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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중편)

 

 

김유담 金裕潭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탬버린』 『돌보는 마음』, 장편소설 『이완의 자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등이 있음.

neverend1130@hanmail.net

 

 

 

나의 뉴욕 가이

 

 

1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흔들리면서 온몸이 떨려왔다. 어깨와 팔다리가 떨리다가 몸 안의 모든 장기까지 뒤흔들리는 듯했다. 기내 전면에 붉은색 경고 사인이 뜨고 승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아이는 옆좌석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잘 자는 아이였다. 창 쪽으로 기울인 아이의 머리를 안쪽으로 돌려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얕은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다시 한번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이의 손을 끌어당겨 쓰다듬었다. 어느새 내 손보다 더 크고 두툼해진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아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됐지만 여전히 아기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낮게 읊조렸다.

“그래, 괜찮아. 괜찮을 거고 괜찮아질 거야.”

혼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괜찮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괜찮지 않은 일이 다반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수록 신경 쓸 일이 적어질 거라는 기대는 착각이었다. 사실 요즘처럼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불안정한 대기를 지나 비행기는 무사히 뉴욕에 착륙했고, 협조해주신 승객들에게 감사하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리자 기내는 박수와 환호 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는 그제야 잠에서 깨어나 눈을 끔뻑거렸다. 뒷머리가 까치집을 지은 듯 삐죽삐죽 솟아올라 있었다.

입국심사 줄에 서서 준경에게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다.

 

지금 비행기 내렸어. 입국심사 중. 짐 찾아서 우버 타고 갈게.

ㅇㅇ

 

알파벳 O인지 이응인지 모를 문자 두개로 된 답신을 받았을 때 괜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12년 만에 만나는 친구를 환대하는 방식이 겨우 이거야? 한시간 전에 난기류를 만나서 죽을 뻔했다고, 미국 땅 밟아보지도 못하고 저승길 가는 줄 알았다는 답장을 하고 싶었는데 메시지를 다 입력하기도 전에 차례가 다가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앞에 선 사람들이 순조롭게 심사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아이에게 말했다.

“민호야, 엄마랑 같이 입국심사 받아야 하니까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따라와. 여권은 네가 들고.”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내 뒤로 세운 채 나는 입국심사 창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스트 트래블. 위드 마이 선.”

입국심사관과 눈을 맞춘 채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마나 머무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귀국 항공권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묻는 심사관의 질문에 차례대로 답할 때만 해도 형식적인 수준의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묵을 거냐는 질문에 나는 준경의 아파트 주소를 댔다. 호텔이 아닌 친구의 집에 묵을 계획이라는 답변이 마음에 걸렸는지 심사관은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다.

―왜 호텔이 아니라 친구의 집에서 머무는 거지? 친구와는 어떤 관계인지, 아이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친구가 자신의 집에 초대해 뉴욕 여행을 시켜주기로 했다. 친구는 대학 동창이며, 나는 싱글맘이고 아이 아빠는 동행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심사관은 방문 목적을 왜 친구 집 방문으로 쓰지 않고 여행이라고 적었는지 다시 캐물었고, 준경이 남성이라는 걸 확인한 후에는 그가 나의 남자친구는 아닌지 물었다.

―아니, 그와 나는 정말 친한 친구 사이야. 그 친구는 이미 결혼을 했고, 파트너와 함께 사는 집에 우리를 초대했을 뿐이야.

방문 목적을 여행이라고 기재해야 입국심사가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것이 준경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뉴욕에 온 목적이기도 했다.

입국심사관은 내 옆에 선 민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슈어.”

아이는 심각한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아이는 영어를 좋아했고, 잘하는 편이었다.

뉴욕에 온 이유가 뭐냐고, 엄마 친구의 집에 머무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는 스스럼없이 여행을 온 거라고, 자연사박물관과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등 여러 명소에 갈 거라고 유창하게 말했다.

아이의 말에 심사관은 옅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러면 너는 미국에서 공부를 할 거니? 학교를 다닐 계획도 있니?

―그러길 바라.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아이의 대답에 순간 심사관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을 느낀 내가 손사래를 쳤다.

I hope so. 그건 말 그대로 아이의 희망에 불과했다. 국제중에 합격하고 나중에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는 것. 아이의 꿈은 거창하면서도 막연했다. 그간 나는 아이의 꿈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경쟁률이 높기로 소문난 국제중에 합격하는 것부터 가능성이 희박한 일일뿐더러 우리 형편에 미국 유학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걸 미리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이가 미국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 건 아주 먼 미래의 막연한 희망에 불과한 거라고, 아이에게 미국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거라고 정정하고 싶었지만 심사관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나와 민호의 푸른색 여권을 거칠게 접은 후 돌려주지 않은 채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사람을 따라가.

입국심사관 뒤편에 서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우리에게 손짓을 보냈다.

 

긴 책상과 의자가 줄지어 있는 사무실에는 인도계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히잡을 쓴 젊은 여자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세컨더리룸에 끌려왔다고, 아무래도 일이 꼬인 것 같다는 메시지를 준경에게 보내려던 참이었다. 내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며 조사관이 소리를 질렀다.

“노 셀폰, 두 낫 유즈 셀폰!”

뒤따라온 아이는 제복을 입은 덩치 큰 조사관이 소리를 지르자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의 손을 꼭 붙들었다. 괜찮을 거라고, 별일 아닐 거라고 말하며, 엄마가 답을 할 테니 너는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속삭이자 조사관은 너희들끼리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다시 소리쳤다.

“오케이, 오케이.”

나는 순순히 그의 말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국에 온 진짜 목적이 뭐냐고, 조사관은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할 목적으로 여기에 왔다.

―아이는 왜 데리고 온 것이냐, 네 아이는 여기에서 학교를 다니길 원한다는데.

그건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길 원한다는 뜻이라고, 그저 처음으로 뉴욕을 경험하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여기에 왔을 뿐이라는 말을 되도록 차분한 어조로 전하려 애썼다.

―아이 아빠는 아이를 미국에 데리고 가는 걸 동의했나?

―나는 싱글맘이다.

―아이 아빠는 어디에 있나?

―오래전에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이 아이의 보호자이다.

―방문하는 집 주인이 당신의 남자친구인가?

―아니다. 대학 동창이다.

한때, 준경이 내 남자친구이길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고, 그런 내용까지 조사관에게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다.

―혹시 당신을 초대한 사람이 아이의 아빠인가?

헛웃음이 나오는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말이 안 되는 질문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집요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한국에 내 사업체가 있는 사람이고, 절대 미국에 불법체류자로 남을 일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말했다. 조사관은 내가 아이를 미국에 두고 혼자 돌아가지는 않을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여러번 물었다.

“네버, 네버.”

나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지키는 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그런 내게 아이를 미국 어딘가에 던져두고 갈 거라는 질문 자체가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땅에 자신의 아이를 버려두고 가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조사관은 내가 그런 엄마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지금 한국은 학기 중인지 방학인지 그들은 이어서 물었다. 지친 얼굴로 옆에 앉은 민호는 제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하려는 아이에게 눈짓으로 제지하는 신호를 보냈다.

―학기 중이다. 하지만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면 출석이 인정된다.

왜 하필, 방학이 아니라 지금 입국했느냐는 질문에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민호가 체험학습을 쓰고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건 담임의 중재안이었다. 피해자 아이와 당분간 분리하겠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시간이 넘쳐나게 된 아이를 집에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다. 동네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방에 틀어박혀 있을 바에야 뉴욕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뉴욕에는 준경이 있었다. 굳이 조사관에게는 알릴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 초대해준 친구의 일정에 맞춰서 왔다고 답했다.

세컨더리룸의 조사관은 한국에서 나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조차 함부로 물어보지 못하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아이 아빠와는 왜 헤어졌는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현재 남자친구가 있는지, 재혼할 계획은 있는지, 혹시나 내가 미국에 와서 결혼이라도 하려는 건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처음 겪어보는 무례한 횡포에 자리를 박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한없이 비굴해지는 것 외에는 그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화난 기색을 감춘 채 대답을 이어나갔다.

