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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1세기 문학의 향방: ‘창비시선 200’ 기념 대토론회
종합토론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구모룡 具謨龍
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김동식 金東植
문학평론가
김승희 金勝熙
시인, 소설가,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김철 金哲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
백낙청 이렇게 많이들 와주시고 또 늦은 시간까지 남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한가지 양해를 구할 점은, 첫머리에 최원식 선생이 인사말을 통해 밝혔듯이 김병익 선생님께서 갑자기 입원을 하시게 되어 우찬제 교수께서 발제문을 대신 읽으셨습니다. 종합토론에는 두 분 다 빠지시게 되었지요.
프로그램을 보면 제가 토론자로 이름이 올라 있는데, 정작 행사를 기획한 후배들이 제게 주문한 것은 사회를 보라는 거였습니다. 일부러 제일 곤란한 역을 맡긴 것 같아요. 사회를 하자면 자연 다른 사람들 말하는 것을 통제해야 하는데, 남의 말을 통제하면서 내가 마음대로 떠들 수는 없는 거지요. 어쩌면 그것을 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들 심보가 고약해서 이런 식으로 저를 억압하는데(웃음), 제가 억압을 당함으로써 능률적인 진행이 가능해지고, 그래서 청중 여러분께 발언의 기회를 더 많이 드릴 수 있게 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다른 분들도 협조해주시라 믿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곧바로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발언시간을 너무 제약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 줄 압니다만, 원래 정해진 시간표대로 네 분 약정 토론자께서 10분씩 말씀해주시고, 거기에 대해 발표자들께서는 각기 5분씩만 답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그것으로 기회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다시 발언할 기회가 있으실 테니까 일단 첫번째 발언은 짤막하게 해주십사는 거지요. 그렇게 한번씩 주고받은 다음에는 청중들도 참여하는 가운데 자유토론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먼저 말씀해주실 분은 구모룡 선생님이십니다. 멀리 부산에서 오셨고 한국해양대 교수로 계시고 문학평론가이신데, 지역에서 『오늘의 문예비평』이라는 좋은 비평동인지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구모룡 분에 넘치는 소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투리가 많아서…… 그렇지만 오히려 사투리가 시적일 거라는 생각도 들고, 또 오늘 주제와도 연관된다고 봅니다만. 제가 대충 적어온 것을 읽으면서 질의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남영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자본의 운동에 따라서 사물화의 수준이 ‘비물질적인 실존공간’에 미치고 있으며, 시적 글쓰기가 이에 대한 저항이 됨을 지적하셨는데, 원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타당하고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다만 각론에서 시가 언어에서부터 사물화와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이면서 ‘새로움’이라는 미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주체성과는 다른 시적 주체성을 세운다고 하셨는데, 이 ‘새로움’이라는 미적 가치에 자본과 기술의 이데올로기가 틈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즉 ‘새로움’의 물신화 가능성에 저는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방가르드의 운명이나 모더니즘의 자기부정의 역사에서도 항상 새로운 것으로 승부하는 자본·기술·과학의 신화가 개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 새로움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는 과도한 자유에서 시가 반드시 수용해야 할 전통들, 예를 들어 유기적 공동체라든지 유기론적 사유, 또한 선생님이 리비스를 들어서 설명하신 ‘제3의 영역’도 이러한 것이 되겠지만, 이들을 시야에서 놓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새로움이라는 순환체계 때문에 아무런 전통도 만들지 못할 소지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매우 광범위하게 논의되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가령 근대 이후에 서구에서 들여온 ‘자기표현으로서의 시’라는 정의가 올바른 것인지 하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자기표현이란 선생님이 말하신 ‘표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선생님이 말한 시어, 시적 주체는 물론 이미지·운율 등 전반에 걸쳐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시가 자기표현이 아니라고 한 것은 시적 세계관이 결국 인간중심주의, 물질주의, 과학적 환원주의와 대척의 방향을 지향함을 말씀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미지도 단순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 나아가서는 마음의 문제이며, 운율 등도 전체 생명의 율동과 연관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저는 선생님께서 제기하신 ‘부정을 통한 새로움의 창조’에 대해 문제삼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현재 묻혀버린 과거나, 자본에 의한 훼손이 상대적으로 덜한 주변부(혹은 반주변부)의 삶에서 ‘비물질적인 실존공간’ 혹은 ‘제3의 영역’을 부각시키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나희덕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시가 그렇듯이 자연과 여성도 근대의 타자였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시적 지평에 놓이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렇다고 단지 타자였기에 한몫 접어줄 수는 없는 일이므로 자연을 재문맥화하고 여성성을 깊이 천착하는 일이 뒤따라야 하겠지요. 아울러 잘못 방향지어진 과학기술의 내면화 문제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일면적인 생태시 혹은 생명시나 자연을 대상화하는 자연시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은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태주의는 근본에 대한 천착이므로 하나의 패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하나의 패션으로 뒤따르는 시인들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다시 짚어주시고, 아울러 자본주의 과학기술과, 이와 단짝이 되어 있는 가부장제의 내면화 문제를 시적으로 풀어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환유적 글쓰기’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은유(隱喩)라는 것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자기화하는 것이어서 문제라면, 환유(換喩)는 파편화된 부분들의 나열로서 자유를 지향하지만 내적 연관성을 지닌 전체를 형성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은유가 같음에 주목한다면, 환유는 이러한 같음을 해체하는 것이죠. 하지만 모두 주체에 기원을 둔 발상이라는 점에서, 은유와 환유라는 이분법은 상당히 서구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은유와 환유를 가로지르는 제유(提喩)적 글쓰기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제유는 부분들의 내적 연관성에 의해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주체와 타자 간의 같음과 다름에 모두 주목하며, 때문에 주체의 개체성이 전체의 전일성과 연속된다고 하겠습니다. 제유는 부분들의 내적 연관성에 의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수사학이기 때문에 생태시나 생명시, 여성시가 궁극적으로 제유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환유적 글쓰기의 정치적 의미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시가 근대주의적 부정의 순환논리를 탈피하려면, 은유와 환유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이들을 가로지르는 제유를 설정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인용한 김혜순 시인의 작품을 제유로 읽는 것은 어떨까요. 환유적 글쓰기에 비추어, 또한 선생님의 시작 과정과 결부시켜 이러한 제유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드릴 것도 없이 현대시는 항상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생성하고 있습니다. 정남영 선생님이나 나희덕 선생님께서 이러한 절박한 시적 상황을 고려하여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을 언급하셨는데, 두 분에 비해 제가 다소 안이하게 문제에 대처하거나 성급하게 대안이론을 모색한 것은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두 분의 유익한 발제를 통해서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백낙청 답변은 나중에 한꺼번에 듣겠습니다. 다음번 질문과 논평은 김동식 선생께서 해주시겠는데요. 김동식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시고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이십니다.
