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특집│세계질서 변화와 한국의 길
변화하는 한미동맹과 전작권 전환
김정섭 金廷燮
세종연구소장, 전 국방부 기조실장. 저서 『세 개의 전쟁』 『낙엽이 지기 전에』 『외교상상력』 등이 있음.
jungsupkim1@gmail.com
1. 미국 패권의 변화와 한미동맹의 재설계
오늘날 국제질서는 기존 규칙 기반 질서의 근본적 균열 속에서 급격한 재편 국면에 진입했다. 그 출발점은 2022년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이었으나, 현재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미국이다. 관세와 달러 패권의 무기화, 그린란드 영토 위협, 베네수엘라 침공 등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더이상 질서 보증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좁은 국익을 거칠게 추구하는 강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이 ‘초대된 제국’이 아니라 ‘약탈적 패권국’에 불과하다는 자성이 미국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1
여기에 이란전쟁은 미국 패권의 미래와 동아시아 질서의 향배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전략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가운데 군사력 소진, 소프트파워 훼손, 미-유럽 관계 균열 등 큰 비용을 치렀다. 그뿐 아니라 중동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미국이 지향하는 전략적 우선순위의 혼선을 초래했고,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 미국의 역량과 헌신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미국 전략가들 일각에서는 이란전쟁을 가리켜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경험한 가장 결정적 패배’라거나 세계질서의 판도를 바꿀 ‘지정학적 지진’으로 규정하는가 하면,2 수에즈 위기3 이후 영국·프랑스 열강의 몰락이 재촉됐듯이 호르무즈해협의 통제권 향배는 ‘미국의 수에즈 변곡점’이 될 거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미중관계와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미래도 불확실하다. 트럼프 1기 시절 공식화된 인도·태평양(이하 ‘인태’) 전략이 2기에는 더욱 공세적·체계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미국의 관세 공격과 중국의 희토류 반격 이후 미중관계는 전술적 휴전상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는 2020년대를 미중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10년”(decisive decade)으로 보고 결의를 보인 반면, 트럼프 2기 들어서는 중국과의 “괜찮은 평화”(decent peace) 쪽으로 물러서고 있다. 특히 대만을 “협상 칩”으로 취급하는 등 미국의 대만정책에 변화의 조짐도 나타난다. 즉, 트럼프 행정부는 인태 지역에서 강력한 군사적 억제와 압박보다는 경제적 측면의 경쟁과 타협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관료 중심의 워싱턴 주류는 여전히 중국과의 지정학 경쟁을 중시한다. 미국 중심의 기존 양자 동맹체제를 넘어 동맹국들을 서로 연결하는 ‘격자형 안보’ 추구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제이비어 브런슨(Xavier Brunson)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이 연이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그는 한국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빗대는가 하면 한반도를 ‘중국의 심장부를 겨누는 단검’에 비유하기도 했다. 결국 현재 미국의 인태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선순위와 관료집단의 제도적 관성이 공존하는 이중적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태 전략의 지속과 실종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이 보내는 메시지가 혼란스럽고, 미중관계나 동아시아 질서의 미래에 불확실성이 큰 상태다.
트럼프 시대 미국 대외전략의 불확실성은 한미동맹의 변화 방향을 가늠하는 데에도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당초 대(對)중국 강경파인 엘브리지 콜비(Elbridge A. Colby) 미 국방부 차관의 주도하에 체계적 인태 전략이 추진되면서 한미동맹의 현대화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견되었으나, 현재는 소강상태에 머물러 있다. 워싱턴 정책써클 내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여러 관점이 경합한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맹 강화론’부터, 중국 견제 관점의 ‘동맹 조정론’, 그리고 전략적 후퇴 진영의 ‘동맹 축소론’이 혼란스럽게 공존하는 상황이다. 동맹 현대화가 앞으로 한반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될지 정확한 예측은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미국이 한반도 안보의 주된 책임을 한국에 위임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임무와 성격을 북한 억제 중심에서 중국·북한 동시 억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리라는 방향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방기의 우려’와 ‘연루의 위험’이 동시에 커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한미동맹의 우산 아래 안전과 번영을 누려왔으나 더이상 기존 체제에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북한 위협 억제와 동아시아 안보의 안정성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작금의 구조적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한미동맹을 능동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 글에서는 한국군의 자강과 전략적 자율성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역사적 변천부터 쟁점과 과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살펴보고자 한다.