네가 미국에 온 진짜 목적이 뭐냐, 개인신상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교묘하게 말을 바꿔가며 묻는 질문에 두시간 넘게 시달리다보니 이제 내가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 나조차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조사관은 준경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친구와 나눈 개인적인 대화까지 살펴볼 권한이 그들에게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무기력한 얼굴로 핸드폰 잠금을 풀어서 그에게 넘겼다. 조사관은 번역기를 돌려서 준경과 내가 나눈 메시지를 살폈고, 준경의 프로필로 들어가 그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도 여러장 넘기며 확인했다.

―네 친구는 게이고, 남자랑 결혼해 살고 있구나. 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

―그런 건 물어보지 않았잖아. 나는 내 친구가 이미 결혼해서 파트너와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

조사관은 준경과 그의 파트너 테리가 상체를 벗은 채 침대 위에서 함께 찍은 셀피를 보고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준경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우를 승인한 백명 남짓한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비공개 계정이었다. 조사관은 준경의 승인을 받지도 않은 채 그의 일상을 빠르게 넘겨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랑 같이 이 게이 커플 집에서 지낼 거라고?

―응, 내 친구야.

―이들이랑 친해? 안 지는 얼마나 됐지?

―파트너는 잘 몰라. 내 친구와는 스무살 때부터 친구야.

―이 사람들은 언제 결혼했어?

―나도 잘 몰라.

―친하다면서 그걸 왜 몰라?

그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더 숨길 것도 없다는 생각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숨겼으니까. 남자랑 결혼한 것도 최근에 알았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조사관이 다시 물었다.

―왜지? 친한 친구라며?

―그래, 나도 그게 궁금해. 만나서 물어봐야지.

나는 제발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조사관에게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뉴욕에 온 진짜 목적은 준경에게 그 질문을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고.

 

 

2

 

준경을 처음 만난 건 스무살의 2월, 선배들과 함께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였다. 사흘 동안 매일 학교에 나와 응원가와 대학생활 전반에 대해 배우는 자리라는 안내를 받고, 나는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행사라고 생각해 새벽 첫차를 타고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시시한 게임과 율동 배우기, 그리고 술자리로 이어지는 일정이 실망스러웠지만 꿈꾸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는 기쁨과 설렘은 꺾이지 않았다. 세련되게 잘 차려입은 선배나 동기들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면서도, 그들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손을 잡고 빙그르르 돌 때면 입가에서 웃음이 비어져나왔다.

주변을 살피면서 계속 어색하게 웃는 나와는 달리, 준경은 오리엔테이션 내내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게임을 할 때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에 한 선배가 올림픽 나왔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 순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크게 웃어버렸다. 준경이 나를 노려봤을 때 멈칫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그대로였다. 준경은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고, 나는 그 아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때만 해도 나는 준경이 새치름한 서울내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머리 모양이며 옷이며 상당히 멋을 낸 것처럼 보였다. 그날 기온이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갈 정도로 아주 추웠는데, 남학생 중에서 패딩점퍼가 아닌 코트를 입고 온 사람은 준경밖에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첫날부터 늦게까지 술자리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제 주량을 정확히 모르면서 술을 마셔댄 신입생들 중 몇몇은 화장실로 달려가 토했고, 술기운이 올라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 삼수를 했다는 동기 하나가 특히 가관이었다. 자신은 삼수를 해서 우리보다 나이가 많다며 ‘오빠’나 ‘형’이라 부르고 말을 높이라고 했다. 선뜻 오빠, 형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대답을 머뭇거리는 동기들에게 삼수생은 자기가 그냥 나이만 먹은 걸로 대접받겠다는 게 아니라면서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정시 합격생이라며 너희처럼 현역에서 편하게 내신이나 따먹으며 이 학교에 온 게 아니라고, 그걸 알아야 한다고 말할 때는 거의 훈계에 가까운 말투였다.

“내가 수능 세번 보면서 느낀 게 뭔 줄 알아? 세상에 수능보다 공정한 시험은 없다는 거야. 특히 시골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성적도 안 되는 것들이 농어촌전형 같은 걸로 좋은 대학 가고, 그런 건 진짜 불공정한 거야. 나는 정시, 비평준화고 수시까지는 인정해도 농어촌이랑은 겸상도 안 하고 싶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당황스러웠지만 그 자리에서 티를 내면 내가 농어촌전형 입학자라는 걸 밝히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삼수생은 거침이 없었고, 선배들조차 그를 저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인 대가리 나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해야 하는 건가요?”

삼수생의 일장연설이 길어질 무렵,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준경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야, 너 뭐야? 아까, 그 올림픽 맞지?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예, 앞으로 제가 형이라고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네요. 농어촌이라 겸상도 못할 것 같아서.”

그날 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준경을 따라나서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 역시 농어촌전형 입학자라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밝힐 용기, 그것이 부끄럽거나 폄하되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준경의 옆에 설 용기. 평소의 나였다면 오래 머뭇거리다 말았을 테지만 갓 스무살이 된 나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같이 가.”

호프집 지하 계단을 올라가는 준경을 불러세우며 내가 말했다.

“어? 너 이름이 뭐였지? 근데 너는 왜 나왔냐?”

“나도 농어촌이거든. 경북 봉화. 난 고수영이야.”

준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날, 내가 처음 본 그애의 웃음이었다. 주황색 전구 한알만 달린 좁고 어두운 계단 통로에서 그의 얼굴에 절반만 불빛이 비쳤다. 음영이 진 옆얼굴의 콧날이 더 날렵해 보였다. 나는 계단 아래에 서서 준경을 올려다보며 따라 웃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늘 붙어다녔다. 과 사람들은 우리를 경영학과 공식 농어촌 커플로 불렀다. 그것이 우리를 은근히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호칭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모른 척했다. 경북 봉화 출신인 나와 전남 해남에서 자란 준경의 조합이니 농어촌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가 실제 연인관계가 아니라는 건 주변의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나는 준경에게 열번 넘게 고백하고 백번쯤 차였다. 정식으로 고백할 때마다 준경은 정중하게 나를 거절했고, 같이 다니며 흘리듯 내 마음을 전했을 때도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함께 걸을 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까지는 내버려뒀지만 얼굴을 가까이 하면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왜, 나는 아니냐고, 모든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을 같이 먹고, 매주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만나고 영화를 보는 사이인데, 우리가 왜 연인이 아니냐고 울며불며 따져 물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준경은 우리는 좋은 친구사이라며, 연애가 잘못돼 우리 관계가 망쳐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는 좋은 아이니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끝까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준경이 원망스러웠지만 준경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준경 역시 나를 내치지는 않았기에 나는 남들에게는 그의 여자친구로 인정받으면서도 정작 준경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준경의 곁을 지켰다.

내가 새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실을 고백하며, 아이를 많이 낳는 게 꿈이라고 말했을 때 준경도 아이를 갖고 싶다며 꼭 딸을 낳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초등학교 3학년 되던 해 새어머니가 집에 들어왔다. 새어머니는 나를 빈틈없이 챙겼지만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좀처럼 웃지 않던 새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떠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쌍둥이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쌍둥이를 낳아 기르며 고단해하면서도 동생들을 바라보는 새어머니의 얼굴은 늘 환한 빛이 돌았다. 환희와 사랑이 가득 담긴 얼굴로 번갈아 아이들의 젖을 먹이는 새어머니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로부터 3년 뒤 막냇동생을 낳고 난 후로 새어머니의 표정은 더욱 풍부해졌다. 내 끼니와 옷, 준비물을 챙겨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온도였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다가도 입맞춤 세례를 퍼붓고, 아이들 때문에 웃었다가 울기도 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묘하게 외로워지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도 누군가와 단단하게 결속된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준경은 복잡한 내 가정사를 말없이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꼭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머리를 예쁘게 땋은 딸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가서 함께 회전목마를 타는 장면을 자주 꿈꾼다고 했다.

“레이스 양말이랑 메리제인 슈즈를 신길 거야. 예쁘겠지?”

“너무 구체적인 거 아냐?”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계획을 늘어놓는 준경이 엉뚱하면서도 귀엽게 느껴졌다.

“구체적일수록 좋지. 나는 딸 낳으면 이름 뭘로 할지도 미리 지어놓았어.”

“뭔데?”

“비밀이야. 네가 듣고 따라 지으면 어떡해?”

