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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조엘 S. 위트 『폴아웃』, 메디치미디어 2026
미국의 북한 비핵화 실패에 대한 기록
이정철 李貞澈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heeplan@snu.ac.kr
대북협상에 대한 미국의 자성이 담긴 책이 나와서 반갑기 그지없다. 저자 조엘 S. 위트(Joel S. Wit)는 오랫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해온 지한파(知韓派)다. 그 스스로 대북협상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북미협상에 대해 쓴 방대한 저서이니 책의 학술적 값어치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의 속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책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특히 트럼프 1기 시절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으로 대표되는 미 국무부의 대북 담당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잔뜩 담겨 있어 당시 미국의 정책결정 과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는 각주 하나하나가 흥미와 탄식의 대상이다. 그런데 책 제목의 의미가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부제가 붙어 있다. ‘미국은 왜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나?’
『폴아웃』(Fallout, 2025, 한국어판 최종건·한석표 옮김)의 제목은 미국의 대북 핵협상과 그 실패사의 책임 추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직접적으로는 핵폭발 후 방사성 먼지가 긴 시간 넓은 지역으로 떨어져내리는 ‘방사성 낙진’을 뜻하면서도 실패의 후폭풍, 즉 선택의 댓가로 감당해야 할 치명적인 결과를 함의하는 이중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2018)의 제목이기도 하다. 책이나 영화나 핵무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두 ‘폴아웃’은 핵위기에 대한 유의미한 동류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폴아웃의 의미가 분명해지지는 않는다. 챗GPT에게 물어봤다. 주인공 에단 헌트의 신념이 초래한 후폭풍을 다루는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여섯번째 시리즈에서 에단은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더 큰 위험을 만들고 더 어려운 임무를 낳게 되기에 폴아웃이라는 표현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경직된 원칙이 만든 후과(後果)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재앙적 위기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책은 충분한 공통점을 지닌 듯 보인다.
이 책은 워싱턴의 전문가, 전현직 관료들 그리고 베이징과 서울에서 실시한 300건 이상의 인터뷰 내용에 기반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서술이 30여년간 북한 인사들과 나눈 대화 경험이나 각국 주요 인사들의 회고록, 언론보도, 공식 간행물 등에 근거하고 있음도 강조하고 있다. 현재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앨리슨 후커(Allison Hooker)가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 대통령의 의도를 180도 다른 방향으로 대변했다는 비판이나, 사심 없는 저돌적 성격 때문에 ‘벌꿀오소리’라는 별명을 지녔던 조셉 윤(Joseph Y. Yun) 전 주한대리대사의 돌파력에 대한 호평 등 저자의 다양한 인물평은 수많은 인터뷰로부터 근거한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2000년 이전까지의 기록서로 꼽히는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의 한국현대사 명저 『두 개의 한국』(초판 길산 2002)의 후속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초점이 북미협상으로 옮겨간 데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작고한 오버도퍼의 명저만큼이나 이 책은 귀하다. 다만 『폴아웃』과 함께 같이 봐야 할 저서들도 있다.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Hecker)의 『핵의 변곡점』(창비 2023) 역시 유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물론 『폴아웃』은 헤커 박사의 책보다 더 구체적인 정책결정 과정에 특화하여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의 속내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은 분명하다. 한편 트럼프 1기 정책과 관련해서는 워터게이트 보도의 주역으로 유명한 대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가 당시를 다룬 3부작 중, 2017년 위기를 집중적으로 보여준 『공포』(딥인사이드 2019)나 김정은-트럼프의 친서 내용을 자세히 공개한 『분노』(가로세로연구소 2020)가 빼놓을 수 없는 참고서이다. 