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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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여름] 통권 212호
현장

 

경북산불 1년, 복구와 회복의 의미를 묻다


  

백영경 白英瓊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대담집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및 공저서 『페미니즘, 안녕들 하십니까』 『돌봄이 돌보는 세계』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배틀그라운드』 등이 있음.

paix@jejunu.ac.kr

 

주현우

제주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지역소멸 위기론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으로 박사논문을 썼으며, 그밖에 주요 논문으로 「사회적 고통의 의료화와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 담론」 등이 있음.

hide2314@gmail.com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영덕의 대게 배를 태웠다”

 

4월의 초입, 다시 안동으로 향하는 길은 2025년 3월에 일어난 경북산불 이후 1년을 더듬고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작년 4월 말에 이어 1년 만에 다시 현장을 찾아가는 길에서 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고속도로변을 따라 여전히 이쑤시개처럼 서 있는 불탄 나무들의 행렬이었다. 군데군데 나무를 베어낸 자리만이 그사이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하게 했다. 첫 방문지인 의성군의 천년고찰 고운사(孤雲山)는 지난해 산불로 18개 전각 중 11개가 전소된 곳이다. 돌로 된 기단만 남은 연수전과 전각이 사라진 자리에 놓인 깨진 범종 뒤로 복구작업 중인 트럭들이 연신 경내를 오가고 있었다. 사찰 재건을 위한 불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은 고운사 풍경은 역설적으로 어떤 복원이나 복구로도 시간을 돌이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불에 깨진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고운사의 범종 (사진: 필자 제공)


2025년 봄에 일어난 경북산불의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3월 22일 11시 24분 의성에서 최초의 화재 신고가 접수된 후 인근 소방센터의 선착대와 의성군 산불진화대가 17분 만에 도착했지만, 좁은 농로 때문에 소방차가 발화지점까지 접근할 수 없었고 비공식 임도를 통한 진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1차 저지선에 이어 2차 저지선까지 붕괴하면서 산불은 912번 지방도를 넘어 본격적으로 비산화(飛散火)하기 시작했다. 주요언론의 보도와 달리 산불 초기 바람은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음에도1 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져갔다. 그 결과 일주일간 산림 11만 6천 헥타르와 집 4천여채가 불에 탔고 추정 피해액은 1조 1천억원을 넘어섰다. 산불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이 수십명에 달했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은 임시주택이 조성될 때까지 학교 체육관 등에 설치된 피난 텐트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것이다.

경북산불 이후로 그간 전해져온 말들과 언론보도는 크게 두갈래였다. 지난 산불을 딛고 벌어지는 재건의 노력과 새로운 희망에 관한 이야기가 한 갈래라면, 다른 흐름은 아직 진행 중인 재난과 그로 인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였다. 현장에 도착해서 살피니 산불의 직접적인 피해지역과 지역민들에게 일상으로의 회복이란 아직 먼 이야기임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이재민 중 절반 이상이 아직 제대로 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다가올 퇴거를 걱정한다고 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지난 1월 「경북·경남·울산 초대형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시행되었지만 피해보상보다는 지역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작년 한해가 산불 자체의 충격으로 흘러갔다면, 올해는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지나며 보상과 회복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신임 산림청장이 식목일을 앞두고 안동의 산불 피해지역에 헛개나무 4,800그루를 심으며 ‘제2의 산림녹화운동’을 이야기했다는 소식,2 기업과 단체, 학교 동아리들이 안동을 찾아 나무를 심으며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동안, 필자들이 품었던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산불의 피해가 불탄 나무에만 있지는 않을 텐데,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무의 문제에 몰두하는 사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안동에 도착해 피해지의 능선들을 마주하고 주민들을 만나며 든 생각은, 산림의 문제로만 범위를 좁힌다고 해도 역시 어림도 없다는 것이었다. 축구장 14만개 규모의 산불 피해 앞에서 숲도 사람의 일상도 ‘이전의 상태 그대로’ 돌아간다는 ‘복구’나 ‘복원’이라는 말은 힘을 가지기 어려웠다.

