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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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 소설집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장편소설 『외딴 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등이 있음.

 

 

 

부석사

국도에서

 

 

1

 

남자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가죽잠바 안에 회색 폴라티를 받쳐입고 잠바 바깥으로 폴라티와 같은 색상의 순모머플러를 둘렀다. 이발을 한 것일까. 머리가 유독 짧아 두 귀가 오롯이 눈에 띈다. 단정한 입매와 창백한 피부로 인해 남자는 언뜻 차가운 인상이다. 짙은 눈썹과 각이 없는 턱 탓인지도. 그녀는 남자의 쌍꺼풀 없이 가느스름한 오른쪽 눈밑에 깨알만하게 돋아 있는 점을 잠깐 주시했다. 눈물 떨어지는 자리에 가만히 돋아 있는 점 때문에 남자의 차가운 인상이 지워진다. 청바지 밑에 갈색 랜드로바끈. 청바지가 딸려 올라간 탓인지 양말을 신었는데도 바지 안에 입은 크림색 내의가 살짝 엿보인다. 그걸 보고 나서야 그녀는 약속장소에 늦게 도착한 긴장이 얼마간 누그러진다. 까페 바깥 찬바람 속에 서 있던 남자의 얼굴도 처음보다는 풀려 있다. 남자가 끼고 있던 장갑을 한짝 한짝 차례로 벗어 탁자 한쪽에 놓는다. 두툼한 검은 가죽장갑이다.

장갑이 없는 자신의 맨손바닥을 비비는 그녀의 뇌리에 P가 스쳐지나간다. 언제나 P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지.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머플러와 새 장갑을 챙겨주곤 했던 P.

공중전화 부스나 찻집에 놓고 오면 다시 새걸로 마련해주곤 했던 P였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약속시간 이십분을 못 넘기고 돌아가버렸을 때도 그녀는 P를 생각했다. P는 단 한번도 그러지 않았으므로. 신호등 앞에서 길을 건널 때면 P는 눈은 찻길 쪽을 보면서 한쪽 팔을 뻗어 도로를 가로막곤 했다. 그녀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런 자세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밤길이면 그녀 혼자 보내는 법 없이 집앞까지 바래다주었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땐 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녀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그의 몸은 벌써 약국을 향해 돌아서 있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인받은 커플이었다. 어쩌다 모두들 함께 어울려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친구들은 P와 그녀를 한 텐트에 몰아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어느날 그가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할 줄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녀로서도 생각지 못했다. 수영복을 사러 갈 때조차 동행하는 P였기에 그녀는 다가올 미래 어디에나 P가 동행할 줄 알았다.

차 안에 있을 때보다 까페 안이 더 썰렁하다. 그녀는 까페 안을 둘러본다. 손님이라곤 그녀와 남자 둘뿐이다. 그녀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사람 만날 일이 있을 때면 곧잘 약속장소로 이용하는 까페다. 인사동 입구라서 찾기도 쉽고 혹시 상대방이 늦으면 진열되어 있는 녹찻잔이나 접시, 화병이나 머그잔 등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을 때면 그녀는 상대방에게 말하곤 했다. 혹시 제가 늦으면요, 거기 진열된 그릇들 구경하고 계세요. 남자에게도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늦으면 진열장의 그릇들을 구경하라는 말까지 했으면서 일월 일일이라 까페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까페에 진열된 그릇들의 뒷면엔 그릇을 만든 사람의 싸인이 있다. 어느날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이 같은 사람의 싸인이 되어 있는 그릇을 자신도 모르게 고르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연한 밤색 커피잔을 집어 뒤를 봤을 때, 가운데에 옅은 노랑 빗금이 그어져 있는 접시를 들어 뒤를 봤을 때, 꼭지에 은색 테가 둘러진 것말고는 장식이 일절 없는 물병을 들어 뒤를 봤을 때, 한결같이 날아갈 듯한 글씨로 ‘명’이라고 씌어 있었다. 혹시 이 진열장의 모든 그릇들이 다 ‘명’이라고 싸인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실제로 그런 의심이 들어 그녀는 아무거나 집어 뒷면을 살펴본 적도 있었다. 각기 다 다른 싸인이었다. 이 그릇이 괜찮다, 싶은 것을 골라 뒤를 보면 거기엔 어김없이 ‘명’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녀는 이 까페의 그릇들을 친구들 생일선물로 사가기도 하고, 깨지지 않게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집들이하는 집에도 들고 가곤 했다. ‘명’이라고 싸인된 아무 장식 없는 물병은 지금 그녀 방 탁자에 놓여 있다.

긴 머리의 종업원은 썰렁한 까페에 스팀을 넣느라, 구석에 세워진 난로에 불을 지피느라, 지난해의 마지막 밤이었던 어젯밤에 뒷정리를 다 못한 주방의 찻잔들을 씻느라 손길이 바쁘다. 감기가 들었는지 그릇을 닦다가 고무장갑 낀 손을 쳐들며 기침을 하기도 한다. 따뜻한 거라도 한잔 마셔볼까 하고 그녀가 종업원을 불렀으나, 종업원은 잠깐만요, 하고선 이번엔 탁자와 의자 사이를 비질하다가는 생각난 듯이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꺼내 두르더니 다시 비질에 여념이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인가봐요.”

남자는 대답 없이 그녀를 넘어다본다. 남자의 응시에 그녀는 갑자기 멋쩍어져 얼결에 앞에 놓인 남자의 장갑을 집어 만지작거리다 그것마저 어색해 다시 내려놓으며 썰렁하네요, 중얼거린다.

“차도 안 팔 모양인데 그냥 갈까요? 거기 꽤 멀걸요. 오늘 갔다오려면 빠듯할 텐데.”

그와 그녀가 그냥 일어서자 종업원이 붉어진 코를 감싸며 아휴, 미안해요, 새해 복……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다시 기침을 하느라 주저앉는다.

까페 바로 옆 크라운베이커리 맞은편에 주차해놓은 차의 운전석에 그녀가 먼저 올라탔다. 남자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려다가 뒷좌석의 개 기척에 놀라며 뒤를 돌아다본다. 그녀는 개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속에서 개를 다 데려왔느냐는 책망을 느끼고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안해도 될 말을 주워섬긴다.

사람들은 그녀의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개라고도 할 수 없다. 그녀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맞은편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여기저기에 계곡과 절을 숨기고 있다. 청록색 지붕의 양로원도. 그녀가 자주 올라가는 산길에 다다르려면 그 양로원을 지나야 했다. 양로원 옆길에 쌓여 있는 돌울타리는 누구라도 한번 넘어가보고 싶게 눈길을 끌었다. 그녀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언젠가 한번은, 하면서 벼르고 있었다. 양로원의 정문은 따로 있어서 산길 쪽은 양로원의 옆구리인 셈이다. 말하자면 문을 달아놓은 게 아니라 잘사는 집 정원마냥 넓적한 돌들을 쌓아올려 울을 쳐놓은 것이다. 산길에서 보면 그 돌울타리만 건너가면 곧 등나무 밑에 다다를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울 너머 덩굴진 등나무 밑엔 언제나 한가롭게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다. 빈 의자를 보면 누구나 앉아보고 싶게 마련이다. 등나무에 등꽃이 피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등꽃이 지기 전에 한번은 그 돌울타리를 넘어가 등꽃 아래 빈 의자에 앉아보리라고 생각했다. 오월이었던가, 유월이었던가. 마음에 일렁이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던 쾌청한 아침에 그녀는 벼르던 대로 탁탁탁, 가볍게 돌울타리를 타고 넘어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산길 쪽에서 볼 때는 돌울타리에 올라서기만 하면 바로 등나무와 마주칠 것 같았는데 등나무 아래로 가려면 갑자기 낮아지는 평평한 길을 얼마간 걸어야 했다. 길은 평평했으나 바닥에 자갈이 깔려 있어 거길 통과하자니 발밑에서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새벽의 양로원은 고적했다. 자갈길을 통과해 도착한 등나무가 있는 곳은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그녀가 원했던 등꽃 밑 의자에 앉아 있어도 양로원의 청록색 지붕까지 다 내려다보였다. 지나치며 봤을 때보다 양로원은 넓었다. 칠십여평은 될 듯한 화단을 중앙으로 해서 양옆으로 이층짜리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다. 화단엔 온갖 기화요초들이 만발해 있었다. 양로원 안에 고여 있는 적막과 대치하듯 화려한 자태를 요요하게 드러내고 있는 자색 작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갈을 밟을 적마다 누가 그 소리를 들을세라 조심했던 그녀는 등나무 밑에 앉아본 것으로 만족하질 못하고 사방을 살피며 양로원 가까이로 내려가보았다. 수돗가를 지나 빨랫줄 밑을 지나 그녀는 화단의 요요한 작약 앞에 서보았다. 낮은 키의 작약은 새벽빛 속에서 이슬을 머금고는 영원히 이울 날은 없다는 듯 한껏 생기로웠다. 얼마나 찬란한지 햇살도 없는데 눈이 시었다. 그 황홀한 자색 작약 밑에 개 한마리가 기진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녀가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보자 개는 슬몃 눈을 떴다간 곧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대로 뒀다간 작약 밑에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그녀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여기 개가 이러고 있다고 일러주려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양로원 안은 괴괴했다. 날아가는 새 한마리조차 없었다. 마냥 그러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쯧쯧,거리며 그녀는 다시 등나무 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넘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자갈이 깔려 있는 길을 통과하여 돌울타리를 넘어왔다.

터벅터벅 다시 산길 쪽으로 길을 잡고 걷다가 뭔가 이상해서 뒤돌아보니 작약 밑에 기진해 있던 개가 절름거리며 그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귀를 아래로 축 내려뜨리고 눈물인지 진물인지를 흘리며 따라오는 개의 몰골은 처량했다. 돌아가! 돌아가! 해도 개는 졸졸 그녀를 따라왔다. 그녀는 산으로 오르던 길을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 산 아래로 내려왔다. 개도 그녀처럼 방향을 틀며 따라왔다. 그녀는 더이상 개에게 가라고 하지 않았다. 모른 척하며 앞서 걷다가 몇번 돌아봤을 뿐이다. 개는 그렇게 그녀 뒤를 따라 양로원을 빠져나왔다. 산길을 내려오고 그녀 뒤를 따라 신호등을 건너고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선 그녀와 함께 6층에서 내렸다. 그녀는 그때서야 개를 들어올려 안았다. 절름거리며 걷는 꼴을 더이상 보느니 안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작약 밑에서 밤을 샜는지 개의 털은 온통 축축했다. 어떻게 될 테지, 생각하며 그녀는 개를 포옥 싸안았다. 더럽고 축축해도 체온은 따뜻했다. 개를 기르고 있는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니 우선 목욕을 시키고 따뜻한 우유를 좀 먹여서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했다. 개를 목욕시킬 때 사람이 쓰는 비누를 쓰면 안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개용품을 취급하는 곳에 가서 개가 쓰는 샴푸를 사다가 사용하지 않으면 피부염이 생긴다는. 그렇게 그녀의 개가 된 개는 다른 이들이 기르는 애완견들처럼 귀염성도 예쁜 데도 없었다. 눈물샘에 이상이 있어 언제나 눈가가 축축이 젖어 있는데다 경계심이 지독해 사람을 만나면 꼬리를 치는 게 아니라 일단은 카르릉거리고 보는 거였다. 게다가 다른 개를 만나면 바짝 겁을 집어먹곤 했다. 개이면서 도대체 다른 개들 곁엔 가려 들질 않았다. 동물병원의 의사는 아마도 다른 개에게 크게 물려본 경험이 있는 듯하다고 했다. 그때의 공포가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배낭 속에 얌전히 있을 거예요.”

