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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종광 金鍾光

1971년 충남 보령 출생. 1998년 『문학동네』 문예공모 소설 당선.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희곡 당선. 소설집으로 『경찰서여, 안녕』이 있음.

 

 

 

모내기 블루스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들어왔다. 이내가 깔릴 무렵, 마지막 버스가 안골 동구 팻말만 달랑 삐뚜름한 간이정류장에 사람 두엇을 내려놓고 음현 저수지 쪽으로 내처 달렸다.

순이는 제 눈이 의심스러웠다. 쉰여덟, 돋보기가 없으면 달력의 양력 날짜도 못 읽어낼 만큼 망가진 시력이니,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겠다, 하여 바깥마당 둔치 쑥대밭에 까치발을 찍고 깜냥을 다하여 바라보았다.

분명히 맞다. 맞어! 저놈은 서른여섯살 처먹도록 장가도 못 간 불효자 중의 불효자, 이내 몸이 까지른 새끼가 맞다. 못자리 끝내고, “바람 좀 쐬고 오께유” 한 말씀 남겨놓고 휭하니 집 나가더니, 죽었나 살았나, 전화 한통 하는 법 없이 무소식이던 장남이 한달여 만에, 그것도 모내기철에 딱 맞춰 돌아온대서 요란하게 반색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어떤 아들인가? 중학교 때 가출 역사의 첫 장을 열더니, 고등학교 졸업장 어거지로 딸 때까지 열 손가락을 다 써 횟수를 가늠하도록 해주었고, 이십대에는, 군대는 그렇다 치고, 감옥생활한 것도 그렇다 치고, 공장이다 목장이다 뭐잡이 어선이다, 영원히 객지인으로 자리잡으리라 싶었다.

그런 위인이 서른에 즈음하여 반 농사꾼 반 노가다로 고향에 붙어 있는 것이 여간 신통방통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논바닥이 영 답답하고 공사판 사정이 여일하지 못해서 그런가, 휙 사라졌다가 짧으면 보름, 길면 한두 달, 낯짝을 보여주지 않다가 불쑥 나타나는 짓거리가 해거리도 계절거리도 없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애간장 타는 내 나도록 그리운 게 자식새끼라고, 무척 오랜만에 먼발치로라도 꼬락서니를 보니 어찌 기쁨이 없겠는가마는, 아들의 그러한 전력을 감안한다면, 귀향 모습에 이다지도 좋아할 판은 아닌 것이다.

순이는 아들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 아들 옆에 붙어 있는 색시에 환심장(換心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규도 난데없이 저녁상 한 귀퉁이에 끼여 있는 서해가 며느릿감이 아니라는 점이 몹시 섭섭했다. 숟갈도 들기 전에 밥맛이 달아나버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아줌마, 맛있게 먹겠습니다.”

“처자, 누구는 아줌마고 누구는 할아버지랴? 사람 차별하나?”

“예? ……아, 할아버지도 삐쳤구나. 할아버지는 진짜 할아버지 같은데요. 머리도 완전 할아버지 색깔이잖아요?”

“머리 색깔로는 그렇겠지만도 손주도 못 안아본 주제에 할아버지 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겄어?”

“할아버지는 외손주도 없어요?”

“외손주야 있지만은 외손주하고 친손주하고 같가니.”

“그런 게 어딨어요? 남녀가 평등한데.”

“그건 처자 생각이고 내 생각은 틀려. 나는 맛 간 세대거들랑.”

“에이, 할아버지도 참 억지다. 좋아요, 뭐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아저씨라고 불러줄께요.”

서해는 낯가림도 없이, 밥을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총천연색으로 차려진 반찬을 해결하는 젓가락질 솜씨가 가히 손오공 여의봉 수준이었다. 순이로서는 육십여 평생 먹고 또 먹은 푸성귀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충 무치고 데치고 지져서 올린 찬이었으나, 도시 인스턴트 식품에 쩔 대로 쩐 서해 입장에서는 산해진미로 여겨지는가 보았다.

양규는 숟갈질이 한없이 굼떠지며 처자를 짯짯이 탐색하였다. 밑져야 본전, 며느릿감이라 생각하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뜯어보고 자시고 무조건 합격점을 때릴 수밖에 없는 게 양규의 입장이었다.

아들이 서른 초입 때만 해도 며느리 될 처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여러 가지로 짚었다. 아들이 고졸이니까 며느리도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겠고, 자신의 집안이 밥 굶고 살지는 않으니까 며느리네 가세도 어지간은 해야 할 것이고, 아들이 그럭저럭 생긴 얼굴이니 며느리도 박색은 아니어야겠고, 아들이 갑갑증을 못 이겨 발병을 잘해서 그렇지 본래 심덕이 무던하니 며느리도 동네 입방아에 오를 만큼 시부모 봉양에 엉터리일 골치 아픈 심성은 아니어야겠고, 짚어가자면 한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숱한 맞선에 미역국을 먹고, 타지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도 연애질도 못하고, 이러구러 나이는 낙엽 쌓이듯 하고, 며느리가 구비해야 할 조건은 평가절하를 거듭해온 끝에 아들이 서른여섯에 닿은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조건 없음’이 되어버렸다. 아들놈하고 살아만 준다면, 그래서 고희가 되기 전에 손주 잠지 만져보게만 해준다면 그 누가 되었든 간에 들쳐업고 천리 만리를 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여튼 속사정이야 짐작하기도 겁나 모른 체하고, 바깥 모양만은 마음에 쏙 들었다. 톡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허리에 얼굴까지 받쳐주는, 영락없이 텔레비전에 나와 방정 떨어대는 것들하고 한 과로 생겼다. 비리비리한 몸뚱이만 놓고 쳐서 애를 잘 날까 그것이 조금 염려가 된다만, 그래도 이런 출중한 미모의 며느리하고 날마다 한상에서 밥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랴. 그런데 며느릿감이 아니고 아르바이트라고?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일찌감치 절망할 것까지는 없겠다. 요새 것들 말이 말 같던가. 말이야 늙은 머릿속 어지럽게 해쌓는다만, 보아 하니 맞출 것 맞춰도 한두 번 맞춰본 사이가 아닌 듯하며, 이렇게 다정히 한 묶음으로 밥상머리까지 기어들어왔으니,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농후한 사이렷다. 하루 이틀 열흘 달포 한달 두달 반년 하다 보면, 그게 부부인 거지 뭐. 어쩌면 아들놈도 그런 꿍꿍이인지 모른다.

