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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장편소설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떠도는 땅』 『제비심장』 『잃어버린 사람』 『오키나와 스파이』 『무지개 눈』 『간단후쿠』 『딸기 이론』 등이 있음.

stmoninne@daum.net

 

 

 

누가 강을 건너나

 

 

1

 

간다, 내 몸은 간다. 짓무른 가짓빛 살가죽에 온 뼈를 담아 들고 간다. 찢기고 헤진 곳을 짓이긴 쑥으로, 쇠뜨기로, 피딱지로 덧대 깁고 간다. 터져 고름이 흐르는 곳은 부스럼으로 때우며 간다. 아물다 만 상처가 벌어지면 몸니를 바늘땀 떠넣듯 한땀 두땀 떠넣으며 간다.

간다, 내 몸은 간다. 버짐을 얼굴에 눈발처럼 뿌리며 간다.

간다, 간다, 내 몸은 한줌도 안 되는 머리카락을 한올 남김없이 데리고 간다. 머릿니들도, 머릿니가 구슬을 꿰듯 머리카락에 매달아놓은 서캐도 전부 데리고 간다. 눈발처럼 날리는 비듬도 품고 간다.

내 몸은 널뛰기를 해대는 벼룩도 얼러가며 옷에, 살갗에 매달고 데려간다.

내 몸은 두 눈동자도 눈썹 창살에 가둬 데리고 간다.

내 몸은 두 젖가슴도 데리고 간다. 흘러내리는 젖가슴을 부여잡고 데려가려 가파른 가슴팍도 데려간다. 가슴팍만으로 젖가슴을 붙들고 갈 수 없어 복장뼈와 갈비뼈도 데려간다. 번개처럼 푸르스름한 핏줄을 두 젖가슴에 친친 감아 매달고 간다.

내 몸은 으깨진 호두 같은 무릎도 데리고 간다. 두 발이 닳아 없어지면 무릎을 두 발 삼아 가야 하니까.

내 몸은 살이 내리며 납작해져 삽이 된 엉덩이도 매달고 간다. 무릎마저 닳아 없어지면 엉덩이를 두 발 삼아 가야 하니까.

내 몸은 시옷 모양으로 구부러진 팔꿈치도 데리고 간다. 엉덩이마저 닳아 없어지면 팔꿈치를 발꿈치 삼아 땅을 눌러 밟으며 가야 하니까.

간다, 내 몸은 간다, 깨지고 금 간 이도 전부 잇몸에 매달고 간다. 뿌리가 썩어 헛도는 어금니는 혀로 밀어넣어가며.

내 몸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데리고 간다. 내가 가진 거라곤 몸뚱이뿐이다. 몸뚱이가 몸뚱이를 이고 간다. 업고, 안고, 지고 간다. 둘러메고 가다 잡아끌며 간다.

내 몸이 가니까 내가 간다.

내 몸이 가지 않으면 나는 갈 수 없다.

내가 가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가는 것이다.

내 몸은 손가락도 몽땅 가지고 간다. 뼈가 어긋나 뒤틀린 손가락도 빠뜨리지 않고 가져간다. 제비가 부러진 다리를 매달고 날아가듯.

생강나무가 내 몸을 따라간다. 생강나무 그림자도 내 몸을 따라간다. 참새들이 내 몸을 따라가다 흩어진다.

내 몸은 눈을 감고도 간다. 오줌을 지리면서도 간다. 잠꼬대를 하면서도 간다.

 

내 몸은 살아 있을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은 죽지 않았거나 죽지 못했고, 그래서 내 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됐다.

 

내 몸은 강으로 간다.

내 몸은 강물에 몸뚱이를 씻으려 강으로 가는 게 아니다. 내 몸은 강을 건너려 강으로 간다. 내 몸은 몸뚱이를 뗏목 삼아 강을 건널 것이다. 강 건너에 내 딸이 있다.

내 몸은 딸에게 가려, 간다. 내 몸은 죽지 않아서 딸에게 갈 수 있다.

내 몸은 죽더라도 딸에게 가다가 죽을 것이다.

내 몸이 손가락 하나도 버리지 않고 챙겨가는 건 웃옷 앞섶을 풀어헤쳐야 하기 때문이다. 뱃구레가 움푹 꺼져 수제비 반죽처럼 흘러내린 젖가슴을 갈비뼈 위로 떠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젖먹이인 딸의 골무 같은 입에 젖꼭지를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딸이 젖꼭지를 빠는 순간 내 몸은 젖으로 녹아 딸의 입으로 흘러들 것이다. 한근도 안 나갈 내 모든 살, 내 모든 뼈, 내 모든 피, 심장…… 눈동자도 젖으로 녹아 딸의 입으로 한방울 두방울 흘러들 것이다.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무뿌리, 풀뿌리가 쇠고랑 사슬이 돼 내 발을 감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 몸은 발가락에 뿌리들을 칭칭 옭아매고 끌며 간다. 발가락 두개를 절단한 자리에 생겨난 마디에도 뿌리를 휘감고 끌며 간다.

뿌리들이 내 발가락에 끌려가며 땅이 덩달아 끌려간다. 하늘도 마지못해 끌려간다.

 

말린 고사리 뭉치 같은 바람이 분다. 내 몸은 살가죽이 얄팍해져 해골이 비쳐 보이는 얼굴로 바람을 한가닥 한가닥 풀어헤치고 새새에 고여 있는 냄새를 맡는다. 거름 썩히는 냄새, 돼지 분뇨 냄새, 흙냄새, 마른 풀냄새…… 저 산을 넘어가야 강물 냄새가 맡아지려나. 강을 건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강물에 빠져 숨졌다 했는데. 떠내려가지 못한 시체들이 강바닥에 붙어 있다 했는데. 시체가 썩으며 강물도 썩고 있다 했는데. 시체들이 강바닥을 덮었으면 발로 지르밟으며 갈 것이다. 시체가 머리카락으로, 팔다리로 내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면 시체를 매달고 강을 건너갈 것이다.

강이 없으면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강이 없으면 강 건너 내 딸도 없다.

 

나는 내 몸이 강을 찾아가게 둔다. 내 몸이 가야 갈 수 있다. 내 몸이, 몸뚱이가 가야 한다. 내가 믿을 거라곤 몸뿐이다.

내 몸은 딸을 낳고 강을 건넌 걸 잊곤 했다. 잡고 매달린 건 딸의 몸이 아니라 내 몸이었다. 내 몸은 딸의 몸이 뿌리라도 되는 듯 붙들고 매달렸다.

 

저 산을 넘어가면 강이 있으려나, 저 산을 넘어가자.

저 산은 너무 멀다, 너무 높다.

 

가자, 저 앞에 뒹구는 돌멩이까지만 가자.

 

가자, 가자, 저 앞에 잎갈나무까지만 가자.

 

가자, 저 앞에 쇠뜨기무더기까지만 가자.

 

발보다 무릎이 먼저 간다. 무릎보다 어깨가 먼저 간다. 어깨보다 손이 먼저 간다. 손보다 얼굴이 먼저 간다. 얼굴보다 눈동자가 먼저 간다. 눈동자보다 귀가 먼저 간다.

