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6 여름] 통권 212호
논단

 

‘현하(現下)의 사상’이 밝힌 근대의 출구

백낙청의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김형수 金炯洙

시인, 소설가.

저서 『소태산 평전』 『문익환 평전』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김남주 평전』 『신영일 평전』 『대주교 윤공희』,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조드』 등이 있음.

millemi@hanmail.net

 

 

1. 한국정신사의 한줄기 빛에 대하여

 

인간의 시야에는 가끔 명백한 정신사의 한줄기가 시대적 분절로 인해 파편화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내가 따르던 한국의 민족문학운동은 ‘자주적 근대문학’을 포착하고자 출현한 흐름이고, 여기에 뛰어든 작가들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실존양상과 직면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그 가운데 참여문학, 리얼리즘, 분단체제, 제3세계문학, 민중문학 따위가 치열하게 논의되었다. 주목할 점은 백낙청이 그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사의 한줄기’를 일찍부터 예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동학에서 하나의 큰 봉우리를 이루었다가 의병운동과 일제하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중운동의 큰 줄기를 의식할 때 위정척사냐 친일개화냐 하는 식의 양자택일론의 허망함을 깨닫게 되듯이 민족문학의 진로 역시 이인직이냐 황매천이냐 하는 갈림길과 전혀 별개의 왕도(王道)가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과거 민중문학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백낙청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솔 1991), 25면

 

1974년 발표된 이 글은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창비 2020)에 붙은 ‘백낙청 50년 공부의 결정체’라는 소개 문구를 의미심장하게 한다. 편집자가 붙인 문구일 테지만, 표어가 일으키는 반향은 아득한 기억의 회랑을 휩쓸며 수많은 상념을 깨운다. 2016~17년의 촛불혁명, 1987년의 6월항쟁, 거슬러서 5·18과 4·19, 그리고 3·1운동과 동학에 이르는 정신사의 맥락을 그 시절의 열병에 가담하지 않은 이는 한눈에 담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생략하면 2024년 12월을 수놓은 ‘빛의 혁명’이 연계되는 궤적도 이해하기 어렵다. 인용한 글에서 백낙청이 ‘왕도’라 밝힌, 그야말로 오랫동안 ‘숨은 신(神)’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을 미쳐온 희미한 빛 하나를 나는 ‘숙명의 광선(光線)’이라고 부르고 싶다.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는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 민족문학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적 연마의 산물이다. 서울에는 훌륭한 고등교육을 받고 국제적인 식견과 안목을 겸비한 석학이 적지 않지만, 어둡고 참담한 현실을 관통하는 자주적 ‘의식의 광학(光學)현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오랫동안 선진국의 사례를 수입하는 ‘오퍼상’ 역할을 자랑스럽게 수행했다. 엘리트 집단의 대다수가 유학파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의 문화·생태 공동체가 두개의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로 적대하는 분단국가라는 점은 집단적 세계관의 대미·대일 종속을 심화하고 사유의 수동성을 강화하는 구조적 장치였다. 유럽의 경험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서양식 인식과 사유는 근대적 권력체계를 유지하는 틀이다. 1960~70년대 산업화를 주도한 독재정치를 ‘박정희 신화’라는 말로 미화하던 한국의 야망은 문명화·근대화·세계화 등으로 포장이 바뀌어도 자발적으로 오리엔탈화된 인식체계를 수정하지 않는다. 이런 토양에서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고유의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식적 불복종’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의 저항문학은 창작과 논쟁을 앞세운 엄청난 생명력으로 인식적 불복종운동의 역사를 이어왔다. 전후문학에서 참여문학으로, 참여문학에서 민족문학으로, 민족문학에서 민중문학으로 대치선을 조정하면서 작가들이 정치적 수난마저 불사하고 대결한 것은 세계문학이 아니라 봉건성과 식민성의 잔재로 남은 문학, 즉 창조를 가로막는 인식론적 사대주의였다. 백낙청은 “인류공동의 유산을 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 세계문학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처하고 출발한 것이 우리의 민족문학론이었다”(『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8면)고 말한다.

나는 한국의 민족문학운동이 일정하게 ‘세계시민적 지역주의’를 획득한 시점에서 근대가 종말의 징후를 드러냈다고 본다. 그리하여 근대문학의 위기와 종언이 제기되는 환절기를 한동안 적막이 채운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이 침묵을 상징해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인류의 문명사에 중대한 사변이 발생한 게 틀림없으나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입을 막은 채 통과해버렸다. 이 책이 나타난 곳은 이 자리이다. 백낙청이 영국의 소설가 D. H. 로런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를 ‘서양의 개벽사상가’라고 명명하는 사태는 자아의 심연을 포복하는 듯했던 한국적 사유의 길이 전혀 다른 차원의 궤도를 통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주변부 사회의 주목받지 못했던 유산이 어느날 갑자기 ‘오래된 미래’로서 주류의 보편성을 대체할 조짐에 이르는 놀라운 역전이라니! 나는 이것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보인다.

