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29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권이내
1994년 전북 군산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
houndcat9@gmail.com
미량의 윤강
마지막 장면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왜 그러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도 제작사로부터 받은 피드백에는 마지막 장면에 관한 긴 메모가 붙어 있었다.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송윤강 부위원장님. 화면에 나타난 그 이름을 보면서 전화를 받아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얼핏 헤아려봐도 그와 연락을 하지 않은 지 오년은 넘은 듯했다. 그 무렵 그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라서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오랜만입니다. 우감독님.”
귀에 댄 휴대전화에서 단단한 탁성이 흘러나왔다. 내가 찍은 영화라곤 거의 모든 단편영화제에서 외면받은 졸업작품이 전부였던 시절에도 윤강은 나를 감독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 호칭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나는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한편의 장편영화도 만들지 못했고 겨우 제작사를 구한 시나리오조차 투자자가 없어 일년 넘게 수정만 지지부진 반복하고 있었다.
“제가 요새 서울 딸네 집에서 지내서요. 감독님 괜찮으시면 얼굴이나 한번 뵈면 어떨까 하고요.”
짧은 통화를 마쳤을 때는 엉겁결에 당장 내일 윤강을 만나기로 약속한 채였다. 제작사에 시나리오 수정본을 보내기로 한 마감일이 모레였다. 작업을 얼마간 미리 해두어서 여유가 좀 있기는 했지만 그 여유도 전부 쓸데를 정해두고 있었다. 출강을 나가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과제로 시청하라고 한 영화를 나 역시 다시 보고 강의록을 정리해야 했다. 주방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도 재질에 따라 분리해두어야 배출일에 맞춰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통화가 된 김에 얼른 만나자는 윤강의 채근을 거절하지 못했다. 예전에도 윤강에게는 빚이라도 진 것처럼 마음이 물러지곤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계획했던 일을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얼른 초콜릿 하나를 입에 욱여넣었다. 단맛과 쓴맛이 입안에서 끈끈하게 뒤엉켰다. 다시 마지막 장면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이 장면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에 관한 제작사의 피드백은 완곡한 어조로 쓰여 있었지만 단호한 명령처럼 읽히기도 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맞는 말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다.
공모며 지원사업에서 탈락할 때마다 내가 좋아했던 장면들을 하나씩 덜어낸 탓에 시나리오는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제 나의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얘기를 쓰려고 했던 이유도 같이 희미해져버린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이라고 해서 그런 것들이 뚜렷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이 장면은 바꿀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수종이 다른 나무의 잎들이 서로 스치는 화면. 짙은 녹색 잎과 연두색 잎, 아니면 둥근 잎과 날카로운 잎이 서로 마찰해도 상관없다. 화각은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 햇살이 떨어지는 순간에 달라지는 채도에도 집중해야 한다. 돔처럼 하늘을 가린 나무의 이파리들 사이로 흘러든 빗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진다. 낙하한 빗방울의 충격으로 땅 위의 작은 알갱이들이 빠르게 튀어올랐다 떨어지는 것은 아주 가까이에서 찍어야 한다. 땅은 점차 젖으며 진한 색으로 물들어간다. 누군가 젖은 흙을 밟으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끝.
*
정원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스태프로 참여한 적이 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기는 했지만 영화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그 시절의 나는 흔들릴 때마다 선배이자 애인이던 정원이 나를 붙잡아준다고 느꼈다. 정원은 위로나 응원의 말을 건네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영화를 같이 봐주거나 자기 현장에 데려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갯벌에서 바지락이며 동죽, 낙지, 미역을 캐내고 잡고 거두는 여자들. 정원은 맨손어업을 하는 여자들을 찍고 있었고 그 주제가 정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끄럽고 찐득한 갯벌 위에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메고 여자들을 쫓아다니는 건 고된 일이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주느라 항상 허리와 발가락이 아팠다. 장화를 신어도 갯벌에 나갔다 돌아오면 양말이 다 더러워졌다. 개흙은 발톱 밑까지 파고들어 잘 빠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 나면 서로의 종아리를 주물러주었고 다이소에서 산 네일큐렛으로 발톱에 낀 흙을 긁어냈다.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면서도 정원은 자기가 하는 작업에 확신을 놓는 순간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역시 정원의 작업에 참여하는 게 좋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 무렵 종종 삼각대를 둘러메고 따라나서며 우리를 도와주던 사람이 윤강이었다. 윤강은 여자들이 바다의 밑바닥에서 가져온 것을 먹고 자란, 그들의 아들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던 양례가 윤강을 낳았지만 그는 갯벌의 모든 여자들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윤강은 나와 정원보다 갯벌 위에서 능숙하게 움직일 수 있었으므로 나는 내심 그의 동행을 기다리곤 했다.