“야, 안 따라 해. 뭔데?”

“진짜, 약속해야 해. 너 이거 듣고 따라 하면 안 된다.”

“절대 안 해. 걱정하지 마.”

“초록.”

“그게 애 이름이야?”

“응, 내가 초록색 제일 좋아하거든. 임초록, 이름 예쁘지? 영어 이름은 초록 임.”

“아니지, 영어 이름은 그린 아냐?”

“그러네, 그린도 좋다. 생각할수록 마음에 드네. 임초록, 너무 귀여울 것 같아.”

준경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발을 굴렀다. 나는 준경과 이렇게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함께 걷는 순간이 좋았다. 초록색 나무가 우거진 캠퍼스에서 싱그러운 풀내음이 났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을 올려다보며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준경도 그러길, 나중에 초록을 목마 태우고 놀이공원을 가는 준경의 옆자리에 내가 함께하길 바랐다.

 

우버 탔어. 뉴욕 입성 한번 하기 진짜 힘드네.

고생했어. 배는 안 고파?

완전 고파. 집에 라면 있니?

당연히 있지. 라면 꺼내놓을게. 맥주도 냉동실로 옮겨둬야지.

 

나는 준경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준경의 자취방으로 달려가던 스무살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앞 오피스텔에 살던 준경과는 달리 나는 지하철로 한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의 끝자락 동네에 고향 친구와 함께 방을 얻어 지내고 있었다. 학교 앞에서 놀 일이 있거나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차가 끊기는 날이면 준경의 방에서 신세를 지곤 했다.

나는 늦은 시간에도 준경에게 거리낌없이 지금 자러 가도 되냐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준경은 그런 나를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처음 준경의 집에서 자게 됐을 때 나는 약간의 긴장과 기대로 설렜지만 남들이 상상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간 날에도 준경은 언제나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라면을 끓여주고 시원한 맥주를 내주었다. 내가 준경의 방을 수시로 드나든다는 사실은 학교에 순식간에 알려졌고, 우리는 ‘끝까지 간 사이’로 소문만 요란해졌다. 준경은 소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건 일종의 인정처럼 보이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런 준경을 나는 멋대로 오해했다. 준경도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뿐이고, 언젠가는 우리가 보낸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나를 여자로 바라봐줄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후에도 라면과 맥주, 그리고 방 한칸을 흔쾌히 내주겠다는 준경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그의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예전의 스무살이 아니었으니까.

 

 

3

 

옆자리에 탄 아이는 낯선 풍경이 신기한지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호야, 어때? 뉴욕 좋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국심사 너무 고생 많았지? 이제부터는 재미있는 일만 있을 거야. 민호가 이번 여행에서 배우고 느끼는 게 많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대답 없이 창문만 바라봤다. 택시는 뉴욕의 밤거리를 빠르게 달렸다.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보름 전이었다.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당했고, 조만간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 거라는 통보였다. 아이는 같은 반 친구를 다른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게이라고 놀렸고, 괴롭힘은 학기 초부터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피해 아이는 현재 우울증 진단을 받은 상태라고 했다.

그날 밤 민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친구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호야,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너무 나쁜 행동이야.”

“왜요? 걔 게이 맞거든요.”

“걔가 게이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해요? 그리고 게이가 아니면 아닌 거지, 이게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일이에요? 엄마가 나한테 유치원 때부터 그랬잖아요. 애들이 아빠 없다고 놀려도 상관하지 말라고, 나만 떳떳하면 되는 일이라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민호야, 이건 그 문제와는 달라. 그런 말로 사람을 놀리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그 친구가 정말 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말하면 안 될 일이야.”

“왜요?”

“민호야, 그냥 친구가 싫어할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게 어렵니?”

“걘 내 친구 아니에요. 걘 맨날 여자애들이랑 놀고, 말투도 여자 같아요. 그래서 게이 같다고 한 건데.”

“그것도 네 편견이야. 여성스러워 보인다고 다 게이는 아니야. 게이는 남성에게 끌리는 남성인 거지.”

“아, 나 그거 알아요. 똥꼬충? 맞죠?”

말문이 막혔고 숨통이 조여왔다. 그런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히죽 웃는 아이를 빤히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민호의 친부와는 오래전에 헤어졌다. 우석은 첫 직장에서 만난 입사 동기였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뒤늦게 취업했다는 그는 동기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동기회장을 자임했다. 졸업 전 대학 4학년 2학기 때 취업을 했던 나는 가장 나이가 어렸고, 그는 나를 ‘아기’라고 부르며 챙겨주곤 했다. 준경에게 수없이 거절당하며 내가 여자로서 별로 매력이 없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터라 첫눈에 네게 반했다고, 네가 아른거려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며 매달리는 우석이 싫지 않았다. 민소매에 핫팬츠를 입고 자취방을 돌아다녀도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준경과는 달리, 우석은 나를 안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간절한 대상이 된다는 게 묘하게 기분 좋았다. 우석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동기들 여럿에게 똑같이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은 그와 사귀고 나서 일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됐다. 그중에 얻어걸린 게 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그와의 연애를 쉽사리 무를 수도 없었다. 임신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아이를 낳겠다고 말했을 때 우석은 펄쩍 뛰며 반대했다. 이제 겨우 입사한 지 일년밖에 안 됐는데 덜컥 임신 소식을 알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며 비난하는 말투였다. 우리 처지에 당장 결혼과 출산을 감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지금은 커리어를 쌓고 돈을 모으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는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삶이 포함돼 있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이 아이를 절대 포기할 수는 없다는 내게 우석은 화를 냈다.

“수영아, 정신 차려. 지금 우리 애 낳으면 인생 좆 되는 거야, 너나 나나 이제 취업해서 원룸살이인데, 너 원룸에서 애 낳고 키울 거야?”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차게 뛰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이미 확인한 후였다. 화려한 결혼식이나 번듯한 신혼집은 바라지도 않았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둘이 벌어 알뜰하게 모으면 나중에는 아이와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난 자신 있어.”

“자신? 야, 너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설마, 너 내 발목 잡으려고 작정하고 임신한 거야?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지금 이러는 건데?”

“자신 없으면 빠져. 나 혼자라도 낳아 키울 테니까.”

우석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했다.

“수영아, 제발. 이건 아니야. 아이는 나중에라도 낳을 수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반대하는데 아이를 낳겠다는 건 나를 무시하는 거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네가 끝까지 낳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우리 좋았던 관계는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고. 정 그러면 선택해. 나야? 아이야?”

그 순간 우석과의 관계는 이미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뱃속의 아이를 택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 선택을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배가 불러오기 전에 회사를 그만뒀다. 우석은 처음에는 빌다가 나중에는 나를 찾아와 협박하고, 폭력까지 휘둘렀다. 나는 우석이 모르는 곳으로 이사하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우석은 나중에라도 내가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자신의 발목을 잡을까봐 두려워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민호에게는 일찌감치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말했고, 아이에게 아빠는 원래부터 없는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준경에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처를 지우기 위해 우석에게 너무 쉽게 나를 내맡겼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첫사랑에 실패했고, 첫 연애도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는 민호가 있다. 준경을 오래 원망했고, 이따금 우석을 저주하면서도 이 모든 일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겪은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됐다.

 

택시는 브루클린교를 지나 로어맨해튼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각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빌딩들을 지나 준경의 집 앞에 다다랐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열기와 함께 퀴퀴한 냄새가 바닥에서 올라왔다. 나는 정체 모를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유리 외벽으로 둘러싸인 주상복합 건물 입구로 향했다.

“이 건물이 엄마 친구 집이야.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해.”

로비에 들어서며 아이에게 다짐을 받듯 눈을 부라렸다. 아이는 자신의 캐리어를 끌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아요. 대체 몇번 말하는 거야? 아 씨, 나는 호텔이 좋은데.”

“너 뉴욕 호텔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아? 그리고 여긴 한국이 아니야. 동양인 여자랑 아이 둘이서 호텔에 지내는 게 더 위험할 수 있어.”

“네네, 그러시겠죠.”

아이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마디하려던 순간, 정장을 입은 가드가 다가왔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경비원은 우리에게 어디를 찾아왔는지 물었고, 나는 43층에 산다는 준경의 이름을 댔다.

“오, 미스터 림!”

