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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정현백 鄭鉉栢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1. ‘시비걸기’를 넘어서는 문제제기
6월 13〜15일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전국민을 흥분과 열기로 휘몰아갔다. 매스컴들은 엄청난 지면과 시간을 이 역사적 사건에 할애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을 괴수라고 우리 아이에게 설명했는데, 다시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요?”라는 어느 평범한 어머니의 평범한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못한 것 같다. 해묵은 반공이데올로기와 남북공동선언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이같은 국민들의 혼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스타’이미지와 언론의 가세로 증폭된 남북정상회담의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호소력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층 강화된 민족주의 담론이 작동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국민이나 각종 이해집단은 자신들이 지닌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기보다는 이를 자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어렵게 성사된 이 역사적인 사건을 훌륭한 결말로 유도하려는 국민들의 바람이 모든 ‘딴지걸기’와 ‘흠집내기’를 잠재운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국민들이 남북문제에 대해 실용적인 입장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그간의 자세를 벗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상회담을 전후해 국민이나 시민단체가 보인 신중함이나 실용주의적 태도는, 통일논의가 지나치게 정부주도로 흘러가면서 민간운동의 활동공간을 위축시키거나 공론의 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큰 문제들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염려를 갖게 한다. 실제로 정상회담 이후 민간단체들은 대북접촉이 어려워졌음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흠집내기나 시비걸기를 넘어선 좀더 심화된 문제제기와 전문적인 토론을 통해, 이 엄청난 역사적 도약이 초래하는 혼란을 국민들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통일의 큰 방향을 잡아가는 데 있어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참여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여성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도 크다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이 모든 이들의 대화주제가 되던 시기에, 한 통일문제 전문가가 ‘통일이 되면 가장 손해볼 집단’을 꼽은 일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1순위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통일이 되면, 남한남성들은 페미니즘이나 들먹거리는 남한여성보다 북한여성을 선호하게 되리라는 설명이었다. 반 농담조이기는 했지만 여성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남한사회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상업화의 물결과 결탁하면서 무성해지고, 이에 대한 남성들의 경계심도 대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노동력의 주변화’를 통해 더욱 열악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통일, 아니 최소한 남북교류의 활성화만으로도 노동시장이나 사회적 역할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간 여성계는 통일 후 급속히 열악해진 옛 동독 여성들의 현실을 접하면서, 또 동·서독 여성운동가간에 생겨난 갈등과 불화를 지켜보면서, 통일이 성(gender)과 연루되는 방식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통일 후의 미래사회와 관련해서도, 성문제가 성찰되지 않는 통일은 ‘온전한 내적 통일(Innere Wiedervereinigung)’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통일과정에 대한 여성의 적극적인 개입이 단순히 여성의 지분 확보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간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한 새 시도와 결합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2. 민족주의 담론, 민족국가 그리고 여성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언술과 함께 남한사회 내에서 민족주의 이념을 고양시키고 있다. 지난 반세기를 거치면서 나타난 남북한간의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한 민족임을 확인하는 일이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우리 민족처럼 거의 반만년 동안 외세에 위협받고 고통당해온 민족에게 민족주의 담론이 주권을 지키는 생존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민족주의가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혈통적 민족주의 혹은 문화적 민족주의에 근접했는데, 특히 남한의 경우는 분단 이후 극단적인 자본주의 경쟁사회 그리고 군사주의 문화에 의해 더욱 경직되었다. 이 이념이 통일문제와 결합될 경우 지니는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민족의 생존’이라는 최고 가치를 위해 일반 민주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부독재를 물리치면서 간신히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우리 현실에서, 폐쇄적 민족주의와 통일운동의 결합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남한의 민족주의는 남한사회의 경제적 발전 정도나 국제적 위상에 맞지 않게 폐쇄성을 지니고 있음이 학계에서도 종종 지적되고 있다. 우리 경우는, 역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이지만, 외세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민족주의운동 단계를 넘어서 이제 민주주의 담론이 사회의 전면으로 등장한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우리도 강력한 민족주의적 호소력을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애호심으로 서서히 전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통일은 서독인들이 성취한 사회적 시장경제, 개방사회,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체제 애호심(Verfassungspatriotismus) 때문에 반쪽의 성공이나마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
