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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내 삶을 돌본 것 ⑦
진짜 북극곰 이야기
남종영 南鍾永
환경 논픽션 작가, 저널리스트, 성공회대 외래교수. 저서 『지구가 뿔났다』 『동물권력』 『다정한 거인』 『치킨 행성의 비밀』 『북국곰은 걷고 싶다』 등이 있음.
fandg21@gmail.com
처칠공항은 시골 버스터미널 같았다.
비행기가 내려앉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마중 나온 픽업트럭들이 짐과 사람을 나눠 싣더니 삽시간에 흩어졌다. 눈이 내렸다. 활주로 끝의 격납고가 흰 눈에 지워지고 있었다. 형광등이 윙윙 소리를 내는 대합실에 나 홀로 남았다. 미리 예약을 해둘걸.
‘세계 북극곰의 수도’를 자처하는 항구도시 처칠(Churchill). 캐나다 매니토바주 북쪽의 광활한 순상지가 북극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 점처럼 찍힌 마을.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다. 처음의 그해 10월에는 마을 어귀에도 곰이 어슬렁거렸다. 처칠공항 근처에서도 새끼곰 두마리를 데리고 가던 어미를 봤다. 카메라를 들기도 전에 나는 흡족했다. 곰은 흔했다. 지천이었다. 그때 쓴 기사는 반응이 좋았다. 전세계에서 이어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와 쓰레기장을 뒤지는 곰, 문장이 저절로 굴러갔다. 나는 그 풍경의 기억으로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하얀 곰이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았다. 11월이 코앞인데 허드슨만에는 잿빛 파도가 출렁였다. 굶주린 곰들은 해안 어딘가에서 바다가 얼기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나는 반대였다. 얼음이 얼면 북극곰은 바다로 흩어진다. 북극해 수천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며 물범을 포식하다 다음 해 5월에나 돌아올 것이다.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얼음이 아니라 얼음을 기다리다가 지친 곰이다. 굶주린 곰이다.
대합실에 덩그러니 혼자 있으려니 몇해 전 취재하러 갔던 알래스카 북부의 아크틱빌리지가 생각났다. 자갈 활주로에 사람을 내려놓은 경비행기는 부웅, 이내 다시 하늘로 사라졌다. 짐을 받으러 온 이들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남은 건 사륜 오토바이에 택배상자를 싣던 장발의 사내와 나뿐이었다. 어디 갑니까. 내가 물었다. 사내는 말없이 나를 태워주었다. 세상 끝의 공항에서는 어디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이곳에도 공항 건물 밖에서 택시를 부른 사람이 있었다. 나는 급한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택시가 눈길을 미끄러져 달리는 동안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세상 끝에 당도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왜 그곳에 있는지를 되묻는다. 나는 매우 이상적인 목적, 북극곰을 보러 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얼지 않는 바다, 굶주린 곰, 기후위기의 상징…… 취재계획서에 나는 그렇게 썼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나를 이 흰 눈 속으로 밀어넣은 것은 정의감이 아닌 마감이었다. 나는 원고를 보내야 했고, 그 글에는 북극곰이 있어야 했다. 북극까지 온 이상 나는 곰을 보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버마에서 영국 제국의 식민지 경찰로 일한 경험을 담아 「코끼리를 쏘다」(1936)라는 산문을 썼다. 그는 사람을 죽인 코끼리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코끼리를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군중은 그것을 기대했다. 코끼리를 쫓는 동안 그는 스스로 자유로운 인간이 아닌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 같다고 느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다. 북극에 파견된 이상 나 역시 이미 발사된 총알과 다르지 않았다.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북극곰은 표적이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취재비를 주는 것도, 여행의 명분을 만들어준 것도 곰이었다. 오랜 세월 나를 먹여살린 것도 그 하얀 곰이었다. 나는 북극곰을 대변하러 왔다고 믿었지만, 누가 누구의 후원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
처칠에서 곰을 보려면 마을을 벗어나 툰드라 한복판으로 나가야 한다. 북극곰 보호구역은 푸석푸석한 땅과 늪이 펼쳐지는 곳이라, 바퀴가 2미터쯤 되는 특수차량 ‘툰드라 버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관광객, 과학자, 저널리스트로 마을은 이미 꽉 차 있었다. 마을에 두군데 있는 여행사가 파는 버기 좌석은 벌써 매진이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빈방을 찾기 어려울 때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예약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정문이 아니라면 뒷문을 찾아야 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마을을 도는 것. 얼음을 기다리다 심심해 마을로 흘러드는 곰을 운 좋게 마주치는 것.
제프 처치머치(Jeff Chuchmuch)는 북극곰 보안경찰이었다. 정식 명칭은 주 정부 소속의 자원보호관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북극곰 경찰이라 불렀다. 그가 긴 총을 꺼내 보였다. 250킬로그램짜리 암컷은 마취약 5cc면 세시간을 재울 수 있다고 했다. 조수석에 나를 태운 그가 시동을 걸었다.