김동식 창비시선은 학생시절부터 즐겨 읽었고, 제 문학공부의 자양분이기도 했습니다. 200번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 뜻깊은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출판을 통해 200권의 시집이 지속적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국문학의 저변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일이며, 한국문학이 지닌 긍정적인 가능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언어를 매개물로 삼는 문학의 운명을 생각할 때, 시정신은 문학정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비시선은 한국현대사의 주요한 시기에 해당하는 25년 동안 부단하게 싸우면서 지켜온 문학정신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뜻깊은 자리, 명망있는 분들 사이에서 저처럼 별다른 경력이 없는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인 동시에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부족한 대로 몇가지 의문점과 제 생각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정남영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선생님의 발제문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립적인 관계로만 여겨져온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맑스주의 이론의 접합점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도입니다. 또한 오늘날 시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사물화된 세계 속에서 새로운 주체와 탈자본주의적 패러다임의 형성이라는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는 매우 도전적인 제안이기도 합니다. 미리 받은 발제문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글에 나타나는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전망 때문에 한동안 행복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면 주로 들뢰즈의 이론과 관련해서 질문하겠습니다. 발표문에서 들뢰즈의 언어이론이 중요한 전거로 인용되었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흐름’이나 ‘표현’이라는 개념이 들뢰즈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질문은 ‘사물화’와 ‘비물질적 사물화’에 관한 것입니다. 사물화는 루카치가 제시한 개념이지만, 그 계보는 헤겔과 맑스의 소외 개념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헤겔의 소외 개념은 정신의 물신적인 대상화, 그러니까 정신의 일반적인 운동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맑스의 소외 개념은 대상화의 성격을 규정짓는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조건과 소외가 인간 주체의 형성에 궁극적으로 미치게 될 영향관계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글에서는 물신성이 지배하는 물질적 차원에는 사물화가 적용되고, 기호의 사용이나 사고행위의 차원에 대해서는 비물질적 사물화라는 개념이 적용됩니다. ‘비물질적 사물화’라는 가따리의 개념은 언어·기호·의식과 관련된 상징적 차원에 대한 사물화를 강조하거나, 사물화에 대한 속류적인 해석을 견제하는 개념으로는 상당히 유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맑스주의의 이론적 전통을 감안하면, ‘비물질적 사물화’ 개념에 의해 사물화 개념이 ‘물질적 사물화’로 역규정되는 것은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번째는 언어 또는 기호 이론과 관련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시 양식에 잠재된 가능성을 말씀하기 위해 들뢰즈·가따리의 『천 개의 고원』 5장의 기호이론에 관한 부분을 매개항으로 삼고 계십니다. 사실 어려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들뢰즈는 언어이론을 기호론(semiology), 기호체계론(semiotics), 화행론(화용론, pragmatics)의 세 가지 층위로 구분하는데요. 기호론과 기호체계론을 비판하면서, 화행론을 자신의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어나 기호체계가 아니라 언어·기호를 사용하는 행위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들뢰즈는 정치적 슬로건이나 명령법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언어나 기호의 사용은 근원적으로 행위나 실천과 관련된 것이고, 그 자체가 새로운 권력과 코드를 생성하는 방식인 동시에, 기존의 기호체계와 분쟁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언어의 사용이 아무런 성과 없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생성되는 과잉, 잉여, 여백, 단절, 결핍 등과 같은 움직임들이 언어체계와 구조의 틈 사이를 흘러다니다가 분출하거나 빠져나가기도 하고 한곳에 모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언어적 행동(화행)은 결코 주체로 환원되거나 주체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들뢰즈의 용어를 그대로 써서 죄송합니다만, 사회의 기계적 배치물과 언어적 행동 사이에 제3의 영역, 그러니까 아주 애매모호한 공간을 산출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효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어의 사용은 주체의 능력이나 의도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선생님의 발제문은 사물화된 언어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능력의 복원 문제, 결국은 주체의 능력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들뢰즈의 이론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번째는 주체 또는 주체성에 대한 것입니다. 언어가 지닌 다가성(多價性)에 의해서 새로운 언어게임의 룰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비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주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시 양식을 통해 발현될 수 있음을 지적하셨는데요. 만약에 이 발제문이 들뢰즈와의 친화성을 가지고 씌어진 것이라면,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이라는 대목은 들뢰즈의 입장과는 달리, 탈변증법적인 이론의 계기를 다시 변증법의 사슬로 묶어놓는 형국이 아닐까 합니다. 제 생각에 들뢰즈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대목은 생성의 철학입니다. 뭔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그리고 만들어지는 움직임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것이죠. 비유를 들자면, 여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무라고 할 때는 나무의 굵은 둥치를 말하는 데, 들뢰즈는 「리좀」(rhizome)이라는 글에서, 나무의 가느다란 뿌리들 한 가닥 한 가닥과 굵은 나무줄기를 등가로 놓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주체성 옆에 무한히 많은 다른 개체성들을 늘어놓아서,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그 다양한 개체성들 가운데 하나로 만드는 것이지요. 개체성의 다양함으로 자본주의적 주체의 특권성을 탈중심화하자는 기획이겠지요. 다양한 개체성이 생성되면서 빚어내는, 뭐라고 할까요, 아나키즘에 가까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체성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좀더 듣고 싶습니다.
