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6 가을] 통권 213호
심사경위

 

2026년 6월 신동엽창작기금 운영위원회에서는 김해자 백지연 이주혜 정우영를 제44회 신동엽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신동엽문학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6년 5월 31일까지)의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하며, 시·소설·평론 각 부문에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시와 소설은 단행본, 평론은 발표 원고 기준). 추천위원(창비의 시·소설 기획위와 『창작과비평』 상임위)들과 심사위원이 선정한 총 7편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김보나 『나의 모험 만화』, 남현지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상 시), 김유나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백온유 소설집 『약속의 세대』, 함윤이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이상 소설), 권영빈 「포스트 한일 관계 서사를 향한 마음의 지리학: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보경 「2020년대 시의 비인간 주체와 리듬론」(이상 평론).

 

심사위원들은 7월 20일 모임에서 토론을 펼친 끝에 무정한 시선으로 세계의 고통을 그리면서도 끝내 미래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려는 고투가 담긴 남현지 시집(창비 2024), 한국사회의 굵직한 사건들과 개인의 일상이 만나는 서사적 국면을 치밀하게 펼쳐 보인 백온유 소설집(문학동네 2026), 대상 작품을 곡진하게 살피며 역사서사가 나아가야 할 길을 탐색하는 빼어난 주제의식의 권영빈 평론(『오늘의문예비평』 2025년 가을호)을 제44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심사평

 

김해자 시인

본심에서 살펴본 시집들에서 공통적으로 ‘트랜스-인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계가 이미 멸망하고 소멸했다는 감각이 비인간 존재나 내면의 목소리를 빌려 곳곳에서 출몰하는 풍경을 보는 느낌이랄까. 시선의 상호교차를 통해 인간중심적 사유와 감각을 넘어서는 동시에 ‘사람다움이 무엇인가’를 근원적으로 혹은 뒤집어서 질문하는 작품들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중 김보나의 『나의 모험 만화』는 둔갑술 같은 만화를 매개로 하여 펭귄과 박쥐와 거북이와 토마토와 맥주와 감자칩에 이르기까지 주체를 거침없이 확대하는 시적 몽환이 두드러진다. 동시에 “불행이 생의 주제라고 요약하는 대신”(「물가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열심히 걸어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 같이 진화하자”(「윙스팬」)고 속삭이는 발랄한 언어로 탄성과 신명과 해학과 자유의 모험을 안겨준다.

남현지의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은 ‘나’와 ‘당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낯설게 감각하고 사유하려는 태도와 시선이 개성적으로 드러난 시집이다. 울음과 감정을 좀체 흘리지 않는 이성적이고 담담한 언어들로 구축된 문장들에서 고독하고 소속이 희미한 채 “아주 작은 조각의 형태로”(「축적과 이동」) 존재하는 고립무원의 ‘나’가 바깥이나 타자를 향해 가는 차분하고 진지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세계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풍경을 각개로 대면하며 미래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려는 고투이자, 봉쇄를 풀고 ‘당신’에게 나아가는 영혼의 여정은 세계의 본질을 해석해보려는 투지로 보이기도 한다. 발버둥치다가, 점점 안 보이다가, 어느덧 삭제되는 세계와 주체의 소멸을 넘어서는 길은 “우리가 같은 영혼을 가졌다고”(「하나의 문만 열린다면」) 믿어버리려는 의지나 꿈이 아닐까 질문하면서 간절히 문을 열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시가 아닐까 숙고하게 하는 시집이다.

소설 부문에서 합리와 미신, 상식과 주술을 뒤섞으며 환상을 버무리고, 독특하고 이질적인 인물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가운데 단단하고 미려한 문장이 돋보이는 함윤이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자개장이나 거울 등 사물과 특정 장소를 매개로 벌어지는 비현실적 전개 또한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규범과 법칙을 벗어나보려는 진취적이고 파격적·역동적인 시도로 보인다. 김유나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견디고 살리고 돌보면서 버티는 주체들의 운명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절박한 생존의 압박 속에서 웃음처럼 터져나오는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너 하는 그 일」이나 막막한 현실을 견뎌내는 「이름 없는 마음」과 「랫풀다운」 등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밀도 높은 작품들이다. 백온유 소설집 『약속의 세대』는 아주 작은 것에서 거대한 균열의 징후를 발견하며, 믿음이 사라지고 약속이 깨지고 기대가 무너진 시대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돌봄 혹은 신뢰에 금이 간 가족관계의 상흔과 사이비종교의 거짓 약속에 희생당한 존재들, 사회적 참사에 이르기까지 시선의 폭이 넓은 동시에 섬세하고 치밀하며 스케일이 장중하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폭력과 소외와 고통을 독특하고 내밀하게 접근하는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 모순 또한 놓치지 않으려는 문제의식과 공의로운 감각이 주목할 만하다.

