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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세계질서 변화와 한국의 길
트럼프의 이란전쟁
미국의 ‘3차 걸프전쟁’의 원인과 후과
이혜정 李惠正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저서 『냉전 이후 미국 패권』, 공저서 『탄핵 이후, 새로운 공화국을 위하여』 『한반도 국제관계사의 재인식』 『안보의 논리, 평화의 논리』 등이 있음.
heajeonglee@gmail.com
1. 장대한 실패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주요 전투작전’이라고 주장했다. SNS로 그가 밝힌 명분은 지난 47년간 “미국에게 죽음을” 외쳐대며 미국의 이익을 위협해온 “대단히 사악한” 이란정권의 “임박한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란의 미사일, 해군력, 대리세력 등을 모조리 파괴하고 핵개발을 저지할 것을 공언하고, “미국의 작전이 끝나면 정부를 접수하라”고 이란 국민을 선동했다.1
올해 발발한 통칭 이란전쟁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의 ‘12일 전쟁’에 동참하여 이란 핵시설을 공습한 이래,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감행한 이란에 대한 두번째 불법 침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시설은 물론 민간시설을 공격하고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 등 지도부를 암살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걸프 전역의 미군기지, 걸프 국가들의 민간시설을 공격하고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다. 1979년 이란혁명 이래 걸프 지역에서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1차 걸프전쟁(1990~91), 9·11테러 이후 이라크전쟁(2003~11)에 이은 네번째 주요 전쟁이자 미국이 주도한 세번째 걸프전쟁이다.2
미국이 이란전쟁을, 혹은 트럼프의 주장에 따르면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 ‘장대한 분노’(epic fury)를 감행한 이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의 기획에 트럼프가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네타냐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란에 대한 ‘예방(豫防)전쟁’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연초 이란 내부의 시위 격화를 배경으로, 네타냐후가 니꼴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의 납치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를 설득해 양국이 대규모 공습을 벌여 이란정권을 신속하게 전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것은 분명하다.3
하지만 트럼프가 네타냐후의 기획에 포획되었다고만 보는 해석은 트럼프의 행위주체성과 책임 및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의 이해관계 차이를 간과한다. 트럼프는 집권 1기에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핵합의(JCPOA)를 폐기하면서 이란 문제의 외교적 해결의 경로를 막는 한편, 가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하며 양국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이란전쟁에서 트럼프는 3월 중순부터 문명 말살까지 위협하며 이란에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요구했지만, 파키스탄 등의 중재로 4월 초에는 2주간 잠정 휴전을 성사시켰다. 이후 네타냐후에게도 레바논과의 휴전을 압박하며 6월 중순에는 이란과 60일간 군사행동을 멈추고 평화협상을 진행하겠다는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에 합의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이란을 실존적 위협으로 보는 지역 강국 이스라엘과 달리 지구적 이해관계를 지닌 미국은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경제적 혼란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타냐후가 10월 총선을 앞두고 영구한 전쟁을 필요로 한다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유가 상승이 증폭시키는 국내적 반발을 관리해야 하는 상이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장대한 분노’ 작전은 이란의 정권교체는 물론 이란의 핵과 미사일, 대리세력4 문제 등에 있어 그 어떠한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양국이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봉쇄하면서,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의 유일한 실제적 성과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이란이 4월 초 잠정 휴전 전까지 ‘40일 전쟁’에 따른 지도부의 암살과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으면서도 정권을 유지했고, 잠정적인 석유 판매 허용이나 동결 자금의 일부 해제 등 미국이 제시한 경제적 유인의 상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5
그 결과는 ‘장대한 교착 혹은 실패’다.6 이는 가깝게는 2025년 ‘12일 전쟁’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재침에 대한 이란의 대비로부터, 멀게는 이란혁명 이후 (혹은 이란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팔레비 왕조를 세운 1953년 친서방 쿠데타로부터 이어져온 미국과 이란의 오랜 적대의 역사적 맥락에서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2. 역풍: 이라크전쟁의 승자, 이란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대중동지역은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지정학적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지역이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이 해체되고 석유가 발견되면서, 이 지역은 기존의 지정학적 경쟁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국가 건설과 탈식민주의 문제, 석유를 둘러싼 정치적·종파적·경제적 경쟁이 착종되었다.