“그저께는 새벽 5시에 신고전화 받고 출동했습니다. 저희는 항상 강조해요. 혼자 걷지 마라, 음식물을 밖에 두지 마라……”
그는 시내를 중심으로 처칠 일대가 세 구역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1구역은 마을 안. 곰이 침범하면 사이렌을 울리고 공포탄을 쏘아 쫓는 구역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포획한다. 2구역은 마을 주변과 도로를 중심으로 한 관리 구역. 북극곰의 동태를 살피며 경계하는 곳. 3구역은 그 바깥이다. 거기서는 곰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렇게 툰드라에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잡힌 곰은 어디로 가죠?”
제프는 턱으로 공항 쪽을 가리켰다.
“북극곰 감옥.”
군 기지가 떠난 자리에 1970년대 말 처음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신형으로 개조해 방이 스물여덟, 어미와 새끼를 함께 가두는 가족실도 둘 있다. 곰은 거기서 30일을 지낸다. 먹이는 주지 않는다. 물 대신 눈을 준다. 사람과 음식을 좋은 것으로 연관 짓지 못하도록 굶기며 지루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이었다. 바다가 얼면 헬리콥터에 실어 얼음 위로 데려다 내려놓는다. 처칠이 야생 북극곰을 돌보는 방식이다.
“기자님, 언제부터 처칠에 곰이 왔을 거 같습니까?”
제프가 물었다. 나는 안다고 생각했다. 쓰레기장 때문 아니냐고. 마을에서 버린 음식 때문에.
제프는 고개를 저었다. 마을 역사를 찾아보면, 매년 10~11월 곰이 마을 주변에서 관찰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다. 1950년대에 허드슨베이교역상사가 운영하던 모피 생산기지 요크팩토리가 문을 닫았고, 군대가 철수했고, 백인의 곰 사냥이 금지됐다. 위협이 사라지자 곰이 돌아왔다. 과거 자신이 살던 자리로.
1968년 11월에는 마흔마리의 곰들이 쓰레기장을 뒤덮은 밤이 있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건이라고 한다. 한때는 아예 곰을 멀리 실어보내려 한 적도 있다. 인간과의 충돌로 북극곰을 사살하는 사례가 잦아지자 반대로 보호 여론도 거세졌다. 1971년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은 DC-3 수송기에 곰들을 태워 300킬로미터 밖 강가에 데려다놓았다. 곰들은 며칠 만에 처칠로 돌아왔다. 원래 살던 영역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동물이라고 학자들은 말했다. 곰은 고향에서 살고 싶었다. 인간이 그 자리를 빼앗았을 뿐이다.
처칠에서 만난 북극곰들. (사진: 필자 제공 ©남종영)
사람들은 북극곰을 내쫓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공존을 선택했다. 주민들은 북극곰을 보면 신고하고, 북극곰 경찰이 순찰을 돌고, 일명 북극곰 감옥이라 불리는 보호시설로 보낸다. 잡은 곰의 귀에는 다섯자리 숫자가 찍힌 태그를 건다고 제프는 말했다. 일종의 주민등록번호다. 어느 해에 발견됐는지, 누구의 새끼인지. 과학자들은 몸무게를 재고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곰 개체의 건강을 살핀다. 돌봄이라는 이름의 뒷면은 통제와 규율이다. 죽이지 않기 위해 가두고, 살려두기 위해 번호를 매긴다.
세시간을 돌았다. 곰은 어디에도 없었다. 1구역에도, 해안가에도, 쓰레기매립장을 대신해 지어진 현대식 재활용센터에도. 눈만 내렸다. 제프가 나를 숙소 앞에 내려주며 말했다.
“운이 없네요.”
총알은 표적을 찾지 못한 채 밤을 맞았다.
그날 밤 오로라가 떴다. 초록빛이 커튼처럼 흔들리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쏟아졌다. 나는 숙소 앞 눈밭에 서서 목이 아프게 올려다보았다.
*
이튿날 아침, 마을에서 커피 맛이 가장 좋다는 까페에 갔다.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찬 사람들의 훈기로 뿌연 홀에서, 검정 앞치마를 두른 동양인 여자가 분주히 테이블을 오가고 있었다. 그는 내 자리로 오더니 질문을 하나 던졌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이름은 나루. 워킹홀리데이 중이라고 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냥요. 지도에서 제일 위에 있길래. 인구 800명의 마을에 한국 사람은 저 혼자예요.”