우리가 뒤처져 있으면 윤강은 벌판에 선 여자들을 향해 천천히 가라고 외쳐주었다. 관찰자인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윤강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들은 바닷바람 탓에 소리를 듣지 못한 건지, 낙지를 쫓기 바빠 그런 건지 언제나 대꾸도 없이 바다가 물러난 쪽으로 점점이 흩어졌다. 일부러 윤강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윤강은 우리에게 고개를 돌려 멋쩍게 웃곤 했다. 윤강이 웃을 때마다 내 시선은 그의 목으로 가닿았다. 거기에는 씩 웃는 입모양을 닮은 흉터가 있었다.
“예전에는 백합도 요러고 풍신난 놈 말고 실한 놈이 많이 잡힜다고. 꿀떠덕도 솔찬히 있고잉. 근디 아무래도 쩌그 발전소서 뜨신 물이 밤낮 나온께나 조업량이 많이 줄었제.”
양례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겨우 카메라 앞에 앉히면 한두마디쯤 하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두리번거렸고 이내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정원은 그런 양례를 쫓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쉼없는 움직임과 잰 손놀림이 그가 살아온 내력을 모두 증명하는 것처럼 보여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좋았다고 했다. 나도 촬영을 하며 느낄 수 있었다. 번다한 말을 하지 않는 양례는 모든 장면을 담백하고 선명하게 만들었다.
“저것이 들어선 지 이제 곧 삼십년이 넘어요. 처음에는 우리들도 몰랐지요. 저기서 뭐가 나오는가. 조개가 다 죽는데 사람은 살겠냐 이 말입니다. 그나마도 우리가 몇년 전에 어머니 친정집 있던 요 동네로 이사를 온 건데도 이렇습니다. 전에 살던 마을 쪽 갯벌은 어업권도 다 소멸돼버려서……”
윤강이 갯벌 가운데까지 길게 뻗어나온 곶을 가리키며 어색한 서울말씨로 말했다. 그 너머에 발전소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헤드셋을 쓴 채로 정원의 눈치를 살폈다. 정원이 미세하게 입꼬리를 내리고 있었다. 화각 바깥에 선 윤강의 목소리가 양례의 남방 앞섶에 매달린 마이크를 통해 희미하게 넘어왔다. 정원이 나를 힐끗 보며 입모양만으로 소리 물려? 하고 물었다. 나는 문제될 정도는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 하고 중얼거렸다.
“그려도 보상금 다 받았응께. 인자 거그 가차이 사는 주민도 아니고.”
양례는 아들이 반발할 것을 알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이라는 듯이 읊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고무대야를 끌고 갯벌 위를 걷기 시작한 양례의 뒤를 따라 걸으며 윤강이 한참 나무라는 소리를 했다. 정원은 찌푸린 얼굴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를 접으라는 뜻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양례와 윤강의 뒷모습을 찍었다. 양례와 나란히 걷자 윤강의 걸음도 눈에 띄게 비틀대는 듯이 보였다.