둘째로, ‘민족의 생존’이라는 거대담론 앞에서 여성이나 여타 소수집단의 인권침해 문제가 무시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다수의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율적인 민족국가를 구성하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다. 봉건적 잔재와 투쟁하면서 민족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던 민족주의자들에게, 여성은 근대화된 민족의 이미지를 위해서 개화되어야 했고, 또한 민족해방이라는 과제의 달성을 위해서 민족주의운동에 통합되어야 했다. 식민지조선의 담론에서도 주권을 상실한 조국은 ‘어머니’로 상징화되면서, 모성이 찬미되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 강조되었지만, 이는 임시방편적이었다. 독립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회복되면서, 모성의 역할은 다시 수동적이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족주의와 여성의 결합은 민족주의운동 내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자들의 어머니 담론은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성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학습시켰다. 식민치하에서 여성은 투옥된 남편과 아들을 말없이 뒷바라지하는 생계담당자이자, 식민지 자본주의의 값싼 노동력으로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갔고, 이는 여성이 민족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착취의 희생자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여성이 성차별의 희생자라는 점이 제대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식민지 해방 이후 생겨난 주권국가에서 민족주의는 좀더 위험한 방식으로 여성과 결합하였다. 독립 이후의 제3세계는 식민통치를 통해 구축된 법·관료·군대·교육제도 등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탈식민 기획에 실패하고 만다. 동시에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은 ‘민족문화찾기’라는 명목 아래 가부장제의 봉건적 유제를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식민지 유제와 봉건적 전통이 결합하면서 근대화과정에서 기묘한 동력으로 작용함에 따라, 여성에 대한 노동착취와 성차별이 강화되었다. 남한의 경우에도 7,80년대 공업화를 위한 값싼 여성노동력의 동원과 착취는 여성의 전통적인 미덕으로 알려진 충순과 희생정신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나이어린 여성노동자들의 희생이 한국의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멸시를 받아야 했으며, 이들의 공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온당하게 이루어지지도 않았다.2
이처럼 근대 민족주의는 여성에게 일정한 자리를 할당하면서 동시에 주변화시키는 이중기제를 행사하였기에, 여성들은 민족주의 담론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여성은 민족주의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남북관계가 활성화되면서 재연될 소지도 있다. 남북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노동력의 활용이 어떤 방식으로 성별화될지, 그리고 통일과정에서 성별이나 출신지역에 따른 내부 식민지가 중층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지 여성들은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비해야 한다.
정상회담이 진행된 요즈음에 쟁점이 된, 그러면서 민족문제와 예민하게 결부된 이슈는 매향리 사격장과 한미행정협정 문제이다. 전자는 민족문제이자 생존권의 문제라면, 후자는 민족자주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성차별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불공정한 한미행정협정 개정 문제를 폭발시킨 기폭제는 기지촌 여성에 대한 미군범죄였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 개탄할 점은, 기지촌 여성 문제가 떠오를 때마다 늘 민족문제로 상징화되면서 피해자 여성의 인권이나 성차별 문제는 논의의 핵심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잔혹한 기지촌 여성 살해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나 운동가들은 확실한 미군범죄가 아닌 경우에는 이내 관심을 잃고 흩어져버리고, 힘없는 기지촌 여성들만 홀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종군위안부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자의 잔혹한 착취나 조선의 순결한 처녀가 일본 군인들에 의해 더럽혀진 데 대한 분노가 주된 담론이 되었고, 이렇게 희생당한 여성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50년 동안 멸시받으며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데 대한 반성은 한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족자주’와 ‘민족통일’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남한내 외국인노동자 문제나 기지촌 매춘부의 70%를 이루는 외국인 여성의 짓밟히는 인권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도 우리 민족주의 담론이 지닌 양면성이다. 민족주의 담론은 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이 과정이 국민의 절반인 여성이나 여타 소수자집단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이 또한 참된 민족국가 형성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할 수 없다. ‘여성’이라는 새 주체의 참여를 통해서야 비로소 그간 은폐된 현실이 가시화될 것이고, 이는 통일과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접합이자 미완의 민족국가를 또다른 의미에서 완성하는, 즉 성이나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과정이 될 것이다.