미국은 양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후발 제국주의 국가에서 지구적 패권국가로 성장했고, 미국의 중동 진출은 영국(의 쇠퇴)을 매개로 진행되었다. 1920년대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영국계 메이저 기업들과 연합하여 중동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 중 사우디 왕가와 협력하며 중동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이후 미국은 건국에서부터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며 서구 제국주의·유대주의의 정치적 기획을 이어나갔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은 미국의 중동정책의 핵심축이었다. 이란은 소련의 남하를 막는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1953년 영국과 공동으로 기획한 쿠데타를 통해 친서방 팔레비 왕조를 세운 이후에는 냉전의 이념적 교두보이기도 했다.
대중동에서 전쟁의 진앙은 ‘동진(東進)’했다. 1970년대까지는 레반트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 일련의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이란-이라크 전쟁을 시작으로 걸프 지역에서 주요한 전쟁이 발발했다. 그 배경 중 하나는 1970년대 초반 영국의 걸프 지역 철군이다. 바레인과 카타르 등 현재 전쟁에 휘말려 있는 왕국들이 이때 독립했고, 미국은 영국의 군사적 공백을 사우디와 이란을 통해서 메우는 ‘두 기둥’(two pillars) 전략을 추진했다. 중동전쟁과 석유파동의 와중에 사우디가 페트로 달러의 기축이 되었다면,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대대적으로 무기를 지원한 이란이 중동의 ‘친미 경찰국가’(America’s policeman in the Gulf)로 기능했다.7
1979년에는 이란혁명이 일어났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이 발효되었다. 대중동지역 지정학의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이란혁명은 친미 팔레비 왕조에 대한 다양한 반대세력의 합작이었다. 이슬람과 공화국의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는 이란혁명의 본질적 과제였고, 반외세 민족주의는 양자를 결속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미국은 이란혁명으로 친미의 주요한 이념적·지정학적 축을 잃었다. 카터 행정부는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와 구출작전 실패로 국가적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카터 대통령은 1980년 연두 교서를 통해 걸프 지역에 대한 미국의 배타적 통제를 선포했다.
외부 세력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미국 핵심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며,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해 이러한 공격을 퇴치할 것이다.8
미국은 1983년 중부사령부를 설치하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는 동시에 이란 견제를 위해서는 이라크 등 반이란 국가들을 지원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펼쳤다. 1990년 발발한 (1차) 걸프전쟁은 사우디에 대규모로 미군이 주둔하고 걸프 전역에서 미국이 군사기지를 건설·확장하는 결정적 계기였으며, 소련이 미국의 다국적군 운용에 협조한 데서 알 수 있듯 냉전 종언 이후 단극 패권의 시작이었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이란과 이라크에 대한 ‘이중 봉쇄’를 넘어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와 중동 전역의 민주화를 목표로 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더 강압적 방향으로 나아갔다. 9·11테러는 사우디에 이교도 미군이 주둔한 데 대한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의 ‘성전’, 보다 넓게는 그간 미국의 중동 개입이 초래한 ‘역풍’(blowback)이었다.9 9·11테러 이후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변환적’ 중동정책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북한과 함께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라크를 침공하며 중동 전역의 민주화를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중동 전역의 혼란이었다.