2. 작전통제권 변천의 역사
작전통제권은 말 그대로 군의 작전수행을 위해 지휘관이 갖는 권한이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이양된 것은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이후 1954년 한미합의의사록에 의해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가 작전통제권을 계속 행사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미합의의사록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규정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을 확실히 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의미가 있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 방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제도화한 것이라면, 합의의사록은 전쟁 이전 북침을 공언하고 정전협정 과정에서도 휴전에 반대했던 이승만정부의 돌발행동을 제어하고 군사적으로 통제하려 한 미국의 고려가 담겼던 것이다. 미국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1953년 10월에 체결하고도 그 비준서 교환을 합의의사록 체결일인 1954년 11월 17일까지 늦췄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4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78년 11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였다. 한미연합사 창설은 1975년 유엔 총회에서 북한·소련 등 공산측이 제안한 ‘유엔사 해체 결의안’ 통과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로써 한국군 및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전환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한미연합사 체제도 미군이 사령관을 맡는 등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형태였으나, 유엔사와 비교해서는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유엔사 체제에서는 미국 합참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을 지휘하는 형태였다면, 연합사 체제에서는 한미 국군통수권자의 지침하에 한미 참모요원이 거의 동등한 숫자로 구성되어 연합의 형태로 작전이 이루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작전통제권의 환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대통령선거 때였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선거 공약으로 작전통제권 환수를 내걸었고, 당선 이후 미국과 협의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결국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누어 평시작전통제권만 한국 합참에 이양하고, 전시에는 계속해서 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일부 반환받되 내용적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미봉책에 그치고 만 것이다. 이로써 1994년 12월 1일부로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 합참으로 환수되었고, 연합사령관은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DEFCON) 3단계가 발령될 시부터 ‘지정된 부대’에 대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다만, 평시에도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을 통해 연합위기관리, 연합작전계획 수립, 연합훈련, 연합정보관리, C4I(지휘 통제·통신 체계) 상호운용성, 연합교리발전의 기능은 연합사령관이 계속 주관할 수 있도록 해,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의미가 일부 반감되었다.5
이후 작전권 관련 공식 논의는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노무현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재론되기 시작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까지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이후 한미는 협의를 통해 2006년 10월 전작권 전환에 대한 기본원칙과 로드맵 합의에 이르렀다. 다만 논의과정에서 한국은 2012년 12월 전환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오히려 2009년 10월로 조기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이 적극적이었던 배경에는 해외 주둔 미군의 유연한 운영을 강조하는 당시 부시 행정부의 전략적 고려가 작용했다. 결국 구체적 전환 시점은 2012년 4월 17일로 최종 타결되었다.6 이로써 전작권 전환은 국내 논란을 극복하고 한미 양국의 합의로 확정되었으며, 이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필수조건을 갖추게 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출범 이후 전작권 전환은 계속해서 연기되고 표류하게 된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며 이명박정부는 미국에 전작권 전환 연기를 요청했다. 이에 미 국방부는 당초 예정대로 2012년에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그 시기가 2015년 12월 1일로 연기되었다. 이후 전환 시기가 다가오자 박근혜정부 역시 미국에 전작권 전환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때도 명분은 2013년의 3차 북한 핵실험 등 안보 불안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한 중요한 변화는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에 양국이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전작권 전환은 시기가 아니라 ‘조건’에 좌우되게 되었고,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것이나 다름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논의의 왜곡: 조건과 검증이라는 족쇄
