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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4·13총선, 그리고 그 이후

 

 

권기홍

영남대 경제학부 교수

 

박원순

변호사, 총선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권기홍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명숙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사회 및 정리: 편집부

--

때: 2000년 4월 25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108-92

 

사회  선거 뒤끝에 다 바쁘신 분들이 총선 이후의 정국을 진단하는 창비의 좌담에 참석해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저 선생님들이 각자 이번 총선 때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고, 거기에서 우리 민의를 어떻게 느꼈는지 말씀하시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번에 가장 각광을 받으신 박변호사님이 먼저 말씀해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열기와 냉소의 민의

박원순  글쎄요.(웃음) 총선시민연대(총선연대)에서 전국 투어를 했는데, 청주에서 참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사과 박스 하나를 연단으로 삼아서 얘기를 하는데, 청중들이 아주 조용하게 듣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다 듣고 나서 어느 할머니가 “야, 정말 말 시원하게 잘한다. 기호가 몇 번이냐?” 하는 거예요.(일동 웃음) 사실 총선기간 내내 우리가 하는 말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선 연설회를 하면 사람들이 거의 안 오는데 골목길에 들어가서 악수를 해보면 분명히 반응들이 있고요. 그래서 이것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굉장히 걱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우리 유권자들이 낙선운동의 취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국민들이 분명히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15대 국회가 보여준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적 절망이 있었고, 그리고 사실 낙선운동이 문제점도 많고 대안도 없는 제한적인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낙선율을 높여준 걸 보면 2000년대를 시작하는 이 선거에서라도 뭔가 바꿔내야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신광영  저는 이번 선거가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정당들은 당선을 위해서 유세도 하고 선거운동도 하는데, 사람들은 당선운동이 아니라 낙선운동에 관심이 있어요.(웃음) 그러니 전체적인 흐름이 이상했죠. 유권자들이 당선운동에 관심이 없으니까 과거의 관행인 금품살포 등이 상당히 심각해지고, 그럴수록 일반 유권자들은 기존의 정당 중심의 선거활동에 대해서 더 염증을 느끼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이상한 선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많은 국민들이 뭔가 바뀌기를 바랐는데 사실 대안세력이 부각되지는 못했죠. 대안을 바라는데 대안은 없고, 대안이 아닌 정당들은 광분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으려는 형태로 선거가 진행되다보니까 축제도 아니고, 과거처럼 폭력이 난무한 건 아니지만 열기와 냉소, 그런 것들이 혼합된 이상한 선거였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權奇洪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정당명부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에요.

權奇洪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정당명부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에요.

 

권기홍  저는 구경 삼아 경북의 몇몇 선거구에 가보았는데, 열기와 냉소라는 지적은 대단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층민중들의 허무주의랄까 냉소주의, 정치학 용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표를 행사해도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결국은 금권선거를 부추긴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금권선거가 문화화했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그리고 박변호사님 고생 많았지만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이 실질적인 효과도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상당부분 역작용까지 일으켰다는 평가도 많이 합니다.

한명숙  영향을 못 미친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역영향을 미쳤다는 거죠. 조직폭력배들이 감옥 한번 갔다 와야 별을 달듯이, 낙선운동이 벌어진다면 오히려 거기에 한번은 이름이 올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유일하게 정당인으로 참석한 것 같은데요. 저는 평생 처음으로 한 당에 소속되어서, 그것도 선거대책위원회의 여성위원장이라는 직책으로 선거를 치르게 되어서 선거 한복판에서 우리 당으로 유권자들을 오게 하는 역할을 했는데요. 유세를 하거나 조직활동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변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고요. 특히 총선시민연대가 그 싹을 틔워 80% 정도가 이에 찬성하는 대단한 수준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끌어올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젊은 층은 물론이고 전체적으로도 유례없이 투표율이 저조했던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이중성, 이런 것을 굉장히 실감했어요. 그러니까 개혁을 상당히 원하면서도 개혁에다 자기 발을 담그지는 못하는 거지요. 그 다음에 민주당에 속해서 전국적으로 유세를 다니면서 부유층 지역에도 갔었고 서민 지역에도 다녔는데요. 새롭게 느낀 것이 뭐냐면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이나 서민층 동네,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 이런 지역에 갔을 때의 반응은 대단했어요. 하지만 고층아파트나 깨끗한 백화점 같은 데를 돌 때는 반응이 굉장히 냉담하고 쌀쌀하다는 것을 피부로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까 서민층이 투표에 많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가 됐어요. 변화에 대한 요구, 그리고 개혁에 대한 요구는 있음에도 자기가 그것을 실천하고 행해야 할 때 아직까지 행동화하지 못하는 측면, 이중성이라면 이중성 같은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朴元淳 총선연대 활동이 투표라는 단순한 행동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참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은 소중한 성과지요.

朴元淳 총선연대 활동이 투표라는 단순한 행동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참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은 소중한 성과지요.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생활정치

 이중성의 문제, 한편으로는 개혁을 바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단지 유권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강의시간에는 계속해서 학생들에게 참정권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시민권적인 주체로서의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막상 저 자신은 누구를 찍을지 참 결정하기 힘들었어요. 내가 저런 사람에게 표를 주어야 하나? 제가 개인적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당의 후보는 없더라고요.(웃음) 마지막 순간에 투표를 하기는 했지만,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 가운데 서민층은 물론이고 많은 도시 중산층의 경우도 마땅히 표를 던질 후보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부분 기존의 낡은 인물들이 나왔고 새로운 후보들도 정당을 통해서 나왔는데 대체로 정당을 통해서 나오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지요. 그래서 이번 총선의 당선자들이 어떤 식으로 의정활동을 하는가에 따라서 40〜50% 가까이 되는 광범위한 유동층이 어느 쪽으론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것은 지역 변수를 제외한 이야기입니다. 지역표는 상당히 고정표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변화의 욕구도 있고 가능성도 있는데 문제는 정당에 있다고 생각해요.

 

申光榮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선거풍토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기존 정당들과 정책대결^이념경쟁을 벌이는 겁니다.

申光榮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선거풍토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기존 정당들과 정책대결·이념경쟁을 벌이는 겁니다.