민족국가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방식은 우리의 통일정책이나 통일운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간의 통일정책이나 통일운동에서도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통일관련 위원회 등에 대한 여성의 참여 역시 여성계가 요구하는 할당비율인 30%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성특별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은 통일고문회의에 22%, 정책자문회의에 8.3%, 민주평통자문회의에 14.9%가 참여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 통일정책평가회의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화체제 수립의 초석이 될 남북기본합의서의 부문별 부속합의서 이행 및 정부당국간 교류를 위한 공식기구인 분야별 공동위원회에서도 여성은 찾아볼 수 없다.3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10일 전에 한국여성단체연합, YWCA,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흥사단여성위원회 등이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한 건의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여성들은 몇가지 요구를 제기하였다. 첫째 정상회담과 관련된 대표단 구성이나 실무에 여성의 참여도를 높이고, 둘째 남북여성교류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셋째 후속 실무회담에서 여성의제를 함께 제기하고, 동시에 경제협력에 대한 지원시 여성에 대한 배려와 우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4 그러나 정상회담 과정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수행원과 수행기자로 각각 1명씩 선발되었을 뿐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봇물 터지듯 쏟아진 TV프로나 관련기사들에서도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통일문제 관련 분야에 여성 전문인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나마 갖추어진 여성인력도 남성중심적 구조 속으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통일관련 실무에 여성의 참여도를 높이고, 아울러 통일부 산하에 여성관련 전담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남북합의서에 따른 분야별 위원회 중, 특히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 공동위원회 산하에 여성위원회를 설치하거나 아니면 새로이 만들어질 실무기구에 여성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5
정상회담 이후의 후속작업이 진행되면서 사회·문화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라 예측되지만, 이 과정에서 다시 여성이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여성계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동포돕기운동이 활발해진 이후, 민간교류는 사실상 남성교류, 경제교류, 기득권층의 교류가 되어왔다. 남성에 비견할 만한 경제력을 지니지 못한 여성들의 경우, 남북교류의 기회가 매우 제한적으로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각 분야에서, 특히 종교계에서 열심히 모금활동에 참여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여성의 이름으로 지정기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남한여성의 이같은 노력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북한의 권력구조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진보적 여성운동은 1991년 이래 북한·일본 여성들과 더불어 네 차례에 걸쳐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고, 이를 통해 서로간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5차 토론회는 속개되지 못하고 있는데, 최초로 판문점을 통해 이루어진 민간교류였던 이 여성토론회는 정부의 통일백서 서술에서도 생략된 채 그 진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통해 우리는 민족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여성배제를 다시 확인하는 셈이며, 이는 남북 모두에서 약화된 여성의 위상을 반영한다. 때문에 여성들은 정부에 남북교류협력기금을 교류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는 부문에 지원하고, 그 일환으로 여성교류에 대한 특별지원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향후의 통일논의나 통일정책에서는 성평등적인 관점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교류 과정에서 여성을 위시한 소수자집단에 대한 특별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 남북 쌍방간에 합의되어야 한다. 향후 남북교류는, 특히 경제협력을 통해서 상당히 가속화될 전망인바,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관에 대한 남한정부의 보증이나 북한투자기업에 대한 자금지원 등에서 여성경제인이 우선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질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여성참여율의 제고가 필수적이지만,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과연 여성참여의 비율이 증대된다고 하여 마냥 손뼉치고 좋아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개별적인 연줄을 통해서 통일관련 위원회에 참여한 여성의 경우에는 그들의 활동이 여성주의적 관점에 역행하거나 기득권세력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관련 실무에 여성의 참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떤 여성대표가 들어가야 하는지를, 즉 여성충원의 선발기준을 문제삼아야 한다. 우리 정치문화에서는 개인적인 연줄이 합리적인 인선기준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여성 일반의 권익을 대변하는 여성운동단체에서 대표자가 나온다면, 그는 여성집단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혹은 좀더 대안적인 통일정책이 펼쳐지는 데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3. 왜 여성이 개입하려 하는가