*
삼년 전에. 큰놈이 수술을 혔제. 갑상선암. 처음에는 죽는다 그맀어. 전이가 다 뒤야서 오래 못 산다고. 전대 병원서도 글고 세브란스서도 글고. 배도 그때 팔았어. 돈이 없은 것은 아니었고 지가 인자 뱃일을 더 못 나간께. 지가 벌어서 샀던 것인께 나도 암말 안 혔지. 근디 나중에 본께 그것을 그 대책위다 갖다가 썼다등마. 여그 대책위도 아니여. 저그 갱상도다가. 부산인가 울산인가 거그 사람들이 그때 소송을 힜어. 그 사람들도 암도 걸리고 뭔 노상 병이 난다등마. 이놈이 그때는 지도 어차피 오래 못 산다고 생각이 된께나 그 돈을 그 사람들 재판허는디 보태라고 갖다준 거여. 염병을 허고. 자다가 하품할 일이제. 그 사람들이 이긴다고 지가 살간디.
종당에는 져부렀어. 그 사람들도. 사람이 병 걸리고 죽는디, 누구나 시상에 나서 병 걸리고 죽는 것인디, 그것을 남 탓허고 돈 내노라 글면 어디 나라가 그것을 들어준가. 큰놈도 지가 노상 술 처먹고 담배 먹고 그런 것을 먼저 살던 동네나 이짝 동네나 다들 아는디. 글안혀도 대책위 때미 지원금이며 뭣이며 제때 안 나온다고 욕을 욕을 소쿠리로 먹는디. 인자 그 앞이서 살도 안 험서 부위원장 완장은 멋 헌다고 안 띠고 있는가. 아들 죽을 판이라고 나가 어디 가서 울어보도 못혔네. 그 동네고 이 동네고 이 고장이 모다 저 발전소로 먹고산디. 지 명이 그렇고 지 몸이 그런 것을 누구를 탓헐 건가. 그저 내가 저것을 모질게 낳어서 근다고 가심이나 치고 말제.
양례가 카메라 앞에서 가장 길게 말한 것은 그 장면이었다. 한낮의 여름에, 그늘도 없는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그의 손을 찍고 있던 참이었다. 정원은 현장에서 언제나 그랬듯 무표정하게 양례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나는 정원의 얼굴이 굳어가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와 다투면서 내 말이 비약이라고 지적할 때나, 내가 찍은 장면이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아닐 때 정원의 얼굴에서 은근히 배어나오는 기색을 나는 잘 알았다.
긴말을 마친 양례는 평상 다리를 타고 올라온 잡풀을 쥐어뜯었다. 마당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마다 크고 작은 잡풀이 돋아 있었다. 뜯어내야 할 풀이 한포기 눈에 들자 이내 다른 풀들도 신경이 쓰였는지 양례는 평상에서 엉덩이를 떼고 바닥에 길게 난 틈을 좇아 어정어정 걷기 시작했다. 정원이 양례에게 몇가지 새로운 질문을 더 던졌지만 양례는 오늘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 편찮으신 데 없으세요?”
내가 묻자 양례는 늙었은께 편한 디가 없지, 한숨을 섞어 답하고는 숙였던 허리를 한번 곧게 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정원에게 그 장면을 쓸 거냐고 물었다. 양례가 아무런 맥락 없이 불쑥 꺼낸 얘기였으므로 그 장면을 살리자면 스크립트를 조금 수정해야 했다. 막바지긴 했지만 한두차례 촬영이 더 남아 있어서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진 못 들어가지. 주제랑 딱 붙지도 않는데 너무 큰 얘기야. 양례 선생님이 암에 걸렸던 거면 모를까.”
“그래도 친아들이 아팠던 건데. 본인도 평생 저 위험한 곳에서 일하신 거고.”
“그게 제일 문제야. 발전소 때문에 아들이 아팠다는 걸 양례 선생님이 인정을 안 하시잖아. 그 마음도 흥미롭긴 한데, 역시 너무 복잡해져.”
정원은 피곤한 듯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정원의 머리칼 몇가닥이 코에 간지럽게 닿았다. 발톱 아래에 끼어 있던 개흙이 건조하게 마른 채 다시 밖으로 비어져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정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원은 금세 깊고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고 나도 눈을 감았다.
