 새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는 중이라며 ‘피트니스까페’에서 샐러드를 먹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는 고향집에 내려갔고 늙은 어머니가 편치 않은 몸을 움직여 차려낸 밥상으로 그를 맞이했다. 뭐든지 집에서 해 먹어야 건강하다고 믿는 분이었다. 그는 돼지고기 수육에 붙은 지방과 동태전이 머금은 식용유가 LDL-콜레스테롤 수치를 상승시킨다는 점을 상기하며, 소량의 쌀밥을 데친 나물 반찬 위주로 먹었다. 이상지질혈증 위험을 설명했음에도 아버지는 “원래 검사하면 다 그렇다”라며 왕성한 식욕으로 밥을 두그릇이나 비웠다. 그런 명절 후일담을 나누며 두 사람은 골고루 먹고 무럭무럭 자라면 온 세상이 칭찬해줬던 시절을 함께 그리워했다. 아직도 그들을 어린이 취급하는 부모를 빼면, 세상은 이제 최선을 다해 골라 먹어야 칭찬해줬다.

 

그들은 체질이 약하다고, 운이 없었다고,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강하다. 사람들이 그 잠재력을 발휘할 만큼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을 뿐이다. 훈련은 괴롭다. 숨이 가빠지고, 근육이 타들어가고, 멀쩡하던 팔다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멈춘다. 그들은 몸의 신호를 ‘경고’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몸이 자신을 깨우는 ‘경적’이다. 나는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훈련시켜왔다.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신체적 문제가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다는 것이다. 몸을 방치하고, 편안함에 안주하고, 스스로의 어리광에 관대해질수록 몸은 조용히 약해진다. 이 책은 그런 타협을 권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단순한 사실 하나만 말하겠다. 자기 몸을 지배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지배하지 못한다.

 

식단을 관리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기능식품을 종류별로 챙겨 먹고, 그 과정을 서로 지켜보고 독려하며 반년이 흘렀다. 그는 내과에서 다시 혈중 지질검사를 받았고 의사에게 당장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겨우 4퍼센트쯤 떨어져 여전히 ‘매우 위험’군에 해당했다. 그는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으며 대개는 계속 먹는다는 약, 스타틴을 처방받아서 돌아왔다. 효과는 불분명하고 부작용은 뚜렷한 과장광고 상품일 수도 있었고 인류가 심혈관계 질병을 저지하기 위해 개발한 혁명적 치료제일 수도 있었다. 어느 주장이든 과학의 이름으로 논문과 통계를 들이밀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주방에서 미지근한 물 한잔을 따라 꿀꺽 첫 알을 삼켰다. 과학적 판단이라기보다는 투항이었다.

그녀는 항문외과에서 치핵 4기에 해당하며 수술적 개입 이외의 방법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도 각오는 했던 바였다. 매일 약을 먹고 좌욕을 해도 항문 조직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삐져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물감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진단을 덤덤히 받아들였던 건 아니다. 심호흡 따위 할 틈도 없이 불쑥 항문으로 들어온, 신속하고도 무심하게 내부를 휘젓는 전문의의 손가락도 충격에 기여했다. 평생 뭔가를 들여보낸 적 없었던 곳이라 얼떨떨한 와중에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한 자신의 항문을 봤고 수술 날짜는 한달여 뒤로 잡혔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수술 중 하나였고 시트콤에서 이따금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칼로 찢고 자르고 꿰매고 그러다 잘못돼서 변을 질질 흘릴 수도 있는 항문이 자기 항문이라는 건 웃기지 않았다.

수술은 하반신 마취로 진행됐다. 엎드린 그녀에게 간호사가 헤드폰을 씌워줬다. 철 지난 유행가를 들으며 그녀는 테이프로 벌려진 두 엉덩이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금속질의 도구, 타는 냄새 따위를 40분 동안 감각했다. 입원해 있는 2박 3일 동안 그녀는 수술을 후회할 만큼 극심한 항문 통증에 시달렸고 면회 가능 시간에 맞춰 찾아온 그에게 울고 난 눈으로 그곳을 소중히 관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와중에도 거래처가 요청한 홍보문을 작성하느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척수마취의 부작용으로 머리도 으깨질 듯 아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배변이 가장 끔찍했다. 퇴원 이틀 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가 노크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로 기진맥진하여 나온 그녀는 그대로 매트리스 위에 엎어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세탁물을 정리한 그도 옆에 드러누웠다.

그녀는 얼얼한 항문에서 피와 고름 따위가 흘러나와 거즈를 적시는 걸 느꼈다. 통상적인 예후라면 육주 정도 분비되겠지만 운이 나쁘면 일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항문에서 뭘 흘리는 사람이 됐다는 게 그녀의 자존감을 전례 없는 차원으로 끌어내렸다. 그는 그날 오후에 두대의 냉장고를 설치하고 허리에 흉흉한 시큰거림을 느끼는 중이었다. 한달 전부터 소형 가전만 받기가 불가능해졌다. 담당자는 물류시스템이 업데이트돼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무리한 배송 때문인지 이상지질혈증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허리뿐 아니라 팔다리도 저리고 온몸이 무기력했다.

“몸이 재산이라면……”

“……우리는 파산 직전일까요?”

나란히 쓰러진 두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 호흡은 몸속 곳곳에 보내는 구조신호나 마찬가지였지만 낙관적인 답은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을 구해야 할 몸, 그 몸이 악의적으로 담합해 그들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헤엄쳐주지 않는 몸은 무게에 불과했다. 헤엄을 못 치면 발버둥이라도 쳐야 했지만 그 자맥질이 힘에 부치는 날이었다.

