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2026 가을] 통권 213호
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올해 예심위원으로 김현 오연경 유현아(이상 시 부문) 문진영 전기화 최민우(이상 소설 부문)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기타 부문)를 위촉했다. 예심위원들은 만해문학상 운영규정에 따라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2026년 5월 31일까지) 출간된 한국어로 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예심을 진행하였다. 각 부문별로 진행한 예심회의에서 논의 끝에 아래와 같이 시집 4종, 소설 4종, 기타 3종을 본심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강성은 『슬로우 슬로우』, 김언희 『호랑말코』, 김혜순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이민하 『우울과 경청』(이상 시),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김혜진 『달걀의 온기』, 조경란 『반대편 사람 주의』, 조해진 『빛과 멜로디』(이상 소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반헌법행위자열전』(1~4권), 정병호 『긴 잠에서 깨다』, 정수일 『문명교류학』(이상 기타).

마찬가지로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위촉한 4인의 본심위원들은 8월 10일 1차 본심을 열고 총 11편의 본심 진출작을 대상으로 한 심사에서 앞의 발표문에 나온 대로 시집 2종, 소설 2종, 기타 2종을 ‘최종심 대상작’으로 결정했다. 만해문학상은 최종심인 2차 본심에서 수상작(상금 3천만원)을 선정한다. 아울러 본상과 다른 장르의 작품에 특별상(1천만원)을 수여할 수 있다. 9월의 2차 본심(최종심)을 거쳐 수상작이 결정되며 본심위원 명단 및 자세한 심사평은 『창작과비평』 2026년 겨울호에 발표된다.

최종심 대상작 6편에 대한 예심평은 다음과 같다.

 

 

 

최종심 대상작 예심평

 

 

 

시 부문

 

강성은 시집 『슬로우 슬로우』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이면을 꾸역꾸역 들여다보는 듯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오래된 기억들을 소환해 결국 이것은 우리의 감각이라고 넌지시 제안한다. 길지 않은 시 한편 한편에 다시금 살아내고 있는 사라져간 생의 마음들이 있다. 꿈같은 날들이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잃어버리고, 내일이 없음을 자각하며 갇혀 있는 마음들이 서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직접적 저항을 걷어낸 자리에 자발적으로 소환하는 시의 힘이 있다. 강성은의 시는 지구를 둘러싼 아픈 마음들과 함께 있다. 그것이 설령 답답하고 슬프고 괴롭더라도 함께 있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김혜순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는 가득한 고통으로 썼던 시들을 뒤로하고 “찬물을 몸에 끼얹듯” 쓴 시이며 “리듬이 찾아오면 그냥 받아 적”은 시이고 “웃음의 그릇”에 담겨 있던 시이다(「김혜순의 편지」). 시인의 편지에 담긴 고백에 귀 기울이면서도 동시에 시집을 통해 독자가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삶의 비극과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울음의 그릇’에 담긴 ‘뜨거운 물을 끼얹는’ 고통의 시. 몸부림이 아니라 ‘몸 버림’에 대한 것이다. “슬픔으로 팽팽한 철사”(같은 글)를 끊고, 깊은 바닷속에서 춤추는 말미잘의 리듬으로 “몸에서 나가”(「몸에서 나가는 연습」)기를 권하는 시집을 통해 얻는 해방을 뭐라 일러야 할까. 다시 시인의 고백을 끌어오자면, “발 없는 명랑한 귀신”(「김혜순의 편지」) 되기.

 

 

소설 부문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 실린 소설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민낯’을 적나라하게 되비추는 듯하다. 상대의 얼굴빛에서 그 삶의 기름기를 가늠하는 시선, 상급지와 하급지, 전세와 자가라는 구분으로 상대는 물론 스스로의 존재마저 등급화하여 배치하는 시선을 내재화한 인물들이 소설 곳곳에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이로써 속물성이라는 단어조차 거추장스러워진 현재를 되비추면서도, 작가는 어떤 가능성들을 애써 환기하려는 듯하다. 너무도 멀어졌기에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외면할 수 없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부여잡고 우리의 안녕을 묻는 김애란의 소설은 오늘날 문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끔 이끈다.

김혜진 소설집 『달걀의 온기』에 실린 소설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도 복잡한지를 각기 다른 각도와 거리에서 조명한다. 이야기는 때로는 아이러니의 색채로 물들며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지기도 하고, 아스라한 온기로 뭉클해지기도 한다. 다만 어떠한 경우라도 온기란 다른 존재 없이는 불가능하며, 언제나 우연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소설집을 관통한다. 불쾌와 온기, 희망과 불신, 누추함과 고귀함이 조용하게 뒤섞이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진실 앞에 고개를 주억거리게끔 만들면서, 김혜진의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한국문학이 제시할 수 있는 어떤 미더운 태도를 제시한다.

 

 

기타 부문

 

정병호의 『긴 잠에서 깨다: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은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해온 30여년을 인류학자 자신의 구술로 남긴 유작이다. 이 책이 증언하는 것은 ‘말의 힘’이다. 1989년 홋까이도오에서 젊은 인류학도에게 건네진 제안에 대한 응답은 마침내 여덟차례의 발굴과 115구의 유해 수습, 2015년 ‘70년 만의 귀향’으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그의 응답은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타계 이후 동료와 제자들이 구술을 엮어 펴낸 책이라는 사실은 그 주제를 형식으로 완성한다. 흩어진 뼈를 여럿의 손이 한 사람으로 세우듯, 흩어진 말도 여럿의 손을 거쳐 한권이 되었다.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에게 말을 되돌려주는 일이 문학의 오랜 소임이라면, 이 책은 그 소임을 실천의 현장에서 수행한 성취다.

『문명교류학』은 정수일 선생의 사후에 출간되었지만, 「여는 글」까지 마무리한 그의 최후의 저작이라는 위치를 갖는다. 그도 이를 예감했을까, 이 책은 정수일의 학문을 집대성했다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참고할 선행 전범이 별로 없는 문명교류학의 체계와 내용을 구축하기 위한 분투가 잘 녹아들어 있으며,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크게 확장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이러한 성과가 연구실에서의 고증과 사유만이 아니라 발로 찾아가는 조사, 강의와 토론을 통한 공동작업 등에 기초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학문을 하는 모든 이에게 큰 모범이 된다. 전쟁과 갈등이 지배하는 시대에 문명교류와 ‘범지구적 보편문명’의 가능성을 역설한 그의 학문적 실천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김현 오연경 유현아 문진영 전기화 최민우 및 『창작과비평』 상임편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