 

 

 

 

2. 인류 공동의 문제를 보는 세계시민적 관점

 

이 뜻밖의 궤적을 읽는 일은 발화점을 찾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백낙청을 민족문학운동의 기수라고 말할 때 가장 눈에 띄는 역설은, 그를 영문학자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서구적 양식이 세계를 지배하고 문화적 표준으로 통용되던 시절에 영어는 후진국 교육의 본령에 속하는 일종의 ‘계몽 기관차’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영문학 자체가 이미 제국주의적 속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지만, 전후 한국에서도 여전히 영어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었고 세상이 극성스러울수록 그 지위도 높았다. 그런 점에서 영문학을 아시아의 변방에서 ‘세계사로부터 소외된 자아사’를 복구하는 비상구로 사용한 사건은 실로 경이로운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백낙청은 영미문학의 현장에서 세계문학의 흐름을 체득하고 제3세계의 비애를 객관화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를 직시했다. 근대국가의 경험도 없고 민족의 자주성도 누리지 못한 변방의 청년이 미국 유학을 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공부한 문명과 정신을 ‘약소민족의 서러움’ 같은 언사가 남발하는 자국의 대지에서 펼치는 과정은 얼마간 황량했을 것이다. 외세의 일방적 피해자였던 한국에는 제국주의와 자본의 힘이 간섭하는 현장에서 인류 공동의 문제에 맞설 수 있는 세계시민적 관점이 부족했다. 백낙청이 한국문단에 진입할 때는 참여문학과 순수문학 논쟁이 한창이었는데, 동시대 작가들이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두고 다툰 이유는 ‘천민성’과 ‘몰가치’의 극복을 사회의 최우선과제로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성 때문이었다. 전통의 가치는 해체되고 새로운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문학은 허위와 허영의 온상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창조할 사회적 언어의 격전지가 되어야 했다. 백낙청은 이를 위한 문학의 ‘필드’를 필요로 했으며, 동시대와 소통할 매체를 확보하는 일에 앞장섰다. 『창작과비평』 창간호(1966.1.15)에 발표한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신생 잡지가 가야 할 목적지와 방향성을 밝히는 출사표에 속한다. 이로써 그는 20세기 근대가 초래한 한국정신사의 초라한 풍경화를 전복해 다시 그리는데, 대번에 억압적 현실과 부단한 싸움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할 시민의식을 역설하는 것으로 당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의 ‘시민문학론’은 4·19정신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지적 투쟁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 투쟁 속에서도 그의 육체는 지상에 있었다. 그 길에서 서양의 보편성과 자국의 고유성이 어긋나는 괴리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백낙청은 서구사회의 안정과 번영이 전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그야말로 ‘강렬한 시민의식의 표현’인 문학작품이 ‘제국주의의 불길한 전조’를 증명하는 모순을 발견한다. 다음은 알베르 까뮈(Albert Camus)의 역사현실 무감각에 대한 지적이다.

 

『이방인』에서 주인공은 뚜렷한 동기 없이 살인을 저질러 작가의 실존주의 사상을 피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데, 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이유 없이’ 사살한 사건이다.

―『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29면

 

분리돼 있던 자아와 세계가 최초로 통합되는 순간은 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백낙청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학에 참여하기 위하여 생의 장소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 토대를 둔 민족문학운동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이해하면 그의 리얼리즘론, 분단체제론, 근대의 이중과제론 등이 세계문학과 통섭하면서 진행된 경위가 전혀 괴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 유신독재가 선포된 해에 그가 D. H. 로런스를 사유하기 시작하고 박정희의 ‘조국 근대화’가 강제성과 압축성의 강도를 높이던 한국에서 사회운동에 매진하는 일이 로런스의 심층을 탐구하는 과정이 되며, 마침내 시국사건에 성명서를 쓰거나 교수직을 잃는 등 거듭된 시련이 로런스의 사상을 검증하는 또다른 실천이었다는 역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3. D. H. 로런스라는 베이스캠프

 

D. H. 로런스는 서구적 교양의 작가 이미지로 덮기에는 매우 돌출된 인물이다. 그는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이 “우리가 보통 생각이라 부르는 능력의 부재”(『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22면에서 재인용, 이하 이 책의 인용은 면수만 표기)를 지적할 만큼 인식론상의 이단자에 속했으니 영혼, 신체, 지성 어느 쪽에서 계보를 살펴도 ‘근대의 적자(嫡子)’가 아니었다. 이같은 불온성이 오히려 ‘겸손하지 않고 경건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이성만을 신격화했던 시대’1를 초월해버리는, 과감하고 장대한 사유의 모험을 낳았는지 모른다. 백낙청은 로런스가 “사상적 편력의 폭이 넓고 예리한 통찰이 풍부한”(8면) 정신세계를 갖게 된 근거를 그의 ‘장편소설론’에 둔다. 로런스가 장편소설이야말로 “섬세한 상호연관성의 복합체 중 인간이 발견한 최고의 것”(327면에서 재인용)이라고 칭송하듯 백낙청은 오직 소설만이 “그 속성상 ‘세상의 어떤 곳들’에 대한 구체적 형상을 요구”(247면)한다고 본다.

로런스가 인간의 표현형식 중 최상의 것이라고 예찬한 장편소설을 ‘살아 있는 전체’를 다루는 틀로 보는 견해는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에 의하면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 유럽의 정신은 늘 세계를 ‘풀어야 할 의문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실제적인 필요와 상관없이 ‘앎에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근대는 세계를 단순히 기술적이고 수학적인 개발의 대상으로 축소하고 삶의 구체적인 얼굴을 제거해버린다. 이렇듯 과학의 도약이 인간을 전문화된 분야의 동굴들로 몰아넣으며, 지식이 진보하면 할수록 인간 자신의 총체 상을 잃고, 하이데거(M. Heidegger)가 지적한 ‘존재의 망각’ 속으로 함몰되는 현상은 심각한 것이다. 이때 소설은 세르반떼스(Miguel de Cervantes)의 출현과 함께 또다른 행로를 개척하며 ‘망각된 존재의 개발’을 시작하는데, 근대의 초기부터 소설은 줄곧 인간의 실체를 따라다니며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인간을 존재의 망각으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그래서 밀란 쿤데라는 유럽의 근대정신이 빚는 무지막지한 축소화 현상과 전면전을 이어온 것이 근대소설사라고 주장한다.2

