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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경학 연구와 백가의(百家衣) 제작

정일균 『다산(茶山) 사서경학(四書經學) 연구』, 일지사 2000

 

 

이동환 李東歡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정일균(鄭一均)의 『다산(茶山) 사서경학(四書經學) 연구』는 한마디로 말해서 다산 경학, 그 사서경학에 대한 실증적 연구의 커다란 성과다. 경학 연구에서 실증적 접근이란 경전의 어사(語詞)·문맥 들을 대상 또는 매재로 한 경학가의 해석적 담설(談說)의 조각들, 바꾸어 말하면 곧 주석들의 비체계적 산포(散布)에서 연구자의 일정한 척도에 의하여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정의·개념·논리 들을 그 경학가의 본래 의사대로 검증하여 밝혀 확정하는 일을 말한다. 물론 한 경학가의 주석의 선행 근원까지 밝혀내는 일도 당연히 실증적 접근의 대상이나, 여기서는 선행 정의·개념·논리의 선별적 채용도 그 경학가의 의사체계로 간주하는 바탕 위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당연한 이야기이거니와 경학 연구는, 경전의 어사·문맥 들에 따른, 정의·개념·논리 들로의 경학가의 의사표명, 즉 주석행위는 외형적으로는 비체계적 산포 형태로 행해지지만, 그 이면에는 경전에 대한 경학가의 일정한 이해 또는 해석의 지평에서 구조(構造)된 사상적 잠재체계가 있어 이것의 산발적 자기표명으로서 주석이 이루어진다고 전제하고 들어간다. 그러므로 경학의 실증적 연구는 주석들의 잡란스러운 산포의 이면에 잠재태로 놓여 있는 이 일정한 사상적 체계를 그 자체대로 밝혀내어 현재화하는 데서 일단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유하자면 백가의(百家衣) 제작과 같다고나 할까. 중국의 옛 풍속에 갓난아이의 수명 장원(長遠)을 도모하는 일종의 주술로, 집집에서 갖가지 자잘한 천조각들을 구걸하여 옷을 지어 입히는 일이 있었는데, 그 옷이 바로 백가의다. 그래서 기왕의 여러 시인들의 시구들을 일정한 주제 아래 모아 구성한 한 편의 완정(完定)된 시를 ‘백가의체(百家衣體)’라고 부르기도 하거니와, 경학 연구에서 경학가가 산포한 해석적 담설의 조각들을 각기 제자리에 놓아 잇댐으로써 그 경학가의 사상적 잠재체계를 구성해 드러내는 일이 갖가지 잡란스러운 천조각들로 한벌의 옷을 제작하는 일에 방불한 바가 있다.

109-366그런데 정일균의 이 연구는 거의 빈 데가 없어 보이는 한벌의 옷에 도달했다. 물론 다산 경학의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벌의 완정된 옷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다산 경학의 근본 지향이 주희(朱憙) 경학에의 대결에 있고, 주희 경학의 집중처(集中處)가 다름아닌 사서경학이란 사실에 비추어보면 다산의 사서경학에만도 그 자체로서 한벌의 옷이 잠재되어 있다고 보아 무리가 없다. 저자는 다산이 취한 주희 경학에의 대결의 지향을 그 접근시각으로 삼아 다산 사서경학의 내용을 세세히 탐토(探討)·검증하여 다산의 ‘이기론(理氣論)’ ‘생성론(生成論)’ ‘인간론’ ‘윤리론’ ‘학문론’으로 그 사상의 잠재체계─저자 자신의 표현으로는 ‘세계관’─를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이 과정에 저자가 들인 그 도저한 독공(篤功)은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각주가 잘 웅변해준다. 하나의 개념, 하나의 명제를 확정하기 위하여 무려 20조목 내외의 근거를 동원하기까지 한 경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다산의 사서경학에 대한 자신의 실증적 해명의 객관도 내지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다산 경학과 직·간접으로 유관한 사실들을 ‘정약용 경학의 배경’ ‘정약용의 사서관계 저술’ ‘정약용의 경전해석 태도’ 등의 장으로 나누어 최대한으로 밝히고 동원해놓았다. 요컨대 정일균의 이 책은 그동안의 다산의 사서경학에 대한 실증적 해명의 가위 집대성적 진경(進境)을 이룬, 결코 쉽사리 나올 수 없는 노작(勞作)으로 기록되기에 족하다.