경비원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카드키를 꺼내 엘리베이터에 찍어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만 해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는 준경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거실 창으로 다가갔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거실의 통유리창으로 뉴욕의 야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엄마, 영화에서 본 그대로예요.”

아이가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웰컴 투 뉴욕!”

준경이 아이와 나를 번갈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나는 스스럼없이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는 준경에 놀라 포옹에 답하지 못한 채 팔을 내리고 멀뚱히 서 있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민호야, 나는 준경 삼촌이야. 그리고 이쪽은 테리 삼촌.”

“반가워, 민호. 수영도 뉴욕에 온 걸 환영해.”

테리가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알아요?”

나는 테리의 가무잡잡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Just a little. 그는 짧게 답한 후 이어서 영어로 말했다.

―네 얘기를 많이 들었어.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테리가 밝게 웃으며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고, 나는 이번에도 잔뜩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테리에 대해 들은 바가 거의 없었다.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는 게 그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사실 준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십여년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4

 

준경을 마지막으로 본 건 대학 졸업식장이었다. 우리는 캠퍼스에서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걸친 채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준경의 어머니도 그날 처음 만났다. 해남에서 전복과 미역 양식장을 크게 한다는 준경의 어머니는 평소 내가 떠올리던 어촌 여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밍크코트를 걸치고 샤넬백을 든 준경의 어머니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다소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다른 가족들이 오지 않았다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준경 어머니의 제안에 물색없이 따라갈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벤츠 승용차를 타고 사라지는 준경을 보면서 우리는 애초부터 ‘농어촌’으로 같이 묶일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내내 입대를 몹시 두려워하며 미뤄왔던 준경은 결국 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군대에 있는 동안 로스쿨을 준비할지 유학을 갈지 고민해보겠다는 준경에게 너는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다만 너무 멀리는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공부를 할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선택’할 수 있는 준경이 부러웠다. 입대 후 신병훈련소에 있던 준경과 몇번 편지를 주고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했더니 동기들이 모두 자신보다 어리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과 훈련을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도 있었고, 훈련소의 일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도 있었다. 자대 배치를 받으면 다시 편지하겠다는 준경은 그후로 연락이 없었다. 준경의 핸드폰 번호로 메시지도 보내고, 이메일도 보냈지만 답신을 받지 못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이제 너를 정말 친구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를 피하지 말아 달라는 이메일을 확인한 후에도 준경은 내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준경이 다시 내게 연락한 건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였다. ‘June Lim’이라는 계정이 나를 팔로우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흔히 보이는 광고용 계정이라고 생각했다. 프로필에는 ‘Newyorker’라는 자기소개와 함께 성조기 표시가 있고, 상의를 벗은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 남자의 사진을 내건 비공개 계정이었다. 작은 프로필 사진 속 왼쪽 어깨부터 팔뚝까지 문신을 한 근육질의 남자는 SNS에 넘쳐나는 가상의 인물처럼 보였을 뿐, 준경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서툰 한국어로 내게 광고용 피싱 링크를 보낼 것만 같은 그 계정을 차단하려는 순간, DM으로 그가 말을 걸어왔다.

 

수영, 고수영 맞지? 나 준경이야. 신기하다, 너를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될 줄이야. 친구 추천에 익숙한 얼굴이 뜨더라.

준경 너 맞아? 진짜 임준경 맞는 거야? 나는 AI로 만든 가짜 프로필인 줄.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어?

수영아, 나 맞아. 네가 놀랄지도 몰라서 미리 말해. 나 미국에 있고, 결혼했어. 따로 연락 못해서 미안해.

 

준경과 DM을 주고받는 동안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준경에게 맞팔로우를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경이 팔로우를 승인하자마자 수백개의 게시물이 한꺼번에 떴다. 순간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삼켰다.

준경이 아직 혼자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준경의 게시물을 하나하나 내려다보면서 그동안 풀리지 않던 많은 의문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준경의 뉴욕 집은 방 세개와 화장실 두개를 갖춘 월스트리트 중심가의 아파트였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거실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감각적인 붉은색 소파와 하얀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의 야경이 내가 뉴욕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장식장에는 준경과 테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뉴욕 거리와 각국의 여행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준경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긴 머리의 동양인 여성이 준경과 테리 중간에 서서 함께 어깨동무를 한 사진도 보였다. 세 사람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는 내게 테리가 한국말로 누나라고 말했다.

“누나?”

내가 반문했고, 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경에게 누나가 있었던가, 외동이었던 걸로 아는데. 혹시 잘못된 기억은 아닌지 옛 기억을 더듬어보는 사이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준경의 자취방에서 먹던 안성탕면 냄새였다. 깔끔한 실버톤의 키친 조리대에 서서 준경이 나를 불렀다.

“계란 풀어? 말아?”

“풀지 말고 반숙으로, 늘 먹던 대로.”

“오케이.”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라면 냄비에 빠뜨리는 준경의 손놀림과 표정이 예전과 그대로였다.

준경이 차려준 라면을 민호와 마주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그릇에 코를 박고 국물까지 먹어치우는 민호를 준경이 다정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녁을 먹어서 안 먹는다던 테리도 냄새가 기가 막힌다며 옆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준이 끓인 라면 너무 맛있지? 난 준이 해주는 모든 요리가 너무 맛있어.

테리는 준경을 그의 미국 이름인 준,이라고 불렀다. 테리는 준경의 요리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한참 자랑을 늘어놓았다.

“준경아 너 원래 라면 외에는 밥도 거의 안 해 먹고 요리 잘 안 했잖아. 오죽하면 네 고향집에서 올라오는 식재료 안 쓰고 버리기 아깝다고 내가 가져가기도 했는걸. 여기 와서는 열심히 요리해 먹고 사는 거야?”

“어쩔 수 없었어. 유학 와서 물가가 너무 비싸니 생존을 위해서 밥을 해 먹을 수밖에 없더라고.”

미국에서 MBA 학위를 따고 월가의 투자은행에 취업해 자리잡기까지 뭐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며 준경은 ‘생존’이라는 단어를 여러번 써가며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금은? 괜찮아?”

“응, 다행히. 처음 미국 왔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어. 테리랑 결혼하면서 그린카드도 받게 됐고, 테리를 만나서 일이 더 잘 풀렸어. 운이 좋았지.”

준경이 테리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테리에게 너를 만나서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자, 테리가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운명이라서 만난 거야.

luck이 아니라 destiny라고 강조하며 준경의 볼에 입을 맞추는 테리를 민호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민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테리는 준경의 반대편 볼에 다시 입을 맞췄다.

“생존투쟁의 엔딩은 로맨틱이구나. 준경이 넌 더 멋있어졌고.”

“멋있긴, 나이 들었지. 넌 아이도 낳았는데 하나도 안 변했네. 넌 어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도 생존하느라 바빴지. 지금도 그래. 이렇게 길게 쉬는 것도 처음이야.”

민호를 낳고 젖몸살이 가시기도 전에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삼아 하던 영어과외를 다시 시작했다. 잠깐씩 아이를 맡기고 할 수 있는, 시간 대비 가장 수익이 높은 일이었다. 전문과외 선생으로 생계를 해결하다가 민호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 동네에 작은 영어교습소를 차렸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생 전문 영어학원으로 규모를 확장해 직원도 세명 두고 있었다. 다행히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라 일주일 휴강하고 뉴욕에 올 수 있었다는 내게 테리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잘 왔어. 우리 집에 준경의 한국 친구가 온 건 처음이야. 아니, 한국에서 손님이 온 게 처음이라 더 뜻깊고 기뻐. 너희는 우리 집의 첫 한국 손님이야.

―라일리도 엄연히 따지자면 한국에서 온 손님 아닌가?

준경이 테리를 장난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라일리? 오, 노. 라일리는 워싱턴에서 온 거잖아. 그녀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야.

―내가 봤을 때, 라일리는 너무 한국인이라니까.

영어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로는 무슨 이야기인지 선뜻 파악되지 않았다.

“라일리가 누구야?”

내가 끼어들어 묻자, 준경이 설명해주었다.

