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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논단

 

프로이트와 기차

『꿈의 해석』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며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1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이 출간된 지 100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책에 표시된 출간연도라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꿈의 해석』이 실제로 서점에 깔린 날짜는 1899년 11월 4일이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찾기는 어렵다. 책이 발간된 다음날 친구 빌헬름 플리스(Wilhelm Fliess)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마침내 책이 전날 발간되었다는 이야기를 짤막하게 할 뿐이다. 책의 출간연도가 그렇게 된 이유는 고사하고 그토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한 책의 발간에 대해 별다른 기쁨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그는 오히려 그 당시 관심을 가지게 된 새로운 연구주제와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존즈 또한 1900년이라는 출판연도는 그저 『꿈의 해석』을 출간한 출판사 프란츠 도이티케(Franz Deuticke) 쪽의 의사에 따라 붙여진 것이었는데, 책이 그보다 빨리 만들어졌을 따름이라고 말할 뿐이다.1

하지만 1900년이라는 출판연도가 프로이트의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출판사의 의도였음은 분명하며, 그런 결정에는 『꿈의 해석』이 새로운 세기를 여는 책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어려 있었을 것이다. 이 기대는 그리 어긋나지 않았다. 분명 『꿈의 해석』을 기점으로 하여 프로이트라는 이름과 정신분석학은 20세기를 통해 대중의 상식으로까지 파고들었으며, 스스로를 하나의 문화로까지 번성하게 만들었다. 비록 임상적인 영역에서는 1950년대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의 발견과 그것에 의해 촉발된 정신의약품의 발전으로 왕좌를 내주었지만,2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회이론의 영역에서 정신분석학의 위치는 아직 확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꿈의 해석』의 영향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분명 20세기에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의 해석』의 이해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19세기의 텍스트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2000년을 맞이하면서 지루하게 논의되었듯이, 서력은 0년이 아니라 1년으로부터 시작했고(서력을 시작한 로마인들에게는 0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따라서 2000년이 20세기에 속한다3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으며, 그 연장선에서 『꿈의 해석』의 출판연도인 1900년 또한 19세기의 마지막 해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단절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시대와 다른 시대 간에 근본적인 단절이란 없으며,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도 양자를 이어주는 바통들은 많이 있다. 그것은 TV나 광고산업, 영화나 자동차, 또는 전구 같은 것만을 상기해도 금세 알 수 있으며,4 정신분석학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 그런 바통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100주년이라는 발상 자체가 “19세기 후반의 발명품”5이니, 『꿈의 해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글 자체도 19세기 문화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꿈의 해석』은 19세기 유럽인들의 사생활과 문화, 정치와 테크놀로지 등에 대해 어느정도라도 익숙하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저작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꿈의 해석』을 통해서 우리가 19세기 유럽의 삶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런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꿈의 해석』과 그것의 토대를 이루는 프로이트의 경험을 19세기에 발명되어 힘차게 확산되었던 기차와 관련하여 살펴볼 것이다. 프로이트와 『꿈의 해석』을 둘러싼 방대한 해석사에 비추어볼 때, 이것은 매우 특수한 선택이다. 하지만 기차라는 기술적 대상은 이미 낯설어진 19세기의 양상을 포착할 때 『꿈의 해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소재이며, 그에 입각해 기술문명과 그것에 대한 체험 그리고 이론의 교차점을 검토하는 것이 고도의 기술문명으로 더욱더 진입해가고 있는 현재의 우리 상황에 대한 성찰과 약간의 지침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꿈의 해석』에 등장하는 프로이트의 꿈 중에는 ‘혁명 꿈’ 또는 ‘툰 백작 꿈’이라 알려진 유명한 꿈이 있다. 이 꿈은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가 ‘표본 꿈’이라고 부르며 한 장을 할애하여 다루었던 ‘이르마의 주사 꿈’ 다음으로 여러번 논의되는 꿈이다. 이 꿈은 프로이트의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정치적 부성(父性)에 대한 적대감과 교차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꿈이다.6 그러나 현재의 맥락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프로이트가 ‘툰 백작 꿈’의 맥락을 언급하면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나는 아우쎄 호수로 여름휴가 여행을 떠나기 위해 마차를 타고 서부역으로 갔다. 그러나 그보다 일찍 출발하는 이슐행 기차가 여전히 승강장에 서 있었다. 거기에는 이슐에 있는 황제를 다시 알현하러 가는 툰 백작이 서 있었다. 그는…그가 이슐행 기차를 타고 출발한 후,…‘배경’을 이용해 예약된 객실을 얻으려는 사람이…있으면, 법석을 피워서라도 같은 권리를 요구할 작정이었다.…그때 내 의사면허시험에 정부감독관으로 입회하였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한 신사가 다가왔다.…그가 자신의 공직을 내세워 1등칸 반액표를 요구했다. 역무원이 동료 직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1등칸 반액표를 가진 이 분께 어느 객실을 드리면 좋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특권의 전형적인 예였다. 결국 나는 1등칸 요금을 다 지불하고, 객실을 지정받았다. 그러나 통로가 없는 칸이라 밤에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역무원에게 불만을 말해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나는 승객들에게 찾아오는 불시의 욕구에 대비해 기차 바닥에 최소한 구멍이라도 하나 뚫어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야유함으로써 역무원에게 분풀이를 했다. 그런 다음 실제로 새벽 3시 15분 전 ‘꿈’을 꾸다가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다. (ID: 208〜209면, 강조는 인용자)

 

이 인용문에서 우리는 19세기말 기차여행에 관련된 몇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프로이트는 일찍 역에 도착했다는 점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기차시간에 늦는 것에 대해 강한 불안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하나의 기차 안에 1등칸이나 2등칸 또는 3등칸이 함께 붙어 있으며, 기차표 가격이나 좌석 배분에 정치적 지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무원이나 귀족들은 반값에 1등칸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꿈이 사회체제에 대해 매우 전복적인 내용을 담게 된 것은 이런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감이 기차를 타기 전 프로이트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그리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통로가 없는 칸이어서 밤에는 화장실에 갈 수 없는 기차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우리들이 타는 기차와는 사뭇 달랐던 19세기 유럽의 기차로 돌아가보아야 한다.