정녕 아들이, 농촌이 얼마나 지독스러운 구석인지 생판 모르는 처자를, 텔레비전에서 왜자기듯 맑은 공기니, 아름다운 산과 들이니, 붕어새끼 폴짝폴짝 뛰어대는 시냇물이니, 어쩌고저쩌고 사기를 쳐가지고서는, 이 집구석까지 꾀여온 것이라면 낳고서 처음으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저 일 잘해요. 돈값은 할 거예요. 걱정 놓으세요.”

“시방 밥값이 아니라 돈값이라고 혔어?”

“그럼요. 대춘 오빠가 일당 삼만원씩 쳐준다고 했어요.”

부부는 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색시가 호미라도 들 근력이 있겠느냐고,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힐난을 하는 것이었다.

“맞잖아유? 요새 여자 일당 삼만원?……이만원인가?”

“내일 아침 먹고 댓골논부터 쳐야 뎌.”

“왜유? 누가 논 떼메고 간대유?”

“지랄, 비는 하늘이 무너져도 안 내릴 것 같고, 수리조합서 쪼까 있는 물 배급주고 있는디, 어제 물 들어온 댓골논 내일 안 치면 금방 말라버릴 테니께 하는 소리지.”

겨울에 참으로 눈이 내리지 않더니, 봄에는 비다운 비 한번 내리지 않았다. 물 없어 허덕이긴 마찬가지인 저수지에 매달리고, 저수지에 딸리지 않은 논들은 관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리조합은 들판을 몇 구획으로 나누어놓고 오늘 내일은 동쪽 답, 모레 글피는 서쪽 답 하는 식으로 저수지 물과 관정수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더이상 말씀 마슈. 아버지 잔소리는 한번 시작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니께유. 지가 나름대로 요량을 했으니께, 딱 맞춰 나타난 거 아니겄슈?”

순이는 두 딸이 쓰던 건넌방을 쓸고 닦았다. 며느릿감이 아니라니 각방 치레를 해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색시는 건넌방에 옷가방을 툭 들이밀었을 뿐 엉덩이를 붙여보지도 않고 아들방으로 뛰어갔다. 순이가 바라면 바랐지 말릴 리가 없었다.

양규는 아홉시 뉴스 전부터 드렁드렁 코를 골아대었고, 순이는 국민 열 중에 여섯은 본다는 「허준」 시작하고 십여분 되었을까 슬며시 잠이 들었는데 웬 잡소리에 번뜩 깨었다. 그때까지 혼자 이것저것 떠들고 있던 텔레비전을 재우고 나니, 그 잡소리는 텔레비전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삼경, 하늘에 별은 총총하고, 불꺼진 바깥채 아들방에서 색시가 죽겠다고 질러대는 소리가 참으로 장대하며, 아들 질퍽대는 소리 또한 사람 잡겠다 싶었다. 그러니 열 걸음은 족히 떨어진 안방 이내 몸의 잠까지 깨웠지.

순이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녁하고 저 짓거리를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언제적이던가? 저 달처럼 잔물잔물하니 기억이 뿌옇다.

동이 트고,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들이 미명을 걷어버리며 제 빛깔을 드러냈다. 대춘은 목구멍에 아침 들이밀기 무섭게 경운기에 달라붙었다. 짐칸을 떼어내고 로터리를 부착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양규는 어떻게 도와볼까 얼씬거리다

“걸리적거리니께 그냥 좀 계슈. 다쳐유, 다쳐.”

하는 핀잔이나 들었다.

“네가 언제부터 농사졌다고 유세냐 임마. 나는 농사 경력이 반세기여, 반세기.”

말을 그렇게 했다만 기계 가지고 하는 일에는 아들한테 늘 말발이 안 섰다. 아들이 경운기를 사들여온 날부터 양규는 뒷전으로 밀린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순리일 터였다.

“아, 저번이처럼 허리 삐끗혀가지구 앓는 소리하실까봐 그러쥬.”

대춘은 쇠바퀴를 달고 시동을 먹였다. 경운기 엔진 소리가 마당을 뒤흔들었다. 쇠바퀴로 가는 길은 더디었다. 1분에 5미터를 가나 마나 했다. 그래도 흙길은 좀 나았는데, 시멘트도로에 들어서자 바닥을 탕탕 튀기는 꼬라지가 냅다 달리면 10분이면 족할 댓골논이 어느 세월에 갈지 말지 까마득했다. 뒤에서 기세좋게 달려오던 1톤 트럭도 헐수할수없이 함께 굼벵이질이었다. 비킬래야 비킬 수 없는 좁은 도로폭 탓이었다.

양규는 오토바이로 진작 와 있었다.

“그리두 네 놈이 사람이 돼가는 모양이다.”