남자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사과하듯이 말한다.

“요새 내가 바깥으로 돌았더니 개가 완전히 정서불안이에요. 잠을 안 자고 끙끙거려요. 혼자 나오는데 울고불고하는 통에…… 두고 나왔다간 아플 것 같아서요.”

그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는다.

개는 배낭 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배낭을 빠져나온 개는 의자 밑으로 내려와 두 개의 앞좌석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남자가 개의 머리를 쓰다듬자, 개는 붉은 혀를 내밀어 남자의 손등을 핥는다.

“안돼. 들어가 있어. 어서!”

그녀가 호통을 치자 개는 다시 뒷자리로 돌아가 웅크리고 엎드린다.

“평소엔 안 그러는데 이상하네요. 미안해요.”

“이름은 지었어요?”

“이름 없어요.”

“그래도 불러야 될 때가 있을 텐데?”

“개야! 그러구 불러요.”

“개야!”

“네.”

남자가 웃는다.

바람이 많이 불어, 까페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라고 해봐야 빤한데도 옆자리에 앉은 남자에게서 찬바람 냄새가 끼쳐온다. 그녀는 시동을 걸고 룸미러를 맞추며 슬쩍 그를 훔쳐봤다. 스스럼없이 개를 만져줘서 그런지 남자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길쭉한 얼굴에 눈과 코가 알맞게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혼자 웃는다. 까페 안에서는 남자가 차가운 인상이더니 이젠 분명한 인중으로 인해 과묵해 보일 뿐이라고 생각되어서. 까페가 문을 열지 않아 이십분쯤 바깥에 서 있었다는 그의 귀는 아직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불현듯 손으로 감싸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객쩍어진 그녀는 남자의 청바지에 시선을 준다. 바지끝이 닳은 오래된 청바지다. 가끔 저 바지를 입은 남자를 산길에서 마주치곤 했다.

“거기 가는 길은 알아요?”

“……몰라요. 처음 가는 거거든요.”

“나도 모르는데.”

“뒷자리에 지도 있어요. 지도 보고 찾아가죠.”

지도를 보지 않고도 어디든 찾아다녔다. 길을 잘못 들거나 한번에 찾질 못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생겨 시간이 걸리긴 해도 아예 찾지 못한 적은 없었다. 불면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끌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과속을 하고 싶으면 고속도로로 나갔고, 천천히 달리고 싶으면 파주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면 그녀는 차 안에서 실컷 소리를 질렀다. P를 향해서인지 세상을 향해서인지 그녀 자신도 정확히 모른 채. 어느날은 욕을 퍼붓는 날도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육두문자가 그렇게 많다는 게 그녀 자신도 놀랄 지경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퍼부으며 평택쯤 다다르면 그만 허탈해졌다. 뭔가에 격렬하게 치받쳐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껍데기만 남은 느낌으로 밤의 휴게소에 정차해 있으면 입은 바짝바짝 타는데 메말랐던 눈가는 이내 축축해지곤 했다.

그녀는 인사동을 거쳐 종로3가 쪽으로 길을 잡아 중앙극장을 지나 남산1호터널을 빠져나왔다. 뒷자리에서 지도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던 남자는 일단은 고속도로를 타 원주 쪽으로 가다가 충주로 빠져나가야 될 것 같다고 일러준다. 아닌가, 제천 쪽으로 가야 하나, 하다가는 그는 차창 바깥을 내다보며 눈이나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일기예보로는 저녁 무렵에 전국적으로 큰 눈이 내린다고 했다고.

서울을 떠날 사람들은 어제 다 떠난 모양이다. 자동차가 한남대교에 이를 때까지 거리는 막힘없이 뚫려 있다.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집에 있는 자료 중에 이것저것 찾아보긴 했는데…… 내가 찾은 자료라는 게 말이죠.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있다. 소수서원 앞에 오른쪽 부석사로 난 931번 지방도로를 따라 10.4킬로미터 가면 부석면 소재지인 소천리 사거리가 나온다. 소천리 사거리에서 앞으로 계속 난 935번 지방도로로 3.2킬로미터 가면 부석사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부석사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이런 식이라서. 도움이 안되죠?”

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를 그녀는 잠깐 쳐다본다. 931번 지방도로, 10.4킬로키터, 935번 지방도로, 3.2킬로미터…… 어떻게 숫자들을 저렇게 외우고 있는지.

“부석은 무량수전 뒤에 있다는군요. 정말로 돌이 떠 있는지…… 실과 바늘이 드나들 만큼 두 개의 부석 사이가 떠 있다는데.”

“가서 확인해보죠.”

“실하고 바늘 가져왔어요?”

말해놓고 남자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사과꽃이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데…… 중얼거리면서.

부석사에 가는 길도 모르면서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나흘 전이다.

한달에 한 꼭지쯤 일거리가 있는 잡지사의 편집장이 바뀌어 인사도 할 겸 완성된 번역원고를 갖다주고 돌아오는 그녀를 오피스텔 관리인이 불러세웠다. 그녀는 관리실 한켠에 놓인 장미와 안개꽃이 섞여 있는 꽃바구니를 바라봤다. 뜻밖에 관리인은 그 꽃바구니를 집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관리인은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그녀가 오면 전해주라고 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요? 그녀가 묻자 점잖아 보이는 분…… 설명을 하려다가 꽃바구니를 가리키며 거기 카드가 있으니 누군지 써놨겠죠, 그랬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을 누른 다음 물끄러미 꽃바구니 속에 꽂혀 있는 흰색 카드봉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동차에 부착된 시계를 본다. 정오가 지나 있다.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어야 할 텐데요.”

“일단 서울을 빠져나간 뒤에.”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뒤론 차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다.

부석사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인지.

설마 했는데 꽃바구니와 생일카드를 보낸 사람은 P였다.

P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썼다. 대학교수답게 P는 굵직한 만년필 글씨로 그녀가 만든 책은 늘 잘 보고 있다고도 써놓았다. 보고 싶다고도. 내가 만든 책?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가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잡지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백육십 페이지짜리 종교잡지의 겨우 두 페이지를 차지하는 기고 글을 두고 내가 만든 책이라니. 그녀는 아직도 예전과 다름없는 P의 글씨체를 바라보았다. 꽃바구니에 꽂힌 생일카드를 보기 전까지 그녀는 오늘이 생일이라는 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으므로 아직까지 P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데 어느 순간 코가 맹해지려고도 했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한가지 결정을 내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인 그녀에 비해 P는 판단이 서면 곧 실천에 옮기는 성향이었다. 두 사람이 무엇을 계획할 때마다 이 다른 성향이 늘 걸리적거리곤 했다. P와 알고 지내는 동안 그녀가 P와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이 성격이 걸림돌이었다. 그녀가 좀 싸늘해지기라도 할 양이면 P는 그녀를 찾아왔고, 집앞까지 찾아온 P를 보면 곧 마음이 수그러들곤 했다. P가 집앞으로 찾아오면 그전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문제들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듯 사소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 시작하곤 했다.

생일카드 말미에 P는 일월 일일 오후 세시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방문하겠다고 써놓았다. 그때 만나자고.

그녀는 P에게서 받은 생일카드를 삼십분쯤 들여다본 후에 감정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녀는 경비실을 통해 남자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일월 일일에 저랑 부석사에 가시겠어요? 통화가 되면 남자에게 할 말을 메모지에 적어놓고 두어 번 연습까지 한 후였다. 왜 그때 부석사가 떠올랐는지. 부석사의 당간지주 앞에서 무량수전까지 걸어보라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절집이 대개 산속에 있기 마련인데 부석사는 산등성이에 있다고 했다. 개울을 건너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사과나무들이 펼쳐져 있다고. 문득 뒤돌아보면 능선 뒤의 능선 또 능선 뒤의 능선이 펼쳐져 그 의젓한 아름다움을 보고 오면 한 계절은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힘이 생긴다고 했다. 남자와 통화가 되었을 때 그녀는 침착하게 메모지에 자신이 쓴 문구를 읽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남자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얼마 후에 남자는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그렇게 하지요, 하면서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남자와는 같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으므로 그녀는 남자와 주차장에서 만나 떠날 요량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오피스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피스텔에서 좀 떨어진 곳이면 좋겠다고. 인사동에 있는 까페로 약속을 정하고 인터폰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못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불을 켜고 세면장에 들어가 한동안 거울에 얼굴을 비춰봤다. 윤기 없는 얼굴, 메마른 머리카락, 벌써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목. 그녀는 찬물을 받아 시간을 들여 손을 씻었다.

세면장에서 나온 그녀는 꽃바구니 속에 꽂혀 있던 카드를 개수대 앞으로 가지고 갔다. 전기레인지를 가동해 붉어질 정도로 달군 다음에 생일카드를 갖다댔다. 카드에 곧 불이 붙었다. P가 쓴 글씨들이 검은 재로 변해 개수대에 툭툭 떨어졌다. 물을 틀어 개수대에 흩어진 검은 재를 하수구로 흘려보낸 뒤 꽃바구니를 들고 나가 복도 끝집 현관 앞에 내려놓고 왔다. 그때까지 그녀는 맨발인 채였다. 자정이 지나 현관문을 열고 슬몃 내다보니 누가 가져갖는지 덩그라니 놓여 있던 꽃바구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운전은 잘해요?”

“안전벨트를 해두는 게 이로울걸요. 내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고 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가 흔쾌하게 웃는다.

P가 급작스레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해버림으로써 그녀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깨버렸을 때, 그녀는 머릿속이 희뿌옇게 된 공동상태에서 운전학원엘 다녔다. 운전 같은 건 익히려고 생각지도 않고 있던 그녀였다. 불면으로 눈이 튀어나올 것 같던 어느날 새벽 세시에 오피스텔 창가에 서서 괴괴한 차도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데 자동차 한대가 오피스텔을 빠져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잠을 못 자고 서성일 바에는 저렇게 차를 몰고 어딘가를 내달렸다 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다음날로 그녀는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녀는 마치 운전면허증을 따는 일에 생을 건 사람처럼 모자를 쓰고 운전을 익히는 일에 몰두했다. 덕분에 그녀는 단 한번에 운전면허시험에 통과했다. 오디오의 콘센트 하나도 제대로 못 꽂는 기계치인 그녀에게 생긴 특이한 일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그 여름날 시험을 치르고 돌아올 때의 그 허탈함이란. 그녀의 차를 타본 사람들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운전실력은 엉망진창이었다. 외길에서 속도를 너무 느리게 내어 뒤차 운전자에게 추월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좌회전을 할 땐 미리 좌회전 차선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늘 바로 앞에서 끼여들기를 하느라 허둥거리며, 국도를 달리는 중에 눈에 띄는 풍경이라도 보게 되면 저것 좀 봐, 하면서 아무 예고 없이 차를 턱 세워버리곤 했다. 그런 실력으로 그녀는 한계령을 넘기도 했고 남쪽의 변산반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남자는 자동차가 곤지암을 지나 이천휴게소를 지나도록 망연히 차창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따금 깊은 숨을 내쉬기도 한다. 국도를 사이에 두고 펼쳐져 있는 텅 빈 들녘. 메마른 갈대숲이 흔들리더니 왜가리떼들이 잿빛 허공을 차고 솟아오른다. 까마귀인가. 군데군데 녹지 않은 흰 눈 위엔 검은 새가 앉아 있다. 매서운 바람이 일렁일 적마다 새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허공을 선회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는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길을 건넌 뒤에 파출소를 지나 산길을 타고 사십분 거리에 있는 금산사엘 갔다. 어느날 이른 새벽에 그곳에 올라갔다 내려오다가 남자를 만났다. 무성한 담쟁이덩굴이 담장을 에워싼 높다란 집을 지나고, 이북5도청을 지나고, 청록양로원을 지난 뒤에 금산사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옛날에 지어진 듯한 집 한채가 나왔다. 그 집 주변에 있는 집들이 넓은 정원을 두고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거나 혹은 빌라였으므로 길가 쪽으로 수수하게 하얀 대문을 달아놓은 단층짜리 붉은 벽돌집은 누구에게나 눈에 띄었다. 서울의 동네에도 원주민이 있다면 아마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그 동네의 원주민일 것이다. 담장은 높지 않아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발꿈치를 들고 모둠발을 디디면 안이 들여다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빨래건조대에 빨래가 널려 있고, 안에서 기르는 감나무가 담장 바깥에서도 보이는 그런 집이었다.