평론 부문에 오른 김보경의 「2020년대 시의 비인간 주체와 리듬론」은 가속의 시대에 비인간 되기, 혹은 비인간과의 공존 혹은 공동의 주체-되기를 수행하는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반복·중단·감속의 리듬과 과하게 연관시키거나 등치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에도, 근래 시단에서 보이는 새로운 경향에 애정 깊게 접근한 유의미한 담론이었다. 한편, 김금희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통해 포스트 한일관계의 서사와 지형을 살펴본 권영빈의 평론은, 김금희의 소설이 그렇듯 타인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탐구이자 인식론적 지리학으로 읽혔다. 지구적 수난과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개인 혹은 국가와 사회집단이 어떻게 자기성을 생성하면서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놓지 않은 채 상처와 수난의 기억-서사 및 역사를 딛고 나아가는 태도가 신의롭고 주제의식 또한 묵직하다. 더불어 정동감을 지닌 마음의 지리와 상호작용의 공존과 공생을 실현하는 기반으로서의 물리적 공간에 대한 탐구 또한 괄목할 만한 비평적 응답이라 여겨진다. 서로 보존하며 복원과 수리를 함께할 관계성의 총체로서 타자를 바라보게 하며, 정의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웅숭깊은 마음의 지리학이다.

수상자인 남현지 시인, 백온유 소설가, 권영빈 평론가를 마음 깊이 경하하며, 작품을 통해 서로 겹친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게 해준 다른 분들께도 축원을 전한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올해 신동엽문학상 본심에 오른 작품은 근래 한국문학이 다루는 예민한 시대적 주제들을 다양한 층위로 드러내고 있다. 인류 공동의 삶이 직면한 시대적 위기에 대한 현실적 진단을 바탕으로 문학이 고유하게 드러내는 이행과 전환의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작품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시에서는 김보나와 남현지의 시집을 두고 숙고하였다. 대중문화적 상상력을 자유롭게 탐사하는 김보나의 시는 친숙한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비인간 주체와 물질의 상상력에 대한 활달한 감각이 돋보이고 최근 젊은 시의 경향이 잘 감지되는 시집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남현지의 시는 견고하고 함축적인 시어들의 건축학적인 배치를 통해 주제를 꼼꼼하게 되새겨 읽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의 시들은 절망, 부재, 상실로 다가오는 무겁고 고단한 현실을 차분하고 논리적인 시선으로 직조한다. 시집의 각 부마다 또렷하게 변별되는 주제와 구성적 입체감도 인상적이다. 좋은 시는 세계를 읽는 풍부한 산문적 시야를 내장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남현지 시집의 수상을 지지하였다.

소설에서는 세 작품집이 경합했다. 함윤이의 소설이 탐색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들과 몽상의 형식은 독특한 발화를 통해 시대적인 정동을 포착한다. 김유나의 소설은 섬세하고 곡진한 이야기들을 통해 현실의 결핍과 모순을 형상화한다. 절망적 현실에 짓눌리지 않는 인물들이 지닌 생기와 활력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이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백온유의 소설집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시대적 사건들과 개인의 일상이 만나는 서사적 국면들을 실감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매우 당대적이다. 믿고 있던 세계가 무너진 후 인물들이 겪는 감정적 고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소설의 시선은 상투적인 반전이나 납작한 아이러니를 허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취약한 존재들이 겪는 생존의 고투를 묵묵히 따라가면서 감정을 세심히 보듬으며 궁극적으로는 ‘삶이 이곳에 있다’는 소설적 진실을 웅변한다.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다채롭고 풍부한 ‘발견’의 서사를 신동엽문학상의 이름으로 호명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비평에서 김보경의 글은 최근 시들이 다루는 비인간 주체의 문제를 시의 리듬론과 연결하는 창의적 기획이 흥미로웠지만, 인간중심주의 비판에 대한 익숙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 일부 시 해석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권영빈의 글은 포스트 한일관계 서사가 나아갈 지점을 입체적으로 진단한 비평적 시의성을 지닌다. 박완서, 최은영, 김기태, 타와다 요우꼬 소설과 연결하면서 김금희 소설의 맥락을 읽는 유연성도 주목되었고, 소설이 역사를 바라보는 유의미한 방식에 대해 탐구하는 세밀한 해석의 과정에 설득되어 흔쾌히 선정에 합의할 수 있었다. 끝으로 한국문학의 귀중한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을 깊이 음미할 수 있었던 토론의 시간에 감사하며 올해의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이주혜 소설가

