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6 가을] 통권 213호

 

제26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작

 

소현 笑賢

drifter. 제주에 산다. 도모 동인과 함께하고 있다.

sonic74781@gmail.com

 

 

천국

 

 

천국이고 지옥이고 나발이고 죽은 후에 갈 곳 없으면 좋겠다

 

먼저 떠난 강아지들을 생각하면

천국이라는 게 존재해야 할 것 같고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없는 게 낫겠다 싶고

 

오늘 친구랑 내장탕을 먹었다

친구는 열심히 국물을 퍼먹었다

아빠처럼,

아 정말 훌륭한 맛이다 하면서

 

그래 내게도 아빠가 있었지

어디서 어떻게 굴러먹는지 모르게 살다가

 

얼마 전 청주의 한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다

 

바깥에서

꽃 달린 검은 운동화 위에

돋보기로 햇빛을 투과시켜

작은 점을 만들면

연기가 나고 구멍이 뚫리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등지고 앉아 있는 내 뒤통수에

아빠가 돋보기를 대고 있었다

 

나는 밥그릇 안의 밥알을 세고 있었다

 

꽃 달린 검은 운동화 신고

단상에 올라가 시를 낭독했다

 

경기도 초등학생 통틀어 일등

그 시 엄마가 썼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내가 좀 단순하다 말했고

나는 순진하다는 말과 헷갈렸다

 

입관하러 갔을 때 엄마는 손을 만졌다고 했다

고인이 생전에 골라놓은 수의가

예뻤다고도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그 옷은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을까

나는 그런 걸 궁금해했다

 

모두가 지하 계단을 통해 내려가고

 

소현아 소현아

소현아!

내 이름을 외치며 고모가 엄마를 껴안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시를 쓰려고 했다

 

피자 먹으면서 엄마가

장례식장 갔다 온 걸로 시 쓰라고 얘기하기 전까지

 

착한 게 유일한 재능이었던 때

그 마음에 취해 있으면

계속하여 착한 마음이 생겨났다

 

지금은 착하게 굴지도 않고 나쁘게 굴지도 않고

한참 휘젓다가 가라앉은 커피가루처럼 산다

 

오늘의 커피는 내장탕 먹고 난 후

마신 믹스커피가 전부다

 

그 집은 믹스커피도 잘한다

그걸 마시면서 담배를 맛있게 피웠지

 

사실 나는 천국 생각을 엄청 한다

남아 있는 것 같다

 

 

 

역할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의 칼에 맞는다면 다 같이 죽는 척하기로

 

그에겐 장난감 칼이 나에겐 작은 방패가 주어졌다

그가 장난감 칼을 엄마에게 들이댄다 나는 방패를 내민다

쓰러진다 이것이 내가 맡은 역

 

그가 놀이를 마치고

내 몸에 약을 발라주고

사랑한다 말하고

한방에서 잠이 든다

 

나는 벗은 몸으로 집에 있다 귀를 파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여긴 저승이다 그도 알몸으로 거실에 널브러져 있다

 

내게 색연필이 주어진다 그의 몸을 낙서로 꽉 채운다 몸이 몸처럼 보이지 않게 되자

 

나의 목에 질긴 줄이 묶여 있다 여기엔 몇명의 사람과 생물이 있다 순서대로 손을 씻는다 고등어를 씻었던 물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드니 엄마가 앞에 서 있다 여긴 왜 왔어요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겠니

내가 아는 엄마의 얼굴이 아니다

 

이불을 걷어내고

소변을 보고

물 한모금을 마신다

 

아무리 혼자 살아도

그와 나는 한집에 있다

 

 

 

어린이는 자란다

 

 

어린이는 자란다

똥을 먹으면서

 

엄마가 처음으로

나를 혼자 두고 나간 날이었다

 

엄마는 소현당이라는

금은당을 했다

내가 글씨를 읽지도 못할 때

소현당이 금은당인 줄 알 때

 

울면서 거실에서 주방까지 기어가

기저귀를 벗고 똥을 싸고

그걸 먹고 토하고

거실에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뒤로 엄마는 절대 나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목이 자라나고

팔이 단단해지고

신발 크기가 바뀌지 않게 되고

 

때로는 욕을 하고

치고받고 싸웠다

걸핏하면 집 나가라고 해서

그 말 고분고분 들었다

 

그래 놓고 꼭 찾으러 왔다

개근상은 꿈도 못 꿨다

 

이제는 제주에 사는데

엄마가 따라 내려왔다

 

그때의 기분은 생략한다

 

우리는 여수에서 두번째로 맛있다는

백반집에서 서대회무침에

밥을 비벼 먹는다

엄마는 배탈이 난다

 

나는 화장실에 엄마를 두고 항구로 간다

 

엄마의 장례식 장면을 상상한다

엄마한테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은 다 죽는다

엄마는 나보다 오래 산다

 

 

 

옹포

 

 

해 질 녘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간다

저기 앞에 호텔까지만 갔다 오자 한다

청보리가 자라고 있다

유채꽃이 피고 있다

아이의 손은 작고 부드럽다

아이의 이마는 길에서 주운

보석처럼 반짝인다

십년이 흐르는 동안

사계절은 반복되고

저 멀리 초원에는 흑염소 몇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우는 소리를 따라 하니

다른 쪽에서 개가 짖기 시작한다

컹컹 짖는 소리를 따라 하니

개가 몇번 짖다가 만다

아이의 손을 잡고 원점으로 돌아온다

유채꽃밭은 마늘밭이 될 것이다

청보리밭에는 무덤이 늘어날 것이다

보라색으로 번진 하늘을 보라고

내가 고개를 치켜든다

 

 

 

불 보듯 뻔한 미래

 

 

그는 무표정했다. 요구사항에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을 보았다. 그가 두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위로 당겼다. 천천히 가위질이 시작됐다.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머리를 했다.

 

마음에 드는 주방을 갖고 싶었다. 주방 싱크대 위아래에 놓인 선반의 문을 나무로 바꾸고, 싱크대 벽타일을 검은색 타일로 덮고 싶었다.

제일 중요한 건 타일이 수직과 수평을 이뤄야 하는 것이었다.

 

불 보듯 뻔했다.

똑같은 모양으로도 앞서나가는 타일이 있을 거였다.

 

철물점에 가서 묻는다. 남거나 모자란 부분 없이 타일을 꽉 채우려면 뭘 써야 하나요? 주인은 가게 안쪽으로 간다. 꺼내온 장비를 보여준다. “맞아요. 이거예요.”

 

이제 미용실 원장은 머리를 하고 나갈 때

잘 가라고 문을 열어주신다.

 

간호사는 전문용어로 생각한다. 환자에게는 일상용어로 설명한다. 수술실은 조용하다. “13번 블레이드.” 의사가 정적을 깬다. 수술 부위가 열린다.

 

 

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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