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과거를 미래의 예지로 만드는 지혜
▶ 『창작과비평』의 가족이 된 지 근 50년이 되었다. 1980년부터 시대에 대한 통찰과 분석이 좋아 드문드문 사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기구독도 하게 되었는데, 성에 차지 않아 1966년 창간호부터 1980년 56호까지의 합본을 사서 읽기도 했다. 『창비』는 가히 나의 시대인식과 성찰의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지난호는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를 얻을 수 있는 성찰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특집 ‘과거가 오늘을 묻는 방식’은 숱한 질곡을 헤치며 민주와 존엄을 지켜온 우리 대한민국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고, 우리가 지금 성찰하고 설계해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사유를 제공한다. 특히 정주아의 「비로소 시작되는 과거: 사북을 말하는 마음」은 나를 과거로의 시간여행으로 이끌었다. 1980년, 그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친구들과 정선, 태백을 여행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때 만난 탄광촌 사람들은 아비규환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 시절 나는 탄광촌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난해 가을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작은 촛불 하나조차 꺼져버린 듯한 절망적 풍경이었다. 분규와 원한이 있었더라도 오히려 예전이 사람 사는 고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킨 세상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개인의 존엄, 공동체의 안녕, 공공선의 실현을 위한 길은 과연 무엇일지 묻게 된다. 우리는 언제 가야 대동(大同)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까.
옛 시절은 척박했다. 무서운 세상이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에 질문하거나 저항하면 좌파, 빨갱이로 낙인찍히던 시절. 주류 기득권의 논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의 삶에 등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데, ‘서사’가 우리에게 새로운 예지와 빛을 선사할 것을 믿는다. 『창비』가 항상 새롭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시대를 통찰하며 내일을 위한 예지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호
흑백론을 넘어서야 할 때
▶ 계절의 이행기마다 선물처럼 오는 『창비』다. 지난호 특집을 가슴 쓰리게 읽고, 대화 「미국의 전쟁, 새로운 국제연대」도 두어번 거듭 읽었다. 트럼프의 행보를 합리로, 점증으로, 혼돈으로, 아니면 쓰레기통 모형(garbage can model)으로 아무리 진단을 해보아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우끄라이나와 베네수엘라, 이란 문제가 그렇다. 이번 대화 글을 통해 트럼프의 대외정책의 원인기제와 그 파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국제관계 및 남북관계에서 ‘변혁적 중도의 국제연대’와 그 고리로서 ‘남북연합’을 언급한 게 눈길을 끌었다. 선제타격을 멈추고, 흡수통일론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을 위한 국내외 동의 기반을 확보하라는 이야기가 중요하게 와닿았다.
편혜영의 소설 「속담에 의하면」은 처음에는 작가의 의도가 쉽게 잡히지 않았지만, 점점 나름의 느낌을 갖게 되었다. 유도선수와 경찰로 일했던 주인공의 남편은 모든 세상사를 흑백논리로 규정한다. 철저한 사형 집행주의자이고, 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세상을 나쁜 놈과 곧 나빠질 놈으로 나누었다. 또 자신의 고통을 알아봐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갈랐다. 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에는 아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분류했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하고만 행동했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자기반성은 그의 관심이 되지 못했다. 갈라치기식 흑백론이 거듭될수록 마치 우물 속에서 또다른 우물을 파듯 단절과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흑백론이 해방공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보수 기득권이 지지기반을 획득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왔다는 점도 떠올려봄직하다. 이승만이 그랬고, 호남의 지지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해 호남 인구수의 2.5배나 되는 영남의 지지기반을 획득할 의도로 갈라치기를 시도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시적 분열을 구획 짓는 정치적 흑백론을 망원경으로 보아야 한다면, 소설 속에서는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흑백론에 현미경을 들이댄 듯하다. 편혜영의 이 소설은 이해관계나 개인의 경험과 상황에서 얼마든 이분법적 세계관이 배태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 아닐까.
강길봉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시의 힘
▶ 무더운 여름이다. 『창비』 2026년 여름호를 읽는다. 여세실 시 「너의 여자 아빠」가 인상 깊다. “새는 귀가 어디 있는지 알아?/전혀 궁금하지 않았는데//네가 질문을 하고 나서부터 날아가는 새들을 유심히 보았다”는 구절을 읽으며 문득 신도림역 1번 출구 앞 공터, 벤치에 앉은 사람을 발견하면 몰려드는 비둘기들을 떠올렸다. 그 무리에서 뒤처진 한마리와 한참 동안 눈을 맞춘 적이 있다. 어릴 때의 그 기억은 아직도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나이가 미수(米壽)를 지나는 지금 되돌아보자니 어린 시절의 내게 새는 꿈이고 동경이었다.
매일 오가는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대신 한강 다리를 타고 합정역으로 향하는 길, 차창을 넘어다보며 저 강이 흘러가 닿을 인천의 월미도 아니면 무의도를 떠올린다. 시인의 다음 시 구절이 떠오른다. “봄눈이 내리면 나를 재우러 오세요” “달이 밤을 거부하고 새가 창공을 마다하는 봄에/내 베개가 빚어내고 있는 꿈을 보러 오세요” “이른 봄이 꽃을 사양하는 사이/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 밤과의 헤맴만이 재미있습니다”(「아무 약속도 없는 내일」) 살아오며 떠나보낸 무수한 장면과 수많은 사람들. 지금은 많이 변해 있을 어느 장소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나를 응시하던 짧은 발을 뒤뚱거리던 새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손톱만 한 살구가 곧장 열릴 듯하던 J시의 어느날과 그 시절 기약 없이 훌쩍 떠났던 그 사람을 추억한다.
양준호(梁埈豪)
잊혀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는 많지만,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북사건은 잊혀졌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 해도 사건의 진상까지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군부에 장악된 언론이 검열을 피해갈 내용으로만 왜곡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당시 20대였던 나 역시 9시 뉴스를 통해 ‘폭동’을 일으킨 광부들, 그들에 의해 린치를 당한 여성의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사북사태’를 불순세력의 폭동으로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기자의 모습도 아직도 떠오른다. 정주아의 특집 글이 ‘비로소 시작되는 과거’라는 제목을 단 것은, 사북사건을 이제라도 새롭게 바라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이 글을 문학평론 특집의 맨 앞에 배치한 것 또한 사건의 의미를 현재로 불러오는 것 같다. 글을 읽으며 “광주와 사북은 그 출발은 달랐으나 유사한 국가폭력을 경험했던”(17면) 것이라는 구절이나 “노동쟁의에 대해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민간인에게 보복한 ‘국가폭력’ 사건”(18면)임을 강조한 대목에 크게 공감했다. 사북사건이 그 진실을 알고자 하는 생각도 들지 못할 만큼 잊혀진 사건이었다면,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건을 알릴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는 “모두의 과거를 위한 화해”(23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저자는 ‘사북사건’이 아닌 ‘사북항쟁’으로 명명해야 하며 사라져간 산업의 뒤안길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침 올해 이재명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제1회 광부의 날을 맞이하며’라는 글을 올리고 사북사건 또한 언급했다. 대통령이 사북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항쟁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하는데, 이것으로나마 광부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