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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2000년을 여는 젊은 시인 20인
강신애 姜信愛
1961년 경기도 강화 출생. 1996년 『문학사상』에 「오래된 서랍」 등으로 등단.
내 영토는 이동중
봄비 내리는 날 이사갈 집 둘러보았습니다
내 속에 일산화탄소 가득하여
몇날 며칠 헤매다 고른 방 하나
거기 그토록 오래 꿈꿔온 숲이
마을을 양파처럼 감싸고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실제의 숲은 상상의 숲보다 어질고 장엄하여
꽉 막힌 세월 건너온 나를 겹겹이 안아주었습니다
숲을 바라보는 마음 절로 붕대 풀려
다복솔에 감긴 안개가
앙상한 내 가슴을 다복다복 채우고
낯선 배우의 暗行을 바라보던 박새 한 마리
서둘러 상수리나무 뒤로 퇴장합니다
걷거나 잠들 때에도 귓바퀴를 지잉 울리는 숲의 耳鳴을
마음 어둔 헛간에 유예해놓고
어떤 드문 시간이 나를 데려다주기만을 바라왔던 나날들
이제 상상의 숲에 갇힌 나의 사랑 끝내야 할 때
굽이치는 수백의 광기를 밟고 선 숲의
저 그윽한 무표정을 배워야 합니다
비닐우산 속 흐린 시야 너머로
거미는 제가 만든 거미줄을 타고 푸른 灣을 건넙니다
저 자신 숲입니다
그대는 저로 하여 숲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셨습니다
소슬한 바람 맞으며
저는 아직 숲에 서 있습니다
그 끝에 깜깜절벽 만나더라도
그대가 감추신 고통의 성찬은 눈부셨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대의 덫에 걸려든 사향쥐
다리를 물어뜯어 잘라내서라도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대와 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뭇별처럼
혹, 당신 없으면 저 홀로 별똥별 되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까봐
그 빈 자리 당신은 숲으로 채워놓으셨습니다
옹달샘에 물이 차오르듯
제 속의 마르지 않는 본능, 그리움은 이제
나무와 새들 사이에 머뭅니다
숲의 베일을 한겹 들추면
허리가 휘는 일몰이 따라 들어오고
붉은 틈새로 텃새가 둥지를 찾아 날아갑니다
그대 겨드랑이에서 매번 허물어지던 둥지 떼어내어
떡갈나무 높은 가지에 올려놓습니다
발톱 부르트도록 흙 나르고 나뭇가지 물어오지 않아도
제 둥지는 나무 위에서 숲의 일부가 되겠지요
저 자신 숲입니다
그대가 바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