“라일리는 테리의 누나인데 일곱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서 왔어. 테리의 부모님이 라일리를 입양하고 2년 후에 세살 난 테리를 입양해 키우신 거지. 백인 양부모 밑에서 미국인으로 자랐을 텐데 내가 보기에 라일리는 너무 한국 누나 같아. 동생을 유난스럽게 챙기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한국음식이라면 환장할 정도로 좋아해. 입양 후 미국에 와서도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였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한국음식 해놓으라고 닦달해서 어떨 때는 피곤할 지경이야. 내가 테리랑 결혼해서 한국 시누이까지 얻은 셈이라니까.”

준경이 이마를 머리를 짚으며 웃었다. 테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맞받아쳤다.

―나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어. 분명히 미국인으로 자랐는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라니. 오, 그러고 보니 나 오늘밤에도 이렇게 한국인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잖아.

준경, 테리 부부와 근황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소파에 기대앉아 쉬던 민호는 어느새 쿠션을 벤 채 드러누워 잠들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흔들어 깨워도 미동도 없이 깊이 잠든 민호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준경이 다가와 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그냥 여기에서 재워. 소파가 커서 괜찮을 거야. 안아서 옮겨주기엔 너무 크다, 네 아들.”

“그래도 될까?”

“그럼, 여기 있는 동안 편하게 지내. 예전 자취방 시절처럼 뭐든지 편하게 꺼내 먹고 써도 된다고.”

“예전 네 오피스텔도 내 기준에는 엄청난 럭셔리였는데 지금은 말도 못하게 격차가 벌어져서 부담스러울 정도야.”

“그런 부담 갖지 마. 나 그냥 니 친구 임준경이야. 수영아 난 네가 예전 그대로라서 반갑고 고마워.”

“그대로긴, 애 엄마인데.”

“그것도 좋아 보여.”

“뭐가?”

“넌 언제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했잖아. 그 꿈을 이룬 거 같아서 부러워.”

내가 과연 좋은 엄마일까. 민호를 잘 키우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말을 삼킨 채 희미하게 웃었다. 준경은 피곤해 보인다며 어서 들어가 자라고 말하며 내 등을 토닥였다.

방으로 들어와 간단히 짐을 풀었다. 라일리가 이따금 와서 머문다는 게스트룸에는 침대와 옷장, 화장대가 갖춰져 있었다. 화장대에는 다이슨 드라이기와 화장솜, 클렌징티슈, 아이리무버까지 놓여 있었다. 화장대 앞에 앉아 클렌징티슈로 얼굴을 닦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12년이 지나도 나이 든 티가 나지 않는다는 준경의 말이 빈말인 걸 알면서도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5

 

준경은 이른 아침 정장을 차려입고 테리와 굿바이 키스를 나눈 뒤 출근했다. 테리는 주로 재택으로 일했다. 나와 민호는 테리가 구워준 토스트를 아침으로 먹고 관광을 하러 나섰다. 준경과 테리의 저녁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민호와 저녁까지 먹고 들어가는 일정으로 움직였다.

아이의 손을 잡고 뉴욕 거리 곳곳을 걸었다. 아이는 잘 걷고, 잘 먹으며 씩씩하게 따라다녔다. 푹푹 열기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서도 불평이 없었고, 악취가 풍기는 뉴욕 지하철을 타면서도 들떠 있었다. 2층 버스를 타고 뉴욕 시내 곳곳을 돌 때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며 웃었다. 핫도그와 베이글을 입안 가득 넣으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여러번 웃었고, 센트럴파크를 걷다가 다람쥐를 쫓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도 이 도시의 매력에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진짜 뉴욕이에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그 장소에 지금 내가 와 있다니, 믿기질 않아요.”

아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 장난감처럼 오밀조밀해진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맨해튼의 풍경보다 아이의 표정을 오래오래 담아두려 한참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뉴욕 정말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엄마.”

브로드웨이에서 라이온 킹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아이는 한동안 자리에 일어서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공연이 끝난 뒤 수백명의 인파에 휩쓸려 타임스퀘어로 나오자, 비보잉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다 접하는 사소한 구경거리에도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보면서 이곳에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뉴욕 여행을 일종의 포상처럼 여기지는 않기를 바랐다. 한국에 돌아가면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민호는 여행을 신나게 즐기면서 그 일은 없었던 것처럼 굴고 있었다. 여행 중간중간 학교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딴청을 피우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여행 일정으로 하루하루 바빴고 준경도 일 때문에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고, 퇴근 후에는 짐에 들러 운동을 한 뒤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생각보다 준경과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준경은 일정이 바빠 미안하다며 주중에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주말에 크루즈를 예약해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내게 준경은 “원래 삼촌 중에 최고는 게이 삼촌”이라며 자신도 민호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을 내어 맛있는 것도 한번 먹자며 뭐가 제일 먹고 싶느냐고 묻는 준경에게 아이는 해맑은 표정으로 “뉴욕스테이크”라고 답했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준경은 그 자리에서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했다. 금요일 저녁에 스테이크를 먹을 거라는 준경의 말에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약속된 금요일 저녁, 레스토랑 앞에서 퇴근한 준경과 테리를 만났다. 준경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고, 테리는 레스토랑에 오는 예를 갖춰야 한다며 하늘색 정장에 보타이까지 매고 나왔다. 석양이 지는 뉴욕 거리에 슈트를 차려입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이 화보의 한 장면처럼 근사해 보였다.

“우리도 저렇게 입었어야 하는 거야?”

“아냐, 여기 그 정도로 대단한 파인다이닝은 아니야.”

준경이 신경 쓰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웃었다.

―실은 준과 데이트하던 시절에 여기 자주 왔었거든. 그러고 나서 안 온 지 한참 됐어. 여기 오랜만에 오느라 한껏 멋을 부려본 거니까 너무 긴장할 건 없어.

테리가 환한 표정으로 준경의 팔짱을 꼈다. 준경과 테리 부부가 앞장서고, 나와 민호가 뒤따라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섰다. 천장에 오렌지빛 샹들리에가 달렸고, 벽면은 나무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해 예약자명을 이야기한 후에도 우리는 한참 기다려야 했다. 우리보다 늦게 온 백인 커플이 1층 자리로 안내받는 모습을 보고 준경이 언제쯤 안내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한번 더 물었지만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우리는 멀뚱히 서서 준경의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식당 벽면에 붙어 있는 미슐랭 마크를 가리키자 민호도 봤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준이라는 이름이 불렸을 때, 자리를 안내해주는 서버와 준경은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준경은 1층의 창가 자리를 가리켰지만 서버는 고개를 저었다.

―저 자리는 이미 예약된 손님이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세요.

―그러면 그 근처 자리로 안내해줘요. 우리는 늘 저 1층 창가 근처에서 식사를 했어요. 지금도 늘 먹던 자리가 비어 있는데 왜 앉을 수 없다는 거죠?

―2층으로 올라가세요. 1층에는 이미 예약이 다 찼습니다.

테리가 달라붙어 준경의 옆에서 함께 따져 물었지만 서버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준경과 테리는 굳은 표정으로 2층 계단을 올랐고, 나와 민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따라 올라갔다. 조용한 분위기의 1층과는 달리 2층은 시끌벅적했다. 서버는 우리를 2층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화장실과 가까운 자리였다.

메뉴판을 집으려는 순간 준경이 내 손을 잡으며 잠깐,이라고 외쳤다.

“그냥 나가자. 이건 아닌 거 같아.”

“왜 그래?”

“지금 주변 안 보여? 모두 동양인밖에 없잖아. 2층 화장실 가까운 자리에 아시안들을 몰아놓고 밥을 먹으라는 게 말이 돼?”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1층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2층 홀은 동양인들로 가득했고, 테이블 간격도 1층보다 좁아 보였다.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주로 들렸고, 간간이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여 들었다.

―미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가자, 준. 그렇지 않아도 여기가 최근 들어 인종차별을 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믿지 않았어. 우리가 자주 방문하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몇년 사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다시는 여기에 오고 싶지 않아.

테리가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직원들이 일부러 듣길 바라며 크게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우리 테이블로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저는 먹고 싶은데…… 배고프단 말이에요. 그냥 먹으면 안 돼요?”

