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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한반도와 ‘남+북’

『남과 북』론

 

 

임규찬 林奎燦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국문학.

 

 

1

 

역시 ‘고은’이구나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생방송 때, 수행단의 한 사람이었던 고은(高銀) 시인이 평양시내 목련관에서 열린 만찬석상에서 즉흥시 「대동강 앞에서」를 직접 낭송한 장면이 그것이다. 특유의 목청으로 때로 스며들듯 때로 포효하듯 연단을 부여잡고 격렬한 몸동작으로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가로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변화야말로 진리이다”로 시작하여,

 

그래야 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이상 민족을 노래하지 않으리라

더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그런 것 깡그리 잊어버리고 아득히 구천을 떠돌리라

그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나 흉흉한 거지가 되어도 뭣이 되어서도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기호이다

 

로 이어지다가 “아 이 만남이야말로/이 만남을 위해 여기까지 온/우리 현대사 백년 최고의 얼굴 아니냐/이제 돌아간다/한송이 꽃 들고 돌아간다”로 끝맺음을 하던 시였다. 어찌 그때의 감동이 그만의 것이랴마는 시인의 삶을 아는 이라면 ‘민족시인’이란 호명이 말해주듯 그가 영접했을 환희의 황홀감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마치 이날을 예감이라도 하듯 시인은 『남과 북』 후기에서 “통일은 자연스러운 것, 통일에 앞서 삶의 품성을 높이는 것, 통일이 단순한 재통일이 아니라는 것, 통일이란 통일이론 엘리뜨들에 의해서 주도되지 않고 뜻밖에 역사의 불가지적 운행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만한 때에 나도 속해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고은의 90년대는 이전의 ‘민족시인’으로부터 다소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바로 앞선 시집 『머나먼 길』 같은 경우에서도 그는 이전까지 핵심에 두었던 ‘고향’ ‘조국’ ‘당파’로부터 떠나 ‘통일은 내일의 역사’라며 거리를 두고 전지구와 대우주의 세계를 모색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만큼 『남과 북』이 세계화를 온몸으로 통과하고 돌아온 재귀(再歸)의 큰 걸음인지, 아니면 현실 변화 속에서 시인 특유의 직관적 포착력이 번뜩이는 발빠른 걸음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2

 