건강하다는 게, 아픈 데가 없다는 게 무슨 느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숨이 차도록 껴안고 뒹굴고 달리고 헤엄치던 때가 있긴 있었는데 그때는 굳이 건강을 의식하지 않아서 그게 어떤 빛깔과 질감이었는지 희미했다. 선명한 사진 한장 남기지 못한 채 건강한 사람들의 세계에서 아픈 사람들의 세계로 쫓겨난 기분이었다. 집에 있는 유일한 액자는 병원에서 줬고 그 안의 자신은 환자복 차림이라는 게 울적했다. 이제 아픈 사람들의 세계에서 사는 거라고, 나는 아픈 사람이라고, 더 아픈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렇다고, 옆에 있는 한 사람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격이 기껏해야 환자라는 게 싫어졌다.

파산은 아직이더라도 가파르게 우하향 중임은 분명했다. 더이상 어떤 성장도 없다는 예감이 웃음을 앗아갔다. 앞으로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십년 전에 기대했던 일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모두 이루어졌을까. 세목은 잊었어도 이십년 전, 아니 십년 전만 해도 무언가를 이루거나 그러지 못하거나가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었던 것 같았다. 뭘 이루거나 말거나 단지 살아가기 자체가 힘에 부칠 줄은, 한 생애에 수반되는 통증이 이만큼 클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 시점에서 남은 삶을 상상할 때 떠오르는 단어는 관절염, 백내장, 당뇨병, 전립선비대증, 심근경색, 요실금, 치매……뿐이었다.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았다.

누가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든, 이제 그녀는 왜 때리냐고 왜 하필 자기냐고 따지고 싶지 않았다. 무조건 잘못했으니까 그만 때리라고 빌고 싶었다. 삶이 지루하다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과거의 자신까지 포함했다. 삶은 지루한 게 아니라 지독했다. 흘러가는 대로 살라는 가르침은 무용했다. 삶은 저절로 살아지지 않았다. 삶은 비굴해지든 민첩해지든 한대라도 덜 맞으려고 동동거려야 하는 일이었다. 몸은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닦고 조이고 때우고 꿰매서 어떻게든 작동시켜야 하는 낡은 기계였다. 그 자비 없는 형벌이 막 시작됐을 뿐이며 앞으로 가혹해질 일만 남았다는 예감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했다.

“사는 게 무서워요.”

“사는 게 무섭지요.”

훗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거실, 두 사람이 엄마와 아빠의 삶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할 때, 그들은 사랑과 행복만 말할 수는 없었다. 삶에는 형벌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때로 그게 전부였으므로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우리는 아팠고 바빴고 무서웠고, 너를 낳아서 키우기는 더 무서웠고, 우리가 어떤 용기를 냈는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도 네 몫의 삶을 겪으며 알게 되겠지…… 하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네 삶은 무서운 게 아니기를, 사랑과 행복으로만 가득하기를, 영영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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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칠순이 넘은 노인이 해외에서 주문할 게 있을지 의아해하면서도, 어머니의 부탁으로 관세청 홈페이지에서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발급받아준 적이 있었다. 각종 질환 때문에 집 안에 오래 머물게 되고부터 어머니의 낙이 자잘한 모바일 쇼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어머니는 주전부리며 잡화를 싸게 샀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월병, 대추야자, 메모리폼 베개, 손목보호대, 낙상 방지 매트 따위가 그가 익히 아는 장판이나 이불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먹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을 스스로 구할 수 있음에 안심했으나, 머지않아 그 노인이 “주문한 물건이 안 와”라고 전화기 너머에서 말했을 때 한숨을 쉬게 됐다.

어머니가 허리 마사지기를 주문했다는 쇼핑몰은 그는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접속해보니 모든 상품 페이지가 어색한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본적이 중국 같기도 라오스 같기도 싱가포르 같기도 한, 정체가 불분명한 웹사이트였다. 배송조회는 먹통이었고 국내 대표전화나 고객센터도 없었다. 어머니는 “뭘 누르다보니까” 그 사이트에 가게 됐으며, 국산보다 훨씬 싸기에 주문했다고 잘못한 아이처럼 변명했다. 그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웹사이트 하단에 그나마 깨알같이 적혀 있는 이메일주소로 배송 문의를 넣었다. 답장은 없었다.

마사지기는 한달여 만에 배송이 되긴 했다. 어머니는 다행이라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사진으로 봐도 형편없이 조잡한 제품이었다. 한국어 설명서가 없다고,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다는 전화에 그는 다시 한숨을 쉬게 됐다. 그러게 왜 알지도 못하는 사이트에서 이상한 물건을 샀냐는 핀잔에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가 허리가 아프잖아.”

그는 주말에 자기가 집에 가서 봐줄 테니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그녀에게 말했다.

“부모님 댁에 다녀와야겠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잘 다녀와요.”

그녀는 치질에서 원만히 벗어나는 중이었다. 칠주차에 이르자 분비물은 멎었다. 배변시 통증이나 출혈도 없어졌다. 평생 길들여온 신체기관을 인위적으로 자르고 꿰매서 일어난 변화에 적응하느라 몇몇 민망한 순간들은 있었다. 그는 적당히 모르는 척하기도 했고, 그녀가 버블좌욕을 할 수 있도록 작은 기포발생기와 호스를 사다가 설치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일부를 염려당하는 게 싫은 건지 좋은 건지 헷갈렸다. 뜨끈한 물속에 엉덩이를 담그고 보글보글 공기방울 마사지를 받다보면 기분이 퍽 괜찮았다. 이전 삶에서 누가 자신의 엉덩이까지 걱정해줬는지 돌아보다가, 그게 그들의 무심함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여주지 않은 것을 걱정할 수는 없었다.