나희덕 선생님께도 질문을 드려야 하는데, 정남영 선생님 글에 대한 질문을 마련하느라고 거의 매일 ‘기계’ 운운하는 글만 봤습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보니까 생태라든지 여성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또 펼쳐져 있더군요. 나희덕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선생님들의 질문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백낙청 감사합니다. 다음에 말씀해주실 분은 김승희 선생님이신데요. 아시다시피 시인이며 소설가이시죠. 지금 서강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김승희 아까 김동식 선생께서 여기 나와서 발표하게 된 것이 영광스럽다고 하셨는데, 저 역시 그렇습니다. 창비시선 200권이 나오는 동안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비롯해서 고은, 정희성(鄭喜成) 시인 등의 좋은 시집들이 많이 나왔지요. 한국시의 고전적 감수성에 대해 혁명을 많이 일으킨 시집들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집들을 읽고 제 문화적 정체성에도 많은 변혁적 힘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여성시인과 입장이 가깝기 때문에 먼저 나희덕 시인의 글에 대해서 논평과 질문을 하겠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지적대로 생태주의문학은 근대화의 부정적인 결과로 나온 대안적인 문학운동 또는 문학세계라고 할 수 있겠고요. 근대라는 것이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왔지만, 그 근대가 계속되면서 합리성 속에 비합리성이 있고, 또 그 속에 광기가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서양적인 이성, 흔히 말하는 보편적 이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허구인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광기의 감옥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이성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한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같은 근대를 극복하는 대응적 상상력으로서 생태주의적인 패러다임, 생태주의적 세계관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희덕 시인이 오늘날의 생태시는 의심과 낭만성 사이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저는 매우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요즘에 유행적으로 녹색문학, 생태문학, 환경문학, 가이아(Gaia)문학 등 현란하게 명명되곤 하는 문학적 경향들이 자기도취 또는 가상현실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문에도 깊은 공감을 표시합니다. 이런 생태문학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우선 문명비판적인 시선으로 우리들의 순결한 생태를 위협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이 있는가 하면, 또하나는 생태적인 서정시를 씀으로써 자연을 낭만화시켜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 파우스트의 마지막 명제처럼 마치 자연이 아직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마치 자연=영원한 여성이 되는 것처럼 생태를 이상화시켜 안이하게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희덕 시인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드리기 전에 평소 우리의 생태문학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하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령 우리의 생태문학은 생태의 반대말을 문명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렇기 때문에 생태문학이 곧 자연문학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저는 자연으로 돌아가면 우리 현대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령 요즘에 생태문학, 녹색문학을 연구하는 논문들을 보면 청록파(靑鹿派)의 시라든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시조나 신흠(申欽)의 시조 등을 전부 녹색문학의 범주에 넣는데, 그런 것까지를 전부 녹색문학으로 본다면 현실에 대한 응전력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문학은 어느 시대, 어느 환경에 있더라도 현실을 자기 눈으로 읽어내고 현실에 대한 탄력성있는 응전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90년대에 문학이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면서 생태시·생태문학이 상당히 주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변화한 현실에 탄탄한 응전력을 가졌다거나 대응력을 가졌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는 생태의 반대말을 문명으로 보지 않고, ‘로고스중심주의 아래 포박당해 살아온 근대적인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기제들’로 보자는 거죠. 가령 부정적 근대성, 권력, 헤게모니, 제도 등 인간의 주체성을 형성하려고 끊임없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들이라고 알뛰쎄르가 얘기했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그중에는 종교씨스템도 있고 교육씨스템, 가족구조, 법적 장치, 커뮤니케이션 씨스템들, 문화적인 장치들도 있는데요─이러한 것들도 생태를 억압하는 힘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까지도 생태의 반대말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생태주의문학의 틀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걱정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이러한 모든 항목들을 생태의 반대로 본다면 생태주의문학이라는 것이 90년대 이후 또는 21세기에 정치·경제적으로 격동하는 이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 응전력있는 생산적 담론을 창조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 뜻에서 나희덕 시인은 생태의 반대말을 문명, 여성시에서는 가부장제로 보셨는데, 이렇게 좀더 확대시켜 볼 수는 없겠는가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정남영 선생님께는 나희덕 시인과 약간 연관되는 질문으로……
선생님, 시간 많이 됐죠? 저 그만 끝낼까요?(웃음) 백낙청 선생님 표정을 보니까 걱정하시는 듯해서─
백낙청 아니, 나는 김선생 얼굴을 보면서 경청하고 있는데, 내가 상당히 억압적인 인상을 풍기는 모양이죠?(웃음)
김승희 아니, 걱정스러워하시는 표정을 보니까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서요.
저는 정남영 선생님을 리얼리즘 이론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얼리즘 반대편에 서는 이론을 가지고 말씀하셔서 그동안 리얼리즘과, 격변해온 우리의 민족현실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크셨구나 하는 것을 역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자본주의적인 주체성이라는 것은 지금 전지구적 씨스템이기 때문에 우리가 탈출이나 도피를 꿈꾸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보드리야르(J. Baudrillard)도 전지구적 씨스템 바깥에 무엇이 있겠는가,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지요. 시의 살아있는 표현적 힘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주체성이 아닌 다른 주체성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도 탈자본주의적 주체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이 많고, 나희덕 시인과 이렇게 나란히 발제를 하시기도 해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탈(脫)’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방법으로 ‘생태주의적 주체성’이라는 방향을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생태주의적 시선도 근대적 이상에 대한 절망이면서, 모든 제국주의적 힘에 대한 반동으로 생성된, 어느 면에서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 세계관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탈출선이나 도피선에 대해서 강력하게 얘기했는데, 과연 자본주의적인 또는 국가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장치에 의해서 영토화된 우리들을 어떻게 탈영토화시킬 것인가 하는 ‘탈’의 상상력을 굉장히 많이 보여주는 것이 들뢰즈의 상상력이라면, 자본주의적인 주체성을 ‘탈’해서 ‘생태주의적인 주체성’으로 결부시켜보면 어떻겠습니까? 이상입니다.
백낙청 좋은 논평 감사합니다. 다음에 말씀하실 분은 지금 연세대 국문과에 재직하고 계시는 김철 선생님이신데, 문학평론가이시고 한때는 『실천문학』의 편집위원도 하셨습니다. 김철 교수님, 부탁합니다.