 


지연된 복구와 보상을 둘러싼 시선들

 

산불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산불 이전의 삶으로의 회복―건물과 시설물 등의 물리적인 복구·복원을 넘어 포괄적 차원에서 일상의 되찾음―이 막막하다는 데 있다.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의 한 마을과 같이 동네가 통째로 불타 복원 자체가 쉽지 않은 예도 있고 과수원과 농장, 각종 생업 시설이 피해를 당해 먹고살 방편이 마땅치 않아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은 경우도 흔하다. 이렇다보니 살던 곳을 떠나 다른 시군구로 떠나는 이재민의 수도 늘어나 안동시에선 이재민의 9.4%(3,507명 중 328명), 청송군에선 12.5%(7,669명 중 969명)가 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3 이는 통상적인 전출 경향보다 높은 수치다. 현장에서 피해주민을 만나온 지역사회 활동가는 경북산불 피해지역이 상대적으로 산과 인접한 농산어촌인 만큼 고령인구가 많아 부양가족의 도움 없이 기존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고, 설혹 도움을 받을 수 있더라도 도심으로 거처를 옮기는 걸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역소멸 위기의 현장이 이제는 재난으로 인해 폐촌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몇 안 되던 사람들마저 떠나고 나면 마을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

피해지역의 마을을 다니며 주민들을 만나온 활동가들은 마을 단위의 회복을 위한 실천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긴 세월 동안 함께 살아온 주민들 사이의 연결이 산불로 인해 끊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불이 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나가기만도 벅찰뿐더러 이웃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가는 현실로 인해 큰 심리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연된 복구와 보상으로 인한 행정에 대한 불신 및 이를 둘러싼 갈등이 마을 간의 반목을 부추긴다. 산불 이후 수습과정에서 초기에 파악하지 못한 2차, 3차 피해와 여러 지원정책의 사각지대가 드러났음에도 추가지원 신청에 대한 행정적 조력과 기준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4 임하면에서 만난 한 마을의 청년회장은 의성군과 안동시의 지원 기준에 왜 차이가 있으며 안동시의 지원이 부족한 근거가 무엇인지 행정당국에 질의했으나 제대로 된 답변조차 들을 수 없었다며 “특별법이 다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운사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안동시 길안면에 있는 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였다. 여성농민의 교육·문화사업, 아동청소년사업, 이주여성을 위한 상담 및 교류활동 등을 하는 여성농업인센터는 전국에 40여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중 안동센터는 전국 1호로 문을 연 곳이다. 박인옥 센터장은 지난 한해 동안 피해마을을 직접 돌며 진행한 산불 치유 프로그램에 대해 들려주었다.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주민들과 함께 『우리 마을이 좋아』(김병하 지음, 한울림어린이 2018)라는 그림책을 읽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충남 부여 송정마을을 취재해 섬세하고 서정적인 그림체로 그려낸 이 책은 홀로된 할머니의 시점으로 마을에서 일생 동안 함께해온 이웃과 동식물과 거기 깃든 소소한 추억들을 나누며 “서러운 일도 재미난 일도 참 많아. 그래도 나는 우리 마을이 좋아.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지. 땅으로 바람으로 돌아가는 거지. 얼마나 좋아”라고 마무리 짓는다. 집과 밭, 뒷산이 불탄 후,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나 떠나야 하나 마음이 어지러운 주민들이 그림책을 함께 읽고 그래도 마을에 살아야겠다며 우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이 반드시 실제 마을에 남는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령 작년 길안중학교 임시대피소에서 만나 뵌, 그림을 잘 그리던 할머니의 소식을 센터장에게 물으니 딸네와 가까운 시내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고 소식을 전했다. 산불이 나기 전에도 마을은 이미 관공서에서 서류 한장 떼기에도, 병원이나 미장원 한번을 가기에도 힘든 곳이었고, 평생 살던 곳에서 조용히 나이들고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원은 자식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되어버리는 형편이었다. 더욱이 이제 산불로 악몽을 꾸는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애틋한 마음만으로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보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 역시 피해주민의 심리적 박탈감을 심화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시세가 4천만원이던 농가주택에 1억원을 보상하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는데, 이는 그 돈으로도 전에 살던 집을 다시 지을 수는 없는 현재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은 것이었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돈 번 것 아니냐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이 기회에 노후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려 한다는, 같은 지역 내의 의심의 눈초리에 모멸감을 느꼈다는 증언들도 이어졌다. 안동시의 경우 산불 피해가 임하면·길안면 등 안동 도심과 떨어진 외곽지역에 집중되다보니, 시내에 거주하는 주민과 피해지역 주민 사이의 인식 격차가 예상외로 컸다. 안동 인구만 해도 15만명이 넘는 현실을 놓고 보면 경북 전체의 피해주민 수 3,500명, 피해건물 4,400채라는 숫자는 왜 지자체 차원에서도 피해자 지원이 최우선과제가 되지 못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한두다리 건너면 아는 지역 내의 피해라고 해도, 막상 ‘내 문제’인 사람은 적은 것이다. 즉 압도적인 피해면적에 비해 그곳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 피해와 고통을 과소평가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보상이 숫자의 논리로만 다루어질 때, 그 숫자 바깥에 놓인 삶들은 이중으로 지워진다. 그러나 현장에는 그 숫자의 바깥에서 이미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다른 방식의 회복의 모색도 있었다.