동생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이 새로 찍은 몸 사진으로 바뀌었다. 그애는 언젠가 언니의 엉덩이를 걱정한 적이 있었다. 힙 딥 때문에 바지핏이 안 예쁘다고, 중둔근을 채워야 한다고 말이다. 최근 피드에 따르면 동생은 곧 개최될 크로스핏 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바벨과 철봉과 밧줄, 하얀 가루로 범벅이 된 채 군데군데 살갗이 붉게 까진 손바닥. 그녀는 동생에게 새 사진이 멋지다며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동생은 “완전 건강”이라고 근육질 이모티콘과 함께 답했다. 그녀는 부모님도 건강하시냐고 물었고, 동생은 아마 그럴 거라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답했다. 그 무소식이라는 단어의 전에 없던 느낌 때문에 그녀는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본가를 찾은 그는 어머니가 산 조잡한 허리 마사지기를 잠시 만져보고 대략의 작동법을 파악했다. 그것을 어머니에게 이해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마사지기의 버튼 아이콘이 직관적이지 못했으므로 그는 네임펜으로 ‘진동’이며 ‘온도’ 같은 단어를 써넣었다. 어머니의 허리 밑에서 마사지기가 썩 정교하지 못한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괜찮네” “쓸 만하네” 같은 소리를 하며 어머니는 누운 채로 휴대전화를 계속 톡톡 눌렀다.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냐는 그의 물음에 어머니는 쇼핑앱에서 하루에 두번씩 룰렛을 돌릴 수 있다고, 쿠폰이 걸려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오늘 룰렛은 그가 돌려보라며, 아들 운 좀 빌리자고 했다. 그는 한번은 꽝, 한번은 1,000원 쿠폰을 뽑았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는 쇼핑앱 말고도 정체 모를 앱들이 여럿 보였다. 그의 물음에 어머니는 신이 나서 그것들을 설명했다. 몇걸음 걸을 때마다 현금을 적립해주는 앱, 실행할 때마다 복권을 주는 앱, 정해진 시각에 켜두면 나중에 비싸질 수도 있는 암호화폐를 채굴해주는 앱…… 어머니는 휴대전화로 열차표를 예매하지 못했고 택시도 부르지 못했으며 정부 서비스에 로그인하기 위한 본인 인증조차 어려워했다. 그가 알려줘도 그때뿐이었다. 그런 노인의 휴대전화에 그 의심스러운 앱들은 잘도 파고들어 있었다. 그 모든 게 무엇을 사고팔고 있는지를, 하루하루 어머니를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이해하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차라리 허리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는 자기도 아팠었고, 공부했고, 수술도 받았는데, 이런 식의 마사지기는 협착증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짧은 대화 후 그는 구년 전에 어머니가 양방향 내시경으로 척추관 감압술을 받았음을 알았다. 병원에 가고 치료를 받았다는 무수한 일 중에 하나로 흘려들었던 터라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옷자락을 들춰 허리를 보여줬다. 양방향 수술을 받아서 흉터가 두개임을 그가 확인했다. 그도 옷자락을 들춰 허리를 보여줬다. 단방향 수술이라서 흉터가 한개임을 어머니가 확인했다. 그는 모자가 번갈아서 서로의 수술 자국을 확인하는 꼴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면서, 등 뒤에서 어머니가 “젊은 놈이 벌써 허리가 시원치 않냐”라거나 “잘 아물었네”라며 되는대로 떠들게 두었다. 어머니는 그에게도 새로 산 마사지기를 사용해보라고 떠밀었다. 뜨끈뜨끈하면서 꾸물꾸물거리는 굴곡에 허리를 맡기고 있으니 시원해지는 것도 같아서 그는 대충 괜찮다고, 잘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마사지기는 두달이 못 가 고장났다. 그는 더 좋은 마사지기를 골라서 어머니 앞으로 주문했다.

그녀의 연락에 부모님은 “네가 웬일이냐”로 답하며,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에서 트래킹을 마친 참이라고 사진을 몇장 보내왔다. 여행은 그들이 정년퇴직 후의 여유를 누리는 방식 중 하나였다. 이주일 뒤 본가에서 부모님을 마주한 식사자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님이 저렇게 늙었던가 새삼 느끼며 모처럼 용기를 내어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물었다. 두분은 “너만 잘 살면 우린 아무 걱정이 없다”고 답했다. 그 말과 그 말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잔소리들을 그녀는 십여년 전부터 들었으므로, 두분에게 ‘잘 살기’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았다. 명함이 있고 보험이 있고 연금이 있는 직업, 명절에 찾아와 넉살을 부릴, 마찬가지로 명함과 보험과 연금이 있는 사위, 재롱을 떨 만큼 천진하면서 상장을 타 올 만큼 똘똘한 손주…… 예전이라면 그녀는 그래야만 잘 사는 거냐고, 자신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대거리를 했겠지만, 그 대화를 십여년째 반복하기가 피곤했고 이제 자기가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전만큼 확신도 안 들었다. 그녀는 부모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직업도 불안정하고 남편도 없는데 허리디스크에 하지정맥류에 치질까지 난리가 났다며, 아무래도 자기는 시원치 않으니 어머니 아버지는 알아서 건강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물로 사 간 수삼을 내어놓고 하루에 한뿌리씩 생으로 씹어 드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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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심상치 않은 위화감 속에서 눈을 뜬 건 수술로부터 이년이 지난 겨울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바닥을 딛자마자 허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수납장에 넣어뒀던 허리보호대를 차고 택시를 불렀다. 허리를 덜 굽히려 애쓰며 엉거주춤 뒷좌석으로 기어들어가자,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가 “어디 편찮으시냐”라며 말을 붙였다. 그가 허리를 다쳤다고 대답하자 그 기사는 자기도 허리가 안 좋다며, 가끔 걷지도 못해서 죽을 맛이라고 푸념했다. 가시는 병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수술은 의사가 권해도 절대 하지 말라고, 그건 허리를 아주 ‘조지는’ 짓이자 뭘 모르는 사람들이나 당하는 상술이라며, 자기도 십년 넘게 안 하고 버티는 중인데 살 만하다고 우렁차게 떠들었다. 뒷좌석에 모로 누워 실려가며, 그는 이미 수술을 했다고 말하지는 못했고 자식 얘기로 이어지는 그 어르신의 수다에 추임새만 넣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병원은 전보다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친절한 사무원은 양해를 구하는 표정으로 대표원장이자 신경외과 전문의인 장필혁이 개인 사유로 당분간 휴진임을 알렸다. 다른 의사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방금 전 택시기사에게 별점을 부여하라는 알림이 왔다. 그는 별 한개를 누르려다가 죽을 맛이면서도 살 만한 삶을 생각했다. 엉거주춤 택시에서 내릴 때 들린, “모쪼록 잘 나으십시오!”라는 파이팅 넘치는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는 그 기사가 친절했으며 최적경로로 편안히 운행했고 택시 내부가 청결하고 차내 용품은 유용했다는 모든 항목을 긍정하고 별 다섯개를 입력했다.