두번의 북미정상회담을 다른 시각에서 다룬 글, 전 안보보좌관 존 볼턴(John Bolton)의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시사저널 2020)의 4장과 11장 역시 참고할 내용이다. 『폴아웃』은 눈에 띄게 볼턴을 무시하고 있지만, 볼턴의 기록 또한 매우 꼼꼼하게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 검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폴아웃』과 볼턴 회고록의 내용을 대조하다보면 해당 시기 볼턴과 비건의 날선 논쟁들이 재조명된다. 이 점에서 조엘 위트에게는 미안하고 우리로서도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볼턴의 글에서 참조할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다. 볼턴은 2019년 하노이회담 노딜(결렬) 직후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6월 12일에서 7월 27일 사이의 한국 방문을 요청하고 판문점회동 혹은 동해안의 선상회동을 중재했다고 쓰고 있다. 유사한 내용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김영사 2024)에도 드러난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9월 삼지연에서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동해안에서 북미 간 함선 정상회담을 갖자는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기록한다. 『폴아웃』은 아쉽게도 이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내용을 몰라서라기보다는 제안의 비현실성 때문에 생략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김정은 위원장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 하나하나를 재검토해야 하는 정책적 요구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노이회담 당일의 회동 내용을 이 책만큼이나 생생하게 재현한 글은 없다. 비건 특사의 시각에서 본 그림이라는 점에서 가장 미국적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날의 진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사실적인 내용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보적이다. 백미로 평가받는 17, 18장을 읽다보면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양측의 실무진이 만들어낸 성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오랜 논의를 통해 양측 실무진은 장문에 걸친 공동성명 초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합의안 초안은 평양 교향악단의 케네디센터 공연, 미국 프로농구팀 평양 초청, 그리고 미국의 연락사무소를 구 동독대사관 부지에 설치한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었다. 종전선언 합의안도 만들었으며, 동시에 미국 측은 10억 달러에 달하는 이득을 북한에게 안겨줄 제재 해제안도 상부로부터 승인받고 있었다고 알려진다. 마지막 순간 북의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수정안을 조금만 빨리 가져왔더라면 이 모든 합의가 빛을 봤을 것이라는 저자의 아쉬움과 탄식은 하노이 노딜의 진실을 보여준다.
요컨대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미국의 오만함과 북한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가 결합된 소위 ‘전략적 인내’ 정책의 주된 책임자는 오바마 대통령이었고, 그의 잘못된 정책결정 과정이 미국의 대북협상을 번번이 좌초시켰다는 아쉬움이 저서 곳곳을 지배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지지는 분명하지만, 하노이 회담장에서의 그의 변덕 또한 노딜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매서운 날이 서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빅터 차(Victor Cha)의 포린 어페어즈 원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North Korea as it is)을 둘러싼 논쟁에서 저자와 역자는 한목소리로 따진다. 쾌도난마식 논리가 과거의 구체적 사실을 복기한 데 근거하지 않는 한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며, “미국은 자신의 강압능력을 과대평가했고 북한 지도자들의 안보에 대한 결의를 과소평가했다. 김정은 등장기의 오바마처럼 하노이에서의 트럼프도 그러했다”(Choi Jong Kun and Joel S. Wit, “True North?: Missed Opportunities,” Foreign Affairs 2026년 7/8월호)는 성찰과 열변은 전략적 무시론자였던 빅터 차의 뒤늦은 협상론에 대한 냉소로 가득 차 있다. 700면을 넘어서는 장문의 저서를 다 읽다보면 이제 ‘외교’로 돌아가기는 늦어버렸다는 저자의 우려가 느껴진다. 남북 대화를 위해 바늘구멍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담화를 따라 이 책을 샅샅이 뒤지다보면 문득 느껴지는 저자의 이런 결론에 망연자실해지는 독자들도 있을 법하다.
그래도 우리는 한반도의 ‘파이널 레코닝’, 즉 최후의 결산을 그려나가야 하는 당사자이다. 이 책을 재삼재사 독해해야 하는 이유이고, 이를 돕기 위해 열일 마다하고 번역에 나선 두 역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