사실 『남과 북』은 작가의 후기를 굳이 거론치 않더라도 ‘분단현실과 통일’을 노래한, 일종의 주제시라 부름직한 면모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규정해놓고 보면 중요한 일면을 지시하면서도 왠지 그가 꿈꾸는 시적 세계를 모독하는 일처럼 생각된다. 사실 양식적 측면에서 이 시집은 기행시 모음 쪽에 가깝다. 그리고 99년, 시인에게 행운처럼 찾아온 북한방문 15일이 이를 추동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기행으로 단순히 제한하지 않고 ‘남과 북’ 전체로 모두어낸 것 자체가 이미 단순한 기행시를 넘어선다. 그 점에서 ‘남과 북’이 상징하는 주제적 측면은 그로부터 가장 깊숙한 곳, 아니 운무 위로 솟구친 정상처럼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감상할 때는 그냥 편하게 기행시편을 대하듯, 시인이 어지럽게 펼쳐놓은 한반도의 산천을 천천히 완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남과 북이 구별되지 않는 산과 바다와 강과 길을 시인이 불어넣은 숨결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희노애락을 가만가만 느껴보자. 그리고 그런 속에서 산천의 복잡성만큼이나 다양하게 시인이 펼쳐내는 존재의 비의성, 역사와 현실의 난해성을 서서히 모아보자.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데 고은 시의 특징이 있다. 남다른 불교적 소양 탓인지 소시민적 안일과 표피적·평면적 사고를 거부하는 승속(僧俗)의 미묘한 힘은 항상 이것이다 하면 달아나는 먼 무엇이 있다. 그가 너무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너무 먼 곳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원오(遠奧), 즉 뜻 가운데 멂〔遠〕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를 주유하듯 읽어도 무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방일 뿐 시집 전체가 감싸고 있는 뒷산과 같은 기운을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다. ‘남과 북’이 그것이며, 시집 『남과 북』 전체가 발산하는 힘이 그것이다. 더구나 시인 자신이 후기에서 “분단 이전의 노래이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몇 단면에 다가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분단 이후의 어떤 시기에 들어맞는 노래”라고 하니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개별 시가 다루는 주된 과녁과 방향을 통해 이런 분별을 섬세하게 변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집 속의 시적 대상들이 ‘남’과 ‘북’으로 변별되지 않듯이 별반 의미없는 일이다. 다만 분단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시들을 통해 이에 대한 시인의 시각을 어느정도 가늠해볼 수는 있다. 우선 ‘분단’과 ‘통일’이 금방 떠오르며 행동의 분기(奮起)를 촉구하는 듯한, 말하자면 형사(形寫) 밖의 뜻을 먼저 추구하여 표면으로 직접 솟구치며 드러나는 80년대식 시 유형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이 점은 시인 자신을 ‘현실적 자아’가 아닌 현실과 어느정도 고리를 끊은 ‘유령적 자아’로 스스로 밀어올린 때문일 것이다. 「유령의 노래」에서 시인은 “지난날 구원 없는 세상을/그 백만분의 일이라도 바꾸지 못한 것이 원통하였다”고 겸허하게 과거를 되돌아보며, 현재의 자신을 ‘무명의 유령’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 유령은 “수증기 한그릇도 허용하지 않는/투명한 성층권”이 아닌 “스산한 대류권(對流圈) 공중”에서 떠도는 존재다. 언뜻 이 대목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구천에 떠도는 원혼’을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유령’이란 말 속에는 ‘한(恨)’ ‘원통’의 심성이 배제되어 있다. 그 점에서 ‘한의 맺힘’이 아닌 그것의 최종적 극복인 ‘한의 삭힘’쯤이다. 사실 ‘유령’이란 우리의 언어이기보다는 직역한 서구적 언어에 가깝다. 오히려 그런 특성이 우리의 주관적 정서를 떨쳐내는 역할을 한다. 좀더 풀어보면 남한이라는 반쪽 땅에 어쩔 수 없이 속박당한 육체적 자아로부터 벗어나서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쫓는 영혼의 자아에로의 상승을 의미하는 존재이다. 시의 마무리에서 이 점은 확실해진다.

 

그러나 나는 그 위층보다

저 지상의 한반도쯤을 무위로 내려다본다

오 난해한 것투성이

오 난해한 것투성이

아직도 고된 싸움이 남은 땅을 내려다본다

아무런 책벌도 주지 못하는 제트기류 언저리에서

날개 없는 유령으로 떠돌고 있다

그럼에도 내 국적은 한반도였다 아프간이 아니었다

 

시의 착상은 북한땅 위를 나는 비행기 속의 ‘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창밖으로 반도를 내려다보다 문득 공중 속의 비행기와 ‘나’와 ‘땅’이 일체가 되어 한순간 정지했다는 느낌(“날개 없는 유령”), 그 순간 ‘민족적 자아 혹은 영혼’이 아마도 탄생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런 초월과 상승, 무위 속에서도 ‘민족적인 것’을 문제삼는 시인의 의식이야말로 이 시집 전체를 떠받치는 시적 나침반이다. 아니 그냥의 나침반이 아닌 북극을 향해 미세하게 쉼없이 바늘끝을 떠는 지남철과도 같다.

실제로 ‘난해한 것투성이’ ‘책벌’이 환기하는 분단현실에 대한 시인의 질타는 이 시집 속에 드물지만, 그러나 단호한 목청으로 짧게 명제화되기도 한다.