김철 정남영 선생께서 ‘비물질적 실존공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현재 저의 ‘물질적 실존공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대단히 피곤하고 배가 고픕니다.(웃음)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신경질적이 되고 앞에 보이는 사람이 미워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는 질문이 혹시 신경질적으로 들리더라도,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 저의 물질적 실존공간의 형편 때문에 그런 것으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웃음)
정남영 선생의 발제는 맑스와 루카치의 사물화 개념을 ‘비물질적 실존공간의 사물화’로까지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선생은 이 개념을 통하여, 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문학의 진정한 기능을 바로 그 ‘비물질적 실존공간’의 창출 내지 회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주체성’의 속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잘 지적하셨듯이, 우리의 감각·내면·영혼·실존, 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지배하는 것이 바로 그 자본임을 확인하는 것은 오늘날 새삼스런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선생의 발제문의 기본 정신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만, 논의의 진전을 위해 몇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질문은 좀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정선생은 ‘국가권력을 중심에 놓고 작성되었던 자본주의 극복의 기획’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이 “혁명 코드 자체의 창조적 변이와 주체 자체의 창조적 변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새로운 삶의 창출보다는 기존의 실존구조 안에서 위치변화만을 가져오는 데 국한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각주에서 정선생은 “변혁운동 발전의 특정 시기에 시행착오로 거치게 마련이라는 점, 그리고 예컨대 러시아의 경우처럼 나중에 변질될 수는 있어도 애초에 그 동기는 진정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고, 또 마땅히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해야 한다고 하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웃음) 이 말은 앞서의 비판 혹은 반성의 어떤 치열함이랄까 깊이를 이상한 방식으로 무화시키고 맥빠지게 하는 느낌을 줍니다. 제가 잘못 읽은 걸까요?
두번째 질문은 정선생이 제시하신 ‘표현’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도 정선생은 이 말을 통해 기존의 ‘모사’나 ‘재현’으로만 정향되었던 리얼리즘의 고정화된 방법을 탈피하고 무언가 쇄신된 어떤 경지, 즉 정선생이 말하는 ‘비물질적 실존공간’의 창출을 가능케 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중요하지, 꼭 이 말을 써야 하는지 아닌지는 문제의 촛점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저는 ‘이 말을 써야 하는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표현’이라는 표현은 별수없이, 그야말로 별수없이 ‘표현주의’ ‘표현주의 논쟁’ 등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질문은 사실 다음 질문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의 세번째 질문은 “‘자본주의적 주체성’과는 다른 주체성의 창출에 직접 기여하는 문학이 자본주의의 극복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복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제는 더 높아졌다”는 정선생의 말에 집중됩니다. 정선생은 이러한 문학을 ‘기존의 코드에 대한 부정, 작품이 열어놓은 가상의 공간에서만 작동하는 새로운 코드를 생성’하는 문학, ‘자본주의적 주체성과는 다른 새로운 주체성의 창출에 기여하는’ 문학이라고 말하시는데, 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선생이 말하는 ‘기존의 코드에 대한 부정’이 실은 본원적 축적의 단계를 훨씬 벗어난 자본이 행하는 ‘비물질적 실존공간의 사물화’ 전략이라면, 또는 그러할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저는 정선생이 이런 정도의 의문도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썼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저의 질문의 취지는, ‘다른 주체성의 창출에 기여하는 문학의 가능성’에 대한 정선생의 낙관적 사고가 저 같은 사람의 비관적 사고를 염두에 둘 때, 비로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기획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저로서는 나희덕 선생의 발제, 「생태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그리고 시」에서 아주 적절하게 해명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질문을 취소해야겠지만, 정남영 선생에게는 정선생대로의 답변이 있을 터이고, 또 나희덕 선생에게는 또다른 질문이 있으니까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나선생은 ‘생태시’ ‘여성시’ 등의 고정화된 범주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를 ‘생태적인 것’ ‘여성적인 것’으로 재구성하면서 기왕의 생태시나 여성시에 관한 논의에 일대 비약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장된 미화보다는 상실의 감각에 대한 깊은 일깨움을 통”한 생태시의 미학적 대응이라는 지적은 이른바 생태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주 적절하게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연과의 합일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와 욕망, 그것이 오히려 살아있는 자연이나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만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겸허한 절망이 생명의 광휘가 사라진 시대에 역설적으로 생명에 대한 개안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이 좀더 통렬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선생도 잠깐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서양어의 번역 과정에서 나온 이 ‘자연’이라는 용어의 개념, 그것의 혼란과 오해, 그것이 불러일으킨 자연관의 변화 등등이 고려되고, 그 점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선생의 발제문이 그것을 하기에는 적절한 상황이 아님은 알지만, 제가 이것을 묻는 것은, 생태시의 반성은 ‘자연과의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표현하는 데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합일이란 대체 뭐냐?’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생략하거나 건너뛰면, ‘자연과의 합일 불가능성에 절망하고 상실의 감각을 환기하는 생태시’는 자칫 또다른 순환, 즉 나선생이 비판했던 구태의연한 ‘문명비판시’들이나 관념적 신비화의 생명시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한편, 자연을 전체로서의 유기체로 비유하고 그러한 비유로부터 대지와 모성=여성성 등의 관념을 이끌어내거나, 이른바 동양적 자연사상을 육체화·신비화하고 거기에서 물질문명의 유일한 극복가능성을 찾는 이른바 생명사상의 위험성도 지적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연-여성의 식민화는 실로 그것의 훼손에서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심미화·관념화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얘기는 여기서 오래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간단히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백낙청 좋은 논평과 질문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하시기로는 배가 고프고 해서 신경질적으로 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들어보니까 별로 시장하지 않을 때 만들어오신 질문인 것 같네요.
김철 만들 때는 시장하지 않았습니다.(웃음)
백낙청 이제까지 발표자 네 분 중에서 정남영 선생한테 제일 많은 질문이 집중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선생께 먼저 발언의 기회를 드리고요. 그 다음에 나희덕 선생이 말씀해주시고…… 고은·황석영 두 분은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서 감히 건드리지 못했는지……(웃음) 직접 질문 받으신 것은 없지만 논평 들으면서 느끼신 바를 말씀해주십시오.
