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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지리산에 이는 생명운동의 바람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를 마치고

 

 

이원규 李元圭

시인. 시집으로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등이 있음. jirisanpoem@hanmail.net­

 

 

지리산에서 네번째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3년 동안 마치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게다가 일용할 양식 걱정을 하지 않고도 섬진강과 피아골, 화개동천, 악양동천을 오가며 용케 굶어죽지 않고 잘 살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지리산에 지는 빚만 늘어갔다. 그 빚갚기의 일환으로 나는 지리산 살리기 운동의 하나인 ‘지리산댐 백지화 투쟁’에 참여하였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국립공원 1호 지리산에 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자 내 몸속에 숨어 있던 어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동안 우리는 뭇 생명의 희생을 담보로 너무 편한 길만 찾아왔다. 그러나 인간이 경제성장과 개발의 논리로 얻은 것은 사실 만족보다는 더 많은 불만족, 행복보다는 더 큰 불행, 그리고 어머니인 자연과의 부조화였다.

대지는 더이상 인간에게 젖을 주지 못하고, 물길은 시궁창이 되었다. 그나마 인간을 품어주던 산마저 개발의 광풍에 휩싸인 지 오래다.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이 온갖 폐수로 썩어가고, ‘물의 무덤’인 댐마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을 넘보고 있다. 지리산 살리기 운동이 낙동강 살리기로 이어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선택한 것은 불이 아니라 먼저 물이 되는 것이었다. 지리산의 물이 아니라 낙동강의 썩은 물이 되어 1300리를 흘러보는 것이었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못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정부가 지리산과 낙동강 유역에 댐을 만들겠다는 ‘낙동강수계 물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자, 지난해 8월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189개 시민·환경·종교단체가 모여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을 결성하고, 댐 반대 사업 첫번째로 낙동강 도보순례를 결행했다.

정부가 지리산에 댐을 만들어 부산시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낙동강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천공단을 세워 대구시민들의 환심을 사는 반면 낙동강을 죽이고, 낙동강을 죽이는 대신 지리산에 댐을 세워 부산시민들의 식수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고려 자체가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낙동강 포기는 곧바로 지리산에 대한 위협이면서 동시에 낙동강유역 주민들에 대한 위협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인·시인·화가·산악인·환경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화합과 생명살림의 대장정—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단’ 15명은 ‘낙동강은 맑게, 지리산은 푸르게’라는 깃발을 치켜들고 29일 동안 고행의 길, 수행의 길을 걸었다. 낙동강의 썩은 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르며 10여개 지역에서 40여개 단체와 함께 주민간담회와 댐 반대 결의대회를 가졌으며, 낙동강변에 사는 주민 3500여명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낙동강 도보순례는 댐 반대뿐만 아니라 ‘오래된 미래’인 생명공동체를 되찾고, 20세기 내내 지속된 자연과 인간의 대립·갈등을 풀어 생명 대화합의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리산과 낙동강을 둘러싼 대구·경북권과 부산·경남권 주민간의 갈등을 풀고, 동서와 좌우, 그리고 생명사랑을 통한 종교간의 대화합까지 꿈꾸는 것이었다.

순례단은 2000년 10월 23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못에서 기원제를 지낸 뒤 10월 24일부터 ‘화합과 생명살림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부터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해발 650미터의 황지못에서 솟아오르는 하루 5천톤의 그 맑은 물이 곧바로 죽어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폐광에서 쏟아져나오는 물이 문제였다. 석탄산업합리화로 폐쇄된 탄광에서 정화장치 없이 그대로 흘러나온 물이 적화현상과 백화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화현상은 갱출수의 알류미늄 성분이 강바닥을 하얗게 코팅하는 것이고, 적화현상은 철분이 강바닥을 붉게 코팅하는 것이다. 바로 이 코팅이 문제였다. 자연복원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바람에 물고기가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끼나 물풀도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물고기 한마리 살지 못하는 태백에 카지노가 들어서고, 태백산 천제단에 제사를 지낼 때 한쪽에서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미 공군기의 폭격연습이 이어지고, 석포리의 아연공장이나 폐기물처리장이 폐광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바로 낙동강 발원지의 현주소였다.