민호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는 자리에 앉은 채 계속 메뉴판을 매만졌다. 나는 아이의 간절한 표정에 마음이 약해졌다. 식당에 가득한 고소한 냄새도 유혹적이었다. 하지만 준경은 이런 대우를 참아서는 안 된다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민호야,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일어나자.”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민호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뉴욕스테이크를 먹는 것이 자신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며 준경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왜 안 되는 거예요?”

“민호야, 이건 인종차별이야. 레스토랑에 돈을 쓰러 가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아시안이고, 아시안들끼리 같이 앉는 게 어때서요? 그냥 스테이크만 맛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옆 테이블 먹는 거 보니 맛있어 보이던데.”

―같은 음식값을 냈는데 내가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먹지 못하는 게 차별이라고. 난 내가 먹고 싶은 자리에서 먹을 권리가 있어. 우리가 데이트하던 자리에서 근사하게 와인을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는데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없다면 나는 싫어. 민호, 우리 집에 가서 스테이크 먹자. 냉장고에 끝내주는 스테이크 고기가 있어. 내가 가자마자 맛있게 요리해줄 테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뉴요커가 구워주는 진정한 뉴욕스테이크의 맛을 느끼게 해주겠어!

테리가 민호를 달랬다.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우버에 오른 민호에게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눈짓을 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준경과 테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움직이며 저녁을 준비했다.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를 손질해 오븐에 굽는 것은 테리의 몫이었고, 준경은 야채를 씻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나는 뭐 할 거 없어?”

키친을 기웃거리며 내가 묻자 준경이 감자를 꺼내주며 말했다.

“그러면 감자 좀 깎아줄래? 매시드포테이토 할 거라.”

“응, 좋지.”

민호도 함께 감자를 깎자고 부르려다가 말았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소파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겠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 식탁에 앉혔다. 준경 부부가 준비한 뉴욕스테이크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민호도 처음에는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가 고기를 몇점 집어먹은 후에는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맛있지? 민호, 많이 먹어.

테리가 민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민호는 대답 없이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씹고만 있었다.

“너무 맛있다. 샐러드도, 포테이토까지 너무 맛있어. 굳이 레스토랑 갈 필요 없겠는걸?”

민호 대신 내가 대답을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고마워, 수영. 그러고 보니 와인을 안 꺼냈네. 이런 날 와인이 빠질 수 없지.

테리가 레드 와인 한병과 와인잔 두개를 꺼내왔다.

―왜 잔이 두개밖에 없어?

―준은 마시지 않을 거니까. 준은 지금 금주 중이야.

나는 준경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준경아 넌 안 마셔? 너 술 끊은 거야?”

학창 시절 술을 꽤 즐겼던 준경이라 이런 자리에서 잔을 받지 않는다는 게 이상해 보였다. 준경은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동안만 안 마시는 거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를 낳으려고 준비 중이야.

테리가 수줍게 말하며 내게 건배를 청했다. 민호가 눈이 동그래지며 준경과 테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요?

―음, 그건 우리가 낳는 건 아니고 아이 엄마는 따로 있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는 거야.

―그게 가능해요?

―응, 가능해. 뉴욕에선 남자들끼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단다. 준, 이렇게 설명하는 거 맞아?

테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준경에게 물었다. 최대한 쉬운 단어를 써서 설명했지만 민호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내가 보기에 민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이 상황 자체인 듯했다.

준경이 민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민호야, 삼촌들이 이상해 보여? 너무 이상하게 보진 말았으면 좋겠다. 게이라도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거든.”

아빠,라는 말에 민호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민호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고, 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준경이 아이를 원하는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라일리에게서 난자를 제공받을 예정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음식이 목에 걸려 캑캑거렸다. 라일리 역시 아기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라일리는 아이의 엄마가 되는 걸까, 고모가 되는 걸까. 혼란스러웠지만 선뜻 물어볼 수 없었다.

“삼촌은 게이인 게 좋아요?”

민호가 흥미롭다는 듯 준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싫고 좋은 게 어딨어, 나는 그냥 게이야.”

“삼촌은 사람들이 게이라고 말해도 기분 나쁘지 않죠?”

“응, 당연하지. 난 뉴욕의 퍼펙트 게이니까.”

“거봐, 엄마. 괜찮다잖아.”

아이가 내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민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았다. 얼굴이 굳은 채 민호에게 준경과 네 친구의 경우는 다르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분 좋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굳이 그 일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민호야, 그만. 엄마는 다른 이야기 했으면 좋겠는데.”

“뭐가요? 삼촌이 괜찮다잖아요.”

“응, 난 괜찮아. 민호는 왜? 뭐가 안 괜찮은 건데?”

준경이 스테이크를 썰며 민호에게 물었다.

“우리 반에도 게이가 있거든요. 게이한테 게이라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근데 걔가 저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어요.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인가?”

준경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친구가 게이인 건 네가 어떻게 알아? 걔가 얘기했어?”

“척 보면 알죠. 그걸 말해야 알아요?”

아이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준경이 아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내가 게이란 사실을 알았어. 그렇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 아는 비밀이었어.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내가 게이란 걸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댔다면? 나라면 그 자식 입을 찢어버렸을 거야.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말이야.”

준경은 자신의 앞에 놓인 나이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준경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 몰라서 나는 아이의 얼굴만 가만히 쳐다봤다. 테리는 세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와인만 홀짝였다. 준경이 다시 나이프를 들자 민호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봤다. 준경은 무심한 얼굴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그후로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접시 위를 오가는 나이프 소리, 그리고 와인잔이 비었다가 채워지는 소리, 그날 밤 식탁을 채운 소리의 전부였다.

 

아이는 방에 들어와 소화가 안 된다며 배를 움켜쥐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화제와 따뜻한 물을 먹이고 아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아이는 침대로 가서 눈을 감았고, 금세 잠이 들었다. 매일 2만보 이상 걷는 강행군에 많이 피로한 모양이었다.

와인을 충분히 마셔서 쉽게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와 나란히 누워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와인을 좀더 마시고 잘 생각이었다. 테라스 문이 열려 있었다. 거실을 등지고 테라스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는 준경이 보였다. 나는 준경에게 다가갔다. 후덥지근한 초여름 밤이었다. 창밖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와 자동차 경적이 끊이지 않았고, 허드슨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간간이 열기를 밀어냈다.

“안 잤어?”

“잠이 안 오네.”

“너는 뭐 해?”

“나도. 술을 덜 먹었나봐.”

“민호는 자?”

“응, 속이 안 좋다고 하더니 소화제 먹고 금방 잠들었어.”

“그래, 다행이네. 내가 너무 무섭게 굴어서 체했나?”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좀 심했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제 겨우 열살이야.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잘 모르니까 제대로 알려줘야지.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나도 알아.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공포심만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나도 요즘 고민이 많아.”

아이가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속상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면 공포로라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똑똑한 녀석이니까 이 정도 해뒀으면 적어도 해야 할 말, 안 해야 할 말 구분해야 한다는 건 배웠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내 베프의 아들이 호모포비아라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베프라는 말이 아프게 나를 찔렀다. 우리 사이를 그런 단어로 정의할 수 있는 걸까.

“베프? 내가 니 베프야?”

“당연하지.”

나는 준경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니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기는 했니?”

“십년 만에 만나도 이렇게 어색하지 않고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는 너밖에 없어.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시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를 만나긴 어려운 것 같아.”

코웃음이 나왔다. 대체 순수한 마음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준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준경은 나를 오랫동안 속여왔을 뿐이었다.

“순수? 나는 니가 순수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정말 꼭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솔직하게 얘기해줬음 좋겠어.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 적어도 나한테는 말할 수 있었잖아.”

준경은 내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테라스 밖 풍경을 바라보며 선 채로 대답했다.

“말하려고 했어. 그런데 말할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나를 믿을 수 없어서? 아니면 너한테 그렇게까지 매달리는 나를 보면서 즐겼니? 나를 바보 만드는 게 즐거웠어?”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사납게 따져 묻는 나를 준경은 슬픈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상상이나 했니? 내가 게이일 거라고?”

“난 몰랐으니까. 니가 말하지 않았으니 몰랐지.”

“단 한번도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한 거잖아.”