이재명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위에서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으로 전작권 전환이 다시 논쟁적 주제로 떠올랐다. 그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전환 가능 시점으로 트럼프 임기 이후인 2029년 1분기를 거론했다. 현지 사령관이 한국정부의 의지를 ‘정치적 편의’로 폄하하는 게 부적절한 일임은 물론이고, 전작권 전환이 또다시 불확실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는 발언이다. 문재인정부도 전작권 전환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조건에 기초한다’는 벽을 넘지 못한 전례가 있다. 준비된 상태에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이 사실상 미국 측의 거부권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전작권 전환 조건의 세부적 요구사항이 무엇이며, 그것들이 왜 전작권 전환에 필수적인 과제인지, 그리고 그 조건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전작권 전환 조건은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동맹의 북핵·미사일 대응능력, 그리고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이라는 세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나아가 각 조건은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이르는 세부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이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현재까지 파악된 일부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조건인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과 관련해서는 감시·정찰자산 보강, 전시 탄약확보 등 작전·군수·정보·통신 등 분야별로 요구되는 세부과제가 목록화되어 있다.7 두번째 조건인 북한 핵·미사일 대응능력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분야별로 물리적 요구능력 확보, 전략 및 작전개념 발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능력 구비에 긴요한 것으로 조기 경보와 미사일 방어능력이 중시된다.8 또한 이 세가지 조건과는 별개로 한미는 3단계에 걸친 연합검증평가를 통해 미래 연합사령부의 임무수행 능력을 점검하고 있다. 1단계에서는 기본운용능력(IOC), 2단계로 완전운용능력(FOC), 그리고 3단계에서는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확인한다. 이때 검증할 대상에는 전환 조건의 세부과제들과 마찬가지로 정보·화력·지휘통제·지속지원 4개 분야에서 전구(戰區)작전 수행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전작권 전환 조건은 그 영역이 방대하고 기준도 엄격하다. 각 조건별로 마련된 수많은 세부과제들이 한국군 전반의 능력 보강을 요구한다. 물론 한국군 장성이 연합사령관을 맡게 될 것에 대비하여 한국군의 역량이 보강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변화의 폭에 비해서도 요구되는 조건이 과도한 것이 문제다. 현재 계획으로는 한미연합사령부가 그대로 존속하고 한반도 작전은 한미가 단일 지휘체계하에 연합작전을 하도록 되어 있다. 전작권 전환으로 바뀌는 건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국적뿐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구상했던 연합사 해체, ‘한국군 주도-미군 지원’의 병렬형 지휘체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도 요구되는 조건과 과제는 마치 주한미군이 모두 철수하고 한미동맹이 해체라도 되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3단계에 걸쳐 진행하는 검증도 합리성이 부족하다. 원래 IOC, FOC, FMC와 같은 검증은 창설 부대를 대상으로 해야 의미가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부대가 제대로 운용능력을 갖췄는지 사전에 평가하고 검증함으로써 보완 소요를 식별하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연합사는 50년 가까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존 부대다. 사령관의 국적이 변화할 뿐 기본적 구조가 그대로인데 왜 3단계에 걸친 검증이 필요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이 된다고 해서 연합사의 작전계획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임무수행 방식이 크게 변화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3단계 검증은 사실 박근혜정부 시절 연합사를 해체하고 미래사령부를 새롭게 창설한다는 구상하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들어 현 연합사 체계를 존속시키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검증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며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조건과 기준이 계속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과도한 조건일지라도 지난 수십년의 노력으로 대부분의 조건은 충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규백 국방장관도 한미가 이미 2020년에 전작권 전환 조건의 94% 충족에 합의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9 문제는 기술발전과 전쟁양상 변화를 명분으로 미국이 계속 새로운 조건과 과제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마치 높이뛰기 경기에서 막대가 계속 높아지는 격이다. 국방부의 핵심 당국자는 이를 달리기 경주에서 결승지점이 계속 멀어지는 상황에 빗대기도 했다.