심사에 앞서 중심으로 세운 신동엽 정신은 ‘발이 땅에 닿는 문학’이었다. 오래된 이 은유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문학이 세계를 읽고 노래하는 한가지 방식이라고 할 때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의 무한함에 따라 도래할 문학의 가능성 역시 다양할 수 있다는 낙관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소멸의 기척을 보낸 지 오래이므로, 방금 말한 낙관은 어둠의 유리창에 이마부터 부딪혀보려는 ‘잔인한 낙관’(로런 벌랜트 『잔인한 낙관』, 박미선·윤조원 옮김, 후마니타스 2024)일 수도 있겠다.

김보나의 『나의 모험 만화』는 세계의 전경을 활달하게 펼쳐 보인다. 만화적 상상력의 면적이 무한에 가깝게 늘어나는 건 시인이 눈길을 주고 호명하는 (비)인간 주체들의 범위가 넓기 때문일 것이다. 그 광활한 시공을 만화 주인공처럼 모험하는 시인의 손에는 어쩐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깃발이 들려 있을 것 같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갔던 오래전의 군중처럼 위기와 불행이 예상되는 그 뒤를 홀린 듯 따라가고 싶었다.

남현지의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을 논의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한 형용사가 ‘무정함’이었다. 시를 읽는 내내 무정한 시선으로 소멸의 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수동적이고 정적으로 보일 것 같은 그 모습은 내면의 발버둥과 고함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기묘한 능동태의 장면이었다. 온몸으로 우주를 앓으며 각자의 건강은 각자 알아서 ‘반드시’ 챙기자고 에둘러 말하는 시인의 서늘한 낙관에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김유나의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작가 스스로 ‘쓸 수 있는 만큼의 진실’을 찾아 정교하게 쌓아올린 세계가 애틋하고 믿음직하다. 속임수와 배신 앞에서 무너지는 마음들이 끝내 세계를 등지는 쪽이 아닐 때 김유나가 내미는 진실의 조각은 작지만 눈부시다. 눈이 부셔 눈물이 찔끔 나올지라도 그쪽을 계속 바라보고 싶어졌다.

백온유의 『약속의 세대』은 탐조등의 시선을 담고 있다. 약속이 깨져버린 기약 없는 세계에서 건질 수 있는 모든 잔해를 건져보겠다는 작가의 야심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특히 서스펜스를 능란하게 펼쳐 보이면서도 작가가 독자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게 백온유의 서사를 따라가는 내내 기대를 배신당하면서도 거짓의 다른 이름인 그의 허구를 굳게 신뢰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김보경의 「2020년대 시의 비인간 주체와 리듬론」은 최근 한국시의 세계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른바 ‘가속류’ 시들과 ‘비인간 주체’라는 키워드를 리듬의 미학을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려는 비평적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어쩌면 리듬이란 시뿐만 아니라 비평에도 깃들어 있겠다고 생각했고, 개성있는 리듬으로 이어질 다음 글을 기대하게 되었다.

권영빈의 「포스트 한일 관계 서사를 향한 마음의 지리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예리한 시선뿐 아니라 서사의 방향을 전개할 때 품었을 마음까지 짐작해보려는 평론가의 곡진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이었다. 흔히 날카로움과 정확함을 신뢰성의 기준으로 삼는 비평의 장에서 작가가 그리는 세계와 그 세계가 드러낸 지리를 성실하게 더듬어가는 태도가 오히려 그의 관점을 지지하게 했다.

수상자들에게 무한한 축하와 경의의 마음을 보내며 함께 읽고 쓰는 동료로서 이 세계를 함께 앓고 노려보자고 인사를 건넨다.