여성이 통일에 개입하려는 것은 단지 여성의 정당한 몫을 받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통일이 여성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으며, 여성적 관점이 첨가됨으로써 우리 통일과정이 더 원숙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여성들이 통일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을 한층 실감하게 된 계기는 독일통일이다. 독일통일은 여성, 특히 동독출신 여성들의 지위를 현격하게 약화시켰다. 통일 이전에 동독에서는 여성의 수입이 가계수입의 40%를 차지한 데 비해, 서독의 경우는 단지 18%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서 여성의 일자리는 40〜45%가 감소했고, 여성실업률은 13배로 늘어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해고된데다가, 국가에서 경영하는 탁아소가 자본주의적 영리경영으로 전환되면서 탁아비가 엄청나게 오르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결국 일자리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6 또한 사회주의하에서는 허용되던 낙태가 다시 전면 금지됨으로써,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율성을 잃게 되었다. 여성의 정치참여도 크게 낮아졌다. 1989년 10월 베를린장벽 붕괴 직전의 급박한 정치적 상황에서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사실 동독체제하의 반체제운동에서도 여성의 참여는 적극적이었는데, 이같은 데는 반체제운동의 주축이 교회였던 점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동독 공산당체제가 무너지고 임시정부가 구성되자마자, 여성들은 정치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역사의 대변혁기에 늘 나타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독일통일 과정에서도 비켜가지 않았던 것이다. 남북의 통합과정에서도 이같은 역사적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 나름의 대비가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옛 서독의 여성들은 통일 이후 여성정책 면에서 과거에 비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었으나, 옛 동독 여성들의 지위는 형편없이 열악해졌다. 이는 옛 동독 여성의 높은 자살률에서도 잘 드러난다. 결국 분단되었던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의 통합이 자본주의권 여성들에게는─사회주의 국가의 여성정책 수준에 부응하려다 보니─어느정도 이득을 가져다주었으나, 사회주의권 여성들에게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7 결국 독일통일은 통합된 국가 내에서 중층화된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런 독일의 경험을 우리 현실에 견주어볼 때, 우선 분명한 점은 통일이 여성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여성들의 통일운동 참여의 당위성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나마 독일의 경우에는 통일이 옛 서독지역 여성들의 지위향상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통일이 북한여성뿐 아니라 남한여성의 지위향상과도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가 훨씬 더 강력하기에, 노동시장에서 북한의 값싼 남성노동력이 남한의 여성노동력과 경쟁하면서,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축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독일과는 달리, 베트남이나 중국의 경우에 통일은 여성의 지위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통일 후 베트남여성들은 사회나 정치활동에 광범하게 참여해, 공무원·고위간부직의 45%, 기술직의 42%, 교육부문의 60% 그리고 보건부문의 65%를 차지했다. 또한 베트남 여성동맹은 1982년 9백여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영향력있는 정치단체로 성장했다.8 이런 여성의 지위향상은 여성들이 오랜 베트남전쟁 동안 정규군에서 게릴라, 그리고 농업생산 활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공헌을 한데다가, 전후의 재건·복구과정이 여성의 노동력을 대대적으로 필요로 했던 데 크게 기인한 것이다. 또한 전쟁과 통일과정에서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가 여성의 정치의식과 여성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앞서 통일을 경험한 몇몇 사례에서 본다면, 통일이 여성의 운명과 연관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과정이나 통일 후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더 향상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또한 통일정책의 입안과 집행 과정에 능동적·주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통일된 미래사회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삶이 당장 분단현실과 직결되어 있고, 그래서 여성이 분단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여성이 평화공존체제의 실현에 동참해야 할 더욱 절실한 이유가 있다. 