대춘이 어제 새 물장화를 세 켤레나 사가지고 들어온 것에 대하여 대견해하는 말이었다. 대춘은 물장화를 허벅지까지 끼우고 비옷 바지를 덧입은 뒤 흘러내리지 않도록 헌 혁대를 찼다.

쇠바퀴는 논흙을 만나야 구실을 하는 놈이렷다. 논바닥을 만나자 비로소 경운기는 값을 했다. 논둑의 가장자리를 한바퀴 쳐나갈 때는 2단으로 천천히 돌았고, 그 다음부터는 변속기어를 3단으로 놓고 액쎌도 한껏 올렸다. 로터리가 퉁겨내는 흙 세례가 기관총 소리는 저리 가라였다. 논갈이 흙들이 잘게 부서져 수면 밑으로 내려앉았다. 그동안 저희들 땅인 양 뿌리박고 고개 빳빳이 쳐들고 있던 논풀들도 흙속으로 쑤셔박혔다.

양규는 두렁을 메웠다. 쇠스랑으로 흙을 그러모아 붙이고는, 삽날로 반들하게 다듬어나갔다. 자잘한 생명들이 뚫어놓은 실구멍을 단속하는 한편, 잡풀들의 번성을 억제하여 경계를 새로이 매김하는 것이었다.

저쪽을 휘몰아치고 돌아 이쪽으로 두들겨나온 아들은 벌써 흙투성이였다. 아들은 쇠스랑질에 힘부쳐하는 아버지 모습이 안쓰러워 잠깐 멈춰 서서는, 엔진 소리를 이기려고 고함을 질렀다.

“그냥 놔두라니께유. 이따가 흙이나 골러유.”

“작것, 놀면 뭐하냐?”

이 동네에서는 먼저 치는 로터리를 그냥 ‘로터리친다’고 말하고, 한번 더 치는 로터리를 ‘써레질한다’고 했다. 써레질할 때는 굵은 각목을 매어 끌고 다녔다. 각목의 힘에 밀려 부서진 논흙은 고르게 눕는 것이었다.

중학교 운동장에서 조회하는지 차렷 열중셔 하는 마이크 소리가 들려올 때, 바로 윗논에 들어왔던 준호의 트랙터가 순식간에 두 마지기를 해치워버렸을 쯤해서야 대춘은 겨우 써레질에 들어설 수 있었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놓고 능력을 비교하는 자체가 어리석지만, 트랙터에 대면 이놈의 경운기는 느리기가 달팽이요 힘 없기가 사흘 굶은 여자였다.

순이가 참을 내왔다. 낑낑거리며 두렁 메움질을 마감하고, 담배 두어 대 몰아피며 쉬고 있던 양규는 아들이 논에서 빨리 안 나온다고 한참 성화를 부렸다. 수로 물로 대강 얼굴을 씻은 대춘은

“먼저 드시랑께유.”

해놓고서는 트랙터의 준호를 부르러 갔다.

양규는 막걸리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절로 나오는 카, 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처자는 여직 자는감?”

“새벽참까지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오죽허겄슈.”

“그럼 야들이 한몸으로 잤단 말여?”

“동네 떠나갈 뻔했슈.”

“그럼 내 짐작이 맞는 거구만.”

“나중에 실망할라면 벅차니께 함부로 짐작 마슈. 요새 젊은 것들은 알 수가 없다니께유. 연앤지 불장난인지.”

준호는 논이 백여 마지기, 소가 백여 마리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상당했고, 농업협동조합에 빚도 많이 지고 있었지만, 여하튼 부모의 대를 이어 치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구제역 땜에 피봤지?”

“말도 말어. 거의 전쟁이었어.”

안골은, 구제역 시초 발생지로 한 두어달간 텔레비전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아무개 군과 지척이었다. 아무개 군보다야 못하겠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훨씬 짙은 농도의 공포에 시달렸고 훨씬 강도 높은 방역에 매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호는 두어달간 아내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방역의 최대 기본은 병균매개체인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으므로, 홀로 백여 마리 소를 먹인다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지만, 아내의 축사 출입마저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안골에서는 구제역에 쓰러진 소는 없었으나 거의 전쟁이었다는 말이 과장되지 않을 만큼 애로를 겪었다.

“그놈의 시답지 않은 전쟁이 끝나기는 끝난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할겨. 텔레비전 놈의 새끼들이 입 처닫았으니께.”

“그리두 별 탈 없이 지나갔으니께 다행여.”

“한두번 겪는 탈인가? 또 어떤 놈의 탈이 올지 물러.”

준호는 양규가 따라준 막걸리를 쭉 들이켜고서는 엉너리를 쳤다.

“그르게 지가 걱정 말랬잖아유. 딱 맞춰 나타날 거라구.”

“나타나서 나타났는갑다 하지, 이놈의 인사가 부모 속을 어지간히 ]였간디.”

“또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구먼유. 아들 감감무소식여서 농사 못 짓게 생겼다구.”

“이놈아. 그러니께 전화 한 통화 넣어주면 될 거 아녀. 언제 온다구. 아니믄 요새 가이나 소나 다 들고 댕기는 휴대폰을 갖고 댕기든가.”

대춘은, 오후에는 청라논 로터리를 쳤고 저녁녘에는 잿골논 못자리를 걷었다. 다음날 바로 댓골논과 청라논 모심기를 해치울 작정이었다.