젊은 의사는 모니터에 두 눈을 고정한 채 그를 맞이했다. 짧은 문진 후 한참을 기다려 MRI를 찍었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예전에 수술했던 요추 3-4번 디스크는 멀쩡했다. 그 아래 요추 4-5번 디스크에 퇴행성 변화가 나타난 게 문제였다. 같은 시기에 설치한 형광등이 비슷한 시기에 깜빡거리다 하나둘 순서대로 꺼짐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에는 그가 당황하거나 항의할 만한 여지가 없었다. 아직 터지진 않았고 부은 상태라고, 수술이 당장 필요하진 않으니 당분간 약물치료를 하며 안정을 취해보자는 진단이 그나마 긍정적이었다. 국소마취제가 섞인 소염주사를 맞자 통증이 완화됐다.

그가 당분간 배송 일을 쉬며 디스크 관리에 신경 써야겠다고 푸념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집에 와서 요양하라고 제안했다. 말해놓고 보니 그게 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지는 불분명했다. 병원이랑 한 정거장쯤 더 가깝다는 이유는 구차했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낫겠지요?”

“그게 낫지요.”

그는 그녀의 집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첫 숙박은 아니었지만 연속적인 체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생경했다. 각자가 한 시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생활습관들 몇몇이 부딪치는 때도 있었으나 척추와 혈관과 항문의 무자비함에 비하면 상대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고 분리배출 방식이나 세탁 빈도 따위는 타협이 가능했다. 자기 발톱을 맡겨야 하는 사람과 싸우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오랜만에 그의 발톱을 깎아줬고 이번에는 피를 내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눕고 조금씩 걸으며 요양했다. 허리를 보전하는 선에서 청소도 하고 식탁도 차렸으며 그건 그녀가 일에 집중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그는 그녀의 집에서 통원하며 스테로이드와 히알루론산 주사를 맞고 전기와 레이저 물리치료를 부지런히 받았다. 한달이 지나자 통증이 얼마간 완화되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안도하지 못했다. 두번째 고장은 세번째를 예고하며 고쳐 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그는 고객들에게 자주 말했었다. 새 가전제품을 구매한 게 현명한 일이었다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확신시키는 편이 유리했다. 그가 무수히 수거했던 폐가전들, 대개는 완전히 고장나기 전에 버려진 그 제품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됐는지 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주 찾는 동네 식당, 혈당 관리를 위해 ‘거꾸로 식사법’을 실천하던 두 사람이 먼저 나온 채소 반찬부터 집어 먹는 동안 텔레비전 속 앵커가 전황을 알렸다. 여기는 아홉명이 죽었고 저기는 육천명이 죽었다고 했다. 하루에만 수십기가 발사됐다는 그 미사일이 한기에 200만 달러, 한화로 29억원이라고 했다. 환우까페에는 주삿값 십몇만원이 부담스러워서 아파도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두 사람은 그래도 한국은 병원도 있고 의사도 있고 의료보험도 쓸 만한 편이라고 끄덕이다가, 분진에 뒤덮인 텔레비전 속 나라는 어떨지 생각했다. 그 나라 사람들도 척추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 이도 척추는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젊은 시절에도 새삼스러운 전쟁이었지만, 자신들이 작은 몸이라도 건사하기 위해 구차한 노력을 이어가는 지금, 어딘가에서는 건강한 사람들이 일부러 죽고 죽인다는 게 문득 낯설었다.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그런 명령을 따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척추가 있는 종업원이 그날따라 퉁명스럽게 찌개와 고등어구이를 내려놓고 갔다.

그는 젓가락으로 큼직한 고등어구이를 발라내다 멈췄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하얗고 촉촉한 속살 가운데 머리부터 꼬리까지 이어진 굵직한 등뼈. 그게 고등어의 척추라는 생각이, 자기가 무수히 싹싹 발라내고 뚝뚝 부러뜨린 것들이 살아 있던 무엇의 뼈라는 생각이 그의 젓가락질을 잠깐 붙들었다. 그녀는 웃어넘기지 않았다. 자기도 감자탕을 먹다가 그게 돼지의 척추뼈이고 거기 붙은 꼬들꼬들한 게 디스크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등어의 하얀 살점을 떼어내 꼭꼭 씹어 먹었다. 그것이 제공하는 단백질과 비타민과 불포화지방산에 감사했다. 아직 막히지 않은 혈관과 끊어지지 않은 힘줄이 그것들 덕분임을 곱씹었다. 살려면 다른 무엇을 먹어야만 한다고 짐짓 단호해졌다. 어차피 먹고 먹히고 돌고 도는 세계라는 말을 방패 삼았다. 그러나 그 말에 의지하려면 자기도 누군가에게 살점을 내어놔야 앞뒤가 맞았다. 어린 시절 듣고 읽은 옛이야기로부터 유래됐을 수도 있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저의는 두 사람이 합의에 이르는 데에 도움이 됐다.

