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미국의 전쟁, 새로운 국제연대
이남주 (李南周)
정치학자,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 비평』 편집주간.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공저서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백년의 변혁』,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문희정 (文喜楨)
국제정치평론가. MBC 라디오 「김치형의 뉴스하이킥」, CPBC 평화방송 「김준일의 시사천국」 등에 출연하며, 유튜브 채널 ‘문희정의 국제정치’ 운영.
이해영 (李海榮)
정치학자, 한신대 교수. 저서 『낯선 식민지 한미 FTA』 『안익태 케이스』 『임정, 거절당한 정부』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친일의 오늘』 『칼 슈미트, 정치신학에서 지정학까지』 등이 있음.
정현곤 (鄭鉉坤)
정치학 박사, 한반도평화포럼 이사,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사무처장.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 편서 『변혁적 중도론』 등이 있음.
이남주(사회) 안녕하세요.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이남주입니다. 최근 이란전쟁을 지켜보며 많은 분들의 마음이 착잡하고 혼란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번호 대화는 국제질서를 대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미국의 이란침공을 계기로 미국 대외정책의 문제를 짚어보고,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 방향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각자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해영 저는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이해영입니다. 국제정치와 경제 분야를 연구해왔고 최근에는 우끄라이나전쟁에서 이란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문희정 국제정치평론가로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문희정입니다. 한 방송 피디가 저를 ‘국제정치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더군요. 국제정치 하면 접근하기 어렵고 재미없게만 느껴질 수 있는데, 제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달하는 덕분에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평가였습니다. 국제정치평론가로 활동한 지 10여년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국제정세에 관심이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제사회의 주요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거나 해야 하는지, 그게 왜 중요한지를 대중적으로 설득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정현곤 반갑습니다. 남북관계 중심으로 연구하고 활동하는 정현곤입니다. 2000년 이후에 한참 동안 평양을 다니면서 남북교류에 주력했고, 요즘은 북한을 좀더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 정세에서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미국의 패권 쇠퇴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형성한 근본적인 힘이 미국이었기에 그 패권의 쇠퇴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시민실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란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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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지금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느낄 지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체 왜 저러는가입니다. 이전에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피스메이커’ 역할을 자청하며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올해 1월 3일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N. Maduro) 대통령을 체포하고 2월 28일부터는 이란과도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상대국가의 지도부를 곧장 제거해버리는 방식 등 전쟁 규범상으로도 비도덕적인 행태들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이러한 침공의 배경을 트럼프 개인의 특성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많지만, 미국의 전반적인 대외정책 역사와 구조에서 살필 필요도 있을 텐데 어떻게 보시나요?
이해영
이해영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두개의 문건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부터 짚고 싶습니다. 작년 말에 발표된 ‘NSS 2025’(National Security Strategy, 국가안보전략)와 그뒤를 이은 ‘2026 NDS’(National Defense Strategy, 국가국방전략)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미국의 핵심전략은 ‘서반구 방어’(western hemispheric defense)로, 서반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본토 중심의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거죠. 그러나 저는 이것을 ‘제국의 수축’으로 해석합니다. 지금까지 무한히 확장되던 제국적 역량이 한계에 봉착해 수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겁니다.
다만 이란 문제는 서반구 방어와는 좀 다릅니다. 1980년 서아시아·중동을 ‘핵심이익’ 지역으로 선포한 카터 독트린(Carter Doctrine)은 이후 수십년간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규정하는 근거가 되어왔습니다. 다만 이때도 미국의 대(對)이란·대서아시아 전략은 기본적으로 ‘역외균형’의 관점에서 지역 내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을 유도하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보면 이번 이란전쟁은 상당히 돌출적·돌발적 성격이 강합니다. 자신들이 설계했던 전략과 상충하고, 국제법적으로도 심각한 결함이 있어요. 누가 봐도 이란의 임박한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이번 40일전쟁(미-이란 전쟁이 39일 전투 끝에 휴전에 들어간 상황을 일컫는 말)은 탄약이나 병참의 상황만 봐도 그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습니다. 왜 이토록 성급하게 전쟁을 벌였는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와이넷(Ynet)의 기사(https://www.ynet.co.il/news/article/yokra14748698)를 보니, 이 전쟁이 이스라엘 네타냐후(B. Netanyahu) 총리와 정보기관 모싸드(Mossad)에 의해 기획되고 추진되었으며 트럼프가 동의한 것으로 해석하더군요. 원래는 6월 시작을 계획했으나 1월에 이란 내에서 발생한 시위를 보고 정권붕괴 가능성을 과대평가해 성급하게 출발했다는 분석도 담겨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핵심이익 지역인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대외정책 맥락은 유효하되, 이 전쟁을 굳이 2월 28일에 시작했어야 할 불가피한 이유나 그럴듯한 명분은 없으며 미국으로서도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트럼프 개인의 스타일이나 그가 네타냐후에게 설득당했다는 가설에도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희정
문희정 저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미국이 우선한다’가 아니라 ‘미국만이 중요하다’로 이해하는데, 여기에는 트럼프 개인의 캐릭터가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해석할 때 전통적 외교방식으로만 살펴서는 해명되지 않는 까닭이 다름 아닌 트럼프 개인의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2025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희망하며 자신이 “8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주장했어요. 트럼프에게 전쟁은 다른 나라들끼리 싸우는 것이고, 우리는 ‘미국-이란 전쟁’이라고 하지만 그는 이것을 전쟁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미국은 언제든 필요에 따라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패권국가로서 ‘천부적’ 권한이 있다고 여기죠. 이전에 미국은 이런 노골적 속내를 감추는 포장지라도 둘렀지만 트럼프는 그걸 벗어던졌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없는 포장지를 만들어서라도 미국 대외정책에 어떤 일관성이 있다고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트럼프는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며 미국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결부시키고 거래할 거리만 있다면 어디와든 한다는 식입니다. 이번 이란전쟁의 경우는 네타냐후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뇌물·부패 혐의 재판과 지지율 하락 등 본인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반드시 이란을 타격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시아파 무장정파, 친이란세력)를 붕괴시켜야만 했던 인물이 트럼프 옆에 붙은 것이지요. 트럼프 역시 엡스타인 파일(트럼프 연루 의혹을 포함해 미국 고위직 및 유명인사가 연루된 성범죄사건 파일) 논란이나 ICE(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한 미국시민 사망사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국면 전환이 절실했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와 합이 잘 맞는 사람이고 트럼프는 그와 협력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평화위원회를 만들고 네타냐후의 협력 속에서 트럼프가 종신의장에 앉지 않았습니까. 트럼프의 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드론 기업을 인수했고요. 트럼프가 중동국가를 방문하는 일이 있으면 두 아들이 항상 먼저 가서 그 나라와 사업적인 부분을 논의합니다. 이란 당국은 이후에 부인했지만, 2024년 11월에 유엔 주재 이란 대사가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만나서 ‘당신의 사업체를 이란으로 가져와서 운영해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대선 과정에서 머스크가 트럼프의 가장 친밀한 지원자였으니 그렇게라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노렸던 것인데, 이처럼 정치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기존 방식대로 살펴서는 안 맞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현곤
