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AI 시대, 새로운 복지가 필요하다
최시현 (崔時賢)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저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공저서 『엄마도 아프다』 등이 있음.
윤홍식 (尹洪植)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저서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이상한 성공』 『왜 불평등이 문제일까?』, 편저 『평화복지국가』 『우리는 복지국가로 간다』 등이 있음.
장지연 (張芝延)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요 논문으로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돌봄 위기의 생생한 기록, 그리고 남은 질문」 등이 있음.
차지호 (車智浩)
제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미래전략사무부총장, 국제 보건학자·미래학자.
최시현(사회) 『창작과비평』 가을호 대화에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AI 기술의 급격한 변화 속에 경제와 사회의 불균형이 심화하며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방치할 경우 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할 뿐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에도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기술변화와 양극화를 둘러싼 현상황과 쟁점을 진단하고,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사회정책을 탐색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에 재직 중인 윤홍식입니다. 2000년대까지는 젠더 관점에서의 가족정책을 연구하다가 이후 복지국가에 대한 연구로 범위를 확대했습니다. 최근에는 복지가 단순히 재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 및 성장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 생산과 분배를 함께 바라보는 틀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대안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저의 핵심 화두입니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의 장지연입니다. 저는 25년여간 노동연구원에 재직했는데요. 처음에는 여성노동 연구로 시작했고 이후 고용보험 관련 연구도 맡게 되었습니다. 고용보험 연구가 결국 사회안전망에 대한 연구이기에 자연스럽게 사회안전망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기술변화, 특히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AI의 고용 영향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 대안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많이 받고 있어서 고민이 깊습니다.
차지호 저는 22대 국회의원 차지호입니다. 난민학과 국제보건학을 공부한 뒤 인도주의 활동가이자 의사로서 국제적 분쟁 지역이나 불평등이 심각한 지역에서 활동했고, 주로 해당 지역들의 건강위기 결정요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건강문제는 정치적·사회적 결정요인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데, 아무리 외부의 지원이 투입되거나 천연자원이 존재한다 해도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반대되는 개념이라 할 인간지능(HI, Human Intelligence) 시스템, 그러니까 인적 역량과 교육 기반이 너무나 취약하다는 의미인데요.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쉽지 않은 이러한 HI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역으로 AI 기술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AI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이 이끄는 시스템 전환을 좀더 포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국회에서도 그 분야에 집중해 일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전환의 속도와 ‘노동 없는 생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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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기술변화가 사회변화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의 방식과 의미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이 커지는 중입니다. 현시점에서 AI 기술이 노동과 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차지호
차지호 제가 주도적으로 관여한 정부 정책이 ‘AI 기본사회’를 디자인하고 구상하는 일이었습니다. AI 기본사회는 AI 기술의 공공성과 보편적 접근성을 강화해,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나라’를 넘어 ‘AI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포용적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그 구상을 짤 때 가장 크게 염려한 부분이 노동문제였습니다. AI 기술로 인해 앞으로 ‘노동 없는 생산’으로 갈 것이라는 추세는 명확합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할 직업군이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자본주의체제에서 노동 없는 생산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소득이 없으면 소비를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동차 생산시설이 로봇으로 대체되어가지만 “로봇은 차를 사지 않는다”고 했는데(「“아틀라스, 아반떼 만들 순 있어도 살 수는 없어” 노동장관이 AI발 공황 우려한 이유」, 한국일보 2026.3.19) 딱 맞는 표현입니다. 고용-피고용 관계로 소득을 창출할 수 없을 때 자본주의 시장 자체가 붕괴해버리는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AI 기본사회가 더욱 필수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하는데, AI 기술을 선제적으로 활용해 의료공백과 교육격차를 메우고 위기가구가 발생하기 전에 개입하는 정밀 복지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 없는 생산이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 텐데, 과도기인 지금 대응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고민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장지연
장지연 그 논의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시간’이라는 축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년 뒤에 가능한 일, 30년 뒤에 가능한 일을 모두 ‘장기적으로 일어날 일’로 묶으면 답을 내놓기가 어렵습니다. 의원님 말씀처럼 지금은 과도기이고 이것을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이행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요컨대 일자리가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저는 ‘급박한 일’과 ‘중요한 일’의 구도로 표현하곤 합니다. 급박한 일은 눈앞에 등장하는 불평등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이고, 중요한 일은 장기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미래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작고 빠르게, 하나는 크고 천천히 도는 두가지 톱니바퀴를 함께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차지호 그런데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지 않습니까. 모 IT기업의 인사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기존 인력 8천명 가운데 15%만 남겨도 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더군요. 앞으로 범용인공지능(AGI)의 등장과 피지컬 AI의 가속화로 빠르면 10~15년 안에 노동 없는 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오리라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Sam Altman)의 전망도 그러합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노조가 없는 고소득 직종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청소노동과 회계업무를 비교해보면, AI 기술로 대체하기에 더 쉬운 쪽은 회계업무입니다. 인건비가 높은 직종이면서 기술적으로 대체가 용이한 회계사·변호사·의사 등이 먼저 AI 기술로 대체될 겁니다. 지금은 기술이 전체 노동생태계를 바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고, 기존의 제도나 경제·노동·기업 시스템의 강력한 저항도 있기 때문에 변화가 더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변화는 순식간에 극도로 몰아칠 거예요.