곳곳에 괴물처럼 멈춰서 있는 녹슨 타워크레인은 그 누구의 생명줄도 당겨주지 않았다. 내딛는 첫발이 이토록 무거웠으니, 태백산에서부터 따라오던 초승달이나 하루 20킬로미터씩 남하하는 단풍이 역설적으로 더욱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단풍의 남하 속도, 꽃들의 북상 속도, 그리고 흐르는 물의 속도로 걷고 또 걸으며, 자연의 속도를 추월한 산업화의 결과는 결국 죽음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매일 저녁 강변 천막 속에서 평가회를 열며 먼저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어떤 이는 담배를 끊고, 어떤 이는 물을 아끼는 마음으로 손발도 씻지 않았다. 순례단 모두 자기 밥그릇을 닦을 때는 화장지 한장이면 충분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이 붓거나 무릎 관절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후송되는 이도 있었지만, 경북 봉화의 절경과 되살아나는 강물을 보며 몸의 고통쯤이야 발자국처럼 뒤로 남기며 한발 한발 힘차게 걸어갔다. 강변의 벼랑길을 탈 때 위험하고 힘이 들었지만 길이 험하다고 탓하지 않았다. 인간의 길이 나 있지 않은 곳에서 만난 수달의 발자국이나 수많은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보면서 다시금 ‘지독한 인간, 전지구적인 죄인인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의 길이 없었기에 강변에 수달이 살고, 온갖 야생동물과 식물 들이 살아 있었다. 순례단이 어렵게 지나간 길일수록 낙동강은 잘 살아 있었다. 인간의 손길과 발길이 머물지 않은 곳은 모두가 그대로였다. 우리가 꿈꾸는 낙원이자 ‘오래된 미래’ 그 자체였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안동댐을 만나면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댐은 ‘물의 무덤’이자 ‘20세기의 마지막 유물’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댐 위의 물과 댐 아래의 물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자정능력을 발휘하며 흐르던 물이 절망의 댐에 막혀 썩어가고 있었다. 썩는 것은 물만이 아니었다. 댐 주변 전체가 죽어가고 있었다. 지독한 안개는 오전 11시가 되도록 걷히지 않았고, 댐 주변의 사람들은 호흡기질환에 시달렸다. 농작물은 일조량 부족으로 소출이 줄어들고, 고향을 댐 속에 묻은 이주민들은 일종의 정신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안동에서 토론회를 열고, 영주에서 송리원댐 반대 결의대회를, 그리고 문경·구미·대구·창녕·부산에서 순례단 환영대회와 간담회를 열어도 마음은 언제나 어두웠다. ‘낙동강 공동체’라는 말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그러나 강의 상류, 중류, 하류 주민의 미묘한 입장차이가 순례단을 슬프게 했고, 무조건 베풀고만 있는 낙동강을 살리기는커녕 결국 허물어야 할 임시 미봉의 댐을 짓거나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을 공단을 조성하다 강 유역민들을 이간질하는 정부의 처사는 분명 전형적인 ‘20세기형 파괴주의자’의 모습이었다.

낙동강은 마침내 반성과 회복의 시대가 와야 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순례단 모두는 처참한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했다. 각 지천의 축산폐수와 비료·농약이 뒤섞인 농업폐수, 구미·대구·부산지역의 공단에서 쏟아져나오는 온갖 공업폐수와 무분별한 골재 채취, 그리고 생활폐수로 죽어가는 낙동강을 보면서 지금까지 낙동강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결의를 했다.

“지리산과 낙동강이 만나면서 동시에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단절과 막힘의 역사가 끝나고 소통과 순환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리산은 푸르고 낙동강은 맑아야 한다.”