2003년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쎄인(Saddam Hussein)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이라크를 실패국가로 만들어버리면서, 이란은 이라크 남부의 시아파 세력을 중심으로 긴밀한 종파적·정치적 연계를 수립했다. 인구 대부분이 시아파인 이란은 이전부터 이라크의 소수 수니파 정부인 후쎄인 정권과는 극심한 적대관계였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쿠드스군은 시아파 민병대를 조직하여 이슬람국가(ISIS) 등에 맞서서 시아파 이라크를 지켜냈고, 2006년 가자지구 선거에서 승리한 하마스(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민족주의 정당·무장단체) 및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선 레바논의 헤즈볼라(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군사력의 시아파 무장정파)를 지원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의 여파로 예멘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후티군을 지원하고,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는 러시아와 함께 아싸드 정권의 붕괴를 막으면서 중동 전역에서 ‘저항의 축’을 건설했다. 이라크전쟁의 실제적 승자이자, 중동 전역의 혼돈에 따른 역풍의 최대 수혜자는 이란이었다.10
이란은 ‘저항의 축’을 통한 ‘전진 방어’(foward defense) 전략과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내에서 핵 개발·협상을 추진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핵무기 금지 파트와(칙령)를 발표했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절대적 조건으로 하는 핵협상을 허용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서, 또 이를 무력으로 막으려는 이스라엘을 통제하고 중동의 영구한 전쟁에서 빠져나와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란과 핵합의를 추진했다. 2015년 유엔 안보리 핵보유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 유럽연합은 이란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체결하였다. 이란은 저농축 권한을 일정 기간 보장받는 조건으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허용하며 기존 경제제재의 해제를 얻어냈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핵합의를 탈퇴·폐기한 이후에도 2019년까지 의무사항을 지켰다. 다자주의와 핵 비확산 규범의 모범적인 합의였다. 하지만 이란의 미사일 개발과 저항의 축 지원은 합의의 범위 밖이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이란 강경파들은 물론 전통적으로 이란을 경계해온 사우디 등 지역국가들의 반대에도 직면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서방의 제재 해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대한 반발도 있었다.11
3. 전쟁의 연쇄와 반전(反轉): 가자전쟁에서 이란, 걸프전쟁으로
집권 1기 트럼프는 이란핵합의를 폐기하고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과 아브라함협정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이란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의 길을 막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묵과한 채 새로운 지역질서 수립을 추진한 것이다. 2019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수출을 전면 봉쇄하는 최대의 압박을 가하자, 이란은 핵농축을 재개하고 페르시아만의 유조선과 사우디의 정유시설을 공격했다. 미국은 2020년 1월 저항의 축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했고, 하메네이는 중동 전역에서 미군 축출을 다짐했다. 같은 해 9월 아브라함협정 이후 미 중부사령부와 이스라엘 국방부의 협력이 강화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 양국의 공동전쟁 기반이 준비되었다. 전쟁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12
2023년 10월 가자전쟁은 하마스의 테러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가 임박했다는 전망을 배경으로 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 없이 이스라엘과 아랍의 화해와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하마스의 폭력적 항의였다. 이란-이스라엘 대립의 맥락에서 보면, 저항의 축을 활용하는 이란의 전략적 승리였고 하마스를 관리할 수 있다는 네타냐후의 기존 전략의 실패였다.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개의 독립국가를 수립하고 상호 인정하는 해법)을 반대해온 네타냐후는, 가자 주민들의 이스라엘 취업 및 하마스에 대한 카타르의 재정 지원을 허용하고 주기적으로 하마스의 군사력을 제어하는 ‘잔디 깎기’(mowing the grass, 근본적 해결 없이 반복적인 군사대응으로 위협의 싹을 자르려는 전략)를 시행했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견제할 정도로 강력하지만 이스라엘에 도전하기에는 역부족인 정도로 관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하마스는 네타냐후가 제공하는 경제적 유인을 수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지하터널에 무기를 비축해왔다. 자신들이 테러가 아니라 거버넌스에 초점을 두는 조직으로 변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13