장지연 기술적 양상을 보면 AI가 사무직이나 일부 전문직의 직무부터 대체할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현재 통계상으로 잡히는 것, 당장 사라지고 있는 일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대표적으로 콜센터입니다. 제가 급박한 일과 중요한 일의 두 축을 말씀드린 까닭입니다. AI는 기본적으로 ‘생산성 평준화 기기’이기 때문에 비숙련층에 유리하게 작동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혹은 이제 막 진입한 청년층이 가장 먼저 무너지고, 기존 자원을 가진 중견급 이상의 역량은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벌어집니다. 기술 자체의 본질적 특성과 별개로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생산성이 평준화되는데 왜 청년층이 가장 먼저 무너지느냐 하면 일자리 감소, 진입단계에서의 학습기회 소멸, 살아남은 기존 인력의 임금 상승이라는 세가지 요인 때문이 큽니다. 세번째 요인 관련해서는 특히 한국의 연공·경력 중심 고용 관행이 재직자를 보호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의 조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청년 진입자에게 충격이 몰립니다. 불평등을 심화하는 이러한 요인들에 대한 대응이 시급해요. AI가 노동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세대균열, 계층균열, 업종균열의 측면에서 살펴야 하는데 이때 단기적 변화와 장기적 전망을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고, 그러나 미래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느라 단기 대응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겁니다.
윤홍식
윤홍식 한편으로 이렇게 질문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AI를 둘러싼 보편적 예측이 ‘한국사회’라는 구체적 현실에서는 어떻게 실현될 것인가? 비교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핵심은, 보편적인 수렴현상이라 해도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AI로 인한 생산성 증대나 직무 대체에 대한 우려는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당장 통계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보편적 전환 속도를 감안해서 미래 예측을 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고요. 하지만 제가 AI를 둘러싼 정책적 대응을 보면서 갖는 의문은 과연 보편적 기술의 변화가 ‘한국사회의 제도적 필터’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특수하게 작용할지에 대한 답이 전문가, 정부와 정치권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어떤 구조로 생산하고 분배하며 어떤 정치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 어느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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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최시현 AI가 가져올 변화는 결국 노동의 양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 자체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기술의 종류와 속도까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문제인데요. 앞서 AI 전환을 둘러싼 논의에서 중요한 일이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한국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진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양극화입니다. 지표상으로도 양극화가 심화하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고, AI로의 전환이 양극화를 가속화하리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양극화는 어떤 수준이라고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소득·자산·지역·세대 등 양극화의 여러 양상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장지연 한국의 양극화가 지금 어느 수준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가 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가령 소득불평등만 해도 시장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 등 시장활동을 통한 소득)과 처분가능소득(세금납부액과 복지지원금 등 정부의 재분배 기능이 개입된 뒤 실제 사용가능한 소득)의 지표만 들여다본다고 답이 나오진 않거든요. 다른 OECD 국가들과의 종적인 비교가 필요하고, 한국 내의 시점별 변화 추이에 대한 횡적인 비교도 필요하죠. 시장소득 불평등의 경우 다른 나라와의 비교 관점에서는 양호한 편이지만, 한국 내 10분위배율(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시장소득)의 격차는 변화가 없거나 나빠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처분가능소득의 경우, 한국의 소득재분배율 개선율은 OECD 평균인 32%에 한참 못 미치는 18%밖에 되지 않지만, 최근 추세로는 분명히 개선되고 있습니다(2013년 7%→2022년 18%). 즉 양극화 문제가 당장 큰일이라고 과장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고 낙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거죠.
최시현 최근 더 뜨거운 화두는 자산불평등 같습니다. 기존의 소득불평등 지표로는 포착하지 못했던 자산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복지 분야의 대응이 이루어져온 지점과 실제 자산격차가 발생하는 지점 사이에 어떤 어긋남이 있는 것은 아닐지 싶기도 합니다.
윤홍식 장지연 선생님의 말씀처럼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지니계수를 측정한 소득불평등 지표는 지난 10년간 낮아져왔습니다. 그래서 자칫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지표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지표여서 절대적 금액 지표로 치환해서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령 100만원 벌던 사람의 소득이 1억원이 되고, 1만원 벌던 사람의 소득이 100만원이 되면 두 사람 다 소득이 100배 늘었기 때문에 지니계수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금액의 격차는 99만원에서 9900만원으로 크게 벌어지죠. 절대 격차가 커지면서, 상위층의 자산 축적이 가속화됩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한국은행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토대로 소득 10분위 분석을 진행해보았는데, 상위 10분위와 바로 아래 상위 9분위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그리고 넘을 수 없는 간극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2011년 3794만원→2024년 5476만원). 그에 비해 9분위와 8분위의 격차는 그만큼 크게는 증가하지 않았고요(2011년 921만원→2024년 1547만원).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는 미국을 ‘2:8 사회’라고 진단했지만, 한국은 ‘1:9 사회’, 정확하게는 1:8:1에 가깝습니다. 최상층과 최하층과 그 사이의 중간층 간에 큰 격차가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격차가 공고해지면서 과거와 달리 계층간 이동이 현격하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세습 자본주의’ ‘세습 중산층’이라는 개념도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핵심은 절대적인 소득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2010년대를 지나면서 자산불평등으로 전이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불평등은 다시 소득격차를 확대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아마도 이 구조적 격차가 향후 한국사회에서 계층갈등이나 기회의 공정성을 둘러싼 가장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지연 ‘경로가 닫힌 것’이 큰 문제입니다. 노동시장에서부터 근로소득으로 인해 큰 격차가 발생하는 구조가 그대로인데다가 더 중요한 문제는 소득이 자산 형성의 토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산격차의 확대는 거의 전적으로 부동산가격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부동산이 순자산불평등 기여도의 87%를 차지합니다(강신욱 「한국의 불평등 현황과 과제」, 국민경제자문회의 발표자료, 2026.2.25).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두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하나는 부동산 보유자와 비보유자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소득을 모아 자산 축적에 진입하는 길이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세대균열로 다시 이어집니다. 청년 가구주의 순자산격차는 2016년 이후 계속 벌어져왔고, 젊은 세대에서 불평등의 최대요인은 소득이 아니라 자산입니다. 일해서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생기는 것이죠.