 

무거운 바위 무거운 공기에 눌려 있지 않기를

무거운 사명에 갇혀 있지 않기를

이곳에

무거운 신이

여러 신들을 징치하지 않기를

─「평양」 부분

 

남한은 온통 속도뿐이고

북한은 오랫동안 속도전이라는 구호의 누리였다

─「대동문」 부분

 

여기에 「평안가도 수안땅 지나가며」나 「아오지 탄광」 등의 시까지 감안하면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단순비교보다는 전체적으로 ‘구호’와 ‘이념’이 삶의 자연스러움 혹은 삶의 유한성과 절대성을 짓누르는 것에 대한 비판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짧은 현재만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반도 전체 역사로 투영되기도 한다. 가령 「단군릉」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가난한 역사이고 싶습니다

거룩한 것

그런 것 없는 역사이고 싶습니다

저녁 연기 나는 마을과

이웃마을들의 이야기이고 싶습니다

달밤 다듬이 소리면 아주 그만이겠습니다

 

아주 평이한 진술로 소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는 시인데, 이런 1연 뒤로도 시로서의 응축을 생략한 채 “단군께서 계신 역사/왠지 무겁기만 합니다 납덩이이기만 합니다” “큰 역사보다 심신 낮춰/가난한 역사이고 싶습니다/너무 강한 것/그런 것을 겨루는 역사 아니고 싶습니다”며 너무도 분명하게 표명한다.

그 점에서 강하고 견고하고 큰 것에서 약하고 부드럽고 사소한 것으로 선회하는 시인의 눈길 또한 동일한 맥락이다. 과거의 웅장한 서사시 『백두산』과는 다르게 “티끌 하나도 내 맞수로/늘 전체였다” “다음에 오는 이들이여 부디 여기 와서/가슴 벅차지 말고/사소한 일 하나하나와 함께이거라”(「백두산」)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며, 울릉도를 두고 “작은 나라!/그것만으로 세상의 보석이었다”(「옛 울릉도의 말씀」)고 단언하기도 한다.

물론 장려하고 고고한 시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때도 그저 호방(豪放)으로만 치닫지 않는 역설적인 비개(悲愾)의 기운이 서려 있다. 가령 “어떤 종교도 사절한다”로 시작하는 「다시 천지」 같은 경우는 시종 강한 어조이지만, 어떤 종교·교리·욕망도 거절하는 무신(無神)을 이야기한다. 또한 「만월대」에서 “6백년 동안이나 폐허에서/또 하나의 폐허이거라”라고 하듯 강한 것은 더욱 극점으로 밀어붙이는, 그리하여 마치 ‘썩음’ ‘삭힘’을 통한 재탄생의 미학을 내보인다. 아마도 강약에 대한 시인의 의경이 한눈에 드러나는 시가 「내장산」일 것이다. 단풍의 아름다움도 한 백년쯤 푹 쉬어야 한다며, 나말고 내 자손 때나 새로 몰려오는 단풍이면 좋겠다며, 더불어 아름답지 못한 것도 함께 쉬어야 한다며 “멸망조차도 한갓 휴식”이라 토로한다.

그런데 사물에 대한 이런 인식의 배후에 더욱 근원적인 사유의 심층이 있는바, 바로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다.

 

덧없다 하지 말라

늘 다음이 있다

내일만이 아니라

그런 내일 가운데

지난날도 함께였다 여럿이었다

─「구월산」 부분

 

우리가 통상 말하는 ‘시간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거기에 숨은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시간은 흘러가버린다’는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리얼리티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은 허무하다’는 비극적 사유를 시간의 영원성 속에 용해시켜 “그러는 동안/백년 원수쯤에도 친구가 된다고/덧없다 함은/그런 것이라고” 하는 낙관적 힘으로 전화시키는 힘이 거기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순차적 도식, 그런 도식에 의해 알게모르게 구획되는 짧은 시간성을 거부하고 거대한 시간을 하나의 현재로 응집시키는 힘이다. 말하자면 세월에서 ‘상실’을 보지 않고 ‘누적’ ‘축적’의 영원한 현재성을 본 것이다. 가령 한반도 동북단 웅기 굴포리를 “내 고향의 전생”이라 하며 그곳 세계를 묘사한 「굴포리」에서 청동기시대 비파형 구리칼, 홍적세 뼈송곳 이야기를 하다가

 