 

 국민들이 개혁을 열망하긴 했지만 그것을 위해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변화와 개혁을 정치권이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공천과정에서도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공천결과도 그렇고, 공천과정을 통해서 보여준 비민주적 행태도 그렇고요. 유권자들에게 그래도 희망을 줄 수 있는 후보들을 선택하기보다는 그냥 다선이라든가 이 정도 조직력과 자금이 있는 사람이면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공천이 이루어진 거죠. 결과적으로 유권자를 우습게 본 건데,  정당이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투표율이 올라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였어요. 그리고 그것이 낙선율로만 볼 때 낙선운동이 성공한 요인이죠. 정당에서 충분히 걸러줬다면 낙선율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낙선대상자말고는 도대체 누구를 찍으란 말이냐? 거기에 대해선 우리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그건 저희들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고 보고요. 그래서 저희들이 ‘깐깐한 유권자에 꼼꼼한 선택’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韓明淑 여성비례대표 30%의 허구성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현재의 선거법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의회진출은 어려워요.

韓明淑 여성비례대표 30%의 허구성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현재의 선거법으로는 여성을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의회진출은 어려워요.

 

 거기다 ‘엉성한 후보자’……(일동 웃음)

 예. 깐깐하고 꼼꼼하게 생각해볼수록 더 찍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낮은 투표율을 유권자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오만이고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한림대 학생들이 하도 교수님이나 사회단체들이 투표하라고 하니까 ‘우리는 투표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고 해요. 그건 분명히 정치적 무관심이라기보다는 상당한 절망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제가 유세를 하러 다니면서, 특히 386세대라든지 개혁적인 인사를 지원하러 다니면서 “잘 부탁합니다. 2번은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얘기하면 “다 똑같애. 다 똑같애” 하는 거예요. 들어가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똑같아진다는 거죠. 지식인이거나 경제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숫제 말을 안 하는데 서민들의 경우는 그런 식의 표현을 해요. 불신의 늪이라는 것이 굉장히 깊고, 그것이 일차적으로 정치인의 잘못이기 때문에, 정치계로 들어가는 저 같은 사람들의 부담은 매우 큽니다.

 불신도 불신이지만 유권자들도 정치라는 것이 자기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추상적으로는 알아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점에서는 시민운동이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이는데요. 중앙무대의 정당정치와 삶의 현장의 구체적인 정치, 이것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정치, 그걸 생활정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치가 직접적으로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주고 잘못하면 무언가를 앗아가는 것이라는 점이 체득되지 않고 과연 민주정치라는 것이 구체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놈들 저희가 돈 안 주면 그만이지 다른 놈 돈 주는 것도 못 먹게 한다. 나쁜 놈들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돈을 뿌릴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후보의 경우 다른 후보가 돈 뿌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감시단을 조직한 모양이지만, 심한 경우는 감시단의 활동 자체가 감표 요인이 된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왜 이렇게까지 금권선거가 문화화했느냐 하면 결국 정치라는 것을 그들만의 축제로, 우리의 실질적인 삶에 영향을 안 주는 것으로 생각되니까 그 와중에서 돈 얼마라도 챙기는 것이 남는 장사다 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 아닌가, 생활정치의 부재가 결국은 이런 정치적 허무주의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당(私黨)과 실종된 입법기능

 그 문제는 아마 우리나라의 정당제도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정당은 서구적 의미에서는 사회계급이라든가 사회집단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조직인데, 우리는 그런 공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왜냐하면 우리는 전부 사당(私黨)이니까요. 보스 정치인들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합집산을 통해 정당을 만들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해서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 수명이 3.8년이에요. 강아지 수명만도 못한 것이죠. 공조직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적인 정당의 개념으로는 우리나라 정치를 분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정치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이루어질 뿐,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적인 정치활동은 존재하지 않고 전부 밀실정치죠. 그러다 보니까 일반 유권자에게 정치는, 전에 어떤 분이 청문회에서 말한 것처럼 ‘외계인’들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듯해요.

 국민·유권자·당원 들이 끝없이 소외되는, 그야말로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선거과정이라는 것이 정말 누구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고 선거캠프를 하든 유권자로서 참여하든 하여튼 축제로서 참여의 광장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선거캠프에 오는 사람은 동원된 것이고 지구당 개편대회 앞에 앉아 있는 방청객들도 다 동원된 사람들이죠. 겉으로는 굉장히 요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죽어 있는 정치판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제가 느낀 것은, 총선이란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데, 이 선거에서 정책대결이 이루어지질 않아요. 내가 이번에 국회에 들어가면 반부패기본법을 관철시키겠다든지 그래서 우리 사회를 맑게 하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정책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의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게 우선이고, 그 다음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지요. 지방선거에서 할 일을 총선에서 한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앞으로 그런 것은 지자체로 넘기고 국회의원이 입법자로서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국회의원 선거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개혁문화의 가능성 연 총선시민연대

사회  개혁문화가 선거에서 잘 정착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개선해보자고 해서 움직였던 것이 총선연대인데, 아무래도 이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사실은 일부에서 자꾸 음모론 같은 것을 퍼뜨려서 제가 총선연대에 아는 사람이 많아도 전화 한통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 총선연대의 운동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거든요.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아, 이렇게 하면 우리도 변화의 주체가 되겠구나” 하는 싹을 보여줬기 때문에, 특히 청년층에게 앞으로 정치개혁을 해나가는 데 우리도 한몫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기대하는데, 어떻습니까?

 보통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개입하는 방식은 그동안 저희들이 해왔듯이 의정활동감시와 같은 각종 모니터 결과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도가 정상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면 예컨대 반여성후보라든지 반인권후보라는 식으로 각 분야별 쟁점을 가지고 운동해가는 것일 텐데, 이번에는 모든 시민단체가 영역을 막론하고 다 모여, ‘부패’와 ‘무능’이라는 투박하고 단순한 잣대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겁니다. 많은 분들이 왜 포지티브하게 하지 않았냐, 왜 정책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냐 이런 비판과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저희들로서는 지금의 정치현실에서 그런 포지티브한 운동과 정책적인 것이 먹혀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천적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겁니다. 사립학교법 개정과정을 보세요. 이런 악법이 아무런 여과나 토론과정도 없이 로비에 의해서 통과됐죠. 심지어는 모니터를 위해서 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조차 봉쇄당하면서,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끊임없이 주장해온 부패방지법 같은 개혁법안이 제대로 상정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시민단체들은 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야말로 정치판을 바꿔놓는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생각을 가졌던 겁니다. 그래서 그 결과를 보면 여러가지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지도 못했고, 또 젊은 층의 투표율 저하에도…… 저는 이것만이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네거티브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분명히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와 문제는 불가피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또 방금 한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투표라는 단순한 행동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참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점은 소중한 성과라고 봅니다. 정치권이 어떻게 하든 유권자들이 힘을 결집해서 심판할 수 있고, 심판의 대상이 되면 낙선이라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과거에는 공천만 받으면, 보스에게만 잘 보여 무조건 막대기만 꽂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저희들로서는 개혁법안을 추진하거나 여러 현안들을 의정활동에 반영하는 데 유리한 국면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번에 제도적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16대 의정과정에서는 지난번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았는가 보고 있습니다.