국내 일부의 시기상조론도 문제다. 가령 전작권 전환 논의 때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한국군의 감시·정찰 능력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도 지난 수십년간 비약적 발전이 있어왔다. 2000년대 초반 ‘백두산까지 듣고, 금강산까지 본다’는 백두·금강사업을 통해 영상 및 통신·신호 정보수집 능력을 확보했고, 2010년에는 최첨단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했다. 여기에 올해 두시간 주기로 북한 전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5기의 군사정찰 위성까지 확보했다. 그럼에도 전작권 전환 얘기만 나오면 한국군이 아직 까막눈인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조건에 기초한 전환이라는 프레임의 실체를 벗겨내고,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해법이다. 즉, ‘조건 기반’ 프레임 자체가 정치적 산물이며 그마저도 이미 충족됐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4. 논의의 변질: 병렬형에서 통합형 지휘구조로 왜곡되다
전작권 전환은 지휘체계의 문제임에도 관련 쟁점이 시기나 조건에 집중될 뿐 정작 한미 간 지휘구조와 체계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반 국민은 막연히 전작권을 미국으로부터 돌려받는 환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동맹국 간의 지휘체계는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개별 국가가 자신의 군대를 독자적으로 통제하는 ‘병렬형’과 단일 연합군 최고사령관과 연합참모부가 존재하는 ‘통합형’이 그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의 참모부나 현재의 미일동맹이 병렬형 구조에 해당하고, 현재 한미연합사령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지휘체계가 통합형에 속한다.10
당초 전작권 전환은 병렬형 체계로 추진됐다. 노무현-부시 행정부 시절 한미가 합의했던 전작권 전환은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한국은 합동참모본부, 미국은 주한미군사령부를 통해 한미 양국이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한미 양국 간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양국 군 사이에 군사 협조기구를 창설한다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한미 양국 사령부 간에 6개의 전구급 기능별 협조기구를 편성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정보, 작전, 군수 등의 분야에서 공동정보센터, 공동작전센터, 연합군수협조센터 등을 운용한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이같은 병렬형 지휘체계 안은 유지되었다.
그러다 박근혜정부 시절 ‘미래사령부 창설’이라는 통합형 체계로 바뀌었고, 문재인정부 시절부터는 현 연합사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져도 현재 계획에 따르면 한반도의 군사적 지휘는 여전히 ‘연합’의 형태로 행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데프콘 3단계가 발령되면 양국 국군통수권자, 국방장관, 합참의장의 전략지침을 받아 한미연합사령부가 한국군의 주요 전투부대와 주한미군 중 지정된 부대를 지휘하는 형태다.
박근혜정부에서 지휘구조가 병렬형에서 통합형으로 전환된 데에는 군사적 효율성 논리가 작용했다. 한반도라는 좁은 전구에서 지휘구조가 이원화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작전 속도가 빠른 현대전에서 주도-지원이라는 이원화된 지휘구조로는 즉각적인 정보 공유와 적시적인 지휘 결심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아울러 현재 연합사 체계를 유지하기로 한 배경에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정무적 고려도 작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합사 해체에 따르는 보수 일각의 우려를 고려하여 일단 현 연합사 체계를 유지시킨 상태에서 전작권을 환수하고 향후 필요한 보완을 하면 된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연합 지휘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것이 과연 당초 표명했던 전작권 전환의 근본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전작권 전환은 한반도 방위에 대한 한국군의 책임과 역할을 높임으로써 우리 군의 주도적인 전쟁 기획·수행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기본취지다. 또한 지상군은 한국군이, 해·공군은 미군이 담당한다는 한미 간 불균형한 역할분담에서 벗어나 3군의 균형발전과 군사적 완전성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대북정책 측면에서는 군사주권을 완전히 행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만 상대하려 했던 북한의 주장을 변화시키는 효과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연합사 체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비록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이 맡는다고는 하나 국군통수권이 계속해서 동맹국과의 연합 형태로 행사된다는 점에서 군사주권의 완전성 달성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사령관과 부사령관의 국적만 바꾸는 변화로는 역사적인 전작권 환수로 평가하기에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시대 미국 우선주의와 변화된 동맹관을 고려할 때 통합형 지휘체계가 군사적으로 더 효율적이라는 기존 평가에도 의문이 존재한다. 현 연합사 체계는 전시 미 본토로부터의 대규모 한반도 전력 증원을 전제로, 한미 양국 군대가 유기적으로 일체화되어 운용된다는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미국 본토와 중국 견제 외의 여타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주된 책임을 맡으라는 것이 명확하다. 