이같은 인식은 로런스의 장편소설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만, 논의의 차원이 같은 것은 아니다. 밀란 쿤데라가 세르반떼스의 길과 데까르뜨(R. Descartes)의 철학을 유럽 근대를 지탱하는 정신으로 보는 반면, 로런스는 유럽소설 전통을 계승하여 서양문명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자가 된다. 백낙청이 이를 중시하는 까닭은 로런스가 서양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외치는 일종의 원시주의자가 아니라 ‘반(反)데까르뜨적 통찰’과 ‘탁월한 심리학적 투시력’을 발동하여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인식적 척도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의 서양 문명 비판이 존재성, 진리관, 민주주의론 같은 독특한 근거를 가진다고 보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로런스는 만물의 움직임을 ‘being’(존재)3의 견지에서 파악한다. 여기서 존재란 ‘역사적 실존을 통해 드러나고 성취되는 삶다운 삶’이자 ‘자기다움의 완전한 실현’을 가리키는 말로서, 명실상부한 존재의 실현은 인간뿐 아니라 세상 만물에 부여된 생명의 과제이다. 고로 자신의 참모습을 활짝 꽃피운 상태로서 존재의 완성은 “헤아릴 수 없는 핵심적 신비로부터 출현하여 정의할 수 없는 현존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469면에서 재인용) 나는 이같은 설명을 김소월의 「산유화」(1924)를 떠올리면서 내 방식으로 의역해 읽었다. 가령 “산에는 꽃이 피네”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처럼, 꽃은 왜 피는지, 왜 지는지, 누가 보는지, 상관없이 비탈진 틈에서도 핀다. 화자와 꽃 사이의 시각적 거리이자 정서적 거리를 명시하는 “저만치 혼자서”는, 모든 존재에게는 응시하는 자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확인해준다. 그리하여 각자가 ‘헤아릴 길 없는 신비’로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사회생활의 모든 거대기획이 토대로 삼아야 할 사실”(같은 면에서 재인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관계’가 질문되기 마련인데, 로런스의 ‘진리관’은 그에 대한 응답이 아닌가 한다. 즉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 사노라네”처럼, 홀로 피고 지는 꽃이 좋아서 산에서 사는 새는 또 하나의 존재로서 고작 ‘울면서’ ‘산에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 역시 자아실현의 과정이라 할 삶을 사는 또다른 주체이다. 바로 이런 생에 대한 애착과 신념을 로런스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결합이 완성되는 삶의 순간적인 상태”(516면에서 재인용)라고 하는데, 음양의 조화와 합일을 꿈꾸는 것이 진리라는 로런스의 견해는 서구적 인식이 놓치고 있던 문제를 제기한다. 존재가 그 자체로 완성태가 아니라 ‘being’인 이유는 그 빈 곳을 채워가는 삶의 과정을 내포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은 삶을 통해 양은 음을, 음은 양을 채워가는 실존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살아 있음의 진리이다.

로런스는 민주주의 또한 이 존재성과 진리관에 입각한 질서로서 상상하기에, 그의 민주주의는 단순한 평등이나 자유를 넘어 ‘열린 길을 가고 있는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방법에 속한다. 그러니까 ‘조선 히피’의 정점에 선 신중현의 노래 「아름다운 강산」(1972)의 가사처럼 하늘, 구름, 나뭇잎, 강물, 실바람, 내 마음이 ‘영원히’ 또 모두 다 끝없이 ‘다정한’ 질서를 이루는 걸 민주주의라 한 셈이다. 이 만남은 로런스의 표현처럼 “영혼들 사이의 기쁜 알아봄이요, 위대한 영혼과 한층 더 위대한 영혼들에 대한 더욱 기꺼운 숭배다.”(441면에서 재인용) 이같은 생의 조건에서 더는 질곡이 발생하지 않는 차원에 도달하는 것을 로런스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보았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제 실현될 것을 압니다. (…) 다만 이것은 단순한 영토가 아니고 영혼의 새로운 대륙이지요.(19면에서 재인용)

 

이 자리가 백낙청이 로런스에게 ‘개벽사상가!’를 헌사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는 ‘한 지옥’을 버리고 ‘한 천국’을 얻는 일이므로 충분히,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이래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과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에 이르는 성자들의 ‘후천개벽’을 떠올릴 만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4. ‘현하의 사상’이 주목하는 곳

 