 예. 앞으로 특히 공천과정에서 투명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자기반성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음 17대 선거 공천과정에서는 뚜렷한 개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선생님이 저희들을 칭찬하시면 음모론의 근거가 되니까 그건 편집과정에서 빼주십시오.(웃음)

사회  아까 권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대구·경북지역의 경우에는 총선연대의 활동이 달리 투영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구의 낙선율?

 제가 총선연대의 긍정적 역할을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고요. 다만 아직은 한계가 있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측면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까 박변호사님이 총선연대가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자기비판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현싯점에서 총선연대에 대안적 정치세력을 결성해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면 그건 지나친 것입니다. 이 운동의 발전 결과로 과연 새로운 형태의 대안적 정치세력이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직접적으로 그걸 추구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지원만 하는 것이 옳은지 등등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밖에 여러가지 부족한 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나치게 인물의 투명성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인물 위주의 논의만 팽배해졌고, 그것도 결국 흠집내기 형태의 인물논쟁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제한적이었죠. 또 그것 때문에 정책대결이 안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묻히게 되는 역할도 어느정도는 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이번 총선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성과는, 시민운동이 연대해서 전국민적 지지를 확보해냄으로써 시민단체와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는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걸 현실화해내는 작업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의 성과로 낙선율을 얘기하는 것은 상당부분 허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가 사는 선거구만 해도 당선 가능성이 그래도 있어 보이는 두 후보가 다 낙선대상자였거든요. 그중에 한 사람은 떨어지고 한 사람은 됐습니다. 그 경우에 낙선율 50%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아니, 그 경우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질적 낙선율’이라는 개념을 쓰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전체 86명 중에서 공주지역인가는 3명인가 4명이 낙선대상자였습니다. 이때는 3명이 자동적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당시 여론조사로는 집중낙선운동지역은 경합이거나 우세한 쪽을 주로 선택했던 것이어서, 그걸 기준으로 보시면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해명이 될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다 해도 이 정도 성과는 있었다는 데 촛점을 맞추기보다는, 시민운동의 막강한 잠재력을 확인한 것, 그것을 최대의 성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그 힘을 어떻게 더 구체화해 우리의 정치구도를 본질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은 저희들도 이렇게 떨어질 줄 몰랐어요. 그래서 미리 방어논리로 낙선율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죠. 물론 저희들의 목표는 특정 인물의 낙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정치의 병폐를 없애자는 것이었고, 그건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판·정치구조를 바꾸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막상 선거가 벌어지는 판에 구조를 바꾸자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는 것 아닙니까? 법안을 가지고 개정운동을 벌인다든지 정책을 갖고 나간다든지 했다면, 오히려 부각되지도 않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구체적으로 보면, 특히 수도권지역에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권선생님 말씀처럼 앞으로 그 힘으로 우리가 제도개혁에 좀더 힘을 쏟고, 또 그것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가 소득인 것 같습니다.

 

진보정당의 가능성은 선거제도 개혁에서

사회  총선연대 활동에 대한 비판이랄까, 문제점을 지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총선연대가 부각되면서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시각도 있는데, 신선생님부터 말씀해주시죠.

 사실은 기존 정치권에 도전하는 두 집단이 있었죠. 하나는 총선연대고, 다른 하나는 넓은 의미에서 진보정당, 민주노동당과 청년진보당이 있었는데요. 이 두 부분이 충분히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었는데, 여러 조건 때문에 그런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주요 이슈를 제기하고 전국적인 여론을 끌어모으는 부분에서 총선연대의 활동이 단연 돋보임으로써 민주노동당이 주변화되는 과정을 겪었지요. 그 다음에 구체적인 조직활동 수준에서는 총선연대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또 한나라당도 개혁정치를 하고 민주당도 개혁정치를 한다는 식으로 개혁의 의미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반개혁적’ 혹은 무능한 후보자들이 낙선대상자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총선연대에서 개혁의 의미를 좀더 분명히해주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나름대로 지침을 제시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민주노동당이 상대적으로 득을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는 지역주의와 관련된 문제인데요. 영남지역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막판에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주는 과정이 있었다고 해요. 이건 총선연대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고 생각되고요. 특히 울산 북구 같은 경우는 득표율 차가 1.2%일 정도로 굉장한 시소게임이 벌어졌는데, 막판에 그런 변화로 인해서 민주노동당 후보의 원내진출이 좌절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것이 복잡한 문제이기는 해요. 총선연대의 활동과 민주노동당의 활동이 결합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총선연대가 돌발변수였다고 볼 수 있겠죠. 그것이 향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혹은 진보정당 운동과의 관계설정에서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총선연대의 활동이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이 이루어졌을까 하고 되물었을 때, 역시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것은 제도적인 제약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금과 같이 인물 본위로 이루어지는 소선거구제하에서, 거기에 지역주의까지 합세하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직접 지역구를 통해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좌절의 책임의 일단을 총선연대로 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고요.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공히, 만약에 새로운 제3의 정치적 대안세력을 형성하는 데 공조를 하자,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하자고 한다면, 일단은 지금 현재의 소선거구제부터 다른 형태의 선거구제로 바꾸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바로 그때 이번에 총선연대가 보여준 막강한 잠재력을 결합해서 끌고가야 한다고 봅니다. 전에 여당에서 제안하다가 흐지부지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100% 그대로 적용하면, 계산하기 좋게 300석이라고 할 때 10%면 30석을 따게 되는 것 아닙니까? 5%만 해도 최소한 15명이 될 거예요. 그렇다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단번에 가능한 수준이지요. 이런 제도가 우리 사회에 한꺼번에 도입되기는 여러가지 이해관계 때문에 어렵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시민운동, 노동운동 등이 그런 형태의 제도를 확보하려는 노력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번 선거에서 순수한 의미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도입됐다고 치고 총선연대가 낙선운동은 안하고 리스트를 민주노동당·경실련 등과 같이 내놓았다고 한다면, 아마 2,30명은 당선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봅니다. 7,8% 따는 것은 간단한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간에 정당명부제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지역주의의 극복과도 직결되는 겁니다. 물론 정당명부제 자체가 지역주의를 바로 뛰어넘는 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지역주의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극복해야 하는데, 제3의 정치세력이 등장해 지금처럼 지역주의에 기초한 경직된 양당제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균열을 내면 지역주의는 자동적으로 해소되지 않을까 해요. 세계에서 독일을 제외하고 녹색운동이 현실 제도권 안에서 정당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녹색당 의원 개개인은 지금 지역구로 출마해서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앞으로 수십년 동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당명부제라는 제도 때문에 5,60명의 의원을 확보한, 이제는 뿌리를 내린 정치세력이 된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면 상당히 신선한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원인 자체가 총선연대와 연결되기보다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의식 속에 이념정당, 진보진영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정서가 매우 짙게 깔려 있어서라고 봐요. 그 다음에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선거법 문제가 되는데, 지난번에 선거법 문제로 그렇게 진을 빼다가 결국은 중선거구제, 1인2표제, 정당명부제 이런 것이 다 무산됐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안되는 한, 마이너리티의 국회 진출은 참 어려워요. 우리가 여성비례대표 30%라는 것을 정당법에 명기하기는 했지만, 그 의미는 사실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석이 1:1 정도의 비율이 되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30%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거법에서 그것이 다 좌절됐기 때문에 30%가 되어도 지금 현재 11명에서 16명으로 5명 정도 늘어난 아주 약소한 진전이라고 할까요, 그렇게밖에 안됐습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나 청년계층, 혹은 전문직이나 여성 모두 이 선거법에 의해서는 의회진출이 상당기간 어렵다고 봐요.