정남영 질문이 많아서 정리가 잘 안되는데요.(웃음) 질문 형태가 여러가지인데, 우선 제 의도와 달리 이해된 부분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동식 선생님은 소외 문제에 관해 질문하시면서, 제가 ‘사물화’를 ‘비물질적 사물화’와 대립시킨 것으로 보셨는데, 저는 후자가 전자의 더 고도화된 형태라고 보았지 대립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머지 질문은 개인적으로 들뢰즈를 공부하는 차원의 얘기가 될 듯해서 이 자리에서 답변드릴 것까지는 없을 것 같고, 여기에서는 주로 가따리의 글 몇개를 참고한 이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가따리나 그와 공동저작을 한 들뢰즈는 주체 개념을 싫어하는데, 우리 문화에서 ‘주체’라는 말에 대한 선호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들뢰즈와 가따리가 주체 개념을 거부하는 취지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요. 마침 제가 원용한 글은 가따리가 혼자 쓴 거예요. 거기서 가따리는 사람들이 주체의 거부를 놓고 들뢰즈가 반휴머니스트인 것처럼 오해를 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주체성’(subjectivity)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것으로 사용합니다. 물론 ‘주체’(subject)는 아니고요. 그래서 이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우리의 언어사용법에는 맞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제가 활용을 한 겁니다. 그러니 문맥 속에서 이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가따리를 언급했지만, 사실은 그 전에─제가 영문학을 하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는데─들뢰즈·가따리와 중요한 면에서 상통하는 리비스나 로렌스 같은 경우도 있죠. 로렌스의 경우는, 들뢰즈가 명시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요한 구성요소라고 얘기합니다. 다만 로렌스와 달리 나중에 68혁명을 경험한 들뢰즈와 가따리의 고민이 제 고민이나 문제의식과 방향이 비슷하다는 점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닌적 기획이 실패한 이후에 들뢰즈와 가따리가 국가권력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인 투쟁이라는 기획은 틀렸구나,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했다는 것이지요.
김승희 선생님께서는 생태주의적 주체성과 결합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하셨는데, 저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급은 안했지만 제가 발제문을 쓰는 데 참조한 가따리의 생각이 바로 그렇습니다. 사실은 ‘비물질적 실존공간’의 생태학을 주장하는 거지요. 다만 이 주제는 다음 발표자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안했던 거죠. 그래서 김승희 선생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구체적인 양태는 작가는 작가대로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고민을 해야겠죠.
다음에 김철 선생님 질문인데요. 첫번째로 각주의 내용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그것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고 그 당시에는 변혁의 에너지가 그런 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지금 ‘그 당시에 달랐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거죠. 이론적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당시의 기획을 이론화하여 끌어오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 정도로만 설명드리고요.
그 다음에 ‘표현’이라는 용어에 관해서인데요. 이 용어는 말씀하신 대로 물론 표현주의와의 혼동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죠. 실제로 들뢰즈는 철학적으로 스피노자를 놓고 ‘표현주의’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리얼리즘의 문제, 반영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들뢰즈는 절대로 반리얼리즘론자가 아닙니다. 저도 그렇고요.
김철 선생님의 세번째 질문은 구모룡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물신화의 가능성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위험은 항상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늘 그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작가대로 자기의 기존 저작에 잇대어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고, 평론가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작품이 어느 면에서 새롭고, 기존의 코드를 깼는가를 얘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글이 낙관적으로 들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아까 황석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데─저는 어떤 때는 낙관적이고 어떤 때는 비관적입니다. 제 몸의 기운에 따라 다릅니다. 낙관적으로 될 수 있는 일을 만나면 낙관적이 되고요. 그런데 글의 경우는 문제가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낙관적으로 들렸다면 글이 그렇게 된 모양이네요.
여러가지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 다 답변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백낙청 제가 너무 독촉을 해대서 구모룡 교수에게는 미처 답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구교수의 여러 질문에서도 역시 골자는 지금 언급하신 그 문제 같아요. 새로운 무엇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새로움 자체에 기존의 이데올로기가 끼여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철 선생 질문과도 통하고요. 충분한 답변인지는 여러 청중이나 토론자께서 판단하실 일이지만……
많은 질문을 받으신 분에게 5분 동안 답변하라는 건 무리입니다만…… 나희덕 선생께서도 되도록 간략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나희덕 구모룡 선생님의 두 가지 질문 중 앞의 질문은 이미 발제에서 말씀드렸고요. 그리고 과학기술이나 가부장제의 내면화 문제를 시적 형상화에서 어떤 식으로 해결하고 넘어서느냐는 문제가 남는데요. 저에게는 그게 주로 언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저는 가부장제의 억압, 또는 기술문명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해온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내면화의 한계가 주제적인 면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서 느껴집니다. 그래서 전통 서정시의 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 시는 아주 해체적인 시를 쓰는 분들에 비하면 남성적인 언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그것이 늘 저에게는 고민입니다. 새로운 여성적 언어를 개발하면서도 소통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그 두 마리의 토끼를 쫓으려다 보니까 늘 어정쩡한 시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어정쩡함이 단순한 중도가 아니라 시적 긴장의 표현일 수 있다면 그 불안정성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발제에서 제가 잘 알지 못하고, 제 시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환유적 글쓰기에 대해 말씀드린 것도 그런 글쓰기의 가능성에 스스로를 개방해보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구모룡 선생님께서는 환유적 글쓰기가 끊임없는 해체, 그리고 그것이 갖는 순환적 논리 때문에 어떤 점에서 유기적인 전체를 형성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와 함께 은유와 환유를 가로지르면서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지향하는 제유라는 개념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환유라는 것도 그 지향점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것은 은유·환유·제유에 대한 논자들간의 용어 설정이 각기 다른 데서 생겨나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환유적인 글쓰기라고 해도 거기에는 은유도 제유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서정적 진술들은 환유, 은유, 제유로 확연하게 나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환유적 글쓰기라고 한 것은 예로 든 김혜순 시인이나 김승희 시인이 쓴 산문이나 시에서 환유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기적인 전체에 대한 지향보다는 해체의 역동성 자체를 강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시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은유적 사고에 의존한다는 김종철(金鍾哲)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보게 됩니다. 거기에는 모든 만물이 혈연관계에 있다는 관점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물들간의 내재적 친연성을 가리키는 은유는 절대로 환유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대립적인 것도 아니고요. 아마도 그때의 은유는 환유나 제유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비유, 즉 시가 지닌 언어적 특성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김승희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면, 생태의 반대말을 문명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 생명시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신 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 얘기 역시 생태와 문명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생태의 반대말은 문명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도나 헤게모니들, 즉 근대의 부정적 징후 전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글에서 가부장제와 문명을 각각 여성성과 생태성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놓은 것은 편의상 그 두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시는 두 주제뿐 아니라 부정적 근대를 극복해가는 총체적인 노력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이 단순히 남성에 대한 여성의 권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파괴·성차별·인종차별·계층차별 등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대해 문제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바로 그 점이 에코페미니즘의 장점이기도 하지요.