하마스의 테러에 네타냐후는, 하마스와의 인질 협상을 뒤로한 채 가자를 초토화하고 서안에서 정착촌을 확장하며 레바논과 시리아, 예멘 등에서 이란 측 저항의 축을 축출해 ‘완충지대’를 건설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예방전쟁을 시행하는 새로운 ‘절대승리’(absolute victory) 전략을 추진한 것이다.14 이에 따라서, 2024년 4월 이스라엘은 시리아 이란대사관을 공습해 이란 고위 군부지도자들을 암살했다. 그러자 이란은 드론과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최초로 이란 본토를 공습했다. 7월에 이스라엘은 테헤란에 있던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를 암살했고, 9월에는 레바논 무선호출기 테러와 헤즈볼라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단행해 헤즈볼라 지도자 하싼 나스랄라(Hassan Nasrallah)를 암살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10월 이란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이스라엘은 레바논에 지상군 침공을 감행하고 다시금 이란을 공습했다. 이 두차례의 이란 본토 직접타격은 이스라엘의 군사적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이란에 대한 예방전쟁을 감행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과연 미국이 연루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15
이스라엘은 2024년 미국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란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7월 미국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와 불참에도 네타냐후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추진되었다. 네타냐후는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을 문명과 야만, 선과 악의 대결로 정당화하던 부시 행정부의 논리를 이란에 적용하여, 이란을 ‘테러의 축’을 동원해 미국과 이스라엘, 아랍 국가들을 위협하는 야만이자 악으로 규정하고, 이란(의 핵)에 대한 공격은 미국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16 9월 마쑤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이란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공격해서 이란과 중동 전체를 전쟁으로 밀어넣으려 한다고 비판했다.17 10월 베니 간츠(Benny Gantz)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이란에 대한 공격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스라엘은 10월 7일의 교훈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제 그 교훈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란에 행동해야 할 때다. 이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한 필요일 뿐 아니라, 중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지역 차원에서는 전략적 필수이며, 세계 차원에서는 도덕적으로도 분명한 책무이다.18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초토화 작전에 대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지적했고, 중동 전체로 전쟁을 확전하는 데에 반대했다.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친이스라엘적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탸냐후와 요아브 갈란트(Yoav Gallant)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트럼프는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라 비판했다. 그에게 ICC는 미국의 주권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국제기구로 제재와 해체의 대상이었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미국은 미약하나마 이스라엘의 행위를 자제시키는 세력(restrainer)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을 돕는 세력(enabler)으로 변모했다.19
12월 시리아의 아싸드 정권이 붕괴하면서, 네타냐후의 새로운 전략이 시행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투입하여 시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기존 방공망을 접수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친이란 시아파 이라크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육로로 연결하는) 시리아 아싸드 정권의 붕괴는 이란 저항의 축 사이의 연계를 끊고 이란 직접타격이 가능한 하늘길을 여는 전략적 의미를 지녔다.20
2025년 1월 트럼프 2기가 출범했다. 이스라엘은 트럼프에게 이란과의 전쟁을 로비했고, 이란은 미국과의 직접대결을 피하기 위한 핵협상을 모색했다. 2기 취임사에서 평화 건설로 평가받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는 전쟁과 협상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다. 하지만 균형추는 전자, 전쟁에 있었다. 트럼프는 이란이 이스라엘에 실존적 위협이며 절대 핵능력을 갖춰서는 안 된다는 네타냐후의 주장에 동의했고, 정치적으로도 자신이 폐기한 이전 오바마의 이란핵합의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을 이란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사이 핵능력을 증진시킨 이란으로서는 더욱 수용하기 어려울 조건이기에, 평화적 협상의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했다.