그냥. 나는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나를 여기로 보낸 것은 지면이고 마감이고 신문사였다.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 그러나 나는 무지의 황야에서 대의를 연료 삼아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아니었다. 앞 구간이 다음 구간을 불러내는 식으로 한 단계씩 스테이지를 격파하며, 그것에 기대어 길을 찾아갔다. 내게는 장거리 마라톤이 아닌 420개의 100미터 달리기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북극곰을 보지 못하면 안 되는, 발사된 총알이었다. 나루는 달랐다. 아무도 그를 등 떠밀지 않았다. 표적도 궤도도 없이 그냥 여기까지 온 사람. 나에게는 그것이 신기했다.
렌터카를 빌려 함께 마을을 떠났다. 나는 계속 곰을 찾았고 나루는 창밖을 구경했다. 텅 빈 곡물 창고, 얼어붙은 부두, 갯벌에 잠긴 배. 북극곰은 없었다. 핸들을 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나루는 히터 바람에 발을 녹이며 콧노래를 불렀다. 내가 물었다.
“브라이언 라둔이라고 아세요?”
“아니요.”
나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내가 처칠에 온 이유는 사실 브라이언 라둔(Brian Ladoon) 때문인지도 몰랐다. 기후변화와 북극곰은 이미 나에게 식상한 주제였다. 나는 ‘문제아’에 끌렸다. 인간과 동물 경계의 회색지대에서 기생하며 먹고사는 사람.
나는 나루에게 라둔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서 북극곰과 가장 오래 지낸 남자. 멸종해가던 캐나다 에스키모개를 살려낸 사람. 그 개들을 북극곰이 지나는 길목에 묶어두고 키우는 사람. 북극곰과 개가 함께 뒹굴며 노는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개가 북극곰에게 잡아먹힌 사건으로 악명을 얻은 사람.
“이 마을에 그런 사람도 있었군요.”
나루가 말했다. 이어서 크리스마스 파티 때 친구가 곰에 쫓겨 허겁지겁 집에 들어갔던 이야기, 곰이 어느 집 창고를 부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나루는 물었다.
“그런데, 북극곰을 왜 그렇게 찾으세요?”
잠시 침묵한 그는 말을 이었다.
“기사에 안 쓰면 안 돼요?”
라둔은 이 조그만 마을에 있을 법하지 않은 논쟁적인 인물이다. 발단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1990년대 초 독일 사진가 노르베르트 로징(Norbert Rosing)이 북극곰과 라둔의 개가 장난치며 뒹구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북극곰과 개의 우정’이라고 경탄해 마지않는 사람들이 나타난 건 물론이었다. 그리고 잊힐 만하면 인터넷에 사진과 영상이 떠돌며 시선을 끌었다.
그때마다 꺼져가던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학자와 환경단체는 대체로 라둔을 비판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북극곰 연구자 이언 스털링(Ian Stirling)은 북극곰이 지나는 땅에 개를 묶어두는 건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묶인 개는 무방비 상태이며, 우정처럼 보이는 장면은 야생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북극곰이 개와 사람을 먹이와 연관 짓게 되면 예상치 못한 여파가 몰아칠 수도 있다고 했다. 북극곰이 인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그 결과 인간과 북극곰 모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라둔의 해명은 일관성이 없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되는 법률에 따라 평소 그는 북극곰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개에 대한 동물학대라는 비난이 커질 때에는 자신의 개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곰의 먹이를 충분히 놔둔다고도 했다.
2016년에는 북극곰이 앞발로 개를 쓰다듬는 영상이 퍼졌다. 한 여행 가이드가 찍은 것이었다. 며칠 안 돼 라둔의 개 한마리가 북극곰에 먹혀 죽었고, 당국은 현장에 출동해 곰을 포획하고 격리 조치했다. 라둔이 두는 곰의 먹이가 사실상 북극곰을 유인하기 위한, 즉 관광객들에게 곰을 보여주기 위한 ‘미끼 놓기’라고 꼬집는 인터뷰도 나왔다.
라둔은 이와 관련해 여러번 기소됐지만, 그때마다 당국이 북극곰과 개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저항했다. 가령 1996년 가을, 당국이 개들과 친하게 지내던 북극곰 몇마리를 격리한 직후 평소 그곳에 잘 오지 않던 곰이 찾아와 개들을 공격해 죽였다. 라둔은 침입자 곰을 막으며 완충 역할을 하던 친밀한 곰을 데려갔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당국을 비난했다.
라둔의 영지는 ‘마일 파이브’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차를 몰고 도착한 그곳에서 툰드라의 점점이 뿌려진 질퍽한 못 사이로 사슬에 묶인 하얀 개들이 짖었다. 라둔이 멸종에서 살려냈다는 캐나다 에스키모개들이었다. 짐승의 노린내와 언 생선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그 너머 눈밭에 북극곰 한마리가 누워 있었다. 하얀 언덕 같았다. 개들이 짖어도 곰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곰이 한번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이 이쪽을 스쳤다가 눈밭으로 사라졌다.