다만 여기서 저의 한가지 고민은 국제적 비교 관점에서는 한국의 자산격차가 특별히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자산불평등에 대해 훨씬 민감하고, 국민 체감도 굉장히 나쁩니다. 왜 그런가를 설명하기 위한 제 가설은 두가지인데요. 하나는 스웨덴·핀란드처럼 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경제적 압박이나 비교를 덜 느끼고 남의 자산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서구 OECD 국가들의 자산불평등은 수백년에 걸쳐 이어져 누적되어온 것이지만, 우리는 최근에 급격히 변하는 과정이라 상처가 더 크다는 점이고요.
윤홍식 선생님의 말씀을 다른 식으로 표현해볼 수도 있습니다. 첫째로 서구는 2차대전 이후 경제발전과 공적 복지 확충이 같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자산 축적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산이 공적 복지를 대신해왔습니다. 자산이 복지의 ‘기능적 등가물’이 됐다는 뜻인데, 경제성장을 통해 이루어진 자산의 축적이 사회경제적 위험에 대응하는 사적 안전망 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자산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의 윤리적·도덕적 문제입니다. 유럽은 오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신분질서와 계급질서가 고착된 데 비해 한국은 ‘자산 형성과정이 도덕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저 사람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인데 저 사람은 운 좋게 투자(또는 투기)에 성공해 상위계층을 선점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한국 중상층의 대표적 자산 축적 수단인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자산을 형성한 계층에 대해 우리 사회가 도덕적·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중상층은 (명목적일지라도)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정당성을 공동체 기여를 위한 가치추구에 두지만, 한국 중상층에 어떤 가치규범이 있나요? 물질주의, 소비주의, 능력주의죠. 1960년대 이래 한국사회의 중상층, 자산가들은 도덕적 헤게모니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래서 중상층이 쌓아올린 자산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훨씬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지호 말씀을 들으면서 염려되는 점은 AI 전환이 진행될수록 근로소득의 비중이 줄고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중요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AI로 창출된 이익을 사후에 세금으로 얼마나 환류시킬 것인가뿐만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생산체계에 사회가 처음부터 어떤 권리와 지분을 가질 것인가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 생산에는 민간의 자본과 혁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가 축적해온 지식과 데이터, 공공 연구개발, 에너지와 통신 같은 공동의 인프라도 투입됩니다. 그렇다면 AI가 만들어내는 막대한 생산성 증가에 대해 사회가 일정한 권리를 갖는 것은 단순한 재분배를 넘어 생산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AI의 공적 소유, 자산불평등의 해법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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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양극화의 심화 속에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점점 닫혀가는 상황을 짚어보았고, AI에 대한 사회의 권리와 지분 논의가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도 제기되었습니다. 일종의 AI 공적 소유에 대한 구상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차지호 제가 말하는 공적 소유는 AI 기업을 국유화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AI라는 새로운 생산체계에서 사회가 어떤 권리와 지분을 가져야 하는지를 다시 정하자는 이야기죠. AI는 기업의 자본과 기술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 결과물들과 전력망·통신망 같은 사회적 인프라 위에서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그 생산성의 일부가 사회로 돌아오게 만드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공공 펀드가 일정한 지분을 갖는 방식도 있을 수 있고, 이익 공유나 로열티, 조세 등의 방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의료·교육·돌봄처럼 삶의 기본 영역에서 필요한 일정 수준의 AI 역량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지능’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도 공적 소유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일은 지금 당장 하나의 제도를 결정하는 것이기보다 우선 논의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윤홍식 자본주의에 반대했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와 사회화를 주장했지만, 역사적 현실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즉 생산은 시장에 맡기고 그 결과를 재분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역사적 복지국가와 같은 방식으로 AI 시대에 소유의 집중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2차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복지국가 황금기의 재분배 모델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참여를 전제하고,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노령·실업·질병 등 사회경제적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된 것이거든요. 그러나 노동의 질과 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시대에 같은 방식으로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AI 시대에 생산수단에 대한 공적 소유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사회주의와 같은 국유화는 아닐 테고, 인류가 걸어보지 않은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도 AI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분을 기부하게 해서 국민투자기금을 조성하는 ‘AI 국민배당’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 같고요. 한국사회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과제인데, 한가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에게는 소수 지주에게 독점되었던 농지를 유상매입해서 농민에게 유상분배함으로써 생산수단을 재분배한 농지개혁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해방 직후 전체 농가의 80~90%가까이가 소작농이었는데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인 농지의 재분배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이후 성공적인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AI 시대의 생산수단이 어떻게 분배되어야 한국사회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지를 고민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지호 기계가 생산성을 높이고 인력을 대체하던 자본주의 초기에 맑스가 맞닥뜨린 고민과 지금의 상황이 확실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1857)에서 말한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 즉,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교육·지능의 총합이 지금은 AI라는 시스템을 통해 물질화되고 있는데요. 물질화되고 있다는 건 개입 가능성도 높은 시기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기술적으로 보면 흥미로운 점이 앞으로 AI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시점까지 오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AI는 인류가 만들어놓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만들어졌지만, 피지컬 AI는 다릅니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자연에서 직접 정보를 감각하고 취득하며 그것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생산구조 자체가 바뀌는 거죠. 그와 동시에 앞으로 지능체계의 경쟁은 고도화된 ‘단독 AI’, 그리고 AI와 인간이 결합한 ‘커넥티드 인텔리전스’(CI, connected intelligence)의 경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결합한 CI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노동자의 소득과 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이 지능 자체를 사회 공공 인프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AI를 산업간 경쟁이나 국가간 경쟁의 도구로 보기보다 ‘공공지능’이라는 형태로, 일종의 ‘지능 인프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 속도보다 AI의 전환 속도가 훨씬 빠르고, 그에 비해 정책적 대응 속도는 느리다는 거예요. 이미 전지구적 차원에서 AI 생산 시스템을 소수의 기업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있는데, 더 닥치고 나서 뭔가를 만들려 하면 늦습니다. 그렇기에 예측과 실험이 중요하고요.