 


삶의 수선: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성의 고운사를 들러 안동 일대를 다니는 과정에서 필자들을 압도했던 불탄 산의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튿날 안동환경운동연합 김수동 대표를 만나고 경북매일·안동뉴스 등 지역신문 기사들을 찾아 읽으면서였다. 방문 당시에는 몰랐지만 고운사 일대에서는 사찰의 복원 불사와는 별개로 불탄 산림에 대한 자연복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김대표를 비롯한 시민환경단체들과 ‘시민과학자’5들이 피해지역의 식생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어느 자리가 인공조림이 필요한지, 어느 자리는 자연의 회복에 맡겨야 하는지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자연복원은 방치와는 다르다. 짧은 시간 안에 대규모로 나무를 심어 외형상의 ‘녹화’를 달성하기보다, 꼭 필요한 지점에 최소한의 개입을 하고 나머지는 숲이 스스로 회복하는 속도를 기다리는 접근이다. 실제로 산불 피해지의 생태학적 회복에서 인공조림보다 자연천이(遷移·succession, 식물군락이 환경의 변화와 시간의 추이에 따라 새로운 식물군락으로 변해가는 과정)가 더 건강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국내외 연구에서 이미 확인되어온 사실이다. 한두달 뒤 늦봄이나 초여름에 접어들면 검게 탄 숲에도 푸른 기운이 상당히 돌 거라며, 그때 다시 와서 자연복원 프로그램의 목격자가 되어보고 불탄 숲에 찾아드는 많은 생물들도 만나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바라본 능선은 더이상 까맣기만 한 죽음의 풍경이 아니었다. 서두르지 않으며 자연의 회복을 돕고 기다리는 시민들의 느린 시간이 그곳에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이 조용한 회복과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들은 여러 사연이 겹치면서 든 생각은 ‘복구’와 ‘복원’이라는 말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숲도 마을도 산불 이전과 온전히 같은 형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거나 이상적인 형태를 되돌린다는 의미의 복구·복원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조건을 깁고 덧대서 어떻게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수선(修繕·repair)이다. 돌봄과 수선을 오래 연구해온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 마리아 푸치 데라벨라까사(Maria Puig de la Bellacasa)는 돌봄을 “취약한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는 일상적 실천”이라고 말한다. 수선은 망가진 것을 새것으로 바꾸어 똑같이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설혹 덧대고 기운 자국이 남더라도 기존의 관계와 리듬을 더듬어 다시 잇는 일이다. 그리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야말로 수선이 복원과 다른 결정적인 지점이다.


불에 타 벌거벗은 산의 풍경 (사진: 필자 제공)


산불이 진화된 직후 이철우 경북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낙후된 경북지역의 상황을 거론하며 산불 피해지역 복구가 ‘파괴의 미학’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6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말이 드러낸 감각은 오래 남았다. ‘파괴의 미학’이 전제하는 것은 이전의 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세운다는 발상이다. 수선이 이미 있던 관계와 리듬을 더듬어 잇는 일이라면, ‘파괴의 미학’은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선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산불특별법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와도 맞닿아 있다. 85개 환경·종교·시민단체는 “해당 특별법이 ‘산불을 계기로’ 보호지역 해제와 대규모 개발을 빠르게 허용해 산림 난개발과 보호지역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자연복원보다는 개발을 우선시해 생태계를 광범위하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7 실제로 산불특별법 제39조(관광단지개발), 제33조(자연휴양림등의 조성 등 기준 적용에 관한 특례), 제48조(인·허가등의 의제 및 규제완화), 제57조(선도지구 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적용의 특례) 등은 기존 환경영향평가와 수의계약, 국·공유재산의 매각조건을 완화하고 산주의 동의 없이 위험목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한다. 법 제정 이후 여러 지자체가 민간자본 투자를 포함한 각종 개발계획을 발표한 건 이 때문이었다. 피해면적이 넓었기에 그만큼 큰 개발의 기회가 열린 셈이다.