차창을 내리고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눌렀다. 총알이 목표에 닿았다. 쾌재를 불렀다. 원고로 보낼 북극곰이 생겼다. 어지러운 책상이 정렬되고 서랍이 ‘탁’ 하고 닫히는 듯했다.
이번엔 수풀에서 몸집이 작은 북극곰 하나가 일어나 다가왔다.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 끝에서 개는 곰을 향해 짖다가 이내 꼬리를 흔들었다. 여윈 몸의 곰은 개를 건드리지 않았다. 두 짐승은 서로를 죽이지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무언가를 나누고 있었다. 라둔의 괴이한 왕국에서 둘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기후변화, 멸종위기, 살려주세요…… 이런 이야기로 채워질 나의 원고에는 쓰이지 않을 질문이었다.
우리는 통치하기 위해 분류한다. 갑과 을. 갑이 을을 돌보고 가르치고 관리하고 통치한다. 인간과 자연을 가른다. 이쪽은 사람, 저쪽은 야생. 이쪽은 마을, 저쪽은 툰드라. 1구역, 2구역, 3구역…… 이렇듯 분류와 구별에 기반한 극히 좁은 범위의 질문만 우리는 동물에게 던진다. 벨기에의 과학철학자 뱅시안 데스쁘레(Vincianne Despret)가 이야기했듯 ‘우리가 좋은 질문을 던지면, 동물은 뭐라고 대답할까?’라는 상상은 없다.
라둔은 우리가 그은 그 선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었다. 그는 경계를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경계에는 늘 이런 사람이 하나쯤 서 있다. 우리는 그를 괴짜라 부르고, 반영웅으로 추앙하고, 범죄 혐의로 기소한다.
마일 파이브에서 나오는 길에 앳된 청년이 손을 흔들었다. 자원봉사자라고 했다. 라둔을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마을 기념품가게에서 근무하는 라둔의 파트너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북극곰은 매일 오느냐는 말에 그가 답했다.
“저 큰 녀석이 브루터스예요. 작은 녀석은 엄마가 있고요. 주변 어딘가 있을 텐데, 안 보이네…… 어쨌든 마일 파이브의 단골손님들입니다. 바다가 얼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들도 곧 떠날 거예요.”
내가 창문을 올리려는데, 젊은이가 덧붙였다.
“그런데, 북극곰 보셨으니, 돈 주셔야 하는데요.”
*
그날 저녁, 나루가 숙소 문을 두드렸다. 손에 냄비를 들고 있었다. 김치찌개였다. 두부가 없어 감자를 썼다며 그는 냄비를 내려놓고 맛있게 드시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햇반 두그릇을 김치찌개에 말아 먹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마친 직후 근육의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육체, 마음, 지식은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흐르고, 때로는 거기서 내려오려 하지만 앞에 보이는 건 어두컴컴한 절벽이다. 벨트 위에서 우리의 몸은 규율받고,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규율한다. 규율이 몸에 익고 습관이 된다. 그리고 잊고 만다, 수평선 너머 차가운 얼음 바다의 기억을. 나를 돌본 것은 견고한 세상의 질서이자 동시에 분류되지 않은 야생의 이야기에 대한 열망이었다. 북극곰 이야기와 진짜 북극곰 이야기였다. 그 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라둔의 개와 북극곰을 생각한다. 매번 실패로 끝나지만. 창밖으로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도 허드슨만은 여전히 회색빛 파도로 출렁였다. 북극곰들은 아직 해안가에 있을 것이다. 지방을 태우며, 여위어가며, 얼음을 기다리며. 바다의 결빙이 늦어질수록 곰은 더 오래 굶는다. 사람들은 그 굶주린 곰을 보러 더 멀리서 온다. 늦어지는 얼음이 관광 시즌을 늘린다.
비행기가 떴다. 아래로 처칠 일대가 보였다. 곡물 창고, 북극곰 감옥, 마일 파이브.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흰 점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느 점이 브루터스인지, 어느 점이 새끼곰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한달 뒤 나루에게서 메일이 왔다.
“기자님, 잘 들어가셨어요? 여기 며칠 전에 ‘무한도전’ 촬영팀이 왔었어요. 마을이 완전 뒤집어졌죠. 그 사람들 가고 나서 눈이 한번 오더니 금방 녹아버려서, 지금은 온 동네가 진흙탕이에요. 이상하죠. 올해는 눈도 오면 금세 녹고, 바다도 안 얼고…… 곰들이 아직도 바닷가에서 기다린대요. 그런데, 북극곰 사진은 잘 나왔나요?”
나는 답장을 미룬 채 원고를 마감했다. 사진 속 곰에게 캡션을 달았다. 서식지, 개체수, 멸종위기 등급.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듯,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품번호 PB20741. 판에 박힌 북극곰 이야기가 하나 더 출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