“계산을 해보자고요.”

“계산은 중요하지요.”

그는 자신의 전셋집을 아주 정리했다. 이삿짐은 작았다. 그가 그녀의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분하는 새 기준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가 첫날 이삿짐에서 꺼낸 물건 중에는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이 선물한 기념사진도 있었다. 거실 책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액자 두개가 나란히 놓였다. 복사한 듯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장필혁을 사이에 두고 환자복을 입은 그와 그녀가 초췌한 몰골과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병실에서만큼이나 두 사람은 닥쳐올 미래를 의심하기도 했다. 수술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재앙의 시작이었는지 불분명했던 것처럼, 함께 산다는 결정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기의 척추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에 비하면 서로의 기분에 대해서는 몇가지 일이 가능했다.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어떤 예후는 능력이나 의지를 떠나 시간이 증명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살려냈던 식물 한쌍도 그와 함께 이주해 창가에 자리잡았고 계절은 봄이었다.

허리보호대를 찼던 깡통로봇 시절처럼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하루하루의 변화를 적립했다. 대출이자를 비롯한 생활비를 아끼고 가사를 분담할 수 있으며 버리는 식재료도 줄어들 거라는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계산 밖의 이득도 있었다. 그는 그녀의 수건과 러그와 침구에 밴 향기가 좋았다. 그녀가 기분에 따라 바꾸는 비누와 샴푸와 바디워시는 그가 맡아본 적 없는 향기를 냈다. 퇴근 후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욕실을 나선 어느 저녁, 그는 그의 삶을 통째로 비눗물에 헹군 느낌에 잠시 나체로 서 있었다. 오가던 그녀가 무슨 대담한 짓이냐며 멈춰 서서 관람했다. 깜깜한 밤에 현관문이나 창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면 그가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문단속을 하고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서 전등을 켜놓고 침실 문을 잠그고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눕는 밤이 없어졌음을 두달쯤 지나서 알아차렸다. 이제는 만날 수 없으며 만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또 나타나버린 꿈에서 마음이 온통 헤집어진 채 눈을 뜬 새벽, 옆자리에서 달게 자고 있는 새 연인의 존재는 위로가 됐다. 그 희미한 코골이를 듣다보면 그녀는 떠나고 떠나보낸 옛 사람들과 그녀 자신과 또 모두가 오래도록 평화롭기를 기원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의 죽음을 알게 된 건 그해 겨울이었다. 잔통증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그가 병원 이름도 대표원장도 바뀌었음을 발견했다. 낯익은 듯도 한 사무원에게 영문을 묻자 그이는 양해를 구하는 얼굴로 예전 대표원장님, 즉 장필혁이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안내해주었다. 무슨 암인지는 그이도 잘 몰랐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녀가 인터넷에 검색하자 ‘별세’라는 명확한 단어가 포함된 세줄짜리 부고가 나왔다. 장필혁(전 바른마디병원장, 향년 59세)씨 별세. 오미숙(마레문화재단 이사)씨 남편상, 장수민(법무법인승광 변호사)·지민(보스턴PE 아시아태평양 컨설턴트)씨 부친상, 서기준(강남새빛의원 원장)씨 장인상…… 발인은 두달 전이었다. 두 사람의 액자 속에서 장필혁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은 그 사진을 찍었을 때 장필혁의 몸이 이미 암세포에게 잠식당하고 있었을지, 장필혁도 그것을 알았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는 다음 검진 때 대장 내시경 검사도 받자는 결심으로 이어졌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며칠 뒤 체온을 나누고 거실에 드러누운 두 사람은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장필혁의 시선을 느꼈다. 액자 속의 그 사람은 역시 죽었다. 죽었다는 건 이제 없다는 뜻이었다. 반라의 살갗에 소름이 돋았다. 있던 것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단순한 진실이 그들을 다시 겸허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장필혁이 가장 충직한 사제였는지 가장 불경한 배교자였는지 생각해봤으나 알 수 없었다. 그이를 때려죽인 몽둥이가 그런 걸 신경 쓰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몽둥이를 쥐고 들이닥치는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장필혁이 뭐라고 말했을지를 상상하면 한문장만이 어떤 경구처럼 떠올랐다.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입니다.”

장필혁은 바른 자세로 서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허리 굽혀 인사도 했을 거라고 그들은 상상했다. 당신은 뭐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겨울바람이 베란다 창문을 두들겼다. 웃풍 때문에 찬 기운이 거실에 스몄다. 두 사람은 담요를 끌어올려 헐벗은 몸뚱이를 감췄고, 천장을 보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가전제품 설치기사 김승환입니다.”

“프리랜서 에디터 이희림입니다.”

“……”

“……”

“1종 대형 운전면허 보유자 김승환입니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 보유자 이희림입니다.”

“……”

“……”

“육군 병장, 아니 민방위도 끝난 김승환입니다.”

“고등학교 삼년 개근상 이희림입니다.”

“……”

“……”

“디스크 환자 김승환입니다.”

“나도 디스크 환자 이희림입니다. 그리고 하지정맥류 환자 치질 환자 이희림입니다.”

“이상지질혈증 고위험군 김승환입니다.”

“건강보험을 축내는 불량국민 이희림입니다.”

“……”

“발톱 깎기 전문가 이희림입니다.”

“……”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천장을 보는 채로 말했다.