 

정우영 시인

시 분야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보나와 남현지의 시집이었다. 특이점이라면 남현지 시집이 지난해 최종심에도 오른 작품이라는 것. 남현지의 어떤 문제의식이 연달아 두번씩이나 선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을까. “온 우주가 바라는” 것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지지하는 열성독자들에게 어떤 염원을 불러일으켰다는 뜻인데. 나는 그 점을 신기해하면서 그의 시집을 읽었다. 남현지 시집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이 살아 있다. 그가 열어놓은 시의 세상에 푹 젖어들 수는 없으나, 이방인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오늘 서울 날씨」처럼 짐작 가능한 우리의 여기를 시로 변주한다. 가없는 확장으로 가지 않고 물리법칙을 이탈하지 않는 선까지만 밀어붙이는 것이다. “무수한 우주”가 마트 안이다(「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그러나 그도 최근의 다른 시인들처럼 불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안타깝게도, 버섯 같은 핵폭발에 따른 불길 속 멸망을 예감하는 것이다.

김보나의 시는 만화경처럼 흥미롭다. 시의 겉과 속이 시적 맥락 안에서 능숙하게 서로를 감싸고돈다. 게다가 젊은이다운 패기와 재치도 있다. “어머니 여기는 미예요, 미/어머 어떻게 알았어요 나 미애예요”(「슈베르트 방은 말한다」) 같은 천연덕스러움도 장착하고 있다. 허무와 가련, 위로와 위무 같은 제스처는 없다.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 발랄하게 자신을 채색한다. 의젓하다는 듯 스스로를 잔뜩 부풀리는데, 그의 이같은 허세가 나는 애틋했다.

소설 분야 최종심에 이른 세 작가가 나는 다 고마웠다. 지금 여기, 우리 사는 세상의 간난신고를 온전히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다. 땅위를 딛고 선 자가 여기를 말하지 않고 저기를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공허한 일 아닌가. 함윤이 소설은 흥미롭다. 여기를 그리면서도 ‘기묘한 세계와의 연결 통로’를 열어놓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통로로 인해 여기의 핍진함이 흐릿해진다는 데 있다. 저기의 힘을 빌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을 만큼 여기는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뜻일까. 여기에서는 불길한 조짐으로 여겨질 저기의 힘을 끌어들이는데 나는 이게 불만이다. 기담은 기담일 뿐, 삶의 본질일 수가 없다. 필연의 어그러짐 속에 잡혀 있는 ‘나’를, 현실과의 부딪침 속에서 깊이 궁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유나 소설은 지금 여기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한다는 점에서 믿음직스럽다. 그는 여기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제목처럼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을 탐구하려는 것처럼 비친다. 일상에서 그렇듯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관계 맺느라 애쓴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마음 나누느라 고군분투하지만, 계속해서 어긋난다. 김유나는 그 어긋남을 당차게도 밀어붙인다. 씩씩하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게 삐끗 엎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게 참 안쓰럽게도 웃긴다. 나는 이 발로가 김유나의 애틋한 마음이라 여긴다. 현실은 비감한데도 그 비감을 견딜 수 있는 건 본능적이다시피 한 애틋한 마음 덕 아닐까.

백온유 소설은 서사가 풍부하다. 단편도 장편처럼 읽힌다. 한겹 속에 다른 겹이 펼쳐지는 구성이다. 구조적 모순을 바라보는 선도 굵다. 그래 그럴까. 현실에서 끌어왔는데도 소설의 전개가 왠지 편하게 다가들지 않는다. 인물들의 생각과 움직임을 쫓아갈 뿐, 그것들에 쉬 동화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소설과 읽는 나 사이에 막이 하나 있는 것처럼. 나는 이 작가가 나와 밀당을 하자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소설을 펼쳐 읽고는 했다. 『경우 없는 세계』와는 다른, 이질적인 독법이었다.