그 집 대문 맞은편에 다섯평이나 됨직한 밭이 일궈져 있었다. 처음부터 밭은 아니었을 것이다. 빈 땅을 누군가 밭으로 일궈놓았을 것이다. 그 밭이 누구의 소유인지 그녀는 모른다. 혹은 단층짜리 붉은 벽돌집 사람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누군가 그 밭에 사시사철 열심히 채소를 가꾸었다. 파꽃이 필 때면 파꽃이 피었고 쑥갓이 자랄 때는 쑥갓이 자라고 있었다. 여름날엔 시골밭처럼 울타리로 여겨도 손색없게 옥수숫대가 자라고 있었으며, 고구마며 감자 줄기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밭 가장자리의 채소들 곁에서 멋대가리없이 키가 큰 접시꽃이 잎새를 매달았다가 꽃을 피웠다간 했다. 김장철을 앞둔 가을에는 무청이 반은 드러난 위로 새파란 무잎이 아침햇살을 받고 찰랑이고 있기도 했다. 그녀는 매번 그 밭 앞을 지날 적마다 그 밭을 가꾸는 사람을 한번 보고 싶었다. 그 밭에 상추 잎새가 손바닥만하게 자라 있던 때였다. 산을 내려오던 그녀는 상추밭 속으로 들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엔 드디어 밭주인을 만나는가 싶었는데 상추밭 앞에서의 남자의 행동이 좀 야릇했다. 들어갈 때도 흘금흘금 주변을 살피다가 주춤대며 들어가더니 밭에 들어가서 재빠르게 상춧잎을 훑어내는 행동도 주인이라 여기기에는 불안하고 조급해 보였다. 상춧잎을 실컷 뜯은 남자는 마치 누가 보기라도 하는 듯 큰걸음으로 상추밭을 빠져나와 뒤돌아보다가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상추가 너무 싱싱해서.”

남자는 양손바닥 가득 상추를 쥐고서는 민망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 반만 절 주세요…… 그러면 비밀로 해드릴게요.”

그 순간 어떻게 그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자는 선뜻 정신없이 뜯은 상추의 반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그들은 손에 상추들을 들고서 산길을 나란히 내려왔다. 그녀는 남자를 처음 보았지만 남자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오피스텔 608호가 그녀의 주거지라는 것도. 그녀가 의아해하자, 남자는 상추를 쥔 손을 쳐들어 오피스텔을 가리키며 저도 저기 삽니다, 그랬다.

그들은 그후로 가끔 그 산길에서 만나 단층짜리 붉은 벽돌집 앞의 밭에 자라는 채소들을 슬쩍하곤 했다. 상추철이 지난 후론 아욱을 뜯어올 때도 있었고, 막 속이 차오른 배추를 한포기 뽑아온 적도 있었다. 애호박을 한개 따온 적도 있었으나 그들이 주로 탐낸 것은 상추였다. 혼자일 때는 그럴 염이 나지 않다가도 그녀는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남자를 만나면 채소 훔치기에 발동이 걸리곤 했다. 혼자일 때는 마음이 고요했다가도 남자를 만나게 되면 벌써 그 연한 것들을 씹었을 때의 신선한 맛이 혀끝에 감도는 것이었다.

그녀는 혹시? 싶어 남자에게 무슨 말을 물어보려다가 그만둔다. 녹음기를 들고 사람들에게서 인터뷰를 딴 뒤 피로한 마음으로 돌아와보면 간혹 비닐에 싸인 깻잎이나 케일이 신발을 벗는 곳에 떨어져 있곤 했다. 출입문에 뚫린, 신문과 우유를 넣는 구멍 속으로 누군가 밀어넣은 것들이었다.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있을 때도 있고, 길다란 보라색 가지가 한개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잔솔잎같이 생긴 부추가 봉지에 담겨 있을 때도 있었다. 출입문의 구멍 속으로 야채들을 밀어넣고 가는 게 남자냐고 물었다가 아니라고 하면? 아닐지도 모른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서 단층짜리 붉은 벽돌집 앞의 밭은 텅 비었다. 접시꽃대까지 무너지고 난 뒤의 자리에는 찬바람이 쿨렁거렸다. 겨울 초입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오늘 아침까지도 쌓여 있었다. 밭이 텅 빈 후로 우연히 산길에서 만나면 그들은 서로를 쑥스러워했다. 근래엔 남자를 산길에서 마주치는 일조차 드물었다.

플라타너스일까. 갑자기 국도 양변에 가로수들의 가지가 툭툭 잘려져 있다. 그렇잖아도 황량한 겨울 국도변이 목 잘린 가로수들로 인해 더욱 황량해진다. 저렇게 잘린 자리에서도 새잎이 돋나. 잘린 가로수들이 고통스럽게 팔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가로숫길이 끝난 국도의 한켠에 차를 세웠다.

“점심 먹고 가요.”

“여기서요? 식당도 없는데.”

“내가 도시락 싸왔거든요…… 개를 데리고 들어갈 식당도 마땅찮고 해서.”

“도시락을요?”

그녀는 뒤트렁크를 열고 손잡이가 달린 대바구니를 꺼내왔다. 대바구니엔 검은 체크무늬 보자기가 덮여 있다. 그녀가 보자기를 걷어내자 한쪽 귀퉁이에 붉은 잔꽃이 새겨진 검은 찬합이 보인다. 은색 보온통 두 개, 미니 생수통 하나, 붉은 사과가 한개 곁에 끼여 있다. 단감 한개도 사과 밑에 놓여 있다.

“의자를 뒤로 쑥 빼봐요. 그러면 자리가 넓어지니까.”

그녀는 자신의 의자를 뒤로 젖히며 그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한다. 의자 옆의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데 남자는 그 조절장치를 쉽게 찾지 못한다. 여기예요. 그녀가 무심코 몸을 반쯤 접어 문 쪽에 달려 있는 의자조절기가 있는 곳을 일러주려다보니 남자의 품속에 얼굴을 묻고 안기는 꼴이 된다. 멋쩍어진 그녀가 얼른 자세를 바로한다. 귀밑이 붉어진다.

포개져 있는 찬합 속에 여러가지 반찬이 담겨 있다. 시금치와 고사리, 무나물이 나란히 칸을 채우고 있고 파와 게맛살과 당근과 익힌 쇠고기를 꿴 꼬치가 여러 장 겹쳐져 있다. 당근과 파가 섞인 계란말이 옆엔 불고기도 놓여 있다. 그 곁 좁은 칸엔 김치가 놓여 있다. 음식냄새를 맡자 뒷자리의 배낭 속에 얌전히 있던 개가 얼굴을 내밀고 끄응, 소리를 낸다.

“이걸 다 만들었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보온도시락 속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밥을 젓가락으로 퍼서 종이컵에 담아 자신의 몫으로 내놓은 다음 보온도시락을 통째로 그에게 준다.

“많이 먹어요. 이 밥만 제가 했거든요.”

찬합 안의 반찬들은 어제 올케네 집에 가서 싸온 것들이다. 평소에 무엇을 싸주어도 귀찮아하며 들고 가지 않으려 하던 그녀가 어제는 아예 찬합을 들고 가 음식들을 챙겨담자 올케는 아가씨 수상하네,를 연발했다. 보온도시락을 빌려달라고 하자 올케는 아가씨 어디 가요? 하고 되물었다. 어디가는데요? 부석사요. 부석사? 영주에 있는 부석사요? 네. 혼자서요? 네. 거짓말. 새해 첫날에 혼자서 무슨 부석사엘 간다구 그래요? 혼자 아니죠? 아침에 흰밥을 지어 보온도시락에 담을 때 올케는 또 전화를 했다. 아가씨, 혼자 가는 거 아니죠?

그녀는 종이컵 하나를 뜯어 편편하게 한 다음에 그 위에 불고기 몇점을 올려놓은 뒤 뒷자리 바닥에 내려놓는다. 뒷좌석에 엎드려 있던 개가 귀를 쫑긋하며 내려와서 불고기를 한입 물고는 씹는다.

앉은자리가 불편한데도 남자는 밥을 맛있게 먹는다. 실제로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를 일이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남자 같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P를 만나본 어머니는 P가 음식을 맛없게 먹는다며 흠 아닌 흠을 잡곤 했다.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했다. 음식을 공경할 줄 모르는 남자는 여자를 골탕먹인다고. 흰 무나물을 집어 맛있게 오물거리는 남자를 보며 뜻밖의 어머니 생각에 그녀가 웃자, 젓가락으로 꼬치를 집다 말고 그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 반으로 으깨진 흰 밥알이 묻어 있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입가에서 밥알을 떼어내준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멋쩍어져서 젓가락을 든 채로 그녀의 손이 왔다간 곳을 쓱쓱 문지른 다음 보온도시락 속의 흰밥을 한 숟갈 떴다. 어느 순간이다. 밥을 한 숟갈 퍼서 오물거리던 남자의 입에서 돌 씹는 소리가 났다. 돌 씹는 소리는 곁의 그녀에게 들릴 정도로 컸다. 씹는 행위를 멈춘 남자와 당황한 그녀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녀가 삼키지 말고 뱉으라는 말을 막 꺼내려는데 남자는 밥을 꿀꺽 삼키고 있다.

무안한 그녀의 귀밑이 빨개졌다.

찬합을 포개 대바구니에 담아 뒷자리에 내려놓은 뒤 그녀가 종이컵에 보온통의 커피를 따르고 있을 때 남자는 생수병 뚜껑을 따고는 역시 종이컵에 물을 반쯤 따라 뒷자리의 개 앞에 놓아준다. 불고기를 먹은 개는 목이 탔는지 남자가 내려놓은 종이컵에 혀를 담가 물을 빨아마셨다. 그녀는 다 따른 커피를 남자에게 내밀다가 아직도 혀를 종이컵에 담그고 물을 빨아마시고 있는 개의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는 남자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이상한 일이다. 처음 본 사람은 영 따르지 않는데.