19세기 유럽의 기차는 마차를 대치하기 위한 것으로 출발했다. 따라서 초기 증기기차는 기능에 따라 다양했던 여러가지 마차, 즉 짐차, 우편마차, 승객용 마차를 하나의 기관차에 필요한 만큼 배치하여 연결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객차의 경우 3등석이나 4등석은 1844년 글래드스턴법령이 있기까지는 덮개조차 없는 형태였고, 덮개가 생긴 후에도 승객 차량이라기보다는 폐쇄된 짐차 같은 인상이 더 강했다. 하지만 1등석이나 2등석은 열차 구조물 위에 이전의 마차 승객칸을 그대로 올려놓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런 객실은 1등석 여행객에게는 이전의 마차여행과 다름없는 탑승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7

이런 형태의 객실에서 벗어나 복도식 통로를 중심으로 좌석이 배치되는 형태의 객실을 구상하고 실현한 것은 마차여행 경험의 속박이 거의 없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손님들에게 개별적인 객실이 아니라 좌석을 제공할 뿐인 미국식 객차는 발명된 후에도 쉽사리 유럽에 전파되지 못했다. 신분적인 특권이 존속하던 유럽의 사회상황과 기차여행중에 남들로부터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 유럽인들의 관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럽식 객차의 약점은 분명했다. 객실이 다른 객실과 단절되어 있어서 기차운행 도중에는 객실에 들어갈 수 없었고, 따라서 검표원의 표검사에도 어려움이 있었으며, 난방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던데다 장거리 여행에 꼭 필요한 식당칸의 이용도 어려웠다. 그리고 화장실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객실의 승객은 운행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바로 이런 객실의 상황이 프로이트가 역무원에게 했던, 객실 바닥에 구멍이라도 하나 뚫어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공격적인 농담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객실 문제는 결국 뒤에 미국식 씨스템이 일부 도입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것은 기차 한쪽 편에 통로를 만들고 다른 쪽으로 여닫이문의 객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형태의 객차는 객실과 통로가 분리됨으로써 타인과의 분리라는 유럽적 취향과 통로의 필요성 모두를 충족시켜준다. 이렇게 통로를 만들게 된 이유는 앞서 지적한 불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유럽식 기차의 분리된 객실에 내포된 위험 때문이었다. 초기 형태의 유럽식 객실은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완벽하게 다른 기차 공간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따라서 설령 비명을 지르며 싸움이 벌어지고 살인사건이 발생해도 옆 객실에서는 그것을 알기 어려웠다. “요란한 비명소리조차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차바퀴의 소음에 압도”8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1860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뿌앵쏘 살인사건과 1864년 영국에서 일어난 브릭 살인사건은 객실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처참한 살인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유럽 전체가 기차 객실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되었고, 이런 사회적 공포를 등에 업고서야 기차여행이 생겨난 지 수십년 만에 유럽은 마침내 마차형 객실구조에 붙박인 상상력에서 해방된 것이다.

시펠부쉬는 이런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도 객실은 19세기의 환상을 사로잡은 범죄의 무대였음을 지적하는데, 이런 폐쇄된 공간이 유발하는 환상은 살인사건처럼 흉측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가려진 공간이 그렇듯이 객실 또한 성적인 환상이 넘실대는 공간이었으며, 이 점을 이해하면 프로이트의 다른 꿈 또한 한결 이해하기 쉬워진다.

 

 

3

 