정현곤 네타냐후라는 변수가 있었고 2월이라는 시점은 분명 돌출적이었지만, 미국이 전쟁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21일 브런슨(X. Brunson) 주한미군사령관이 미 상원군사위원회에서 증언한 내용을 보면, 한반도 사드(THAAD) 레이더들이 2025년 6월 21일 미국의 이란 핵시설 정밀타격(미군 명칭 ‘미드나잇 해머’ 작전) 전에 이미 이동했고 아직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드 레이더의 이동은 이란 미사일에 대한 방어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해도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은 아닐 것입니다. 우끄라이나전쟁의 장기화를 보면서, 또 그전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경험도 있으니 트럼프가 쉽게 전쟁에 돌입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전쟁을 시작했을지가 궁금한데, 이란 핵이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선제공격 효과를 과신해 이란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는 있죠. 다만 미국의 전문가들 다수가 이란전쟁에 비판적인 것을 보면 미국이 가진 군사력에 대한 신뢰도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스라엘에 엮여서 전쟁은 시작되었고, 미국으로선 이란에 대한 완전 점령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전쟁은 한번 벌어지면 국제역학이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할 수 없고, 이토록 수습이 어렵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이해영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략적 방향은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입니다. 그 방법론으로 첫째는 참수, 둘째는 사보타주 및 내부 시위, 셋째는 내부 프록시로서 쿠르드(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무장세력화)가 제시되지만 최종 목표는 결국 레짐 체인지이죠.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짚어주신 사드 이동 문제도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사드 탄약이며 패트리어트 등 전세계에 있는 미사일을 다 합해도 전쟁에선 부족하고, 특히 지난해 핵시설 타격 당시에도 이란의 미사일 역량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이번 40일전쟁이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과소평가했다는 겁니다.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이스라엘은 정말 버티기 힘들 거예요. GCC(걸프협력회의) 6개 국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쿠웨이트·카타르·오만·바레인)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정현곤 종전 논의가 시작된 상황에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이란 핵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란이 보유한 약 440킬로그램 분량의 60% 농축우라늄은, 앞서 이해영 선생님 지적처럼 그것만으로 ‘임박한 위협’이라 할 수 없죠. 미국 정보기관이 확인까지 한 사안입니다. 결국 우라늄 ‘제거’는 전쟁을 위한 명분일 뿐이었는데, 문제는 종전을 하려면 그 명분이 명시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란 핵문제가 칼로 무 자르듯 명료해지기는 불가능한 소재이기 때문에 전쟁의 복잡한 양상은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남주
이남주 한번 시작되면 중지되기 어려운 전쟁의 속성을 짚어주셨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시점은 결정할 수 있지만 끝내는 시점은 결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미국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년을 싸워 탈레반에게 패배하고 미군을 철수한 바 있는데, 이번 이란전쟁에서도 난관에 봉착해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했지만, 드론이나 미사일을 이용한 이란의 비대칭전술(적의 예측을 피하며 무력 격차 및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전술)에 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동국가 내 미군기지들은 조기 경보기, 공중 급유기, 활주로 등에 타격을 입으며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해군에 의존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역봉쇄를 가하며 이란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속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스라엘도 표면적 우세와는 달리 특히 보급 문제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알자지라(Aljazeera)는 이란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국가별 사상자 수를 보도하고 있는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사망자 수는 20여명으로 비교적 적지만 부상자는 7천명을 넘었습니다(“US-Israel attacks on Iran: Death toll and injuries live tracker,” Aljazeera, 2026.5.1). 게다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가 상당한 타격을 받은 상태라 전쟁이 다시 격화되면 미군이나 이스라엘군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문희정 사실 이스라엘의 경우 정부의 보도통제로 내부의 자세한 상황들을 거의 알 수가 없는데요. 공식적으로 나오는 얘기만으로도 심각합니다. 지난 3월 말 이스라엘 참모총장이 내각회의에서 이스라엘군이 자멸 전의 열가지 위험신호를 내고 있다고 경고했고,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이란전쟁을 포함해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 동시에 여러 작전이 진행되며 1만 5천명의 병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발표했습니다. 전쟁은 이미 일방적 양상으로는 흘러가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 본 미국 대외정책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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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핵문제라는 명분뿐 아니라 이란 정권붕괴라는 목표도 비현실적이었는데, 이후에도 미국은 방향설정을 하지 못한 채 전쟁을 통해 정치적 성과를 확보하려 집착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동을 관리해왔습니다. 중동이 핵심이익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이 ‘셰일 혁명’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게 되면서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많았고, 2020년에는 트럼프가 아브라함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죠. 그런 시기를 거쳐왔음에도 트럼프의 개인적 특성과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네타냐후의 의도가 맞물려 전쟁은 발발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문제도 더 살펴보았으면 하는데요. 앞서 이해영 선생님께서 NSS와 NDS에 대해 말씀하셨듯 베네수엘라 침공이 미국 입장에서는 ‘반구 방어’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해영 미국은 그린란드부터 파타고니아까지는 자신의 영향권으로 이해하고 이미 1823년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이후 그 지역에 대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2세기 동안 같은 입장을 고수해왔고요. 이란전쟁이 돌출적이라면 베네수엘라 침공은 그간의 미국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최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꾸바 역시 마찬가지고요. 중국과 러시아 변수를 관리하려고 전력을 전진배치하기보다 우선은 자신의 ‘뒷마당’들을 방어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죠. 다만 베네수엘라나 꾸바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진보진영에서는 여전히 ‘혁명은 계속된다’는 식의 수사가 제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베네수엘라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Iguez) 부통령 정부가 보이는 ‘친미’는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로서 혁명적 대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있는데요. 하지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 베네수엘라 내부의 공모나 매수에 의해 침공이 가능했다는 설도 무성했고요.