D. H. 로런스의 ‘장편소설론’은 로런스 자신의 사상을 뛰어넘어 백낙청의 세계관과 일체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백낙청은 소설가가 아니지만 그가 로런스의 ‘장편소설의 정신’이라 할 만한 가치관을 일관되게 고수한 것을 그간에 구축한 ‘필드’의 성격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이를 백낙청의 리얼리즘 정신이 발현되는 증거라고 보는데, 이 점은 즉각 로런스의 소설론, “모든 것이 그 자체의 때와 장소와 여건에서만 참이고 그 자체의 시간, 장소, 여건을 떠나서는 참이 아니다”(327면에서 재인용)로 연결된다. 그로 인해 백낙청은 어떤 경우에도 무엇을 강조하기 위해 실사구시의 선을 넘는 비약을 용인하지 않는다. 나아가 ‘체계화된 지식으로서의 과학’이 ‘대안’과 동떨어져서도 성립한다는 점에서 ‘근대학문’의 한계를 본다. 이렇게 언제나 구체적인 ‘때’와 ‘장소’와 ‘여건’에 맞는 ‘참’을 중시하는 정신을 나는 ‘백낙청 리얼리즘’의 본령으로 여기고 이를 일단 ‘현하(現下)의 사상’4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백낙청의 ‘현하의 사상’이 D. H. 로런스의 장편소설과 접촉하는 면적은 상당히 넓고 갈래도 많다. 그중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장면은 근대의 징표라 할 기술시대의 문제를 해석하는 대목이다. 백낙청은 로런스의 장편 『무지개』(The Rainbow, 1915)에서 근대화 문제에 주목하여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담론을 끌어내고, 장편 『연애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1920)을 이야기하면서 제3세계적 시각을 조정할 필요에 따라 ‘개벽사상가 로런스’를 도출한다. 그 가운데 등장하는 화두가 바로 ‘지혜의 시대’인데, 다음은 그 발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기술공학이 인간의 삶을 온통 지배하는 시대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할지의 문제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어떤 분야에서는 이미 뛰어넘었고 날로 더 발달해가는 오늘날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고수들을 꺾음으로써 세인의 관심을 극적으로 끌게 되었지만, 요는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지능(곧 계산능력으로서의 합리성)에 두는 입장을 더는 견지할 수 없고 인간 고유의 전혀 다른 차원의 지혜(또는 사유능력)를 터득하고 연마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이다.(107~108면, 강조는 인용자)

 

이어서 “나 자신은 그간 ‘지혜의 시대’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글을 두번 썼는데,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새로운 상황에 주목하면서 과학적 인식을 수렴하는 ‘지혜’의 개념을 제창하고자 했다”(108~109면, 강조는 원문) 밝힌다. 사회주의권 붕괴 당시에 나는 민족문학운동의 상층부가 갑자기 선로를 바꾸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판단할 수 없었다. 더불어 젊은 활동가 누구도 여기에 재고를 요청하거나 논쟁적 질문을 던질 수 없었는데, ‘문명사적 대전환’이라는 격류 앞에서 다들 속수무책으로 해체당하던 까닭이었다. 더러는 환경·생태 문제를 포착하거나 ‘계급’에서 ‘평화’로 주제를 옮기며 자세를 변경하던 와중에 오히려 민중의 계급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 건 백낙청이었다. 그는 이런 복잡계 앞에서 필시 ‘개벽사상’을 검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백낙청이 주목한 기술시대의 문제는 오늘날 AI 문제를 비롯해 확대일로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 문제는 ‘현하의 사상’이 조명한 몸통 부위에 속하므로 나름의 독후감을 밝히는 게 옳다고 본다. 세 단락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 기술시대를 보는 눈.

나는 우연히 애비 스미스 럼지(Abby Smith Rumsey)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곽성혜 옮김, 유노북스 2016)를 읽다가 백낙청이 기술시대의 문제를 천착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럼지는 인간을 ‘비(非)유전적 수단을 이용해 정보를 시공간 너머로 전송할 수 있는 유일한 종(種)’이라고 평하고, 그로 인해 인간사회가 “지식이 그 지식을 소유했던 사람과 함께 소멸하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79면)고 부연한다. 그는 인류가 체험적으로 깨달은 지식과 그 기억을 ‘외주화’하는 기술이 최소한 4만년 동안 발전해왔다고 말하는데, 인간이 발명한 도구들은 도덕적 상상력을 기르지 못한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한 ‘비결(祕訣) 서사’를 연상하면 그것이 말썽이 되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선각자가 유언처럼 남긴 지혜 즉, 비밀의 기록은 선한 자가 상속하면 공동체에 이롭게 작용하나 일탈자의 손에 들어가면 이기적으로 악용되고 만다. 이는 문자라는 도구조차도 인간에게 의존하는 ‘부조물(副造物)’로서 스스로는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증명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도덕적 행위이고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을 보존하는 기술매체가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외양’만을 제공한다면 그러한 지식을 존속시켜서 발생하는 물리력은 누가 감당하고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둘, 근대 적응과 극복의 문제.

기술시대의 문제는 서구 열강이 준동한 이래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을 거쳐 사회주의 혁명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세계 시장경제체제의 성립을 관통하기까지 걷잡을 수 없는 궤적을 그려왔다. 그 엄청난 후유증 앞에서 지구적 성찰의 시대가 도래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백낙청은 이 문제를 말할 때 ‘근대의 극복’과 함께 ‘근대의 적응’을 언급한다.

 

오늘의 현실에서 제3세계의 민중들이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도 산업화·기술화를 실현해야 할 필연성은 너무나 절박한 반면, 그들이 인간해방의 진정한 주역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기술시대의 참뜻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인간됨의 본뜻을 구현하는 실천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그리하여 기계적 반발이나 모방의 차원을 넘는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수행하고 ‘후천개벽’의 시대를 열지 못하는 한, 어느덧 그들도 동서양의 새로운 제럴드들에 의해 추월당하고 뒤처져버렸음을 발견하기 쉽다.(128면)5

 