프로이트는 1898년 7월 19일경에 ‘홀트후른’이라 불리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꿀 당시 날씨는 매우 더웠다. 7월 18일 저녁에 프로이트는 먼 지방의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기차를 타야 했다. 그런데 기차는 만원이어서 매우 불편했고, 그는 매우 쌀쌀맞은 한쌍의 남녀가 있는 객실에서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그들은 프로이트가 들어와 앉는 것을 매우 성가시게 느꼈고, “불청객에 대한 불쾌감을 어떻게든 감추려는 예절을 보이지 않았으며,” 프로이트의 “정중한 인사에는 답례조차 하지 않았고,”(ID: 456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창문 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여행 경험에 따르면 “그런 무례하고 거만한 태도는 기차요금을 내지 않았거나 아니면 반만 지불한 사람들의 특징이었다.”(ID: 457면) 프로이트는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잠에 들었다가 열차가 마르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꿈에서 깨어나는데, 그 상황과 꿈을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는 7월 18일과 19일 사이 밤에 남부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잠을 자고 있는데, “‘10분 후 홀트후른 정차’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즉시 나는 홀로투리엔과 자연사박물관을 떠올린다. 그곳은 용감한 남자들이 군주의 우세한 병력에 맞서 헛되이 저항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오스트리아에서의 반동종교개혁!…이제 희미하게 작은 박물관이 보인다. 안에는 그 남자들의 유골이나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기차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갑자기 내가 다른 칸에 가 있다…나는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수면상태에서 차를 갈아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몇명 보이고, 그중에는 영국인 남매도 있다. 벽의 선반 위에 책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갈색으로 두껍게 장정된 『국부론』 『물질과 운동』(맥스웰 저)도 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창문이 전부 닫혀 있기 때문에 내 몸은 땀에 젖어 있다. 기차는 마르부르크에 정차해 있다. (ID: 455〜56면, 강조는 원저자)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해석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꿈의 해석 또한 매우 길고 복잡하다.9 하지만 이 꿈이 일차적으로 충족시키려고 하는 낮 생활 동안 억제된(unterdrückt) 소망10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듯이, “달갑지 않은 동승객들에게 복수”(ID: 520면)하려는 소망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이 꿈을 통해서 어떻게 동승객들에게 복수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서술하지는 않고, 다만 “꿈의 전반부에서 중간중간 끊기는 부분의 배후에는…욕설과 경멸이 숨어 있다”(같은 곳)고 지적할 뿐이다. 그러나 『꿈의 해석』 후반부에서 이 꿈을 다시 다룰 때, 프로이트는 이 꿈에 내포된 욕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암시한다. 거기서 연상의 고리는 꿈에 등장하는 『물질과 운동』이라는 맥스웰의 저서이다. 프로이트는 “맥스웰의 『물질과 운동』(Matter and Motion)이라는 제목의 기원이 무엇인지 들어본 사람이라면, 몰리에르(Molière)와 ‘상상의 질병’(La maladie imaginaire)─대변은 양호한가?(La matière est-elle laudable?)─창자의 운동(motion of bowls)으로 이어지는 연상”(같은 곳)에 대해 말하는데, 이 ‘마’(ma)와 ‘모’(mo)라는 음상을 따라 이루어지는 연상의 고리는 분변학적(糞便學的)인 것이다. 프로이트가 꿈의 첫머리에서 마르부르크역 대신 떠올린 존재하지 않는 역인 홀트후른에서 연상할 수 있는 홀로투리엔, 즉 해삼의 형상 또한 분변을 닮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렇게 대변을 들먹이는 자신의 욕설이 쓸모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을 스스로 느낀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홀로투리엔─자연사박물관─박물관─박물관에 전시된 반동종교개혁에 대항했던 사람들의 유골과 유품─용감했지만 실패해버린 투쟁으로 이어지는 연상이다. 이 꿈에서는 기차를 무료나 반값으로 타는 특권층의 무례함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노가 정치적 저항으로, 그리고 그렇게 저항한 사람들이 결국은 박물관의 유물로만 남게 되는 좌절의 역사에 대한 슬픔으로 이어진다.

이런 프로이트의 꿈에 대한 사유를 자극한 것은 기차와 특권의 연계라는 19세기 기차의 현실이며, 이는 ‘툰 백작 꿈’과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이 꿈에는 그외에도 기차가 유발하는 사람들간의 당혹스러운 상호작용 상황이라는 또다른 테마가 등장한다. 그것은 낯선 사람과의 동승이라는 테마이다. 무례하고 낯선 사람과 장시간 동승해야 하는 것 자체가 기차여행에서 연원한 것이다. 처음에 마차 형태를 모방한 기차는 동승객들이 서로 마주보아야 하는 상황을 제공했는데, 이는 서로간의 대화를 강제하고, 서로에게 상당한 긴장을 안겨주는 것이었다.11 이런 상황에는 대화를 회피하는 것의 어려움, 상대의 직업·계층·인종 등에 대한 막연한 짐작을 기초로 대화의 테마를 선택해야 하는 곤란함, 자신의 정중함이 뜻하지 않은 무례함이 되어 고약한 반응을 야기할 곤경 따위가 잠복해 있는 셈이다.

한데 프로이트는 인용문 이후에서도 계속해서 상대에게 분변을 쏟는 식의 공격적 감정을 보인다. 이런 상황이 당혹스럽고 때로 모욕적인 일을 유발한다고 해도, 이같은 프로이트의 반응은 비록 꿈속이긴 하지만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상대의 행동에 비해 과도하다면 거기에는 어떤 심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4

 

프로이트는 ‘홀트후른 꿈’에서 자신이 강조한 ‘그러나 수면상태에서 차를 갈아탈 수도 있다’는 구절의 연원을 한달 전 자신이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했던 한 젊은 남자환자에게서 찾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은 다정다감한 성격”(ID: 458면)의 이 젊은이는 부모의 죽음 직후 자신 안에서 충동적으로 치밀어오르는 살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였다. 그는 “자신이 주시하던 사람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면, 자신이 그를 제거했을지도 모른다는 괴로운 느낌과 생각에 시달렸다.”(같은 곳) 그는 자신의 강박을 방어하기 위해 산책도 포기하고 사방이 막힌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지만, 신문에 난 살인에 관한 보도를 보면, “어느날 자신이 ‘무의식상태에서 집을 떠나’ 부지불식간에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같은 곳)을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불쾌한 기차여행에서 꾼 꿈에서 이 환자를 떠올린 이유는 그와의 기차여행이 매우 쾌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 환자의 치료에 성공하여 그 환자 친척의 진료를 의뢰받아 함께 여행중이었으며, 두 사람은 같은 객실에서 창문을 밤새 열고 기분좋게 대화를 나누며 여행했다. 프로이트는 꿈속에서 이전과 같은 식의 기차여행을 하고 싶은 소망을 충족하기 위해 이 환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동일시를 통해 프로이트는 이 환자가 환상 속에서 했던 행위, 즉 ‘무의식적 이동’을 꿈속에서 실행함으로써 창문도 열지 못하게 하는 불쾌한 동승객을 떠나 ‘수면중에 칸을 옮겨 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동일시는 더 심층적인 동일시와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의 발병의 근원이 어린시절 성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적대적 충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면서, 유사한 일을 고백하려고 했다. 실제로 꿈의 두번째 장면은 나의 출현으로 인해 중년의 두 동승객들이 의도했던 밤의 애정 교환을 방해받았기 때문에 내게 그토록 부정적이라는 방종한 환상으로 용해된다. 그러나 이 환상은 유년기의 사건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어린이가 성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부모의 침실에 침입했지만 아버지의 엄명에 의해 쫓겨난 사건이다.