따라서 ‘연합작전계획 5015’에 규정되어 있는 미군의 대규모 한반도 증원 계획이 그대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재래식 전쟁에 관한 한 한국군이 거의 전담 수준의 대응을 하는 게 불가피하며, 그 경우 지휘구조만 한미가 하나로 엮여 있는 통합형보다는 한국군 주도-미군 지원의 병렬형 체계를 갖추고 준비해나가는 것이 군사적으로도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군 장성이 연합사령관에 보임되어도 미군 증원 전력과 부대에 대한 전문성과 통제 권위가 부족하여, 한미연합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한국군 주도-미군 지원의 병렬형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전작권 전환의 근본취지나 미국의 변화된 국방전략 기조를 고려할 때 더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병렬형 체계로 갈 경우 더 높은 수준의 한국군 주도 능력 구축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 병렬형 체계 전환에 한미가 합의한 바 있고, 그로부터도 20년 이상 한국군의 역량강화 노력이 지속되어왔다. 결국 병렬형 지휘체계도 추가적 조건과 준비가 아니라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병렬형 체계로 전환될 경우 한미동맹의 이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것이므로 미일동맹의 C2 체계 발전을 참조하여 한미 지휘체계의 연계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지속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은 병렬형 지휘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양국 군대 활동에 관한 정책 및 운용의 조정을 담보하기 위해 ‘동맹 조정 메커니즘’(ACM, Alliance Coordination Mechanism)을 설립하여 운용 중이다. 정부 차원의 정책 조정을 위한 미일 합동위원회, 사령부 차원의 협조체제인 공동조정운용소, 그리고 각군 수준의 조정소를 두고 촘촘한 연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은 통합작전사령부를 신설하고 미국과 주일미군의 통합군사령부 개편에 대해 협의하는 등 미일동맹의 일체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으나, 지휘구조에 관한 한 병렬형 체계를 유지하면서 양국 군 운용의 조율은 ‘동맹 조정 메커니즘’을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우리도 현재로서는 계획된 대로 전환을 추진하되, 향후 한국군 주도의 병렬형 지휘체계 정립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5. 자강과 전략적 자율성의 모색
전작권 전환 문제는 지난 수십년간 한미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큰 변화를 보여왔고, 아직도 논쟁적인 이슈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군 작전통제권이라는 문제가 ‘주권’과 ‘안보’라는 양보할 수 없는 두가지 핵심가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주권의 측면에서 보면 자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국군통수권자가 온전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핵심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춰야 한다는 당위 때문이다. 반면에 안보적 관점에서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변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전작권 전환이 한미가 합의하고도 두차례나 연기된 배경에는 안보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어도 전작권 전환에 불안해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제질서 대격변의 시기에 이런 주권과 안보의 대립적 틀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동맹의 거래화 시대에 동맹 과잉의존은 안정의 원천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2026 국방방위전략(NDS)은 한국 안보에 대해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support)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는 이같은 미국의 동맹정책 변화를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자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 제고를 위한 기회로 인식하고 활용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지연될수록 한국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안보 공약(commitment)과 연합 지휘체계의 부조화가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 결속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존을 줄이고 전략적 자율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을 재설계해나가야 한다. 자율성 강화는 동맹 대체가 아니라 동맹의 지속 조건이다. 특히 동맹국의 역할과 부담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전략 기조를 감안하건대, 한국의 능력과 기여가 증대될수록 미국의 부담은 감소하고 동맹의 지속가능성이 제고될 것이다. 동시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미국의 중국 견제 요구와 관련해서도 한국이 중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맹 재설계를 위해서는 한국군의 자강, 연합작전계획의 제반 가정 재검토, 동맹의 성격 및 역할 정립이 필요하며, 이때 한미 군사지휘관계를 조정하는 일은 이 모든 작업의 출발선이다.
