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6 여름] 통권 212호
독자의 목소리

 

 

거대한 담론을 삶의 언어로 만드는 일

▶ 『창작과비평』 2026년 봄호는 거대하게 다가오는 담론을 삶의 언어로 바꾸어 생각하게 만드는 호였다. 창간 6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책을 펼치기 전에는 회고의 성격이 담긴 글들이 주를 이룰 거라고 예상했다. 막상 차례로 글을 읽어나가니 ‘지금 우리가 어떠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하는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와는 멀거나 혹은 추상적이라고 여겼던 이야기들이 내 삶의 자리와 현실감각 속으로 내려와 앉는 것 같았다. 특히 특집의 이남주 글 「분단체제의 정치와 K민주주의」를 읽으면서는, 한반도의 분단현실이 거시적인 외교나 안보의 문제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민주주의나 정치적 양극화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나 역시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단편적인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어떤 시선과 태도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창비』와 함께 매 계절을 보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깊이있는 사유의 무게를 오롯이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는 일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논하는 특집부터 주목할 만한 신간을 다루는 촌평까지 읽어나가며 때로 동의하고 때로는 반론을 떠올려보게 될뿐더러 내 삶의 자리와도 연결시켜보며 사유를 확장하게 되는 것이다. 빠르고 자극적인 말들이 쉽게 소비되고 유행하는 이 시대에 한문장씩 천천히 생각을 곱씹으며 오래 붙들고 읽게 되는 지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귀하다. 다만 『창비』의 이런 고유성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기 위해 글을 잘 따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짧은 안내문구나 편집상의 배려가 보태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60주년 기념 봄호는 역사가 깊은 잡지의 어떤 권위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현실과 독자를 향해 스스로를 새롭게 하려는 의지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송우석

 

세계인의 마음을 엮어낸 K문화의 힘

▶ 지난호에는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마음을 연결할 실을 한올씩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들이 실렸다. 세계적으로 ‘한국적인 것’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 특집의 「‘인간해방의 논리’를 구현하는 K문화」야말로 꼭 읽어야 할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게도 권했다. 박여선의 이 글은 K문화가 단순한 오락거리나 유행을 넘어 억압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타인과 연대하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짚어내 감동을 전한다. 이 글에서도 소개되듯 작년 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가 65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런 시기에 우리부터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는데, 글을 읽으면서 그 다짐에 대한 답장을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하얀 실로 비유할 때, 그 흰 실이 세계의 여러 물감으로 물든다면 때로 잘 말려 색색깔로 엮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빨래터로 나가 다시 하얗게 빨기도 하고, 또 때로는 실패에 잘 감아두었다가 한올 한올 어디로 연결되었는지 풀어보기도 하는 것이 곧 세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듯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수록 외부의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리거나 반대로 우리 것만 맹목적으로 고집하는 것이 아닌, 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도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텐데, 이는 백민정의 글 「중도의 재구성」에서 소개한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그것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을 필요로”(45면) 하는 동학의 중도 개념과도 깊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손끝에서 풀린 실들이 세계인의 마음마다 연결되었을 장면을 떠올리며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김시운

 

문학을 읽는 더 다양한 독법을 만날 수 있기를

▶ 지난호는 ‘문학이 현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오랜 질문을 여전히 정면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우선 신예시인선과 김애란 전춘화 전성태 정지아의 신작소설들이 빼어났거니와, 문학작품과 비평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개인의 서사를 단순한 감정의 기록으로 두지 않고 사회구조 속에서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다. 가족·노동·불평등·젠더 등 다소 반복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주제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단순히 경향을 따르는 것이 아닌 이 잡지가 유지해온 문제의식을 연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특히 문학평론란의 두 글을 인상 깊게 읽었고(강경석 「새로운 문명의 단서들」, 성현아 「진정성이라는 대리 물성과 정체성의 딜레마」) 작가 인터뷰와 문학초점도 좋았다. 문학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실을 해석하는 언어로 끌어올려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탁월함에 감탄했다. 나 역시 그간 『창비』를 읽어오며 문학작품을 볼 때 그저 감상 차원에 머물기보다 사회 기저에 깔린 구조를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창비』는 역시 비평지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비평글이 지닌 문제의식이 워낙 뚜렷하고 묵직하다보니 서술의 초점이 특정한 방향으로 강하게 모이는 경향도 엿보인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만큼, 상대적으로 작품 속 인물의 내면 묘사나 형식적인 실험이 다소 가려지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 못지않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성도 조금 더 활짝 열려 있다면 어떨까. 견고한 해석의 틀에 틈을 내어 다양한 독법이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그럼에도 『창비』는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할 든든한 버팀목 같다. 문학을 개인의 취향이나 감상의 영역으로 축소하지 않고, 사회와 연결된 언어로 굳건히 지켜내려는 태도는 현재의 문학환경에서 더욱 귀하고 드문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호는 그 질문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앞으로 그 질문을 더 넓고 유연한 방식으로 확장해나갈 다음 걸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지영

 

인간해방의 길을 함께 상상하며

▶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글은 박여선의 「‘인간해방의 논리’를 구현하는 K문화」이다. 이 글을 통해 문화라는 것이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이있는 힘을 지녔음을 깨달았다. ‘인간해방’이 단순한 정치적·억압적 굴레에서의 탈피를 넘어 인간 본연의 생명력과 주체성을 온전히 꽃피우는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문화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됨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다가왔다. 한 사회가 발전하는 데 있어 문화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아니, 어쩌면 ‘요소’라는 작은 단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삶의 토대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글 속에서 김구가 말한 “새로운 생활원리의 발견과 실천”(47면)에 대한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김구라는 이름의 무게에 비해, 정작 그가 내세웠던 문화국가의 진짜 의미에는 무관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 “최고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명을 달성할 민족은 한마디로 말하면 국민 모두를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데 있다”(48면)는 그의 발언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귀감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성인’이란 도덕적으로 무결한 종교적 인물을 뜻한다기보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깊은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지닌 성숙한 주체를 의미할 것이다. 이는 ‘인간해방’의 온전한 실현과도 맞닿아 있으며, 이 글을 통해 그것이 단지 이상주의가 아니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창비 한국사상선’의 『김구·여운형』을 비롯해 관련 독서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