“이희림 보호자 김승환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제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 눈을 보며 말했다.

“김승환 보호자 이희림입니다.”

훗날 어느 일요일 오후의 거실, 두 사람이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할 때, 그들은 이 액자 아래에서의 대화를 공식적인 프러포즈로 채택했다. 기억에 사소한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에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네 아빠가 “이희림 남편 김승환입니다”라고 말했고, 네 엄마는 “김승환 아내 이희림입니다”라고 말했고, 그건 혼인신고도 결혼식도 하기 전의 일이었고, 신경외과 전문의 장필혁이 주례선생님처럼 미소 지으며 액자 속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고……

 

인간의 몸은 업그레이드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다른 차원의 진보, 바이오해킹이 시작됐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기업가 조너선 블랙웰입니다. 그는 연 2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며 자신의 몸을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게 조정되는 생물학적 장치로 만들고 있습니다. 매일 엄격하게 계산된 식단에 100여종의 영양제가 처방되고, 알고리즘 기반의 수면과 운동을 수행합니다. 전신 MRI, 혈액검사, 장내 미생물 분석도 반복하지요. 주기적으로 아들이나 젊은 기증자의 혈장도 수혈받습니다. 목표는 단순한 건강이 아닙니다. 노화를 해킹하는 것이지요. 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또 있습니다. 제프 맥칼리스터와 유리 말론코프가 투자한 헬릭스포지는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세포 재프로그래밍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야마나카 인자를 이용해 노화된 세포를 젊게 되돌리려는 시도입니다. 세바스찬 브린이 지원하는 액시엄은 장기 재생과 유전자치료 기술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시도를 괴팍하다거나 불경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인류의 한계는 늘 집념에 찬 모험가들에 의해 확장됐습니다. 항해가들은 바다를 건넜고 로켓 엔지니어들은 우주로 올라갔습니다. 몇십년 뒤 우리는 영생을 개척한 첫번째 세대로 기억될 것입니다. 새로운 금광을 향한 탐험선에 비전 있는 투자자들은 이미 탑승 중입니다. 문제는 단 하나, 당신에게도 용기가 있는지입니다.

 

혼인신고는 간단했다. 구청 종합민원실 안에는 신고를 마친 부부를 위한 포토존도 있었다. 기념촬영과 인화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배너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은 조화와 풍선, LED 하트로 장식된 포토존에 어깨를 붙이고 섰다. 앳된 공무원이 몸을 굽혀가며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줬다. 출력된 사진을 담은 액자, 그리고 영문 모를 태극기를 기념품으로 받았다. ‘두 사람의 소중한 인연을 축하하며 앞날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은 종이가방을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액자는 책장 위에 놓였다. 이희림과 김승환은 이제 같은 액자 안에 존재했다. 결혼식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 사진이 그대로 웨딩사진이 됐다.

결혼식 계획이 없다는 말에 양가 부모님은 당황했고 두 사람의 예상보다 크게 반발했다. 결혼식이 며느리나 사위의 사람됨보다 중요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많이들 죽어서 올 손님도 없긴 하다”며 비교적 일찍 포기했다. 그녀의 부모는 더 완강했다. 그녀는 그냥 무시했다. 돌려받아야 할 축의금이 있다면 둘째 결혼식에서 돌려받으라고 통보했다. 그녀의 부모는 한동안 타이르고 부탁하고 화를 내다가 결국 포기했다. 딸이 짝을 만남으로써 그들의 기준 일부는 만족시켰으므로 결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동생은 축의금 회수를 왜 자기한테 떠넘기냐며 짜증을 냈지만 하객을 더 받는 게 싫지는 않아 보였다. 그애는 언니의 결혼에 회의적이었는데, 한번은 그걸 ‘문제기업 인수’라고 표현해서 그녀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리는 얼굴도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갱신됐다. 어린 시절 처음 자기만의 방을 가졌을 때처럼, 두 사람은 처음 자기만의 가족을 가진 듯 은밀하게 아늑해졌다. 어떤 날에는 가족이라는 게 참 좋아서 한명 더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둘이라면 하나가 죽었을 때 혼자지만, 셋이라면 하나가 죽어도 둘이었다. 두 사람은 마흔네살이 임신과 출산에 무난한 나이가 아님을 알았다. 아이가 생길지, 그 아이가 건강할지,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오다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진 않을지 불확실했다. 그 아이가 풍족하게 자라도록 뒷받침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세상에 몽둥이만 있을까. 천사와 악마, 당근과 채찍, 빛과 그림자, 음과 양처럼 원래 다 짝을 이뤄서 존재한다는 가설에 기대보고 싶었다. 이를테면 세상에는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축복하는…… 꽃다발 같은 게 있어서, 그 꽃잎 한장이 자신들 사이로 내려앉을 수 있음을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 상상했다.