윤홍식 산업혁명 당시와 지금이 다른 점은, 산업혁명 당시에는 국가의 역할이 최소화된 자유방임주의 상태였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다수가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고, 민주적인 통제 시스템도 일정 정도 도입되어 있죠. 피지컬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맑스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기계는 인간 노동의 총화”일 뿐입니다. 결국 그 피지컬 AI도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민주적 통제하에 데이터에 대한 가치를 사회적 합의로 부여하고, 그에 따라 국민들에게 배분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봅니다. 다만 전면적 공적 소유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략은 부분적 공적 소유일 겁니다. 데이터처럼 시민의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영역에 대한 부분적 공적 소유를 이루어낸다면 소유 집중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제도화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물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시현 AI가 낳는 새로운 분배의 문제를 AI의 소유구조를 바꾸어서 풀어볼 수 있는가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장지연 선생님은 앞서 ‘급박한 일’에 대한 관점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하셨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지연 AI의 공적 소유를 고민해야 한다는 방향 자체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축적했던 내용을 학습해서 만들어진 데이터이니 이제부터 공적인 산물이다, 부분적으로라도 공적 소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통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현재까지 만들어진 데이터에 소급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앞으로 만들어지는 데이터에 한해서만 공적 소유로 한다면, 후발주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차의원님은 ‘실험’을 강조하시지만, 예측과 실험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겠지요. 저는 현시점에서 자산불평등의 핵심은 AI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부동산 문제 등으로 인해 경로가 닫히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데요. AI와 양극화 문제를 연결해서 본다고 할 때, 우선은 산업발전을 통해 연 100조원 이상의 추가세수가 걷히는 상황을 잘 활용해서 기존에 있었던 부정합적인 사회안전망을 바로잡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AI의 공공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여러 방안들을 놓고 경합을 벌여야 할 테지만, 복지가 우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자산격차가 삶의 격차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일이에요. 가령 주거복지 문제가 있습니다. 청년의 월세 부담과 고령자의 반지하 거주 등 무주택이 곧 주거불안으로 연결되는 현실에 개입하면서, 부동산 시장 관리와 보유세·상속세 및 증여세·자본이득과세 등 조세 조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반도체산업의 호황 등으로 확보된 추가세수 재원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쓰이도록 목소리를 내는 일이 가장 필요하고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홍식 AI의 확산이 불평등과 어떻게 실제로 관련되는가 하는 문제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생산자로서 누가 AI를 소유하는가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AI의 확산이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득을 집중시키고 일자리를 줄여가면서 다시 불평등이 강화된다는 문제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1950년대 말에 제시한 성장이론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노동’과 ‘자본’, 그리고 그것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총요소생산성’으로 구성됩니다. 솔로의 추계에 따르면 20세기 전반 미국의 노동생산성 증가 가운데 자본 축적으로 설명되는 부분은 약 12.5%에 불과했고, 나머지 87.5%는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유산이었습니다. 당시의 풍요가 단순히 그 세대의 노력과 투자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전 세대가 축적한 지식과 기술의 거대한 유산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AI 시대의 경제성장이 100% 기술자·소유자의 기여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결국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라는 겁니다.
차지호 한가지 흥미로운 변화는 최근 AI 모델의 소유와 그 모델을 이용해 만들어낸 생산물의 소유가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구글에서 분사한 SandboxAQ 같은 기업은 AI와 양자기술을 활용해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을 지원하면서 모델 라이선싱, 기업과의 공동개발 등 다른 사업모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보다 AI가 훨씬 많은 과학적 가설이나 발명 후보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온다면, 모델은 누가 소유하고 그 모델을 이용해 만들어진 특허와 지식재산은 누가 가져갈 것인지가 중요한 경제적 문제가 됩니다. 이미 민간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다양한 계약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AI 기본사회를 통해 사회를 지탱할 안전망과 공공지능 인프라를 우선 구축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소유와 분배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산업자본주의와 복지국가의 중요한 제도적 혁신이 유럽에서 이루어졌다면, AI 전환기에는 한국이 새로운 사회모델을 만들어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방식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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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AI의 공적 소유를 포함해 우리의 성장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의견, 초과세수의 기회를 활용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접근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사회정책을 재편하는 일인데, 이것은 재원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초과세수의 상당 부분이 특정 산업의 이익 급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세수 증가 자체가 부의 집중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반면 조세 부담에 대한 논의는 적습니다. 이러한 재정구조를 어떻게 진단하시는지요?
윤홍식 증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적지 않지만, 그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합니다. 저는 생산과 분배와 정치를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문제가 곧 ‘우리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국이나 독일처럼 제조업 중심인 국가에서 첨단상품들은 내수보다 해외 수출시장을 겨냥합니다. 이재명정부의 메가 프로젝트(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사업, 기술전환에 대응하는 AI 인프라 구축 및 기술주권 사업, 지역불균형에 대응하는 메가시티 사업 등)에서 나오는 생산물들도 마찬가지예요. 공급망과 제조업이 해외시장을 향해 있는 국가들은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자의 임금이나 기업의 법인세를 일정하게 통제해야 하는 구조적 조건에 놓이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장방식이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을 확대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고요. 문제는 메가 프로젝트와 AI 전환이 그 경향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입니다. 심화되는 불평등을 기존의 방식대로 세금을 거두고 재분배하는 것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요? 저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또는 다중구조화)는 불가피하고, 어떻게 더 많은 수익을 내서 재분배할 것인가만 고민한다면 복지도 이중구조화됩니다. 이재명정부는 보편적인 기본사회 모델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취약계층에 맞추어진 선별적 복지제도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죠. 이미 취약계층을 위한 청년저축계좌나 저소득 노인에 대한 급여를 더 확대하겠다는 기초연금 정책 방향에서도 그런 면이 나타나고요.