웃는 입을 닮은 윤강의 흉터가 떠올랐다.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게 되지만 어쩐지 오래도록 보기는 어려운 그 수술 자국. 나는 윤강에 대해 조금 더 생각했다. 양례를 찍던 현장에서 잠깐씩 스치듯 보았던 순간들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마당 한편에 쌓아놓은 피켓이나 현수막 같은 대책위원회의 물품들, 헤드셋으로 조그맣게 넘어오던 음성, 갯벌에서의 걸음걸이 정도가 내게 남은 그의 인상이었다. 정원이 양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것 같은, 확신을 주는 인상은 아무래도 찾기 어려웠다.
정원이 뒤척이며 내게 무게를 더 실어 몸을 기댔다. 너는 비겁하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양례가 촬영 내내 우리더러 아가씨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원은 모른 체했다. 정원이 스태프 쓸 제작비가 모자란다고 우울을 한껏 토로할 때마다, 그 자리들을 결국 내가 채우게 되리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게 곧 정원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동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윤강이 지내는 딸의 집은 내 집과 같은 구에 있었다. 다만 면적이 제법 넓은 야트막한 산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대중교통을 타면 꽤 멀리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윤강의 제안대로 산의 정상부에 있는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온 지 일년이 채 안 된 탓에 봄에는 가본 적이 없는 공원이었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이 산책로를 오갔다. 오월의 숲길은 한껏 좁아져 있었다. 길의 가장자리마다 풀이 돋아났다. 풀들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납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초록으로 덮인 그 자리는 어쩐지 길 같지가 않았다. 길옆에 선 나무들은 새 가지를 뻗고 잎을 틔워 길을 침범하고 있었다. 나는 오가는 사람과 나무 들을 피해 몸을 외틀어가며 춤을 추는 것처럼 걸었다.
조금 전에 통화를 했던 제작사 피디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K-그레타 거윅입니다.
나는 푹 웃음을 흘리며 다시 걸었다. 내 시나리오가 장편영화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된 걸 축하하는 메시지였다. 예정된 것보다 며칠 일찍 공고가 올라왔는데도 곧바로 결과를 확인한 피디는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요란한 목소리로 됐어요! 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우리 동네로 와서 점심을 사주겠다는 피디의 제안을 듣고 윤강과의 약속을 미룰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도 피디의 전화를 받은 순간엔 조금 울었고 지금까지도 벅찬 마음이 남아 있었지만, 그 기쁨의 한편에는 서늘함도 스며 있었다. 예심 심사위원 명단에서 정원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산의 정상부에 다다르자 꽤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운동기구마다 사람들이 붙어 서서 운동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린 동작을 이어가고 있었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도 보였다. 어째선지 나는 그 사이에서 윤강을 금방 찾아냈다. 하늘색 비닐점퍼를 입고 회색 헌팅캡을 쓴 윤강은 벤치에 앉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맨발들이 향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느라 윤강은 내가 바로 옆에 다가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부위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하이고, 우감독님. 일찍 오셨네요. 이야, 어쩌면 더 젊어지셨어.”
나를 보자마자 오른손을 내민 윤강은 손을 꽉 쥔 채로 내 얼굴을 한참 응시했다. 진심으로 아직도 내 얼굴이 어려 보인다고 생각하며 놀라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수년 전 내가 처음 윤강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을 때도 윤강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저도 감독님 영화에 나오게 됩니까? 물었다. 나는 확답을 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면서도 저는 다큐멘터리는 못해요, 하고 대답했다. 그때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윤강의 손이 참 크고 거칠다고 생각했다. 거친 손을 잡으면 다른 건 떠올릴 수 없이 거친 감각에만 이끌리게 되는구나, 하고. 윤강의 손은 여전히 나무껍질처럼 거칠었지만 조금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다.
윤강은 점심은 먹었느냐고 묻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2단 찬합을 꺼내 펼쳐놓았다. 양례가 갯벌에 들고 나가던 것이었다. 위층에 유부초밥이 딱 네개 들어 있었고 아래층에는 애플망고와 사과, 샤인머스캣 같은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유부초밥은 윤강의 점심인 것 같아서 나는 사과 한쪽을 플라스틱 포크로 찍었다.
“밥부터 드셔야지. 유부초밥부터. 다 드셔 그거.”
그렇게 말하며 윤강은 샤인머스캣 한알을 손으로 집어 먹었다. 단단한 과육을 씹는 소리를 싱그럽게 내며 윤강이 물었다.