두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에 불확실한 방법으로 투신해보기로 했다. 딱 일년만, 지겨운 병원에는 가지 말고 오직 서로의 몸과 그 무분별한 꽃다발에 도박을 걸기로 약속했다. 둘의 나이라면 일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했을 때 자연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10퍼센트 미만이었다. 그 확률을 통과한다면 나머지는 꽃다발이 알아서 해주리라 믿기로 했다. 병원을 알아보진 않았지만 그녀는 달고 살던 커피를 허브티로 바꾸었고 매일 엽산과 비타민D와 코엔자임을 챙겨 먹었다. 그는 이상지질혈증 약을 끊었다. 아이에게 혹시 미칠지 모르는 부작용이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보다 중요했다. 액자 아래에 작은 탁상달력이 놓였다. 확률 높은 시기마다 부지런히 관계를 가지는 게 가끔 노동처럼 느껴짐을 두 사람은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그 노동의 애환을 나누는 농담과 놀이들을 개발했고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식의 대화도 그중 하나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 될지, 서로에게서 무엇을 가져다 닮아야 할지, 부모를 어떻게 기쁘게 하고 어떻게 실망시킬지 상상하는 놀이는 질리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 노력과 별개로 삶에는 삶대로 대금을 치러야 했다. 그는 허리에 잔통증을 달고 살았다. 위험은 얼마든지 있었다. 식기세척기를 설치하러 갔을 뿐이지만 고객들은 온 김에 냉장고 위치도 조금만 옮겨달라고, 냉장고도 같은 기업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가전 대기업과 아무 관계가 없었고 어떤 혜택이나 보호도 받지 못했지만 고객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고객 평점이 낮아지면 배차에 불이익을 받거나 계약이 해지될 테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 부탁을 하는 고객들이 대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게, 그들의 부엌에 꼭 자기 어머니의 것과 같은 조잡한 보행기가 있다는 게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마음을 곱게 쓰면 좋은 일로 돌아올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그는 냉장고를 밀고 세탁기를 들었다. 고객이 부탁한 쓰레기봉투까지 내다버리고 나면 땀으로 흠뻑 젖을 때도 있었지만, 그 축축한 땅에서 꽃씨가 빼꼼 싹을 틔울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도 부지런히 일했지만 계약은 하나둘 사라졌다. 더 유리한 위치에서 노출되도록 구인 플랫폼에 비용을 지불해 자잘한 일감을 이어갔지만 업계 자체가 쪼그라드는 데에는 별수 없었다.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하던 그녀는 부업으로 온라인 판매업을 시작했다. 아이템은 건강 관련 생활용품이었다. 허리디스크와 하지정맥류, 치질을 직접 앓아본 경험을 브랜딩한다면 승산이 있을 듯했다. 소셜미디어에 ‘여기저기 아픈 여자’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개설했고 사람들이 우스개로 삼을 만한 콘텐츠를 업로드했다. ‘애인이 수족관용품으로 버블좌욕기 만들어준 이야기’가 반응을 얻었다. 과장은 했지만 거짓말은 안 했다. 쓸 만했던 등받이쿠션이며 치질방석이며 스트레칭밴드를 중국 쇼핑몰에서 사입해 ‘여기저기 아픈 여자’의 팁이 포함된 새 패키지로 배송했다. 플랫폼 수수료를 제하고 나면 계속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수익만이 남았지만 간혹 효과를 봤다는 리뷰를 읽는 재미로 그럭저럭 꾸려갔다. 콘텐츠는 걱정만큼 빠르게 고갈되지 않았다. 그녀 혹은 그가 정말 계속 여기저기 아팠기 때문이다.

디스크를 재생시키는 줄기세포는 개발되지 않았다. 척추를 치아 임플란트처럼 갈아 끼울 수 있게 됐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약해진 허리는 너무 많이 움직여도 너무 안 움직여도 아팠다. 미세한 신경통은 스트레스든 소화불량이든 수면 부족이든 여러 이유로 발생할 수 있었고 심지어 기압이나 습도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몸이 쑤시니 비가 오겠다고 말하던 어르신들이 과장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우리도 날씨를 감각할 수 있는 몸이 된 거냐며 흐린 날이면 초능력자 행세를 했다. 아이가 찾아오길 기다렸던, 그저 기다렸다고 하기엔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일년 동안에도 그들은 각종 신체적 이상과 불편을 겪었다. 그들이 실제 진단받거나 의심했던 병명은 다음과 같다. 감기, 과민성대장증후군, 갑상선기능저하증, 알레르기성피부염, 역류성식도염, 방광염, 우울증…… 새 질환을 다스리며 임신을 위해 종종거리는 사이 창가를 지키던 식물 한쌍이 차례대로 수명을 다했다.

누군가 병들었거나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들은 혼날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자신은 줄의 어디쯤인지 목을 빼고 두리번거렸지만 지나간 삶과 닥쳐올 삶을 가늠해도 자기 순서는 알 수 없었다. 반 이상 온 듯했지만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은 건지 반이나 남은 건지 운운하는 옛이야기를 교훈 삼았고, 반이나 남은 그들의 인생에 아이가 어떤 즐거움을 줄지 상상했다. 일요일 오후면 두 사람은 거실에 누워 그들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어떻게 전할지 논의했다. 기억에 사소한 차이는 있었으나 한밤의 병동으로부터 한낮의 거실에 이르기까지, 비밀로 남겨둘 일부를 제외하고 중요한 장면들이 그럭저럭 꿰어졌다. 대화가 누적될수록 어쩐지 그들의 이야기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식의 전형적인 고난과 보상의 서사를 닮아갔다. 그들이 겪었던 모든 통증에는 이유가 부여되었다. 그 이유란 아이였다. 그들의 공식적인 역사란 그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그 아이에게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그녀의 뱃속에서 방금 첫번째 세포를 구성했을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서둘러 결말을 말해주기도 했다. 너는 미로 끝의 보물상자야. 너는 동굴 속의 금화고, 난파선에 감춰진 왕관이며, 가시덩굴로 감긴 탑 위의 공주나 왕자, 혹은 둘 다야. 너는 기대할 게 남아 있지 않던 세계에 일어난 사건이야. 네가 기대야. 네가 미래야. 네가 꿈이야. 네가 우리의 꽃다발이야……