내 몸에서 발이 가장 나중에 간다.

신발은 어딘가에 잃어버렸다. 어차피 터지고 헤져 족쇄처럼 매달려 있었다. 발바닥으로 땅을 밀며 가던 내 몸이 비치적 서며 눈을 뜬다. 사람 말소리가 들렸는데…… 내 입이 잠꼬대하는 소리였을까. 사람 소리가 가장 겁난다. 사람 그림자가 가장 공포스럽다. 사람 눈빛이 가장 소름 끼친다.

 

몸을 떠나지 못하고 몸과 더불어 가는 나는 누굴까. 나는 몸니나 벼룩처럼 내 몸뚱이에 붙어 기생하는 무얼까. 아니면 버짐처럼 내 몸에 흐릿하게 피어난 무얼까. 그것도 아니면 뼛속을 떠도는 메아리 같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한가닥의 희미한 털, 하나의 미세한 땀구멍 같은 걸까.

 

산은 아직 너무 멀다. 산이 저렇게 멀면 산 너머 강은 얼마나 멀까.

 

가자, 가자, 저 앞에 제비꽃 핀 무덤까지만 가자.

 

가자, 저 앞에 구렁이처럼 흐르는 개울만 건너가자.

 

산을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강까지 갈 수 없다. 산을 넘을 수 없다. 돌멩이가, 풀포기가, 나무가, 무덤이, 개울이 내 몸을 산 너머 강 앞에 데려다놓을 것이다.

 

내 딸은 태어났다, 태어나지 않았다, 태어났다,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 딸이 태어난 걸 잊곤 한다. 잊고 싶어서 잊고, 저절로 잊히어 잊는다. 그런데 내 몸은 잊지 않는다. 내 몸은 잊는 게 뭔지 몰라서 잊지 못한다.

내 딸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내 몸이 아홉달 넘게 뱃속에 품고 있었던 건 뭘까. 마을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돼지 피로 순대를 빚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옹헤야를 부르며 잔치를 벌이던 날 밤에 내 몸이 낳은 건 뭘까.

강 동쪽 여자인 내가 강 서쪽에서 딸을 낳은 건 내 몸이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입김을 토하면 얼어 허공에 거미줄처럼 걸리던 이년 전 그 겨울밤, 나는 언니를 따라 강을 건넜다. 그때도 내 몸이 강을 건넜다. 그리고 그때도 내 몸은 가진 걸 전부 몸뚱이에 이고, 지고, 담아 들고, 매달고 강을 건넜다. 나는 강을 건너는 게 뭔지 몰랐다. 강을 건너면서도, 강을 다 건너고 나서도. 뭔지 몰라서 나는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내가 언니와 건넌 건 강이 아닌지도 모른다. 강이 아니면 그건 뭐였을까. 언니는 강에 국경이 있다고 했다. 강의 절반은 강 서쪽에 드넓게 자리잡은 국가의 것이라고 했다. 우리 자매는 강 동쪽에 까치 꼬리처럼 길쭉이 붙어 있는 국가에서 태어났다.

나는 강을 건너며 국경을 보지 못했다. 내가 본 것은 검게 언 강과 강가의 하얗게 언 풀들, 언 강에 깃발처럼 서 있던 왜가리였다. 흰자위뿐인 안구처럼 섬뜩한 달이 강줄기에서 비켜난 곳에 떠 있었다. 광기 어린 정적이 감돌았다. 강 건너 불빛들은 얼어 죽은 가축의 입속에 박힌 이빨 같았다. 강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신발과 옷이 얼었다. 금세 꽝꽝 언 옷이 올가미가 돼 몸을 조여오는데 겨드랑이에 땀이 고였다.

강이 국경이면 강물 전부가 국경일까. 강물 한방울 한방울이. 강가의 나무와 풀들, 강에 사는 물고기들,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바위와 돌멩이 하나하나도. 내가 건넌 건 강이 아니라 언 국경이었을까.

강의 서쪽, 엎어지면 강물에 코가 닿을 만큼 강이 지척인 마을 사람들은 강을 도망강이라고 불렀다. “강을 건너 도망 오는 사람이 많아 도망강이 됐지.” 마을의 가장 늙은 여자는 말했다. 십년 전까지 마을 남자들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이 수영을 했다고. 강 동쪽 경비대 군인들이 총을 멘 채로 강을 건너와 마을 남자들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기도 했다. 보따리 장사꾼들이 강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그녀도 농한기에 담배와 술, 옷을 배낭에 싸 짊어지고 강을 건너가 팔았다. 강 동쪽에 식량 배급이 끊길 만큼 큰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길에 널리자 강을 건너오는 사람이 줄을 지었다. 먹을 걸 훔치거나 구걸하러, 생필품을 구하러,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벌러. 심지어 초소를 지키던 경비대 군인마저 군복을 입은 채로 탈영해 강을 건너왔다고 했다. 군인은 강을 거의 다 건너 뒤쫓아온 군인들에 붙잡혀 끌려갔다.

강에는 강을 건너는 여자들이 있다.

그리고 강에는 강을 건너다 죽은 여자들이 있다.

강을 건너다 죽은 여자들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강기슭으로 떠밀려 올라오거나, 강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강물이 마르면 떠올랐다.

강에서 밤마다 총성이 울리던 여름 어느날이었다. 죽은 여자가 떠내려 왔다. 강물이 줄어들며 여자의 등과 엉덩이, 허벅지가 강물 위로 징검다리 돌처럼 솟아올랐다. 왜가리가 날아와 엉덩이 위에 앉아 있다 날아가곤 했다. 얼굴이 강바닥을 향하고 있어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자의 시체를 아무도 거두려 하지 않았다. 강가 마을 사람들도. 강 동쪽 경비대 군인들도. 서쪽 경비대 군인들도.

서쪽 경비대 군인이 동쪽 경비대 군인에게 소리쳤다. “야, 너희 여자 시신 가져가!”

동쪽 경비대 군인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서쪽 경비대 군인이 강 너머로 돌을 던지며 더 크게 소리쳤다. “야, 네 누이 시신 가져가!”

동쪽 경비대 군인이 눈도 꿈쩍 않자 서쪽 경비대 군인이 또 말했다. “야, 네 딸 시신 가져가!”

동쪽 경비대 군인이 손가락으로 귀만 후벼 파자 서쪽 경비대 군인이 흥분해 소리쳤다. “야, 네 엄마 시신 가져가!”

동쪽 경비대 군인이 돌아서서 오줌을 싸자 화가 난 서쪽 경비대 군인이 화가 나 소리쳤다. “야, 네 마누라 시신 가져가!”

그제야 동쪽 경비대 군인이 심드렁히 대꾸를 해왔다. “강 건너다 죽었으니 내 마누라 아니야.”

 

강을 건너다 죽은 여자는 누구의 누이도 아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마누라도.

강을 건너다 죽은 여자는 이름도 없고, 나이도 없고, 태어난 곳도 없다. 강을 건너다 죽은 여자는 죽은 몸만 있다.

 

딸을 안아들었는데 젖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딸에게 먹이지 못한 젖이 전부 말라버렸으면 어쩌나.