“감독을 안 하시면 뭐 하고 지내세요, 요새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그냥 프리랜서 편집자라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낸다고 에두르는 것도, 다시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얼마간 들뜬 채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게 느껴졌다. 얼른 유부초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큼한 맛이 살짝 쉬어서 나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어쨌건 그 하나만으로도 입안이 가득 찼고 이제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윤강은 실례되는 질문인가, 하면서 나를 따라 웃었다.
찬합을 비우면서 윤강의 근황을 들었다. 윤강은 딸이 집을 살 때 돈을 보탰으면서도 얹혀 지내려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손자는 벌써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양례가 죽은 지는 삼년이 되었다. 양례의 부고를 못 들었던 터라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 티를 숨길 수 있을 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나는 윤강이 말하는 내내 가벼운 반응만 보이며 유부초밥을 먹었다. 몇개 먹었을 뿐인데 뱃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윤강은 무언가 묻고 싶은 듯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포기하고는 자기 얘기만으로 대화를 꿋꿋이 이어갔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맞은편에 선 나무로 누군가가 다가섰다. 그는 나무둥치에 등을 퍽퍽 부딪치기 시작했다. 합, 합, 하이얏, 하는 이상한 기합 소리도 냈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새어나와서 나는 입술을 오므렸다. 윤강은 기합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심상한 눈빛으로 남자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서울에선 사람들이 너무 빨리 걷는다고, 마주 오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볼 새도 없이 지나쳐버린다고. 하기야 아는 사람이 없으니 살펴봐야 할 것도 없겠지만, 하며 윤강은 그래도 서운하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나무에 등을 부딪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한번 다시 봤다. 동네에서 봤을 법도 하지만 역시 모르는 얼굴이었다.
“병원에 가는 날만 서울에 올라와도 될 건데, 딸이 또 그건 싫다고 하니 진퇴양난이지요. 그래서 낮에는 집에 있지 않고 나와서 이렇게 지인들을 만납니다. 제가 아는 서울 사람들이라 봐야 대책위 도와주던 활동가나 교수님들뿐이지만요. 운동 같이하던 동지들 제하고 서울 와서 만난 지인은 감독님이 유일합니다.”
나는 윤강의 무릎께만 바라보다가 마지막 남은 애플망고를 하나 입에 넣었다. 더운 날씨 탓에 미지근해져 있었고 물큰한 식감은 불쾌했다. 딸기씨 같은 것이 하나 섞여든 듯한 이물감도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손가락으로 훔치자 날벌레 사체가 묻어나왔다. 재발했구나. 그래서 악수하는 손이 가벼웠던 걸까.
“아이고, 너무 저만 얘기를 했네. 참, 유감독님은 어떻게 지내셔요? 전화가 안 되시대.”
“저도 안 돼요. 헤어졌거든요.”
윤강의 어조에서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났다. 그에 비하면 내 대답은 너무 싸늘하게 들렸다. 내가 정원과 연인이었다는 것을 몰라서였는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윤강의 표정이 묘하게 구겨졌다. 한참 뒤에야 윤강은 제가 오늘 실례를 많이 하네요, 애써 말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합, 합, 하이얏, 하는 규칙적인 기합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댔다. 등이 다 부서지겠네. 속으로 읊조리는 찰나에 남자는 엇박자로 박수까지 치기 시작했다.
“조금 걸을까요? 시간 괜찮으신가.”
윤강이 벤치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나는 그만 가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며 윤강을 올려다봤다.