환기를 하려고 자동차의 창문을 아래까지 다 내리자 국도에 출렁거리던 매서운 바람이 차 안으로 훅 들어온다. 그 바람을 삼분도 못 견디고 그녀는 틈을 조금만 남기고 창문을 다시 올린다.

“출발할까요?”

“자리 바꿔요. 이제부턴 내가 운전할게요.”

“운전할 줄 알아요?”

남자가 웃는다.

“운전하는 거 한번도 못 봤는데?”

“그쪽처럼 한밤중에 차를 끌고 나가진 않죠.”

남자가 운전석에 앉고 그녀가 남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자세대로 조절되어 있는 운전석이 남자에겐 좁다. 남자는 의자조절기를 움직여 운전석을 넓힌 다음 그녀를 한번 바라본다. 그는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안전벨트를 해주고는 시동을 건다. 일월 일일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얼마를 달리니 드문드문 식당이 보이고 식당마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떡국 됨’이라고 종이에 씌어진 글자가 메뉴판에서 따로 떨어진 채 붙어 있는 식당들도 여럿이다.

자동차가 장호원을 완전히 빠져나가 제천 쪽으로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시계를 본다. 세시다. 약속을 지켰다면 지금쯤 P는 오피스텔에 와 있을 것이다.

국도는 곧 단조로워진다. 드문드문 눈에 띄던 식당들과 슬레이트 집들도 보이지 않는다. 구불거리지 않고 직선으로 뻗어 있는 국도 양변에 가로수들이 벌거벗은 채 서 있다. 가로수 뒤로는 황량한 논이다. 그녀는 직선으로 쭉 뻗은 국도를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내다본다. 이따금 만나곤 하던 강물은 이제 아예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물은 사라지고 양편에 겨울논들이 펼쳐져 있다. 논의 이곳저곳엔 추수를 마치고 걷어가지 않은 낟가리들이 모양새 없이 세워져 있다. 그 어느쯤에 기다랗게 서 있는 전신주에 참새들이 열지어 내려앉아 있다. 무엇에 놀란 것일까. 조용한 겨울하늘처럼 전신주에 별 기척 없이 조용히 앉아 있던 새들이 전신주를 탁 차고 허공으로 포르르 날아오른다. 말똥가리도 섞여 있다. P는 정말 왔을까.

 

 

2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해가 이울 무렵이다. 집안 전체에 흘러다니는 옅은 석유냄새로 인해 소년은 어지럽기조차 하다. 안채의 건넛방에서 누군가 나와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다. 문간방 앞은 바로 수돗가이고 좁은 골목을 향해 나무대문은 열려 있다. 열린 문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옥의 담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담장 위에 한지로 바른 여닫이창들은 닫혀 있다. 담장과 닫힌 창에 석양이 비쳐들었다.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소년은 이제 그만 집에 갔으면 싶었다. 그런데 함께 집에 가야 할 어머니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문간방으로 올라가는 좁은 마루에 걸터앉아 어제만 해도 가지런했던 낯익은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진 꼴을 휘둘러보며 소년은 함께 집에 돌아갈 사람을 찾고 있다. 소년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수도꼭지 밑에 놓인 세숫대야 속엔 모과나무 잎사귀들이 떨어져 동동 떠다녔다. 조그만 뜰 모과나무 밑에서 해바라기가 시들고 있고 그 아래에 꽃이 작은 자줏빛 소국이 자라고 있었다. 안채에서 나와 소리를 지른 사람이 좁은 마루가 기다랗게 이어진 한옥의 네모난 마당에 갓 부려놓은 이삿짐들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고 서 있다. 장롱이나 반닫이 같은 것도 예외일 순 없지만, 솥단지나 냄비 같은 부엌살림은 제자리에 있을 땐 없어서는 안될 것이지만 제자리에서 분리되어 나와 단독자가 되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어진다. 아무리 윤이 나게 닦아놓아도 부엌의 살강을 떠난 수저통은 초라하기 마련이다. 집에 가자고 울어대던 소년은 울음을 그치고 안채에서 나온 사람의 시선을 피해 어지럽게 널린 살림살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책상의 뒷다리엔 홈이 파인 자국이 여럿이고 저걸 뒤에 숨기고 있었나 싶게 가죽소파의 뒤테는 찢어져 있다. 솥단지는 뚜껑을 잃은 채 수세미로 긁힌 자국을 드러내며 널브러져 있고 연탄 아궁이 곁에 있을 땐 빛나던 풍로는 그을음투성인데다 기름을 넣는 구멍이 열려 있어 거기에서 새어나온 냄새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기까지 했다.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소년이 다시 울음을 터뜨릴 때 그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혼미한 정신에도 새로 이사온 곳에서 집에 가자고 울고 있는 소년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닐곱살 때였을 것이다. 태어나 그때껏 자란 집을 떠나 그 문간방으로 이사를 한 후로도 해가 저물 녘이면 집에 가자고 여러 날 어머니를 들볶곤 했다. 도무지 새로 이사온 집에 정이 가지 않았다. 그때면 어머니는 자신을 업어주거나 단맛이 나는 사탕 같은 것을 입에 물려주며 이제는 여기가 집이라고 어르다가 그래도 집에 가자고 보채는 자신을 향해 나중엔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의 혼미한 의식에 순간 정신이 들게 한 건 무의식 속에서 이끌려나온 어머니의 엄한 목소리였다. 이제 그곳은 집이 아니라고, 이제 여기가 집이라고, 사내가 되어서 아무데서고 눈물을 흘린다고 엄하게 꾸짖던 어머니의 목소리.

꿈이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분이 되었지만 자신을 나무라는 목소리가 너무 생생하여 꿈인 줄 알면서도 어지러워진 마음을 수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며칠 전부터 모래가 들어간 듯 거칫거리는 눈에 달라붙어 있는 눈곱을 떼어내는데 창을 뚫고 들어온 아침햇살이 강렬하게 그의 눈을 찔렀다.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눈을 다스린 뒤에도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못했다. 이따금 반복적으로 꾸곤 하는 꿈이었다. 그런데도 매번 그는 울고 있는 소년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깨어나면 두통이 오고 스르륵 맥이 빠졌다. 꿈속이라지만 무슨 연유로 아직도 그렇게 집에 가자고 우는 건지. 꿈에서 깨어나면 진짜 울고 난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드러누우려다가 여자와 함께 부석사에 가기로 했던 일이 생각났다. 따분하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는 무슨…… 싶어 없던 일로 하려고 인터폰을 넣었는데 여자가 방금 세수라도 마친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는 통에 할말을 못하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자가 여보세요? 다시 그를 호출했을 때 그는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여자의 밝은 목소리를 듣자 엉뚱하게 오늘 방문하겠다던 박피디가 떠올랐다.

일월 일일의 국도에 군인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소총을 메고 군화를 신고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이 발을 맞춰 걷고 있다. 눈 쌓인 길을 걸어왔는지 군화에 희끗희끗 눈이 묻어 있다. 그는 속도를 높여 행렬의 선두를 따라잡는다.

여자에게서 느닷없이 부석사에 가지 않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오기 직전에 그는 박피디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봄 이후 그는 회사를 쉬고 있는 참이었다. 그가 회사 회식 자리에서 최근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다름아닌 박피디라는 걸 감지한 뒤였다. 깊은 밤중에 도로 한가운데서 차에 부딪혀 다친 수리부엉이를 사설 조류협회장이 인계받아 여덟달 동안 정성을 다해 살려내서 다시 산으로 보내준 일이 있었다. 그 여덟달 동안 수리부엉이가 먹어댄 닭만도 팔십여 마리였다. 수리부엉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이었다. 그는 부상당했다가 인간에 의해 구조된 수리부엉이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필름에 담았다. 목과 눈이 너무 심하게 다쳐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수리부엉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새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돌보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조류협회장은 교통사고 당한 자식을 돌보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리부엉이를 돌봤다. 의사를 왕진시켰고 잠조차도 부상당한 수리부엉이와 함께 잤다. 수리부엉이는 기운을 차린 다음에도 부상을 입을 때의 충격으로 인해 눈을 뜨질 못했다. 그대로 두었으면 애꾸눈이 되었을 것이다. 수리부엉이의 눈 치료에는 들쥐가 최고라는 말을 들은 조류협회장은 들쥐를 잡기 위해 파주나 강화의 들판이나 밭에 덫을 놓으러 다니곤 했다. 이따금 그도 동행했다. 덫을 놓아 들쥐 한마리를 잡는 데 꼬박 사흘이 걸릴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조류협회장의 간절한 마음씀으로 인해 회복 불가능해 보였던 수리부엉이는 되살아났다. 조류협회장의 손이나 발등을 콕콕 쪼아댈 만큼 야성도 회복했다. 조류협회장은 정이 들 만큼 든 수리부엉이를 가평의 운둔산에 올라가 다시 산속으로 날려보냈다. 조금 더 치료를 해야겠지만 인간과 너무 오래 지내면 야성이 거세된다면서. 수리부엉이를 데리고 운둔산 정상까지 올라간 것은 깊은 산속의 암벽이 수리부엉이의 집이니 그리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운둔산을 내려올 때 나이가 쉰 가까이 되는 조류협회장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자식을 떠나보내도 이리 서운하지는 않겠네,라고 했다. 떠난 자식이야 다시 만날 수가 있지만 산속으로 돌아간 수리부엉이를 다시 만나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수리부엉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 뜻밖에 그의 필름을 사서 자연다큐멘터리 시간에 방송으로 내보냈던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부상당한 수리부엉이를 발견해 살려낸 게 아니고 방송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수리부엉이를 잡아들였다는 제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그와 조류협회장은 곤욕을 치렀다. 사실 조류협회는 공공단체도 아니었다. 대학 한방병원 의료부 직원이었던 조류협회장이 그저 새를 좋아해서 창설한 사설협회였다. 왜 조류광이 되었는지 묻는 데 대한 조류협회장의 대답은 그저 전생에 새였는가보지,였다. 마음이 이끌리는데 인간이 당해낼 재간이 있느냐고. 그는 무엇이든 새하고 연결시키는 사람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깊은 산속까지 환경이 파괴되는 통에 새들이 서식지를 잃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회원들과 함께 겨울새의 먹이를 뿌려주러 다니기도 하고, 희귀한 새들의 자료사진을 찍어놓기도 하는 그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그런 말이 나도는 것인지. 그는 묵살하려고 했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국에 넘기는 그의 회사로서는 해명하지 않으면 신뢰도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확인도 안된 말들이 꼬리를 물었다. 자칫 기사라도 타게 되면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질 것이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처음 그 수리부엉이를 경부고속도로에서 발견한 트럭기사를 찾아 증인으로 내세워야 했다. 다행히 조류협회장에게 부상당한 수리부엉이를 맡긴 보수설비업체의 트럭기사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로 하여금 내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새벽 네시쯤 경북 구미를 막 지날 때 도로 한가운데에서 앞차에 부딪힌 듯한 새 한마리를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뻔하다가 차를 급히 세워보니 큰 돌덩이만한 새 한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푸덕대고 있어 서울로 실어왔다, 회사 사장 아들이 조류협회의 회원이어서 협회장과 연결이 되었고 이후 수리부엉이를 치료하는 일은 조류협회장이 도맡았다는 해명을 하게 했다. 그는 영 마음이 풀리질 않았다.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망년회날 합석하게 된 방송국 사람이 연방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그는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병주고 약주네, 싶었으니까. 아마 그의 냉소적인 태도가 방송국 사람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책임 운운하다가 그의 입에서 박피디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박피디? 그는 그제서야 방송국 사람의 얼굴을 주시했다. 무슨 소리냐? 재차 묻는 그에게 방송국 사람은, 아니 그게 아니고 어쩌고 하면서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모양으로 술자리에 일순 침묵이 돌았다. 그는 박피디를 쳐다보았다. 박피디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간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박피디에게서 걸려온 첫 전화였다. 박피디는 그에게 일월 일일에 뭐 할 거냐고 물었다. 대답할 기분이 나질 않아 그가 우물쭈물하자 박피디는 오후 다섯시쯤에 방문할 테니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술이나 한잔? 그가 달리 대답이 없자 박피디는 변동사항이 있으면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전화가 없으면 그리 약속된 걸로 알겠다고.