트럼프는 4월 네타냐후의 이란 공격을 자제시켰다. 하지만 6월 하메네이가 이란의 핵농축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등의 미국의 강경한 제안을 거절하자, 오만 주재의 추가적인 협상이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네타냐후의 이란 공격을 막지 않기로 했다.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데 자극을 받아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벙커버스터 공격을 지시했다. 그럼에도 이란의 대응은 미국에 미리 통지한 뒤 카타르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약속대련’에 그쳤다. 트럼프는 이란에 감사를 표하고 휴전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반발했지만 트럼프의 압박에 결국 휴전에 동의했다.21
2025년 6월 13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이 ‘12일 전쟁’은 이란의 처참한 실패였다.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핵협상이라는 외교적 노력에도 미국의 직접공격을 받았다. 하마스의 테러 이후 이스라엘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 것처럼, 이란도 8월 새로이 구성한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12일 전쟁의 교훈을 도출하며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나갔다. 이란 지도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재침을 예상하고, 하메네이부터 지방 행정조직까지 지도부가 암살될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지도부 후보를 복수로 선발해놓기도 했다. 저항의 축이 하나씩 이스라엘에 제압된 데 대한 반성으로 이들을 동시에 활용하기로 했고, 미사일 기지의 신속한 재건을 위해서 기술자들을 군부대에 배치했다. 미사일 발사대를 분산 배치했으며, 저렴한 드론을 활용해 적의 방공망을 분쇄하면서 미사일을 아끼는 전략을 수립했다. 드론과 기뢰, 소형 선박을 이용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도 계획했다. 군부를 마치 게릴라부대처럼 탄력적으로 운용하기로 하는 등 12일 전쟁 이후 “8개월여간에 지난 10년보다 많은 제도적 변화가 이루어졌다.”22
2026년 1월 경제 붕괴와 정권에 대한 불만의 폭발로 이란 내부의 시위가 격화되는 가운데 트럼프는 베네수엘라를 침공해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했다. 하메네이는 미국의 시위 선동이 체제전복을 목표로 한다고 판단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재침해올 경우 지역전쟁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시위 진압과 대외 협상, 전쟁 준비 등 비상사태 전반의 책임을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알리 라리자니(Ali Larijani)에게 맡겼다. 전쟁 발발시 주요 도시에 특수 경찰과 바시즈 민병대 등을 배치할 계획이 세워졌다. 하메네이가 암살될 경우 신속하게 후계자를 선출하고, 대미 협상은 라리자니가 주도하고 그가 암살당하면 모하마드 갈리바프(Mohammad Ghalibaf) 국회의장, 그도 암살당하면 전직 대통령 하싼 로하니(Hassan Rouhani)가 뒤를 잇기로 했다고 한다. 영공을 폐쇄하고 미사일 발사 훈련이 진행되었고, 호르무즈 봉쇄 연습도 진행되었다. 서부 국경에는 이스라엘 공습을 위해서, 남부 국경에는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미국 기지 공격을 위해서 미사일이 배치되었다. 오만 등이 중재하는 미국과의 핵협상도 진행했지만, 이란 지도부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2월 오만을 방문한 라리자니는 알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핵협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전보다 확실히 강해졌다. 지난 7~8개월간 준비해왔다. 우리의 약점을 찾아서 고쳤다. 전쟁을 바라지 않고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우리에게 강요한다면, 대응할 것이다.23
실제 트럼프는 네타냐후와 재침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란 시위의 추이를 보아 이란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공습의 시기와 규모를 정하기로 했는데, (백악관의 사후적 설명에 따르면) 4~6주 작전을 계획했다.24 결국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2차 이란전쟁이자 3차 걸프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란은 이전과는 다른 전략으로 싸웠다.25 더이상 제한적인 ‘약속대련’은 없었다. 이란은 준비한 대로 전면전으로 맞섰다.26 이스라엘과 걸프 전역의 미군기지를 저렴한 미사일을 중심으로 공격했고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했으며, 헤즈볼라도 즉시 참전했다. 지도부가 몰살당했지만 참수작전은 정권붕괴가 아니라 더 젊고 강경한 지도부로의 세대교체를 가져왔다. 전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20%는 물론 반도체 원료인 헬륨과 디젤 등의 수급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막히면서 원유가격의 급등과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위기 등 연쇄적인 세계경제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트럼프의 최우선적 목표는 이제 호르무즈해협 개방이 되어버렸다. 전쟁범죄라는 비판을 무시하며 이란의 민간시설과 문명 자체를 파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이란은 자신의 생존을 지키는 최대의 무기가 된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결국 트럼프는 4월 초 잠정적인 휴전에 합의하며 ‘40일 전쟁’을 끝냈다.