다음으로 김철 선생님께서 ‘자연’이라는 말이 역어이기 때문에 그 말의 연원부터 새롭게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자연’뿐 아니라 우리가 당연시해온 ‘문학’이나 ‘전통’이라는 역어들 역시 그 용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론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저 역시 절감합니다. 발제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지만, 기회가 있다면 ‘시 속의 자연과 자연으로서의 시’라는 주제를 통해 자연 개념을 좀더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얘기는 자연 자체보다는 자연으로서의 시에 촛점을 둔 것입니다. “자연은 그것이 동시에 예술로 보일 때 아름답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가 그것이 예술이라고 의식하면서도 우리에게 자연으로 보일 때에만 아름답다”는 칸트(I. Kant)의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예술로서의 자연성의 회복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가 저의 주된 관심이었던 셈이지요.
또 동양적 자연관과 생태시의 관계에 대해 물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자연을 신비화하거나 관념화하는 정신주의 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불교나 힌두교에서 보이는 운동원리로서의 동양적 자연관은 생태시의 핵심과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고, 공(空)이라는 것도 결국은 움직임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동양적 자연관도 그 안에서 조금 변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앞에서 제가 자연과의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절망을 말씀드렸는데요. 그것은 저 자신이 시를 쓰면서 부딪히게 되는 실존적 고민에 해당합니다. 방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개념의 문제라든지 이론적 모색들은 이런 실존적인 차원과 병행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백낙청 감사합니다. 고은·황석영 선생께서는 청중의 발언이 시작되면 아마 많은 질문이 두 분께 집중될 것 같으니까 짤막하게만 3분 이내로 말씀해주시죠. 형님 먼저 하실래요, 아우님 먼저 하실래요?(웃음)
고은 이 자리는 모든 것이 채워져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기는 뭔가 충족되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의 부족함을 가지고 돌아가는 자리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제 문학을 꿈꾸는 사람도 있겠고, 이제 치열하게 문학과 만나는 사람도 있겠으며, 또 문학을 적당하게 비판도 하면서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는 형제와 같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 나이를 반영해서 얘기하자면, 저는 요즘 후기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내 생애를 볼 때 전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후기인데, 후기도 상당히 이슥하게 들어간 후기인데, 이럴 때에 가장 소름끼치는 위기가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나이가 들면 그 전에는 치열했던 것이 전부 가라앉아버리고 바래고 해서, ‘다 그런 것이여’ 하면서 커다란 체념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커다란 범죄입니다. 이땅에서 한 시인으로 태어났다면 죽을 때까지 내 삶의 치열성은 유지해야 하겠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내 후기의 삶은 새로운 문제의 삶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께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제가 막 큰소리를 치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인생의 한 선배가 시들하게 늙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여러분도 힘을 가지고 이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문학은 항구적인 하나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백낙청 참 좋습니다. 일단 거기에서 멈추시면 어떨까요?(웃음) 선배가 시간엄수에 솔선수범을 하셔야 황선생도 조심을 하시지요.
황석영 고선생님은 늘 하던 버릇 그대로 하십니다. 겁을 잔뜩 주었다가 이 늙은이도 할 테니까 겁먹지 말자, 이런 식으로 다시 반전시키는 말씀을 하시는 거죠. 아까 발제하실 때도 그러시고 지금 또 그러시네요.(웃음)
제가 감옥에서 여러가지 책도 읽어보고 하니까 대충 한국사회에서는 일단 얘기가 떨어졌다 하면 바깥 사람들 얘기만 왔다갔다하는 것 같아요. 60년대의 유럽사회와 80년대의 아시아사회는 다르거든요. 말하자면 어슷비슷하기는 한데 좀 다르단 말이죠. 또 유럽은 지금 사회주의가 다 저렇게 되고 일단 재편성이 끝났지만, 아시아사회는 아직도 사회적 실험 속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아직도 북한이라는 우리의 또다른 자아가 있고, 중국은 중국식 사회주의…… 자기들은 중국식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서부지역을 내국식민지화한 동쪽의 중국식 자본주의를 실험하면서 타이완과 대치중이고, 겉으로는 평온한 듯하지만 일본과 오끼나와의 문제도 있고, 베트남도 개방·개혁의 실험 와중에 있고, 미얀마·필리핀·인도네시아 등은 더 심각한 문제들을 지니고 있지요. 아직도 아시아가 사회적 실험의 와중에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대안도 다를 수밖에 없고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거죠.
제가 감옥에서 나오면서 들고 나온 화두가 동아시아 진보연대입니다. 우리도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아시아의 진보연대를 형성하자는 거죠.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겁니다. 이를테면 아시아 진보연대의 권역을 형성하면서 제3세계의 연대를 과거보다 더 구체화시키자는 거죠. 진보적인 연대를 꾸려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구상과 같은, 새 세기를 위한 새로운 이념이 형성될 거라는…… 비관 속에서도 낙관적인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백낙청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많이 초과되어서 곧 끝나는 것이 아닌가 초조해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 주최측에 물어본 결과 좀더 진행을 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은 아닙니다만. 질문 외에 논평을 하실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든 되도록 짧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중1 우선 창비시선 200번을 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질문을 드리는 것은 세 가지인데, 백낙청·고은·황석영 선생 순으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웃음) 우선 백낙청 선생께 질문드립니다. 최영미(崔泳美)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서정주의 「행진곡」의 패러디입니다. 황지우(黃芝雨)의 「전화풍」이라는 시는 김수영의 「전화」라는 시를 패러디한 겁니다. 그리고 황지우의 「활엽수림에서」를 신현림(申鉉林)이 패러디했습니다. 그런데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논어(論語)』의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에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면 신경림 선생님의 『농무』 이래의 많은 창비시선 중에서 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묻고 싶은 겁니다.
둘째로 고은 선생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과연 고은이 이 정권이 끝나고 나서도 작품으로 평가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정권이 끝난 뒤에 고은을 존경하고 따를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고, 마지막으로 황석영 선생님께 질문하겠습니다. 황석영 선생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났는데 저는 그때 불만이 많았어요. 문익환 목사가 가서 얼굴을 부벼대고 하는 것도 거북살스러웠습니다. 그런 데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오래된 정원』을 읽어보면, 앞부분에는 ‘그미’라는 말을 쓰고 중간 부분에 보면 ‘그네’가 나옵니다. 통일되었을 때 우리는 여성 3인칭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은가 하는 겁니다.