그런데 나는 일단 이 책의 실증적 성과에 그 비중을 두었지만, 실은 저자의 당초 기획에는 해석적 야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책의 첫머리에 ‘문화체(文化體)’ 개념을 제출하고, 다산 경학을 ‘인식론적 단절’ ‘지식─권력의 문제’ 개념에 입각하여 해명할 뜻을 언표한 것이 그것이다. 이 언표와 다산 경학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명(究明)한 곳곳에서 그 반정주학적(反程朱學的) 성격·의의를 천명한 것을 연결시켜볼 때 일단 큰 틀에서의 해석적 지평의 적용은 인정된다. 그러나 다산 사서경학의 반정주학적 성격은 연구자들의 그러한 해석적 안목 이전에 다산 자신이 내용 논리로 일관되게, 그리고 명료하게 밝혀놓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해석적 안목으로서의 의의는 그만큼 감소될 수밖에 없다. 무릇 여러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경학 연구 역시 되도록이면 실증적 층위와 해석적 층위가 하나의 서술체계로 융합되기를 희구한다. 그러나 다산의 사서경학과 같은 방대한 대상을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그러한 이상적 서술형태에 도달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이 부문의 본격적인 성과를, 우리는 뒤로 기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이룩한 실증적 성과는 다산 사서경학에 대한 본격적이고 전면적인, 그리고 정심(精深)한 해석적 천착으로의 길을 촉구하고 뒷받침해줄 터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는 실증적 해명이 주 작업인 이 책으로서 아쉬운 점은 마땅히 실증적 고구(考究)를 거쳐야 할 문제들이 실증적 고구를 거치지 못한 주요 국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약용 경학의 배경’─개인적 배경, 지적 배경, 사회적 배경이 그 내용 항목임─은 저자가 ‘지식사회학적 조명’이라고 부제를 단 만큼에 상응하는 실증적 논구가 있어야 마땅했다. 즉 다산 사서경학의 주요 개념과 범주 들의 성립의, 저자가 제시한 항목 ‘개인적’ ‘지적’ ‘사회적’ 상황과의 연관의 논리가 구체적으로, 밀착적으로 구명되어야 했다. 두 부면이 거의 단순히 무매개적 대응으로 남겨진 것이 아쉽다.

그리고 용어 내지 개념의 엄밀성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가령 이 책 곳곳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그래서 저자가 정주(程朱)성리학에 대한 다산 경학의 최대·최고의 차별적 특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실제·실천지향적 성향’이란 개념의 경우 더욱 엄밀한 한정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다 아는 바이지만 정주성리학도, 적어도 조선중기 이전에는 허무·적멸의 도불(道佛)에 대해서는 ‘실제·실천지향적 성향’으로 인식되었다. 이 두 ‘실제·실천지향적 성향’이 향하는 개념의 지평의 차이와, 그리고 이 양자 사이에 개입되어 있는 역사적 문맥과의 연관에서 두 가지 ‘실제·실천지향적 성향’이 일정하게 변별적으로 한정되었어야 했다. 역사적으로 접근한 책에서 저자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에서 역사성이 소거(消去)됨으로써 개념의 리얼리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보태는 한가지 충고는 기왕의 유관 성과를 대하는 공평한 마음자세다. 사람에 따라 어떤 경우는 원문의 재인용까지를 주석으로 밝히는 충실함을 보이면서도 어떤 경우는 명백히 저자의 유효 논리로 기왕의 성과를 채용하고서도 출처 표시를 빠뜨린 것이 있다. 저자의 그 세심한 주석 태도에 비추어볼 때 우연한 실수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은 이 책이 ‘정일균의 저작’으로서의 신뢰를 얻음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자의 양식에 대한 신뢰에 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