문희정 베네수엘라와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잖아요. 트럼프는 마두로 대통령을 독재자로 칭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적대시했지만 제압에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2기에 들어서자 직접적인 세력행사를 해버린 것입니다. 특히 트럼프 1기와 2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목해보아야 하는데, 1기 집권 당시 트럼프는 자신도 대통령이 될 줄 몰랐던 사람이고, 그러다보니 본인을 뒷받침해줄 참모진이 없었어요. 대외정책도 기존 문법대로 행할 수밖에 없어 큰 스트레스를 받았죠. 이후 바이든 정권기 동안 보수 싱크탱크가 트럼프에 결합하는데, 트럼프의 ‘와신상담’과 보수진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트럼프 2기를 향한 조직적이고 거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컨대 헤리티지재단은 트럼프 2기 집권시 즉각 실행할 수 있는 국정운영전망서(「프로젝트 2025」)까지 미리 내놓지 않았습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서 다시 집권한 트럼프는 1기 때보다 자기 뜻을 훨씬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의 미국이 서반구 방어에만 한정되어 움직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란전쟁만 봐도 그렇고요. 이번 NSS와 NDS 발표 직후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앞으로 미국이 서반구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화하는 대신 그외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아둘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트럼프는 서반구가 미국의 영향권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외 지역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절대 이권을 포기하지 않을 사람입니다.
이남주 미국은 한때 자신이 ‘초대받은 제국’(냉전시기 유럽·아시아의 요청에 의해 소련의 팽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패권이 확립되었다는 관점)이라고 주장하며 영토 야욕이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나 그린란드 사례를 보면 영토 야욕이 없었다고 할 수 없고, 근본적으로 미국은 건국부터 원주민의 토지와 생명을 강탈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 지속적으로 영토 확장이 진행된 바 있지요. 그래서 NSS와 NDS에서 서반구에 대한 방어를 강조한 것을 그대로 받아서 ‘수축’ 전략으로 이해하면 미국의 침공행위를 너무 일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닐지 염려됩니다. 게다가 미국이 서반구에만 묶여 있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대만 등 동북아시아 쪽으로도 전략적 관심을 옮겨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요.
정현곤 트럼프 1기와 2기를 비교해볼 때 서반구의 강조는 확실히 눈에 띄죠. 지역전략에서의 순서가 다섯번째에서 첫 순위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NSS 2025’에서 새롭게 강조한 경제안보가 ‘2026 NDS’에서 인도·태평양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미국의 경제 전망, 특히 재산업화 능력의 성패를 이 지역에 두고 있거든요. 그리고 서반구와 인도·태평양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역시 중국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중국에 대한 인도·태평양에서의 견제방식도 군사분야와 경제분야가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양상이라 긴장 고조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커져갑니다.
이해영 생각해볼 지적입니다. 지나치게 서반구 방어 중심으로 기술된 문서를 해석하면서 미국의 안보전략을 개념 그대로 수용한다면 한계가 있겠죠. 미국 패권이 위기에 봉착할 때 얼마든지 다른 전략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건국 이래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전쟁 중인 것은 무엇보다 국가이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전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현 단계에서 그러한 국가이익은 ‘패권’의 형태를 띠는 것이고요. 물론 전략에 따라 패권의 형태는 변할 수 있습니다.
국제질서의 다극화는 실제적 추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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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미국의 패권이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군사개입 사례들이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그 자체가 새로운 징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전쟁이 국제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이란전쟁 이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할 거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현 상황이 국제질서 차원에서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이라고 보시나요?
이해영 제가 우끄라이나전쟁 발발 직후 ‘1차 다극화전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번 이란전쟁은 ‘2차 다극화전쟁’이라고 봅니다. 세계사를 보면 40여년간 지속된 미소 양극체제가 붕괴된 뒤 1989년부터 미국의 일극체제가 시작됐습니다. 그야말로 ‘미국제국의 시대’가 유지되어왔다고 할 수 있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강력한 제국이 있었나 싶은데, 2010년대부터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 패권에 균열이 생기더니 우끄라이나전쟁과 이란전쟁을 통해 이제 대파열의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그 끝이 무엇일지는 모릅니다. 20세기 후반의 지정학 전략가 브레진스키(Z. Brzezinski)가 ‘미국 외교의 악몽’이라 표현했던 중·러·이란의 동맹이 이루어지고 북한이 거기 가세할 수도 있겠죠. 이전까지 이란은 미들 파워(중견국)로 분류되었지만 미국과의 직접적 대결을 통해 오히려 ‘미들 파워 플러스’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전쟁은 미국 패권의 불가역적 쇠퇴가 시작됐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미국 쇠퇴론은 과거 1980년대에도 제기된 바 있지만 이번에는 실체가 있다고 봐요. 하루아침에 미국이 붕괴될 리는 없으나 최소한 군사강국으로서의 면모는 허물어지고 있지 않나 판단합니다.
