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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상민 외 『비인간』, 사월의책 2025

‘비인간 전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질문들

 

 

전의령

인류학자, 전북대 여성연구소 운영위원

euyryung@gmail.com

 

 

 

어느 일요일 오후,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연구실에 나와 있다. 코로나19 이후 내가 일을 하는 장소는 대부분 집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집은 자연스레 연구실이 되었고, 나는 고양이 ‘마우’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수업을 하고 연구도 하고 첫 책도 썼다. 어느새 마우는 확실한 노냥이가 되어 처음에는 신부전 진단을 받았고, 나중엔 혈압 관리도 필요해졌다. 마우의 루틴과 나의 루틴을 가장 잘 조율할 수 있는 장소는 역시 집이었고, 코로나19가 끝나며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으나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우는 대부분 잠을 자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고, 나는 그런 마우가 잘 보이는 거실 책상에서 일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 집을 나와 연구실에서 일한 지 몇달이 되어간다. 마우가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마우가 나에게 와준 17년 7개월 16일간 우리를 키워준 ‘소중한 타자성’(도나 해러웨이 『해러웨이 선언문』, 책세상 2019)에 대해 곱씹어본다.

김상민 외 8인이 저자로 참여한 『비인간: 사물, 생명, 기계, 행성과 함께 사유하기』는 지금 우리에게 ‘비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비인간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묻고 답하는 책이다. 인류세, 기후위기, 환경파국. 우리가 마주한 ‘지금’을 지배적으로 표지하는 말들이다. ‘비인간 전회(轉回)’는 이를 인간과 비인간, 문화와 자연,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에 기반한 근대성의 재앙적 결과라 진단하고, 이 이분법을 넘어서는 존재양식들을 좇으면서 21세기 사유의 가장 독특한 흐름으로 자리잡아왔다. 비인간 전회가 그리는 평평한 존재론(들)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주체와 객체가 표상하는 근대적 위계를 넘어서 세상을 공-구성(co-constitute)할 뿐 아니라 공동생산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인간 너머’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에서 비인간은 역사의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 되고, 과학은 더이상 차가운 지식이 아닌 상호 길들이기와 돌봄의 윤리가 되며, 인간은 다양한 비인간과의 상호연결됨 속에서 그 나름의 존재자가 된다.

지난 이십년간 국내에서 비인간 전회에 대한 논의는 존재론적 전회, 물질적 전회,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신유물론, 포스트휴머니즘, 객체지향 존재론, 다종 민족지 등의 여러 흐름을 주도하는 해외 저자들의 책을 앞다퉈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 집중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반갑게도 이 책은 문화연구, 언어학, 철학, 종교학, 인류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전공의 국내 연구자들이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구체적 연구현장에서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며, 비인간 전회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나 비판에 적극적으로 응답한다. 예컨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신유물론이 사물과 물질을 의인화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에 “인간적인 것을 ‘집어넣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인 것을 ‘끌어내’”(문규민, 62면)려는 전략임을 설명하거나 포스트-ANT로의 이행이 ANT에서는 탈각되던 “‘번역될 수 없는 것의 관점’을 가시화”(박동수, 118면)하려는 노력임을 이야기한다. 한편 실험쥐와 인간 연구자와의 관계 속에서 ‘다종 이야기하기’를 시도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공유하는 동고(同苦)를 전하고 다종 이야기가 “다른 종과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고 발명하도록 이끈다”(하대청, 166면)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비인간 담론이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서 이해되어온 인류학의 경계를 갱신한다고 말하고(황희선), 소록도의 옛 마을 터를 다양한 인간과 비인간들이 역동적으로 얽힌 세계로 알아차리게 해주었다고도 전한다(유기쁨). 나아가 앞으로 비인간 연구가 비인간의 행위성에 매몰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를 착취하거나 도구화하지 않으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기획으로 나아가야”(김상민, 54면)한다고 역설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승일의 글에서 짚듯 비인간 전회가 가리키는 ‘평평한 존재론’의 이면에 여전히 “평평하지 않은 존재론”(303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망각할 수 없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비인간(nonhuman, 인간 외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으로서 점점 더 그 자체의 독자적 존재감을 보여왔지만 여전히 ‘비-인간’(inhuman, 인간에 못 미치는 존재)으로서 “항상-이미 인간 중심의 구조와 기획 안에 포섭되어 있다”(302면). 그런 의미에서 비인간에 대한 말하기는 “더 철저하게 ‘인간’에 천착”(손희정, 343면)하거나 그 내부의 ‘비인간화’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역사적 진단 속에서 우리가 “인간 중심적 오만을 내려놓고, 세계가 인간 없이도, 혹은 인간 너머에서 어떻게 풍요롭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겸허히 배워야 한다”거나 비인간들과의 마주침 속에서 인간 너머의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공생의 미래”(「서문」 18면)로 향할 수 있다는 처방은 어딘가 불충분해 보인다. 비인간과의 공생이나 상호-응답하기만을 통해 ‘평평하지 않은 존재론’에 효과적으로 대응 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과학 실험실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를 상상할 수 있다 해도, 그 호혜성을 애초에 구획하는 권력과 지배관계, 비대칭성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인간 전회가 (세계를 더 두껍게) 묘사하는 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그것이 어떤 정치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라 하겠다. 가령 ANT의 ‘묘사하기’가 “작은 존재들의 연쇄를 되살리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공존의 경로를 발명”(박동수, 134면)할 수 있다고 할 때, 이것이 향하는 것은 정치인가 윤리인가?

마우와 내가 나눈 소중한 타자성은 마우와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문자에 기대지 않고도 다양해질 수 있는 말들, 몸짓들, 표정들, 그르릉거리는 몸의 떨림들. 털북숭이 몸이 전해주는 온기, 안온감, 몽실몽실한 무게감과 소중함. 하지만, 우리의 ‘함께-되기’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지형들의 거대한 존재감 위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무수한 다종 상호작용 중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그 거대한 울퉁불퉁함들, 즉 ‘평평하지 않은 존재론’에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위기의 주요한 책임이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호연결됨이나 그 관계의 가시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울퉁불퉁함의 구조에 대해 (재)사유하며 어떤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효과적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은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주체는 관계와 단절된 채 홀연히 힘을 발휘하는 권능화된 자유주의적 존재일 리는 없다. 우리의 ‘주체-됨’이 언제나 우리가 처한 상황에 의해 가능해지고 또 불가능해질지라도, 주체로서의 행위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반응이나 변화로 환원될 수 없는 단절과 균열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울퉁불퉁함의 구조를 시정하려는 주체의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