 낙선운동 같은 것이 기존 보수정치권에 대해 심판한다든가 경종을 울리고 그렇게 난 길을 따라서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해줬다면 가장 바람직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에서 결국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낙선운동 자체도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탄 느낌, 칼날 위에 선 운동이었지요. 당시 제도권언론이 음모론이니 뭐니 하는 보도를 통해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진보정당이지만 민주노동당도 하나의 정당인데 이쪽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은 민주노동당 자체의 역량에 맡겨진 것이지 낙선운동이 그것까지 감당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다만 권선생님이 특별히 지적하신 1인2표제, 정당기표식 비례대표제 얘기는 사실 선거법 개정운동 당시에도 나왔는데, 그것을 관철하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그랬고, 당시 자민련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강력히 반대를 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지요. 아무튼 저희들로서도 거기에 힘을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갖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까 한선생님이 이념정당은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실은……

 힘들다기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이념정당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정서가 있어서 그것이 하나의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죠.

 그런 요인도 있겠지만 저는 진보정당만큼 철새정당이 어디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만약에 민중당이 시민운동 하듯이 계속 정치운동을 해왔다면 지금쯤에는 집권여당을 넘보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판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이념정당에 대한 지지나 거부감보다 보수정치권에 대한 정치적 절망과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갈망이었다고 봅니다. 민주노동당이 출마 지역에서 평균 13.2%를 득표한 것은 대단한 일이거든요. 저도 아는 상당히 많은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아무 연고가 없는 지역에 출마했는데도, 이 정도 표를 얻었다는 것은 뭔가 있는 것이지요. 또 청년진보당은 과격한 주장을 하면서 선거운동이나 제대로 했습니까? 그런데 곳곳에서 거의 3위는 했습니다. 이건 정말 진보정당이 다른 보수정당의 후보처럼 지역의 풀뿌리로서 땀을 흘리고 주민들과 함께하고,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몇번에 걸쳐서 했다면 이번에 원내교섭단체는 충분히 이루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념정당이라는 깃발만 내세운다고 표를 찍어주지는 않잖습니까?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 이념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해내야 하는데 그걸 못해낸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앞으로 선거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해낼 수 있도록…… 저희들도 그때는 낙선운동을 안할 테니까……(웃음)

 

흔들리는 지역주의?

사회  진보정당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하고 먼저 이번 총선의 의미랄까 하는 것을 살펴봐야겠는데요. 이것과 관련해서 과연 이번에 지역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였는지, 말하자면 지역주의에 근거한 권력 독과점의 붕괴 조짐이 보이는지, 아니면 지역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지, 이 문제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번 총선의 의의에 대해서 정리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지역주의는 충청지역에서 약화되기는 했지만 정치적 갈등구조의 핵심 축인 영남과 호남의 대립구도는 오히려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총선연대 활동의 실패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총선연대가 무능하고 부패한 후보자들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을 내세우는 후보자들을 낙선시키겠다는 것을 또하나의 과제로 제시했는데, 그 부분에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지역주의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남과 호남의 지역주의가 성격이 다르다고 봐요. 영남의 지역주의는 일종의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속성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집권 영향이죠. 군사정권 시기부터 계속해서 그쪽을 지지해왔던 보수적인 성향과 IMF 이후의 경제적인 박탈감을 보수적인 정치세력이 이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삼성자동차의 경우에서 보듯이 부산 시민, 노조, 그리고 한나라당이 이상한 결합을 이루어서 경제개혁에 반대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그런 부분들이 사실 이번 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지역주의의 강화냐 약화냐, 이런 차원의 논의를 넘어서 지역주의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저도 과거에 호남이 영남에 대해서 지녔던 지역정서, 영남이 호남에 대해서 지녔던 지역정서는 달랐다고 봅니다. 호남이 일종의 한(恨) 같은 성격을 내포했다고 본다면…… 피해의식이죠. 영남에서는 좋은 의미에서 애향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이상한 형태로 악용당하고 악순환되어왔는데, 일종의 지역우월주의예요. 그런데 새 정권이 들어서고 호남의 한이 얼마나 풀렸는지 모르겠지만, 영남 쪽에서는 일종의 박탈감 등으로 가다가 급기야 이번 선거에 와서는, 저 자신은 그럴 근거가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단순한 지역우월주의 같은 감정에서부터 한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것으로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지역주의의 강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그 성질이 전보다 훨씬 악성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적어도 DJ정권이 처음 출범했을 때는 지지도가 80% 정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정권이 이 지역에서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지요. 그런데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변질되어서 지금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면 단순히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호남인들이 가졌던 한은 영남인들이 가졌던 우월주의에 비해서는 분명히 객관적인 근거가 있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영남인 너희들은 객관적인 근거가 취약한데 무슨 한 비슷한 것을 품고 있느냐고 매도할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지금 현정부 쪽에서 지역주의의 기원론을 여러번 제기하다가 동시적인 것 아니냐 하는 역공을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은 누가 먼저 지역주의를 부추겼느냐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어차피 거울 효과가 발휘되어서 양쪽이 똑같아요. 80%의 지지도에서 출발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른 데는 정부의 책임이 결정적으로 크다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동진정책’이라는 것을 썼는데, 그 내용은 영남지역의 상층부, 언뜻 여론주도층으로 보이는 상층부 인사들을 끌어들여서 지역개발 공약으로 이 벽을 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대단히 안일한 사고였다고 봐요.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갔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DJ정부가 개혁정부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좌표를 갖고 있다면 설사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개혁연대를 영남에서 시도했어야 하는데…… 이번에 한 석도 못 얻고 졌는데, 이것보다 더 질 수 있습니까? 괜히 엉뚱한 방법으로 한두 석 건져보겠다는 시도들이 자신의 좌표를 잃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글쎄,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지역대립구도가 영남은 심화됐다고 할 수 있고 호남은 그대로 유지됐죠.