우리 어머니세대가 겪은 이산의 아픔이나 홀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고통도 고통이지만, 타국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한 성폭력과 매춘의 일상화 등도 이런 분단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매춘이나 성폭력 외에도 분단사회가 확대재생산해온 군사주의가 일상생활과 사회관계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스며들어, 우리 삶을 폭력화·황폐화한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 물론 병영생활을 비롯해 남성에게 부과된 여러가지 의무를 보면, 남성도 피해자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군사주의의 피해는 여성에게 훨씬 중층적이다.9
4. 평화가 실현되는 통일사회로
최근에 와서 여성학자들을 중심으로 군사주의를 새로이 개념화하고 문제시하려는 노력이 있다. 군사주의는 가시화된 폭력을 유발하는 기제만은 아니다. 군사주의는 내재화된 가치체계나 일상적인 실천 속에 자리잡은 이념이나 무의식적 관행을 의미한다. 군사주의와 성의 관련성을 분석한 여성학자 인로(C. Enloe)는 군사주의를, 집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유지되거나 강화되는 데 필요한 이른바 전사로서의 남자다움, 그런 남자다움을 보조하는 여자다움의 사회적 형성, 그리고 이런 집단의 보존을 위한 단일한 위계질서, 훈련 및 역할분업들을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여러 제도적·신념적 장치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하였다.10 이런 군사주의의 특징은 남녀 모두 자신이 군사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군사주의를 이런 새로운 개념으로 고찰할 경우, 우리는 더이상 여성이 군사주의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여성사가들이 여성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여성대중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쟁’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만은 아님을 확인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런 자성적인 논의는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여성사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전쟁을 통해 일본여성들은 ‘공적 영역’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는 여성에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흥분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여성이 역사의 객체가 아닌 주체라고 하는 페미니즘의 패러다임 전환 역시 여성이 단지 전쟁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인 가해자였다는 인식을 불러왔다.11 요컨대, 여성이 분명 군사주의와 전쟁의 가장 중층적인 피해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여성들 스스로가 피해자로서 면죄부를 받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여성들도 ‘내 안에 있는 군사주의’를 스스로 읽어내야 한다. 이렇게 분단의 중층적 피해자에서 ‘내 안에 있는 군사주의’를 문제삼는 적극적 주체로의 전환과 함께, 여성들은 평화주의와 통일운동의 결합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물론 군사주의의 해소만으로 여성해방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군사주의의 제거는 여성지위 향상의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지난 30년간의 군부독재체제의 탄압하에서 우리 통일운동은 정치지향적인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더불어 통일방안 중심의 통일논의나 남북 정치권력의 형식적·기계적 결합을 중심으로 한 통일담론이 그 중핵을 이루었다. 또한 통일운동 내의 문화도 남성적·가부장적이었다. 그러나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이제 평화공존체제의 모색이 우리의 일차적인 과제가 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적대적 군사대결 구조를 완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따라서 통일운동을 포괄하는 좀더 확장된 범주로서 평화운동의 중요성을 제기할 싯점에 이르렀다. 작금의 통일운동이 화해·협력체제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평화운동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서 평화운동이 되기는 힘들다. 우리 통일운동은 민족주의 담론이 여전히 중요한 동력이며, 현재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평화운동의 새로운 문제의식과 공유하는 바도 적다. 한 국가의 안보는 이제 국제적 연대나 제휴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기에, 시민·사회운동은 통일운동을 ‘국제적 시민공동체’의 건설과 연관지어 사고해야 한다. 기아와 국제적 고립으로 고통받는 북한을 생각하면, 이런 발상 자체가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정의 중요성이 생략된 운동의 비극적 결말을 자주 보아왔기에, 평화운동의 문제의식이 우리의 통일담론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야만 진정한 내적 통일이 가능해진다고 항변하고 싶다. 이제 여성들은 여성의 개입을 통해 패거리의식, 헤게모니 장악 욕구, 절차의 비민주성 그리고 성차별이 사라진 운동문화를 지향하고자 하며,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 미래사회의 희망을 읽으려 한다.