강 서쪽 임시수용소에 있을 때 내 몸에도 강이 흘렀다. 딸에게 먹이지 못한 젖이 고이고 고여 강이 됐다. 내 몸은 눈동자까지 차오르는 강을 어쩌지 못해 출렁였다. 눈곱은 눈가에 맺힌 젖이 뭉친 것이었다. 내 몸은 복도까지 시큰한 젖 냄새를 짙게 풍겼다.

밤이 되면 내 몸은 딸에게 젖을 물리지 못해 울었다. 눈물 대신 젖이 감방 콘크리트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죽어 싸늘히 식은 아기의 입에 젖을 떨어뜨려주듯. 젖 냄새를 맡은 바퀴벌레들이 내 몸으로 모여들었다.

임시수용소에 들어온 지 닷새째 되던 날부터 나는 젖가슴이 아파 울었다. 젖가슴에 고인 젖은 옹이가 돼 젖가슴 박혔다.

면회가 안 된다는 걸 알고도 나는 임시수용소를 떠나던 날 아침까지 딸을 기다렸다.

 

가자, 가자.

 

딸이 내 몸에 다시 젖을 돌게 할 것이다. 딸이 배가 고파 울면 기다렸다는 듯 젖이 돌았다.

딸을 낳고 하루가 지나자 젖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젖가슴이 막 찐 감자처럼 뜨거워지며 젖이 도는 게 느껴졌다. 나는 우는 딸을 안아 입에 젖꼭지를 물려주었다. 해바라기씨만 한 입으로 젖꼭지를 헐렁하게 물고 있는 딸에게 속삭였다. 먹어! 젖꼭지를 물고만 있던 딸이 입술을 오므리며 젖꼭지를 빨았다. 젖가슴이 터져버릴 듯 빵빵하게 차 있던 젖이 흘러나와 딸의 입에 고였다. 딸의 입가에 노란 젖이 고였다. 먹어! 딸이 몸을 떨며 입속 젖을 삼켰다. 젖꼭지를 물려주지 않아도 입으로 젖꼭지를 찾아 물었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도록 젖을 빨고도 젖꼭지를 입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

 

나는 어쩌다 강을 건넜을까. 열여섯살 때였다. 하굣길에 길에서 마주친 군인이 가방 검사를 해야겠다며 날 야산으로 끌고 올라갔다. 아까시나무 밑으로 던져진 나는 까마귀가 여섯번 울고 나서야 군인에게서 놓여났다. 까마귀가 다시 세번을 울고, 머리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야산을 내려오는 나를 마을 할머니가 봤다. 흙 묻은 종아리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느끼지 못했다. 얼마 뒤 나는 문란한 여자애로 소문나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나는 군인이 내 몸에 한 짓이 뭔지 몰랐지만 그 일로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다. 다니던 신발공장이 문을 닫아 인력시장을 전전하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날 때렸다. 겨울이 되고, 어머니는 내게 언니 집에 며칠 다녀오라며 내 손에 여행증과 열차표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날 수치스러워하며 멀리 보내고 싶어했다. 어머니가 당장 나를 보낼 수 있는 가장 먼 곳은 열차로 두시간 남짓 가야 하는 언니의 집이었다. 여행증을 발급받으려 어머니가 당 관료에게 했을 거짓말이 궁금했지만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정부의 허락 없이 거주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언니는 내가 퇴학당한 걸 모르고 있었다. 나는 아까시나무 아래서 군인이 내 몸에 한 일을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언니가 말했다. 강 건너 가자. 언니는 보따리장사로 가족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백수건달인 언니의 남편은 의처증이 있어서 길에서도 언니를 때렸다. 언니는 이혼하고 싶었지만 이혼하려면 인민재판소의 판결을 받아야 했다. 이혼은 혁명의 세포인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로, 둘 다 노동수용소로 보내지는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이혼한 여자에게는 가정을 파탄냈다는 낙인이 찍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는 외국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체포돼 노동수용소에 갈 수 있었다. 갓난아기도 노농수용소에 갈 수 있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한살에 부모와 노동수용소로 가 스무살이 넘어 나온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어느날 마을에서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여자도 강을 건넜을 것 같다. 언니에게는 일곱살 먹은 아들이 있었다. 나는 강을 건너는 게 뭔지 몰랐다. 언니가 살던 집 앞에도 꽤나 큰 강이 있었다. 겨울이어서 강은 얼어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그러겠다고 했다. 언니가 건너자는 강이 어디에 있는 강인지 몰랐지만 그 강을 건너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바라는 것보다 더 멀리 가고 싶었다. 사흘 뒤 언니는 장사를 나가는 것처럼 보따리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언니는 집 앞 강에서 썰매를 타고 있던 아들을 불렀다. 안아주려는 엄마를 뿌리치고 썰매를 타러 도로 강으로 뛰어가는 아들에게 언니가 소리쳤다. 엄마가 꼭 데리러 올게! 언니하고 나는 걸어가다 창고 같은 건물 뒷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짐칸이 천막으로 둘러져 있어서 나는 트럭이 어디로 달리는지 볼 수 없었다. 밤이 돼서야 언니하고 나는 불빛 한점 없는 곳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낯선 남자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몹시 놀랐는데 나보다 더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얼어서 철사처럼 꼿꼿해진 풀을 헤치며 한시간 남짓 걸어간 곳에 강이 있었다. 강 건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전등이 내쏘는 불빛 같은 게 잇따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내 입에서 토해진 입김이 고드름이 돼 속눈썹에 매달렸다. 내가 뒤를 돌아다보자 언니가 말했다.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간다. 나는 언니를 따라 도끼 같은 얼음덩어리로 발을 내디뎠다.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걸 나는 언제 알았을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면 누구 몸일까. 내 몸을 산 남자의 것일까. 내 몸을 구경도 않고 산 남자는 기름개구리다. 땅이 녹고 기름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남자는 자루를 들고 기름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남자는 개구리철에만 부지런했다. 국가로부터 분배받아 부쳐 먹는 밭이 적고 게을러서 남자는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내 몸은 강 동쪽 내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의 것일까. 국가는 내 몸을 가둘 수 있고, 고문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보낼 수 있다. 여차하면 총으로 쏴 죽일 수도 있다. 국가는 내 몸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빼앗기느니 총을 쏴 죽이려 할 것이다.

기름개구리 남자와 국가가 내 몸을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줄다리기를 한다. 한가운데 강이 흐른다. 내 두 발이 강을 넘어가면 기름개구리 남자의 것이 된다. 기름개구리 남자는 억울해 목젖을 떨며 개굴개굴 운다.