여기서 중요한 낱말은 ‘기술시대의 참뜻’이다. 사람들은 흔히 산업화·기술화를 기계라는 물질적 도구가 범람하는 문제로 보고, 그것만을 근대의 실체로 여긴다. 가령, 백낙청이 지렛대로 사용하는 소태산사상6의 표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상상할 때도 ‘물질’을 ‘물질적 도구’라는 의미로 좁히고, 근대 인문학이 자랑하는 인식의 도구들은 ‘정신’의 요소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백낙청의 해석은 다르다. 소태산이 물질개벽이라 한 근대를 만든 것은 당대의 문명이며, 문명은 인간이 기대어 사는 집단지혜의 총체이다. 따라서 문명은 구성원 각자에게 세계를 해석하는 ‘견본’과 정신적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경험 모두를 중재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문명을 박차고 나가면 집을 잃은 어린이처럼 생존의 조건을 잃고 만다. 동시에 그곳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피해는 약자일수록 크게 입는다. 비난의 화살을 단지 도구와 기술에만 돌릴 수 없는 이유이다. 소태산은 만물이 하늘과 땅의 덕으로 숨 쉬고(천지은) 낳고 기르는 자의 은혜를 입으며(부모은), 동시대를 함께 차지한 것들과 어울려 지낼(동포은) 뿐 아니라 저마다는 또 각자의 질서에 의존한다(법률은)는 사은(四恩)사상으로 인간과 도구가 주종(主從)관계를 잃지 않는 문명을 획득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질과 도구의 책임이 그것을 만든 인간의 정신에 있으므로 ‘반(反)문명’이 아니라 정신개벽, 즉 ‘대안(代案)문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 누구에게나 분명한 사실은 인류가 더는 근대의 성과에 도취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사전 경고도 없이 불쑥 도달한 ‘디지털 데이터의 신세계’에서는 인간이 기억을 외주화하는 댓가가 더욱 심각해진다. 예컨대 과거 전화번호부 책자에 가득했던 개개인의 연락처와 주소가 상업적 디지털 플랫폼에 저장되며 그로 인해 커다란 도덕적 문제가 초래되는 사태를 우리는 시시때때로 겪고 있다. 인터넷은 비결(祕訣)이 아니라 허술한 사생활까지 모조리 기록해서 어디론가 가져가버린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자연재해에 가까운 ‘문명의 재난’이 발생하기 일쑤인데, 방출되고 유출된 정보가 어디에 모여서 익명의 개체에게 어떤 작용을 가할지 알 수 없다. 개인의 낙서조차 모두 빅데이터에 속하게 되는 까닭에 이제는 도구가 존재에게 세상살이의 내비게이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운명을 결정하는 심판까지 한다. 가령 A가 스스로 본능이라고 믿는 충동이 사실은 자연인 A의 것이 아니라 빅데이터로 분석되고 제시된 캐릭터 A의 욕망인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외주화하는 도구들은 그 순간에도 통제받지 않고, 또 통제할 수 없는 기술을 날마다 실험한다. 인간이 과거의 일부를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여기에 적응할 길은 없어 보인다. 편리의 극단이 불행의 폭주를 인질로 잡는 셈이다.

셋, 지혜의 시대를 제기하는 이유.

돌이켜보면 “소크라테스는 기억을 파피루스에 외주화하는 것이 지혜를 잃게 한다고 경고했지만, 외부 기억 체계가 종으로서의 인간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과녁을 완전히 빗나갔다.”(『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128면) ‘비기(祕記) 신화’가 흥행하던 시대에 인간은 도서관 문화를 구축하고 관리하여 이를 제법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문자소통의 사회적 형식인 출판매체는 전문회사의 도움을 받는 ‘진입장벽’을 넘어야 하므로 정체 모를 지식이 함부로 양산되지 않았고, 그 관리도 도서관 사서라는 전문인력을 양성해 공익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이르면 모든 방어벽이 무너져버린다. 기술공학은 인간이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속도를 훨씬 넘어설 뿐 아니라, 지식이 사용되는 시스템을 책임질 주체가 증발하는 위험까지 낳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인간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잃어버린 채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가공할 영향력만 행사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중과제’가 좀더 분명한 ‘지혜론’을 호명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백낙청은 일찍이 「지혜의 시대」(1990)에서 “현대세계의 엄청난 생산력을 평등한 분배 속에서 유지하는 일”이 해법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그러한 생산력의 유지 자체가 자연환경을 파괴”(『현대문학을 보는 시각』 317면)하는 현실에 주목하여 “사람답게 사는 데 필요한 만큼 가질 것을 가지면서 그 ‘가짐’에 얽매이지 않는 훈련”(같은 책 321면)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를 위한 개념을 ‘지혜’에서 찾는 이유는 물질문명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는 까닭인데, 이는 마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대지의 문명이 대지를 훼손하는, 주객과 본말이 전도된 현상은 삶의 형식을 바꾸지 않고 제도개혁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백낙청의 지혜론이 소태산의 정신개벽에 상응하는 ‘근대의 이중과제’를 상정하는 이유는 이렇듯 근대문명을 ‘대결할 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치유해야 할 병’으로 이해한다는 점에 있다.7

 

 

5. 숙명의 광선

 

백낙청에 의하면 D. H. 로런스는 “피가, 육신이 지성보다 현명하다는 믿음”(23면에서 재인용)을 평생 견지하고 주장했다. 이렇게 유럽문학의 복판에서 서양의 정신사에 나포되지 않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백낙청이 아시아 변방의 언어로 조명하는 행위는 각도에 따라서는 매우 돌출된 일탈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구 근대의 북새통에서 빠져나와 단지 서양의 자식이 아니라 인류의 자식이 되는 길을 개척한 로런스를 ‘개벽’으로 평가하는 모험에는 이미 고갈된 근대의 상상력을 한반도의 개벽사상이 일정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개벽은 서양의 정신사에서는 이단에 속할 터이나 우리에게는 근대의 별빛들보다 훨씬 또렷한 숙명의 광선이었다. 이제 그 문제를 판단할 차례이다.