정현곤 미국 패권의 쇠퇴기라는 점을 저도 실감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다극화로 이어지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미국의 약화된 패권을 흡수하는 것은 중국 아닐까요? 트럼프가 2018년 이란핵합의( JCPOA)를 깼을 때 이란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한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최근 유럽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하여 시 진핑(習近平)과 회담하는 모습도 늘어났습니다. 물론 G2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봅니다만 최근 중국의 변화된 모습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해영 제가 다극화라는 개념을 처음 쓴 게 2022년인데, 다극화는 경향인 동시에 전략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년간 중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공식성명들을 읽어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다극화이고, 이때는 특히 다극화가 ‘국제관계의 민주화’라는 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저로선 ‘자본 주도 세계화’에서 ‘주권 기반 다극화’로의 이행이라는 관점도 갖고 있습니다. 북한도 북러동맹(2024) 이후로는 다극화를 자주 언급하고 있고요. 이같은 경향으로서의 다극화는 산업자본주의 대 금융자본주의의 대당관계에서 주로 전자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네트워킹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극화의 정치적·군사적 중심은 소위 크링크(CRINK)로 묶이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이고, 그 외곽을 경제적으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가 에워싸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국의 압박이 계속된다면 이들은 필요에 따라 더욱 강하게 뭉칠 거예요. 전략으로서의 다극화는 좀 다른 차원입니다. 이를테면 인도와 중국의 아슬아슬한 관계, 러시아와 중국 간 그야말로 필요에 의한 (준)동맹에서 잘 나타나지요. 전략으로서의 다극화는 지정학적·지정전략적 타산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우끄라이나, 서아시아·중동, 남중국해·동중국해, 한반도 등 이른바 폴트라인(fault line, 지정학적 단층선)에서의 위기상황을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문희정 미중 무역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이 왜 긁어부스럼을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패권을 빼앗길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던 미국이 중국에 싸움을 걸어 오히려 명분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중국이 트럼프 2기에 대응을 잘하고 있는 것도 1기 때 당한 게 많아 대비를 잘한 덕분이라고 봐요. 특히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지점이 예전에 미국이 했던 얘기를 지금 중국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유무역을 해야 하고, 다자주의여야 하고, 다른 나라에 침입하거나 내정간섭을 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에 반해 트럼프의 미국은 일관성을 잃어버렸을뿐더러 이전에 흔히 악마화되었던 러시아나 북한, 이란이 할 법한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다극화라는 게 그냥 ‘각자도생’의 세상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입니다. 각자도생이라고 해도 협력은 필요할 텐데 우리의 전략은 무엇일까 고민하면 희망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이 유력한 선택지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조, 조선, 방산, K민주주의, 소프트파워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선택지가 될 수 있고 독특한 부분은 한국이 기존 강대국에 비해 약탈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각자도생 시스템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적도 동지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되지만, 한국이라는 선택지가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남주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미국의 힘이 강하면 다극화를 말하기 어려운데 현재는 미국의 힘이 전과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태들이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미중 무역전쟁도 결과가 중요했는데, 결국 미국이 이기지 못했습니다. 중국이 수세에 몰리는 형국이었지만 중국이 제련·가공의 90%이상을 점유한 희토류라는 자원을 카드로 꺼내자 미국이 꼼짝하지 못했어요. 이란전쟁도 마찬가지로 이란이 불리한 정세에서 석유 유통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라는 카드가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국제관계 역학이 복합적이고 미국의 힘이 일방적으로 먹히지 않는다는 게 드러난 거죠. 그런 차원에서 저는 미국 패권이 약해지는 최근 상황이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국제관계라고 봅니다. 어쩌면 지구적 국제관계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원래 국제관계는 주권국가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의미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국제관계 이론의 발전도 대체로 유럽의 국가관계를 사례로 진행되었지요. 지금도 미국의 힘 앞에서 버티기 어려운 베네수엘라 같은 현실이 있긴 하지만, 웬만한 국가들은 ‘우리가 어떤 레버리지를 가지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다’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제질서의 출현이 불가피해지고 있습니다.
정현곤 다극화의 진정한 의미로 ‘주권국가 사이의 평등한 관계’를 말씀하시는 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국제관계에서 이런 추세가 강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추적하는 북미관계도 그 영역에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미중 경쟁관계가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행태로 생각되고, 다극화는 계속해서 지향이자 전략적인 영역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미중의 경쟁관계라는 현실에서, 중견국들이 미국 또는 중국과 맺는 국가관계를 좀더 평등하게 만들고자 나서게 되는 전략 같은 것 말이죠. 물론 그런 전략적 차원에서 저 역시 다극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입장입니다.
이해영 2024년 뮌헨안보회의 보고서를 보면 ‘다극화는 하나의 팩트이다’라고 정리합니다. 다극화가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죠. 제가 다극화의 개념화를 시도하는 것은 미국 중심 일극체제가 ‘자본 주도의 세계화’였다면, 이제는 ‘주권 기반의 다극화’ 국제질서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다극화가 안정성을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고, ‘다극 불균형체제’는 오히려 훨씬 더 위험합니다. 가령 역사적으로 1930년대의 다극적 국제질서를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영미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반대한 나치정권의 국제질서 이해는 서유럽 대 ‘일본의 아시아’ ‘독일의 중유럽’처럼 천하삼분식의 나눠먹기 제국주의 질서관에 기초합니다. 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당대 독일의 초민족국가적 나눠먹기 ‘광역질서’ 개념에서 파생된 것이었고요.
전작권 전환, 이번엔 반드시 이루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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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다극화가 그 자체로 가치우위를 지닌 말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다극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과제여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넘어서 여러 국가가 서로의 이해와 평화공존을 위해서 협력하고 연대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은 분명히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 좋은 다극화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이 가진 하나의 약점으로 그간 굉장히 미국 의존적인 외교·안보를 해왔고 시민사회도 이런 문제들을 능동적으로 처리할 국제감각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전략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관건일 텐데 어떻게 보시나요?
이해영 저는 ‘전략적 자율성’ 개념을 자율적인 정책 결정 ‘공간’을 확보하는 일로 보는데, 한국에서는 특히 남북관계가 여기 해당합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말해서 지금도 통일부는 ‘평화공존’을, 외교부와 안보실은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이야기하며 따로 노는 현실 아닙니까? 말씀해주신 문제의식을 당장 여의도에 가서 정치인들과 이야기하거나 언론에 대고 말해도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이 전략적 자율성을 이야기해도 ‘미국과 척지자는 거냐’는 식의 반응이 나옵니다. 시민사회도 외교나 국제관계에 대한 감각의 부재가 심각하고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할 때 예컨대 문희정 선생님이 하시는 일처럼 국제관계와 한국의 역할을 알리는 대중교양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지금 언론은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이든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든 똑같은 소스를 베끼는 기사를 낼 뿐이고, 국제감각을 살려 쓴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김영삼정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세계화를 외쳐왔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세계화 정책에 실패했어요. 세계를 돈벌이 무대로만 보았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고유한 감각을 키워오지 못했습니다.