부산에서 지리산 실상사로 차를 타고 이동해 함양과 산청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와 지리산댐 백지화 결의대회를 가지고 지리산댐 예정지의 하나인 용유담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 울컥 치밀어오르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연민이었다. 새로운 댐을 건설하기보다는 오래된 댐을 해체하여 자연 그대로 물이 흐르도록 하는 여러 선진국들이 부럽기만 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댐을 짓는 것보다 강을 살림으로써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정부의 물관리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인간중심의 세계에서 생명중심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멀어 보이지만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내재해 있었다. 이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이 남았다. 실은 낙동강도 살아 있고, 지리산도 살아 있었다. 제아무리 병이 들었어도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대안이자 오늘이고 내일인 것이다. 댐으로 임시 미봉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거둬들이고 정부와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참회의 심정으로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낙동강 도보순례단은 29일간의 대장정을 마치며 낙동강도 지리산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20세기의 마지막 유물’ 혹은 ‘물의 무덤’일 뿐인 댐을 만들기 이전에 그 막대한 비용으로 낙동강을 되살리는 게 정도라는 데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하여 정부가 내놓은 ‘낙동강수계 물관리종합대책’의 전면수정, 국회에 계류중인 낙동강 특별법인 ‘낙동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의 부분적인 수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의 1년간 조사결과

그동안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환경단체의 낙동강 살리기에 대한 접점이 바로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의 활동에 모여 있었다. 정부는 낙동강수계 물관리 종합대책을 확정 발표하자마자 엄청난 반발에 부닥치자 해당지역 자치단체와 시민·환경단체의 추천으로 24명의 조사위원을 선출해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을 운영하였다.

이 물이용조사단은 갈수기 유지용수 조사반, 취수원 다변화 조사반, 오염총관리제 조사반을 구성해 지난 1년간 벌인 조사활동을 마무리하면서 1월18일 대구환경관리청 대회의실에서 최종 조사결과를 확정, 발표했다. 이 조사결과는 낙동강물이용조사단 산하 정책평가위원회의 최종검토까지 마치고 환경부로 넘겨졌다.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은, 첫째 정부가 갈수기 조절용댐 건설을 전제했으나 기존 댐의 최적화운영, 수요관리 및 공급관리를 통해 유지용수를 확보할 경우 낙동강 물금지역 목표수질 2급수 달성에 필요한 유지유량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그동안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가 추진하고자 했던 갈수기 유지용수 공급댐이 사실상 필요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둘째, 각종 수요관리제도를 도입하면 낙동강유역 취수원의 물 부족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도 내렸다. 이는 당초 정부가 부산 광역상수도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지리산댐 계획을 정부안에 포함시켰지만 낙동강 하류지역의 물 부족 상황을 검토한 결과 부산광역시에는 문제가 없으며, 강변여과수 개발 등을 통해서도 최소한의 비상 급수시설의 건설이 가능하고, 여러가지 사회·경제적 여건을 감안할 때 부산 광역상수도 사업은 현재 불가능하므로 부산시와 수자원공사가 추진하려 했던 지리산권역 댐 건설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오염총량관리제도를 도입해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을 먼저 포함하고 3년 뒤부터 총인(總燐)을 포함시킨 후 연차적으로 총질소,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유해화학물질을 포함시키고 오염 부하량을 추가삭감한다면, 물금지역 목표수질 2급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정부는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따라 댐 건설을 백지화해야 하며, 부산·경남권 주민들의 식수문제 해결과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해 오염총량관리제도 등 특별 대책을 마련해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건설교통부는 낙동강물이용조사단이 제시한 낙동강 수계 물관리정책을 적극 수용해 각종 후속사업을 진행해야 하겠다.