이 말이 출현한 무대는 조선 말기이다. 19세기 대혼돈의 시대에,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북경이 서양에 점령당하면서 동아시아의 가치체계는 설 자리를 잃는다. 특히 조선은 전염병·가뭄·홍수 등의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서 크고 작은 민란이 일어나고, 빈농의 마을까지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강제로 편입되어 파탄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때 재가녀의 아들로서 가문의 차별과 사회적 소외로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던 선비(수운 최제우)가 세상의 근원적 의미를 모색하고, 49일의 기도를 올린 끝에 동이족의 사상이라 할 동학을 창도한다. 동학의 중추는 모든 사람 안에 하늘이 모셔져 있다는 시천주(侍天主) 정신인데, 이는 모두가 자기 안의 하늘을 깨달아 잘 모셔야 한다는 만인 평등사상과 내 안에 신령이 살고 만물 안에도 신령이 있으며 고로 나는 우주의 뭇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만물 평등사상을 강조한다. 당시 사회체제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은 세상을 평등하게 대하는 예법을 가르치는 동학을 배우고자 물밀듯이 입도하였다. 기득권층은 신분제를 훼손하는 데에 분노했으나 천하의 이치에 눈을 뜬 민중은 기쁨에 들떠서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구원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수운은 ‘다시개벽’을 설파하는데 그 뜻인즉, 살아서 고생하다가 죽어서 천당에 가는 저승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현세의 생명을 존대하며 지상을 천당으로 바꾸려는 수양과 변혁의 해방사상이었다.

여기에서 유의할 대목은 동학이 너무 큰 역사적 환난을 맞음으로써 대지의 영성과 현세의 구원 같은 사상적 본질이 뒷전으로 밀려난 사정이다. 최제우가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처형된 뒤 교조의 명예와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위가 일어나고, 민란의 시기에 그들의 지도력이 혁명을 조직하여 두차례의 큰 농민전쟁을 겪으면서 남긴 일화들은 근대의 바깥을 한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체제와 맞서는 1차 봉기에서 승리하여 민중이 참여하는 지방자치기구로서 집강소까지 설치했던 농민군은 2차 봉기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동원한 서구 근대문명의 위력을 제압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무너진다. 오늘의 자리에서 보면, 그 일은 어떻게 설명해도 조선 민중의 마음이 후천개벽의 사상을 실천하고 검증하는 피의 실험장이었다. 그것은 처음에 전봉준이 이끄는 민중봉기로 점화됐으나 뒤이어 강증산으로 상징되는 ‘의식혁명’의 길을 밟고, 다시 소태산 시대에 이르러 대안적 공동체운동의 성격을 띠게 된다. 광범한 농민대중이 후천개벽사상을 한번은 유가적 방법으로, 다음에는 도가적 방법으로, 이어서 불가적 방법으로 실천하는 놀라운 역사가 실현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같은 사상이 집대성되기까지 대지에 쌓였던 민중의 경험과 역사의 한, 이같은 사상이 출현하여 대결하게 된 문명의 적들과 시련의 궤적, 또 그날의 농민들이 걸었던 길과 학살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동학의 흔적을 답사하고 연구한 후학의 기록물이 쌓이고 쌓여 근대 이후의 대안사상으로 검토되는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이것은 미래세대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게 될까?

오늘날 지상에 가득 찬 ‘생멸’의 물결을 교란하는 파탄의 정체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학자들은 ‘인류세(人類世)’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인간이 존재의 터전을 넘어서 지구상의 전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적 존재로 등극했음을 의미한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존속을 위해 천체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말썽거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그간 숭배해온 문명 자체가 ‘대지를 읽는 일’에 실패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의 근원을 통찰하고 발본해야 한다. 가령, 근대가 실험한 개혁이나 혁명 같은 기획은 단일 문명 안에서 정치나 경제가 작동되는 체제를 고치는 거사를 의미했다. 그러나 현생 인류에게 다급한 숙제는 문명 내부의 질서만이 아니라 목하 진행 중인 근대의 철거 이후 문제에 분포돼 있다. 제도만 병든 게 아니라 대지가 아픈 것이며, 이성의 결핍만 아쉬운 게 아니라 영성의 회복이 절실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를 읽으면서 한국의 민족문학운동이 인류세 앞에서 의식의 광학현상을 빚을 수 있는 숙명의 광선을 불러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그 이유를 내가 특히 감동한, 책의 후반부를 살피는 것으로 밝힐까 한다.

먼저, D. H. 로런스가 『미국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1923)에서 보여준 독법을 백낙청은 책의 9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컨대 서장에서 말하는 각 나라와 대륙마다 다르다는 ‘장소의 기운’ 내지 ‘터의 영’(the spirit of place)을 비역사적이고 미신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책 전체가 꽤나 우스워지고 만다.(403면)

 

로런스가 미국 고전들의 거점을 ‘장소의 기운’이나 ‘터의 영’을 들어 파헤치는 과정은 개벽사상이 아니면 평가할 만한 잣대가 없어 보인다. 더욱 놀라운 점은 백낙청의 시선이 로런스의 견해에 동참해 있다는 사실인데, 일명 ‘대지의 상상력’이라 할 토착적 인식으로 미국의 정신사를 고찰하게 되면 아메리칸 드림은 상당히 우울한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다. 가령 로런스는 “인간은 생명있는 자기 땅에 있을 때 자유롭지 떠돌아다니고 탈출할 때 자유로운 게 아니”(464면에서 재인용)라고 말하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인물로 꼽히는 모범시민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원주민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했으며, 백낙청은 이에 다음과 같이 동참한다.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텅 빈’ 대지를 성실·근면으로 일구어 잘살게 된 것이 ‘미국의 꿈’ 달성이라지만, 이때 간과되는 사실 하나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이요 다른 하나는 대륙 자체가 결코 빈 땅이 아니고 인디언 원주민들의 거처였다는 사실이다.(413면)