4. 후과: 이슬라마바드 합의 혹은 교착
40일 전쟁 이후 협상에서 이란의 핵심적인 요구는 레바논 등 걸프 전지역에서의 완전한 종전, 경제적 보상, 그리고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 세가지였다. 이는 6월 중순의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14개 항목 중 즉시 시행될 항목은 전면적인 종전(1항),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 해제(4항),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해제(5항), 이란 석유 판매 허용(10항), 동결 자금 해제(11항)였다. 이 중 핵심은 5항으로, 이란이 60일간 해협의 자유 통항을 위해 노력하고, 오만 등과 논의하여 향후 해협 통항장치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친이스라엘·반이란 시각을 대표하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인정하듯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에 대한 인정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었다.27
핵문제(8항)는 추후 협상의 과제로 미뤄졌고, 미사일 문제는 아예 다뤄지지도 않았다. 대리세력 문제도 지역 전체의 종전(1항), 상호 주권과 영토 존중(2항), 그리고 핵개발이나 추가 제재나 군사력 증강 없는 현상 유지(9항)의 맥락에서 보면 이란에 유리한 것이었다.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는 트럼프의 완패였으며,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재앙적 항복”이었다.28 왜 트럼프는 항모전단 2개와 5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동원하고도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이란의 통제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 내지 오해될 수 있는) 양해각서에 합의하였는가?
트럼프 자신의 ‘솔직한’ 답은 대공황 시기의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될 수 없어서 즉,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따른 경제적 후과를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29 그보다 ‘객관적인’ 답은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교착을 뚫어낼 마땅한 군사적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30 이란은 기존 항로에 어뢰를 매설하고 자기 영해 쪽의 북쪽 항로가 아닌 오만 쪽의 남쪽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특히 트럼프가 확전을 위협하다가 협상으로 급선회하기를 반복하면서 40일 전쟁 이후 잠정 휴전은 전쟁과 평화 사이 급변침의 연속이었다.31
트럼프는 5월 초 미군의 호르무즈해협 호위작전 ‘프리덤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같은 달 중순 시 진핑(習近平)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확전의 위협을 최고로 끌어올렸었다. 이란의 석유 수출기지인 하르그섬 점령과 특수부대의 농축우라늄 탈취 작전,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 계획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농축우라늄을 탈취해 올 용기의 안전 문제를 차지하고라도, 미국은 요격미사일 등의 재고 문제로 걸프 전역의 미군기지와 민간시설들을 방어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확전은 이러한 위험성을 높일 뿐이었다. 결국 5월 중순 협상으로 급선회하면서 트럼프가 내세운 명분은 카타르와 사우디 등이 협상을 요구해왔다는 것이었다.32
실제 카타르는 파키스탄과 함께 이슬라마바드 합의를 중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33 그러나 이란은 양해각서로 더욱 강화된 자신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에 대한 주장을 6월 말에는 상선, 7월 초에는 유조선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나갔다. 7월 트럼프는 양해각서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의회에 (4월 8일부터의 휴전을 중단하는) 전투작전 재개를 공식 통보했다. 이어 호르무즈해협 역봉쇄를 재개하고 잠정적인 석유 판매 허용을 중단하였다. 7월 11일부터 23일까지 쌍방 공격이 진행되던 중 18일에 모센 레자에이(Mohsen Rezeri)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보좌관은 미국이 이란 영토를 계속 공격하면 지금까지의 비례적 방어에서 공세적 파괴적 전략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34 20일 예멘의 후티군이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사우디 선박에 대한 봉쇄를 선언했고, 이란은 미국이 공격을 중단한 이후인 28일 요르단의 미군기지를 선제적으로 공격했다. 잠정 휴전 직후부터 이란은 미국이 확전을 시도하면 저항의 축을 이용한 확전으로 대응할 것을 결정했던 터였다.35 한편 2주간 이란 에너지 시설 공습 등을 위협하던 트럼프는 8월 1일 다시 한번 돌연 협상으로 선회했다. 명분은 다시 사우디 등이 협상 진전을 위해서 공격을 만류했다는 것이었다.36