한국 여성운동은 이미 70년대말 이래 지속적으로 평화운동을 전개해왔고, 한반도 안에서 가장 먼저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교회여성연합회가 주관한 원자폭탄피해자 지원활동, 여성단체연합과 기독교여민회가 주관한 ‘여성평화한마당’, 핵발전소건설 저지운동, 핵무기와 군사기지 철수운동, ‘패트리어트 미사일 설치를 반대하는 여성모임’, ‘방위비 삭감을 위한 연대모임’, 1987년의 최루탄추방운동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성들의 평화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평화운동은 가부장적 언론에 의해 무시되었고, 또한 이들의 운동은 세인의 관심을 끌 정도의 대중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함으로써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다. 그렇더라도 여성들의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은 이런 여성평화운동의 전통에서 출발했음을 환기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향후 통일문제에 대한 여성적 접근도 그간의 통일운동에 평화주의적이고 성평등적인 관점을 추가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은 본성적으로 평화에 대한 감수성과 자각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거나 여성이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기 때문에 기질상 더 평화운동에 적합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잘못하면 본질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여성을 둘러싼 성별분업을 더 고착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평화운동가이자 여성학자인 루딕(S. Ruddick)은 여성의 생활상의 실천이나 노동방식이 생명을 돌보고 배려하는 데 더 가깝기 때문에 여성이 현재로는 평화운동에 더 강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성적 사고 그리고 여성들이 지닌 ‘돌봄의 윤리’는 군사주의와 같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실천들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우월한 관점이자, 일상생활의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초지가 된다.12 또한 여성은 권력의 배분과정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기존 권력층의 전쟁관에 더 쉽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통일운동에 대한 여성참여, 더 적극적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의 결합은 우리 통일운동이 정치 일변도의 운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은 평화, 남성은 전쟁이라는 도식적 분류에는 반대할 필요가 있으며, 가부장제가 남성성이 지닌 다양한 기질을 남성 스스로 봉쇄하고,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단일한 남성성의 모습만을 드러낼 것을 강요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13 마찬가지로 이런 여성참여가 은연중에 여성은 평화운동, 남성은 통일을 둘러싼 정치적 운동으로의 역할분담에 기여한다면, 이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군사주의, 국제적 담합자본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제3세계의 빈곤은 서로 연루되어 있다.14 그러나 남녀간에 은연중에 이루어지는 역할분담은 여성에게는 정치경제의 구조적 특성, 남성에게는 일상생활의 비(非)평화와 군사주의를 제대로 포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더불어 여성운동이 남성들이 정치적인 차원에서 풀어보고자 하는 통일과 평화체제의 문제를 좀더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일상생활 속의 평화 실현과 관련하여 풀어보고자 노력할지라도, 이런 평화운동이 통일운동으로부터 괴리될 경우 결국 여성들은 앞에서 말하는 역할분리를 다시 받아들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통일운동이 요청되는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이해,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해결 모색 그리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작은 비평화의 관행에 대한 집요한 싸움을 동시적으로 전개하는 일이다.
통일과 관련하여 여성들이 제기하는 또다른 문제의식은 미래 통일사회로의 움직임이 대안사회의 모색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시민운동이 아직 출발단계에 있는 까닭에, 대안사회의 모색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당장 시급한 정치적 개혁현안에 매달려 있는 실정이다. 이에 비한다면 진보적 여성운동은 상대적으로 ‘대안사회의 실현’과 ‘여성운동의 결합’을 더 진지하게 모색해온 편이다. 특히 자본의 전지구화가 2대8의 사회로의 진입을 재촉하면서, 공·사영역의 분리나 남성=생계부양자의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여성은 임금노동이나 시장경제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노동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서 주변화되는 여성이 모색할 수 있는 역공은 대안사회 실현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는 일이다. 