물론 낙동강과 지리산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나 환경단체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전국민적인 물 아껴쓰기 운동이나 실개천 살리기 운동을 비롯한 실천적인 환경운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환경운동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지역주민과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등이 주도한 지리산댐 백지화 투쟁으로 시작돼 전국민적으로 결성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은 사실 지리산만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 아니다. 지리산에서 비롯된 운동이지만 처음부터 전국적인 시각을 가지고 출발했듯이 백두대간 살리기 운동, 4대강 유역 살리기 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 국토살리기 운동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즉 지역적 사안으로 출발한 전국의 단체들이 궁극적으로 국토살리기 운동으로 철저히 네트워크화해야 한다. 지역에서 사안에 대한 즉각 대응으로 운동을 하다보면 한 지역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문제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고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뿐이지 근원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리산과 낙동강 살리기 운동처럼 일방적인 반대운동만을 해서는 안되며, 민·관이 서로 긴밀히 대화하고 이를 통하여 정부의 밀실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지역주민과 전문가, 환경단체들과의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 공동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의 표어처럼 전국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먼저 지역 주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앞장서야 하겠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경우 나무 245종, 들풀 579종이며, 짐승은 15과 42종, 새는 39과 165종에 이른다. 유일하게 반달곰이 사는 산이며, 여기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까지 감안한다면 지리산에 터잡고 사는 생명체들은 헤아릴 수 없다. 말하자면 지리산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인 것이다. 뭇 생명의 안식처인 지리산을 죽이는 일은 바로 그들과 한 몸, 한 생명인 우리 자신을 죽이는 행위인 것이다. 지리산은 길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겐 따뜻한 고향이었고, 양심과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겐 신념과 용기를 연마하는 수련장이었다. 유교인들에겐 경전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였으며, 신선을 꿈꾸는 사람들에겐 영원한 이상향이었고, 불교인들에겐 성스러운 깨달음의 도량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리산은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배척하지도 않는 넉넉한 품 그 자체다. 너와 나, 영남과 호남,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 우익과 좌익, 종교와 종교, 인간과 자연이 지리산을 매개로 하나의 그물을 이루어왔다. 지리산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총체적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다는 크나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리산에, 서울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던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을 되가져온 것도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자’는 발상의 전환 때문이었다. 국민행동의 지리산 사무처를 정부 계획상의 수몰지구인 칠선계곡 입구에 마련하고 나를 포함한 실무진을 보강한 것도 지리산댐 계획에 대한 명확한 반대표시로서 만의 하나라도 댐이 들어선다면 함께 수장되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이다. 지리산 사무처가 앞으로 수행할 지리산 생명공동체를 위한 사업계획만으로도 환경운동이 새로운 생명운동으로 거듭나는 하나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의 골자를 보면 지리산권역 7개 시·군지역의 주민참여 네트워크 건설, 동서간 화합을 위한 활동, 골짜기 마을별 지리산 지킴이 조직과 활동 지원, 마을별 사랑방 좌담회 등을 통한 지역공동체의 강화, 지리산권역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유교 등을 아우르는 종교인협의회의 활성화, 그리고 기존의 행정구역별 지역신문과는 달리 지리산권역의 3개도 7개 시·군의 주민들이 통신원으로 직접 참여하는 ‘지리산’ 신문 발간, 홈페이지 활성화, 지리산 생태·문화·역사지리 자료조사 작업, 지리산 사진 및 영상화작업, 지리산권역 청소년들의 생태문화교육 실시, 그리고 지리산 현안에 대한 대응사업인 지리산댐 백지화와 지리산 반달곰 지키기 사업, 지리산 개발 및 파괴현장 조사를 통한 개선사업, 대규모 국책사업에 따른 국토파괴 대응사업 등이다.

이미 시작된 ‘국토청정 기원 1백일 대장정’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2월 16일부터 5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 사업은 먼저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살리고 서쪽으로는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는 결의를 담고 있다. 그리고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 곧바로 지리산 종주와 지리산 지역주민들이 구간별로 동참할 지리산 둘레 850리 도보순례를 통해 지리산 살리기 운동의 불길을 지피고, 노고단에서 행해질 한국전쟁 당시의 좌우익 희생자를 위한 해원상생(解寃相生) 천도재까지 이어진다. 이는 환경운동의 차원을 넘은 생명운동의 새로운 기원으로서, 국토청정운동을 벌여나감은 물론 동서간 갈등과 종교간 갈등을 상생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통일운동으로까지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지리산 실상사와 인드라망(indra網)생명공동체가 벌이고 있는 귀농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대안교육운동, 환경연대운동, 지역공동체형성운동 등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를 통해 총화된 힘이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낳았고, 이 운동이 이제 지리산에서 겨우 싹을 틔우고 있다. 그러나 생명운동의 전제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망상 혹은 교만을 버리는 것이다. 지리산과 낙동강을 살리고 새만금 갯벌을 살리는 것 또한 인간의 일이 아니라 지리산과 낙동강, 그리고 새만금 갯벌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만 인간이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깃들여 살면서 더이상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유생물과 무생물 모두가 한 커다란 생명공동체라는 사실만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곧바로 생명운동인 것이다.