 

강이 녹아 풀릴 즈음 나는 기름개구리 우는 소리로 떠나갈 듯한 마을에 있었다. 개흙 냄새를 짙게 풍기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날 구부정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가 바뀌어 나는 열일곱살이었다. 남자가 오토바이 한대 값을 주고 나를 샀다는 걸 나는 나중에 마을 여자에게 들어서 알았다. 그 여자는 자기도 강 건너에서 왔고, 마을의 남자에게 팔려온 처지라는 걸 내게 숨겼다. 마을은 강을 자유로이 오가던 시절에 강 동쪽에 살던 조상이 강을 건너와 농사를 지으며 자리잡은 곳이었고 그 후손들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강 동쪽 사람들이 쓰는 말을 쓰고 그곳 풍습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핏줄은 강 동쪽이지만 국적은 강 서쪽이었다. 나는 그런 마을들이 강을 줄기 삼아 감자가 열리듯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걸 구치소에서 만난 여자에게 들어서 알았다. 남자는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원래부터 강 서쪽 사람이었다.

기름개구리 남자의 집에서 오백 미터만 걸어가면 강이 있다는 걸, 나는 녹아 흐르던 강에 살얼음이 얼 즈음에야 알았다. 남자의 집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나를 때리진 않았지만 내가 달아날까봐 멀리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집 부엌문에서 열세걸음 걸어가면 있는 버드나무까지만 갈 수 있었다. 흙벽돌로 지은 남자의 집은 내가 살던 강 동쪽 집보다 열악하고 더러웠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난방을 하고 음식을 해 먹었다. 종일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한 나는 부엌에서 나와 버드나무까지 걸어갔다 걸어오곤 했다. 그날 나는 버드나무를 지나 계속 걸어갔다. 마을 길이 끊기고 포장된 도로가 나왔다. 도로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놓던 나는 강을 만났다. 강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언니와 건넌 강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니도 강을 건너는 게 뭔지 몰랐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그리고 나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째서 아무도 저 물에 얼굴을 씻지 않는 걸까.

어째서 아무도 저 물에 머리를 감지 않는 걸까.

어째서 아무도 저 물에 흙 묻은 낫이나 호미를 씻지 않는 걸까.

어째서 아무도 저 물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 걸까.

나는 강에서 돌아서다 말고 강 너머로 눈길을 주었다. 거기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언니와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손짓을 했다. 강을 건너라고, 강을 건너지 말라고.

 

꾸벅꾸벅 졸며 발을 놓는 내 입에서 옥수수 낱알이 떨어진다. 손으로 주워 다시 입에 넣고 나서야 내 몸은 옥수수알이 아니라 어금니라는 걸 깨닫는다. 사흘 내내 물 말고는 먹은 게 없다는 걸 깜박했다. 잇몸이 썩은 복숭아처럼 물러지면서 뿌리가 들떠 헛돌던 어금니가 빠진 것이다. 피 냄새가 코로 넘어온다. 내 몸은 어금니를 입에 물고 간다. 입 속에서 구르고 굴러 옥수수알이 될 때까지 물고 가다 삼킨다.

 

내 몸은 울면서 간다. 내 몸은 딸이 보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다. 딸에게 젖을 먹이지 못해 우는 게 아니다. 내 몸은 발이 내디뎌지지 않아서 운다. 쥐가 나 뒤틀리는 팔을 어쩌지 못해서 운다.

죽을 수도, 살아 있을 수도 없던 곳에서도 내 몸은 걸핏하면 울곤 했다.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른 울음은 입천장에서 시작돼 종을 치듯 목울대를 때리다 갈비뼈들을 튕기며 명치로 떨어졌다. 뱃가죽의 주름들을 밀고 당기다 치골을 지나 낭떠러지인 다리를 타고 떨어졌다. 그곳에서도 나는 딸이 보고 싶어서 울지 않았다. 딸에게 젖을 먹이지 못해 울지 않았다. 딸에게 먹이지 못한 젖이 고여 돌덩이가 된 젖가슴이 송곳으로 후벼파듯 아파서 울었다. 눈꺼풀이 떠지지 않아서 울었다.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뭉텅 빠져서, 생리 피가 흥건히 묻은 옷을 빨아 입을 수 없어서 울었다.

내 몸은 그곳을 떠나왔지만 그곳으로 되돌려 보내지곤 한다.

 

가자, 가자, 저 바위까지만 가자.

 

강을 보고 온 뒤로 밤이 되면 강은 구렁이처럼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서 누웠다. 내 몸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강이, 반대편에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나는 남자를 향해 돌아누울 수도, 강을 향해 돌아누울 수도 없었다. 흐르는 건 강이 아니라 내 몸이었다. 내 몸은 남자와 강 사이에 놓여 있는 국경이었다. 나는 남자를 건너갈 수도, 강을 건너갈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강을 건너온 여자라는 걸 차라리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잊으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영영 잊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아무 곳에서도 오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 곳에서도 오고 있지 않으며, 아무 곳에서도 올 수 없고 그래서 아무 곳에도 없는 여자가 될 것만 같았다. 마치 떠도는 혼처럼. 그런데 내겐 몸이 있었다. 굶으면 배가 고프고, 찔리면 피가 나고, 잡힐 수 있고, 팔릴 수 있고, 물어뜯길 수 있고, 던져질 수 있고,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이.

그 강을 나는 경찰차에 실려가며 다시 봤다. 살얼음이 내리던 강은 그사이에 얼음덩어리가 돼 있었다. 나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처럼 붙들려 온 여자들과 이틀 밤을 자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임시수용소로 보내졌다.

“우린 사냥감이야. 경찰은 사냥꾼이고. 우릴 잡으면 머릿수로 계산해 포상금을 받아.”

나보다 하루 늦게 임시수용소에 들어온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강 동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처럼 그곳 말을 잘하던 여자의 미간에는 새끼손톱만 한 흉터가 있었다. 엄마를 따라 강을 건널 때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강바닥의 돌에 찍힌 자국이라고 했다. 여자의 엄마는 처음에 혼자 강을 건넜다. 일년쯤 뒤 두고 온 딸을 데려오려 도로 강을 건넜다.

“몇살 때요?”

“아홉살.”

“지금은 몇살인데요?”

“아홉살.”

여자의 나이는 서른살은 돼 보였다.

딸과 구걸하며 마을들을 떠돌아다니던 여자의 엄마는 딸을 데리고 강 동쪽 남자에게 시집갔다. 아들을 낳아주면 딸을 호적에 올려주고 학교에 보내주는 조건이었다. 남자의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여자의 엄마는 딸의 나이를 아홉살이라고 속였다. 남자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지만 밥을 굶지 않았다. 여자의 엄마가 강을 건너간 건 먹을 걸 구걸하기 위해서였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식량배급이 끊기며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길에 널렸다. 사람들이 먹을 걸 구하려 강을 건넜다. 여자의 엄마도 강을 건넜다. 그때 마흔네살이던 여자의 엄마가 아들을 낳아주었지만 강 동쪽 남자는 여자를 호적에 올려주지 않았다. 열다섯살에 가출한 여자는 식당에서 일하다 브로커가 됐다. 그 일을 하며 돈을 조금 번 여자가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강 건너로 추방되고, 남자는 죽고 없었다. 엄마가 낳은 아들은 친척이 데려가고 없었다.

내 언니와 이름이 똑같던 여자는 배식으로 나온 거무스름한 만두를 먹으며 말했다.

“그곳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는 게 나아.”

“그곳이요?”

“강 건너 우리가 가게 될 곳.”