 더이상 심화될 것이 없으니까……(일동 웃음)

 충청도가 좀 완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일단 총선연대도 영남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서 낙선대상자가 당선되어버렸고…… 저희 당에서는 사실은 세 사람 정도는 당선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말씀중에 죄송합니다만, 아마 정상회담 발표가 없었다면 한두 석은 건졌을 겁니다.(웃음)

 정상회담 발표가 영남인들의 표를 결집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저희 당 얘기를 하면 수도권에서 선전했고 충청지역에서 그동안 차지하지 못한 부분을 고루 차지했지만 영남에서는 완전히 패했는데, 19명의 비례대표 중 8명을 영남에 배정함으로써 전국정당화를 이루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평과 관계없이 지역구도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이것이 대선 때는 어떤 식으로 우리 정치를 말아먹을지 상당히 걱정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저 역시 지역감정의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를 댈 수 없을 정도로 감정화되어 있고 문화화되어 있는 이 문제에 촛점을 맞춘다고 해서 없어질 것은 아닐 테니까, 일단은 제도적으로 선거법을 바꾸고, 앞으로 남은 3년 임기 동안 정공법을 써야 하리라고 봐요. 부산과 영남의 개혁적인 인사, 단체 들과 공감대를 점점 증폭시켜나가야 한다는 거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영남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이유 있는 저항, 이유 있는 몰표죠. DJ정부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고 앞으로의 견제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이런 측면에서는 그 분석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호남의 정서변화도 정당하게 평가해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처음에 저희가 버스 투어를 할 때는 어디에 가서든 몰매를 맞거나 똥바가지를 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가보니까 전혀 그게 아니었어요. 영남에서는 조금 썰렁한 느낌을 받았지만 쫓아와서 때리는 사람은 없었고요. 호남이나 충청권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하니까 오히려 그 지역 단체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무시했냐?” 하고 반격할 정도의 분위기였어요. 예컨대 지금 호남지역의 무소속이 4명 아닙니까? 물론 민주당 입당을 전제로 당선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DJ의 공천권 행사에 대한 심판이었지요. 한나라당이 당선되지 않았으니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호남 유권자들의 몸부림이랄까 안간힘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충청도도 마찬가지죠. 일부에서는 이인제라는 새로운 맹주에 대한 지지의 이동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충청도의 지역주의가 매우 이성적으로 변화한 결과입니다. 만약 JP가 공천권을 제대로 행사해서 참신한 사람들을 공천했다면 이인제씨가 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요. 이제 유권자들이 후보의 자질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 셈입니다. 낙선운동도 마찬가지죠.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지역감정을 돌파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운동이었어요. 또 하나는 정당의 성향, 수도권에서는 이것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여론기관에서 분석한 것을 볼 때 서민들은 확실히 민주당을 지지하고 중산층 이상에서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이 지난 선거보다 확연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정당의 성향이나 계층적 이익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 역시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역주의·색깔론·분단체제

 우리나라의 지역주의 문제는 결국 정당구조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보스 중심의 정당체제에서 보스가 어떤 지역에 연고를 갖고 있느냐가 결정적이지요. 정치적 차원의 지역주의는 이런 면에서 나름대로 가변성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사회적 차원의 지역주의는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돼요.

사회  그러면 보스들만 없어지면 지역주의는 없어진다고 봅니까?

 정치적 차원의 지역주의는 상당히 약화될 가능성이 있죠.

사회  사회적인 차원과 연결시킨다면?

 사회적 차원은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돼요. 예를 들어 많은 조사에서 나오듯이 결혼상대자로 특정 지역 출신을 택하겠느냐 했을 때 심리적 거리감이 상당히 커요. 일상적으로 결혼이라든가 친구관계라든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상당히 거리감을 느낀다고 보는 거죠. 그런 부분이 해소되어야 사회적 차원에서 지역주의가 약화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건 일정하게는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 아닙니까? 그게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지역주의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사회  우리가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을 비슷하게 쓰는데, 확실히 구별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저절로 갖게 되는 건데 그걸 죄악시하다보면 운동이 잘 안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에 총선연대의 경우에도 지역감정을 규탄하는 식으로 나간 것이 좀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합니다. 지역감정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건데 그걸 기득권 세력들이 악용하는 것을 지역주의라고 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인데, 이데올로기라는 게 역기능도 있고 순기능도 있는 것 아닙니까? 지역주의가 이데올로기라고 볼 때 87년이 지역감정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특히 남쪽에서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극우이데올로기가 약화되니까 보조이데올로기로 활용되면서 그렇게 된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역이 다르다는 것은 음식이 다르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건데, 여성·남성과 마찬가지로 차이의 하나이죠. 그것이 차별적인 기제로 작용해서 정치적인 억압이나 착취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면서, 단순히 차이 수준이 아니라 우월의식·피해의식으로 사회적 작용을 하거든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쉽게 동원이 돼죠.