(ID: 458〜59면, 강조는 인용자)

 

프로이트가 환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꿈에서 표현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다. 그리고 그 적대감은 프로이트 자신이 부모의 성행위 장면을 목도하고 그것을 방해했을 때, 자신을 가혹하게 내쫓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다.12 그러나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 전체를 통해 처음으로 ‘원초적 장면’13에 대해 논의하는 이 부분의 서술은, 마지막 문장의 주어가 프로이트 자신이 아니고 어린이인 것에서 보듯이 구체성이 약화된 채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홀트후른 꿈’을 꾸기 1년여 전인 1897년 10월 3일에 플리스에게 보낸 서한은 이 꿈이 프로이트가 경험한 ‘원초적 장면’(primal scene)의 반복임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자기분석 과정을 통해 회복한 어린시절의 기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이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어머니(matrem)를 향한 리비도는 그녀와 라이프찌히에서 빈으로 향하는 여행중에 있었던 일에 의해 일깨워졌다. 그 여행중에 우리는 밤을 함께 보내야 했으며, 거기에서 나는 그녀의 벗은 모습(nudam)을 볼 기회를 가졌음에 틀림없다.”14 여기서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것은 만 3세 무렵 그의 가족이 동유럽 농촌지역인 프라이베르크를 떠나 라이프찌히를 경유하여 빈으로 이사할 때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묘사하는 장면은 기차여행중에 사랑을 나누는 부모의 모습과 잠에서 깨어나 그것을 바라본 자신에 대한 것이다.15

이제 우리는 앞서 제기한 질문, 즉 왜 프로이트가 ‘홀트후른 꿈’에서 자신과 동승한 중년 남녀에 대해 그토록 강렬한 적개심을 품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프로이트의 동승객에 대한 적대감정에는 그들의 무례함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원초적 장면에 개입한 아들을 가혹하게 책망했던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 뒤섞여 있다.16 그의 많은 꿈들이 그렇듯이 이 꿈 또한 낮의 ‘억제된’ 소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어린시절의 ‘억압된’ 소망 또한 되살려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런 체험으로부터 우리는 19세기 기차의 폐쇄된 객실은 비밀스러운 ‘애정교환’의 장소이자 에로틱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으며, 어린 프로이트의 경우에서 보듯이 때로는 원초적 장면을 구성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17

 

 

5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그랬듯이 프로이트에게 기차는 불쾌한 곳인 동시에 에로틱한 환상으로 채워진 곳이었다. 프로이트는 『쎅슈얼리티 이론에 대한 세 논문』(Three Ea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 1905/1953)에서 ‘에로틱한 경험을 내장한 것으로의 기차’라는 테마를 다음과 같이 이론화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프로이트의 원초적 장면의 잔영을 발견하게 된다.

 

성가신 아이를 재우기 위해서 통상 요람을 흔들어주는 방법이 쓰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차여행이 자아내는 흔들림과 뒤이어지는 기차여행에 의한 흔들림은 아이들에게 매우 매혹적인 느낌을 자아내서 대개 남자아이들은 한동안 기관사나 마부가 되고 싶어할 정도이다. 소년들이 기차와 관련된 것에 그렇게 예외적으로 강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며, 환상이 매우 활발하게 생산되는 (사춘기 직전의) 나이에는 기차가 특히 성적인 상징체계의 핵으로 이용된다. 기차여행과 쎅슈얼리티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종류의 충동적인 연계는 분명 운동이 낳는 유쾌한 감각 자극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시절에 여러가지 좋아하는 것들을 그 반대물로 전환하는 억압적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것을 경험한 개인은 사춘기 때든 어른이 되어서든, 흔들림이나 진동에 메스꺼운 느낌을 갖게 되거나 기차여행을 엄청나게 피곤해하거나 여행중 내내 발작적인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철도여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SE  7: 201〜202면)

 