차지호 AI 기술변화가 불러오는 변화의 핵심은 이미 취약한 계층이 더욱 취약해지는 문제와 더불어 이전에 고소득을 누리던 사람들 또한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이중의 위기라는 점입니다. 대화 초반에 언급한 회계사 같은 그룹이 대표적이죠. 직업안정성이 높고 고소득을 올리며 세수를 담당해온 집단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는 급격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취약계층은 최소한 전통적인 사회안전망 체계가 있지만, 기존의 고소득층은 그렇지 않습니다.
윤홍식 그런데 고소득 전문직은 역사적으로 공적 복지에 크게 의존한 적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소득으로 자산을 축적하고 그 자산이 공적 복지의 기능적 등가물 역할을 해왔던 것이거든요.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역할을 두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사회보험을 통해 중상층의 생활수준을 유지시키는 것이고, 두번째는 하층의 생활수준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게끔 막는 반빈곤정책입니다. 말씀하신 고소득 전문직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공적 복지의 역할을 강화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그들이 자신의 소득을 사회적 연대를 위해 더 많이 내놓을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말씀드렸듯 그들은 공적 복지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위험에 대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자는 건 한국적 복지 맥락에서나 그들 스스로에게나 아주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차지호 이 문제의 좋은 예가 IT 개발자인 것 같아요. 최근 몇달 사이에 중급·고급 개발자들도 굉장히 많이 잘려나가고 있습니다. 대안은 저도 실업급여 모델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예컨대 ‘AI 전환 보험’ 같은 형태로 만들어서 민간과 공공이 섞여 있는 구조를 짜면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빅테크 기업에서 발생하는 초과세수를 활용해 혹은 그 기업들의 자발적 기여금을 가지고 기금을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그 기금을 통해 AI 때문에 직업을 전환해야 하는 이들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다시 노동현장에 복귀할 수 있게끔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구상을 해봤습니다.
장지연 그런데 기존의 제도도 최장 270일 동안 월 180만원의 실업급여를 줍니다. 이를 넘어서는 별도의 보장이 필요한 타당한 이유가 마련되어야 사회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아요.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다른 이유로 잃은 사람을 달리 처우해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윤홍식 방금 제기하신 방식은 사회보장제도를 계층에 따라 분화하는 것인데, 이건 이재명정부가 추구하는 기본사회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모두를 위한 성장, 모두를 위한 분배여야 하는데, 말씀해주신 방식대로면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이 복지에서의 불평등까지 이어지며 격차를 강화하게 됩니다. AI 전환을 맞은 전문직 집단을 분리해야 하느냐, 아니면 고소득층이 평소 일정 정도의 몫을 사회적으로 부담하게 하고 그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공적 복지의 일관된 시스템에 기댈 수 있도록 하느냐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입니다.
차지호 두분 말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AI의 영향으로 실업한 전문직을 별도로 우대하자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은 기존 실업보험이 전제해온 ‘실업’과 AI 전환기에 나타날 ‘전환’이 같은 위험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존 제도는 일정 기간 소득을 잃었다가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하는 상황을 주로 상정하지만, 앞으로는 한 직종이나 직무 자체가 크게 축소되고 수십년간 축적한 인적 역량의 시장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기존 사회보험을 강화하되, 소득 보전뿐 아니라 장기간의 재교육, 직종 전환, 새로운 AI 활용역량 획득까지 지원하는 ‘전환보장’ 기능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소득 전문직의 실업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들의 실업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입니다. 이들이 무너질 때 생기는 충격은 개개인의 소득 감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복지 재정을 받쳐주던 세수 기반이 흔들리고, 의료·법률·회계 같은 전문 서비스의 체계와 질이 함께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노동시장 안에서 연쇄적으로 하향 이동이 일어나면 일자리 경쟁이 과열되고 저임금노동이 확산되는 악순환이 생겨, 가장 큰 피해는 다시 취약계층에게 돌아갑니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를 지탱해온 힘이 중산층의 정치적 지지였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이 집단의 붕괴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 자체를 흔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환의 충격이 전체 시스템으로 번지기 전에 완충장치를 설계해두자는 취지입니다.
장지연 저는 우리의 사회보장제도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작동하는 시스템인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봅니다. 위기의 원인은 매번 다릅니다. 외환위기가 왔고, 팬데믹이 왔고, 이번에는 AI입니다. 원인을 예측해 원인별로 제도를 만드는 방식은 언제나 한발 늦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각지대를 남깁니다. 만약 원인이 무엇이든 소득 상실이라는 결과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예측이 틀려도 사람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AI로 인한 실업을 따로 처우할 이유가 없고, 시간이라는 축을 넣어서 이 땅의 현실로 끌어내려 질문하자고 말씀드리는 까닭입니다. 이를테면 현실론이고, 그렇기에 우리에게 온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장이 불평등을 심화할 수도 있는 딜레마가 있는데, 일단은 성장 속에서 불평등 완화 방안을 최대한 찾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윤홍식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신자유주의적 성장이 지속될 때는 성장과 분배 정책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복지의 확대를 통해 막아내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이미 199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시작된 인식의 변화는 생산·산업 등 경제정책과 재분배·복지 등 사회정책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금리나 환율 같은 거시경제 지표들은 이미 국민국가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국민국가가 성장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거기서 사회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겁니다. 2024년에 발표된 유럽 미래전략보고서인 「드라기 보고서」(Draghi Report)도 기술혁신, 생산성, 그리고 복지·사회 정책을 하나의 구조 속에 묶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다시 말해 지금은 ‘성장해서 번 재원으로 사후 대응하는 구조’가 아니라 ‘성장과 분배가 어떻게 처음부터 같이 갈 것이냐’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상황에서 그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이유도, 메가 프로젝트니 AI 중심 성장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 소수 대기업에 집중하는 성장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세수로 국민들이 직면한 사회적·경제적 위기나 청년 일자리 문제를 완화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첨단 제조업에 기반한 대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하나의 모델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장 주체가 만들어지는 다원화된 성장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하나의 전략과 초과세수에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요.