문희정 제가 언론에 불만을 가지는 점과 통하는데요. 한국언론은 우리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이 발생해도 미 국무부에 의견을 묻습니다. 우끄라이나전쟁 때도 미국 입장에서의 보도 일색이었죠. 제가 “이 전쟁은 우끄라이나 젤렌스끼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다”라고 말하니 온갖 악플이 달렸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대중들도 중심을 잡아가고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시민 대중의 힘을 좀더 믿고 키워야 합니다. 최근 변혁적 중도에 관한 백낙청 선생님의 글들(『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창비 2025)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도 시민들이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파악하며 덕을 쌓아야 한다는 대목이었어요. 그간 관심이 없었고 편향되어 있었더라도 정확히 알고 나면 내가 달라져야겠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정 언론이나 이론가들이 아니라, 그렇게 달라진 여론이 정부를 압박하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미국 의존적인 자세를 바꾸어 한미관계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한미관계에 있어 시급한 의제를 무엇으로 보시는지, 또 그 해법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현곤 한미관계의 종속성은 대북 억지력에서 출발했는데, 지금은 북의 핵무기 고도화와 대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북의 핵무기 보유 책임이 미국의 무능력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1994년(제네바합의), 2005년(9·19공동성명), 그리고 2018년(싱가포르 정상회담)과 2019년(하노이 정상회담) 등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미국은 북핵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어요. 그런데 미국의 한계 속에서 북이 핵무기체계를 고도화하고 나니 그게 다시 우리 발목을 잡아 ‘미국의 핵우산 속에 들어가지 않을 방법이 있는가?’라는 식으로 이야기되어버립니다. 한미간 전시작전권 전환(전시 상황에서 한국군에 대한 지휘권이 미국에 있는 것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에 대해서도 덫에 걸린 듯한 반응들이 나오고요. 최근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전시작전권을 한국군으로 반환하는 시점을 2029년으로 이야기한 일은 그런 관계의 상징이죠. 전작권 전환 시점처럼 양국의 주권과 동맹이 걸린 의사결정 사항은 SCM(한미안보협의회의)에서 정리해 양국 대통령이 보고받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는 일인데 미군 사령관이 나와서 자기 권한인 양 말하잖아요. 트럼프 임기 중인 2028년 말까지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전직 국방관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미연합 구조가 상호동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 뜻대로만 할 수가 없고, 특히 전환 시기를 두고 하위 단위에서라도 논란을 벌일수록 한국이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더군요. 실질적인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논란은 줄이는, 일종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자세로 전략적 인내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이남주 그러나 우리가 전작권 환수를 전략적 인내로 대응하다보면 시기만 지연될 뿐입니다. 이제껏 늘 그러다 번번이 때를 놓쳤어요. 예전과 상황이 달라진 것은 트럼프나 미국 전략가들도 전작권을 쥐고 있을 이유가 별로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한 채 중국 견제 등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문제지만, 어쨌든 미국도 한반도 방어를 한국 스스로 하기를 원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군부는 전작권이 조직의 위상이나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이다보니 계속 쥐고 있으려고 물밑작업이며 여론작업을 하고, 여기 연계된 한국의 언론과 정치권, 군이 계속해서 그들의 주장을 국내에서 확대재생산하며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런 ‘기술자’들의 작업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봐요. 이 문제는 인내보다는 정치적 돌파가 필요합니다.
문희정 약속된 프로세스대로 매끄럽게 진행이 안 되고 막히는 일이 그간 반복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지난해 10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공개 모두발언에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문제를 갑자기 꺼냈거든요. 이에 대한 평가는 여러갈래로 나뉠 수 있지만, 문제제기의 방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트럼프와의 정치적 담판은 기존 관행이 아닌 트럼프 스타일로 해야 합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대통령 대 대통령으로 직접 얘기해야 하는 것이죠. 전작권을 비롯해 한미관계 의제들 역시 트럼프의 레임덕이 오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현곤 정치적 결단이라는 것이 양국 대통령이 같이 하는 것이라 저 역시 이재명-트럼프 담판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정치적 결단이라는 것도 전작권 전환 과정에서 보면 3단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안보환경에 대한 양국의 공감이 중요해집니다. 그전 단계인 2단계는 군사적 능력 검증입니다. 지난해 11월의 SCM에서 전작권 전환의 2단계 검증을 2026년까지 마무리한다는 합의를 했기 때문에 저는 거기까지는 넘어가 진행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고려할 점이 두가지 더 있습니다. 이번 이란전쟁에서 일부 드러났듯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하나고요. 또 한반도에는 한미연합사령부와 별개로 유엔군사령부(UNC)가 작동한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유엔사 등 한반도의 평화를 둘러싼 구조가 서로 연동되면 미국에 유리해진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각각을 분리하고 각각의 원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영 전작권 관련해서는 평시작전권과 전시작전권을 구분해 전자는 한국군이 갖고 후자는 주한미군이 갖게 한 것부터 문제였는데, 형식적으로 전작권을 한국군에 넘긴다 하더라도 지적하신 것처럼 유엔사 문제가 남습니다. 유엔사 구조가 흔들리면 일본에 있는 7개 후방기지의 근거도 사라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그걸 흔들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게다가 1차대전부터 이어진 미국의 기본원칙은 ‘미군은 절대 다른 나라 군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면 전작권 전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밖에 남지 않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남주 선생님이 지적하셨듯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죠. 여기서 이란 40일전쟁이 남긴 군사적 교훈도 고려해야 합니다. 평택의 엄청나게 큰 미군기지가 이제 우리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채’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전까지는 이 기지에 전력을 투자해 방공망을 구축한다, 유사시 북한이나 중국 상해·북경을 타격한다 하는 시나리오였어요. 그런데 이제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드론조차도 사거리가 수백 킬로미터가 넘어갈 만큼 군사기술이 발전했고 지상에 있는 어떤 방공망도 쏟아지는 미사일이며 드론의 포화공격을 못 막는다는 것, 그래서 미군기지가 ‘타격 목표’가 되어 미사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이번 이란전쟁을 통해 분명해졌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군사기술적 조건에서는 전작권의 가치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기술발전에 따라 군사적 쟁점은 앞으로도 계속해 바뀔 거예요. 이재명정부 임기 내에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으면 전작권 문제라는 ‘골대’는 또다른 문제로 이동해버릴 겁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해요.