여기서 프로이트가 보인 입장은 그 시대의 다른 의사들과는 상반된다. 프로이트 이전의 의사들은 철도가 야기하는 진동이 질병을 유발한다고 보았지만,18 프로이트는 이런 진동을 쎅슈얼리티와 연결하며, 기차에 대한 혐오를 그에 선행하는 쾌락에 대한 억압의 산물로 해석한다. 이런 프로이트의 주장은 그의 많은 주장들처럼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랬을 때 이 주장은 프로이트가 자신이 경험한 ‘여행 불안’ 또는 ‘기차여행 공포증’19을 선행하는 쾌락 경험이 반대물로 전환됨으로써 형성된 징후로 파악했음을 뜻한다. 이 전환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기차여행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프로이트의 가족은 그가 만 3세일 무렵 기차를 타고 프라이베르크를 떠나 빈으로 이주했다. 이 긴 기차여행의 중간 정차역 가운데 하나인 브레슬라우에서 있었던 일을 1897년 12월 3일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브레슬라우 또한 나의 어린시절 기억에서 하나의 역할을 한다. 내가 세살 무렵 우리 가족은 프라이베르크에서 라이프찌히로 이사할 때, 브레슬라우역을 통과했다. 거기서 내가 처음 보았던 가스등은 나에게 지옥에서 불타는 영혼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그 맥락을 약간은 안다. 지금은 극복된 여행 불안 또한 그것과 결부된 것이다.”20 기차역에 켜진 붉은 가스등을 두려움에 떨며 바라보는 프로이트의 모습에서 우리는 고향 상실의 두려움을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친밀한 전근대적인 세계를 떠나 근대적인 대도시 빈으로 표류해 들어가는 방랑하는 유태인 가족의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또다른 기차 에피소드와 이 공포감을 겹쳐보면, 프로이트에게 기차여행은 고향 상실의 경험과 어머니의 신체로부터의 분리를 응축한 경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트는 기차 속에서 어머니의 벗은 몸을 보고, 그것을 향한 강렬한 리비도의 경도를 경험하지만, 아버지의 거세적인 위협에 의해 그 원초적 장면에서 내쫓기는 경험이 고향 상실의 공포스런 체험과 연결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이 고향 상실에 퇴행적으로 집착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 프로이트에게 직선으로 돌진하는 기차,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자신을 실어가는 기차는 그 자체로 근대의 상징이며 그래서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기차는 근대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했으며, 그는 그것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앞서 ‘툰 백작 꿈’을 이야기하며 잠시 언급했듯이 프로이트는 기차를 놓치는 데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지녔으며, 그래서 그는 평생 기차시간보다 몇십분 일찍 역에 도착하곤 했다. 기차를 놓치는 것에 대한 이러한 초조함은 고향 상실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근대적 세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서 기인한다.21 프로이트의 이런 경험에 기초해서 보면, 기차와 슈얼리티를 연관짓는 그의 논의는 그의 경험의 구조를 전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기차는 선행하는 공포를 반대물로 전환하고서야 쾌락의 대상일 수 있었던 것이다.22

 

 

6

 

『꿈의 해석』의 주요한 내용을 구성하는 프로이트의 꿈들 가운데 기차와 연관된 것들은 지금까지 논한 두 개의 꿈 이외에도 여럿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차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제는 이 영향의 다양함보다 그 깊이에 대해 살펴보자. 프로이트에게 기차 경험은 산란한 꿈과 백일몽 그리고 말실수 속에서 되살아날 뿐 아니라, 한층 내밀하게 그의 사유 속으로 스며들어가 개념 구성의 한 원리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차여행과 내면적으로 연관된 프로이트의 개념 중에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자유연상 개념이다. 그는 「분석기법에 대한 논문」(Papers on Technique, 1913/1958)이라는 글에서 환자가 치료중에 준수해야 할 규칙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여러가지 일들과 관련해 갖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비판이나 반박을 염려해서 그런 생각들을 제쳐두고 싶을 것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런저런 비판에 굴복하지 말고 그것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그러니 당신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라. 예를 들어 마치 당신이 기차 객실의 창문 옆에 앉아서 보는 변화하는 바깥 풍경을 열차 안의 어떤 사람에게 묘사하듯이 행동하라. (SE 12: 135면, 강조는 인용자)

 

프로이트는 여기서 자유연상이란 기차 차창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바꾸어 말하면 정신분석 과정은 기차를 타는 것과 같은 경험임을 뜻한다. 그것은 덜컹거리는 기차바퀴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경유했지만 스스로에게 낯설어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체험이며, 그 회귀의 기차여행 속에서 그리고 무의미한 듯이 스쳐가는 풍경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우연적으로 구조화했던 그 무엇과 다시 대면하는 일이다. 짜여진 선로의 망 위에서 분기하는 지점들을 거쳐가는 이 자유연상은 무의식이라는 연료를 소진하는 실존의 휴가여행인 것이다.

이런 비유의 핵을 구성하는 기차 차창 밖의 파노라마 같은 풍경 자체가 지리적 공간(geographical space)과 풍경 공간(landscape space)의 긴밀한 연결을 해체하는 기차가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대상이다.23 이런 사실에 비추어볼 때, 프로이트의 비유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경험양식 자체를 재구조화하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새로운 자기인식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110-332프로이트의 이런 기차 비유는 자유연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 이전에 저술했으나 폐기한 원고인 『과학적 심리학 초안』(Project for Scientific Psychology, in SE 12, 1895/1963)에서 이런 비유를 매우 포괄적으로 활용한 바 있다.24 프로이트는 이 저술에서 심리적인 것을 신경생리학적 과정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자극이 자유롭게 방전되는 Φ 뉴런과 자극의 영향이 영구적으로 남는 Ψ 뉴런, 그리고 자극의 주기를 질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ω 신경계를 구분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뉴런들 사이에서 자극의 양(Qή)이 전달되는 과정을 뉴런 사이의 길내기(Bahnung) 과정으로 파악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Bahnung이 기차와 관련된 연상의 고리를 풍부하게 지녔다는 점이다. Eisenbahn 또는 Bahn은 기차를, Bahnhof는 기차역을, Bahnlinie는 기찻길을 뜻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Bahnung에 의해 연결된 신경망은 철도망(Bahnnetz)의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며, 프로이트가 신경망을 도해한 그림 또한 철도망을 연상시킨다.