우려는 현장에서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 위험목과 피해목 제거 및 활용을 둘러싼 벌채·가공업자의 이해관계에 대한 의혹이 피해지역 주민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었는데, 특히 피해목·위험목의 자원화 과정이 문제시되었다. 특별법 제정 이후 산주 동의 없이 위험목 제거를 진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통지 의무 자체는 남아 있음에도 관련 내용을 통지받지 못한 산주들이 적지 않았다. 벌채 사업자들이 벌목한 목재를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제도8를 통해 이윤화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재난의 자리가 어느 순간 거래의 자리로 바뀌고,9 그 거래에서 배제된 것은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사람들이었다.

묘목을 심는 일에서도 비슷한 구조적 문제가 확인된다. 식목일 행사와 각종 조림사업을 통해 심는 나무들은 대체로 외지의 양묘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산불 피해복구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지만 그 예산은 외지의 묘목시장과 조림업체로 흘러가고, 정작 피해를 입은 지역의 경제적 회복으로는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산림복원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서도 산주와 지자체, 조림업자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이번 산불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간벌, 임도 등) 기존의 ‘숲 가꾸기 정책’이 반복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산불특별법을 비롯한 현재의 복구 및 복원의 과정이 피해주민의 “삶을 보듬기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땅 갈아엎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10가 나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삶의 수선이 불가능해 보이는 자리에서 희망의 경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일례로 또다른 산불 피해지역인 영덕군에서는 최근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위한 여론조사와 현장 실사 등이 진행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영덕핵시설저지30km연대’ 최정연 공동대표는 이 사업의 배경에 2025년 경북산불이 있다고 지적한다.11 2015년 군민 32.5%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7%가 반대해 무산됐던 핵발전소 유치가 최근 들어 주민 4%만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86%가 찬성했다는 점을 근거로 다시 추진되었는데, 지자체의 미흡한 여론조사도 문제지만 지난 산불로 생계를 위협받은 주민들의 절박함도 깔려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영덕은 한때 전국 송이버섯 생산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송이농가가 많았으나 산불로 피해를 당한 곳이 적지 않고, 석리·경정리·노물리·매정리 등 마을이 통째로 불탄 경우도 있어 핵발전소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급기야 ‘핵발전소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현수막까지 걸렸다고 하니 사실상 산불이 핵발전소 유치의 동력이 된 셈이라 하겠다. 삶의 터전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채 방치될 때, 주민들의 선택지는 빠르게 좁아진다.

 

 

산불특별법 넘어 일상의 정치와 회복을 위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피해보상이나 복구지원이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면 현재의 산불특별법보다 더 전폭적인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일까. 특별법을 기대하고 특별대책을 고대하며 대규모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기다리는 일은 언뜻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현재를 현재로 살 수 없게 만든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 ‘나중에 올 무언가’의 이름 아래 계속 미뤄지는 동안, 피해주민들의 하루는 응답 없이 흘러간다. 물론 그간에 피해지역에 대한 지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특별법 제정 노력을 포함하여 각종 기관과 단체의 지원은 이어졌고, 지자체 차원의 보상도 진행되었다. 다만, 지원금은 액수로는 적지 않았지만 정작 그 돈이 사람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누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듣고 그에 맞춰 제도를 운용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 지원은 숫자로는 집행되어도 현장에는 닿지 않는다.