평론 분야에 오른 권영빈은 김금희 장편 『대온실 수리 보고서』가 함의하는 게 무엇인가를, ‘포스트 한일 관계 서사를 향한 마음의 지리학’으로 해석하려 한다. ‘마음 둘 곳’을 박탈당한 ‘강영두’와 ‘안문자 할머니(마리코)’가 그것을 되찾거나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시공간적 여정을 살피면서 이를 통해 포스트 한일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의미있는 독해이고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대상작들을 줄이고 보다 심도 깊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김보경의 「2020년대 시의 비인간 주체와 리듬론」은 내게 놀랍게 다가왔다. 이렇게나 불친절하고 어지러운 작품들을 리듬의 관점으로 해석하려 들다니, 하는 점에서. 요즈음 유행하는 ‘텍스트힙’과 ‘트랜스’, ‘비인간 주체’들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밀쳐둔 형국이었는데, 김보경 평론가 덕에 이리저리 둘러보고 찾아 읽게 되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이 평론에서 동원하는 ‘리듬’과 내가 생각하는 ‘리듬’ 사이의 괴리로 인해 그의 논지 전개가 내게는 그다지 살갑게 와 닿지 않았다. 애썼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고민과 토론 끝에 당선작을 정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전한다.

 

 

 

수상소감

 

우리의 잔해들

 

남현지 南弦志

1977년 출생. 2021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 있음.

 

 

까페에 들어오는 손님이 전혀 없는데도 직원은 계산대 앞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계속 닫힌 문을 향해 서 있는 직원을 보다가 매장에 음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정적은 실수일까요, 고장일까요, 아니면 어떤 의지일까요. 써야 할 글을 잊고 정적에 휘말립니다. 직원에게 가서 “음악이 없습니다……” 말을 건네고 싶지만 음악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함께 정적 속에 있다는 것만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부턴가 읽는 사람에 대한 믿음 없이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을 일으키고, 쓰는 사람이 봉착한 곳에서 읽는 사람이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저를 구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 시집의 시는 대부분 거리를 떠도는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걷는 동안 곁을 스쳐가는, 소음에 가까운 그 말들은 누군가의 목과 입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맥락도 없이 던져지는 농담이나 욕설일 때도 있고 분노와 애원일 때도 있습니다. 잔해들. 육체를 거치며 틀어지는 공통의 말들. 사용하고 허공에 버려지는 말들. 출처를 밝힐 필요도 없이 흔해빠진 말들. 이 일상어들은 종종 어떤 운동의 잔여물처럼 뜨겁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느덧 혼잣말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친구와의 대화나 어머니의 말로만 이루어진 시를 쓸 때도 있었습니다. 이 언어들로 시를 만드는 작업은 우리의 잔해 속에 오래 머무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숟가락만 얹은 사람 같은데 대신에 저도 멋을 크게 포기했으니 그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함께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수한 호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상소감

 

멈추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아

 

백온유 白溫柔

1993년 경북 영덕 출생. 2017년 MBC 창작동화대상을, 2019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 소설집 『약속의 세대』 등이 있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작가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한때는 무관심과 무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내가 쓴 글을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 가장 두렵지 않겠는가. 시간이 좀 흐르니 소설을 쓸 때 가끔은 내가 독자의 무반응을 어느정도는 예측하고 감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예측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관심을 견디는 일도 작가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다).

어느 순간부터 가장 두려운 것은 타인의 무관심보다 내 안에서 샘솟는 회의감이 되었다. 무관심으로 인해 회의감이 동반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겠다.

내가 쓰는 이 글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 불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괴감. 무의미한 일에 너무 긴 시간을 쏟아버렸다는 자각.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간다면 어디로? 독자의 비판이나 상찬과는 상관없이 나의 중심축이 흔들리며 이 길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확신 없이 노트북 앞에 앉는 일은 너무나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다. 그때는 다시 써야 할 이유와 동력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회의감을 잠재우기 위해 집어드는 것은 내 책이다. 과거의 내가 쓴 소설. 내 글은 정말 좋아, 적어도 나한테는. 이 글은 의미가 있어, 적어도 나한테는.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그렇게 되뇌곤 했다. 그 말에 수긍하기도 했다가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약속의 세대』는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첫 단편집이다. 만족스럽다,는 말을 내 입으로 여기저기 하고 다녔다. 그러나 소설집을 출간한 뒤에도 나는 종종 회의감에 빠져들곤 했다(마감은 계속 찾아오니까). 그럴 때마다 『약속의 세대』를 펴 들었다. 그때마다 확연하게 용기가 생겼고 회의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분명 자부심을 느꼈다.

‘아무도 읽지 않더라도, 나는 이 소설을 쓴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 마음이 다시 나를 지탱해주었고 책상 앞에 앉게 했다.