부부는 쇠스랑 하나씩 들고 태양이 서쪽 산 불탄 자리를 넘어갈 때까지 댓골논 흙을 골랐다. 흙고르기는 모심기 전 마지막 단계의 논바닥 일로서, 도드라진 부분의 흙을 끌어다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메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논바닥의 높이가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게 눈대중으로나마 판판히 닦아놓자는 애면글면이었다.

서해는 저녁밥때까지 대춘의 방에서 퍼질러 잤다.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먹고 잠만 자는 색시가 당장 굶어죽기라도 할까 안달 난 순이가, 아들이 이박사흘이건 일주일건 그냥 처자게 놔두라는 것을, 제발 저녁은 먹고 자라고 기어이 깨우지 않았다면 서해는 정말 이박사흘을 내처 잤을지도 모른다.

서해는 고등학교 때 가출한 이후로 이날 이때까지, 아침 무렵에 자서 오후 두세시경 기상하는 리듬으로 살아왔다. 두세시경에는 저도 모르게 퍼뜩 눈이 떠졌는데 오늘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알 수 없는 편안함과 고요함이 밀려와 그녀의 눈꺼풀을 도로 덮었다. 그녀는 이렇게 편히 자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서해는 안 깨웠다고, 일을 안 시켰다고, 그래서 하루 공쳤다고, 순이가 “아이구, 정신 사나워. 괜히 깨웠구먼. 그냥 처자게 놔둘 걸 그렸어”

절레절레 짧은 고개 흔들어대도록 찡찡거렸다. 서해는 실컷 자고 저녁밥 많이 먹어 기운이 남아도는지 대춘에게도 안 깨워줬다고 지치지도 않고 불퉁대었다. 그 소리가 마당에서 기웃거리는 순이에게는 “허이구 숭헌 놈들, 밤이나 깊거던 보듬지” 헤헤거리게 만들어주었다.

대춘은 노트를 펴놓고 이것저것 계산중이었는데, 서해 하는 짓이 여간 귀찮지 않았다.

“아따, 그년 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겄다고 지랄여. 네가 이제까지 해온 일이 뭐여? 코스 밟아가면서 술잔 물잔 나른 것밖에 더 있어? 농사가 뭔지나 알구 풍신을 떨어쌓냐?”

“오빠, 말을 왜 그따위로 해? 그럼 나를 왜 데리고 왔어?”

“야, 년아 내가 데리고 왔냐? 네가 따라왔지.”

“약속이 틀리잖아. 일 시켜준다고 했잖아?”

“나는 그냥 네가 안돼 보여서, 수컷들한테 치여 산 네 인생이 안돼 보여서 그냥 며칠 푹 쉬고 가라구 꼬셔 왔다. 휴양 왔다구 생각하구 편히 있다 가란 말여. 밥값 방값 안 받을 테니께.”

“씨발, 이 사기꾼 새끼!”

서해는 대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대춘의 두꺼운 살가죽은 애무로 느꼈지만. 어느결에 대춘이 서해를 올라탔고,

“이 짐승새끼 못 내려가!”

서해는 발버둥을 쳤지만 텔레비전이 스포츠뉴스 끝내고 드라마 제목을 띄웠을 즈음해서는 암수 서로 정다운 짐승으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대춘은 작정하고 농사를 지을까, 아니면 시내에 가게를 열까 근년 들어 생각이 많았다. 돈은 얼추 모인 것 같았다. 농사를 짓는다면 여툰 돈에다 농협대출을 받아서 대여섯 마지기는 넉넉히 사들일 수 있겠고, 삼동네에 늙은 부부끼리 바르작바르작 농사짓는 집이 허다하니 말만 잘하면 소작 한 이십여 마지기 얻는 것이야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트랙터와 트럭을 할부로 들이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어본다?

장사라면 역시 물장사, 계집장사가 남는 장사다. 서해 같은 년으로 셋만 구비해놓고 계집 관리만 빈틈없이 하면 실패라는 게 없을 술장사. 하지만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냐. 이런 불쌍한 년 보지 피빨아먹자는 짓 아닌가. 대춘은 드라마에 넋이 빠진 서해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창문을 뚫고 온 푸른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번쩍 깨어 기지개 크게 편 뒤에 문을 열고 나서려던 대춘은 하마터면 고꾸라질 뻔했다. 뭐가 발목에 걸려 있었다.

“또 안 깨우려고 했지?”

서해가 비몽사몽하면서도 눈을 비비적대며 하는 소리였다. 대춘의 굵은 발목과 서해의 얇은 발목은 운동화끈으로 묶여 있었다. 서해는 참으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청한 끝에 반 시간 전에야 겨우 잠들었었다. 묶어놓기를 얼마나 잘했는가.

서해는 졸면서 먹었다. 숟갈을 콧구멍으로 들이민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양규는, 성질 같아서는 밥상머리에서 웬 구접스러운 짓거리냐고 면박을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아내고 있었는데, 거듭 바라보자니 미운 짓마저 흔쾌해져 허허 웃음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순이도 색시가 밥 먹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저게 며느리 돼도 골치 아프겠다는 염려를 잠깐이나마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뭐 나는 시집 오기 전에 농사짓는 집구석이 이르케 일찍 아침 공양하는 줄 알았간디. 한두달이면 바로 습관이 밸 거니께, 그건 헛걱정이여’ 생각을 고쳐먹었다.

대춘은 경운기에서 로터리를 떼어내느라 나사와 씨름이었다. 감을 때보다 풀 때가 더 힘이 든다니까.

“이게 농사일이야?”

딴에는 일복으로 차려입은 모양이었다. 서해는 아래위 새하얀 트레이닝복 차림에, 운동화까지 하얀색이었다. 비싸기로 유명한 상표가 찍힌 것으로 보아 돈 십만원은 우습게 넘는 복색인 듯했다.

