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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권태선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 책과함께 2026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 왜 중요한가

 

 

김희원 金希媛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hee@hankookilbo.com

 

 

 

대통령에 비판적인 뉴스를 보도하자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고 소송을 건다. 언론사에는 과징금을 때린다. 감사원, 국민권익위, 경찰까지 총동원해 이사장을 조사하고 해임한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언론 탄압이냐고? 2020년대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권태선 전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장이 윤석열정부 기간 동안 직접 겪고 목격한 일들이다. 그가 쓴 책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는 민주주의가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고다. 공영방송 MBC를 권력에 상납하지 않기 위해 싸운 기록이며, 언론인들 스스로 외압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추동하는 격서다.

저자는 2021년 8월 방문진 이사장에 취임했다. 7개월 뒤 대선으로 정권 교체가 예고되자마자 새로운 권력의 MBC 흔들기가 시작됐다. 2022년 3월 대통령직 인수위가 방문진에 전례도 없고 공영방송 독립 취지에도 맞지 않는 업무보고를 요구한 게 신호탄이었다. 이후 박성제 MBC 사장 해임 시도, ‘바이든 날리면’ 사건을 보도한 MBC 기자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더니 2023년 2월 방문진에 대한 감사원 국민감사가 시작됐다. 결국 그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권이사장을 해임했다.

책을 읽는 내내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권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정말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책장마다 펼쳐졌다. 애초에 ‘방문진이 MBC 경영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사유부터 감사원 국민감사의 요건에 맞지 않았다. 감사원은 무차별적으로 자료를 요구했고 답하지 않은 내용이 쓰인 답변서에 싸인을 하라고 내밀었다. 방통위는 감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사장 해임을 통보했다.

한숨 사이사이에 또한 놀라움의 감탄사가 나오기도 했다. 당치 않은 압박에 권 전 이사장은 감사 실시의 근거와 이유를 밝혀달라고 묻고, 변호사 조력을 요구하고, 조사 절차의 문제점을 기록해 문서로 남기려 하고, 방통위 조치의 부당함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꿋꿋하게 대응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포기하고 제 발로 걸어나가지 않았다. 이 소소하고 고통스러운 대응이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분투의 기록은 개인의 수고 또는 이사장 자리를 지킨 승리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싸움은 정권으로부터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고 그 여정에서 쟁취한 중요한 이정표를 기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난 6월 22일 서울 중구 정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이 책 북토크에서 권 전 이사장은 말했다. “과거 많은 패배의 기록들이 있었지만 승리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승리를 하는데 분투한 분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잊히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권 전 이사장과 방문진 이사들은 기념비적 판결이라 할 두개의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하나는 2023년 9월 방문진 이사장 해임에 대한 집행정지였고, 또 하나는 2024년 8월 이진숙 방통위원장 등 2인의 방문진 이사 선임에 대한 집행정지였다. 이명박정부 때부터 KBS와 MBC를 장악하기 위한 수순으로 막무가내 이사장 해임이 반복됐지만 법원은 한번도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본안 소송의 판결과 무관하게 공영방송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온 관행을 법원 스스로 깨뜨렸다. 이사 선임 집행정지는 방통위가 5인 합의제의 취지를 어기고 대통령이 임명한 2인 위원(이진숙·김태규)만으로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인선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위법하다는 취지여서 더욱 파장이 컸다. 2인 체제의 결정들이 줄줄이 소송으로 이어졌다. 아직 위법/적법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최종 답을 구했다고는 못해도 중요한 질문이 던져진 것이었다. 애초에 합의제를 근간으로 만들어진 위원회를 정권이 힘으로 형해화해도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판결들은 사법부가 행정권력을 견제함으로써 민주주의 수호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공화국의 기본원칙임을 확인하고 실천한 것이었다. 권 전 이사장은 방문진 사건에 전념해온 조용환 변호사에게 공을 돌린다. 조변호사는 100면이 넘는 방문진 이사 선임 집행정지 신청서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의 존재 여부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여타 체제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앞선 2023년 9월의 판결―방문진 이사장 해임 문제―에서 권이사장의 해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전례에서 벗어나 모두의 예상을 깬” 법원의 결정으로 “진실로 구조된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적 헌법질서”였다고 역설하고 그를 통해 “행정 권력의 남용에 대한 사법적 통제 가능성을 확인하고, MBC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사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음을 말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유일한 방송사인 MBC마저 권력에 장악될 위기에서 다시 한번 법원이 자유민주적 헌법질서를 위해 나서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사가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라면서(252면).

공영방송이란, 언론이란 무엇인가. 민주주의, 시민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책은 또한 이것을 말한다. 내란으로 치달은 정권의 자폭과 MBC의 역할을 서술한다. 언론 불신을 만든 과거 언론매체들의 과오를 언급하고 유튜브 저널리즘이 과연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또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공공서비스미디어 플랫폼 설립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기자들에게 언론의 존재이유를 유념한 ‘성찰적 전문직주의’(326~39면)를 주문했다. 시민사회도 소비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KBS는 지키지 못했는데 MBC는 지켜냈습니다. 도대체 뭐가 달랐던 걸까요?”

앞에 언급한 북토크에서 한 KBS 기자가 권 전 이사장에게 물었다. 절절한 질문이었다. KBS는 윤석열정부에서 이사장이 해임되고 사장이 바뀌고 수신료 분리징수까지 단행되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MBC처럼 외압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이다. 명분이 있다고 해서, 언론사들이 당한 일이 억울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공영방송을 지키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 분투 없이 열리는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