자연임신은 실패했다. 두 사람은 임신과 관련한 어떤 검사도 받지 말고 어떤 문제도 치료하지 말자는 처음의 약속을 어기기로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난임검사 결과에 남다른 이상은 없다고 알렸다. 그들은 평균적인 사십대 중반의 생식력을 갖고 있었고 그게 나름의 확률을 행사했을 뿐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딱 한번만 시도하기로 했다. 수정과 배양과 착상을 거쳐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회차당 10퍼센트 미만, 실제 안정기에 진입해 출산까지 이어질 확률은 5퍼센트 미만이었다. 한달여 동안 그녀는 병원과 집에서 스무번이 넘는 주사를 맞았고 그녀의 배꼽 주변은 바늘 자국으로 멍들었지만 배양 단계에서 실패했다. 딱 한번만 더 시도하기로 했다. 그는 그녀가 덜 아프도록 주사 놓는 요령을 익혔지만 이번에는 수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일찍 끝났다. 딱 한번만 더 시도하기로 했다. 가까스로 배아가 형성되어 착상을 시도했고 첫번째 혈액검사에서 수치는 낮지만 임신 양성반응이 나왔다. 이틀 뒤 재검에서 수치가 떨어졌고 산부인과 전문의가 임신 실패를 확정했다. 그녀는 이틀 동안 임신부였으나 이제 아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에서 그만두자고 두 사람은 합의했다. 수많은 주사와 통증과 출혈과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석하며 마음 졸이는 시간을 더 견딜 필요는 없음을, 그 모든 걸 끝없이 반복할 만큼 자신들이 아이를 원하는 건 아님을 수긍했다. 꽃다발은 예뻤다. 그것은 이틀 동안 우리의 삶에 머물렀지만 본래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 세상의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이들의 품에 안기게 되었으리라 상상하면 웃음이 났다.

두 사람은 불행하지 않았다. 마흔다섯을 마흔여섯을 지나는 동안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자기의 기분과 욕구를 다스리며 상대의 기분과 욕구를 보살피는 일이 점점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가능하게 되었다. 평화는 권태와 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했으나 둘을 구분하느라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그녀는 마트에서 진열 일을 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느꼈다. 흔히 오십견이라고 이르는 유착성 관절낭염이었다. 가장 통증이 심했던 첫 한달 동안 그가 그녀의 머리를 감겨줬다. 소셜미디어 계정을 닫은 뒤라 콘텐츠가 되진 않았다. 그의 요추 4-5번 디스크는 결국 터졌고 그는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 양방향 내시경이 그의 허리를 뚫고 두개의 새 흉터를 냈다. 그녀가 오랜만에 발톱을 깎아줬고 그가 장난으로 비명을 질렀다가 발바닥을 맞았다. 가전제품 배송과 설치는 더이상 어려웠다. 소화물 용달을 잠시 하다가 차량 대여 플랫폼 회사에 탁송기사로 취직했다. 그의 직장이었던 2.5톤 트럭은 헐값에 처분됐다. 그는 자신과 아내를 태울 경차 한대를 중고로 마련했다.

이른 봄, 그 작고 푸른 차를 타고 두 사람이 처음 향한 곳은 교외의 관광지였다. 화창한 휴일이라 차가 밀려 예상보다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산과 강을 끼고 있는 그 명소에는 화원과 까페와 백숙집이 있었고 포토존과 레일바이크와 스마트VR체험관과 조선시대에 명망이 높았다는 누군가의 묘역이 있었다. 묘역 한편의 노점에서 핫도그를 팔았는데 유래는 모르겠지만 그 관광지의 명물 먹거리로 여겨졌다.

나들이객이 많았다. 구릉을 오르고 내리고 구르고 뛰다가 넘어졌다가 일어나며 웃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로 묘역은 활기찼다. 두 사람은 이번 생에서 이미 잃어버렸거나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무엇을 떠올리기도 했으나 잠깐이었다. 미세먼지를 신경 쓰지 않고 공기를 들이마셨다. 조화로운 오후였다. 해는 아직 밝았고 바람은 벌써 따뜻했다. 커다란 비석과 그 비석 주변을 웃으며 달리는 소란스러운 생물들, 무엇을 판다거나 무엇을 금지한다는 형형색색의 현수막들, 봄바람에 섞인 삶은 고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 뭔가를 부치고 튀기는 기름 냄새마저 모종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 조화가 너무 견고하고 완전해서 자신들이 사라진들 빈자리가 티날 것 같지 않았다.

두 사람은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하얀 설탕을 묻히고 빨간 케첩과 노란 머스터드를 뿌린 통통한 핫도그 한개를 샀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 번갈아 한입씩 크게 베어 물었다. 기름진 빵과 짭잘한 소시지에 더해진 달콤하고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입안을 꽉 채웠다. 입가에 묻은 케첩과 머스터드를 서로 닦아주며 핫도그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빵과 소시지는 줄어들고 막대가 드러났다. 두 사람은 이런 말을 나눴다.

“죽는 게 무서워요.”

“죽는 게 무섭지요.”

해가 아직 그렇게나 밝았다. 젊은이들이 유행이 돌아온 오래전 옷을 입고 사진 찍고 춤췄다. 글루타치온, 콘드로이친, 레스베라트롤, 아스파탐, 아스타잔틴, 크릴오일과 해조칼슘과 산양유 단백질, 뭘 먹거나 먹지 말라는 말에 텔레비전 속 연예인 패널들이 탄식하고 박수쳤다. 두 사람은 자기들을 죽을 때까지 쫓아와 끝내 죽이고야 말 힘을 두려워했지만 죽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도망쳤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훗날의 어느 병원 대기실, 간호사가 한 사람의 보호자를 호명했을 때 다른 한 사람이 일어났다. 병실에서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나눈 이야기는 비밀조차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대화는 하룻밤 넘게 이어지진 못했고 그들 자신도 많은 날들을 잊은 탓에 자주 끊겼다. 다만 이런 기억은 일치했다. 우리가 나누어 먹었던 그 명물 핫도그는 놀랍지는 않았어도 맛있었다고, 특별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 먹어볼 만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