이 책으로 상을 받을 수 있어서 몹시 기쁘다. 기쁨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가 얄팍하게 느껴질 만큼, 충만하다.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창비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습작 시절, 매일같이 읽었던 황정은 작가님의 책 제목을 빌려 나의 다짐을 말씀드리고 싶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수상소감

 

무위의 시간만은 아닌

 

권영빈權寧斌

1984년 부산 출생. 2023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주요 평론으로 「죽음보다 명백한 것, 비평보다 확실한 것」 「인간적인 것을 향한 (부)적절한 인카운터」 등이 있음.

 

 

나는 벌써 수년째 지역 사립대학에서 연구와 강의, 글쓰기를 병행하며 사는데 그 속에서 기억할 만한 순간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다. 학기 단위로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이 일정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혹 마음이 통하는 동료를 만나거나 학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학생을 보면 기쁘지만, 아무래도 소속감이 옅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위치와 불안정한 생활이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고립감과 단절감이 상수가 된 시대이다보니 이러한 마음이 그다지 특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인문학을 가르치는 업의 특성상 환경에 맞추어 적당히 타협하기 어렵다는 점이 심신을 지치게 하곤 한다.

그러다 작년 여름 초입에 내가 사는 부산에 부모님이 방문하셨다. 벌써 여러번 오셨지만 학교 박물관을 함께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서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국보 「동궐도(東闕圖)」가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 관한 글을 구상하고 있던 차에 마침 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전시된 것을 보니 마음이 묘했다. 내가 이미 수년간 몸담아온 학교에서 우연한 발걸음으로 중요한 레퍼런스를 만났다는 것이 어쩐지 겸연쩍었다. 그때가 최근 몇년 사이의 기억할 만한 순간이다. 오늘의 수상소식이 그 기억에 효능감을 부여해줬다기보다, 나를 스쳐가는 무위의 시간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해준 것이다.

늘 힘이 되어주시는 부모님과 형제들, 특히 남편 박상석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고전문학 연구자이자 한때의 극작가로,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와 창작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보다보면 학문과 예술을 삶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즐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 같아 본받게 된다. 지금껏 그랬듯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를 돌보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내게 영향을 주신 은사님들 중에서도 특히 권명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우연히 들어선 부산에서의 학문의 길을 밝혀주시고, 내가 문학연구(자)라는 이름으로 틀지어진 공부 방법에 갇히지 않도록 당신의 실천으로 격려해주셨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부족함이 많은 제자이지만, 글을 쓸 때 알게 모르게 선생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겠다.

투박한 글을 좋게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이번 수상을 나의 글쓰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주신 무척이나 명예로운 형태의 지도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더욱 진지하고 성실하게 작품과 비평을 대하겠다는 다짐으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아울러 ‘젊은비평가모임’에서 함께 공부했던 구성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신의 작품과 사회평론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이 과분한 소식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비평전문 문예지 『오늘의문예비평』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역사가 오래된 문예지이지만 문학비평의 사회적 성격과 위상이 달라져간 세월 속에서 ‘오문비’ 역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한국의 심각한 서울중심주의와 수도권에 편중된 문학 창작과 유통의 인프라를 극복하고픈 마음으로 지역에 대해 궁리하면서 매호 좋은 기획과 필자를 내세우려 힘쓰고 있다. 물론 이때의 ‘지역’은 그저 부산이라는 오문비의 물적 기반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지역, 그리고 ‘나’라는 가장 국지적인 위치성을 설명하고 이들을 서로 매개하는 관점이기에 이와 관련된 담론적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오문비의 동료 평론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신동엽 시인이 보여주었던 역사와 정의에 대한 감각, 문학적 투쟁의 의지는 오늘의 문학과 비평이 꾸준히 모색해야 할 지점들이다. 수상자로서 이런 종류의 부담을 느끼는 것조차 무척 주제넘은 일이라는 점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고립된 채 그저 흘려보낼 뿐인 나날이 실은 동시대 첨예한 풍경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한 무위의 시간을 직시하려는 애씀 자체가 신동엽의 문학정신에 담긴 변혁의 의지와 아주 멀지 않은 것임을 나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으면서 느꼈다. 비극적인 죽음들을 품고 오랜 세월 폐쇄되었던 대온실이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생태계로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속을 오간 이들의 서로를 지탱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다시 열릴 수 있었던 것처럼 역사는 일관된 견딤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소설이 보여준 것처럼,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과 측정 불가능한 마음들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 많은 이들의 도움과 행운으로 다시 출발선에 선 만큼 겸허하게 나의 일을 해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