백낙청 감사합니다. 신속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 저에게 주신 질문에만 간략히 답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스스로 패러디라는 용어를 쓰셨는데, 지적하신 하나하나의 사례가 과연 그러한 패러디인지, 또 그렇다면 얼마나 잘된 패러디인지 하는 것은 사안별로 따져봐야겠지만, 패러디와 표절은 다르기 때문에 패러디를 했다고 해서 그 작품이 배제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더구나 정희성 선생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경우,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라는 대목에서 『논어』의 한 대목을 연상하는 것은 동양인으로서의 교양에 해당하지 그게 무슨 대단한 적발은 아니라고 봐요. 나머지는 고은 선생과 황석영 선생 두 분이 말씀해주시면 되겠지요.
황석영 제가 먼저 답변하겠습니다. 워낙 성질이 급하니까요. ‘그네’ ‘그미’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네’라고 통일했지 ‘그미’라고 쓴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독서를 잘못 하신 모양인데…… 왜 ‘그네’라 했냐 하면 우리나라 여인네들을 얘기할 때 울산네, 순천네 그러거든요. 그것은 누구네 집이라는 표현이기도 하고, 여자의 대명사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네’라는 말로 일관했어요. 하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한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나는 너희들이 가서 김일성 만나고 할 때 분개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개인적인 견해차가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작가는 어린아이 같은 겁니다. 제가 필리핀 현대 민담에 나오는 얘기를 하나 할게요. 어느 마을에 뒷산이 하나 있는데 굉장히 큰 산이에요. 그런데 그 산에 못 올라가게 합니다. 그 산에 올라가면 촌로들이 집전하는 형벌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 산에 올라가지를 못했어요. 그 산에는 열매도 많고 먹을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 거기에 올라가서 보니까, 미군의 미사일 기지가 있었어요. 처음 보는 기계들도 있고 불도 휘황찬란하고요. 작은 섬에 사는 부족의 소년으로서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오랫동안 마을의 삶을 지배했거든요. 그 산에 못 올라가게 하고 그러니까요. 그것이 터부가 됐던 거지요. 그래서 내려와서 거기에 코가 큰 사람들도 있고 뭐가 있더라고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믿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 가봤으니까요. 그런데도 계속 얘기를 해서 처형을 받을 때가 됐는데, 지혜로운 장로가 와서 말하죠. “우리는 거기에 가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에 가볼 때까지는 이 소년을 처벌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면 국가보안법이라는 국가권력의 상징씨스템의 문제거든요. 자기 삶을 계속 지배하고, 글을 쓸 때도 등뒤에서 노려보는 국가보안법이라는 푸른 눈동자가 있는데, 예술가가 이것을 몸소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독자와 만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선생님께 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백낙청 고선생님도 한 말씀을……
고은 우리 말이요, 문학과 함께 살아갑시다. 이상!(웃음)
청중2 황석영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선생님의 서사전략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부제가 ‘디지털 세상과 시적인 것’이니까, 결국은 디지털시대의 문학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로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젊은층 내지는 지금 갓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은 두 가지 정도의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영화나 노래, 혹은 두 가지가 합쳐진 뮤직비디오와 다른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두번째는 민중문학만의 과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른바 후일담문학이라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선생님의 『오래된 정원』을 읽었습니다. 대학 후배들과 읽으면서, 과연 지금 갓 대학을 들어온 사람들이 공감을 하겠는가, 감동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두 가지 면에서 감동을 얻었습니다.
황석영 감동을 얻었다니 안심인데……(웃음)
청중2 첫번째는 인물들이 살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현우가 만난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 대단히 인간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선생님이 그리신 인물들이 이른바 후일담소설들처럼 상투적인 인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윤희 같은 인물은 보통 우리가 보는 인물은 아니잖아요. 아이를 낳았으면서도 아이에게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들이 제대로 그려졌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작품이 뮤직비디오와는 다른 감동을 주고 후일담문학을 넘어섰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을 쓰시면서 또는 인물을 창조하시면서 가졌던 서사전략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황석영 첫째로 저는 이렇게 사태가 나빠지고 위기가 왔다고 해서 문학이 죽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문학은 기본텍스트예요. 기본텍스트가 없이 디지털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어떻게 화면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를테면 광고를 해도 거기에 시적인 영상이 실리잖아요. 그러면 그 카피는 누가 쓰는가? 이런 여러가지 얘기가 있을 수 있죠. 말하자면 오히려 시는 굉장히 유리합니다. 말하자면 ‘내 꿈 꿔’ 하는 요즘의 광고처럼 어떤 이미지를 주면, 그게 대중을 사로잡지요. 시장에서 조작해내는 많은 이미지들은 자본주의 정보화사회의 존재를 막강하게 규정해버립니다. 이를테면 그런 것들도 우리가 어떤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해내야 하는 것이죠. ‘1분 영상’ 같은 이름을 붙여서 짤막한 시적 영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오디오도 결합하면서요. 그렇게 그것을 활용하면서 타고 가야 하는 거예요. 붓과 깃털에서 금속 펜으로, 또는 만년필과 볼펜으로, 타자기로 필기도구가 바뀌어온 것처럼 영상도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 도구의 하나입니다. 산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보세요. 1990년대 이래로 들어오면서 소설들이 서사구조를 잃어버리고 현실적 바탕을 잃어버리니까 수많은 창작 역량과 독자들이 영화로 몰려갔어요. 지금 어중간한 작품만 나와도 영화관은 수백만명씩 미어터져요. 여러가지 시대적인 특징도 있겠지만, 그동안 우리 문학 쪽이 잘못한 겁니다. 독자를 잃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요즈음의 산문은 반드시 영상과의 결합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대중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만나면서 미디어를 계속 확보해나가는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 거예요.