대안사회 모색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시장경쟁력 강화를 중시하는 시장경제에 대한 비판과 완전고용이라는 환상으로부터의 탈피이다.15 최근 들어 평화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국제 여성평화운동은 생태계의 평화도 포괄하게 되었고, 여러모로 대안사회를 실현하는 과제와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 평화운동은 광범한 이슈를 포함하는 것보다는 한반도 내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 일상생활의 평화를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만, 바로 이런 작업이 대안사회 실현과 연결된다면, 여성은 대안적인 노동형태나 노동에 대한 대안적인 평가기준을 만들어가면서 기존의 권력관계와 경제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북한을 끌어내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마당에 대안사회를 논하는 것은 ‘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남한여성들은 또다른 반쪽의 땅에서도 매춘여성이 100만명을 넘고, 성폭력과 음란물이 난무하고, 여성이 직장에서 축출되는 그런 사회가 생겨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민·사회운동이 이제부터라도 대안사회의 상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획득해가는 작업에 나서야 하며, 바로 여기에서 여성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제 여성운동은 기존 정치에 ‘끼여들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정치를 지향하는 ‘새판짜기’를 시도하면서 통일운동의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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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운석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독일인의 민족의식(1945〜1994)과 내적 통일의 문제들」, 『해외지역연구』 제1권 제1호(1997) 참조.↩
- 7,80년대 여성노동자 수기에서 그나마 이들의 실상을 읽을 수 있는데, 장남수 『빼앗긴 일터』(창작과비평사 1984); 석정남 『공장의 불빛』(일월서각 1984) 등이 대표적이다.↩
-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과 여성교류 현황」, 통일간담회 자료 (1998.11) 10면.↩
- 정현백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여성의 요구와 역할」, 『남북정상회담/여성, 무엇을 할 것인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주최 제1회 여성평화통일포럼(2000.5.16) 자료집 참조.↩
- 김윤옥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여성교류의 방향과 과제」, 『남북 여성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제2회 여성평화통일포럼(2000.7.12) 자료집, 30면 참조.↩
- 이런 현실들이 동독지역 여성들의 임신기피로 이어지자, 결국 통일독일 정부는 탁아의무제도를 비롯해 여성에게 유리한 몇가지 정책을 입안할 수밖에 없었다.↩
- Ninnon Colneric, “Wiedervereinigtes Deutschland-Haben wir die Chance genutzt?” 한국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강연회(1999.8.27) 원고 참조.↩
- 김지해 엮음 『세계의 여성운동 2─민족해방여성운동 편』(동녘 1988) 107, 115면.↩
- 젊은 남성들 역시도 불합리한 병역제도와 군사문화로 고통당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남성성’의 규범 아래에서는 남성들은 이런 피해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거나, 아예 이런 군사화된 일상문화를 문제로 인식하는 감수성을 결여한 경우도 있다. 그런 까닭에 공무원시험 군가산점제도를 둘러싸고, 남성과 여성들은 모순의 본질에서 비켜선 채 선정적이고도 격렬한 설전을 치렀던 것이다.↩
- 권인숙 「우리들 삶 속에 군사주의: 여성과 군사주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발표원고, 5면.↩
- 우에노 찌즈꼬, 이선이 옮김 『내셔날리즘과 젠더』, 박종철출판사 1999, 57〜58면.↩
-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여성들이 사용하는 평화 개념은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의미의 소극적인 평화를 더이상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그리고 우리 일상생활 속에 때로는 가시적으로, 때로는 비가시적이지만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폭력들에 저항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폭력이란 물리적인 폭력만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나 잠정적 폭력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평화운동은 갈등하는 국가나 사회집단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양 집단간의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공통의 이익을 증진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적극적인 평화전략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켜지는 평화(protected peace)가 아니라 작용하는 평화(working peace), 평화유지(peace keeping)가 아니라 평화만들기(peace making)를 지향해야 한다. 김윤옥 「남북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실천」, 한국여성단체연합 10주년 기념 국제여성평화씸포지엄(1997.6.17〜20) ‘여성·평화·화해’ 자료집, 109〜14면.↩
- Sara Ruddick, “Notes Toward A Feminist Peace Politics,” Miriam Cooke & Angela Woollacott, eds., Gendering War Talk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112〜13면.↩
- Cynthia Enloe, Bananas, Beaches and Bases (Berkel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참조.↩
- 김미경 「노동사회의 미래와 대안사회를 위한 여성주의 정책」, 한국여성단체연합 대안사회정책연구소 창립 씸포지엄(2000.2.23) 자료집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