이 응답의 실패가 단지 개별 공무원의 태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현장에서도 꾸준히 지적되었다. 경북산불 이후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대응의 한계를 비판하며 피해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주장해온 경북녹색당 허승규 사무처장의 지적도 그러했다. 최근 국무총리 산하 ‘산불특별법 피해지원 재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적극적 행정에 나서기보다 소극적 민원수용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무엇이 가능하다는 말보다 이것은 안 된다는 식의 행정 대응이 피해주민과 지역의 자치를 위축시키고, 그 자리를 행정적·법제도적 언어로 채우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와 같은 행정 대응의 밑바탕에는 피해의 규모는 크나 인구수나 국가경제적 비중은 크지 않다는 지역민에 대한 위계가 작동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보상과 관료주의적 행정에 대한 불신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피해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 수 등 숫자로만 집계되고 사회적으로는 충분히 공감받지 못하는 산불 피해 앞에서, 어떤 복구와 복원이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기이다. 경제적 논리로만 환원된 피해와 지원이 아닌, 무엇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과 피해주민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명될 수도 있다. 시간을 거슬러 모든 것을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피해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이전과 엇비슷하게라도 삶을 재조직해내는 과정이 현재의 지원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가능과 불가능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슬기롭고 현명하게 좁힐지를 함께 궁리하는 자리가, 지금의 복구과정에는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꼭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고안하지 않더라도 이미 갖추어진 지원정책들을 현장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소극적 행정에서 적극적 행정으로의 전환은 반드시 법·제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복구과정은 그 격차를 좁히기보다 과도한 지원에 대한 경계 섞인 시선에 가깝다는 점에서 피해주민들의 박탈감만 키울 뿐이다. 피해주민들이 목소리 내고 참여하는 일상의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서 정치는 사람 사이의 대화가 아닌 경직된 법·제도에 일임되고, 그 속에서 대표되는 것은 민의(民意)이기보다 이해관계이며 현실보다는 관행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아니라, 얼마나 걸릴지 그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느린 회복을 지원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정책이다.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럼에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더듬어 잇는 노동을 받쳐주는 제도적 하부구조. 불탄 산의 능선이 스스로 회복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정책, 마을에 남기로 한 마음이 실제로 남는 일로 이어지도록 곁에서 응답해주는 행정,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피해주민들이 말하고 참여하는 자리를 열어두는 태도. 복구의 정도와 수준 이전에, 어떤 복구가 필요하고 가능한지를 둘러싼 구체적인 진단과 토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궁리와 진단과 토의의 자리를 우리는 일상의 정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선의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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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불이 조기 진화되지 않고 확산된 원인으로는 건조한 날씨, 진화를 위한 인력·장비 부족, 불이 잘 붙는 침엽수 위주의 조림 및 간벌 등 여러 차원이 제기된다.
  2. 「산림청, 안동 산불 피해지서 ‘제2의 산림녹화 운동’ 선언」, 연합뉴스 2026.4.3.
  3. 「<단독>‘괴물 산불’ 1년, 몇안되던 사람마저 떠난다」, 동아일보 2026.3.17.
  4. 「산불 1년…짙어진 ‘불신’ 트라우마 시달리는 주민들」, 경향신문 2026.3.17.
  5.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이란 일반대중이 과학연구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전문가와의 협력 속에서 과학지식의 생산 및 정책과 제도 수립 등에 나서는 것을 뜻한다.
  6. 「역대 최대 산불이 ‘파괴의 미학’? 이철우 발언 논란」, 오마이뉴스 2025.3.31.
  7. 「‘막개발법’ 비판받은 ‘산불특별법’ 국무회의 통과」, 한겨레 2025.10.21.
  8. 벌채 부산물 등을 수집해 목재펠릿·칩 등 친환경 에너지로 활용하는 정책이지만, 일각에서는 벌채를 확대시키며 환경파괴를 부추긴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과거 안동시에서는 2021년 산불로 발생한 피해목이 목재칩 형태가 아닌 원목으로 무단 유출돼 관계자가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 피해목, 진정한 자원 순환과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경북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협조뉴스 2025.7.15.
  9. 강릉과 인왕산 산불 복구과정에서 드러난 산불 ‘카르텔’에 대한 다음의 기사를 참조해볼 만하다. 「복구했다더니 빈 땅…수천억 딴 뒤 증발한 ‘메뚜기’ 반전」, SBS 2026. 5. 4.
  10. 「<경북산불 1년> 70년 ‘송이 황금산’ 잃은 노인에게 특별법은 ‘남의 나라 이야기’」, 경북매일 2026.3.25. 이 연속기획 기사에서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경북산불 1년> 누구를 위한 ‘재건’인가」, 경북매일 2026.3.23.
  11. 「잿더미 영덕, ‘회복’ 필요한데 ‘독약’ 받으라고?”」, 탈핵신문 202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