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새로운 시인을 맞이하는 자리가 늘 긴장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자리에서 ‘새로움’의 의미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반갑게 낯선 새로움은 가능할까. 신인상 심사의 기준이 여전히 새로움이라면 왜인가.
심사위원들이 전에 없던 목소리를 찾는 까닭은 예상치 못한 말의 기예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어 끝내 ‘시’로 말하겠다는 용기를 지닌 시인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으로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2026년 창비신인시인상에는 총 1,579명이 귀한 원고를 보내주셨다. 예년보다 부쩍 늘어난 편수에 해당한다. 다섯명의 심사위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응모작들을 검토한 뒤, 이 가운데 4인의 작품을 최종 검토작으로 삼아 논의를 진행했다.
「모자 쓰기」 외 5편은 기존 질서와의 경계면에 맞닿아 있는 미성년 화자의 발화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형상화한다. 무엇보다 심해처럼 들끓고 북극처럼 차가운 타인의 영혼과 삶을 향해 시의 화자가 손을 뻗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 눈이 갔다. 하지만 후반부에 배치된 작품들이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재치있는 단어에 기대 언어를 낭비하거나, 촘촘한 사유를 거치지 않고 표면적으로 유사한 이미지들을 엮어 나열하는 데 머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혼란스러움에 잠식되지 않고 세계의 양면성을 응시하는 특유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좀더 밀고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재단판 위에서 태어난」 외 5편은 일상적인 언어를 활용하면서 삶의 세목에서 시적인 순간을 발견해내는 작품들이었다. 익숙한 풍경과 감정을 차분히 응시하며 미세한 떨림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어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시의 흐름을 가만가만 따라가다가 새로운 발견의 순간에 동참하는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시 속에 담긴 세계가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그 때문에 독자를 더 넓은 사유의 공간으로 이끄는 힘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버섯의 맛」 외 4편은 당선작과 더불어 오래 논의됐던 작품이다. 감각을 풀어내는 방식이 세련되었고, 조어에 대한 시인의 관심 또한 작품만의 미학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어 장점으로 부각되었다. 편차 없이 고르게 수준 높은 시를 쓰기까지 숙련의 시간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믿음이 갔던 동시에, ‘새로운 시’와 ‘좋은 시’는 기성 시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주어 심사위원들이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매력적인 이미지와 서사에 끌려 독자가 당도한 곳에서 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간혹 기성 시인들의 시를 뚫고 나오지 못한 한계가 보인다는 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확신을 읽어내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천국」 외 4편은 생생한 문장에 서린 결기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쓰인 문장들이 내보이는 노골성마저 빛나게 읽히도록 만드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천국이고 지옥이고 나발이고 죽은 후에 갈 곳 없으면 좋겠다”(「천국」)는 문장이 가리키듯 어디로도 나아가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선명한 인식과 그런 현실을 자꾸 확인하려는 성실성, 절망으로 한달음에 굴러떨어지지 않으려는 응전, 기어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면모가 시인다운 기질의 발휘로 다가왔다. 시란 결국 고백이자 목소리이며, 그 고백이 기지의 세계를 새로운 것으로 뒤집어낼 수 있음을 싸움하듯 일러주는 작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여기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바라는 신인상 작품의 새로움이란 ‘독특한 익숙함’이 아닌 ‘익숙한 독특함’에 있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시의 칼날을 잘 벼려 제대로 써야 할 곳에서 잘 쓰이기를, 그리하여 더 넓은 지평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옥고를 보내주신 많은 분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만의 자세를 계속해서 품고 가다보면 다시 반갑게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곧.
강성은 양경언 유병록 정다연 황인찬
수상소감
소현 笑賢
drifter. 제주에 산다. 도모 동인과 함께하고 있다.
그날은 오후 세시 넘어 뭔가 제대로 된 걸 먹고 싶었다. 마라탕을 시키고 빨래를 널었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전화가 찍혀 있었다. 아…… 마라탕에 들어갈 재료 중 하나가 소진되었구나 생각하고 콜백을 했다. 마라탕집이 아니었다. 몇가지 사실 확인 끝에 나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꼭 알리고 싶던 몇명의 사람들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급히 씻고 한시간 거리에 있는 엄마 집으로 달려갔다. 가는 동안에 많은 전화가 왔다. 축하해, 미쳤다, 찢었다, 고생했다, 대박이다, 대성통곡, 넋나간 웃음, 그리고 기쁨의 상스러운 말들……
그날 이후로 며칠이 흘렀다. 마음은 평온하다. 여전히 ‘시치광이’처럼 시를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생각한다. 시를 쓸 때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꿈속에서도 늘 생각하지만 조금 더 책임감을 부여받은 것 같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변화는 시 속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감사한 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점 무명서점의 서점원님께 감사드린다. 서점원님은 늘 좋은 책을 챙겨서 보게 해주시고, 내가 금전적으로 가난할 때 밥을 사주셨다. 마음이 가난할 때는 “너를 믿고, 너를 믿는 사람들을 믿어, 소현아” 얘기해주셨다. 나는 믿기 시작했다.
나의 영원, 가장 사랑하는 시인, 그리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 김소연 시인께 감사드린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 되어버렸을 때, 나는 그를 찾아갔다. 그때 쓴 시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만은 기억한다. “가장 순정하게 시 좋아했었던 소현을 데리고 들어와요. 그래서 걔랑 같이 시를 써요. 걔랑 헤어지지 말아요.” 이제 나는 무섭지 않다. 더 먼, 더 깊은 바다를 향해 헤엄친다.
도모 동인 동료들. 김나율 김윤리 나혜 박규현 여세실 이상영 이새해 차호지(청구기호순)에게 감사드린다. 이들의 동료라는 점이 늘 자랑스럽다. 늘 은은한 애정을 느낀다. 존경하고, 응원하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
모두 사랑하지만 특히 시를 가장 많이 봐준 나혜. 넋이라도 있고 없고 혼절할 듯 울던 나혜, 정말 고마워. 12월에 콘서트 예매할게. 따라와.
그리고 두번째로 시 많이 봐주고 고생한 이새해 시인, 좋은 일들이 나타날 거라는, 계속 힘을 내어보자는 당신의 편지는 늘 저의 곁에 있습니다.
응원하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순 없다. 너희들이 있기에 계속할 수 있었어.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구남동 응원부대(어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아버지가 주신 멋진 만년필로 시를 여러편 썼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보낸 통신문에 딸이 되었으면 하는 직업란에 ‘작가’라고 써주신 어머니. 내가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어릴 때, 목이 쉴 때까지 책을 읽어주신 어머니. 늘 집에 책이 마르지 않게 채워주신 어머니. 당신의 자랑이 되기 위해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