*
인과를 증명해야 했다. 암이라는 결과가 어떤 원인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를. 발전소에서는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이 나왔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암환자가 많이 생겼다. 주민들의 몸에서 그 유해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과로 인정될 수 없었다. 발전소 측은 검출되는 유해물질의 양이 기준치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발전소의 주장보다 많은 양이 누출된 적은 한번도 없었을까. 혹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노출된 시간이 길다면 몸은 서서히 망가지는 게 아닐까. 적은 양에 잠깐 노출되더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되진 않을까. 그것을 조사하고 증명하는 것은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그 미량의 물질이 자기 몸을 망가뜨린 인과를 그들은 밝혀낼 수 없었으므로 소송에서 졌다. 그리고 그들이 졌으므로 윤강도 진 셈이 되었다. 윤강은 그들과 함께 그저 아픈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나 혼자서 윤강이 사는 동네로 갔던 건 딱 한번이었다. 정원의 다큐멘터리 촬영차 내려갈 때마다 짬을 내서 윤강을 인터뷰한 것으로 기초 취재는 거의 마친 상태였다. 취재 내용을 정리하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을 때면 언제고 윤강에게 전화를 걸었고 윤강은 늘 내가 바랐던 것보다 많은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인 시나리오는커녕 줄거리 격인 트리트먼트의 진도조차 빼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파편적인 장면들만 떠오를 뿐 그것을 하나의 줄거리로 엮을 수가 없었다.
정원은 손에 잡히는 이야기가 아니면 버리라고 했다. 나 역시 꼭 윤강의 이야기를 완성해야만 한다는 확신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정원의 말대로 할 수도 있었을 거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꼭 윤강의 목에 그려진 웃는 입 모양 흉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사흘 동안 한줄도 쓰지 못한 채로 나는 무작정 윤강이 사는 곳에 한번 더 가보기로 했다.
윤강은 터미널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집으로 차를 몰려는 윤강에게 이번에는 발전소를 제대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는 생각해둔 사람이 있으신가요.”
낮은 건물이 드문드문 서 있는 시내를 빠져나가며 윤강이 물었다. 평소에도 나는 역할에 맞는 배우를 상상하며 쓰는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배우라니. 내가 떠올리는 장면 속에는 늘 윤강이 있을 뿐이었다.
“저는 그, 한석규 같은 사람이면 좋겠네요. 저보다 한참 어리기는 하지마는. 젊었을 때는 제법 비슷했어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영화 주인공은 한석규였는데 실제 인물이 부위원장님이면 사람들이 이 얘기 다 가짜라고 생각할걸요?”
“그러면 어쩌나. 이문식이가 해야 되나.”
한바탕 웃음이 그칠 때쯤 앞 유리창 너머로 여러개의 회색 돔이 나타났다. 거대한 콘크리트 돔은 그 내부의 설비를 보호하는 격납 건물이었다. 열과 전기를 만들어내는 육중한 기계의 들끓는 소음을 상상했으나 돔 안에 갇힌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윤강은 바닷바람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고요한 해안 근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퀴퀴한 짠내만 나는 곳이었다.
우리는 곧장 발전소 쪽으로 가지 않고 이전에 윤강과 양례가 살던 집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공터에서 오분쯤 걸으면 나오는 동네에 그 집이 빈 채로 남아 있다고 했다. 소유자도 여전히 윤강이었으므로 촬영을 거기서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을 찍어야 할지 정해진 건 없었지만 장소를 보면 뭐가 생각날지도 모른다고 나는 막연한 기대를 걸었다. 집에 가보자는 내 말에 윤강은 한참 어물거리다 마지못한 듯 안내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내 암 가지고 보상금 더 받으려고 뒤늦게 대책위 들어갔다고들 하잖아요. 안 그래요. 보상은 다음 문제고 저것을 완전히……”
“자네, 여그는 어찐 일인가.”
마을 초입의 야트막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을 무렵,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르막을 걷느라 앞으로 굽어졌던 허리를 펴 길 위쪽을 올려다봤다. 목소리는 비탈에 면한 집의 훤히 열린 대문 틈으로부터 나왔다. 대문 안쪽 마당에는 양례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윤강은 노인의 시비조를 피하려는 듯 제대로 대꾸를 하지 않고 땅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나도 윤강을 따라 다시 허리를 굽히고 대문을 빠르게 지나쳤다.
“뭣 헐라고 또 외지 것을 데블고 오냐. 지 애미 보상금은 다 챙기고 내싸둔 집에는 멀라고 또 가냐고. 이번에는 오입질이라도 헐라고 외지서 기집을 여꺼정 데블고 오는 갑지.”