트럼프의 두차례의 불법 이란 침공으로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테러·전범·불량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 의회와 여론의 지지를 구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미국 민주주의는 더욱 형해화되었다. 마가(MAGA) 진영의 균열을 비롯해서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 기반도 약화되었다. 병력을 중동에 집중시키고 무기를 소진하면서, 또 동맹들과 불화하면서, 미국의 지구적인 군사력 투사 능력과 동맹체제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독점적 무기화 체제도 붕괴되었다. 미국의 중국 견제 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중국은 상대적으로 국제질서 안정화의 기축으로 이해되며 미국보다 중국을 선호하는 세계 여론의 반전도 발생했다. 미국 패권 기반의 침식과 다극화 추세는 강화되고,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의 신화도 붕괴되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미국이 페르시아만 지역의 배타적 군사적 통제권을 주장한 카터 독트린을 지키낼 능력이 부재함이 증명되고 있다. 이란과의 핵합의를 깬 것이 현재 3차 걸프전쟁의 근본원인이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가자전쟁의 원인이자 이란의 저항의 축의 대의이며, 이란의 체제붕괴를 시도한 결과는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우회하는 지역질서의 수립은 불가능하다. 이란의 체제를 인정하고, 군사적 강압 일변도가 아닌 경제제재 해제 등 유인을 제시하는 외교적 해법이 현재의 교착을 벗어나는 근본적 해법이다.
이스라엘의 대중동 ‘절대승리’ 전략에 동조한 것이 현재의 난관을 초래했고 이란으로서는 저항의 축과 함께 6개월마다 침공을 받거나 이스라엘의 ‘잔디 깎기’를 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중동 전지역에서의 완전한 종전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네타냐후를 제어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관건이다. 걸프 국가들은 미국의 이란 공격을 반대했고, 미국은 이들을 이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지 못했다. 파키스탄과 카타르, 오만 등이 이슬라마바드 합의를 중재했고 지금도 중재를 주도하고 있다. 지역의 새로운 질서는 미국과 이란, 대중동지역 국가들의 역사적 화해에 근거할 때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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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ad Trump’s Full Statement on Iran Attacks,” PBS News 2026.2.28.↩
- Emile Hokayem, “The War Against Iran,” Survival 2026년 2호, 41~48면; “The Third Gulf War Will Scar Energy Markets for a Long Time Yet,” The Economist 2026.4.8.↩
- “How Trump Decided to Go to War,” The New York Times 2026.3.2.↩
- ‘대리세력’(proxies)은 이란의 입장에서는 ‘저항의 축’(axes of resistance)이고 미국의 ‘동맹’이야말로 대리세력이다. 동맹도 대리세력도 행위주체성이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 입장이다. 아래에서는 문맥에 따라 서방과 이란의 정파적 시각을 그대로 살려서 대리세력 혹은 저항의 축으로 쓴다.↩
- “U.S. Dangles Rewards for Opening the Strait of Hormuz. Iran Isn’t Budging,” The Wall Street Journal 2026.7.4.↩
- “Trump Seems Trapped by Iran War, Even as He Wields the World’s Biggest Hammer,” The New York Times 2026.7.26.↩
- Steven A. Cook, The End of Ambi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24, 23면.↩
- 같은 책 28면에서 재인용.↩
- Chalmers Johnson, Blowback: The Costs and Consequences of American Empire, Holt Paperbacks 2000.↩
- Vali Nasr, “Who Wins in Iraq? Iran,” Foreign Policy, 2007년 3/4월호, 40~41면; Suzanne Maloney, Iran’s Long Reach,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2008; Vali Nasr, Iran’s Grand Strate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25, 7~8장.↩
- Vali Nasr, 앞의 책 9장.↩
