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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2000년을 여는 젊은 시인 20인
이홍섭 李弘燮
1965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이 있음. 1998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마라도
막배는 떠나고
더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태어나 처음으로
빗물에 삶은 라면을 먹으니
지나간 날들이
다 백척간두와 같다
한발을 더 내디디면 바다였을,
이곳에서는 스님도
고기를 잡고
전복을 딴다, 머리를 깎아본들
이 망망대해에서
무엇을 구할 수 있으랴
이곳에서 모든 배는 막배다
다시 막배가 온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빗물에 삶은 라면을 꾸역꾸역 먹으며
무심히 바라보는 바다
막배 한 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라도를 떠나고 있다
홍련암 공양주보살
홍련암 공양주보살은
홍련암에서만 반평생을 보냈다
열아홉에 시집갔으나
서른에 남편이 이승을 떠났다
과일장사, 고기장사로 두 아들 다 키워놓고
미련없이 절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삼십년
동해바다는 여전히 홍련암 기둥을 때리고
법당 앞 해당화 향기도 여전한데
이제는 자식들이 모시겠다 해도
홍련암을 떠날 수 없다 한다
홍련암 부처님이 내 서방님 같다고
정든 서방님 두고 어디 가냐고
그렇게 말할 때는 꼭 새색시처럼
얼굴이 빨개지곤 하는데
그러면 해당화도 덩달아 붉게붉게 물들어
그 알싸한 향기를
참 멀리까지도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