험한 말들이 등 뒤를 따라왔다. 우리가 멀어질수록 노인이 악을 쓰는 소리도 커졌다. 원망과 조롱이 섞인 비난에서는 오래 삭은 것 같은 독한 기운이 났다. 나에게도 쏟아진 그 모욕에 내가 노인을 돌아보려 하자 윤강이 내 팔목을 세게 쥐었다. 집은 다음에 봅시다, 말하며 윤강은 내 팔을 놓지 않은 채 다른 길로 이끌었다. 팔목이 아팠고 숨이 가쁠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노인을 쏘아볼 수조차 없었던 것이 억울했고 그것이 윤강 탓인 것만 같았다. 물론 푹 삭아버린 저 마음들과 부대끼면서 견뎌야 하는 것이 윤강의 일이라는 걸 알았다.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뒤틀렸다. 나는 윤강의 거친 손아귀에서 팔을 빼냈다.
다시 차를 세운 공터로 돌아왔을 때는 두명의 남자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경비원 점퍼를 입은 젊은 남자와 마을 사람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중년 남자는 윤강을 보고는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중년 남자도 젊은 남자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거나 말을 걸지는 않았다. 팔짱을 낀 채 우리를 노골적으로 주시할 따름이었다.
윤강은 사진만 안 찍으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아픈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아프기 시작하고서 금세 죽었고, 누군가는 병에 걸린 채로 시위에 나갔다. 또다른 누군가는 그냥 아픈 대로 살았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아픈 사람들을 돌봤다. 서로를 비난하면서. 아픈 사람들이 자기편에 서길 바라면서.
나는 시야를 가리기 위해 설치된 펜스 위로 빼꼼히 솟은 돔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윤강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을 할수록 윤강의 목소리에서는 더 생기가 도는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주위는 조용했고 흉한 돔 말고는 다른 볼 것도 없었다. 한석규나 이문식이 내 영화를 할 리가 없다. 시나리오는 쓰지도 않은 채였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신인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들이 이런 영화를 할 리가 없었다. 인과를 증명하지 못하는 영화를. 그냥 아픈 사람들이 나올 뿐인 영화를. 그런데도 쉽게 어느 한편으로 치부되어버리고 말 영화를 할 리가 없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시나리오를 한줄도 더 쓰지 못했다. 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어떤 장면들은 계속해서 떠오르곤 했지만 그것들 사이에 개연성을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다. 이야기가 한뼘씩 나를 떠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윤강은 더 자주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를 남길 때도 있었다. 대부분 발전소와 주변 마을에 관한 시시콜콜한 소식이나 신문기사를 전하는 거였다. 윤강이 전화를 끊을 때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윤강이 보내준 기사에는 언제나 공격적인 댓글이 달려 있었다. 비과학, 비합리, 비이성 같은 말들이 대책위를 비난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윤강을 돕고 싶으면서도 그것이 내가 감당하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더구나 영화로 그렇게 하기란 더 어렵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윤강의 편에 서고 싶었지만,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몇주나 전화를 받지 않자 윤강은 종종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편지에 가까운 글이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영화로 만들 만한 장면을 메모해서 보내기도 했고,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발전소와 싸우고 있는지 적어서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런 메시지는 꼭 늦은 밤에 왔다. 그것이 묘하게 집착처럼 느껴졌고, 그 집착이 위험한 수위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윤강이 자신의 손자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적은 글을 받은 다음 날, 나는 몇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윤강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위원장님. 그 영화는 만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윤강은 대꾸가 없었다. 과묵하지 않은 사람의 침묵은 상대에게 더 말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화라는 게 시나리오만 쓴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투자자도 있어야 하고……”
“얼마나 쓰셨는데요? 돈이 필요하면 제가 내겠습니다. 모금이라도 하면 되지요. 우리가 이걸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더 둘러댈 말이 없었다. 윤강이 말하는 그 이유에 대해 나는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실은요. 제가 부위원장님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윤강은 또 길게 침묵했고 이번에는 나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겁니까. 윤강이 물었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
전화가 끊기고 나서 나는 지역 어투가 섞인 그의 말을 오랫동안 곱씹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죠,라는 말은 영화를 못 만드는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었을까, 나를 비난하는 뜻이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나는 천천히 윤강을 잊어갔다.