강 건너로 돌려보내지기 전날 여자는 바지주머니에 숨겨온 비닐을 꼬아 줄을 만들고 그것에 목을 매달았다. 커다란 새가 내 머리 위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 같은 기척에 놀라서 깬 나는 감방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는 그림자를 봤다. 그림자의 일부가 삐져나오다 만 영혼처럼 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튿날 나는 자살하지 않은 여자들과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여자들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다리는 강 위에 떠 있었다. 버스가 다리 위를 달려갈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귓속말을 해왔다.

“전에는 군용트럭으로 실어 날랐어. 강으로 몸을 던지는 여자들이 있어서 버스로 실어 나른다더니 정말이네.”

강 위 다리에서 버스는 구름보다 느리게 달렸다.

 

그곳도 강가에 있었다.

그곳은 언뜻 외진 마을의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우는 농장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막사처럼 생긴 집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비탈진 밭을 곡괭이로 갈고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들은 해를 등지고 밭을 갈고 있었다. 여자 하나가 뒤를 돌아다봤다. 나는 혹시나 여자가 내 언니가 아닌가 싶어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여자의 얼굴은 멀어서 어렴풋했다.

 

임시수용소에 있을 때 나는 혹시나 언니를 만날까봐 불안했다. 새로 여자들이 들어올 때마다 언니가 있을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언니와 닮은 목소리가 들려오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구치소인 그곳에서도 나는 언니를 만날까봐 가슴을 졸였다. 그곳에는 임시수용소에서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강을 건너간 여자들이었다.

구치소의 여자들 중에는 강을 건너자마자 강에서 이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팔려간 여자도 있었다. 여자는 그곳 출신 남자와 아들 하나를 낳고 십칠년을 살다 그곳 경찰에 붙들려 임시 수용소로 보내졌다. 엿새에 걸쳐 강가 수용소에 도착한 여자는 강을 보고는 오열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강 서쪽 남자의 아기를 가져 배가 부른 여자도 있었다. 강 동쪽 여자가 강 서쪽 남자의 아기를 임신하고 낳는 건 민족의 수치이고 반역이었다. 교도관들은 여자를 누이고 배에 분만을 유도하는 주사를 놓았다. 교도관들은 양수를 흘리는 여자를 홀로 두고 나갔다. 교도관들이 돌아왔을 때 태아의 머리가 여자의 가랑이를 벌리며 나오고 있었다. 교도관이 다른 교도관에게 소리쳤다. “데려가 파묻어!” “어디에요?” “아무 데나!” 형을 선고받고 구치소를 떠날 때까지 여자의 배는 꺼지지 않고 요람처럼 부풀어 있었다. 나는 여자가 흐느낌을 삼켜가며 아기가 살아 있었다고 소리 죽여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처럼 언니와 함께 강을 건넌 여자도 있었다. 자매는 서로의 몸을 묶고 강을 헤엄쳐 건넜다. 자매는 길 위에서 생이별했다. 불빛을 내쏘며 자매를 향해 달려오던 자동차가 섰다. 자동차가 떠났을 때 여자의 언니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자동차가 달려간 방향을 향해 걸어가던 여자는 인신매매꾼들에게 붙들려 노래방으로, 술집으로 팔려 다녔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속에 숨어 살며 자식 셋을 낳은 여자도 있었다. 여자는 큰애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돼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왔다. 강 건너에서 온 여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 벙어리 행세를 하던 여자는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붙들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기근 때 젖먹이 아들을 안고 강을 건넌 여자도 있었다. 여자는 아들이 울어 경비대에 발각될 걸 염려해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그곳에는 강을 건너가 오년을 사는 동안 은신처를 마흔번 넘게 옮긴 여자도 있었다. 보따리장수였던 여자는 강을 건널 때 등에 메고 건넌 배낭에 살림을 싸 짊어지고 다녔다. 여자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깨 살림들을 전부 배낭에 담아 짊어지고 살던 곳을 떠났다. 배낭은 터져 기운 곳투성이였다. 여자는 경찰로부터도 도망쳤고, 인신매매꾼들로부터도 도망쳤으며, 매매혼으로 결혼한 남자의 형제들로부터도 도망쳤다. 여자는 말했다. 남자가 불구라는 걸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남자의 형제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여자를 협박했다. 도망가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 병신을 만들어버리겠다. 눈알을 빼버리겠다. 남자의 형제와 친척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마을은 여자에게 또다른 구치소였다. 옥수수밭은 구치소의 철문이었고, 남자의 형제들은 교도관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강을 스무번 넘게 건넌 여자도 있었다. 처음 강을 건너고 여자는 두번 다시 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강을 떠난 여자는 며칠 뒤 강 앞에 있었다. 여자는 두고 온 딸을 데려오려 강을 되건너갔다. 여자가 가서 딸을 데리고 와야겠다고 하니까 같이 강을 건넌 여자가 말했다. 모성이 무섭다고. 딸을 데리고 강을 다시 건너는데 강물이 부드럽게 발목에 감기는 게 불안했다. 열발짝쯤 내딛었을까, 돌연 사나워진 강물이 딸을 휘휘 감싸더니 잡아당겼다. 딸이 비명을 질렀다. 탕 하고 총성이 울렸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강물이 엄마인 여자보다 힘이 셌다. 여자의 손이 잡고 있던 딸 손이 어디로 가버리고 없었다. 여자는 말했다. 모성보다 무서운 게 강이라고.

그리고 그곳에는 강 동쪽에도 남편과 자식이 있고, 강 서쪽에도 남편과 자식이 있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말했다. “내 진짜 남편은 여기 있어. 저기 있는 남편은 내 진짜 남편이 아니야. 자식을 열명, 스무명 낳아도.” 나는 여자가 말하는 여기가 강 서쪽을 말하는 것인지, 강 동쪽을 말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 여자에게 물었다. “자식은요?” “자식은 여기 있는 자식도 진짜고, 저기 있는 자식도 진짜야.”

강 서쪽에서 살려면 그곳 국적이거나 거주허가증이 있어야 했다. 강 서쪽은 강을 건너온 여자들에게 거주허가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강 서쪽 출신 남자와 살며 자식을 낳아도. 강 서쪽에 자식이 셋 있는 여자가 말했다. “엄마라는 말은 거주증이 돼주지 못해. 엄마라는 말은 나라가 아니니까.” 강 서쪽에도, 동쪽에도 자식이 있는 여자가 물었다. “그럼 엄마라는 말은 뭐야?” “그건 그냥 한 많은 노래 같은 거야.” “그럼 강 같은 거네.” “한 많은 노래는 일단 부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죽을 때까지 불러야 해. 그래서 한번 엄마가 되면 죽을 때까지 엄마야.” 강을 여덟번 건넌 여자가 말했다. “강도 끝이 없어.”

그곳에는 남편이 셋인 여자도 있었다. 강 동쪽에 하나, 강 서쪽에 둘. 그 여자는 말했다. “난 살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아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굶고 있는 자식들을 먹여살리려고.” 나는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게 뭔지 몰랐다. 살아남아서 누군가를 먹여살린다는 게 뭔지 살아남는다는 게 뭔지 나는 그곳에서 알았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누군가를 먹여살린다는 게 뭔지는 노동수용소에서 알았다.