“너 정말 일을 해볼텨?”

“오빠는 사람 말을 좀 진지하게 새겨봐.”

대춘은 로터리를 비켜놓고 쇠바퀴를 떼어낸 다음, 고무바퀴를 달았다. 이어서 짐칸을 부착했다. 비로소 서해가 텔레비전 농촌드라마에서인가 몇번 본 적이 있는 경운기 꼴이 되었다.

“아, 이게 딸딸이구나!”

대춘은 손바닥에 쥐기 맞춤한 크기의 나무토막 두 개와, 얇은 철삿줄을 챙겼다. 그리고 서해가 보기엔 장화인 듯은 하지만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는 노랗고 길쭉한 것 두 켤레를 짐칸에 실었다. 하나는 무척 헌 것이었다.

서해는 순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여서 쉴새없이 물어댔지만, 대춘은 웬만해서는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반죽 좋은 서해도 급기야 삐쳤는지 입술을 모아 길게 내밀었다.

“야, 타!”

대춘의 한마디에 서해는 금방 풀린 얼굴이 되어 짐칸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안골 사람들은 아침부터 때아닌 진풍경에 입 운동깨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춘이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데, 짐칸의 낯모르는 젊은 여자가 소들의 합창보다 더 큰 목청으로 “야, 호!”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댄스가수인가 무엇인가처럼 괴상하게 몸까지 비틀어가면서 그 난리였다.

“대춘이가 여자를 주워가지고 들어왔다더니만, 정신이 온전한 게 아니었구먼.”

“허긴 그럴 겨. 맨정신 박힌 계집이 어딜 봐서 대춘이를 좇을겨.”

“왜? 대춘이가 어뗘서. 옛날이야 말종도 그런 말종이 없었지만 서른 줄 들어서야 착실하지.”

“너무 늦게 정신 차렸어. 모아놓은 게 있을껴, 물려받을 게 있을껴. 게다가 싸돌아댕기길 좀 좋아혀.”

“아녀, 내가 보기엔 대춘이 자슥 앞으로는 잘 풀릴껴. 대기만성형이라고나 할까.”

“잘 풀리면 좋지. 잘 풀리려면 여자를 잘 들여야 되는디. 저 여자는 안되겄구먼.”

“확실히 살지 안 살지도 모른다던디.”

“아르바이튼가 오바이튼가를 왔다데.”

“이씨네 두 늙은이가 워칙히 며느리로 들여볼까 정성이 지극한가벼.”

“아무려나. 대춘이가 계집 조건 거론할 처지는 아니지.”

“어찌 되었거나 이 동네에 노총각이 슬슬 짚어도 여남은인디, 금년에 하나 치울라나.”

로터리 치러 나오던 서상철과 모판 떼던 장신우가 담배 나누면서 해보는 소리였다.

부부는 오토바이로 벌써 잿골논에 도착하여 한창 땀흘리는 중이었다. 한달여 전 세 구획으로 못자리를 했었는데, 한 구획에 가로 세 판, 세로 서른 판 해서 아흔 판을 넣었었다. 고운 흙에 버무려진 볍씨들은 한달여간 생명의 신비를 거듭한 끝에, 이렇게 손가락만한 크기로 다보록다보록 초록 들판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양규는, 짧은 나무토막 두 개에 길게 이은 철삿줄로, 모판 끝머리 밑에 걸친 다음 주욱 잡아당겼다. 철사가 모판 밑 흙을 드르륵 긁은 뒤 이내 몸 쪽으로 빠져나왔다. 그럼 모판 하나가 떼어진 것이었다.

순이는 남편이 떼어놓은 모판을 두 개씩 겹쳐 들고 길가로 날랐다. 모판 두 개의 무게는 순이의 허리를 90도로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아, 하나씩 들구 다니라니께, 겁나게 말 안 듣네.”

양규가 만류를 안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세월에 다 날를라구유.”

아내의 부지런한 소리에, 네 마음대로 하되 아프다고 노래만 부르지 마라,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경운기 짐칸의 서해가 나는 어쩌냐고 물을 짬도 없이 대춘은 오토바이로 바꿔 타고 다시 집으로 갔다. 이번엔 이앙기를 댓골논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색시가 처자기도 지겨워 구경 나왔나보다 하고 그냥 무시해버렸다. 아무리 며느리 삼을 작정으로 곱게 대하고 있다지만, 대도시 사는 딸이며 사위며 불러내려 일손 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있는 마당에 ‘전원일기’ 구경하듯 저 모양인 색시에게 언짢은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을 시켜봐야 오분도 못 부려먹고 몇주일치 약값을 대주어야 할 지 모른다는 지레 판단이었다.

그러나 서해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시청을 단 십여분에 그치고 부부의 마음씀을 허투루 만들었다. 순이 발목에 꿰인 물장화를 보고 용도를 깨우친 뒤, 서해는 운동화를 벗고 짐칸의 헌 물장화를 주워 신었다.

눈에 넣어도 시원찮게 생긴 것들은 뭘 신어도 폼난다니께. 서해 하는 양을 훔쳐보던 양규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서해는, 순이가 모판 옮기는 것을 관찰한 지 몇분 만에 자신이 넉넉하게는 한 개, 적당하게는 두 개, 무리하게는 세 개의 모판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산출해낸 것이다. 서해가 두 개의 모판을 겹쳐 번쩍 들어올리고 논바닥을 성큼성큼 걸어나가자 순이는 입을 쩍 벌렸다. 양규의 놀라움도 아내 못지않았다.