정현곤 정부의 원칙적인 입장도 올해 말까지 2단계 검증을 끝내고 2028년 내로 전작권을 환수한다는 것이니 그건 그것대로 지켜봐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정치적 결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한반도 안보환경과 관련해서도 준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점은 여론에서도 공감이 높은 편이고 저로서는 체제 인정의 신뢰 자산이 될 국가연합의 공론화·공식화를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차후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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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미국의 쇠퇴가 현실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데, 미국시민들이 그간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도 짚어볼 만합니다. 이를테면 WTO(세계무역기구)같이 애당초 자신의 패권을 위해 만들어놓은 기구마저 거부하는 것을 보면, 미국 내에서도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뒷받침하는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미국의 패권 약화는 미국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초래된 면이 크지만, 거기에 초점을 두지 않은 채 중국의 부상에만 과잉반응을 하면서 미국 내 극우세력의 동원을 유발한 측면도 있어 보여요. 극우세력의 대두가 국제관계에서는 어떻게 작용한다고 보시나요?
정현곤 오바마에서 트럼프로 넘어간 이후 극우세력이 커진 게 맞다면 그건 참 의아한 과정이에요. 2008년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이라크전쟁이고, 하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주택담보대출의 불량채권화로 초래된 세계금융위기)였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들을 안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출될 때만 해도 미국에 진보적인 색채가 상당히 있었는데, 그로부터 8년 뒤 트럼프가 당선됐어요. 그 당선의 결정적 이유가 러스트벨트(Rust Belt, 미국 중서부·북동부의 제조업 중심 지역) 노동자들의 지지였지요.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이거예요. 미국 중산층이던 러스트벨트 노동자가 제조업의 쇠퇴와 더불어 몰락한 것이 트럼프 당선 배경이라는 건데, 중산층의 타격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이미 시작된 일이 아닌가요. 당시 오바마는 뭘 한 걸까요? 경제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발생한 미국 전체 소득 증가분의 91%가 상위 1%에 집중되었다는 지표가 있더군요. 에마뉘엘 사에즈(Emmanuel Saez) UC버클리 교수의 분석인데, 1 대 99라 할 만한 지독한 양극화입니다. 그렇다면 제조업의 공동화를 부른 자본의 극단적 해외 이동이나 가계 구제는 도외시하고 파산은행 구제를 최우선으로 두는 의사결정 모두 극소수의 소득 상위자들이 결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해외 팽창으로 커온 부가 최소한의 중산층 보호에도 쓰이지 않고 있다면 그 경제체제는 무너지고 있다고 봅니다만, 이렇게 구조화된 양극화가 어떻게 정치적 극우로 연결되는지 그 매개는 더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문희정 제가 국제정치를 살펴보며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먹고살기 힘들 때 극우정치가 준동하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빈곤한 나라들이 모두 극우화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프랑스·독일 등 잘살던 나라에서 삶이 힘들어질 때 극우가 준동하게 되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늘날 극우정당들이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을, 이를테면 민생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우리 삶이 힘든 것은 우리가 표를 준 이 정부가 잘못해서다, 이제 국민을 위하는 정부를 세워야 한다’라는 말이 극우정당의 수사가 되는 거예요.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할 때 “당신들이 속았다”라고 했어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자신들의 부만 늘렸을 뿐 서민의 삶이 나아진 게 있냐는 거죠. 딥 스테이트(deep state, 선출권력이 아니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집단)나 엘리트 집단 등을 문제시하며 사람들이 비판할 수 있는 그럴듯한 표적을 제시해주는 전략이 대중에게 큰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해영 그렇게 볼 때 트럼프나 유럽의 정당들을 단순히 ‘극우’로 명명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지적해봄직합니다. 가령 독일은 사민당(SPD)과 기민당(CDU)의 대연정정부이고, 극단적으로 오른쪽에 있는 당은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이하 대안당), 가장 왼쪽에 있는 당은 좌파당(Die Linke)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소위 ‘극단’의 이 정당들 외 나머지 제도권 정당들은 새로운 담론이나 접근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유럽전략의 핵심이 독일 자본과 러시아 자원의 결합을 저지하는 것이었고, 독일경제가 망가지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독일이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관을 잠그면서 발생한 에너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가장 합리적인 이야기를 일관되게 한 것이 역설적이게도 대안당입니다. 미국 의존을 비판하고 러시아 제재에 반대한 거죠. 러시아와의 협력을 말하는 것은 극단의 두 정당뿐이고, 나머지 주류정당 전부가 루소포비아적 반러 노선입니다. 그렇다면 독일 국익의 관점에서 이 두 정당을 극우, 극좌로 볼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현재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는 다른 합리적인 세력도 보이지 않는데요. 이같은 유럽, 특히 독일의 딜레마가 지금의 세계정세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이남주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기득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또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모두 극우라고 통칭해서는 변화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국제적 극우연대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어려운데, 본지 지난호의 논단 글(유정애 「초국적 극우연대와 한국 민주주의」, 『창작과비평』 2026년 봄호)에서 지적했듯 극우연대의 초국적 연결망이 공고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현곤 네, 저도 CPAC(미국 보수정치행동회의) 같은 극우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보며 긴장하고 있고, 최근에 비교적 합리적이랄 수 있는 보수단체 사람들과도 대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극우의 준동은 보수의 실패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이어서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가를 물을 때 한가지 소개해드리고 싶은 것이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가 필요하다는 백낙청 선생님의 진단이에요(유튜브 백낙청TV 「백낙청 초대석 31: 백영서 교수 4」, 2026.5.22 참조). 한반도 분단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폭넓은 세력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변혁적 중도’ 개념인데, 이것을 국제연대의 차원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단체제는 한반도에 고착된 특수한 구조이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같은 분단은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 편입되어 민주화와 개혁을 억제하는 힘에 눌렸지만 중도연합을 통해서 깨뜨린 역사를 가진 각 나라들이 있을 테고, 그 역사성을 토대로 한국과 함께 국제관계를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구상이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입니다. 주목하는 나라로는 브라질이 있는데, 노동자당(PP)의 룰라(Lula da Silva)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폭넓은 중도연대로 국정운영을 하려고 애썼고, 정치적 고난 속에서도 3기 당선을 이루어냈습니다. 스페인도 중도좌파인 사회노동당(PSOE)이 좌파연합인 수마르(SMR)와 연대해 우파 국민당(PP)의 집권을 저지하는 독특한 연합정치 모델을 보여주었고요.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나라 내부적으로 얼마나 폭넓은 세력이 결집해서 지지를 얻고 있느냐, 미국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적절한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자체적인 개혁을 완성하느냐, 그리고 그 질서를 얼마나 민주적으로 가져가느냐 하는 문제일 겁니다. 이 가파른 국제질서 속에서 어느 한 나라가 이익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관계망을 짤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타진해보자는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해영 변혁적 중도의 개념적 외연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는 사고실험적으로 접근해볼 만한 일입니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한국 민주주의에 아주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서구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 ‘자유’와 ‘민주’가 서로를 밀어내는, 즉 ‘이격·이탈’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던 국가들에서 오히려 권위주의적 민주주의가 형성된다고 할까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친위쿠데타 실패로 한국은 민주주의 개념이 ‘리셋’되면서 오히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캐나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총리가 미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들이 연대하자는 이야기를 던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이 이슈가 부각되었고, 스페인의 뻬드로 싼체스(Pedro Sánchez) 총리도 ‘서구형 반미주의’라 할 만한 의식을 드러내 말 그대로 새로운 변화의 공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하는 나라로는 인도와 프랑스가 대표적이고, 브라질과 호주에서도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략적 자율성을 이야기했으니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객관적인 조건이 형성되어가고 문제의식이 성숙해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변혁적 중도를 적어도 국제관계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연결해볼 조건과 공간이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말할 만합니다.