 

그곳에서 나는 자백해야 했다. 나는 강을 건너는 게 뭔지 몰랐던 것처럼 자백이 뭔지 몰랐다. 어금니 속 같은 방으로 불려가기 전까지.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나무몽둥이로 내 등짝을 후려갈기기 전까지. 피범벅이 돼 쓰러진 내 발밑에 남자가 버리고 간 나무몽둥이는 굶주린 들개가 이빨로 으깨놓은 뼈였다.

몽둥이질 내내 어금니 같은 방에는 때리는 남자와 맞는 여자만 있었다. 내 몸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자백했다.

‘나는 강을 건넜어요.’

‘남자에게 팔려갔어요. 팔려가고 나서야 팔린 걸 알았어요.’

‘아기가 생겨서 아기를 낳았어요.’

‘딸이요.’

‘태어난 지 두달 남짓 됐어요.’

“집에서 낳았어요.”

고문의 강도에 비해 내 자백은 형편없이 하찮았다. 나는 강을 건넌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딸을 낳은 것도.

자백이 끝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자백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백이 고문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걸. 내 몸에 가해진 고문의 강도를 생각하면 나는 누군가를 살인했다는 거짓 자백이라도 해야 했다.

젖몸살을 심하게 앓던 내 몸이 죽지 않고 고문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죽을 만큼 그러나 죽지 않을 만큼 고문했기 때문이었다. 고문할 몸이 있어야 해서 내 몸은 살아 있어야 했다.

 

내 몸이 서더니 뒷걸음질한다. 한발짝, 두발짝. 등허리가 휘며 뒤로 나자빠지려는 몸뚱이를 발목이 간신히 붙들어 세운다.

저 앞 죽은 나무가 군인으로 보인다. 구치소의 교도관으로, 수용소의 경비원으로. 죽은 나무라는 걸 깨닫고도 내 몸은 멀찍이 돌아서 간다.

 

몇발자국 못 가 내 몸은 또 못처럼 꼿꼿이 선다. 뒷목 핏줄이 팽팽하게 당기며 면도날처럼 날이 선다. 나는 오줌을 지리고 나서야 간신히 뒤를 돌아다본다. 아무도 없다.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간다는 언니의 말을 나는 딸을 낳고 나서야 어렴풋이 이해했다. 일단 강에 발을 들여놓으면 돌아갈 수 없다. 강을 끝까지 건너야 한다. 한번, 두번, 세번…… 강물이 말라버려 강이 없어지지 않는 한 몇번이고 건너야 한다. 몇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강이 또다시 얼었다 녹고, 기름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즈음 딸은 내 몸에 들어섰다. 기름개구리 삶는 냄새를 맡고 나는 첫 입덧을 했다. “애가 애를 가졌네.” 버드나무 아래 서 있는 날 보고 마을 여자가 말했다.

딸을 낳고 나는 내가 강을 건너온 여자라는 걸 잊곤 했다. 경찰은 기름개구리 남자가 집에 있을 때 들이닥쳤다. 나는 남자가 어린애처럼 울며 경찰들에게 애원하는 걸 봤다. 나는 무섭고 징그럽기만 하던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출소 유치장에서 강가 수용소로, 동쪽의 구치소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가자, 가자, 흰나비까지만 가자.

 

눈꺼풀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흰나비가 날아가버리고 없다.

 

가자, 저 앞에 죽은 쥐까지만 가자.

 

내 몸이 죽은 쥐를 내려다보며 침을 삼킨다. 죽은 쥐가 아니라 돌이라는 걸 깨닫고도.

 

앞니 두개가 나란히 빠져 입으로 숨이 토해질 때마다 휘파람 소리가 난다. 날 야산으로 끌고 올라갔던 군인은 내 몸을 놓아주며 휘파람을 불었다. 앞니 하나는 쥐고기를 먹을 때 빠졌다. 내 몸은 쥐의 앞다리에 붙어 있는 강낭콩만 한 살점과 앞니를 맞바꾸었다.

 

쥐고기를 먹은 건 내가 아니라 내 몸이다. 내 몸이 입을 벌리고 쥐고기를 먹을 때 나는 어디 있었나.

쥐를 사냥한 것도 내가 아니라 내 몸이다. 그럼 내 손이 쥐의 꼬리를 잡고 흔들 때 나는 어디 있었나.

 

쥐고기 요리법을 나는 노동수용소에서 배웠다. 굶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들을 장작더미처럼 쌓아 불태우는 화장터가 있던 그곳에서 쥐고기 요리법은 한가지였다. 냄비나 국자 같은 조리도구는 필요 없었다. 불을 피울 나뭇가지와 성냥만 있으면 되었다. 양념은 소금 한가지였다.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양념이 소금뿐이었으니까. 소금을 뿌렸을 때와 뿌리지 않았을 때의 맛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내게 쥐고기 요리법을 알려준 여자는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결심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한 사람이 아니라 한개였다. 그곳에 있던 수천개 중 한개였다.

타고난 쥐 사냥꾼이던 그 여자는 내 옷 반쪽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의 옷 반쪽을 입고 있었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해 나는 입고 있던 블라우스와 바지를 반으로 찢어야 했다. 나는 내 옷 반쪽을 그 여자의 옷 반쪽과 맞바꾸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두 옷을 감침질로 이어붙여 헌옷도 새 옷도 아닌 옷을 지어 입었다. 블라우스에 달려 있던 단추는 옷을 찢을 때 전부 떼어냈다. 그곳에서 탈옥과 자해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단추는 처단 대상이었다. 나는 그 여자를 볼 때마다 그 여자가 입고 있는 게 내 옷 반쪽이 아니라 내 몸 반쪽 같았다. 내 몸 절반이 그 여자의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내 젖가슴 하나도. 그 여자의 목에 나 있던 흉터 자국은 감침질 자국이었다.

과학교사였다던 그 여자가 쥐고기를 먹은 건 오년 노동형을 마칠 때까지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들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노동수용소의 철문을 나가기 위해서였다. 타고난 쥐 사냥꾼이던 여자의 사냥터는 주로 변소였다. 여자는 구더기도 사냥했다. 구더기는 콩을 줍듯 주우면 됐다. 그곳에선 누구나 쥐 사냥꾼이 될 수 있었다. 구더기 사냥꾼도. 그곳에서 쥐, 구더기 사냥꾼의 조건은 배고픔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선 모두 배가 고팠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찐 건 쥐뿐이었다. 여자는 자기가 살아서 나가야 아들도 살아서 나올 수 있다고 믿었다. 여자의 아들은 정치사범을 가두는 수용소에 있었다. 여자는 쥐꼬리까지 남기지 않고 먹었다. 쥐를 두마리나 사냥한 날 여자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것은 수용소에서 여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아들의 소식이었다. 출소할 즈음 나는 반장이 눈짓으로 여자를 가리키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길어야 사흘이겠어.” 반장도 수감자였다. 사흘 뒤 아침 조회시간에 여자는 교도관이 이름을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다는 건 밤 사이에 죽었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반장이 날 눈짓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릴까봐 조마조마했다. “길어야 하루겠어” 하고. 반장이 길어야 이틀이라고 하면 이틀이었다. 하루라고 하면 하루였다. 그건 수용소에서 절대 불변하는 법칙 같은 거였다.