 지역주의도 우리가 배척해야 할 것이지만 사실 그동안 색깔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민주화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롭혔어요. 이것을 보수적·우익적 정치인들이 악용했잖아요. 그런 색깔론이나 지역주의가 없어지면 다음에는 종교가 대두할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것이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역주의가 순기능을 하고 있네요.(일동 웃음)

 이렇게 정치적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종교문제가 안 나타나도록 지역주의가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보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 종교가 상당히 샤머니즘화되고 정치적으로 영합하려는 요소도 굉장히 강해요. 그래서 정치를 할 때는 그런 사람들이 자주 접근해와요. 앞으로 이런 요소가 세력화되고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한다면…… 저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경계가 되는데, 그걸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못하게 하는 국민운동이나 시민운동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결국은 인권·시민권의 차원에서 영남이나 호남에 사시는 분이 불이익을 당하거나, 차별을 당할 경우에 그것을 구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촛점이 달라지는 거죠.

사회  아까 권선생님도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지 지역주의만 가지고 자꾸 극복하라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지요. 지금 인권 말씀도 하셨는데, 그러면 그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국민통합이라는 말도 하고, 민족을 들먹이기도 하고, 지방분권이나 계급정당 얘기도 나오는데……

 

대안 정치세력의 가능성

 보수정치체제하에서 지역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런 선거풍토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기존의 보수정당들과 전혀 다른 정책대결·이념경쟁을 통해서 그런 구도를 변화시키는 것인데, 사실 이것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거든요. 기존의 게임의 규칙을 바꿔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라고 생각해요.

 정당명부제 등의 선거법을 통한 진보정당의 등장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냐 하는 말씀이신데, 본질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그때 새로이 등장하는 정치세력을 미리 진보정당이라고 못박는 것은 오히려 진보정당의 등장을 어렵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까 한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지역감정 못지않게 색깔론이 있는 상황에서 붉은 계통이라는 얘기에 말려버리면 싹이 자라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진보라는 말보다는 제3의 정치세력, 대안적 정치세력의 등장이라고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내용에 들어가면 그 정치세력을 형성할 주체가 누굴까 하는 문제에 부딪힐 텐데, 구심점이 되는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어찌됐건 상대적으로 진보성이 돋보이는 정당이 되겠죠. 그런데 기존의 보수정당과 그렇게 등장하는 진보적 정당의 차이가 서유럽에서 나타나는 정도의 차이가 될지, 아니면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정도의 차이가 될지 또는 이런 정도의 차이로는 안되니까 이것보다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지, 이런 등등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고 봅니다. 이러한 진전을 이루려면 먼저 제도개혁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두 주체라고 볼 수 있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온건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노동운동은 훨씬 더 세련되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저기능 고임금을 주장하는 노동운동은 설 땅이 없을 거예요. 노동운동의 물적 바탕은 노조인데, 노조는 결국 자신들의 조합원이 상품인 집단 아니에요? 이 상품의 질은 올려놓지 않고 높은 값을 받겠다고 동원체제를 통해 물리력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면 안된단 말이죠. 따라서 노조는 지금 같은 형태에서 훨씬 변해야 할 것이고 세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민운동의 경우에도 그동안은 곧잘 공중전을 많이 해왔어요. 그 안에 시민보다는 명사들이 더 많았죠. 그것이 꼭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다보니까 공중전에 익숙해진 느낌이에요. 시민운동이 바닥의 생활정치 현장으로 들어서고 노동운동이 세련되고, 그리고 이 두 세력이 연합하여 제도개선을 통해서 대안적인 정치개혁을 이루어낸다면, 어떤 점에서는 그것이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  지금 아무리 색깔론이 없어졌다 해도, 여전히 북한이라는 변수가 새로운 진보정당이 출현해서 정치풍토를 바꾸기 어렵게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조금은 다르게 보는데요. 물론 색깔론이 많이 남아 있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고, 지난번 총선에서는 운동권 출신이 10%였지만 이번에는  386세대를 포함하면 약 20%는 될 걸요. 다음 총선에는 4,50%일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동안 남북문제에 대해 세뇌되어왔던 국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제약하던 요소가 많이……

 그건 사실인 것 같아요.

 많이 개방된 것은 사실이고 그 방향으로 가기는 가는데, 그러나 전통적 의미에서 20세기형의 계급정당은 이미 세계적으로 퇴조하는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방적인 변화들을 바탕으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할 제3정당이라고 한다면 좁은 의미에서의 진보정당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대안 정치세력으로서 진보정당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시민운동세력과 민중운동세력 사이의 협조뿐만 아니라 갈등도 있을 수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잠깐 짚어보면 어떨까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새로운 선택

 시민운동세력에도 상당히 다양한 흐름이 있습니다. 예컨대 정치적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는 적극적인 그룹이 있는가 하면, 지금 현재까지는 다수라고 생각되는데 이 다수는 오히려 그런 진보정당을 포함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진출하는 데 길을 닦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만약에 우리가 제도권 정치에 몸을 담근다면, 그 순간 그동안 행사해왔고 앞으로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는 제도개혁에 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세력은 풀뿌리 단체로 끝없이 성장을 계속하면서 오히려 이런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유권자들이 지역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봅니다.

 시민운동 내부에 그런 토론이 있다는 것은 대충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딜레머인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러나 현재 우리 제도권 정치를 그대로 두고 여기에 시민운동이 직접 참여하느냐 안하느냐를 토론한다면 방금 말씀하신 쪽이 그냥 다수가 아니라 훨씬 다수일 거예요. 거기에 들어가면 도덕성을 상실하고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니까요. 진흙탕이니까 말이죠. 그렇지 않고 만약에 새로운 선거제도가 도입되고 그것이 독일식 정당명부제 같은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상황에서 이번 총선연대에 참여했던 집단들이 아까 얘기했듯이 공동리스트를 내는 것까지도 거부할 것인지, 그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까 제가 언뜻 풀뿌리 얘기를 했지만 박변호사님 말씀하신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단순히 공중전만 하지 말고 바닥부터 착실히 다져야 할 뿐만 아니라 생활정치의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적어도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경우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시민운동단체들이 단순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그치지 말고 특정한 구청장 후보를 지원한다든지, 아니면 내부에서 시민후보 같은 사람을 구청장으로 배출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후보를 직접 내서 지원한다는 것이죠?