 

자기의 대지를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의 꿈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미국문학을 향해서 “아메리카는 아직껏 미국인에게 ‘피의 고향땅’이 아닌 ‘정신의 고향땅’일 뿐이며 그래서 향토니 조국 따위는 우습게 보는 초월주의가 미국에서 발생한다”(430면)고 지적하는 대목은 너무나 통렬하다. 그곳에서는 ‘being’과 진리관과 민주주의론이 살아 있는 새 하늘 새 땅이 보장될 수 없다. 그리하여 로런스는 “육지에서 갈 데까지 간 인생이 이제 대지보다 더욱 광대하고 원초적인 바다에 대한 탐험”(429면)으로 나서는 것을 그린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 딕』(Moby Dick, 1851)의 성과를 높이 사는데, 내가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를 덮으면서 ‘할렘 르네상스’8의 뒤끝을 상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지에서 뿌리뽑힌 삶을 추앙만 하다가 끝나는 역사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1920년대 뉴욕의 신세대 지식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의 인종적 유산 및 뿌리로부터 영감을 얻고자 하는 일종의 ‘미국의 민족문학’을 발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백낙청 같은 정신과 모험이 부재함으로 인해 꼭 필요한 장소에 닿지 못했다.

예컨대 1960년대의 ‘히피운동’은 근대를 앓는 지구촌 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반문명운동이었다. 1967년 샌프란시스코로 모여든 수만명의 청년이 도구적 이성의 과잉과 자본주의적 탐욕이 만들어낸 상쟁의 징후들, 즉 인종차별, 매카시즘, 베트남전쟁 등을 극복할 유산으로 원주민 문명을 선망한 일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러나 히피운동은 안타깝게도 합리성의 통제, 절대적 이성 숭배라는 감옥을 하바드대 의학연구팀의 임상실험실에서 파생한 과학적 일탈의 산물이자 ‘존재의 망각’을 추동하는 마약으로 탈출하려 했다. 히피운동의 함정은 분출과 발산의 힘에 지나치게 도취한 탓에 대지 위에 놓인 생명체의 겸손을 토대로 한 영성의 거룩함을 놓쳤다는 점일 것이다.

한편으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는 대지와 일체화되는 삶의 총화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던 ‘아메리카인디언운동’(AIM)의 문제의식을 이곳에 들이대면 여전히 뼈아프다. 그들의 땅에 대한 ‘겁탈’ 행위를 규탄하고 토착민 문명을 옹호했던 AIM의 지도자 러셀 민스(Russell Means)는 훗날 인민해방사상을 만났을 때도 선을 긋는다. 이른바 “맑시즘이니 무정부주의니 하는 ‘좌익’ 일반들의 이론조차 각자 인간 존재의 영성을 한조각씩 떼어내어 그것을 어떤 규칙, 어떤 추상으로 개조해버린다는 점에서 ‘유럽의 다른 지적 전통과 별개의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것을 혁명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것을 단지 그 옛날부터 있어온 유럽식 ‘존재’와 ‘획득’ 사이의 갈등이 좀더 심화된 경우로 보고 있을 뿐이다.

―러셀 민스 연설문(1980.7)9

 

자본주의자들의 부(富)를 나누려 한 맑시즘도 근대 산업체계를 전제로 한다는 지적은 예리하다. 이를 우리가 주목하는 개벽사상의 자리로 끌고 오면 역동성이 한층 커진다. 특히 백낙청이 로런스의 시 「죽음의 배」(The Ship of Death)를 읽으면서 불교적 개벽사상이라 할 ‘미륵세상’과 상통하는 내용을 밝혀가는 11장은 문체부터가 다른데, 그는 아내와의 사별과 자신의 나이 듦을 말하며 “영적인 세계와 죽음에 대해 자주 사색하게 된 면도 없지 않았다”(490면)고 고백한다. 이제 ‘백낙청 정신’은 ‘무지’나 ‘미지’의 영역과 만나는 모험을 정서적으로 감행한다.

과연 로런스의 「죽음의 배」는 삶의 끝에서 ‘종결’이 아닌 다른 차원을 본다.

 

단검, 송곳바늘, 총알로 인간은

자기 삶에서 탈출할 상처나 출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종결인가, 오 말해다오, 그게 종결인가?

―「죽음의 배」(493면에서 재인용)

 

바로 이곳에서 “로런스적 사유에 구현된 동아시아 불교사상과의 상통성이 단순한 지식의 전파나 ‘영향관계’의 교환을 넘어서는 동서양의 참된 만남의 드문 사례”(521면)임을 지적하면서 백낙청은 이같은 착상을 가능하게 한 중대사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 것으로 책의 대미를 맺는다.

 

진정한 동서의 만남이란 각자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참된 사유의 모험을 진행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수렴현상이다.(같은 면)

 

로런스의 ‘장편소설론’이나 백낙청의 ‘현하의 사상’이 지상의 모든 토착사상과 만나서 과거의 ‘보편’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게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이를 한국 민족문학운동의 자리에서 생각하면, 김소월의 심성이 신동엽의 시와 이문구의 산문을 얻고 김지하의 사상을 획득해도 그것이 과연 국경 바깥의 지성과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가 남는다. 가령 우리의 개벽사상은 그 의미를 다 포괄하지 못하는 ‘생명운동’ 같은 언어로밖에 표현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한류 열풍을 이야기하고 그 위력을 자랑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온 문제는 세계를 바라보는 척도를 자기 잣대로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지성이 앓는 중증의 집단적 콤플렉스의 하나였다.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바로 이 콤플렉스를 없애버린 일이고, 국제 영문학계에 미친 영향은 그들이 로런스가 걸어간 길을 이해할 통로를 개척한 일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동학이 지상의 모든 영적 사상과 소통하는 창구를 여는 일이다.