 

내 몸이 서더니 얼굴을 떨군다. 나방의 날개처럼 떨리는 눈꺼풀을 밀어올린다. 발등에 붙어 꾸물거리는 걸 바라본다. 지네 새끼다. 까만 지네 새끼가 인조 속눈썹으로 보인다. 노동수용소에서 나는 인조 속눈썹을 만들었다. 핀셋으로 원사를 한 롤씩 집어 가닥별로 엮은 뒤 뼈대에 붙여 만드는 인조 속눈썹들은 강 너머로 보내졌다. 나는 인조 속눈썹이 완성될 때마다 그것에 내 몸을 매달아 강 너머로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을 들 수 없었다. 나는 내 손가락 하나도 들어올릴 수 없었다. 내 몸은 그것도 모르고 인조 속눈썹에 매달리려 나날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내 몸이 가야 나도 간다. 내 몸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갈 수 없다.

몸이 꿈쩍하지 않으려고 해 애가 타는 나는 어디에 있나? 내 몸속에 있나? 몸 밖에 있나? 몸속도, 몸 밖도 아닌 어딘가에 있나?

나는 뼈가 아니다, 살이 아니다, 피도 아니다. 나는 내 몸속을 떠도는 목소리 같은 걸까?

 

가자, 가자, 저 숲을 지나가자.

 

자작나무 두그루가 내뿜는 흰빛이 소름 끼친다. 숲의 모든 게 내 몸을 고문한다. 빛, 바람, 새소리, 풀…… 빛이 수십개의 바늘로 잘게 나뉘어 눈동자를 찌른다. 바람은 대패가 되어 살갗을 밀어 깎는다. 산비둘기 소리는 드릴이 되어 관자놀이를 후벼파고, 뜸부기 소리는 망치가 되어 뜸북뜸북 뒤통수를 때린다. 풀은 정강이를 할퀴고, 묵은 낙엽 더미는 올가미가 되어 발을 옭아맨다. 나무들은 군복으로 갈아입고 날 가로막아 선다. 총자루로 변신한 나뭇가지로 날 겨눈다.

 

연둣빛을 띤 말랑말랑한 것이 허공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내 눈에 들어온다. 애벌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는 실에 매달려 허공을 휘저으며 조금씩 땅으로 내려온다.

애벌레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듯 몸의 주름을 늘렸다 줄였다 한다.

내 몸이 산벚나무로 손을 뻗어 연해 보이는 나뭇잎 하나를 뜯더니 그걸로 애벌레를 감싼다. 나뭇잎에 싼 애벌레를 땅에 내려놓는다. 애벌레를 싸고 있던 나뭇잎이 벌어진다. 손이 나뭇잎 하나를 또 뜯어 애벌레를 덮는다. 땅에 나뒹구는 돌멩이를 주워 그걸로 나뭇잎을 꾹 누른다. 나뭇잎 아래 애벌레의 몸뚱이가 으깨지는 게 손바닥에 느껴진다.

손이 짓이겨진 애벌레를 나뭇잎으로 싸 입으로 가져간다. 나는 내 몸에게 말한다. 나뭇잎은 만두피이고, 애벌레는 으깬 돼지비계라고.

만두피가 터지며 돼지비계 기름이 흘러나와 입에 고인다.

내 몸이 처음 맛을 본 벌레는 빈대다. 노동수용소에서 자려고 누우면 입으로 빈대들이 기어들어왔다. 나는 좁쌀처럼 굴러들어온 빈대들을 뱉지 않고 씹어 삼켰다.

 

간다, 내 몸은 간다. 애벌레 만두를 먹고 배가 불러 허공에 트림을 토하며 간다.

 

이름은 지어줬을까. 출생신고는 했을까. 남자는 딸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출생신고를 하면 내가 돌아온 걸 경찰들이 알게 돼 내가 다시 강 너머로 보내질까봐. 내 몸은 꼭꼭 숨어 있어야 해서 집에 꼭꼭 숨어서 딸을 낳았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딸은 태어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태어나지 않았으니 딸은 어디에도 없다. 강 서쪽에도, 강 동쪽에도.

 

가자, 가자.

 

내 몸은 태어나지 않아 어디에도 없는 딸에게 젖을 물리러 간다. 딸이 젖을 빠는 동안 내 몸은 젖가슴을 어디에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가자, 가자, 강 건너 딸에게 가자.

 

나는 미쳐도 된다.

내 몸은 미치면 안 된다. 미쳐서 딸 입에 발가락을 물리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나는 죽어도 된다.

내 몸은 죽으면 안 된다. 죽어 검은 젖이 흐르면 안 되니까.

 

나는 강을 건너지 못해도 내 몸은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 있나.

나는 내 몸에 있나.

나는 내 몸 어디에 있나.

 

 

2

 

강이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

 

강이 어디로 가버렸나? 흘러가버렸나? 말라버렸나?

 

강물을 찾아 오르락내리락하던 내 몸은 탄식을 토하며 풀숲에 주저앉는다.

내 몸은 목을 빼고 헐떡이며, 경련하며, 신음하며 강물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내 몸은 미라처럼 누워 눈동자로 날아드는 깔따구를 눈꺼풀로 밀어내며 강물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내 몸은 개구리처럼 사지를 벌리고 엎드려 먹파리에 종아리를 물려가며 강물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강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 몸은 강이 없어도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지 않으면 딸에게 갈 수 없다.

강이 없는데 어떻게 강을 건너나?

 

내 몸이 늘어져 있는 뼈들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쓴다. 주춧돌을 놓듯 발등 위에 발목을 간신히 놓고, 그 위에 정강이뼈를 세운다. 쪼그라든 살가죽을 늘려 벌려가며 뼈 위에 뼈를 차곡차곡 올려 쌓는다. 튕겨나가려는 무릎뼈를 오금으로 끌어당긴다. 꼬리뼈 위에 엉치뼈를 얹고, 돌탑을 쌓듯 등뼈를 하나씩 쌓아올린 뒤, 목뼈를 차곡차곡 놓는다. 머리뼈를 얹고, 뼈들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며 발을 내딛는다. 발이 가니까 발목이 간다. 무릎이, 엉덩이가 마지못해 따라간다. 갈비뼈 위 젖가슴이 둥둥 떠간다.

내 몸은 강물을 찾으러 간다. 강물을 찾아 데려다놓으려.

강물이 버티면 강물의 멱살을 움켜잡고 질질 끌어서라도 데려다놓을 것이다. 둘러업고서라도. 몸뚱이에 친친 감고서라도.

 

무덤만 한 언덕을 넘고, 늘어진 가지가 땅을 쓸고 있는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자 강물이 떠오른다.

강물은 점점 높이 떠오르다 수평으로 흐른다.

 

스무발짝 앞에 강이 있다.