최시현 성장을 다원화하는 방안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윤홍식 예컨대 스웨덴은 디지털·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면서도 노동시장의 소득불평등을 완화해왔습니다. 스웨덴은 물류·기획·디자인·문화 등의 부문에서 새로운 첨단기술과 결합한 소위 ‘다이내믹 서비스’(dynamic services)를 활성화했어요. 다이내믹 서비스는 기술과 제조업의 강력한 결합, 고부가가치성, 글로벌 확장성 등을 특징으로 합니다. 스웨덴 웹 회사인 크뤼(KRY)는 영국에서 리비(Livi)라는 브랜드명으로 사업을 운영하는데,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디지털 1차 의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포티파이(Spotify)는 세계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1위 사업자인데, 지금은 음악뿐 아니라 팟캐스트와 오디오북까지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입니다. 이런 다이내믹 서비스 수출이 스웨덴 전체 수출의 30% 가까이 차지해요. 이를 지탱하는 힘은 아시다시피 국민 개개인의 높은 인적 역량입니다. 그 인적 역량을 키우는 것은 보편적이고 질 높은 교육, 직업훈련, 보건·의료 같은, 흔히 말해 공적으로 제공되는 ‘사회서비스’이고요. 튼튼한 사회서비스 체계가 첨단 성장동력을 밑에서부터 단단하게 받쳐주는 셈입니다. 한국도 지금처럼 국가전략이 특정 산업에만 집중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 고도화된 생산에 강점이 있지만 단순 제조업으로는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조 기반 위에 특화된 다이내믹 서비스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장과 안전망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여러개의 바구니를 균형있게 준비해야 하는 거죠. 성장의 동력이 소수의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주도형 첨단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문화·기획·물류 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양질의 사회서비스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청년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공적 복지가 취약계층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복지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차지호 저는 AI 전환기에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AI 기본사회는 단순히 국민들에게 AI 서비스를 하나씩 제공하자는 정책이 아닙니다. 의료·교육·돌봄·복지·행정 등 삶의 기본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정 수준의 지능과 문제해결 역량을 소득이나 거주지역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자는 구상입니다. 예를 들어 의료인이 부족한 지역에서 의료진의 판단을 지원하는 AI,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공공 AI 튜터, 돌봄과 건강 모니터링을 지원하는 AI, 소상공인의 경영 판단을 돕는 AI 등이 구체적인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저는 이것이 한국 안에서만 필요한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AI 전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글로벌 사우스의 상당수가 첨단 AI의 생산과 활용 체계에서 동시에 소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AI가 북반구의 고임금 노동을 얼마나 빨리 대체할 것인가만 경쟁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충분한 기초 인프라가 마련되지 못했던 지역에서 인간의 역량을 증강하는 데 먼저 사용된다면 전혀 다른 발전경로가 가능합니다. 다만 이것은 한국의 완성된 기술을 단순히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각 국가가 자신의 데이터와 인력, 제도적 환경을 바탕으로 의료·교육 등의 공공지능을 직접 구축할 수 있도록 공동 개발하는 모델이어야 합니다. 한국은 글로벌 빅테크와 규모로 경쟁하기는 어렵지만, 포용적 AI를 사회시스템에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서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빅테크 중심 모델이나 중국의 국가 중심 모델과는 다른 제3의 AI 국제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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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복지 모델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재명정부의 주요 비전이 기본사회입니다. 소득·주거·의료·돌봄·교육 등 삶의 전영역에서 국민의 기본권리를 국가가 보장한다는 정책 비전입니다. AI 기본사회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해주셔서 한결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기본사회 각 영역에서 아직은 구체적 정책이 잘 드러나지 않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모호하다는 평가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의 복지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과 정책 토론은 부재합니다. AI 전환기에 지금까지의 복지정책과는 다른 차별화된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장지연 기존의 복지 모델로 지금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늘 대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 같습니다. 그 답을 구하려면 현재 우리의 제도가 무엇이며 어떤 형태인지를 먼저 봐야겠죠. 그동안 우리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당장 필요한 일들을 모두 그 틀에서 다루려다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사회보험으로 다루지 않는 영역까지 들어와 있어요. 예컨대 모성보호급여와 직업교육훈련 등 다른 나라에서는 조세로 부담하는 영역이 한국은 고용보험에 얹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보험 본연의 역할, 그러니까 소득 중단·상실의 위기에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역할이 피해를 받는다는 진단부터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보험제도를 버려야 한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지금 같은 이행기에 사회보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오히려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요. 지금 사회보험 재원은 고용 기반입니다. 노동자가 내는 보험금과 그 임금에 비례해 기업이 내는 보험금 두가지로 구성되어 있죠. AI 전환이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아져 사회보험의 재원 기반을 침식하는 것,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 등 고용관계 밖의 노동자가 증가해 가입 기반을 침식하는 것입니다.
