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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선
윤유나 尹宥那
1986년 경북 문경 출생. 시집 『하얀 나비 철수』 『삶의 어떤 기술』 등이 있음.
yyn2486@hanmail.net
바나나잎
나의 어린 입
제발
화상 입은 말들이 뛰쳐나간다
어떤 말은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걸어나갔다
모래바람 분다
나의 어린 입
우리는 뱀을 상상하고 뱀에게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말하는 기쁨을
그래서 듣는 기쁨을
포포
힘내
등 푸른 풀
조개구름
비의 속삭임
하얼빈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친구는 가방을 열었다
야, 옷 좀 꺼내자
살이 에이다 못해 찢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차라리 겨울이 낫겠다 알지 꽃샘추위가 시베리아 바람보다 추운 거
겨울이면 하얼빈에 가자는 친구를 달래서
오월의 하얼빈에 도착했고
때마침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는 연휴였다
너무 크고 황량한 건물과 너무 크고 앙상한 벚나무가 줄지어 선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은 친구는 이것저것 양껏 먹고
밤이면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았다
코 골지 마
친구가 깨지 않게 주문을 걸듯이 중얼거렸다 친구가 스르륵 눈을 뜨더니
알았어 안 골게
하고 바로 코를 골았다
도저히 안 되겠는 밤이 이어졌고 나는 가져온 모든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갔다
저기 길모퉁이에서 꼬치 굽는 불이 보였고
불 앞에서 꼬치 굽는 장수는 겨울 패딩을 입고 있었다
몇개 주문하면서 한국말을 했던가
그가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휴대폰 액정 화면을 내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너네 나라 대통령 누구야?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다, 없어
그는 다시 휴대폰을 두드렸고 한자가 곧바로 번역되었다
탄핵?
나는 고개를 젖히고 박수까지 쳐가며 웃었다
맞아요, 탄핵, 탄핵
여행 내내 비몽사몽한 상태였고 친구가 미안해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루는 숙소에서 하얼빈역까지 걷기로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운동 했을 것 같아?
태어났는데 이미 조선이 피식민지야 억압이 당연해 현실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친구를 잘 만나면?
응
너는 시 쓰니까 독립운동 하지 않았을까?
친일파 시인 많아
군사독재에는 저항하잖아?
죄라고 다 같겠어 전쟁범죄랑 국가범죄는 다른 차원인 것 같아
그치
모르겠다 근데 지금 여기 어디니
안중근 의사가 일국의 우두머리를 저격한 그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었다 인민을 깨우치고 동양평화를 이룬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텍스트를 읽으며 사진을 구경했다
한국에서는 이만큼 절박하게 유지 못했을 것 같아
시베리아 바람을 같이 맞았잖아
우리는 괜히 농담했다
이따 마사지 받을 거야?
뜸 받아볼까
한국어로 번역된 월텍스트 마지막 섹션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그후 중한조 3국에서 유해발굴에 대한 노력을 수차례 해왔지만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잠이 쏟아졌다 서서 졸며 반복해서 글귀를 읽는 나를 보고 친구가 멋쩍게 웃었다
양지바른 곳에 사람을 묻는 건 어느 나라 풍습이야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