남한 어딘가에 가는 놋단검 나와

구름 뒤 햇빛에 빛났다

내 엑스레이 해골 이빨들이 히히 웃었다

옛과 오늘 아주 의좋은 날

오랜 고인돌 밑 그늘이 누님 같다 오랜만의 누이 같다

 

로 끝을 맺는데, 이 역시 그런 환희에 찬 시간성의 표출이다. 특히 “엑스레이 해골 이빨”이란 말이 매력적이다. ‘시간에 대한 투시’ ‘곧 다가올 미래에 대한 암시’로서 ‘옛’과 ‘오늘’의 한몸이 생성된다. 이런 시간성에 대한 인식은 「여주 영릉」에서 아주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우리들에게는

3백년 이상쯤이 과거이고

그 이후는

아직 과거가 아니기를 바라는 썰물진 마음이 있어야겠다

과거가 너무 척박하게

바로 어제부터

그저께부터여서야

어찌 숨지는 일도 섭섭하지 않겠는가

아 분단도 너무 과거이고 사랑도 과거이다

벌써 내일도 과거이다

그동안 기구하게 살아온 것도

몹시 뜨거운 여름 녹음 밖 땡볕이 되었다

─「여주 영릉」 부분

 

과거를 너무 척박하게 바라보지 말자는 것은 곧 ‘크나큰 시간’에 대한 사유를 의미한다. 이럴 때 “분단도 너무 과거이고”, 나아가 “세월은 하느님보다 거룩”(「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년을 잘못 살았다

가도

가도 들이었다

나주 영산포

여기 주춧돌 놓고

다시 살아야겠다

─「들」 부분

 

짧은 서술이지만 매우 함축적이며, 확산되는 언어의 바람이 있다. 오히려 이 자체로 시를 끝맺는 게 좋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의 근대 백년을 통째로 전복하는 힘이 있다. 굳이 생태학적 사유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그 뒤로 이어지는 것도 남녘의 영산벌이 펼쳐내는 자연 자체의 형용이다. 이 시집이 발산하는 전체적인 음향도 그렇게 큰 시간성 속에서 지속으로서의 자연적인 것, 순환적인 것에서 울려나온다. 시인한테 낯설 수밖에 없는 이북땅에서 그가 만난 것도 그것이었다. 심심산천 백무고원의 한뙈기 화전밭에서 본 감자꽃조차 그러하다. “한밤중 추위 덜덜덜 견디어내고/다음날 일찍/하나둘 더 피어난 감자꽃 호젓하다”에서처럼 삶은 자연이기에 시인은 “다시는 그곳에 가지 말자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모독이었다”고 말한다(「감자꽃」). 또 우리에게 극지로 알려진 삼수·갑산에서도 “한 5천년 전 그대로의 백성”을 보게 되고, 그것이 곧 “생애의 내 조국”임을 발견한다(「갑산」). 그러니 어찌 북녘땅만의 것이겠는가. “사람아/더도 말고/섬진강만 하거라/섬진강만 하거라/따오기 서넛 날으는 저녁 강물만 하거라”는 짧지만 여백의 울림이 있는 「화개장터」, “백성으로 태어나서/백성 갑을병정으로 살아가는/그 독실한 무명씨를 생각할 일”이라는 「수분리 지나가며」 등 시집 속의 한반도 도처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인 분단을 넘어서는 힘도 자연적인 것에 있다. 「단풍」 「꽃소식」 「기러기 길」 「모심는 아낙들」이 그런 형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편인데, 대개 그 골조가 비슷하다. 봄 꽃소식이나 모심기 남에서 북으로 가고 단풍 소식 북에서 남으로 오는 여정처럼, 혹은 남과 북이 다 내고장인 기러기처럼 이미 남북의 경계가 없는 자연적인 이동이 그것이다. 사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순간에 지적이고 정서적인 복합체를 만나는 일이다. 특히나 현실의 제약 앞에 있는 경우 순간처럼 드러나는 이런 복합체를 통해 우리는 뜨거운 해방의식, 시간적 한계와 공간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3

 

역사의 지배가 큰 때, 그에 따라 사건들의 압력에 숨막힐 때 역사가 단순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퇴화만 한다면 언어 또한 생명 없는 상징들의 퇴화가 되기 십상이다. 이 시집이 지향하는 바를 생각하면 그럴 우려가 많다. 그러나 시인은 마치 나비처럼 훌쩍 그로부터 날아올라 우리를 높으면서도 낮은 세계로 자유자재 데려다가 한반도 전체를 바라보게 만든다.