박피디의 전화를 끊자마자 인터폰이 울렸고 받아보니 뜻밖에 여자였다. 여자가 인터폰을 걸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여자의 청에 선뜻 대답을 해버린 그의 마음 한편엔 여자와 약속이 되면 박피디를 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끼여 있었다. 그는 박피디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박피디에게 전화를 두어 번 넣었으나 직접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는 메모를 남겨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순간적으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다시 전화하지, 했던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조용히 스쳐가는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여자를 잠시 훔쳐본다.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텅 빈 벌판에 흩어져 있던 지푸라기나 비닐 같은 것이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다. 국도에서 만나는 차가운 전신주 위엔 겨울 새떼들이 날아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앉아 있다.

바람을 타면 되련마는…… 그는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이따금 산에서 생활하다보면 산속에 살고 있는 짐승들이 얼마나 인간을 싫어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희귀종이고 깊은 산속에 있는 것들일수록 그랬다. 그들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으려면 우선 그들처럼 되어야 했다. 그들이 먹는 것을 먹고 그들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 자신이 찍으려고 하는 동물이나 새가 풍기는 냄새가 자신에게서도 나기 시작할 때, 그제서야 깊은 바위틈이나 숨겨진 나무에 둥지를 튼 희귀한 새들이 그 주변에서 깃질을 하거나 어슬렁거리며 자태를 드러내곤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자는 간혹 메마른 입술을 꼭꼭 깨물기까지 한다. 무릎에 얹힌 손엔 흔한 반지 하나 끼고 있지 않다. 어제나 오늘 아침에 깎았나보다. 청결하다기에는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손톱이 지나치게 짧다. 차창 쪽에 얹어놓은 여자의 오른손이 무릎 위에 얹힌 왼손 가까이 오더니 깍지를 낀다. 그것도 잠시, 곧 깍지를 풀어버리곤 마주대고 싹싹 비벼댄다. 그것도 잠시, 여자의 두 손은 얼굴로 옮겨져서 눈, 코, 입을 감싼다.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꾹꾹 누르는 것도 같고 뺨을 어루만지는 것도 같으나 무슨 상념엔가 빠져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채 무심히 하고 있는 행동이다. 여자의 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그가 훔친 상추의 반을 받아내던 손, 이래도 되나요? 하면서도 시침을 떼곤 토란잎까지 젖히고 애호박을 뚝 따오던 손. 손마디가 굴곡진 데 없이 쭉 뻗어 있어 언뜻 남자 손같이 보이기도 한다. 얼굴을 감싸고 있던 여자는 그가 운전을 하며 흘깃흘깃 자신의 손을 관찰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 손 크죠?”

“………”

“중고등학교 때는 손이 이렇게 크고 못생긴 게 콤플렉스였어요. 사람들 앞에서 손을 꺼내본 적이 없죠.”

그 정도는 아닌데. 괜한 소리로 들을까봐 그는 막 튀어나오려는 말을 눌러 참는다. 아무 대꾸도 않자니 여자의 손이 크고 못생겼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해안의 군부대에서 상관의 계란프라이를 만들고 있을 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접했다. 짱짱하게 군화끈을 조여매고 잠깐 사회로 나와서야 그는 마치 타인처럼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성당 사람들에게 들었다. 어머니는 근 일년간 위암을 앓았다 했다. 군생활에 묶여 있는 그가 알아봐야 속만 탈 뿐이라며 그에게 병을 숨겨왔다는 것도 그는 그제서야 알았다. 그사이 수술을 해서 괜찮아졌었는데 재발을 해 급작스럽게 악화되었다는 것도. 어머니의 장례는 어머니가 나가던 성당 사람들의 힘으로 치러졌다.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기보다도 그들이 주관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로서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연도를 올리고 염을 하여 입관을 하고 장지까지도 함께 따라가주었다. 종교에 별 관심 없이 지내던 어머니가 뒤늦게 성당에 그리 열심히 나갔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부음을 들었을 때도, 장례식을 지켜보았을 때도,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담담하기만 하던 그의 마음이 귀대를 위해 군화끈을 다시 조여매려 할 때에야 격하게 흔들렸다.

K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가 군에 입대한 후로는 어떤 소식도 전해오지 않던 K였다. 어쩌면 K는 그가 군에 입대한 순간부터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K는 휴가를 나온 그가 찾아갔을 때 반가워했다. 새로 취직한 직장의 일이 너무 바빠 그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는 투였다. 뭔가 석연찮았지만, 그로서야 K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달리 어쩔 수 없는 처지였다. 내일 전화할게, 하고 헤어져서는 K는 또 전화하지 않았다. 전화를 기다리다가 그가 다시 K를 찾아가면 K는 또 그를 반겼다. 미안하다. 너무 바빠서 깜박했어. 다시 만나면 K는 여전히 살가웠다.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아 그가 다시 찾아가면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다. 약속장소에 나갈 수 없는 급한 일이 생겼는데 너에게 전화를 했을 땐 이미 나가고 없었어. 그런 식으로 첫휴가를 다 보냈다. 귀대하는 그에게 K는 편지하겠다고 다시 약속을 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온종일, 혹은 온밤을 해안초소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보초를 서는 게 그의 군생활이었다. 가끔 그에게 했던 K의 숱한 약속들이 파도소리에 섞여 들리곤 했다. 두번째 휴가를 나왔을 때 그는 K를 찾아가지 않았다. 만약 K가 약속을 하고 또다시 어기게 되면 자신이 K를 향해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그 자신마저도 불안했고, 군에 입대한 순간 K는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K도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번번이 어길 약속을 부질없이 계속하고 있을 힘이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K와의 관계를 보류해두기로 했다. K는 서류가 아닌데도 보류해두자, 생각하니 보류되었다. 달리 어쩌겠는가. K는 휘황한 도시에 머물고 있는 사회인이고 자신은 머리를 빡빡 밀고 해안초소에 서 있는 군인인걸.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귀대를 하려는 그 순간, 그는 뒤늦게 솟아오른 격한 슬픔 속에서 오로지 K를 만나고 싶었다. K와의 일을 보류시켰던 건 K로부터 들을 말이란 이별의 말뿐이라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엔? 그는 뒤의 일이 상상이 되질 않았다. 다만 자신의 현재 상황만 분명했다. 민머리로 총을 어깨에 메고 바다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자신의 현재 상황만은 누구도 바꿔놓을 수 없다는 것이.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상실감에서 비롯된 자학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군화끈을 꽉 조여맨 후 그는 귀대하는 기차에 오르는 대신 하왕십리 언덕에 있는 K의 옛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직도 K가 그곳에 살고 있는지 확인도 안한 채로. 버스가 어린이대공원을 지나 K의 집이 있는 정류장에 그를 내려놓았을 때만 해도 그는 K에게서 무슨 말을 듣든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면하게 되면 그는 K와 자신의 관계를 분명히 물어볼 것이고 K의 대답에 따라 이제 보류된 서류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K의 마음이 달라졌어도 K네 집 앞의 광경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시장통도 그대로였고, K를 집에 들여보내기 싫어 치킨 한쪽을 앞에 두고 자정이 되도록 함께 앉아 있던 호프집도 그대로였고, 싸움을 하고 화가 난 K를 기다리느라 서성이던 전신주 밑도 여전했으며, 속으론 입을 맞추고 싶은데 용기를 내지 못해 주머니에 넣은 K의 손만 꽉 잡고 올라가던 좁다란 계단식 골목도 그대로였다. 골목 쪽으로 나 있는 K의 방 창문도 여전했다. 밤늦은 시간 그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간 K는 그 창문을 열고 그때까지도 골목에 서 있는 그를 내려다보곤 했다. 창문에 매달려 그들은 첫 입맞춤을 했다. 그는 모둠발로 키를 키우고 K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민 채로.

그는 어둠속에서 골목길과 K의 방 창문을 번갈아 보며 K를 기다렸다. K는 자정이 다 되어도 귀가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K가 여기 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도 그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K를 만난 건, 기다리다 못한 그가 다시 그 좁은 골목길을 다 내려와 큰 도로변으로 통하는 골목 아래의 시장통 앞에 들어선 때였다. K의 곁엔 구두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끈을 꽉 조여맨 군화를 신은 그는 순간적으로 조여맨 끈이 툭 터질 지경으로 땅을 디딘 발에 힘이 갔다. 억압된 군화 안에서 발가락들이 무서운 힘으로 꿈지럭거렸다. 잔뜩 팽창되어 K 곁의 사회인 남자에게 질주라도 할 듯 맹렬하게 꿈지럭거리던 그의 발가락이 문득 움츠러들었다. K와 사회인 남자가 예전에 K와 그가 헤어지기 싫어 오백씨씨 맥주 한컵과 치킨 한쪽을 앞에 두고 자정을 넘기곤 하던 치킨집으로 들어갈 때, 그는 순간적으로 K 옆에 있는 남자가 예전의 자기 자신인 것 같은 착각이 일었던 것이다.

그는 K와 남자가 하는 양을 유리창을 통해 지켜봤다.