제국을 거친 존재와 식민지배를 겪은 존재 사이에는 이교도의 눈빛처럼 건널 수 없는 심연의 바다가 놓여 있었다. 그로 인해 서로는 공동체 내부에 축적된 문명의 결과물뿐 아니라 그 내면을 이루는 생활세계의 실감까지 격리되기에 이른다. 백낙청의 국적과 D. H. 로런스의 국적도 그런 위험한 과거를 사이에 두고 그동안 본격적인 사상적 소통을 나눈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형성된 건강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한계에 도달한 근대적 양식을 극복할 인류 공동의 자산임이 분명하다. 특히 서구의 대립항으로서 아직 소비된 적이 없는 수많은 인식의 지평들이 거대한 퇴적층을 이루고 있는 주변부에서 그 ‘버려진 것들’이 중심으로 솟아오르면서 전환되는 빛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문명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지시할 수 있다. 이때 타문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 지평을 획득한 자들의 연대는 자신이 태어난 대지의 시간과 언어를 뛰어넘어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공통의 기반을 창조하거나 인식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인류사의 복판에서 모색된 보편의 인식, 보편의 가치가 ‘달마’처럼 ‘동쪽’을 걸으면서 토착적 지혜, 토착적 지성에 이르는 길을 찾아내는 것. 어쩌면 이는 인간의 문명이 다시금 대지의 숨결과 하나가 되는 비상구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나는 백낙청이 만년에도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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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현대 심리치료의 시조인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가 살았던 시대를 “겸손하지도 경건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성만을 신격화하던 시대”라고 말한다. 『정신의 탐험가들』, 안인희 옮김, 푸른숲 2000, 18면.
  2.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현대 심리치료의 시조인 프란츠 안톤 메스머(Franz Anton Mesmer)가 살았던 시대를 “겸손하지도 경건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성만을 신격화하던 시대”라고 말한다. 『정신의 탐험가들』, 안인희 옮김, 푸른숲 2000, 18면.
  3. 로런스의 being은 서양 형이상학의 틀에 담기지 않는 독창적인 개념이다. 백낙청은 이를 ‘존재임+존재이기’로 이해하며 being을 가급적 원문 그대로 쓴다.
  4. 백낙청의 정신을 ‘현하의 사상’이라 부르기로 한 착상은 그가 언젠가 소태산 언행록인 『대종경』을 가리켜 소태산이 항상 ‘현하’를 지목하여 말씀한다고 평가할 때 얻은 것이다. 특히 소태산의 깨달음을 제1대각과 제2대각 두차례로 보면서 불법연구회라는 도량(道場) 공동체를 창조하는 순간을 제2대각으로 평가하는 걸 보고 나는 백낙청의 민족문학운동이 비평활동 못지않게 『창비』라는 필드를 만들고 지키는 일에 매진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하의 사상’이라는 말은 이러한 ‘지금 여기’의 실천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다.
  5. 인용한 글에서 언급된 ‘제럴드’는 『연애하는 여인들』에서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허무한 죽음을 맞는 인물이다. 백낙청은 무한생산을 추구하는 그의 사업이 “하나의 거대한 시대적 운명을 대표하는 것”(123면)일 수 있다고 본다.
  6. 소태산은 1891년생으로 후천개벽의 역사에서 강증산의 후학에 속한다. 1916년에 대각하여, 만해의 불교유신론을 실천하던 백학명 스님과 연합전선을 꾀하다 제도화된 절간을 박차고 나와 불법연구회를 만든 ‘저잣거리의 성자’이다. 그는 조선어 말살정책이 지배하던 시대에 조선어로, 그것도 강도 높은 사상탄압을 받으며 활동했고, 사후에 원불교라는 이름을 얻는 후천개벽의 공동체를 완성했다. ‘근대문명에 대한 불법의 대응’을 배운 제자들이 내건 개교표어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인데, 중요한 점은 소태산이 근대 안에서 문명의 파도들을 헤치면서 ‘개벽’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7. 여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소태산의 ‘정신개벽’이 “거대한 생명체로 존재하는 우주에서 인간이 그 생명과 얼마나 합일하느냐에 따라 인류사회의 운명이 결정된다”(48면)는 로런스의 근대문명 비판과 상통한다는 점, 그리고 “예술이 하는 일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우주 사이의 관계를 그 살아 있는 순간에 드러내는 일”(306면에서 재인용)이라는 로런스의 말이 “진정한 예술작품이 하나 탄생할 때마다 크고 작은 정신개벽이 이루어진다”(『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모시는사람들 2016, 378면)는 백낙청의 견해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8. 북미대륙에서 유배당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적 전통은 근대적 지성을 갖춘 흑인 지식인들에게 영감을 주며 놀라운 ‘흑인문학’의 성취로 이어졌다. 오로지 소수만이 기억하고 또다른 소수만이 보존하려고 애쓰던 이를 1960년대부터 비평가들이 추적하여 ‘할렘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마크 헬블링 『할렘 르네상스』, 이경식 옮김, 주한미국대사관공보과 2007 참조.
  9.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에서 행한 이 연설은 흔히 ‘맑스주의는 유럽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Marxism Is a European Worldview)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원주민 저항철학의 정수로 꼽히며 1980년대 한국의 대안공동체운동 및 생태운동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전문 번역은 「대지의 미래에 대하여」, 『공동체문화』 창간호, 1983 참조.

김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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