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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선
문동만 文東萬
1969년 충남 보령 출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네』 『구르는 잠』 『설운 일 덜 생각하고』 등이 있음.
munyaein@hanmail.net
남는 것
내 가방을 취중에 바꿔 간 모 시인이 그 가방마저 잃어버리고
내내 미안하다며 술 한병과 돈을 소포로 보내왔다
더 잃어버리며 살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지원금같이
당신들이 이러면 나는 늘 잃어먹으며
배불리 살게 될 것만 같다
딸이 사준 만년필을 잃어버렸지만
핸드폰도 잃어버렸지만 지갑과 현금을 잃어버렸지만
우산은 태초에 공유재여서
잃어버리기 위해 사는 것이지만
잃어버린다는 말도 있지만 잃어먹는다는 말도 있어서
그 또한 사는 일의 식량이었고
애초에 없었던 것들인지 먼지나 구름 같은 것인지
손해 본 적잖은 돈들까지도 이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떠났으나 남는 것은,
오직 되돌아오는 것은 떠나간 사람뿐
당신만이 생명만이 유구한 손실일 뿐
이것만큼은 빌어먹을 수도
잃어먹을 수도 없었네
가을의 판다
서른이 다 된 딸아이가 정오가 넘도록
늦잠 자고 일어나 소파 쪽으로 새끼 판다처럼 다가와
남편보다 화면 속 판다 가족에 빠진
엄마의 목덜미를 껴안고는 머리칼 냄새를 맡는다
그러며 똥에서도 푸른 댓잎 향기가 난다는
아기 판다처럼 옹알이 같은 말을 하느니
새끼 똥은 먹어 없앤다는 엄마 판다도
그 볼을 쓰다듬으며 핏줄끼리만 알아먹을
응대를 해주는 일요일 한낮에
이 가계에도 알록달록한 털들이 자라고 있었다
방바닥에 죽순이 오르고 대밭이 우거지고
머잖아 눈이 오면 우리는 같이 뒹굴며
눈 사진을 찍을 채비라도 하는 듯했다
나도 포슬포슬한 궁둥이를 큰 나무에 밀어올려주던
털 손으로 댓잎이 들어간 라면이나 끓이려던 시간인데
맘먹고 시를 써보려던 일요일인데
털이 이렇게 순하고 부드러운 식물이었나?
게으른 한줄을 써놓고 가장 큰 일을 한
아빠 판다처럼 같이 뒹구는 이 짧은 가을날을
아, 그리운 원적지로 다시 심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