냉정하게 보면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 자국군에 대한 군사지휘권을 온전히 행사한 적이 거의 없다. 안보현실과 상황논리가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으나, 너무 오랜 기간 군사주권의 제약을 감수하다보니 지금의 상황이 바로잡아야 할 비정상 상태라는 인식도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을 한미가 공식 합의한 2007년으로부터만 따져도 약 20년이 흘렀고, 그동안 한국군의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미 2006년 당시 부시 행정부는 한국군의 능력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2009년 조기 전환을 주장한 바 있다.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작전통제권 환수를 내걸었던 노태우 대통령은 훗날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는 창피한 일”이라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작전통제권을 온전히 환수하지 못하고 평시작전통제권만 가져오는 것으로 절충이 이루어졌는데, 그때의 논리도 ‘시기상조론’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주요 언론은 보수·진보 성향을 가리지 않고 2000년 이전에는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시기상조론이 되풀이되고 있으니, 결국 전작권 전환은 능력과 상황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와 판단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1950년 12월 조중연합사 창설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에게 이양되었던 북한군 지휘권도 휴전 무렵 이미 북한에 환원되었다. 이제 대한민국도 국격과 군사력에 걸맞게 지체된 군사주권의 회복을 조속히 마무리 짓고, 불확실한 국제질서의 전환기를 헤쳐나갈 준비를 갖춰야 할 때다.
-
- Stephen M. Walt, “The Predatory Hegemon: How Trump Wields American Power,” Foreign Affairs 2026년 3/4월호.↩
- Philip H. Gordon and Rebecca Lissner, “The Strategic Aftershock of Trump’s Iran War,” Foreign Policy 2026.4.20.↩
-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대응해 영국·프랑스가 이스라엘과 공모하여 이집트에 군사적 개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건. 수에즈 위기는 영국·프랑스의 중동 장악력과 세계적 영향력이 종식되었음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후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의 양강 체제로 본격 전환되었다. Ray Dalio, “It All Comes Down to Who Controls the Strait of Hormuz,” Ray Dalio 홈페이지(raydalio.substack.com), 2026.3.17.↩
- 김일영·조성렬 『주한미군』, 한울 2003, 73면.↩
- 이들 6개 기능은 엄밀히 말하면 평시의 작전권한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전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CODA로 규정된 것이다. 즉, 한국 합참의장이 환수받은 평시작전권 중 일부를 다시 연합사령관에게 재위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타결된 2012년 ‘4월 17일’은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작권 이양 서한을 보낸 1950년 ‘7월 14일’을 거꾸로 해서 만든 날짜였다.↩
- 핵심군사능력 과제 목록은 장비와 전력 증강, 시설 구축과 같은 물자적 요소가 중심이지만 그외에도 교육·훈련의 실시, 교리 발전 등 비물자적 요소도 망라되어 있다.↩
- 구체적으로는 ‘4D 미사일 작전’ 개념에 따라 탐지(detect)를 위한 정찰자산, 방어(defense)를 위한 미사일 요격 시스템, 교란(disrupt)과 파괴(destroy)를 위한 정밀타격자산들을 망라하고 있다.↩
- 「안규백 “전작권 전환 조건, 2020년 94% 충족…내일도 문제없어”」, YTN 2026.5.31. 전작권 세부조건과 검증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로 관리되고 있어, 94%의 정확한 의미나 미충족 6%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공개된 바 없다. 다만 안장관의 발언은 2020년 한미공동평가의 결과를 수치화한 것으로서,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준비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 같은 통합형 지휘체계지만 한미연합사와 나토의 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나토 개별 회원국은 전시 나토에 얼마만큼 자국의 부대를 배속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은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권을 유지하면서 나토와 병렬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점에서 전시 한미연합사에 배속될 부대가 사전에 지정되어 있고, 데프콘-3 발령 이후에는 연합작전 형태로만 작전을 수행하는 한미연합사 체계와는 차이가 있다. 즉, 나토 지휘체계는 통합형임에도 한미연합사에 비해 더 느슨하게 짜여진 지휘체계이며 개별 회원국에 보장된 군사주권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