 그렇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생활정치라는 말을 했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바닥을 다지는 것뿐 아니라 바닥을 다져서 바로 정치가 유권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그 현장에서 시민운동이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싯점의 문제와 현실상황에 대한 판단의 문제가 걸려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컨대 환경연합의 경우에는 이미 후보를 내고 대구만 해도 구청장 정도에는 당선됐잖습니까? 그런데 지금 보면 지역단체들이 사실 자기 몸 추스르는 데도 힘든 상황이거든요. 예컨대 광역도시에서조차 회비 내는 회원이 1천명 이상이 되는 단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지방정치를 포함해서 현실정치에 전혀 들어가서는 안된다든지 하는 순결주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단계에서는 논의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앙에 있는 단체든 지역단체든간에 아직은 시민사회와 대중에 뿌리를 박기 위해 훨씬 더 노력해서, 자연스럽게 지역운동에 그대로 남을 부분과 정치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부분이 분리되고도 안정적으로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데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해요. 그러니까 그게 완전히 틀린 얘기라기보다는……

 싯점 선택의 문제는 남겠죠.

 시민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노동운동을 통해서 기존의 방식대로 새로운 대안적 정치를 추구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결합해서 새로운 대안적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 이 세 가지 길이 전국적인 수준과 지방적인 수준으로 얽히다보니까 상당히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우선 시민운동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대안적인 정치세력화는 일본에서는 이미 상당히 발전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자민당 보수체제를 뚫고 들어가는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가 주로 생활정치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 많은 지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정치가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형태의 이해관계를 스스로 대변하는, 그래서 정치를 생활인 스스로가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시민운동단체들이 대리자를 선거에 내보내서 의회에 진출시키는 거예요. 그 대리자는 또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시민단체가 개입하면서 정치권에 진출하는데, 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의 자민당 중심의 보수정치와 새로운 형태의 시민정치가 부딪치는 현상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노동운동 부분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은 전통적인 방식이었죠. 우리는 노동조합이 완전히 기업별로 되어서 기업 내의 이슈에만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어요. 결국 정치활동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일상활동은 전부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다보니까 그 간격이 너무 큰 거예요. 그 간격을 쉽게 좁히기도 힘들기 때문에 말하자면 노동조합원들조차 표를 던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노동운동이 당면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 문제인데, 이 부분은 사실 기존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좀더 폭넓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은가 싶어요. 서구의 사민당이 과거처럼 노동계급 정당이라는 점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거든요. 환경문제·여성문제도 당의 중요한 정책으로 끌어들여서 이른바 노동계급 정당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보다는 진보적 대중정당의 성격이 강하거든요. 그런 부분들이 민주노동당 형태의 진보정당에서 많이 언급되면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남북정상회담과 정치구조의 변화

사회  지금까지 대안세력의 출현에 장애가 되는 문제로 지역주의를 짚어봤는데, 이번에는 색깔론과도 관련이 있는 남북관계의 영향과 우리 정치구조의 변화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자꾸 변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번 총선에 정상회담이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볼 때 반드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지도 않고, 곧이어 남북정상회담도 열릴 텐데,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저는 영남지역에서 당선 가능했던 비한나라당, 그게 꼭 민주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데 전멸한 데는 남북정상회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옛날에도 집권세력이 써먹은 전술인데 또 이런 전술을 쓴다는 데 대한 반감이고, 또 하나 그것보다 컸던 것은 반DJ 정서를 기본적으로는 갖고 있지만 그걸 귀찮게 투표장까지 가서 표시하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이렇게 되면 서울 쪽에서 싹쓸이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결국 반DJ라는 지역정서가 더욱 확인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총선 결과가 남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가늠하기가 어려운데요. 조금 다른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북정상회담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굉장히 중요할 텐데요. 그래서 회담의 성공이 매개가 되어 여야가 대화정국으로 갈 가능성도 있고, 거꾸로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관계가 지금의 정치적 지평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관해서는…… 여전히 우리 일반 시민들로서는 그것이 어떤 의식을 좌우하는 강력한 요소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고 봐요. 사실 『조선일보』 같은 경우가 일종의 안보상업주의를 자극하면서 누려왔던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깨끗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것이 최장집 교수 사건 등을 통해서 전처럼 작동이 안되는 부분, 그리고 예전에 피해를 봤던 정당이 반대로 북풍을 활용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는 상황, 그리고 운동권 출신들이 후보로 나가서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상당부분 진출하는 상황 들이 있는 것 같고요.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이나 시민운동세력의 정치권 진출 시도가 실패한 것은 어떤 이념성이나 계급성, 진보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존 보수 정치인들이 공들이는 그런 부분을 전혀 실행하지 않고 설익은 상태로 나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소외계층, 노동자들을 꼭 소외계층으로 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소수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이 반드시 노동자 정당이어야 하는가는 더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가 보수 반공세력인 자민련의 몰락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극우에 해당하는 세력, 냉전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세력이 몰락했다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의 향후 정치이데올로기의 지평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큰 몫을 차지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남북정상회담이 본궤도에 오르면 좌파이데올로기에 대한 과거와 같은 알레르기적인 반응들은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89년도에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그런 경향이 나타났는데, 아직 우리나라에까지는 파급되지 않은 거죠. 그런데 남북관계가 정상화의 궤도에 오름에 따라 안보상업주의가 먹혀들어가기는 점점 힘든 상황이 되겠죠.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상황변화가 보수세력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전개되는 측면이 있다고 봐요. 또하나는 민주노동당의 문제인데, 저는 과거의 민중당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정당들은 주로 명망가 중심의 정당이었어요. 조직이 없었죠.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분명히 민주노총을 큰 조직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죠. 환경적으로도 지금 김대중정부하에서 추진되는 여러가지 정책들은 신자유주의적 속성들이 굉장히 강해요. 그로 인해 결국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실업자와 빈곤층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전체적으로는 남북관계의 변화와 이런 상황들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훨씬 용이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n세대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한가?