- 이란 핵협상과 합의에서 ‘12일 전쟁’에 이르는 주요 사건에 대한 유용한 일지는 Kevin Huggard and Mallika Yadwad, “The Road to the Israel-Iran War,” The Brookings Institution 2025.7.23; Michael Eisenstadt, “The Risk and Reward of Preventive Strikes Against Iran,” Survival 2025년 5호, 45~56면.↩
- “‘Buying Quiet’: Inside the Israeli Plan That Propped Up Hamas,” The New York Times 2023.12.10; Steven Simon, “Pondering Gaza,” Survival 2026년 1호, 179~90면.↩
- ‘절대승리’는 Steven Simon, 앞의 글 184면; “A Wider War in the Middle East, From Hamas to Hezbollah and Now Iran,” The New York Times 2024.10.2; “One Battle after Another: Netanyahu’s New Security Doctrine,” Financial Times 2026.4.1.↩
- “Leaked U.S. Intelligence Suggests Israel Is Preparing to Strike Iran,” The New York Times 2024.10.19.↩
- “Full Text: Netanyahu’s 2024 Address to Congress,” Haaretz 2024.7.25.↩
- “Iran President Warns of ‘Irreversible’ Consequences of Wider Regional War,” Reuters 2024.9.24.↩
- “Benny Gantz: What the World Needs to Understand About Iran,” The New York Times 2024.10.5.↩
- Rob Geist Pinfold, “The US Facing Israel: From Restrainer to Enabler,” Survival 2025년 2호, 123~29면.↩
- “Why Assad’s Fall Made Israel’s Large-Scale Air War with Iran Possible,” Forbes 2025.6.17.↩
- “Iran’s Khamenei Dismisses US Nuclear Proposal, Vows to Keep Enriching Uranium,” Reuters 2025.6.4; “How Trump Shifted on Iran Under Pressure from Israel,” The New York Times 2025.6.17; “Trump Says ‘Time for Peace’ After Iran Gives Warning Before Firing on U.S. Base,” The New York Times 2025.6.23.↩
- Nrges Bajoghli and Vali Nasr, “Iran’s New Grand Strategy: How a Remade Islamic Republic Will Reshape the Middle East,” Foreign Affairs 2026년 7/8월호, 106면.↩
- “Inside Iran’s Preparations for War and Plans for Survival,” The New York Times 2026.2.22.↩
- “How Trump Took the U.S. to War with Iran,” The New York Times 2026.4.7; “Peace Through Strength,” The White House 2026.4.8.↩
- “Military Briefing: Iran’s New Retaliation Strategy,” Financial Times 2026.3.1.↩
- “Iran’s High-Risk Strategy for a No-Limits Middle East War,” The Wall Street Journal 2026.3.6.↩
- “The Fight Over Hormuz Boils Down to One Poorly Worded Clause in Trump’s Deal,” The Wall Street Journal 2026.7.9.↩
- “President Trump Lost This War,” The New York Times 2026.6.15; “Trump’s Deal Is a Catastrophic Capitulation to Iran’s Aggressor, Leaves Israel Vulnerable and Constrained,” The Times of Israel 2026.6.17.↩
- “Trump Didn’t Want ‘Herbert Hoover’ Presidency with Iran; Said It Has to Have ‘Some’ Missiles,” ABC News 2026.6.18.↩
- “How Trump Failed to Secure the Strait of Hormuz in His Iran Deal,” The New York Times 2026.7.12.↩
- “The Whiplash War,” The New York Times 2026.7.2.↩
- “Trump Says He’s Called Off an Attack on Iran To Give Talks More Time,” The Washington Post 2026.5.19.↩
- “Trump Threatens Iran and Then Pulls Back, All in the Same Day,” The New York Times 2026.5.18.↩
- “Iran Warns of ‘Offensive and Destructive’ Phase If U.S. War Continues: Adviser to Supreme Leader,” Xinhua 2026.7.18.↩
- “As Cease-Fire Teetered, Iran Plotted a Wider War With Aid of Its Proxies,” The New York Times 2026.8.1.↩
- “Trump’s Latest Iran ‘Deal,’” The Wall Street Journal 202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