*
찬합 가방을 가볍게 흔들며 앞서가는 윤강의 등을 따라 나도 천천히 걸었다. 정원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축하해 의민. 지원사업 최종까지 됐더라. 혹시 마음 쓸까봐 얘기하는 건데 난 제목밖에 못 봤어. 나한테 배정된 심사작이 아니라서 본심에 올린 건 다른 심사위원이야. 네 시나리오가 가장 좋았다고 그 심사위원이 그러더라.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어.
묘하게 끈적한 말투로 은근히 선을 긋는 건 여전하네. 속으로 정원을 조금 비꼬는 생각을 하며 나는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 얘기를 쓸 용기를 못 냈을 거라고 나도 조금은 끈적한 말을 덧붙였다. 양례가 죽은 것을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는지, 윤강의 전화는 왜 받지 않는지 물으려다 말았다. 정원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누굴 잃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니까. 양례 생각이 날까봐 윤강의 연락도 피하는 중일 거였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 넌 결국 그 이야기를 만드는구나. 나도 보고 싶네. 기다리고 있을게. 잘 지내.
윤강은 나보다 반걸음 앞선 걸음으로 천천히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강이 조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멜로디였다. 탁성의 허밍이 어딘가 불안정하게 들렸다. 이따금 새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조금 더 들으면 어떤 노래인지 알 것도 같았는데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다다라 윤강은 흥얼거리기를 멈추었다. 길목에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며칠 뒤부터 공원 환경 조성 공사로 출입이 제한된다는 구청의 공지가 적혀 있었다. 윤강은 안내판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그만 헤어질까요. 만나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우감독님.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윤강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내게 먼저 내려가라고 했다. 공사가 길어지면 자기는 여길 다시 오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 황톳길을 한번 걸어보고 가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윤강의 웃는 입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같이 걸어요.
맨발이 축축한 흙에 미끄러지며 얕게 파묻혔다. 한발을 내디딜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알갱이들이 피부에 미세하게 마찰했다. 지면에 발이 닿는 촉감이 달라졌을 뿐인데 걸음이 어색해졌다. 이 길을 걸으면 무언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인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옆에 선 윤강의 표정을 슬쩍 살폈지만 윤강은 그저 입꼬리를 올리고 자신의 맨발을 내려다보며 걷고 있었다.
내가 바짓단을 더 걷어올리자 윤강도 나를 따라 했다. 윤강의 종아리는 황톳빛과 거의 똑같았고 내 종아리는 그에 비해 너무 하얗게 보였다. 황톳길은 딱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만큼 좁았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면 내가 윤강의 등 뒤로 비켜났다. 윤강의 등 뒤에선 짠내가 났다. 소화는 좀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말하자 윤강의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다.
연두색 이파리 하나가 날아와 황톳길 위에 떨어졌다. 앞에 선 윤강이 허리를 굽혀 나뭇잎을 주웠다. 얇은 비닐점퍼 위로 강마른 등의 곡선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내가 윤강에게 노출되었던 날들이 있었다. 아주 미량이었고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 정도로는 어떤 이야기도 될 수가 없었다.
S#○○. 산 정상의 공원 (낮)
의민, 가쁜 숨으로 공원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본다. 벤치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윤강.
의민, 윤강을 발견하고는 역시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윤강에게로 간다.
의민
오늘도 나와 계시네요. 축하드려요.
윤강
고맙습니다. 덕분이에요.
윤강, 의민에게 손을 내밀어 힘차게 악수한다.
윤강
기념으로, 나 좀 찍어주겠습니까?
의민, 윤강을 향해 휴대전화를 든다. 윤강은 막상 어색한 듯 머리를 매만지고 자세를 고쳐 앉지만 굳은 표정은 풀리질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합, 합, 하이얏, 하는 기합 소리 들린다.
윤강, 그 소리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의민은 그 얼굴을 여러장 찍는다.
카메라, 두 사람의 발을 비춘다. 맨발들에 얼룩덜룩하게 흙이 말라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