문희정 저는 지금 국제적 상황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코로나19 펜데믹이 각자도생의 시기였다고 보는데요. 대다수 국가가 외부에서 오는 전략물자들이 끊겨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한국은 의약품과 방역물품을 자체 생산하는 등 저력을 보여주며 팬데믹을 잘 극복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국제적으로 ‘대단하다’ 정도였지 한국이 또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매김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후 내란사태를 겪으며 K민주주의가 전세계적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전에는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해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이식된 나라이고, 그 모습과 형태가 좀 기이하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K민주주의라는 말로, 시민의 힘이 결합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강조할 부분은 K컬처 같은 소프트파워입니다. 우리의 문화상품들이 해외에서도 큰 파급력을 미치게 되었고, 이 소프트파워가 퍼진 상태에서 한국의 정치상황을 바라보자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느껴지게 된 거죠. 지난해 국제정치학회가 한국에서 열렸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하며 “민주주의의 힘을, 주권자의 저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K민주주의가 열어갈 희망의 행진을 지켜보시라”고 말한 일이 저로선 정말 벅찼습니다. 친위쿠데타를 막는 것도 어렵지만, 그후에 평화롭게 정권교체를 하고 사회를 이렇게나 빨리 안정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쿠데타를 막고 걸출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큰 혼란 없이 새 정권을 맞이했어요. 그것이 전세계에 증명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동남아국가에서 선거 캠페인송으로 케이팝을 활용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을 텐데, 그 정당들은 기득권이나 독재정당이 아니라 그 반대편의 정당들이에요. 우리도 한국처럼 해보자는 열망이 있는데 아직은 기존 정치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왼쪽부터 이남주 정현곤 문희정 이해영
ⓒ이영균
정현곤 결국은 방법이 문제입니다. 선례도 없는 상황이라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라고 해서 당장 연대조직을 만들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겠지요. 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양자외교, 기존의 다자외교 플랫폼 등을 활성화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주목을 받고 무게를 갖게 되면 더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국제관계에서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우려가 있지만, 이해영 선생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이러한 외교를 위한 공간이 넓어지는 면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국제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이나 전략을 준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국제연대의 주요한 고리로서 남북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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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고 한국의 역할을 제고하면서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남북관계의 진전입니다. 북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온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나누어주시죠.
이해영 저는 북이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기본원칙이 ‘전략적 힘의 균형’이라고 봅니다. 어느 한쪽이 전략적 힘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상태가 평화공존의 기초가 된다는 인식이죠. 그런 관점에서 ‘적대적’이라는 말을 빼고 ‘두 국가’만 놓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국제적인 안정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현재는 전략적 힘의 균형 상태로 상대적으로 안정화되어 있고, 북은 이 균형을 깨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 얘기입니다. 더구나 북은 ‘비핵화’와 ‘경제 지원·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등가교환도 이제는 필요없다는 거 아니에요? 남한 없이도 중국과 러시아와의 우호관계 속에서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데, 우리가 계속 ‘너희에게는 남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봤자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통일부가 중국을 통해 북한과의 대화를 우회적으로 마련해보려 해도 북쪽에서 ‘남한이 오면 우리는 안 나간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일정 기간 동안은 전략적 힘의 균형 상태를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당장은 북측과의 대화에 매달리기보다 국내적 차원에서 평화공존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를 확보하고 해법을 준비하는 시기로 삼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현곤 당분간 군비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 걱정거리예요. 얼마 전 북한이 전술탄도미사일 ‘화성-11라’를 시험발사했는데 사정거리가 136km였습니다(「北 또 ‘집속탄’ 시험발사…김정은 ‘5년간 미사일 탄두 전문 개발’」, 노컷뉴스 2026.4.20). 평택과 오산의 미군기지가 사정권에 들어가죠. 특히 이번 발사에 1·2·4·5 군단장이 왔다는 게 주목할 점인데, 해당 미사일은 전방부대에 실전배치되는 걸로 보입니다. 우리 국방비가 GDP의 2%대 중반 수준이고 향후 3.5%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미국에 약속까지 했기 때문에 북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 않고, 군사력을 강화해갈 겁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말씀처럼 이것을 세력균형이라는 관점에서 잘 관리할 수만 있다면 견딜 만하거든요. 문제는 멈춰선 상태의 균형이 아니라 계속 증강되는 균형이라면 위험하지 않냐는 겁니다. 좀더 적극적인 평화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거죠. 두 국가론이 방어기제라면 북 체제 인정방안을 더 구체화하는 것이 그 일환이 될 것입니다. 그게 남북연합이고요.