부부는, 지가 그래봤자 십분이면 더이상 못하겠다고 퍼질러버리거나 팔목 혹은 발목 삐었다고 죽는 창을 해대리라 헤아렸는데, 반시간이 되어도 도시 처녀의 기운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색시, 무거운 것을 더러 들어봤구먼?”

“아주머니, 이깟 게 무겁겠어요? 사내가 무겁겠어요?”

서해는 너무 심한 농담을 했다 싶어 입을 가렸는데, 다행히 순이는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대춘이 돌아와 합세하자 한결 속력이 났다. 한꺼번에 다 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모낼 댓골논과 청라논 것만 떼는 것이었다.

사실 서해는 일 시작한 지 반시간쯤부터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오기로 버텼다. 한 삼년, 정말이지 짐승 같은 것들한테 붙잡혀 무일푼 보수로 착취당한 적이 있었는데, 해방의 날까지 버티게 했던 그 오기에 비하면, 급수 한참 떨어지는 오기였다만. 결국은 그 오기가 바닥나 쓰러지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저지를 막판에 모판 떼기가 끝났다.

대춘은 길가에 내어놓은 모판을 경운기 짐칸에 높다랗게 쟁여 쌓았다.

“아버지, 쟤가 그리두 일을 제법 하네유. 쟤랑 심어볼 테니까, 청라논 흙 고르시쥬?”

“인저 겨우 한시간 일했는디, 너무 믿는 거 아녀?”

“뭐, 혼자 심어두 충분하잖유?”

부부는 오토바이를 타고 청라논으로 먼저 떠났다.

대춘은 바로 엮은 경운기 안장에 서해를 앉혔다. 허리는 얇아도 엉덩이 평수는 제법 되어서 궁둥이 약간이 허공으로 비어져나왔지만, 서해는 자신이 운전이라도 하는 듯한 들뜬 기분에 바퀴가 껑충껑충 뛸 때마다 안장 모서리 쇠에 매맞아 꽤 아팠을 텐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소리소리 질러댔다.

“달려라! 달려. 더 빨리!”

하지만 대춘은 서해가 설치다 그예 낙마라도 할까봐 속도를 외려 줄였다. 서해의 환호성 속에 청라논은 성큼 가까워졌다. 싣고 온 모판의 절반을 청라논에 떨구었다. 대춘이 짐칸 위에서 집어주면 부부와 서해가 받아들어다가 논물에 담가놓았다. 부부를 흙 고르라고 청라논에 남겨놓고, 경운기는 댓골논으로 향했다.

댓골논에서의 하역작업은 둘이서 하자니 서해에게 다소 힘들었다. 서해의 트레이닝복과 장갑 속에 숨은 살갗은 이미 빗살무기토기처럼 긁혀 있었다. 모판을 한편으로는 둑에 걸쳐놓고 한편으로는 논바닥에 들여놓고 짐칸을 깨끗이 비운 뒤에 대춘은 서해에게도 담배를 내밀었다.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원시적인 것 같아.”

“야, 그리도 내가 어렸을 적에 비하면 격세가 지감이다. 이런 논 하나 심는데도 장정 대여섯이 한나절 죽 때렸다니께.”

“차라리 조선시대하고 비교를 하지. 대망의 2천년이라고. 술집년들도 인터넷으로 고객관리 하는 세상에 농촌은 이게 뭐래?”

“새천년의 현실이다. 21세기는 가는 놈들이 가는 거구, 우리 같은 놈들은 죽기 전에 19세기를 면할라나도 물러.”

이앙기는 네 줄로 심어나갔다. 서해는 기계가 참 신기했다. 하지만 슬슬 짜증이 났다. 이앙기가 이편에 왔을 때 둑 밑 논바닥에 대어놓은 모판을 집어주고 나면, 대춘이 다시 저쪽 편에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하릴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댓골논의 4분의 1쯤 심었을 때였다. 대춘이 이앙기를 돌려세우고, 모를 떨어낸 판 여덟 개를 내려놓았다.

“모판 안 집어주고 뭐 혀?”

“심심하단 말야. 내 성격 알잖아?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미친단 말야.”

“꼭 말을 해야 아냐? 이거 닦어야지.”

대춘은 물장화 끝으로 빈 모판을 툭 찼다. 흙방울이 서해의 얼굴을 때렸다. 대춘은 허허 웃었다. 서해의 새하얗던 트레이닝복은 아주 흙색으로 변해 있었다. 일거리가 불어나 신이 난 서해는 빈 모판을 옮겨다 수로에 던져넣었다. 물은 몹시 탁했으며 시원스럽게 흐르지 못했다. 그래서 모판 씻는 일은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한바퀴 돌고 온 대춘은 서해가 닦아놓은 모판을 보고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왜 덜 닦아졌어? 더이상 안 닦아진단 말야.”

“몇개나 씻었냐?”

“두 개.”

“이렇게 씻으니까 그렇지.”

대춘이 시범을 보였다. 서해는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닦아놓은 것은 올해 구입한 것마냥 말끔했는데, 대춘이 닦은 것은 몇년이나 묵었는지 모를 논흙기가 여전히 켜켜이 배어 있었다.

“그게 닦는 거야, 헹구는 거지?”

“이 정도로 하면 돼. 내년에 씻나락 담을 때 지장만 없으면 된다구. 너처럼 닦다가는 어느 세월에 다 씻냐?”

하지만 서해는 하향 조절한 나름의 기준으로 깨끗하게 닦으려고 노력했고, 대춘이 오면 모판도 집어주어야 했기 때문에 소원대로 엄청 바빠졌다.