 

내 몸은 강에 다가가지 못하고 강을 바라보기만 한다. 강물 빛깔, 잔물결이 그리는 무늬, 강물에 반사된 빛의 반짝임, 강물에 담겨 떠가는 구름…… 사람들은 강물이 푸르다고 말한다. 강물은 푸르지 않다. 강물은 노동수용소에서 먹은 강냉이죽 빛깔이다.

강은 산 채로 포획된 짐승처럼 철조망 우리에 갇혀 있다.

내 몸은 강에 가려면 철조망을 뚫고 가야 한다. 높이가 90미터는 되는 철조망에는 철사를 꼬아 만든 가시가 촘촘히 매달려 있다.

딸이 내 몸에 들어설 즈음 경비대 군인들이 강을 철조망 우리에 가두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큰비가 한차례 지나간 뒤, 성난 강이 자기를 가둔 철조망 우리를 부수고 무너뜨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경비대 초소와 막사를 눈 깜짝할 새 휩쓸었다고 했다. 익사한 군인들 시체가 강가 논밭으로 떼죽음당한 물고기들처럼 떠밀려 올라왔다고 했다.

강을 건너려면 철조망을 찢고 가야 한다. 몸뚱이로 찢고 가야 한다. 살가죽으로, 뼈로, 입으로, 이빨로, 손발로, 간당간당 붙어 있는 손발톱으로 철조망을 찢어발기며 가야 한다. 전기가 흐른다고 했는데…… 그럼 찢으려 손으로 잡아당기는 순간 몸이 까맣게 타버릴 텐데.

 

내 몸은 강물이 흘러오는 곳을 바라본다. 흘러가는 곳을 바라본다. 강은 끝이 없다. 끝이 없으니 밀 수 없다. 당길 수 없다. 무를 토막 내듯 자를 수도 없다. 실타래 묶듯 질끈 올려 맬 수도 없다. 빙 돌아서 갈 수도 없다. 강 너머로 가려면 강을 건너가는 수밖에 없다.

강이 끝이 없듯 철조망도 끝이 없다.

발뒤꿈치가 들리며 발가락에 힘을 들어간다. 밟고 서 있는 풀섶을 박차고 날아올라 강물로 떨어지려. 내 몸이 들썩이는 걸 눈치챈 철조망이 그물이 되어 출렁인다.

 

저 강이 맞나?

저 강이 맞다.

 

저 강이 정말 맞나?

저 강이 정말 맞다.

 

내 몸은 목이 탄다. 강물을 떠 마시고 싶고, 강물에 몸뚱이를 씻기고 싶다. 강물에 씻어 깨끗해진 젖가슴을 딸에게 물리고 싶다.

 

달무리에 휩싸인 달처럼 희끄무레한 게 강 수면에 떠간다. 수면 위로 떠오를 듯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것이 나는 여자의 얼굴일 것 같다.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아 강에 버려져 있던.

 

강물에 철조망이 떠내려간 곳이 있다 했는데. 강물이 얕아 물장구치듯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곳이 있다 했는데. 강폭이 개미허리처럼 좁아 고무줄 넘듯 폴짝 뛰어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이 있다 했는데.

내 몸은 강을 따라 발을 놓는다.

강폭이 넓어지다 실오라기처럼 가늘어진다. 철조망만 아니면 고무줄놀이하듯 강을 풀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물은 발을 담가봐야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물살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다. 얼마나 차가운지 알 수 있다. 눈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까마귀국 국물 같은 어둠이 내린다. 노동수용소에는 짓무른 배춧잎으로 끓인 국이 배식으로 나오곤 했다. 국물이 거무스름한 국을 여자들을 까마귀국이라고 했다. 그 여자도 강을 건넜고, 동쪽 남자의 딸을 낳았다. 그 여자는 딸 때문에 살아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깜박 떠오른다. 군인이 피우는 담배 불빛이다.

 

호루라기 소리, 총성.

 

분주한 발소리.

 

내 몸이 납작 눕는다. 입을 꾹 다물고 발소리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

 

강물 소리가 내 몸을 가만가만 흔든다.

 

살가죽이 나룻배가 되어 떠오른다. 강을 건너가려.

 

뼈들이 뗏목이 되어 떠오른다. 강을 건너가려.

 

팔이, 다리가 노가 되어 떠오른다. 강을 건너가려.

 

입이 고무 튜브가 되어 떠오른다. 강을 건너가려.

 

젖가슴이 항아리가 되어 떠오른다. 강을 건너가려.

 

군인의 발소리가 강물 소리를 밟으며 다가온다. 군인 발소리가 강물 소리를 밟는다. 짓밟아 으깨놓는다.

 

*

 

내 몸이 철조망으로 다가간다.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는다. 손을 호미 삼아 철조망 아래를 파기 시작한다.

노동수용소에서 철조망 아래 개구멍만 한 구멍을 파고 탈출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설사가 난 것처럼 속여 밤새 들락거리며 구멍을 팠다고 했다.

흙 한줌만 파자.

 

한줌만 더 파자.

 

한줌만 더 파자.

 

한줌만 더 파자, 한줌만 더……

 

내 몸이 구멍으로 몸뚱이를 밀어넣는다.

 

내 몸은 닭둥우리 같은 덤불 속에 숨어 강을 바라보며 밤이 되기를 기다린다. 어둠을 망토처럼 몸에, 몸뚱이에 두르고 건너야 한다.

 

발작적으로 울던 새소리가 뚝 그치고, 강물 흐르는 소리가 멎는다. 강물은 그냥 굳은 시멘트 덩어리 같다. 발을 담글 수 없는. 발가락 하나도.

 

어스름이 내리며 강물 빛깔이 잿빛을 띤다. 흰 상자 같은 불빛이 강물을 따라 강 건너에 드문드문 떠오른다. 한점, 두점, 세점…… 강 동쪽 경비대 초소 불빛이다. 두뼘 간격으로 떠 있는 불빛 사이사이 작은 불빛들이 모여 떠올라 있다.

 

귓속말을 주고받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여자들 목소리다. 군인 목소리는 아니다. 여자들이 강물 앞에 모여 있다. 넷? 다섯? 여섯? 그보다 더 많아 보인다. 강을 건너려는 여자들이다.

여자 하나가 숨죽인 소리로 말한다.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야.”

다른 여자가 울먹울먹 말한다. “난 꼭 살아야 해.”

또다른 여자가 낮게 윽박지르듯 말한다. “숨소리도 내지 말라고 했잖아!”

내 몸은 여자들을 따라 강을 건너려, 여자들이 강으로 들어가길 기다린다.

“건너자!”

한번 건너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물로, 몇번을 건너야 하는지 모르는 강물로 들어간다.

덤불에서 나와 발목을 꺾으며, 무릎을 꺾으며 강물로 다가가는 내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를 나뭇가지가 찔러온다. 발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에 비명이 터져나온다. 내 몸은 피가 흐르는 발을 끌며 떠밀리듯 강물로 들어간다.

 

간다, 내 몸은 간다.

 

총성이 세상을 두쪽으로 가르며 울리고, 놀란 여자들과 아이들이 첨벙첨벙 뛰기 시작한다. 총성이 연달아 울린다.

 

간다, 간다, 내 몸은 가진 걸 모두 몸뚱이에 담아 들고 강물을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