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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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선

 

 

나희덕 羅喜德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시와 물질』 등이 있음.

rhd66@hanmail.net

 

 

알카이시와의 여행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망설임 끝에

두바이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이란에서도 멀지 않은 곳

 

코카서스로 가는 여러 항로 중에 하필 두바이 환승이라니,

수화물을 부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출발시간이 지연되어도 사람들은 묵묵히 기다린다

알라 알카이시의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을 읽는다

 

“번역을 할 때도 나는 언어 자체가 하나의 망명 상태라는 것을 안다.”1

 

망명 상태가 아니라 여행 중인 나는

무국적자처럼 흘러다니며 전쟁을 생각해보려 한다

 

두바이공항에서 바쿠행 여객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리번거린다, 어디에도 폭격이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면세점은 밤새 성업 중이고

전광판에는 폭격 장면에 이어 광고가 뜬다

심지어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전쟁을 잊은 듯하다

 

“사라짐에도 길들여짐에도 저항하는 언어를 찾고, 고통이 여과되지 않고 남아 있게 두면서도 그것이 언어의 검문소, 어떤 고통이 인정되고 또 어떤 고통이 기각될지 결정하는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게 하는 싸움 말이다.”

 

낯선 언어들 사이에서 입국심사를 기다린다

언어의 검문소보다 당장 입국장을 통과해야 하는 나는

온순한 표정을 지으며 기다린다

경찰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줄 때까지

 

먼 곳의 폭격보다 앞선 검문의 불안,

바쿠공항에 내리면 다시 입국장을 통과해야 한다

 

국경을 넘는 것과 언어의 경계를 넘는 것,

그 사이에서 어떤 고통은 인정되고 어떤 고통은 기각되는 것일까

다행히 경찰은 나의 고통까지 검문하지는 못한다

단지 여행자에 불과하니까

 

며칠 후에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조지아로 국경을 넘었다

낡은 시멘트벽 사이 경사진 통로에 갇혀,

뜨거운 햇빛 속에서, 한줄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부서진 계단 위로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일정한 수치를 지불하고 걸어서 건너는 이런 국경도 있구나

 

“그곳에서는 휴전이라는 깨지기 쉬운 언어조차 이스라엘의 폭격이, 모욕이, 영토 침범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밀하게 관리되는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려주지 못합니다.”

 

작년에 휴전이 공포되었지만

가자에서는 여전히 난민촌 텐트에 폭격이 쏟아지고

아이들은 먹을 걸 찾아 잔해를 뒤적이고 있다

 

목이 조금 말랐을 뿐인 나는 시원한 생수를 마시고

호텔 테라스에 앉아 조지아 와인을 마셨다

구름에 숨었다 새벽에야 드러나는 카즈베기 산정을 보며

신성에 대한 시를 몇줄 쓰기도 했다

 

“새벽은 반복이 아니라 계시다. 아무리 뜯겨나가고 줄어들었다 해도, 존재 속에는 삶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는 무언가가, 더는 줄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새벽은 몇 번이고 다시 선언한다.”

 

살아남았다는 책무감보다 남은 일정을 헤아려보는 나는

새벽마다 한국에서 온 메일과 메시지를 읽고 답신을 보낸다

일상은 여기까지 따라와 새벽빛을 뜯어간다

돌아갈 날이 가까웠다는 것이다

 

알카이시와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봉쇄와 폭격은 계속되고

나는 다시 두바이에서 환승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마음의 동행 알카이시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알카이시는 가자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한번도 가자를 떠난 적 없음을,

나는 몇개의 국경을 넘어 집에 돌아왔지만

나의 시는 여전히 언어의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음을

 

 

 

꽃은 종이가 된 후에야

 

 

언덕으로 제비들이 날아와요

희고 검은, 작고 빠른 제비들이 끝도 없이

죽은 영혼들이 돌아온 듯

 

삼년 동안 백오십만명이나 죽었지요

서로를 죽이지 않을 정도로 인간이 진화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학살의 이유와 방법은 천차만별이지만

애도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해요

 

제비언덕 위에는 탑과 비가 있어요2

하늘을 향한 기도처럼 높고 뾰족한 탑과

땅을 향한 울음처럼 낮고 둥근 비,

제단에 지핀 영원의 불꽃은 한순간도 꺼지지 않아요

 

비스듬한 열두개의 석판 사이로

상처의 문은 닫히고 진실의 문은 열리지요

 

해마다 4월 24일이면

사람들은 이 언덕에 모여 꽃을 바쳐요

제단의 꽃은 곧 시들지만

죽음도 죽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지만

시든 꽃을 버리거나 불태우지 않아요

 

몇 톤의 꽃들을

광장에 펴서 정성껏 말리고

줄기와 꽃잎을 하나하나 나누어 모으는 손들에 의해

꽃들은 두번째 삶을 살게 되지요

 

꽃잎은 종이를 만들어 학살을 기록하고

줄기는 퇴비를 만들어 추모공원의 나무를 키워요

지상의 꽃은 사라져도

종이 위의 문장과 흙 속의 나무가 살아 있는 역사가 되도록

 

꽃은 말이 없지만

꽃은 비로소 말할 수 있어요, 종이가 된 후에야

 

 

  1. 큰따옴표 안의 문장은 알라 알카이시(Alaa Alqaisi)의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서제인 옮김, 글항아리 2026)에서 인용. 면수는 순서대로 71면, 69면, 6면, 152면.
  2. 예레반에 있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