두번째 질문이었나요? 『오래된 정원』은 ‘세상에 없는 장소’라는 유토피아의 원래의 의미처럼 일종의 패러독스입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재편성이 진행되는 지금 우리는 쓰디쓴 환멸에 직면해 있지요. 남한이 30년 동안 해온 자본주의 근대화─서구는 3백년 동안 했고, 일본은 백년 했어요─그것의 위기가 80년대쯤에 노정된 거예요. 군사파쇼도 자기가 힘이 없어서 간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이미 필요없게 된 거예요. 남미도 그렇고, 아시아도 그랬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이 터지고 나서 어떻게 됐습니까? 필리핀·미얀마·태국·타이완으로 번져나갔거든요. 발제에서도 말했지만 파시즘에 저항하는 동안 우리 사이에 이중의 억압이 있었어요. 우리가 파시즘에 저항하는 것은 바로 개인들의 소중한 삶과 행복을 존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새로 시작한다면 80년대와 90년대의 분열된 가치들을 결합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했어요. 내가 구상해온 ‘20세기 3부작’ 중에서 이 주제를 제일 먼저 잡은 겁니다. 3,40대가 된 이 80년대 세대가 지금 사회의 중추거든요. 이 사람들에게 자기규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일 먼저 시작했고요. 뒤에 나온 후배들이 그것을 본다면, 자기 앞세대가 무엇을 추구했는가를 알고 다른 방법론을 선택해야 할 거예요. 『오래된 정원』은 말 그대로 ‘요즈음’ 정원이 아니라 ‘오래된’ 정원인 거죠. 오래 전부터 인류는 쭉 그래왔어요. 그 꿈을 언제 이룰 것인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각 시대마다 꿈은 서로 다르게 형성될 것입니다.
백낙청 이 앞에서 손 드셨죠?
청중3 가장 젊으신 고은 선생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웃음) 선생님의 오늘 발제에는 근대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있는데, 오늘 부제인 ‘디지털 세상과 시적인 것’과도 연관이 있고 해서 질문드립니다. 시적인 것들이 디지털 세상, 즉 오늘날 우리 세대에 정말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의 문제입니다. 아까 대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선생님께 대안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디지털 세상에 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은 그런데 제가 지금 청각이 집중이 잘 안됩니다. 웅웅거리기만 하고…… 백선생께서 대신 좀……
백낙청 제가 대신 답변할 성질은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각할 거리를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고은 선생께서는 70년대부터 반독재투쟁을 하실 때 당국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으면서 한쪽 고막이 파열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왼쪽 귀가 안 들리세요. 마침 이쪽 방향에서 말씀하신데다 마이크가 웅웅거리니까 잘 알아듣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라기보다는,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하나 말씀드리지요. 디지털은 과연 뭐고, 아날로그는 뭔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도 계시지만, 좀 헷갈리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흔히 아날로그는 연속적인 것이고 디지털은 단속적으로 뛰는 것이라고 말하죠. 가령 시계 같으면 아날로그 시계는 5시 30분을 6시 30분으로 고치려면 31분, 32분을 죽 거쳐서 6시 30분까지 가야 하는데, 디지털시계는 시간 쪽을 톡 쳐서 5를 6으로 바꾸면 곧바로 6시 30분으로 뛰어가죠. 그런 장치가 안된 경우라도 아날로그는 31분에서 32분까지 가는데도 수많은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디지털은 31, 32, 33, 이렇게 뛰어서 건너갑니다. 그러니까 사실 편리하기로 치면 디지털이 훨씬 편리할 수밖에 없는데다, 디지털이 발전되고 세련되다 보면 단속적이면서도 그 틈새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어서 마치 아날로그와 똑같이 연속적인 인상을 줄 수 있고, 심지어는 아날로그보다 더욱 선명한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우리의 인생은 아날로그, 즉 연속적인 것이에요. 물론 인생에 디지털적인 요소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것은 아까 황석영 선생도 말씀하셨지만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지 디지털은 아니지요. 그런데 인생의 디지털적인 측면이랄까 요소에 착안하여 디지털 기계를 개발해서 문명을 그쪽으로 발전시키다 보면, 인생은 아날로그인데 세상은 디지털 세상으로 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물건에 관한한 디지털과 아날로그 물건을 각기 만들어놓고 싸우게 하면 게임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생은 아날로그인데 세상은 디지털로 가는 이 시국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가 우리의 문제인데요. 디지털을 없애는 방식으로 감당하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고 디지털을 활용하는 사람들한테 밀려나는 결과밖에 안되지요. 그러니 디지털 문명을 활용하되 그것이 이 삶의 아날로그성을 파괴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는 문제가 우리의 화두로 남는 듯합니다.
제 이야기는 이만 하고 질문을 하나 더 받겠습니다.
청중4 인하대 국문과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김동식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다가올 디지털 세상이나 정보화시대에 대해서 이쪽저쪽에서 비관적인 시선도 있고 나름대로 낙관적인 시선도 있는데요.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의 문학의 위상이나 위치에 대해서, 황석영 선생님께서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나가면 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보신 것 같고, 또 어떤 분들은 문학의 위상이 실추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막연한 질문이긴 하지만 김동식 선생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석영 잠깐, 저는 낙관도 비관도 아니고 다시 태어나자는 겁니다.
백낙청 단상에 앉아 계신 분들 중에서는 김동식 선생이 최연소일 텐데, 여기 있는 낡은 세대와 젊은 분들 사이의 교량 역을 겸해서 마지막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동식 점쟁이도 앞일을 못 맞춘다고 하는데요. 부족한 제가 어떤 의미있는 전망을 내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한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문학의 위기 또는 문학의 주변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문학의 위기는 매체환경의 변화에서도 온 것이지만, 동시에 근대문학을 하나의 제도로 형성해왔던 문학의 내부적 규약의 흔들림에서도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문학환경에 가져온 변화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하위 장르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마련해간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하위 장르들이 있습니다. 가벼운 터치의 포르노그라피부터 SF, 무협지, 하이틴 로맨스, 추리소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상상력 같은 것들이 우리 문학 속에 들어오고 있고, 이미 들어온 지 오래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위 장르들을 개별적으로 즐기던 단계에서 인터넷이 생겨난 이후에는 동호회나 매니아 집단을 형성해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순수문학을 해왔건 민중문학을 해왔건 또는 어떤 종류의 문학을 해왔건 간에, 다양한 문학의 하위양식에 대해서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문화적 지형도를 재편성하게 되면서, 문학은 새로운 문학의 타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문학의 타자로 등장한 하위양식들을 어느 정도까지 평가하고 이들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의미를 부여할지, 그리고 문학과 하위양식들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 계속해서 경쟁관계라고 볼 것인지, 경쟁관계가 아니라면 하위양식을 등뒤에서 감싸안는 포괄적인 영역으로 문학의 위상을 설정할 수 있는지 등과 같은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문학이 문학의 타자와 대화해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문학관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문학성에 대한 좀더 유연하고 포괄적인 논의의 장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따름입니다. 어른들도 많이 계신 곳에서 더이상의 섣부른 전망을 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백낙청 감사합니다. 드디어 끝맺을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장장 다섯 시간이 넘는 긴 씸포지엄에 끝까지 참석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