이남주 남북연합은 남의 통일방안에서 중간단계로 제시된 것인데 국가연합의 속성을 갖고 있지요. 6·15공동선언에서는 남의 남북연합과 북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의 공통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하자는 합의가 있었습니다. 최종적 통일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평화공존 및 협력의 제도를 찾아가자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 남북관계에서 불안정성이 증가한 주요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남북연합이 현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두 국가론과 연결지어서도 생각해봄직합니다.
정현곤 남북연합이라고 할 때는 우선 북의 방어적 기제로서의 두 국가론을 인정하고 공식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우리가 북에 내보내는 메시지 성격으로서 ‘적대적’이라는 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요. 특히 최근에 반가웠던 것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남북연합을 남북관계의 최종적 목표로 공식 발표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론의 최종 목표가 흡수통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거죠. 그게 북이 ‘적대적 두 국가’를 내건 표면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북이 체제 위협을 덜 느끼는 상태에서 국가체계를 안정화하게 되면 남북관계는 정말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갈 수 있죠.(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조선헌법 개정에서 ‘두 국가’ 노선은 반영되었지만, ‘적대적’이라는 수사는 제외됨―편집자) 물론 위협요소는 평화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화문제를 푸는 일을 남북연합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사회에서 힘을 모아온 한반도 종전선언의 경우도 그 일환이죠.
이남주 4월 28일에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빅터 차(Victor Cha)가 “북에 대한 비핵화 목표는 비현실적이고 핵 군축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한국의 킬체인(kill chain, 선제타격체계)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어요. 이전에 브런슨 사령관이 킬체인 시스템을 더 넓은 ‘킬웹’(kill web)으로 만들자고 했던 것과 전혀 반대되는 의견입니다. 빅터 차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북미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데, 우리로서는 남북연합의 제안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선제적 공격전략을 취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문희정 빅터 차는 시류를 빨리 파악하고 줄을 대는 사람인데,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 저는 우리가 조금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들은 우리가 북과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그렇다고 적대적이지도 않고 일단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있어요. ‘같은 민족이고, 결정적 순간에는 우리가 같은 편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죠. 그래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을 때 국민들이 함께 기뻐하고 지지율도 상승했던 겁니다. 향후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북한의 경제수준이 남한에 맞추어 어느정도 올라와야지 하면서 북을 응원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평화운동을 하거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북의 언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조마조마해하기보다 국민들의 이런 쿨함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현곤 이남주 선생님이 킬체인의 포기를 언급하셨는데 중요한 지적이에요. 앞서 제가 한반도 종전선언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게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서로에게 위협적인 실체가 명확한 상황이라 이제는 선언만으로는 그 효과가 안 나온다는 거죠. 킬체인 포기가 공개적으로 제기가 되었다고 하니 뭔가 풀리는 느낌이 옵니다.
이해영 그런데 우끄라이나전쟁 때부터 국제사회에서 부단히 제기됐듯이 ‘미국이 과연 합의 준수 능력이 있는(agreement-capable) 나라냐’ 하는 것은 걸림돌이 될 겁니다. 퍽하면 미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구실 삼고, 정권 바뀌면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으니 북이 신뢰할지가 관건이죠.
정현곤 그래도 북미정상회담 자체는 중요합니다. 미국이 약속을 지키든 안 지키든 북은 협상이 시작되면 그 테이블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미국이 안 지키면 북에서 또 군사적 계획들을 감행할 테니 미국도 신중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북미관계에서 무엇이든 모색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남주 안타까운 건 킬체인의 포기라는 중요한 의제가 우리 쪽에서 먼저 나오지 않고 미국 전략가로부터 나왔다는 점이죠. 핵심은 북이 ‘적대적’이라는 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우리가 ‘적대적이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남북연합이라는 구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전제로 협력하는 구조이고, 동시에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이런 원칙을 국내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북에서도 우리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군사적 적대관계를 넘어 평화공존의 질서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그 조건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정현곤 전작권 전환까지 군비경쟁은 위험요소지만 그 틀 안에 정치적 결단을 위한 한반도 정세 안정이 들어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평화프로세스를 준비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고, 또 매우 적극적인 평화공존 전략인 남북연합을 위해 우리 정부가 책임있게 나서야 하겠죠.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외피가 종전선언이라 해도 그 속에 킬체인 같은 소재가 담길 수 있다면 북의 군사무기 시험중지도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도 북도 움직일 동기가 되겠다는 각성이 오는군요.
이남주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오늘의 대화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메시지를 발신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럼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씀들이 있다면 보태어주시죠.
이해영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일본·필리핀을 엮어 반중 킬웹을 주장하고 ‘검은머리 네오콘’이라 불리는 빅터 차는 킬체인을 ‘킬’하자고 합니다. 이 흥미로운 크로스현상이야말로 현 국면의 딜레마를 잘 보여줍니다. 또 박근혜정권 때부터 논의되던 악사(ACSA, 한일 상호 군수지원협정)가 다시 부상할 조짐을 보입니다. 쉽게 말해 한일 ‘군사’동맹을 마무리 짓자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공존 나아가 ‘전략적 자율성’은 실로 질식사합니다. 다극화라는 세계질서의 진화 현장에서 한국은 ‘고아’로 남겨질지도 모릅니다. 한때 우리가 ‘냉전의 고아’였듯이 말이죠. 따라서 지금의 국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국제질서 감각 혹은 감수성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란전쟁은 에너지와 식량의 외부의존이라는, 지금까지의 한국 자본주의 성장 및 축적 모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교체를 주도하지 못한다고 낡은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것은 자멸적입니다. 진정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거대담론이 절실한데, 오늘의 대화가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정현곤 남북 군비경쟁의 현실화·가속화 속에서도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묘수가 있다는 확신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대화에서 한국의 외교가 좀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종전선언으로 가는 피스메이커로서 역할할 수 있는 경로들을 논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희정 유럽의 언론을 부러워했던 부분이 오늘 우리가 나눈 이런 이야기가 일간지를 통해서도 일상적으로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언론은 그런 장을 스스로 집어던져버렸고, 시민들은 지엽적이고 졸렬하며 별 필요도 없는 소식들만 접하며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좌담이 국제질서와 한반도 상황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앞으로는 일간지에서도 이런 대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또 한번 가지게 됩니다.
이남주 오늘의 대화에 정부와 언론, 시민사회 그리고 많은 분들의 실천적 응답이 있기를 희망합니다. 긴 시간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2026.4.30.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