우선 저는 사회보험을 고용 기반이 아닌 소득 기반으로 전환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수급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수급권이 회사의 보험금 기여분을 포함하지 않고, 그 개인이 내는 보험금에만 기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 모든 사람이 보호의 범위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기업 관련해서는 ‘기업이 피고용인을 위해 임금의 일부를 사회보험 기여금으로 낸다’는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기업은 이윤에 기반해서 사회에 기여하게끔 해야 하고, 그것은 사회보험이 아닌 조세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복지재원의 주축을 임금 기반 보험료에서 소득·이윤 기반 조세로 전환한 나라입니다. 두번째로, 사회보험만 아니라 조세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최근 추가세수 전망이 밝습니다. 다만 추가세수는 지금의 반도체 경기에 기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재원입니다. 경기가 꺾여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 조세 부담의 구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방향은 임금에만 얹혀 있는 부담을 이윤과 자산으로 넓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기업 이윤에 기반한 사회보장 목적세가 우선 검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먼저 할 일은 기존 사회보험에 과도하게 얹혀 있던 부담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고요. 고용보험은 핵심 위험인 실업과 소득 상실에 집중하게 하고, 모성보호와 직업훈련 등 영역에서는 조세의 기여를 강화하는 거죠.
윤홍식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를 논할 때 계층을 크게 상층, 중층, 하층 세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상층은 주로 사적 자산에 의존하며 공적 복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집단이었고, 중층은 사적 자산의 축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공적 제도로 보완하는 집단입니다. 하층은 공공 부조에 의존하는 계층인데, 그 수급층을 매우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폭넓지 못합니다. 이같은 복지제도는 사실 대기업·제조업·수출 중심의 기존 성장방식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대외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거죠. 이러한 성장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 이재명정부의 기본사회는 실현이 어렵습니다. 기본사회 비전을 통해 보편적 소득보장·사회서비스를 실현하려 한다면 단지 복지를 확대하는 정도로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경쟁력이 낮은 산업과 기업을 퇴출하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로 산업이 이동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사회보장을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기본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 과제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하는 대신, 사회보장을 강화해 노동자의 이동을 보장하고 경쟁력이 낮은 기업은 구조조정되도록 하면서 노동과 자본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돌봄·의료·교육·복지 같은 사회서비스도 단순한 복지 지출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와 생산성을 만드는 산업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관건은 성장한 뒤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방식 자체가 더 많은 좋은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내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고용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사회보험을 고용 기반이 아니라 소득 기반으로 전환해야 하고, 이행기에는 사회보험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도 중요한 지적이에요. 저 역시 누구나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보험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사적 자산 축적에 대한 욕구와 경쟁, 그로 인한 피로도가 줄 수 있고 사회적 갈등 수준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최시현 사회보험을 소득 기반으로 전환하더라도 결국 ‘소득을 가진 사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맹점이 남습니다. 이를테면 가구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급노동과 부담의 배분은 여전히 시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구나 돌봄노동은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노동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구조적으로 가려진 영역에는 어떤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장지연 우리가 불평등과 양극화를 진단할 때 쓰는 지표는 대부분 가구 단위입니다. 가구 소득을 가구원 수로 균등화해서 나눠 붙이는데, 해당 가구 안에서 소득과 부담이 공평하게 나뉜다는 가정이 깔려 있죠. 이때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말씀하신 가구 안의 무급노동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통계의 공백이면 좋겠지만 실은 복지 모델 설계의 공백이고, 더 정확하게는 가격의 공백이에요. 가족 안에 무급돌봄이라는 대체제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나 시장이 돌봄 제공을 조금만 밀어내도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현실적으로는 여성에게 돌아가죠. 바로 그 이유로 요양보호사나 보육교사 등 유급 돌봄노동의 임금도 억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두가지 접근인데 하나는 돌봄의 사회화이고, 다른 하나는 돌봄노동에 대한 정당한 가치평가입니다. 돌봄을 시장화·가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노동이라면 앞으로 그 노동의 상대적 가치는 올라가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장기요양 같은 돌봄가격을 정부가 수가로 정하고 있어요. 정부가 가격을 누를수록 돌봄노동은 점점 더 나쁜 일자리가 되어갈 것이고 그 빈자리는 이주노동으로 채우게 될 겁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데, 이 순환의 고리를 경계해야 합니다.
윤홍식 궁극적으로는 가구 단위의 복지를 폐기하고 시민 단위로 전환해야 합니다. 모든 개인이 가족구성원이기 이전에 독립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젠더나 연령과 무관하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가족 내에서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이나 젠더 권력관계의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차지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지금 ‘모른다는 것을 아는 상태’ 같습니다. 두분 말씀을 들으며 어떤 복지 모델이 어떻게 작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면서 다른 대안적 모델들도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기존 복지 모델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미래도 있을 테니까요. 고용-피고용의 관계가 사라진 시기에 어떤 방식의 모델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 전환을 논할 때 각자의 영역을 넘어선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AI 전환은 노동과 사회안전망의 문제만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민주주의, 안보 등의 영역까지 폭넓게 변화시킵니다. 아시다시피 AI가 주는 영향은 초국가적입니다. 이전에는 국민들의 투표가 그 국가 단위 안에서의 선택으로 돌아갔다면 지금은 초국가적 영향을 받습니다. 오죽하면 저는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은 미국 서부 구글에 있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짜는 수석 엔지니어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룰 학제적·정책적 소통체계가 부족하지만, 각자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고하고 토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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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미래전략을 위해 꼭 실현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하나씩 언급해주실까요? 정부의 임기는 5년이기에 그 과제가 훗날 얼마나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한국이 중요한 이행기에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하신 만큼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 미래전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차지호 저는 이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 단일화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 다양하니까요. 