한컵씩의 맥주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K와 사회인 남자. 어느 순간 남자가 K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K는 탁자 위에 손깍지를 끼고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그러고 앉아 있었다. 호프집의 손님이라곤 그들뿐이었고, 여전히 그 얼굴인 호프집 주인은 하루 일을 마감하는 뒤치다꺼리를 마치고도 그들이 나가지 않자 계산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그러고 앉아 있던 K와 남자는 졸다가 잠이 들어버린 호프집 주인이 엎드려 있는 탁자 위에 돈을 내려놓고 얼마 전에 그가 내려온 좁은 골목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K가 밤이슬 속에서 예전에 그와 함께 등을 대고 있던 담장에 다른 남자와 등을 대고 서 있는 걸 지켜보았다. 간혹 웃음소리가 들리다가 곧 침묵이 이어지곤 했다. K의 움직임을 그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헤어지기 싫어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발장난을 치는 K. 느닷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휴, 하고 한숨을 짓는 K. 들어가야겠어, 뿌리치듯 대문 앞으로 발짝을 한걸음 떼어놓는 K. 그들은 어둠속에 숨어 있는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헤어지기를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이윽고 K가 나무 대문의 벨을 누르고, 안에서 사람의 기척이 나자 남자는 그때껏 잡고 있던 K의 손을 아쉽게 놓으며 대문 옆으로 비켜섰다. K가 안으로 들어간 뒤 곧 골목 쪽으로 난 창문이 열렸다. 남자는 예전의 그처럼 모둠발을 딛어 키를 돋우고 K는 상반신의 반을 창문 바깥으로 내밀어 긴 입맞춤을 나누었다. 사회인 남자는 그제서야 골목길을 내려갔다. 내려가다 뒤돌아서 그때껏 창가에 서 있는 K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K도 손을 흔들었다. 그 행위는 사회인 남자가 골목을 다 벗어날 때까지 반복되었다. 사회인 남자가 좁은 골목길을 다 내려가고 K의 창문이 다시 닫혔을 때 그는 군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 남자에게 하는 K의 행동이 예전의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았다. 인생에 얼마나 지켜봐야 할 일이 많은지는 몰라도 그로서는 예기치 못한 풍경이었다. K로부터 무슨 말을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던 그는, 죽은 어머니의 입관 앞에서도 먹먹하기만 할 뿐 눈물을 비치지 않았던 그는, 담배를 피우며 K의 닫힌 창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종내는 비질비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K로부터 무슨 말을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속깊은 마음의 진심은 따로였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보류된 K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겐 엄했던 어머니는 K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상했다. K도 어머니를 부담없이 따랐으니, 그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데도 K가 자신에게 최후의 말을 하겠느냐는 생각을 배수진 삼아 그곳까지 왔던 것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으로라도 K를 되찾아 K에게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K와 연결되어 있고 싶었다. 어떻게 해도 끊어지지 않던 K에 대한 그의 미련. 자신에게 했던 사랑의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다른 남자에게 조금도 다름없이 반복하는 K를 보는 순간, 그는 K와의 모든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것이었나. K만의 것으로 여겼던 것. K의 냄새, K였기에 할 수 있었던 맹세, K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뒷전으로 밀어놓곤 했던 일들. 그런 것들이 이렇게 재생테이프처럼 반복되는 그런 것이었나.

그 계단식 어두운 골목을 어떻게 걸어내려왔을까. 그때의 일이 떠오르면 모든 것이 선명한데도 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그 골목길을 내려와 귀대를 했는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의 가족이 버리고 온 옛 집터에 데리고 가본 사람은 K뿐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집터는 산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원래 뒷산과 맞붙어 있던 터이기는 했으나, 산에서 내려온 귀룽나무며 누리장나무들이 뿌리를 뻗고 있었다. 지독한 건 아카시아 뿌리였다. 부엌이며 우물터까지 쳐들어온 아카시아 뿌리는 여기에 사람이 살기나 했었는지 의문이 들 만큼 거칠게 폐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운전대 위의 그의 손을 덥석 잡는다.

국도 위에 배가 터져 내장이 드러난, 차에 치인 짐승의 시체가 짓이겨진 채 널려 있다. 자동차 앞바퀴가 벌써 짐승의 터진 내장을 다시 짓밟은 후라 그도 이런, 하는 순간이었다. 누가 뒤통수를 뾰족한 것으로 쿡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뇌리가 쭈볏해진다. 여자는 뒤늦게야 자신이 그의 손등을 덥석 잡았다는 걸 알아챘는지 손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새는 아니겠죠, 중얼거린다. 새는 아닐 것이다. 새라면 자리를 그렇게 넓게 차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나 고양이일 것이다. 어미도 새끼도 아닌 중간쯤 되는.

핏기가 사라진 여자의 낯빛은 그 현장으로부터 한참을 달려왔는데도 회복되지 않는다. 이런 여자였던가, 싶은 새삼스러움에 그는 운전중에 간혹 여자의 기색을 살핀다. 여자는 뒷좌석에 웅크리고 앉은 개를 들어올려 품에 앉고는 연방 개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다. 핏기 없는 야윈 뺨 때문에 좁은 콧마루가 높아 보인다. 속눈썹이 긴 눈이 아니라면 자존심이 너무 세 보여 말을 건네기 어려웠을 인상이다. 반듯한 이마 위쪽에 잔 머리털이 내려와 있고 어깨만큼 내려오는 머리를 빗어넘기듯 귀 뒤로 넘겼는데 뜻밖에 어린애처럼 귀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가끔 이른 아침에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면 그의 출입문 앞에 찌개나 수프 같은 따뜻한 음식이 일회용 스티로폼 그릇에 담긴 채 놓여 있었다. 해물탕일 때도 있었고, 두부찌개가 놓여 있기도 했으며 야채수프가 담겨 있기도 했다. 사람은 없고 음식이 담긴 그릇만 있었다. 혹, 이 여자의 짓일까? 그는 상상해보지만 이 여자가 왜? 싶은 의문이 들자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질 않는다.

여자는 산길의 붉은 벽돌집 앞에 있는 밭에서 주인 몰래 상추를 솎아내오던 날 그를 처음 봤다고 했지만 그는 그전에 여자를 알고 있었다. 우편함 때문이었다. 오피스텔 경비실 앞에 있는 공동우편함은 각 호수별로 칸이 만들어져 있는데 608호의 우편함은 작은 키의 그녀로서는 손이 닿기 힘들 만큼 높은 곳에 있었다. 게다가 다른 우편함엔 광고지가 한두 장씩 끼여 있기 마련인데 여자의 우편함엔 늘 우편물이 넘쳐흘렀다. 여자의 우편함 바로 밑칸이 그의 우편함이었기 때문에 그의 우편함에서 세금고지서 같은 걸 꺼낼 때면 여자의 우편함에 시선이 가곤 했다. 여자는 정기구독하는 책이 여러 권이었다. 시사저널, 한겨레 21, 주간동아 같은 시사지가 목요일쯤이면 한꺼번에 꽂혀 있고, 월말이 되면 스크린이라는 영화잡지, 싸이언스라는 과학지, 한국어판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이 배달되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서점에 나가지 않고 책을 주문해서 구입하는지 작은 우편함에 겨우 끼여 있는 배달된 책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여자는 우편물을 꺼내려고 모둠발을 디디며 손을 뻗쳤고, 두어 번 그걸 본 그가 우편물들을 꺼내 여자의 손에 들려준 적도 있었다. 여자는 그때마다 그의 얼굴은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입으로만 감사합니다, 하고선 엘리베이터를 타곤 했다. 한번은 관리비청구서를 꺼내려고 그의 우편함을 열었을 뿐인데 간당간당 매달려 있던 여자의 우편함 속의 우편물들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바닥에 흩어진 여자의 우편물들을 주워 다시 우편함에 집어넣어주고 막 돌아서려다가, 그는 미처 줍지 못한 엽서를 발견했다. 엽서를 여자의 우편함에 집어넣으려던 그는 피식, 웃어버렸다. 어느 백화점에서 벌인 고객 사은행사에 당첨되었으니 방문해서 사은품을 타가라는 내용의 엽서였다. 이후로 그는 여자의 우편물의 주를 이루는 책봉투 사이에 이색스럽게 끼여 있는 엽서나 봉투가 있으면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에 슬쩍 꺼내 읽어보곤 했다. 심야 라디오방송의 모니터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엽서도 있었고, 어느 동호회의 육백번째 회원으로 가입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씨지의 엽서도 있었다.

바로 앞에서 차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가는 여자를 본 것도 여러 번이었다. 여자는 항상 차를 삐딱하게 주차시켰다. 바퀴가 항상 바로 서 있질 않고 좌우로 향해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분명 시동을 끄기 전에 바퀴를 바로하는 것 같은데 곧 다시 어긋나게 해버렸다. 간혹 그는 혼자서 주차장에 내려갈 때면 무심코 여자의 차가 어떻게 세워져 있나 살펴보곤 했다. 여자의 차는 언제나 주차선 밖으로 튀어나와 있거나 바퀴가 반대편으로 한껏 돌아가 있는 상태여서 여기저기 찾을 것도 없이 눈에 띄었다. 가을이나 봄이면 관리실에서 오피스텔 앞에 관상용으로 붉은 철쭉이나 노란 국화분을 서너 개 나란히 줄세워놓곤 했다. 그는 여자가 그중 하나를 바깥으로 쑥 빼놓거나 안쪽으로 쑥 들여놓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철쭉이나 국화분은 줄세워놓은 게 아니라 아무렇게나 내놓은 형국이 되곤 했다. 누가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관리인이 툴툴거리며 다시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두면 여자는 그 앞을 지나며 다시 그것들을 안으로 쑥 들여놓고 길을 건너곤 했다.

그런 여자의 어디에 저런 연약함이 고여 있었던 것인지.

제천으로 들어서서야 여자의 표정은 편안해진다.

“조금만 졸아도 돼요?”

“졸리는 모양이군요.”

겸연쩍어진 여자가 웃는다.

“그럼, 조금 자요.”

기다렸다는 듯 여자는 머리를 의자 뒤에 편안히 기댄다.

“늘 부러웠어요.”

“뭐가요?”

“이렇게 옆자리에 앉아 조는 사람이요.”

“한번도 못 그래봤어요?”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운전을 안 배운걸요. 이 자리에 앉아 졸죠.”

긴장이 풀려서일까. 눈을 감자마자 새근거리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잠든 여자.

그는 속도를 낮추고 담배를 한개비 입에 문 후 자동차에 부착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군입대를 앞두고 K와 함께 서해의 을왕리에 여행갔었다. 친구들을 증인으로 해서 손가락에 반지를 하나씩 끼워주는 조촐한 약혼식을 가진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가서 연안부두에서 을왕리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밀물이 들어 그들은 마중나온 통통선으로 갈아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바닷가 마을 조무래기들이 나무막대기에 찌를 달아 밀물 속에 서서 망둥이를 잡고 있었다. 해질녘에 석양을 보러 바다에 나가서 그들은 떠밀려온 죽은 갈매기를 모래 속에 묻어주고 나무를 엮어 십자가를 만들어주었다. 그의 품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자던 K의 얼굴. 밤새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소리가 여관 창을 두들겨대던 그 밤. 따뜻한 K의 몸 때문에 눈물이 날 지경이던 밤.

그는 두어 모금 빨던 담배를 눌러 끈다.

자동차가 황량한 국도를 달리고 달려 제천을 지나 매포에 이르렀을 때야 그는 자신이 박피디와 다시 통화를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라도 전화를 해주어야 헛걸음을 하지 않을 텐데, 하면서도 그는 공중전화가 있는 휴게소를 번번이 그냥 지나치곤 한다.

조금만 졸겠다던 여자가 깊은 잠에 빠진 듯 기척이 없어서다. 그는 여자의 달콤한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 커브를 돌 때도 조심했고, 비탈을 오를 때도 내려갈 때도 충격이 덜하도록 액쎌을 단계적으로 밟는다. 거친 엔진소리에 여자가 잠이 깨지 않도록.

 

 

3

 

“이젠 어떡하죠?”