프로이트가 이런 신경망에 입각하여 고통을 설명하는 부분은 다시금 기차를 연상시킨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을 “과도한 양의 자극이 Φ 뉴런의 차폐조직을 돌파해버리는 경우라고 정의한다.”(SE 1: 307면) 이런 정의는 마음이라는 말을 Φ 뉴런으로 대치하기만 하면, 프로이트의 다음과 같은 트라우마(Trauma) 정의와 일치한다. “그것(트라우마적인 것)은 마음이 정상적으로 다룰 수 없는 너무 강력한 자극이 단기간에 증가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SE 15-16: 275면)25 그리고 바로 이 트라우마라는 말은 19세기를 통해서 열차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충격을 서술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26

프로이트는 ‘자아’ 개념 또한 이 신경망 모델에 따라 설명하는데, 그에 의하면 자아란 “서로에 대해서 잘 ‘길 내어진,’ 에너지 양이 일정 정도 충당된(cathected) 뉴런들간의 네트워크”(SE 1: 323면)이다. 그것은 불쾌한 자극 양이 다른 뉴런으로 충당된 에너지를 풀어놓는 것, 즉 심적인 1차과정을 저지하고 방어하는 형태의 조직이다. 이런 묘사에 따르면 자아란 긴밀하게 짜여 있고 잘 통제되어 있어서 무리없이 운행되는 근대화된 철도망의 영역이며, 이 자아가 억압하고 저지하는 불쾌한 자극의 세계란 이 근대화된 철도망의 어떤 지선(支線)이 닿는 낯선 영역, 전근대의 어두운 지역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분석학적인 실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연상이란 자아가 배제한 주체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이따금씩만 기차가 닿는 외진 지선의 낯선 정거장으로 가는 긴 기차여행이라는 비유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7

 

기차는 지형을 거부하고 직진한다. 굴을 파고, 다리를 놓고 직진하는 기차는 풍경을 재구조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질적인 지형을 균질적인 공간으로 변형한다. 그것의 속도는 시공간을 응축하고, 대륙을 횡단하기에 표준시를 도입하도록 강제한다. 기차는 또한 공장의 진동과 소음을 일상화한다. 그리고 그 진동은 질병의 출처이자 에로틱한 경험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기차는 때로 탈선하며 충돌하므로 공포의 근원이 되고, 트라우마적 경험을 산출한다. 객실은 당혹스러운 만남을 주선하고, 때로는 살인의 공간으로 때로는 에로틱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또한 기차는 탑승객의 자의적인 하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차에 실린 사람은 속도를 통해서 외부세계와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그리하여 기차를 탄 것은 우리지만, 탄 순간 우리는 배송되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그 충동적인 힘에 실려 어딘가로 보내지는 셈이다. 이런 모든 것으로 인해 기차는 근대성에 대한 탁월한 상징이다. 그것은 근대성이 질주이며, 동시에 지극히 위험한 질주라는 것을 상징한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이런 기차 경험들이 응축되어 개인의 심리구조를 관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에게 기차란 전근대의 농촌세계로부터 근대적인 유럽 중심부로 이동하는 경로였다. 그것은 고향 상실, 어머니의 신체와의 분리,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거세불안을 동반하는 긴 여정을 상징한다. 어딘가로 실려가는 느낌, 우리 존재를 배송하며 직진하는 욕망의 힘, 쉼없이 덜컹거리는 바퀴소리, 그렇게 프로이트에게 기차는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그 교차점에서 언제나 기차를 놓치지 않고 근대로 진입하기를 갈망했다. 또한 그 시대의 대부분의 중산층에게 그랬듯이 그에게도 기차는 일상의 규칙에서 해방된 휴가여행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 휴가는 특권과 인종차별에 직면하거나 불쾌한 동승자에 대한 공격성을 억제해야 하는 미묘한 갈등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 갈등과 억제는 그를 끈적이는 땀에 젖는 꿈으로 안내했으며, 그는 그 꿈의 파노라마 같은 경험들이 종래는 되짚어보기 위해 돌아가 다시 대면해야 할 것임을 알았고, 그것을 위해 자기분석을 수행했다.