물론 이 자리에서 이 시집의 성취 정도를 여러 면에서 세세히 짚지는 못했다. 가령 「백마강」 「내설악 오세암」 「부소산」 「두 바위의 하루」 「보현사 석탑」 「금강굴」 등 각각의 자연과 사물에 온몸을 맡기고 마음으로 각기 다른 경지를 담아 형상화한 자연시는 시인의 행동적 사유의 또다른 이면인 명상적 사유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시편들인데 불가피하게 생략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어렴풋이나마 드러난 것이지만 민족성이나 민중성의 문제, 그리고 생태학적 사유 등도 더 깊이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더구나 이 시집 속의 모든 작품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시간성의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기행시편 자체가 역사가 되기 쉬운 터라 미래보다는 과거에 치중되어서인지 과거의 주박이 너무 짙은 그늘로 되어버린 경우 아쉬움이 많다.

특히 문제가 되는 시편은 역사적 인물을 그린 경우였다. 『만인보』의 평가와 상통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들 시편에서 관념적 도식에 지배되거나 장황한 설명적 서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뒤를 돌아보는 상상력과 앞을 내다보는 상상력은 성격을 달리한다. 기억은 재생산의 힘을 필요로 하고, 앞을 내다보는 일은 창조적 힘, 즉 예상의 힘을 필요로 한다. 어떤 특정 역사적 인물을 택할 때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도 가능할 전설을 만드는 일이지 과거의 상태로 고스란히 변천시키는 역사적 수사는 아닐 것이다. 「경주 남산」 「운주사」 등의 성공에 견주어 「바다의 무덤」 「광화문」 「김시습」 「선죽교」 「계(契)」 등이 그러하다. 또 「진도 아낙네들」이나 「눈오시누나」 같은 경우는 민요조나 김소월 시 등을 너무 편하게 차용해서인지 현재적 변용에 값할 만한 기운은 주지 않고, 「황진이 무덤」 같은 경우 황진이의 시를 인용하여 액자시 형태를 만들었으나 설익은 느낌이다.

시인에게는 분명 인간이 만든 역사의 거대한 막을 찢고자 하는 의향이 있었다. 또 적어도 고은이기에 우리는 은연중 새로운 진경을 기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쉬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여러 요인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언어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남’만이 아닌 ‘북’까지 아우르는 이 시집의 목표를 생각하면 민족어에 더 순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매우 종요로운 창조의 영역이다. 더구나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려는 역사적 조건의 변화는 그만큼 우리에게 창조를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셈인데, 우리의 사유와 그 사유를 보존하는 매개체인 언어는 오히려 낡아가고 경박해져가는 오늘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남과 북』도 전체적으로 『만인보』에서 흠취(歆臭)할 수 있는 활기와 윤기, 생동감은 찾기 힘들었다. 물론 휘트먼(W. Whitman)의 표현처럼 가장 위대한 시인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평담한 문체로 쉽게 커지지도 쉽게 작아지지도 않는 생각을 유장하게 펼쳐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남과 북의 수준 낮은 정치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로서의 음향(音響)”을 지향했다는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오랜만에 ‘남과 북’이 한데 뒤섞여 춤을 추며 합창하는 시의 광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늘 불화(不和)로서의 상대방을 확인할수록 그것에 내 얼굴이 찍혀 있고 또 하나의 ‘나’가 늘 ‘너’와의 복수(複數)”(「후기」)이기에 멀다 싶으면 가깝고, 가깝다 싶으면 먼 거리감이 슬몃슬몃 비쳐서일까. 북녘을 그린 시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으면……”(「그 암자」) 하는 흔적을 남기니 아직은 ‘한반도’가 아닌 ‘남+북’일 수밖에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