“눈이라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방은 어둡고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앞을 비추고 있을 뿐 뒤도 옆도 캄캄하다. 헤드라이트 불빛조차 멀리까진 비추지 못한다. 점점 좁아지며 끝이 나고 그 뒤론 칠흑같은 어둠이다. 이 길이 아니다 싶어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여 겨우 차를 돌리려는 순간 차바퀴 한쪽이 뒤쪽의 깊은 진창에 빠져버렸다. 산으로 이어지는 그곳이 깊은 진창일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떻게 잘만 하면 바퀴를 다시 진창에서 올라오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되레 나머지 한쪽마저 진창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산을 뒤로 하고 자동차는 앞길도 뒷길도 아닌 먼 허공에 머리를 둔 채 정지해 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가 잠을 깬 건 죽령휴게소에 다 와서였다. 그는 그제서야 자동차를 세웠다.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 아래 골짜기들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은 금방 눈이라도 퍼부을 듯 음울하게 구름이 끼어 있었다. 휴게소 주차장엔 차들만 서 있을 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불고 추우니까 사람들은 모두들 휴게실 안에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않고 그녀가 개를 좌석 위에 내려놓고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차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그녀의 머리카락이 겨울바람에 휘날렸다. 그 통에 늘 잔 머리로 가려져 있던 그녀의 이마가 그의 시야에서 환하게 드러났다. 반듯하고 매끈한 이마였다. 그는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괜찮은데, 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목도리를 받아 머리카락을 모아 감싸고 목에 두어 번 감았다. 그녀가 옷깃을 여미며 뭐 따뜻한 것 좀 먹어요, 하며 종종걸음으로 앞서서 휴게실로 들어갔다. 날이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다. 아니면 눈이 오려는 것인지. 그는 시계를 들여다봤다. 다섯시였다. 다섯시. 이제 박피디에게 전화를 걸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박피디가 그의 오피스텔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을 시각이었다. 벌써 안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는 그녀를 찾아 휴게실로 향하는 동안 그의 마음은 묵지근했다. 에라, 그는 박피디에게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손바닥을 펴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이후로 그들은 이정표를 보며 풍기까지는 제대로 길을 들었다. 단양에서 풍기까지 오는 겨울 국도는 아름다웠다. 울울한 산자락이 단조롭게 이어지던 국도가 단양을 지나자 시퍼런 물길을 만나 눈을 틔워주었다. 소백산 골짜기와 함께 어우러진 단양 팔경의 한자락이 그들의 시야에 쑤욱 들어올 때마다 그와 그녀는 간간이 주고받던 대화를 멈추고는 차창 안으로 쳐들어올 듯한 시퍼런 물길을 내다보곤 했다.

국도는 풍기까지였고 풍기부터는 지방도로였다. 풍기에 이르자 부석사의 표지가 자주 눈에 띄었으므로 그는 이제 부석사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지방도로로 접어들자 길은 자주 갈라졌고 어느덧 부석사 표지는 간 곳이 없었다. 박피디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틈에 길을 잘못 든 것인가. 기다리다 갔을 테지, 마음을 접었으면서도 약속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자꾸 박피디 생각이 떠올라 운전에 집중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특별히 길을 잘못 들어설 구간도 없었다고 여겨져 내처 차를 몰았는데 그들이 다다른 곳은 엉뚱하게 이름도 모르겠는 마을로 들어가는 막다른 곳이었다. 차를 되돌려서 다시 다다른 곳은 어느 마을 입구의 길 아래쪽 논둑 옆에 세워진 전각 앞이었다. 버스는 들어오지 못할 좁은 길이었다. 기왕, 하는 마음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전각 안의 마애삼존불을 들여다볼 적만 해도 그들은 여유가 있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부석사가 곧 저긴데 싶었던 것이다.

삼존불은 겨우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마모가 심했다. 오른쪽 불상은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가슴에 합장을 하고, 왼쪽 불상은 왼손은 배 근처에 두고 오른손은 아예 밑으로 내리고 있었다.

“귀엽네요.”

귀엽다는 그녀의 표현에 그는 불상보고 그렇게 말하면 안되죠, 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도 내면으론, 비바람에 닳아서 얼굴의 형상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퉁퉁해 보이는 볼이 친근해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너무 마모되어 전각을 씌워놓았는데도 삼존불의 머리 뒤 불꽃 모양의 광배만은 상당히 선명했다.

그런데 그는 이젠 다 왔다고 생각했던 부석사를 찾지 못했다. 뜻밖에 철도 건널목이 나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길로 들어올 적에는 보지 못했던 건널목인데다 건널목 앞에서 길이 세 갈래로 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표가 있을 법도 하련만, 싶은 것은 그들의 소망일 뿐 그들은 세 갈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세 길 모두 좁았으므로 그중 가장 넓은 길을 잡아 타기로 했다. 지방도로는 울창한 송림으로 인해 으슥해지더니 산자락과 거의 붙어 있는 곳에서 비포장이 되었다. 비포장이란 걸 미처 생각할 틈도 없이 순간적으로 그 길로 들어선 게 잘못이었다. 들어서자 바로 길이 좁아졌는데도, 차를 돌릴 수 없어 그대로 직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사이에 밤이 와서 바깥은 어둡기까지 했다. 길이 넓어진 게 아니라 산자락 쪽으로 들어간 오목한 빈 공간이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서 조심해 차를 돌리는데 차의 바퀴가 진창에 쑥 빠져버린 것이었다.

차에서 내려 서성거리던 그녀는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들어가서는 좁은 산길 끝을 굽어본다.

“이리 와봐요.”

다가간 그에게 그녀가 손가락으로 깎아지른 산길 아래를 가리킨다.

“완전 낭떠러지네요.”

어둠속에서 깎아지른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보던 그는 휴, 하고 깊은 숨을 내뱉는다. 이 아래가 낭떠러지인 줄 알았으면 여기에서 차를 돌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잔뜩 긴장해 있던 여자가 헤드라이트 빛 속에서 돌연 웃음을 터뜨린다.

“이거 다행 아니에요? 하마터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겠네.”

P는 정말 왔을까? 왔다면 언제나 상대방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사람이니 그전대로라면 아직도 오피스텔 문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서 있을 것이다. 이젠 충분히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음에도 P가 보낸 꽃바구니와 생일카드를 받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에게 부석사에 가자고 인터폰을 넣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P라는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낭떠러지에 스스로 떨어지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뀔까봐 그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며칠을 지내는 동안 아니 오늘 아침까지도 그녀는 그에게 다시 인터폰을 넣어 약속을 취소하고픈 마음에 간간이 시달렸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얼굴에 로션을 바를 때까지도. 인터폰을 넣으려고 숨을 고르며 인터폰 앞에 서 있는데 그녀를 부르기라도 하듯 인터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했지만 상대는 침묵이었다. 그녀가 재차 여보세요? 했을 때 상대는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누굴까? 혹시 P가? 그녀는 침묵 속의 상대가 P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P가 경비실을 통해 인터폰을 넣어온 거라고. P가 왜 인터폰을 걸어왔을까? P가 맞다면 두 가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나는 그녀가 있는지 확인차. 다른 하나는 오늘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려고. 오늘은 일월 일일이다. P는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다. 결혼을 한 사람이 일월 일일에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P가 방문하는 것만이 문제였던 그녀의 마음이 일순 소란해졌다. 만약 P가 마음이 변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오지 않는다면. 오지 않는 P를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한 다음엔? 이후의 일은 그녀 자신이 잘 알았다. 다시 한번 소외되었다는 감정으로 인해 그녀의 마음은 다시 휘둘릴 것이다. P가 어떤 메씨지도 없이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해버렸던 그때처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녀는 그에게 인터폰을 넣으려 했던 마음을 거두었다. 아예 인터폰의 수화기를 내려놓아버리고 도시락을 챙기고 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았다. 다시 P라는 낭떠러지 앞에 설 수는 없는 일이라고 자기 자신을 추스리며. 그런데? 그녀는 웃음이 그쳐지지 않는다. P라는 낭떠러지를 피해온 이 낯선 지방의 산길에서 마주친 것은 또다른 낭떠러지 아닌가.

어떻게 한담.

그는 자동차 써비스쎈터를 생각해보지만 첩첩산중의 이곳에서 어떻게 연락을 한단 말인가. 그녀도 그도 그 흔한 핸드폰 하나 소지하고 있지 않다니. 근처에 마을이 어디 있는지 알려면 우선 이 낭떠러지 위가 어디인지나 알아야 할 것 같은데도 대체 감이 잡히질 않는다. 철로변이 나왔던 삼거리에서 삼사십분을 달려왔고, 오는 사이 마을을 지나쳐온 기억이 없다. 어둠속에 드문드문 켜져 있던 불빛들은 집이었을까. 인가만 찾아도 구조를 청하는 전화는 걸 수 있을 텐데.

“누군가 지나가겠죠. 우선 추우니까 차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려보죠.”

이 밤중에 더구나 일월 일일의 이 밤중에 누가 이 길을 지나간단 말인가. 먼저 차 안으로 들어간 그녀가 창문을 열고 그를 부른다.

“거기 서 있음 뭐해요?”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격렬하게 웃고 난 그녀의 얼굴에 웃음기가 말끔히 가셨다. 눈이나 오지 말아야 할 텐데요. 차 바깥의 그를 향해 눈이 올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외려 안정되어 있다. 그는 터덜터덜 차 안으로 들어간다.

P가 결혼을 한 후에 그녀는 P와 함께 어울려다녔던 동료로부터 P의 말을 전해들었다. 자신이 약혼을 하고 칠개월이나 지난 후에 결혼을 했는데 그동안 단 한번도 그녀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며, 그녀보고 독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P의 말을.

P에 대한 맹렬한 증오는 그때 싹이 텄다.