댓골논의 모내기가 끝났다. 흙인지 사람인지 모르게 된 서해가 열심히 닦은 모판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뒤 손을 씻고는 말했다.

“모내기 별것도 아니네 뭐.”

“별거 아녀?”

“그럼 뭐 별거야. 오빠도 기계가 다 심어준 거 아냐?”

“네가 땜빵을 해봐야 그런 소리가 안 나오는디.”

“땜빵?”

“네 눈에는 저 이앙기가 완벽해 보이냐? 쟤도 기계여. 실수가 많은 놈이라구.”

양규와 순이는 서해를 며느릿감으로 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두세시간 화장으로 하루를 열어서 한두시간 화장으로 하루를 마감할 것 같은 얼굴을 해가지고서는 몸뚱이에 흙 한방울이라도 닿을라치면 기겁을 하고, 꼼지락거리다 땀 한방울이라도 떨어질라치면 유세를 떨고 해댈 것처럼 생긴 몸뚱이와는 달리, 너무나도 달리 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삼강오륜도 귀동냥 한번 안해본 것처럼 겅정겅정 나대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점심밥을 먹고 부부는 댓골논으로 모 때우러, 젊은이들은 청라논으로 모 심으러 갔다.

“저건 사람이 타서 운전하네?”

서해가 가리킨 것은 대춘의 네 줄로 심어나가는 4조보행 이앙기와는 차원이 다른 여섯 줄로, 쾌속으로, 핸들운전으로 심어나가는 6조승용 이앙기였다. 대춘은 논다랑이 3분의 1을 심었는데, 대춘보다 한참 늦게 온 그 이앙기는 삽시간에 한 다랑이를 해치우고 다른 논배미로 이동중이었다.

“오빠네는 왜 저런 거 없어?”

“저런 좋은 기계는 땅이 많은 사람들이나 갖추는 거여. 오빠네는 겨우 닷마지기여. 저런 기계를 들이면 휘발유값도 못 뽑는다구.”

싸구려 기계라도 고장만 안 나준다면 사람 열 몫을 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고장이 났다 하면 이런 골칫덩어리가 다시 없었다.

이앙기가 자꾸만 헛발질을 해댔다. 논흙에 박아야 할 모를 물위에 띄우고만 마는 것이다. 이앙기를 논밖으로 빼어놓고 한참 복달불을 태우던 대춘은 손을 들고 말았다.

“안 되겄다. 내 실력으로 안 되겄어야.”

대춘과 서해는 포장도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서해는 물장화를 벗더니 맨발로 걸었다.

“영화 찍구 자빠졌네.”

“오빠는 이 좋은 데 살면서 뭐가 부족하다고 그렇게 싸돌아다녔어? 너무 좋다……”

“네 년 눈에나 그렇게 보이지, 내 눈에는 영영 막막해 보인다.”

“애향심이 없다니까, 오빠는.”

댓골논에 도착해보니, 부부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씩을 허리춤에 들고 오전에 심어놓은 모 속에 들어가 허리굽히기 운동을 해대고 있었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편이라고 자부하는 서해도 저게 뭐하는 수작인지 얼른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부부가 논에서 나왔다.

“기계가 말썽이냐?”

“팍 뽀개뿌리던지 해야지 미치겄슈.”

순이가 챙겨온 찬 보자기를 풀렀다. 대춘은 아버지 잔에 넘실 채우고, 또 한 잔을 채워 서해에게 내밀었다. 서해는 가타부타 않고 받아서는 거침없이 들이켰다.

“어뗘? 막걸리 맛이?”

“잘 모르겠는데. 한 잔 더 마셔봐야 알겠어.”

“준호한테 가봐야겄슈.”

아무래도 거의 모든 기계를 갖추고 농사짓는 준호가 기계에 대해서도 많이 알 터였다. 준호도 못 고치는 고장이라면 트럭을 빌려야 할 것이다. 면내 농기계수리쎈터에 전화해보았자 수리 일정이 밀리고 밀려, 출장이라면 모레글피 후에도 나올 수 있을지 말지 하고, 직접 방문해도 내일 저녁때나 될지 말지 하다는 말이나 들을 것이었다. 시내로 싣고 들어가 오늘 밤 안으로 고쳐가지고 오는 것이 속 편할 터였다.

“그놈의 기계는 툭하면 지랄이라니? 옛날이는 하늘 눈치 보다가 농사 다 짓더만, 요새는 기계 눈치 보다가 해 다가는구먼.”

순이가 시부렁댈 때 서해는 세 잔째 마시고 있었다. 양규는 처자가 술집 출신이라는 확신을 굳히면서도 어여삐 바라보는 마음이 굳어만 갔다.

대춘은 오토바이를 몰고 준호를 찾아 떠났다.

부부는 서해를 무시하고 둘이서만 논 속으로 들어갔다. 서해가 운운하는 일당은 들은 순간부터 장난으로 들었으나, 일당이 며느리 들이는 데 한 계책이 된다면 못 줄 것도 없어서, 일당 쳐주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아무려면야 일손에 보탬이 된다면 돈이 아까우랴. 그리고 혹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 처녀인데 한 동이로 허리 굽혀대며 주거니받거니 세대 차이를 줄여보는 것도 대명천지에 그처럼 유쾌한 일은 또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서해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푼어치 신세로 둑에 오도카니 올려놓고 ‘전원일기’나 구경해라 만들어놓은 것은, 어찌 되었거나 일을 더 시켰다가는 진정으로 약값이나 대게 되리라 걱정이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모내기할 때 가장 일 같지도 않으면서 가장 힘든 일이 땜빵이었기 때문이다. 물정 모르는 도시 처녀를 논 속에 들였다가는 모 땜빵이 아니라 모 밟기 꼴이 날 것이라는 선입감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서해는, 물어보았자 가르쳐줄 것 같지는 않고, 학처럼 모가지를 길게 내밀고 가만히 짐작하기를 반시간여 골몰한 끝에 저분들이 지금 뭐하는 수작인지를 깨우쳤다. 서해는 수로를 뒤져 비닐봉지를 주워냈다.