얼마 전 SK하이닉스와 삼성에서 초과이윤을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들과 나눌까 하는 논의가 있었고, 노사협의를 통해 배분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굉장히 다양한 모델이 이미 현장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걸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자연실험 형태인데 그것이 어떤 효과를 냈는지 정교하게 평가되는 검증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첫째로 AI 사회의 큰 원칙―기본사회인지, 포용적 사회인지, 어느정도의 불평등을 감수하는 경쟁력 중심 사회인지―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 원칙 아래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실제로 실험하고,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검증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로 이러한 실험을 한국 안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글로벌 AI 허브’를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보건 분야에서는 AI가 단순히 의료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1차 의료 인력을 증강하고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의 격차를 줄이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보건 시스템에 어떻게 결합할지를 중요한 협력의제로 보고 있습니다. ILO(국제노동기구)와 같은 기구와는 AI로 인한 직무전환과 노동시장 양극화, 재교육과 사회보호 체계를 어떻게 함께 설계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가 됩니다. 글로벌 AI 허브는 이런 문제들을 보건, 노동, 교육, 기후처럼 서로 분절된 영역으로 다루지 않고 하나의 사회적 전환 문제로 연결해 각국과 국제기구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해법을 실험하기 위한 플랫폼입니다. 지금 한국이 먼저 경험하는 변화들을 세계 여러 지역의 경험과 연결하고, 성공과 실패가 지속적으로 공유되는 학습체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미래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왼쪽부터 장지연 차지호 최시현 윤홍식
ⓒ이영균
장지연 저는 이재명정부에서 말하는 ‘미래대응기금’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기금의 운용계획을 살펴보면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 고용시장의 K자형 양극화(하나의 줄기에서 위아래로 가지를 치듯 상층과 하층의 격차가 급격하고 뚜렷하게 갈라지는 양극화) 대응, 그리고 청년층 지원을 핵심으로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기금이 어디로 갈까 생각해보면 대부분 메가 프로젝트에 쓰이지 않을지 염려됩니다. 이 기금을 만든 취지는 우리에게 발생한, 일시적일지 아니면 장기적일지 모를 추가세수와 자금을 일반적인 조세 수입처럼 1년 안에 다 써버리지 않고 기금 형태로 적립해서 쓰자는 것이었어요. 그 본래 취지를 살려서 이번 정부에서 기금의 상당 부분이 양극화 완화와 청년층 지원에 쓰이도록 명확한 방향을 잡아두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금이 어디에서 재원을 거두어 누구에게 혜택을 줄 것인가에 대한 원칙과 틀을 새롭게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윤홍식 전환기라는 건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우리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재명정부가 기존에 우리가 성장해왔고 그 성장에 근거해 분배해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사회가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성장과 분배를 할 것인지 국가미래전략을 제대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회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달려왔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 그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냈으면 좋겠고, 그 과정은 국민들의 참여와 합의, 즉 공론화에 바탕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민주당 정부 인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면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맞는 말이지만, 임기 5년 안에 성과가 나는 일을 해야지 담론을 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정부는 스스로 골든타임을 강조하고 있고,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분배하며 어떤 시스템을 가져갈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합니다.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다음은?’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된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는 사실 사회적 이슈가 불거진 사안이었습니다. 소수의 생산과 성장의 과실이 그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에 대해 전국민이 문제를 제기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대응기금을 만들거나 몇가지 제도를 미시적으로 개선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성장과 분배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공론화하는 작업을 했으면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시적 정책이 덜 중요한 건 아니어서, 특히 조세정책에 있어서는 윤석열정부 시기 단행했던 감세조치들을 전면적으로 복원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증세에 대한 요구는 당장 실현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지난 감세조치들을 이전처럼 복원해내야 초과세수와 더불어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지호 AI·기후·인구 등의 문제는 단기 정부의 임기를 훨씬 넘어선 호흡을 가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구상할 때 몇가지를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대통령실 안에 ‘미래기획수석실’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AI미래기획수석실이 신설되면서 조금 다른 형태지만 반영이 됐습니다. 실패한 것은 ‘미래기획예산처’ 신설입니다. 기획재정부에서 기획예산처 기능을 분리해 AI·기후·인구의 변화를 예측하고 중장기 국가계획을 수립하도록 디자인했는데 막판에 무산되었습니다. 당시 국회 차원에서도 정부와 호흡을 맞출 ‘미래전략위원회’ 신설을 추진했는데, 국가의 중장기전략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함께 전담하는 상임위를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것도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국회 내에서 문제의식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거치며 ‘정치의 진짜 출발점이 어디여야 할까’를 고민해봤습니다. 저는 팬데믹 시기의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인재영입으로 정계에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단발성 인재영입 방식은 중장기 미래의제나 세대성을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안했던 것이 비례대표 공천을 미래세대와 중장기의제를 대변할 수 있는 ‘미래대표제’로 전환하자는 안이었습니다. 의석 수 중 5~10%만이라도 미래의제를 전담하는 의원들로 구성된다면, 미래위원회 신설 등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도 훨씬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22대 국회에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다음 23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이런 시스템을 구축했으면 합니다. 미래전략의 수립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나 몇몇 정치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의제를 전담할 인력을 국회 안에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이 거대한 전환을 시작하는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지연 말씀해주신 ‘어디서 시작할까’라는 그 정치적 의지가 아주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정책으로 드러나면 좋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미래대표제 같은 방안에 무척 동의가 됩니다. 우리가 미래전략을 논하려면 당장의 정치적 이해관계만 아니라, 아직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 세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제도 안에 담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하겠습니다.
윤홍식 오늘 대화에서 나눈 AI 시대의 노동 변화, 불평등, 새로운 복지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정치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큰 걱정입니다. 생산과 분배의 방식은 결국 정치적 의제거든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집단적인 힘을 만드는 게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일정 정도의 합의를 만들어내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죠.
최시현 대화를 통해 여러 이견을 확인했지만, 이행기에 사회보험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 성장과 분배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점 등 중요한 화두가 제기되었고 서로 공감을 나눈 것 같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되 토론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겠습니다. 오늘의 대화가 마중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긴 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2026.7.30.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