그전까지 그녀는 P 생각을 하면 분간이 서질 않았다. 그녀는 P의 약혼기간 동안조차도 P의 변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P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던 건 P의 변심을 기정사실화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의 변심을 확인한 뒤 자신이 받을 상처에 대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심리상태로 그녀는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P에게는 그의 약혼 소식을 듣고 단 한번도 연락을 취하지 않은 독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다니.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P가 그들의 관계 뒤처리까지도 그녀에게 전가하려 했다는 생각. 격렬한 감정이 목까지 차올라 그녀는 당장 P를 만나 따져묻고 싶었다. 그랬냐고 내가 너를 찾아가 왜 약혼상대가 자신이 아니고 그녀냐고 따져 물었다면, 눈물을 글썽이며 너에게 매달리기라도 했다면, 우리들의 관계가 다시 개선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냐고. 그때껏 자신은 인생을 살지 않고 그저 느껴만 왔다는 모멸감. P와 약혼한 여자가 그녀처럼 대학을 졸업한 후 오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겨우 오피스텔 하나를 세로 얻은 가난뱅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 여자의 아버지가 P가 전공한 영문학계의 원로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모멸감이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것들 때문에 변심할 P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무엇을 근거로 P와 자신의 사이에는 그런 속물적인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다른 사람이 모두 그래도 나와 너는 그렇지 않아,라고 믿고 싶었던 저변에는 돌연 다른 얼굴이 되는 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허영을 벗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녀가 자신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다닌 P만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수를 하다가도 이를 닦다가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설령 그녀가 약혼기간중의 P를 찾아갔다고 하더라도 P는 약혼녀와 결혼을 했을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감정의 사치를 누렸던 P. 길을 걷다가도 수시로 그러나 선뜩하게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것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처럼 그랬을 것이다, 확인하며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이후 그녀는 질서정연하게 잘 맞추어져 있는 것이면 모조리 어깃장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신발장의 신발을 아무렇게나 섞어놓았고, 식당에 가면 나란히 놓여 있는 젓가락을 흐트려뜨려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길가에 나란히 서 있는 가로수가 참을 수 없어 도끼로 나무둥치를 찍어내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보면 바둑판을 뒤엎어버리고 싶었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정장 차림의 남자들을 보면 다가가서 풀어버리고 싶어 손가락이 굼질거렸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 망설이며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확 저질러버리고 싶은 충동에 좌충우돌하던 나날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그는 뒷자리에 있는 지도책을 꺼내 펼쳐든다. 지도를 보자니, 글자가 너무 작아 실내등 가까이에 지도를 갖다대야 읽을 수 있다. 지도 속의 부석사는 풍기에서 순흥을 지나 소수서원을 지나 청다리를 지나 단산을 지나 소천을 지나 능금빌라를 지나 표기되어 있다. 풍기에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기에 길가의 마애삼존불을 만나게 되었는지. 여기는 아무래도 지방도로도 아닌 군도로가 아닐까 싶어 그는 소백산 국립공원 주변을 훑어내리다가 지도를 덮어버린다. 도대체 낯선 길이라 표기를 보아도 여기가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차라리 수리부엉이에 대한 헛이야기를 흘린 사람이 박피디라는 걸 모르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지금도 그는 생각한다. 그날 당장엔 그저 머리가 복잡할 뿐이더니 다음날부터 그는 무기력해졌다. K의 재생된 필름 같은 행동을 지켜본 후에 그에게로 엄습해왔던 증상과 같았다. 박피디라니. 그런 줄도 모르고 그는 박피디가 같은 동료이면서도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적이 있는 박피디가 그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그들은 대체로 마음이 맞는 파트너였다. 컨!이 정해지고 촬영에 들어가면 이주일 삼주일씩 고립된 채 인간생활과는 떨어진 오지에서 지내야 하는 일의 속성상 이 판에선 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인간관계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가 제작한 서산 천수만의 철새의 동태를 살핀 필름을 자체 시사회에서 관람한 박피디는 그에게 대단한 호의를 표시했다. 그 또한 박피디의 작업을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참이라 그들은 곧 마음이 통했고 점차 유대관계가 깊어지는 중이었다. 박피디에게 갖는 그의 감정이 그러했으므로 박피디 또한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갯벌습지의 생태계를 관찰해볼 계획을 함께 세우기도 했고, 케냐의 보고리아 호수와 나쿠로 호숫가에서 작은 홍학들이 해조류의 독소로 인해 떼죽음을 당한 사진을 보고 같이 흥분했으며, 밀렵꾼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든 산양 한마리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피투성이로 기진해 있는 모습을 보게 된 이후론 천연기념물이 부상을 당했을 경우 특정 치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법이 개정되도록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박피디가 갑자기 왜? 회사의 경영난으로 인력을 줄인다는 설이 나도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겠냐는 다른 사람의 귀띔에도 그는 납득이 되질 않았다. 다름아닌 박피디였기에. 다음날로 그는 회사에 얼마간 쉬겠다고 통고를 하고 빈둥거렸다. 그는 점점 매사에 시들해졌다. 쉬는 동안 이따금 나무뿌리가 점령해버린 옛 집터를 찾아가 무섭게 뻗어내린 나무뿌리를 쳐내고 오는 일이 고작이었다. 요즘엔 그마저 하지 않았다. 아침이면 산책 삼아 슬슬 올라가보던 집앞 산 근처에조차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자동차에 부착된 씨디플레이어를 작동시킨다. 비장한 첼로 소리가 흘러나온다. 콜 니드라이예요. 혼자 말하듯 중얼거리고는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는다.

“연주자는 자끌린느 뒤 프레예요. 가장 절정기 때 손을 다쳐 더이상 첼로를 다룰 수 없었던 비운의 연주자죠. 그때 나이도 젊었는데…… 몇살이었더라.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부부였죠. 병상에 누워 있는 자끌린느를 찾아와 이혼을 청했다고 하더군요. 자끌린느는 병원에서 임종의 순간까지 이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해요.”

그는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는지 마는지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피아노는 누가 연주하고 지휘자는 누구이며 어느 오케스트라인지 따져가며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목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듣는 음악이 허다했다.

“우리말로는 신의 날이라는 뜻이에요. 자끌린느가 병상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가끔 누가 연주한 걸로 들었을까 생각하죠. 누구의 것으로 들었을까. 혹 자신이 연주한 걸로 들었을까…… 아니면 누구의 것을……”

비포장도로에 들어서 차가 요동을 쳐도 뒷좌석의 배낭 속에 얌전하게 있던 개가 휘몰아치는 바람소리를 듣자 불안한지 낑낑거린다. 겨울산을 휘도는 소용돌이바람은 자동차를 들어올릴 듯이 기세가 높아졌다. 이 바람 속을 걸어서 인가를 찾아내는 것도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바람아, 하고 개를 부른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내려놓고 개가 들어 있는 뒷자리의 배낭을 들어올리려던 그녀는 행동을 멈추고 의자에 기대어 있는 그를 응시한다. 그의 부름 소리에 배낭 속에서 빠져나온 개는, 앞자리로 넘어와 그의 무릎 곁으로 다가간다. 꼬리까지 흔들며. 그는 무릎 위에 개를 올려놓곤 괜찮아 인마, 중얼거리며 개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기까지 한다. 내 동료가 버리려던 놈이었어요. 가엾어서 내가 데려왔는데 나도 감당이 안되더군요. 나는 집을 자주 비우고 이놈 성질은 까탈스럽고. 밤중에 낑낑대서 도저히 더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양로원에 두고 왔는데…… 거긴 마당도 있고 할머니들도 있고 잘살 것 같아서요. 그런데 그쪽이 이놈을 데리고 내려오더군요. 개를 더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하던 박피디의 얼굴이 떠오른다. 박피디는 개를 안락사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아 당분간 자신이 맡아보겠다고 오피스텔로 데려온 거였다. 박피디를 만나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개는 자꾸 박피디를 연상시켰다. 눈자위가 꺼끌꺼끌한지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고 있는 그를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랬나? 그녀는 전혀 짐작도 못한 일이다.

“개가 많이 아팠어요.”

개가 병이 나면 그녀는 아무 일도 못했다. 아프면 동물병원에 가야 하고 거기 가면 수많은 다른 개들을 대면해야 하는데 그녀의 개는 일단 다른 개들 곁에 가질 못했다. 어떤 상처가 그렇게 깊게 각인되어 있는지. 다른 개를 보기만 해도 경련을 일으키며 눈동자를 뒤집었다. 공포로 인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개에게 주사를 맞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의 눈물샘 수술을 해주려고 그녀는 개를 데리고 춘천까지 간 적이 있다. 눈물샘을 조절하는 수술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의사가 있는데 그 의사가 춘천에 살고 있어서였다. 수술을 할라치면 일단 마취주사를 놓아야 했다. 수술도 들어가기 전에, 공포에 떨고 있는 개를 안정시켜 마취주사를 놓는 데만도 전쟁을 치렀다. 궁지에 몰린 개가 이빨을 곤두세우고 의사를 물려고 드는 와중에도 입에 망을 씌우고 간호원이 개의 다리를 붙잡는 등 온갖 소란을 떨어 겨우 마취주사를 놓았는데 마취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 격한 공포가 마취주사를 이긴 모양이었다. 개는 마취가 덜된 혼미한 상태로 병원을 뛰쳐나가 자동차들이 오가는 도로로 뛰어들었다. 도로에는 순간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개는 자동차 사이사이를 뛰어다녔고 그 개를 잡으려고 그녀가 또 자동차 사이를 뛰어다녔으니까. 신호에 걸려 차들이 정지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녀는 생각난 듯 뒷자리의 대바구니를 끌어온다.

사과를 꺼내 손으로 마주잡고 반으로 짜개보려고 한다. 사과는 여간해서 쪼개지지 않는다. 그녀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그녀의 손바닥에 있는 붉은 사과를 가져간다. 그가 양손으로 사과를 쥐고 힘을 한번 주자 사과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금세 반으로 짜개진다. 힘이 장사네요, 농을 하며 그녀가 싱긋 웃는다. 먹어둬요. 그녀는 그의 손에서 반쪽을 건네받고는 와삭, 소리가 날 정도로 한입 베어문다. 나머지 반을 껍질째 와삭와삭 깨물어먹는 그를 그녀가 쳐다본다. 자동차 안 좁은 공간에 그와 그녀가 사과 베어먹는 와삭와삭 소리가 가득 찬다. 그녀는 사과를 씹다가 말고 바구니에 담긴 감도 깎아 그에게 준다. 과일도 맛있게 먹는 남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백산은 낭떠러지 앞에 멈춰서 있는 흰 자동차 안의 피로한 그와 그녀를 알처럼 품고서 거친 바람소리를 내고 있다. 골짜기가 자동차를 품었듯 그녀는 개를 품고 있다. 그녀의 저것 좀 보세요, 속삭이는 소리에 그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뜬다.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다. 차고 있는 중인지 이울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는 반달이다. P는 돌아갔을 것이다. 얼마 만에 보는 달인지 모르겠네요. 구름을 뚫고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달을 보자 자신이 지금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는 걸 잊은 듯 그녀의 목소리가 생기롭다. 반달인데도 그 빛에 의해 칠흑같던 소백산 골짜기가 그들의 눈앞에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헤드라이트를 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사라지자 교교한 달빛 아래의 먼 산자락이 윤곽을 드러낸다. 야릇한 일이다. 낯선 지방의 낯선 골짜기에 유폐되어 과일을 먹고 있자니 피크닉을 온 기분이 든다. 도시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P와 헤어진 후 그녀는 5년 동안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손에 닿는 대로 일에 뛰어들었다. 같은 시기에 완전히 성향이 다른 프로그램의 리포터를 하기도 했고, 새벽까지 번역에 매달리다가 오후엔 인터뷰원고를 쓰기 위해 취재를 나가기도 했다. 졸음이 밀려오면 얼음통을 곁에 두고 번갈아가며 손을 담그면서 일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퍼부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여자. 어디서나 무엇인가를 흐트러뜨리는 여자. 책을 읽든 개를 거두어 기르든 어느 한순간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고 들들 볶고 있는 여자. 그녀는 지금 그 여자가 가엾기조차하다. 눈이 내리네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결에 머무는데도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박피디는 돌아갔을까. 희미한 범종소리가 눈을 뜨지 못하는 그의 귀에 머문다. 그들이 찾지 못한 부석사가 바로 근처에 있는 겐가. 그녀도 범종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뻗어 첼로소리를 줄인다. 종소리가 눈발 속의 골짜기를 거쳐 그들을 에워싼다. 여기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마음뿐이었다. 어깨가 내려앉는 듯한 피로에 점령되어 그는 점점 잠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녀는 보온통을 기울여 종이컵에 커피를 따른다. 부석사의 포개져 있는 두 개의 돌은 닿지 않고 떠 있는 것일까. 커피를 들지 않은 한손으로 자꾸만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녀는 문득 잠든 그와 자신이 부석처럼 느껴진다. 지도에도 없는 산길 낭떠러지 앞의 흰 자동차 앞유리창에 희끗희끗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뒷자리에 개켜져 있는 담요를 끌어와 그의 무릎을 덮어준다. 그녀의 기척에 가느스름하게 눈을 뜬 그는 이 순간만은 반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혹시, 저 여자와 함께 나무뿌리가 점령해버린 옛집에 가볼 수 있을는지. 이제 차창은 눈에 덮여 바깥이 내다보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