아까 대춘은 모심기를 끝내고 남은 모판을 그대로 놓아두었는데 그게 땜빵용인 모양이었다. 땜빵이라는 게 뭐 대단한 일이 아니고, 기계가 심었다고 심었지만 뿌리를 흙속에 박지 못하고 물 위로 떠버리게 만들었거나 아예 기계가 심지 않고 지나쳐버린 자리에 땜질하듯 모를 서너 포기씩 심어주는 일이라는 걸 서해는 눈치채버린 것이었다. 뭐 일도 아니구만 나를 따돌려! 서해는 부부를 향해 얄밉다는 듯 입술을 실룩였다.

서해는 비닐봉지에 모판의 모를 잔뜩 뽑아 담았다. 그리고는 논바닥을 질퍽질퍽 걷기 시작한 지 꼭 열세 발짝 만에 풍덩 엎어졌다. 부부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했다는 듯이 도시 처녀를 향해 논바닥을 뛰어가면서도 의식도 하지 않았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모를 한 포기도 밟지 않고 있었다.

부부가 도착할 때까지 서해가 일어서지도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일어섰다가 이번에는 뒤로 나자빠졌고, 다시 일어섰다가 재차 옆으로 고꾸라지고, 대체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몸이 말을 안 듣는 데에는 막걸리 기운도 한몫 하고 있다는 것을 서해 자신은 몰랐다. 술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도 못 마셔본 술이 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던 서해는,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를 너무 깐보았던 것이다.

서해는 발가벗고 양주 테이블 위에서 소녀경 체위로 춤추는 것보다 물장화 신고 논바닥에 중심잡고 서 있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중이었다.

서해가 난리를 친 사위의 모들은 제대로 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색시가 모를 땜빵하는 게 아니라 모가 색시를 땜빵했구먼.”

순이가 흙사람이 되어버린 서해의 가슴께에 달라붙은 모포기를 떼어내며 한 소리였다.

“흙맛 참 좋네유.”

서해는 입 속의 논흙을 퉤퉤 뱉어내며 사투리 흉내를 내보았지만, 부부는 웃지 않았다. 부부는 이 처녀가 대체 왜 이러나, 진정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논바닥을 징검징검 걸으며 모 때우는 일이 서해의 오기와 끈기를 한사코 외면할 정도로 무시무시하지는 않았다.

시초에는 잘못 발바닥을 내려놓아 모를 뭉개고, 십여분에 서너번은 흙탕에 온몸 접촉하고, 모포기를 개갈 안 나게 찔러 참다 참다 못한 순이한테  “아, 뿌리만 살짝 꽂아야지, 숫제 묻네 묻어. 그러면 모가 살겄냐, 죽겄냐. 지발 나가 있으랑께” 하는 지청구를 먹으면서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신이 없었는데, 차차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자 속도가 더디어서 그렇지 제법 순이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허리가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날 것처럼 아뜩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다리가 후들리는 것이 논바닥에 있는 게 아니라 조각배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것마냥 멀미인지, 오한인지가 대단했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었나 싶었다.

양규가 이렇게 탄식했을 정도였다.

“안골에 대단한 농사꾼 나버렸네.”

다행히 준호의 선에서 이앙기는 말을 들었다. 대춘이 준호에게 치하하고 청라논 나머지를 아퀴지은 뒤, 이앙기를 내일 모심을 당골논으로 옮겨놓고 다시 청라논으로 가서 오토바이에 엉덩이를 얹고 댓골논으로 부다다당 달려와보니 사위의 날빛들은 슬슬 기운을 잃고 있는데, 서해가 단란주점 시절 트로트 좋아하는 손님들 시중들며 갈고 닦은 솜씨로 부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양규는 흥이 나도 단단히 난 불콰한 얼굴로 젓가락으로 막걸리병을 때리며 장단을 맞추고, 순이는 전국노래자랑풍으로 어깨를 덩실덩실거리고 있었다. 흙원숭이 꼴을 해가지고서는 낭랑한 목소리를 들판으로 퍼뜨리고 있던 서해는 대춘에게 손을 턱 내밀었다.

“야, 숭허게 뭐하자는 짓거리여!”

큰소리를 쳐보긴 했으나 어쩌다 보니 블루스 스텝을 밟고 있었다. 농로 위에 잘 벌어진 한 판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들판을 흥청거리게 했다.

서해가 붉은 사인펜을 쥐고 달력 앞에 서더니 ‘22’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을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춘은 건수가 생겼다는 듯 읊었다.

“왜 남의 달력이다, 네 멘스 요이 땅! 한 것을 표시하구 지랄여?”

“멘스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오늘 일했다고 공쳐놓는 거야. 돈 계산은 확실히 해야지.”

순이는 젊은 애들이 밤도 이슥해졌는데 또 뭔 일 안 하나 기웃거리다가, 달 보러 나온 양규에게 퉁바리를 먹었다.

“시에미 될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일이 되겄어!”

모내기철 개구락지 울어대는 소리가 좋은 음악처럼 들리는지 달님은 방그레 웃어대고 있었다.

다음날 서해는 일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몸살감기로 굴신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