“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너는 내가 게이일 거라고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잖아. 혹시 주변에 성소수자 있냐고, 동성애자 본 적 있냐고 내가 물었을 때 너는 한번도 본 적 없다고, 그런 사람들은 네가 자란 시골에는 없다며 서울 이태원에나 있는 거 아니야? 하고 반문했던 거 기억나? 너는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주변에 성소수자가 단 한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네가 어떨 때는 무섭기도 했어.”

“나야말로 소름 끼치네. 나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네 옆에 붙여뒀다는 게. 그럼 미소는? 고등학교 때 미소라는 여자친구 있었다고 했잖아. 그 친구를 떠나보낸 아픔이 너무 커서 누굴 다시 만날 자신이 없다고 해서, 난 그 말을 믿었어. 내가 너무 별로여서 나를 받아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단 그편이 나았으니까.”

“미소를 여자친구라고 말한 적 없어.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랑 사귀었다고만 했지. 미소는 애칭이었어. 진짜 이름은 민수야. 미소가 예뻐서 내가 미소라고 불렀지. 핸드폰에는 ㅁㅅ으로 저장해두고 말이야. 민수는 목사님 아들이었고 바다를 좋아해서 해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어했어. 미소를 먼저 좋아한 건 나였어. 너도 이쪽이라고, 네 마음을 숨기지 말라고 고백도 했었고. 그애가 내 마음을 받아줬을 때, 처음 키스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지. 미소는 내 첫사랑이었어.”

“그럼 미소가 남자였던 거야?”

준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준경과 민수는 일년 넘게 비밀스러운 연애를 이어갔다고 했다.

“미소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연애에 대해 몰래 일기를 써왔던 모양이야. 우연히 그 일기장이 같은 교회를 다니던 형한테 들어갔고, 그애가 게이란 사실은 순식간에 퍼졌어. 좁은 동네에서 미소가 아우팅을 당했을 때 난 무서웠어. 일기장에 별명으로 써놓은 남자친구의 정체가 누구인지 모두가 궁금해하며 평소 미소가 친하게 지냈던 모든 남자애들이 의심의 대상이 됐지.”

“너도 아우팅을 당한 거야?”

준경은 대답 대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는 미소를 모른 척했어. 난 일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었고 전교회장이었는데. 내가 쌓아온 좋은 이미지가 무너지는 게 무서웠어.”

미소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자퇴를 했다. 학교를 그만둔 미소가 이따금 연락을 해올 때면 준경은 공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피했다. 악착같이 공부해 서울로 갈 거라고, 너도 서울로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게 전부였다. 연애보다는 대학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준경은 변명하듯 말했다.

“근데 난 미소가 여자애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실은 그애를 오랫동안 질투했어.”

“그래…… 미안해. 내가 오해하게 만들었어.”

준경은 잠깐 말을 멈추고 테라스 밖을 바라봤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불 하나가 꺼졌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준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날 밤, 미소가 우리 집 앞으로 나를 찾아왔어. 며칠 후면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지. 아버지가 아는 목사님 댁에서 지내면서 다시 공부도 할 계획이라고 했어. 미소가 멀리 떠난다는 건 아쉬웠지만, 그 아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 잘 가라고, 대학에 합격하면 너를 만나러 꼭 미국에 가겠다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그게 내가 본 미소의 마지막 모습이었어.”

“그러고 그 친구랑 헤어진 거야? 여기 와서 다시 만났니?”

혹시 그애도 지금 미국에 있는지 묻는 내 질문에 준경은 고개를 떨구었다. 멀리서 소방차 사이렌이 길게 울렸다. 준경은 그 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말이 없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준경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날 밤, 미소는 혼자 방파제를 걷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었어. 사고사로 처리됐지만, 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알아. 수능을 한달 앞둔 날이었어. 학교에서 미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금기였어. 무슨 정신으로 수능을 치렀는지 모르겠어. 농어촌전형으로 수시모집에 합격한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아마 그 수능 성적으로는 대학도 못 갔을 거야. 도망치듯 겨우 서울로 왔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미소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내내 죽고 싶었어.”

준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우리가 함께 보낸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지만 늘 내게는 곁을 내줬던 준경이었다. 끝내 이뤄지진 못했어도 그와 함께 나눈 추억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해왔다. 좋은 기억들이 모두 누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면, 스무살 때 말했어야지. 대학 시절 내내 그런 상처를 끌어안고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랑 다녔던 거야? 심지어 넌 너무 멀쩡했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랑 있으면 안전했어.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내 정체성을, 그리고 미소를 그렇게 보내버린 내 비겁함을.”

“그러면 끝까지 숨기지 그랬어. 결국 넌 미국 와서 커밍아웃하고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나한테 연락했던 거야?”

“원래는 정말 숨기려고 했어. 가족들과 친구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끝까지 숨기고, 살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군대에서 동성애자 색출을 하더라. 데이팅 앱을 쓰는 군장병들을 찾아내고, 성소수자를 내부 고발하는 창구를 만들어서 나 같은 사람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숨어서 살겠다는 꿈도 가당치 않다는 걸 알았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건 빌어먹을 한국이야. 내가 나인 채로 살아보겠다는 게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래, 지금 넌 네가 원하는 삶을 잘 살고 있어. 결혼도 하고 심지어 아이도 가질 예정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내 앞에 나타나서 이러는 건데? 보란 듯이 성공한 걸 자랑하고 싶었니? 궁상맞게 살고 있는 나를 굳이 여기까지 불러내서?”

“난 그 시절과 화해하고 싶어. 미소를 외면했던 과거를 책망하면서 매일매일 죽고 싶어했던, 그 시절의 나를 이제 그만 보내주고 싶어.”

“그러니까 너한테는 그때도 지금도 너만 중요한 거잖아.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것보다는.”

“정말 미안해, 너를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 너를 생각하면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거웠어. 그래서 늦게라도 너한테 다시 연락해서 용기를 내보려고 한 거야.”

준경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준경 때문에 아팠던 지난날이 떠올라 더 괴로웠다.

“나는 진심으로 너를 좋아했어. 아주 많이. 대체 너한테 나는 뭐였니.”

“나를 살린 사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준경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야. 매일매일 오늘까지만 살고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던 내게 밥은 먹었느냐고 잠은 잘 잤느냐고 너는 항상 물어줬어. 나쁜 생각이 몰려들 때면 꼭 너한테 전화가 걸려왔어. 너랑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면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 수영이 네가 내 곁을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준경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준경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

 

다음 날 아침,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다.

“엄마, 그만 자고 일어나요. 내일이면 우리 한국 가야 하잖아요. 어서 일어나요.”

눈이 완전히 떠지지 않은 채로 일어나 핸드폰을 봤다. 아침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테리와 함께 아침 운동을 다녀오겠다는 준경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준경, 테리 삼촌 둘이 아침에 나가던데 안 들어오는 건 아니겠죠?”

“응, 아닐 거야. 운동 갔다 온댔어. 왜 그렇게 생각해?”

“오늘 크루즈 타는 거 혹시 취소될까봐.”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민호는 어제 일로 준경과 약속한 크루즈를 타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촌이 약속한 거잖아.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엄마는 네가 진짜 신경 쓰고 걱정해야 할 사람은 준경 삼촌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러면 누구요?”

“한국에 돌아가서 네가 상처 준 친구에게 제대로 사과를 해야지.”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이불 끝만 매만졌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며 대들던 예전과는 미묘하게 태도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네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일이 더 커질지도 몰라.”

“어떻게요?”

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학폭위에서 처벌수위가 높아질지도 모르고, 그러면 네가 원하는 국제중에는 원서를 내기도 어려워질 거야.”

그 말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봤다. 나는 조용히 아이의 손을 그러쥐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민호야, 그렇다고 해서 엄마는 네가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는 건 반대야. 네가 준경, 테리 삼촌 같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다시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공포로라도 잘못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준경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문밖에서 준경과 테리 소리가 들려왔다.

“수영아, 우리 왔어. 씻고 준비하고 나가자.”

준경의 노크 소리에 아이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민호 일어났니? 잘 잤어? 배 아픈 건 어때?”

“네, 괜찮아요.”

아이는 준경 앞에 서서 쭈뼛거렸다.

“삼촌한테 할 말 있니?”

“그게…… 오늘 크루즈 타고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가는 거 맞죠? 저도 같이 가도 되는 거예요?”

민호가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준경에게 물었다.