프로이트의 이런 경험은 그의 개념 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제시한 신경망은 철도망을 닮았으며, 신경체계에 흘러든 자극 양은 마치 선로 위의 기차처럼 뉴런 사이를 운행한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그는 정신분석학적 실천의 핵을 구성하는 자유연상을 기차 차창의 파노라마 같은 풍경을 묘사하는 행위로 파악했다. 이것은 우리들이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테크놀로지 자체가 우리들의 세계경험 자체를 구조화해 종래는 그 경험에 접근하는 인지도식까지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이데거의 어법을 빌린다면, 기차라는 테크놀로지 또한 ‘현존재의 초보적 세계 이해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요컨대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이론적으로 성찰하기 이전에 이미 성찰하는 사유를 규정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경험은 우리가 이런 테크놀로지에 대해 가진 도구주의적 관점을 청산할 것을 요청한다. 집합적 인류로서 우리가 성취해야 할 것은 궁극적으로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제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통제의 길은 단순한 도구주의적 전망을 벗어날 때에만 열린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유난히 광휘를 발하는 테크놀로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들이 매일매일 접하는 새로운 낱말들의 출처의 대부분은 정보통신테크놀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보았듯이 테크놀로지와 우리들의 세계이해 전망의 복잡한 연관은 가상현실의 도래로부터만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프로이트 이전부터, 프로이트의 시대를 거쳐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매번 새로운 양상으로 우리에게 지워지는 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0년에 걸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방대한 영역에 영향을 미쳐왔으며, 이는 다음 세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과정은 정신분석학 자체의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미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예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는 미래로의 길만이 아니라, 과거로의 길 또한 열려 있다. 프로이트의 모든 텍스트는 사회사적으로는 ‘장기 19세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은 ‘19세기의 고고학’을 위한 풍성한 자료이기도 하다(이 점에서 『꿈의 해석』은 특권적인 저작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정신분석학이 항상 개인의 경험과 일대기가 이론적 체계로 도약하는 과정을 자체 안에 내포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은 자신의 도약대인 자잘하고 미묘한 경험의 세계를 잊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경험,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예컨대 기차 경험과 프로이트의 텍스트 간의 연계에 대한 독해는 곧장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의 경험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예컨대 100여년 전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을 때, 그것은 당시 우리 선조들의 세계 체험과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또 이런 질문을 던져준다. 정보통신테크놀로지는 우리들의 세계 체험과 이해를 어떻게 전환하는가? 이렇게 『꿈의 해석』은 우리의 20세기와 21세기에 대해서 새로운 질문을 생산적으로 던져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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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 Jones, The Formative Years and the Great Discoveries, 1856-1900, in 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 vol.1, N.Y.: Basic Books, Inc. 1961, 360면. 이것은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침묵이다. 이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우선 프로이트가 평소 숫자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꿈의 해석』을 저술하던 시절 프로이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친구 플리스는 숫자와 주기에 대한 약간은 미신적인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이었고, ‘1851년과 1856년’ 꿈처럼 『꿈의 해석』에 숫자에 대한 꿈이 등장하며(S. Freud,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in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4-5, tr. under the General Editorship of J. Strachey, London: Horgath Press 1900/1958, 435〜39면, 이하 각기 IDSE로 약칭),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의 마지막 장 또한 숫자에 관련된 무의식적 사유를 다루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시대는 ‘세기말’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시대이며, ‘세기’라는 말 자체를 유행하게 만든 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0년이라는 출판연도에 대해 프로이트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2. E. Shorter, A History of Psychiatry: From the Era of the Asylum to the Age of Prozac, N.Y.: John Wiley & Sons Inc. 1997.
  3. 움베르또 에꼬 「서문」, 에꼬 외 편, 김석희 역 『시간박물관』, 푸른숲 2000, 7면.
  4. 에릭 홉스봄, 김동택 역 『제국의 시대』, 한길사 1998.
  5. 같은 책 87면.
  6. 이 꿈에 대한 정치적 해석으로는 C. Schorske, Fin-de-Siècle Vienna, N.Y.: Vintage Books 1981, 4장; William J. McGrath, Freud’s Discovery of Psychoanalysis: The Politics of Hysteria, Ithaca: Cornell Univ. Press 1986, 259〜80면; 김종엽 「국왕 살해와 부친 살해」, S. 프로이트, 김종엽 역 『토템과 타부』, 문예마당 1985, 241〜327면 참조.
  7. W. Schivelbusch, The Railway Journey: Industrialization of Time and Space in the 19th Century, Univ. of California Press 1986, 5장 참조. 이하에서도 19세기 기차를 둘러싼 여러가지 상황은 이 책을 참조한 것이다.
  8. Schivelbusch, 앞의 책 79면.
  9. 여기서 이 꿈에 대한 해석 전반을 논의하는 것은 지면관계상 힘들다. 이 꿈에 대한 해석으로는 A. Grinstein, On Sigmund Freud’s Dreams, Detroit: Wayne State Univ. Press 1968, 14장; D. Anzieu, Freud’s Self-Analysis, tr. by P. Graham, London: Horgath Press 1986, 324〜32면 참조.