사회  남북관계의 변화가 끼치는 영향 못지않게 개혁문화의 정착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운 세대의 동향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정치적 무관심이 짙다느니 해서 말이 많은 n세대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던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개인주의, 이런 것들이 너무 일방적으로 비판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나 요구는 정치적인 이슈로 등장하지 못하는가? 왜 60대, 70대는 이런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의사당에서 반영하지 못하는가? 결국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경로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이 심각한 정치적 고립감 혹은 정치적인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자기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이 요즘 학생들의 정서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만든 것이 사실은 나이든 세대들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도 빨리 젊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젊은 학생들은 상당히 합리적이에요. 판단이 분명하고, 나이든 세대들에 비해서 지역감정 같은 것이 적어요. 또하나는 좀더 연령이 낮은 층의 이해를 대표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이해는 정치권에서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인권을 지닌 하나의 시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거든요. 그건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고 한 나라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정치적 주체로서 청년들을 인정하고 대변하는, 그래서 곧바로 참여하는 유권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선거권·피선거권 연령을 내리자는 주장이신지……

 그건 내려야 하는 겁니다. 지금 문제가 뭐냐면 세금은 내는데 투표하지 못하는 층이 많아요. 우리나라의 노동법상으로는 15세부터 경제활동인구이거든요. 그때부터 일을 하면 세금을 내요. 그런데 투표를 하지 못해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조건인 의무는 있고 권리는 없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경우나 고등학교를 들어가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은 전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걸 높아졌다, 낮아졌다라고 구분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물론 과거에 비해서 혁명의식이나 사회의식을 지닌, 이른바 의식화된 학생들은 줄어들었죠. 그렇다고 해서 그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자신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거든요. 나이든 유권자들보다 훨씬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생각이 분명해요. 그래서 오히려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젊은 층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얘기해본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정치인의 충원씨스템이 없는 것 같아요. 서유럽에서는 우리로 치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정치교육이 이루어지고, 대학에서는 완벽하게 정당과 연결되는데, 이 사람들은 이념정당 씨스템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해요. 물론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일하다가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바로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학생들의 의식 자체가 상당히 상업주의적이고, 진로도 이념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쪽으로 흐릅니다. 또 지금은 싸이버공간이 굉장히 활성화됐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투표방법을 다양화해서 싸이버선거도 가능하게 하고, 대학생들의 부재자투표를 좀더 활성화시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정치교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보면 정치교육은 학교의 몫이라기보다는 정당의 몫이죠. 정당이 국민의 정치교육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데……

 지금 집권여당이 그런 것을 전부 가로막고 있어요. 너무 벤처를 강조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조장하고……(일동 웃음) 그래서 오히려 돈만 생각하는 대학생들을 양산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목표인 것처럼 되어 있지요.

사회  총선연대는 n세대 득을 많이 보신 것 아닙니까?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글쎄요. 젊은 층의 투표율 자체는 높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꼭 낙선운동이 득을 봤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그런 네거티브한 운동 때문에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한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찌됐든 득을 봤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웃음) 그 대신 낙선운동이라고 하는 기발한 수단 때문에 어쨌든 관심을 끈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사회  n세대는 네트워크 세대인데, 가령 싸이버공간을 통한 지원이라든가 하는 것이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세력을 키우는 데는 작용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

 네. 그런 점은 있습니다. 근 1백만명 정도가 석달간 총선시민연대 홈페이지에 들어왔지요. 특히 초기에 방송에서 토론이 벌어지면 싸이버공간에서는 훨씬 증폭된 형태로 토론이 번지고, 그런 것이 여러 싸이트로 옮겨가면서 논의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지요. 주로 인터넷 세대인 젊은 세대 사이에 그런 바람이 불면서 기성 정치인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는 영향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방금 정치교육을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정치형태 자체를 보고 배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의 정치형태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너무 배타적이고 유권자들을 소외시키면서 참여의 욕구를 못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큰 문제지요. 또하나는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기적 경향이 높아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당간의 차이가 부각되고, 그래서 저 정당이 되어야 나한테 이익이 된다는 점이 부각되면 그것도 투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저는 30대와 20대는 분명히 다르다고 봅니다. 30대만 해도 아직은 운동의 영향을 받는데, 20대는 그야말로 이미 확보되어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와 풍요를 누리는 세대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아까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부패정치에 싫증을 내고 참여를 안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죠.

 

개혁정치의 정착을 위하여

사회  마지막으로 이번 총선의 의미와 앞으로 개혁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길에 대한 전망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이 좌담에 참석하면서 우리 정치구도를 개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 끝에 제도적인 측면에서 정당명부제 도입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시민운동이 이번에 보여준 그 잠재력을 더욱 확대하고 결집해서 다음 선거에서는 정당명부제가 도입될 수 있는 성과를 올려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시민운동이 정치문화의 변화에 근본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떨어진 분들이나 당선된 분들이나 함부로 하다가는 다음에는 안되겠다는 확실한 경고를 받은 셈이고, 이것이 이른바 제도정치의 질을 40점에서 5,60점으로 올리는 데는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정치의 질을 8,90점으로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대안정치, 그것이 어떤 것이 되든간에 대안정치를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과거의 대안정치라는 것이 굉장히 좁은 의미였다면, 이제는 넓은 의미의 대안정치를 모색하는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고요. 그 다음에는 말씀하신 대로 제도개혁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텐데, 현재는 예를 들어 1% 차이로 이겨서 그것으로 완전히 독식을 하는, 그러니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게임이죠. 그런 게임의 정치틀에서 얻은 만큼 가져가는 식의 비례대표제로 바뀌면 현재 드러나는 정치의 많은 폐해들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대안정치의 모색도 훨씬 용이해지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지금 신선생님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셨기 때문에 비례대표제의 확대 내지는 정당명부제만 도입하면 다 잘되는 것으로 혹시 오해할까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그 전제가 되는 것은 당내 민주화가 아니겠습니까? 당내 민주화가 전제되지 않은 정당명부제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가져올지도 모르죠.

 이번 선거 결과가 어느 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한 특이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여야 양당구도로 가게 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제는 상생의 정치를 펴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인식하고 정치인들이 새로운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앞으로 투명한 정치, 정보를 공개하고 자기의 정치역정을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펴나가는 문화를 만들어야겠고, 다음으로는 결국 정책을 가지고 정책의 차별성으로 대결해서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남북정상회담이 정쟁보다 우위에 있는 민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야의 합의가 잘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시민단체나 여야가 다같이 지속적인 성공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도와서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올려놓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저는 여성으로 국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서 앞으로 노력을 할 것이고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남자들보다 밀실정치라든가 패거리정치, 또는 돈을 가지고 하는 정치, 음모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고 그런 문화에 상대적으로 덜 젖어 있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서도 여성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와야 할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16명이 들어왔지만 여성들도 여야를 떠나서 이런 맑은 정치를 펴는 데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한국정치에도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의 화두,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의 강화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데, 선거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정당의 운영이나 기타 의정의 여러가지 행태에서도 관철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시민의 참여에 의해서, 압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안 정치세력의 등장도 용이해지는 상황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사회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