“뭐래, 당연하지. 너 때문에 예약한 건데 당연히 같이 가야지.”

준경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민호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는 11번가 끝자락의 첼시피어스로 향했다. 허드슨 강가를 따라 늘어선 선착장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하늘이 푸르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유람선 타기 좋은 날씨네.”

준경이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테리는 준경이 사랑스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췄다. 민호는 이들의 애정표현에 별다른 반응 없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 채 우리가 탈 유람선을 올려다봤다.

유람선은 허드슨강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빽빽한 맨해튼의 빌딩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햇살을 받은 강물은 부서지듯 빛났고, 선상에서는 흥겨운 재즈가 흘러나왔다. 아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드폰으로 창밖 풍경을 찍었다.

“민호야, 뉴욕 좋아?”

준경이 묻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이 뭐가 좋아?”

“그냥 멋있잖아요. 크고, 화려하고.”

“민호는 크고 화려한 게 좋니?”

“네. 저도 나중에 뉴욕에 와서 살고 싶어요. 삼촌처럼.”

아이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민호야 너 대단하다. 삼촌은 너만 할 때 미국은커녕 서울 가는 것도 무서웠는데.”

“그래도 지금은 미국에 살잖아요. 삼촌은 어떻게 미국에 살게 된 거예요?”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여기서 취업하고 영주권도 따면서 살게 됐지.”

“미국에서 살려면 영주권이 꼭 있어야 해요?”

“응, 영주권이 필요하더라. 트럼프 때문에 그린카드 없이는 취업하기도 힘들어졌어.”

“그건 어떻게 따는 건데요?”

“난 테리랑 결혼하면서 땄지.”

준경이 테리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테리가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나는 미국 가정에 입양됐어. 우리 부모님이 한국에서 누나를, 베트남에서 나를 입양했거든.

테리가 덧붙인 말에 민호는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그린카드를 받으려면 게이랑 결혼하거나 미국 양부모한테 입양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테리는 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면, 다른 좋은 방법이 있지. 바로 게이 가정에 입양되는 거야. 준은 꼭 아이를 낳고 싶다는 입장이지만, 나는 입양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혹시 관심 있니?

장난스럽게 묻는 테리의 제안에 민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흘겨봤다.

“얘 좀 봐. 민호야, 이게 지금 고민할 거리가 된다고 생각해? 너 설마 엄마 버리고 삼촌들이랑 살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엄마랑 헤어지는 건 싫은데 뉴욕에서는 살고 싶으니까.”

아이의 진지한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테리가 물었다.

―수영, 지금 질투하는 거야? 민호는 지금 엄마보다 삼촌들을 더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나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얘가 미국병이 좀 있어. 미드랑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봤거든.

 

코스 요리가 순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수프와 샐러드부터 음식이 차려졌다. 수프를 한 스푼 떠먹은 후 어린잎 채소와 올리브드레싱이 잘 어우러진 샐러드를 천천히 음미했다. 식전주로 주문한 샴페인이 동나자 테리는 레드와인을 한병 더 주문했다.

“민호야 맛있게 먹어. 이건 브레이즈드 쇼트립인데 이것도 뉴욕 사람들이 많이 먹어.”

메인 요리가 나오자 접시를 민호 가까운 쪽으로 밀어주며 준경이 말했다. 민호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고기를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푹 삶긴 쇼트립은 나이프 없이 포크만 갖다 대도 결대로 찢어졌다. 와인을 곁들이면 풍미가 더 좋을 거라며 테리가 새로 나온 와인을 한잔 더 따라주었다.

“음, 너무 맛있는데. 준경아, 너도 한잔만 마시는 거 어때? 와인이랑 먹으니까 진짜 끝내준다.”

“사양할게. 말했다시피 나는 금주 중이라서 말이야. 한방울의 알코올도 허락하지 않고 있어.”

더는 준경에게 술을 권하지 못하고 조용히 와인을 들이켰다. 테리가 내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준은 꼭 자신의 DNA를 남기고 싶나봐. 그것도 한국인 특징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천천히 멀어져갔다.

“난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을 뿐이야. 아빠가 되려면 이 정도 노력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라일리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약속대로 잘하고 있으려나?”

궁금하면 전화를 걸어보자며 테리가 핸드폰을 꺼내 페이스타임을 걸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됐다. 라일리는 친구들과 새벽까지 파티가 있었다며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라일리 너 어제 술 마신 거야?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다음달에 뉴욕에 와서 난자 채취해야 하는 거 몰라? 내가 지금 식단이랑 운동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러기냐고!

준경이 신경질을 내며 소리쳤다. 선상의 다른 테이블에서 우리 쪽을 힐긋거렸다. 놀란 테리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준경, 그만해.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그 정도로는 별문제 안 생겨. 마음 편하게 가져.”

“넌 내 마음 몰라. 내가 지금 얼마나 간절한지. 너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준경의 비난하는 듯한 말투에 마음이 상했다. 유난을 떠는 모습이 꼴사나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친구로서 입바른 소리를 덧붙이려는 나를 막아선 건 테리였다. 테리가 내 입에 스테이크 조각을 넣어주며 말했다.

―수영, 여기까지. 혹시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거냐고 그런 잔소리를 하고 싶은 거라면 그만둬주길. 우리는 이미 그 문제로 많은 대화를 나눴고 아직도 대화 중이야. 그러니까 친구들은 그저 축복과 응원을 해주면 좋겠어. 코리안 스타일의 조언은 사양할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안의 고기를 천천히 씹었다. 고기에서 진한 육즙이 배어나왔다. 준경은 맞은편에서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준경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그외에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앞의 준경이 눈꼴시기 짝이 없었다. 맹목적으로 저 아이를 좋아하던 시절은 완전히 끝났다. 이제부터 준경과 진짜 베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가까워졌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몰려갔다.

“엄마, 우리도 어서 나가서 사진 찍어요.”

민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준경과 테리도 우리를 따라 갑판으로 나왔다. 초록빛 여신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민호와 사진을 찍었다. 준경은 최고의 사진을 남겨야 한다며 무릎을 꿇는가 하면 바닥에 눕기까지 하며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삼촌도 같이 찍어요.”

민호가 손짓을 하며 준경을 불렀다. 준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괜찮아. 난 진짜 이 배경으로 사진 많이 찍었거든.”

“그래도 우리랑은 안 찍었잖아요. 같이 찍어요.”

테리가 사진을 찍어줄 테니 같이 서라고 준경의 등을 떠밀었다. 준경과 나 사이에 민호를 세워두고 셋이서 함께 팔짱을 꼈다.

“하나, 둘, 셋. 김치!”

테리가 한국말로 외쳤다.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테리를 보며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크게 웃어버렸다.

“한국분들이신가봐요.”

잘 차려입은 노부부가 우리에게 넌지시 다가와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아, 네. 어르신도 한국에서 오셨어요?”

“네, 한국말이 들려서 반가운 마음에 알은척을 해봤네요.”

“외국에서는 한국어가 들리면 반갑죠.”

준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들이 아빠랑 많이 닮았네요. 참 보기 좋아요.”

“네?”

내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아니라고 반박하려 들자 준경이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하며 웃었다.

“아이가 저랑 많이 닮았나요? 엄마 닮지 않았고요?”

“그러고 보니 엄마도 닮았네. 셋이 많이 닮았어요. 원래 같이 살면 닮는다고들 하잖아요.”

“네, 두분도 좋아 보이세요.”

노부부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선상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멀어지자 나는 준경에게 물었다.

“왜 아니라고 말 안 했어? 너 원래 틀린 소리 하는 거 못 참는 애잖아.”

“뭘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아니라고 설명해. 그리고 우리 같이 산 거 맞잖아. 일주일 같이 사는 사이 닮아졌나봐. 사진 봐. 되게 잘 나왔지?”

준경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오래전 준경과 나,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함께 담긴 가족사진을 꿈꾼 적이 있었다. 꿈꾸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나는 지금 이 사진이 꽤 마음에 들었다. 뉴욕 삼촌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웃는 민호의 표정이 유독 밝았다. 자유의 여신상을 한바퀴 돌아 나온 유람선은 다시 맨해튼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선 채 점점 작아지는 자유의 여신상을 한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