  10. 프로이트는 억제(Unterdrückung)와 억압(Verdrängung)을 구분한다. 전자는 “문자 그대로 누르는 것이다. 이 말에는 두 힘 사이의 직선적인 대립이 표현되고 있다. 누르는 힘과 이것에 억눌려서 밑에 깔린 요소가 쳐들어올리는 힘 사이의 대립 말이다. 그런데 두번째 단어는…엄격히 말해 옆으로 떼어놓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두번째 이 단어로 억압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그것(억압)의 본질은 다만 의식으로부터 따로 떼어놓고(Abweisung), 의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도록(Fernhaltung) 하는 데 있다.’”(이지훈 「마레·프로이트·뤼미에르─1895년에 일어난 일들」, 『창작과비평』 1997년 여름호, 347면) 프로이트의 위상학(位相學, topology)과 관련해 정리하면 억제는 의식과 전의식 사이에 발생하는 것이고, 억압은 의식/전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11. 그렇다면 마차여행이 그런 긴장을 유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차여행은 승객들의 계급적·신분적 차이에 따라 동승 여부가 미리 조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런 마주보는 좌석 배치 자체가 부르주아의 대화 문화의 공간적 배경을 이룬 커피하우스의 좌석 배치를 옮겨놓은 형태였다. 그러나 훨씬 대중적인 여행형태인 기차여행은 이런 문화적 전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기차여행이 야기하는 낯선 사람과의 긴장을 제거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기차는 친밀한 사람들이 함께 갈 때는 기차 좌석을 돌려 마주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기차의 진행방향으로 향하도록 하여 차창 밖의 풍경을 보게 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과의 동승이라는 체험은 오늘날 더욱 강화되고 있다. 기차여행뿐 아니라 대중교통 일반이 낯선 사람과 장시간 대화 없이 동승하는 체험을 가져다주며, 엘리베이터 상황은 시간이 짧을 뿐 아마 그런 상황의 절정일 것이다. 고프먼이 지적하듯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대체로 엘리베이터의 이동상황을 나타내는 층계표시등에 시선을 모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서로의 시선을 회피함으로써 긴장의 발생을 방지하는 공손한 무관심(civic inattention)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E. Goffman, Relations in Public: Microstudies of the Public Order, N.Y.: Haper & Row 1971 참조.
  12. 프로이트가 원초적 장면에서 내쫓기는 장면은 『꿈의 해석』에서 상황을 달리하면서 몇번 더 나타난다. 앞서 논한 ‘툰 백작 꿈’에 대한 분석에서 프로이트는 7,8세 무렵 아버지의 침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쫓겨난 체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저런 녀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 될 거야”라고 힐책한다. 프로이트는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이 꿈에서 “나도 쓸만한 녀석이 되었지요”라고 항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로이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거세적인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ID: 216〜17면 참조.
  13. 원초적 장면은 씨나리오나 장면의 형태로 조직된 트라우마적인 유아기 경험을 뜻하며, 통상 어린이가 부모의 성행위 장면을 목도하는 것을 지칭한다. 분석적 경험은 대개 이런 원초적 장면이 심적인 현실이며, 환상의 성격을 가진 것임을 드러낸다. J. Laplanche & J.-B. Pontalis, The Language of Psychoanalysis, tr. by D. Nicholoson-Smith, N.Y.: W.W. Norton & Company 1973, 335〜36면 참조.
  14. S. Freud, The Complete Letters of Sigmund Freud to Wilhelm Fliess, tr. & ed. by J.M. Masson, Cambr. Massachusett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 Press 1985, 268면
  15. 이 편지에서 흥미로운 것은 우선 프로이트가 어머니와 그녀의 벗은 몸을 모두 라틴어로 지칭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원초적 장면와 어머니에 대한 욕망에 내포된 위험한 환상을 학문적인 언어로 중화하기 위한 것이다.
  16. 이런 원초적 장면에 대한 프로이트의 서술에서 그 자신이 어머니의 벗은 모습을 ‘보았다’고 서술하지 않고, 그것을 ‘볼 기회를 가졌음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방어적이고 모호한 발언이지만, 이론적으로 엄격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원초적 장면 자체가 환상의 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17. '홀트후른 꿈’에는 프로이트가 19살 때, 영국에 사는 이복형 엠마누엘을 찾아가던 기차여행 장면이 더 숨어 있다. 엠마누엘 방문은 그의 자녀이자 프로이트의 조카들인 욘과 파울리네를 만나는 것을 함축한다. 프로이트가 꿈에서 본 오누이는 바로 욘과 파울리네를 뜻한다. 이 여행이 함축하는 복잡한 의미, 그리고 그것이 다른 장면들과 맺고 있는 관계는 지면관계상 다루지 못했다.
  18. Schivelbusch, 앞의 책 113〜23면.
  19. Jones, 앞의 책 13면.
  20. S. Freud, The Complete Letters of Sigmund Freud to Wilhelm Fliess, 285면.
  21. 프로이트에 대한 전기적인 연구들은 프로이트가 사춘기 시절 고향을 방문하여 기젤라 플루스라는 어린시절 여자친구와 첫사랑에 빠졌으며, 그녀와 결혼하여 고향에 안착하는 꿈을 품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때도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빈으로 되돌아왔다.
  22. 프로이트는 후에 『쾌락원리의 피안』(Jenseits des Lustprinzips)에서 충격방어로서의 반복강박 개념을 가다듬었는데, 철도와 쎅슈얼리티의 연관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 후기이론에 입각해서 보는 것이 그의 경험에도 더 부합한다. 『쎅슈얼리티 이론에 대한 세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선행하는 성적 쾌락에 대한 사후구성적인(nachträgliche) 억압이 신경증의 원인이라는 이론단계에만 머무르고 있다.
  23. 에르빈 슈트라우스는 기차가 풍경 공간을 지리적 공간으로 흡수하는 매개라고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잇공간을 삽시간에 건너뛰고 가로질러 달리고 혹은 아예 잠든 채 지나가버리는 근대적인 형태의 여행은 우리들이 인간으로 살고 있는 체계적으로 닫혀 있고 구조화된 지리적 공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열차가 도래하기 전에는 지리적인 연관이 풍경의 변화를 통해 여행자들에게 나타났다. 그러나 오늘날 여행자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건너뛴다. 이제 우리는 아침에 프랑스 기차에 올라타고, (진정으로 아무 곳도 아닌 곳을 거치는) 12시간의 기차여행 후에 로마에 도착할 수 있다. 예전의 여행형태가 풍경과 지리 간의 더 많은 균형, 더 좋은 균형을 제공했다.”(Schivelbusch, 앞의 책 53면에서 재인용) 하지만 그렇게 지리적 공간에서 이탈한 파노라마 같은 풍경은 “열차로 인해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자체로는 단조로운 풍경이 기차로 인해 처음으로 미적으로 매혹적인 시점에 놓이게 된다.”(같은 책 60면)
  24. 『과학적 심리학 초안』은 프로이트가 출간하기를 포기한 미완의 저작이기는 하지만, 프로이트의 사유방식과 그의 메타심리학 이해의 열쇠가 된다. 헬름홀츠학파의 에너지론과 당대 신경생리학의 용어체계를 빌려 저술된 이 논문은 『꿈의 해석』 제7장 ‘꿈과정의 심리학’의 토대를 이룰 뿐 아니라, 프로이트 후기이론의 전환점을 구성하는 『쾌락원리의 피안』의 근원을 이룬다.
  25. S. Freud, Introductory Lectures on Psycho-analysis, in SE 15-16, 1916-7/1963.
  26. Schivelbusch, 앞의 책 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