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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옥타비아 버틀러 『새벽』, 허블 2026

완전한 타자와 ‘동의’ 밖에서 관계맺기

 

 

강은교 姜恩敎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어문학과 한국학 박사과정

ourcosmicepoch@gmail.com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E. Butler)의 『새벽』(Dawn, 한국어판 장성주 옮김)은 제노제네시스(Xenogenesis) 3부작의 첫번째 작품으로, 1987년 발표되었다. 제노제네시스는 이종(異種)을 뜻하는 ‘xeno-’와 기원을 의미하는 ‘genesis’의 합성어로, 부모세대와 전혀 다른 자녀세대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멸종 직전에 이른 인류는 외계종족 ‘오안칼리’에 의해 구조된다. 주인공인 흑인 여성 ‘릴리스 이야포’는 오안칼리의 우주선 안에서 200여년간의 동면 끝에 깨어나, 인류를 대표해 오안칼리와의 이종교배 계획에 협력할 것을 요청받는다. 오안칼리는 ‘거래자’를 뜻하며, 이들은 본성상 새로운 종을 만나 유전자를 교환함으로써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오안칼리가 인류를 구한 것은 자비나 시혜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종의 존속을 위한 필요에서 비롯한 일이었다. 인간과 오안칼리의 다음 세대는 각각의 특성을 분유(分有)한 완전히 새로운 종이 될 것이다. 릴리스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주어지는 물음은 이것이다. 오안칼리와의 조우는 과연 멸종 직전 인류에게 주어진 생존 기회인가, 아니면 외계종족에 의한 인간종의 확실한 죽음인가?

이종간의 만남을 그리는 데 있어 버틀러가 특히 빛나는 지점은 에로티시즘이다. SF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첫 접촉은 대부분 무성적으로 그려지며, 섹슈얼리티가 개입하는 드문 경우에도 대체로 일방적인 침략과 폭력으로 재현된다. 하지만 버틀러는 이질적 존재와의 물리적 접촉이 수반하는 공포와 매혹의 얽힘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앞선 시기에 발표된 단편 「블러드차일드」(Bloodchild, 1984)에서도 버틀러는 생식(生殖)으로 얽힌 외계종족과 인간의 공생을 두려움과 애틋함이 뒤섞인 복잡미묘한 상태로 묘사한 바 있는데, 『새벽』에서는 이를 더욱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오안칼리는 암컷과 수컷, 그리고 제3의 성별인 ‘울로이’로 이루어진 삼자 구도로 가족을 이루며, 인간과의 결합에서도 이 구도를 유지한다. 오안칼리의 몸을 뒤덮은 촉수들은 감각기관이자 소통수단이고, 그중 울로이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기관 ‘감각 손’은 인간의 신경계에 직접 접속해 감각과 감정을 매개한다. 울로이 ‘니칸지’가 릴리스와 그녀의 남성 파트너 ‘조지프’와 관계할 때, ‘그것’(it)은 ‘그녀’(she)와 ‘그’(he) 사이에 물리적으로 위치하여 양쪽을 연결한다. 이를 통해 릴리스와 조지프는 어떤 인간적 접촉보다 더 온전하고 강렬하게 서로를 감각한다. 이질적 존재가 친밀성의 회로 자체에 구성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버틀러는 절제된 관능적 묘사를 통해 이러한 삼자적 친밀성을 에로틱한 것으로 그려내는데, 이는 소설이 지닌 가장 독특하고 도드라지는 질감이다.

이러한 낯선 존재와의 얽힘은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를 비롯한 페미니즘·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되어왔다. 오안칼리와 인간의 관계는 종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혼종적 결합, 타자와의 급진적 연루라는 점에서 사이보그나 반려종(companion species) 존재론의 문학적 형상화로 읽히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그렇게만 읽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예컨대 니칸지는 첫번째 관계에서 조지프를 신경화학적으로 무력화하여 거부의지를 잠식하고, 이후에 그가 거부의사를 표현할 때에도 “당신의 몸은 마음과 다른 선택을 내렸”(339면)다며 관계로 이끈다. 울로이와의 접촉이 수반하는 압도적인 쾌락은 여기서 사뭇 다른 뉘앙스를 띠게 된다. 신체적 반응을 동의의 근거로 삼는 것은 강간문화의 핵심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니칸지는 약속과는 달리 릴리스의 동의 없이 릴리스가 조지프의 아이를 잉태하게 한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생식행위가 오안칼리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두차례에 걸친 인간 여성에 대한 인간 남성의 강간 시도가 분명하게 비판적인 어조로 묘사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성적 동의에 관한 이와 같은 버틀러의 양가적인 태도는 문제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버틀러가 동의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보다 복잡하다. 동의라는 개념은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자율적 합의라는 자유주의적 전제 위에 놓여 있지만, 이 책이 그리는 세계에서 그 전제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다. 오안칼리와 인류의 ‘거래’는 양측이 조건을 조율한 끝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가사 상태에 있는 동안 오안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릴리스가 깨어났을 때 거래의 조건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이 아니라 협력의 역할이었다. 버틀러가 치밀하게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 비대칭적 거래 안에서 주인공 릴리스가 벌이는 끊임없는 협상이다. 릴리스는 오안칼리의 제안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도, 완전히 거부하지도 않는다. 의심하고, 저항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체적 반응을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 안에서 행동할 여지를 찾아나간다. 이는 자유로운 동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서 관계를 맺을 때 어떻게 행위성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응답이다. 그리고 바로 이 물음은 흑인 여성 작가로서 버틀러의 위치성―노예제하에서 재생산의 자율성을 박탈당한 흑인 여성들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할 테다.

무엇보다 릴리스의 선택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체념이 아니라 사랑과 연민이다. 폭력을 자행하는 인간들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힌 존재로 그려지며, 릴리스는 이미 동족으로부터 배신자로 지목되었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돕는다. 또, 릴리스는 자신이 오안칼리 종족의 실험동물에 불과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위험에 처한 니칸지에게 손을 내민다. 이렇게 버틀러는 어느 한쪽으로 재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안정적인 판단의 발판을 내어주지 않으며, 바로 그 불안정한 자리에서만 가능한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길어올린다. 공포와 쾌락, 사랑과 혐오가 분리되지 않는 이 복잡한 동학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을 읽는 깊은 즐거움이다. 『새벽』은 제노제네시스 3부작의 서장에 불과하다. 앞으로 릴리스의 아이들이 어떤 존재로 태어나 어떻게 세계를 만들어나갈지, 이후 번역 출간될 두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